<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이 2023년 3월25일 토요일 서초동 민변 건물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정세입니다. 지배세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한편, 그들이 체제의 한계를 무자비하고 교활하게 넘어서 새로운 지배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도 노골적인 전환기적 정세입니다. 누구는 고양기라고 하고 누구는 퇴조기라고 합니다. 정세 자체에 대한 해석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회변혁을 위한 주체의 구성과 성격에 대한 시각도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때에 좌파적인 관점의, 이론적 실천을 지향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하는 연구소의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을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몸과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이 씨가 되어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을 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멋지게.진지하지만 즐겁게.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종회 노동당 공동대표,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전회장, 그리고 누가 뭐래도 2022년 노동자계급투쟁의 선봉이자 윤석열정부에 대한 노동자 반격의 포문을 연 양대 노조, 대우조선파업을 이끈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과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축사발언을 하셨습니다. 과분한 기대, 절실한 요구와 함께 이론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축하글을 보내주신 이들도 있습니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이자 전노협 마지막 위원장, 권옥자 청주노인병원분회장, 지율스님, 조성웅시인, 김호철 민중음악 작곡가,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전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위원장, 양희철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만남의 집)등입니다. 하나같이 경청하면서 앞으로 연구소가 나아가는데 새겨들어야할 말씀들입니다.

창립식 자리에 함께 한 이들에게 특히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연구자들과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건배사를 통해서 연구소에 바라는 말씀들을 해주셨고, 정세에 대한 무게있는 진단들도 함께 했습니다. 축하 공연을 멋지게 해준 최도은, 임정득 민중가수에게도 고맙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 <인터내셔날>로 발족식의 문을 열었습니다.

가장 큰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이들은, 연구소 제안과 창립식 준비에 처음부터 호응해주신 이들입니다. 이들이 이 날 행사를 만들었고, 앞으로 연구소를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이들입니다.

지금 현정세에서 절실한 목표는, 다른듯 같은 투쟁의 반복이 아닌, 투쟁을 모아서 하나의 반자본주의 전선을 형성하고, 파편화하여 종횡하는 각 부문들이 모여 하나의 주체, 동맹세력이 되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모순으로 가득찬 체제가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것을 접수할 주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사회변화와 변혁의 주체를 질문하고자 합니다. 그 주체와 정세의 동학을 풍부하게 이론화하고 연구를 실제의 투쟁과 변화를 위한 근거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기조발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시작일뿐입니다. 연구집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과 연구일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연구소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과 의미있는 참여와 뜨거운 후원을 기대합니다.

2023.3.29
권영숙 제안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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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일, 그것도 ‘거창하게’ 보여질법한 (그러나 아직 현실화되지 않아 그 결과가 매우 미확정적인) 이름과 명분을 걸고 시작할 때, 기대도 크고 걱정도 많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이고,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이런 때 많은 이들의 십시일반 도움 그리고 전달되는 마음과 의지가 무언의 격려가 되고,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를 발족하면서 제가 바라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연구소 학습모임과 연구 실천활동을 위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연구소에 연구만을 하는 상근 연구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이 땅의 변혁과 계급적 노동운동을 위한 양질의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겠죠.

연구소로서 삼은 역할을 흔들리지 말고 잘할 것을 기대하고 격려하고, 재정 후원 해주시고, 토론회등 행사에 많이 참여해주시고, 체계적인 학습모임에도 같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업 제안도 좋습니다. 필요한 연구 조사를 의뢰해주셔도 가능하면 수용하겠습니다. 돈벌이가 목표는 아니어야 합니다. 계급적 관점에서 좌파적 시각에서 필요한 연구조사는 노조운동과 노동운동이 변혁운동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아마 세상의 많은 연구소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넘쳐나는 연구소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노동에 대한 좌파적 담론 생산을 목표로 하는 연구소로는 드문 연구소가 될 것입니다. 계급적 관점에서, 노동운동에 필요한 연구 성과로 복무하는, 이론적 실천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청년기 학생운동부터 지금까지 중요하게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품고 손발로 실천하려는 모토가 “구체적인 정세에 구체적인 개입”입니다.

맑스가 말했듯이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합니다. 하지만 변혁은 구체적인 정세에 구체적인 개입으로서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세 진단은 정치적 세계관과 단단한 이론의 골조 위에서 가능합니다. 정세론이 모든 것의 총화인 이유입니다. 정세에 대한 분석에서 세계관, 이론적 당파성, 그리고 현실 파악의 구체성이 다 드러납니다. 정확한 정세를 진단할 때 우리는 정확한 실천으로 구체적인 현실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정세와 실천에서 이론적 능력과 실천, 그리고 이념적 방향, 즉 당파성 양자가 균등하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론과 이념이 부재한 운동은 방향을 상실하고 동요하기 십상입니다. 외국의 것을 발빠르게 번역하여 낸다고, 혹은 19세기로 돌아가서 맑스만 읖조린다고, 20세기 초로 돌아가서 레닌과 룩셈부르크만 읖조린다고 해서 이론과 이념이 곧바로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구체적 개입을 위한 무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생경하고 구체성이 없는 이론의, 현실에 대해 겉도는 개입일 뿐입니다.

지금 맑스의 현재화 혹은 21세기 맑스를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은 첫째, 이론과 현실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하여 연결하고, 둘째,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과 분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론과 학습, 그리고 연구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셋째, 변화하는 자본주의 정치경제적 현실에 대한 예민하고 적극적인 해석과 이론화도 필요합니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인정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의 변혁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이론적 자세와 이론에 대한 자세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이론적으로 도모하는 하나의 소박한 공간으로서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를 창립하려고 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이론적 실천의 무기를 들고, 노동이 조직노동 너머 사회적 노동으로, 좌파가 철학의 빈곤과 대안의 무능함을 떨치고 더 넓고 깊은 정치적 좌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애써보겠습니다.

지속적인 관심, 의미있는 참여, 뜨거운 후원을 기대합니다.
우선 3월25일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이 멋지게 치러질수 있도록. 함께 힘 모으고 뜻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2023.  3. 14.

권영숙 제안자 드림

일시: 2023. 3. 25(토) 오후 4시 – 6시30분
장소: 서울 서초대로46 길74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 (서초역, 교대역 4백미터)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민주주의와 노동’이라는 주제를 정치경제학비판의 관점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탐색하고 연구하기 위해 출범합니다.
근대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과 정치체제의 혁명 혹은 이행은 노동과 민주주의의 관계맺음과 동학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21세기의 오늘날에도 한국사회와 전지구적 변혁과 전환을 상상하고 실천하는데 있어, 민주주의와 노동의 관계는 결정적인 이론적 정치적 화두입니다.

*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연구집단을 구성하여,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 이론과 실천의 일치 혹은 이론적 실천
– 우경화되는 담론지형속에서 좌파적 담론의 형성과 개입
– 노동운동에 필요한 개념, 정책, 이슈등 연구 생산을 통한 기여

*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다음의 3개 주제를 핵심 연구로 삼을 예정입니다.
– 민주주의와 노동
– 정치경제학 비판
– 법과 정치

연구활동에 항상 다음 경구를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 실천이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의 발족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합니다.
창립식에 오셔서, 연구소 활동에 대한 격려와 조언을 아낌없이 부탁드립니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의 안정적인 재정 독립을 위해서 다음 후원창구를 개설했습니다. 연구소는 후원회를 별도로 운영하고, 연구소 소식과 연구성과를 가장 먼저 알리겠습니다.
bit.ly/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일반화의 오류 혹은 사례의 다양성. 한국 사회 교육제도를 둘러싼 기득권과 자원의 불평등이 이렇게도 해석되는구나.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로, 학교폭력 가해자 아들을 위해서 법적인 자원을 총동원한 정순신 한 사람만 가지고 교육 및 입시문제를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란 지적. 또 다른 편에선 사례들이 매우 다양해서, 맥락을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맥락을 보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조국의 학폭 피해자 아들의 미국 대학 시험 부정과 관련된 얘기에서 나온 말이다. 논리학적으로는 다 맞다. 하지만 일반화 대 개별 사례라는 양극단을 주장한 이 얘기들의 결론은 결국 동일하다. 흥미롭게도 처음부터 예정된 결론을 가진다. 결국 사례들은 개별화되고,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등장한 두 명의 인물, 정순신과 조국이, 현실 정치진영에선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하나의 세계의 사람들로 보이는 이유다. 왜 문제는 남고, 과정은 유사해지고, 결론은 동일해질까.

1. 첫 번째 사례

윤희근 경찰청장이 단수 추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뽑은 2대 수사본부장 후보 정순신은 검사 출신 현직 변호사이고, 대통령이 서울지검장을 할 때 ‘인권감독관’으로 근무한 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는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그는 또한 아들을 ―판결문에 적힌 바에 따르면 “검사는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제주도에서 온, <한겨레신문>을 읽는 고등학교 동급생을 “빨갱이 새끼”라고 부를 정도로― 정치적인 도착상태에 빠진 인물로 키운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검사 빽”을 심하게 믿고, 동급생을 괴롭히다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을 당했는데, 그 아비라는 자는 아들의 대학입시를 위해 이미 판정이 난 학교폭력을 두고, 자신이 가진 법적 지식과 연고를 총동원해 재판에 재판을 이어 붙여 대법원까지 갔다. 아들에게 대학입시에서 학폭을 은폐하기 필요한 1년의 ‘법적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법의 시간이 사회적 시간을 이렇게 압도한다. 노동 판결부터 이런 학폭까지- 민중언론 참세상 <사파시평> 2021.10.08.자).

그리고 서울대학교는 정시로 그를 입학시켰다. 듣자 하니, 수시 아닌 정시 입학 절차에서도 문제 있는 지원자는 더 조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서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건지, 대학교의 유기행위도 적지 않다. 이런 구멍을 두고도 입시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또 능력주의가 제일인 건지. 결국 정순신은 자신의 기득권과 ‘학부모 자원’을 아주 잘 사용해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을 ‘아주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다. 참 교육적이기도 하지.

2. 두 번째 사례

이를 두고 어느 이는 조국의 아들 경우와 비교했다. 그 아들이 학폭 피해자였다고 한다. 나는 자세한 저간 사정은 모르지만, 여기까진 십분 일반적인 ‘학폭’에 비춰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다양, 아니 특수하다.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서는 ‘사례의 다양성’ 논리. 그래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지방대 교수인 어머니의 근무처 근처에 불러다 ‘자원봉사’를 하게 해서 대학입시용 경력을 만들었다. 그가 학폭 피해자라서 그렇게 했단다. 또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이 할 수 없이(?) 미국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대학에서 학기 중에 ‘in-class’ 시험이 아닌 home 오픈북 시험을 쳤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부모가 미국에 있는 아들과 함께 혹은 조력하여 시험을 치렀는데, 그것도 그가 학폭 피해자라서란다. 학폭 피해자라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저 위에 정순신 검사/변호사의 아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의 경우, 이런 유사한 조력을 자기 부모에게 받았을까? 부모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 인턴을 하면서 입시용 경력을 만들고, 미국 대학에 입학해 부모의 실시간 조력을 받아 함께 시험을 치르고.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의 비교를 뭐라고 이해해야 할까.

결국 학폭 가해자의 생존도, 학폭 피해자의 생존도, 다 부모가 누구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바로 그 공통점이 남는다. 개별화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의 오류를 뚫고서 진짜 문제가 남았다. 학폭이란 동일한 사건에서 피해와 가해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가 누구인가 하는 것. 이것은 엄연히 ‘불평등’의 문제인가. 아니면 학폭 가해자는 저쪽이고, 피해자는 이쪽이라는 문제만으로 앙상하게 비교할 일인가. 그 문제가 남는다.

3. 세 번째 사례

흥미로운 다른 사례들도 나는 알고 있다. 유명해진 위 사례들과 서로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지점을 건드린다. 근데 이런 일들은 사실 매우 흔하다. 한 사례는 부모 중 한쪽이 교수이고, 아들이 학폭 가해자는 아니지만, 위법한 일을 했는데, 부모가 자식을 분리해 비싼 대안학교에 보냈고, 그 후 그는 여하튼 졸업을 했다. 또 다른 사례의 경우, 부모 중 한쪽이 교수이고 미국에서 안식년을 가지면서 취학기 아이에게 외국어 교육이 가장 필요할 때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더 다니게 했고, 그 교양으로 그 친구는 한국의 아주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했다.

내가 한국에 귀국해서는 더 많은 유사 사례를 접했다. 이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대학 재학 중 ‘인턴’ 제도가 도입되자, 부모의 연줄로 아이가 인턴을 맡게 되는 경우가 흔하디흔하다는 현실이었다. 언론사, 법조계, 대기업 등등 부모의 직장이 자식의 인턴 소개소가 됐다. 그러니 조국 부부나 그를 감싸는 이들이 가진 억울함도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실제 대한민국의 많은 교수가 자신의 ‘안식년’을 자식 교육의 더없는 기회로 활용한다. 또한 정순신의 경우는 검사의 직분을 활용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즉 법을 직접 관장하는 전문성을 가진 자가 법을 휘두르고 법의 허점을 악용해 절차의 공정성까지 해쳤다는 점, 그리고 자식에게 검사직을 그따위로 가르쳤다는 점이다. ‘직업윤리’를 의심하게 하는 그의 죄질이 더 독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교육에서 공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4. 개별화되는 사례들의 동일성

그렇다면 결국 이들 사이 거리는 오십보백보인가. 아니면 온건한 사례부터 독한 사례까지, 모두가 다 면면하게 흐르는 진한 ‘부모된 마음’으로, 학폭 자녀까지 그런 자원을 통해서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까. 자식을 그런 방식으로 보호하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봐야 할까. 혹 부모 중 그런 자원을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자식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사실은 문제는 이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불관용’의 문화가 얼마나 강할까라는 문제다. 말하자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과 네트워크를 최대한, 법과 상관없이 활용하고 동원하는 부모를 막아내는 사회적 불관용의 기준과 문화가 있는가 말이다. 눈에 보이는 구조보다 더 강한 것은 이렇게 면면히 흐르는 ‘사회적인 것들’이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바꿀 수 있을까. 온갖 교육과 관련된 사건들이 일반화와 개별화 속에서 흩어져버리게 만드는, 이 묘한 사회적인 풍토 말이다.

5. 교육문제에서 두 가지 장애- 구조적인 인식론적인

문제는, 교육제도와 악행에는 바로 다음 두 가지 장애들이 언제나 놓여 있다는 점이다.

첫째, 부모라서 그럴 수 있다는 공동의 연대 의식. 내가 부모인데, 하필 조건이 되고, 그래서 해줄 수만 있다면 다들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말이다. 혹은 이미 하고 있기에 가지는 일종의 유대와 공범의식. 심지어 이런 관행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 가진 학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자식이 없는 미혼의 경우만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과연 정말 모든 학부모들은 다 그런가? 아니, 다 그럴 수 있는가? 혹은 그런 위치가 된 이들이 그래서 그렇다는 건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용인돼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위치에 있는 학부모라는 것 자체가 교육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닌가? 교육의 불평등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약화하고 해체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방향일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둘째, 입시제도를 포함해서 교육제도는 자의적이고 개인적 자원의 동원, 즉 불평등한 사회체제가 개입할 여지를 가능한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게 바로 공정함이다. 능력주의의 시작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교육이 만약 ‘출발점의 동일함’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공정과 능력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능력주의’를 그렇게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 현실은 계속 어긋난다. 교육제도는 현실 앞에서 무력하거나, 현실 속에서 굴절된다. 지금껏 교육제도 중 사회 안에 던져졌을 때 ‘제도적인 허점’을 보이지 않는 제도가 없다. 왜 그랬을까? 결국 모든 교육제도는 제도 이전의 문제다. 하지만 너무 결론이 쉽다. 이것 역시 일종의 현실 도피이고 핑계다.

6. 불평등한 교육,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

그러니 사실은 이 교육제도,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다. 아니 대학 자체가 문제다. 대학이 가진, 그리고 명문대학이 가진 우월함의 표식, 그것으로 인생이 절대적으로 바뀔 수 있거나, 이미 누리고 있는 계급을 유지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다는, 그 상징화된 자본과 구조가 문제다. 나아가 제도 자체에 접근하는 시각, 목적을 무엇으로 두느냐가 문제다.

정순신이고 조국이고 간에, 학폭의 피해자이고 가해자이고 간에, 그리고 입시 부정이고 공정 입시이고 간에, 지금 드러난 문제는 현재의 교육제도, 입시제도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 관대하거나 그들을 교정시키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사실이다. 교육의 실패다. 그 입시제도 교육제도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교육제도 자체가 불평등을 만든다. 정순신의 ‘자식 사랑’ 스캔들을 단지 스캔들로 보지 말고 이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를 기초로 교육의 진보, 혹은 진보교육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내가 내린 간단한 결론은, 불평등한 교육,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를 넘는, 말하자면 평등교육, 민중교육 제도로의 개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를 향한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교육제도가 사회적 불평등,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육제도를 통한 불평등의 계승, 전승, 공고화를 막는데 나서야 한다. 즉 교육제도의 기본 목적을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개선에 두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과연 현재 ‘진보’ 교육감 중에서 이런 목적을 자신의 교육철학을 둔 이가 있는가? 나는 그런 목표야말로 진보 교육감을 내세우려는 이유, 즉 진보적 대안의 정당성이 돼야 한다고 본다. 아니 교육현실과 교육제도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현존하는 계급체제에 계급·계층이동을 봉쇄하는,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 돼버린 한계에 봉착한 지금이야말로 그것이 진보교육, 혹은 교육진보의, 혹은 진보교육감의 유일한 출마 내지 당선 목표여야 한다. 누군가는 그 주장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불평등한 교육, 사회적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에 맞서서, 그것을 고치는 방향은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평등을 교육의 지표로 삼고, 사회적 평등을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허상 같은 공정경쟁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교육제도에서 평등 교육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정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불평등교육을 넘어, 평등교육을 지향해야 하고, 그렇게 제도를 바꿔 나가기 위해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일례로 특성화고 학생 고 홍수연의 죽음은 왜 ‘정상교육체제’ 혹은 학교교육체제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져갔는가.).

7. 지금 해야 할 일

물론 이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즉 개별 사건으로, 사례의 다양성으로 문제를 축소하지 말고, 문제를 드러내고, 더 깊게 비판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 정순신 사퇴파동을 단지 “아쉽다”고 표현한 현 정부의 저열한 사회적 의식과 공감 수준에 대해서 대차게 문제제기하고 대통령이 “아쉽다”는 표현 이상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태도는 항상 그래왔듯이 아전인수격이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임명권자로서 자신의 오류는 통감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임명권자가 왜 그런 자를 임명했는가가 문제이다. 그는 지명을 철회하면서 “아쉽다”고 표현하고서(무엇이 아쉬운지 묻고 싶네), 갑자기 앞으로 관직 임명 시 자식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도 ‘연좌제’일 수 있다. 공직 임명 시 아들의 학교폭력에 대해서 부모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 정순신이 자신이 ‘국가기관’인 검사 직책을 이용해서 아들의 학폭 전력을 은폐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아들이 “검사” 직업에 대해서 표현한 말에서 보듯이 검사로서 과거 전력에 심각한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문제다.

그리고 정순신의 아들을 정시입시로 합격시킨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이 학생의 입시전형이 제대로 됐는지 조사 후 공표할 의무가 있다. 규정에 따르면 수시가 아니라 정시에서도 학교폭력 문제는 거론돼야 할 사안이고, “감점 요인”이라고 한다. 감점에도 불구하고 합격했다면 인정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만약 감점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는 국립법인 서울대 입시의 문제로 비화한다. 직무를 유기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국의 교육감들은, 진보 쪽이라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새로운 공약을 내세웠으면 한다. 학교에 대해서 투명 경영, 공정 교육, 특수학교 등의 ‘혁신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대안마저 불평등 체제의 일부가 되는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교육제도가 불평등하고, 교육제도가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는 노력, 나아가 그를 바꾸는 제도와 정책 한 가지라도 제안하길 바란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공정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불평등교육을 넘어, 평등교육으로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정순신, 조국 등 ‘학부모’ 자원이 드러낸 문제 (newscham.net)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기아자동차 화성 사내하청분회 해고 노동자 고 윤주형의 10주기를 맞아, 조의를 표하고, 권영숙 대표가 1월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여했습니다.

날씨는 갑자기 푸근해지고 있었습니다. 마석 모란공원의 하늘은 푸르디 푸르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윤주형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해야할까요.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 죽음의 이유, 그 죽음직후 ‘민주노조’내에서 벌어진 추악한 일들, 그리고 그이후 죽음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방식. 그 답은 어쩌면 아직도 길을 잃고 찾아야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행로와 비슷합니다.

윤주형은 자본때문에도 죽었지만, 그가 사랑한 ‘민주노조’의 갈라짐, 그 갈라짐 속에서 보였던 이합과 집산, 그리고 담합과 내부 공격 속에서 힘들었던 과정에 대한 절망때문에 죽었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우리가 침묵으로 돌린다는 것이 과연 맞을지요.

권영숙 대표는 “달라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묘역에서가 아니라 다녀온 뒤 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달라야하는가.
윤주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라면, 달라야한다에서, 무엇이 달라야하는지 고민하는 중요한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윤주형을 내년 다시 볼 때까지.

2023. 1.3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설날을 앞두고 과일 나눔을 했네요. 이 모두가 한결같이 여여하게 땀흘려 수확한 과일을 사파기금에 연대물품으로 보내주시는 연대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작년 새로 세워진 노동자 농성장 중심으로 농성장 7곳에 싱싱하고 향긋한 사과를 보냈습니다. 항상 이렇게 농성장에 물품연대하면서, 전국의 농성장들을 업데잇합니다(어떤 면에선 민주노총보다 빠를 듯하네요).
이전에 보냈으나 올해 보내지 못한, 그러나 여전히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승리’로 현장에 복귀하길 바랍니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안산 한국와이퍼분회, 서울 덕성여대 분회, 부산서면시장 상가번영회분회등이 잘 받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민주일반연맹 강북구도시관리공단분회 잘 받았겠죠.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블러스팅 투쟁 노동자들에게 보냈는데, 하필 그날 ‘합의’됐습니다. 그 사과는 어디쯤에? ㅎㅎ 그리고 쿠팡지회는 우체국 실수로 설 이후나 도착한다는 ‘전언’입니다.
설날이면 폭주하는 택배에, 택배 노동자들께 고생하신다는 말을 더 전하고 싶네요.
*다음 보내주신 메시지 읽어보세요^^: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서 보내주신 사과 조합원들과 맛있게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 윤경숙분회장
– 안녕하세요.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입니다. 보내주신 사과 잘 받았습니다.
단결된 조직이 연대를 이끌어 내는 힘인듯 합니다.당당하게 후회없이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 받아 꼭 승리하겠습니다!!! 투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최현환 지회장
– 오늘 사과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투쟁!!
부산 민주일반연맹 서면시장번영회지회 허진희 사무장
– 감사합니다 (그리고 긴 통화)
안산 한국와이퍼 최윤미 분회장
*이는 사파기금이 노동자 농성장에 보낸 설날 편지입니다:
보내는 이: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노동이 돈앞에서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안녕하세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입니다. 다시 떠오르는 해와 함께 2023년을 맞이했습니다.
장장 3년을 끌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끝나가나 봅니다. 전염병은 평등하지 않았고, 기왕의 사회적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이 패게 하였습니다. 국가는 가진 자들을 위한 국가였고, 사회는 사회적 재난 앞에서 사회적 연대를 충분히 보이지 못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더 힘들고 외로웠을 노동자 투쟁에 연대운동단체로서 더 가까이 함께 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하지만 항시 투쟁 소식에 귀 기울였습니다.
2023년 새해 설날을 앞두고, 연대 물품으로 사과를 보냅니다.이는 해마다 잊지않고 땀흘려 농사지은 물품을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후원해주는 과수원 ‘땅의 마음'(지심ㅡ김경희 연대자)의 후원품이기도 합니다.
향긋하고 단내나는 과일로 기운 북돋우시고,올 한해 투쟁하는 노동자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합니다.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함께, 웃으며,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2023. 1.1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드림
이메일: sapafund@gmail.com / 홈페이지: sapafund@org
페이스북: 사회적파업연대기금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HR9dS6YjqI1Xxxw3-dUEJ7hBZN_tUDo=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 <사파동행>’ 6호가 2023년 1월10일 발간되어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되었습니다.

= 2023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해는 엄혹하고 중요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일희일비보다, 세상의 대안을 찾는 길에 연대로 시작할 수 있길 바라며, 권영숙 대표의 신년사를 읽어주세요.

= [노동의제 깊고 넓게]
지난 두달간 사파기금이 개최한 19회 사파포럼, 2022년 3기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그리고 후속 집담회 내용을 담았습니다. “노동의 사회적 연대를 넘어 노동의 동맹정치를 향한 발걸음”으로 내딛는 의미있는 기획이었고, 많은 관심속에 개최되었습니다. 본문에서 꼭 확인하세요.

= [기금 지원 85번째]
수여단체로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비정규직공동투쟁 ‘을 정하고 지원금액 500만원을 단체의 후원주점에서 전달하였습니다. 앞으로 기금 지원방식을 직접 전달로 다양하게 할 예정입니다. 지원사유와 받는 말은 본문에 있습니다.

= 두달간 예민한 정세속에서 사파기금의 연대활동은 빡세게 진행되었습니다.
노조법2,3조개정_비정규직이제그만 오체투지행진 참가 221227
김용균 4주기 추모제 참석 221210
노조법2,3조 개정운동본부 국회앞 농성장 방문 221209
비정규직이제그만 후원주점에 함께 221203
세종호텔노조 정리해고철회를 위한 ‘명동행’ 참가 221126
전태일52주기 전국노동자대회 및 이태원참사 추모집회 참여221112

= [사파의 입장]
화물연대의 사회적 파업을 지지하며, “경제 위기와 사회적 재난, 불법을 초래하는 것은 바로 너희 자본과 국가, 정부다! “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중요쟁점들을 정리하고, 파업의 목표를 더욱 상향 조정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 <사파동행>은 사파기금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전송됩니다.이메일로 직접 받지 못한 이들은 사파 연대자가 되어주세요. 물론 여러 사유로 아직 사파 연대자가 되지못한 이들도 위 URL을 클릭하여 볼 수 있습니다. 계속 보기 하고싶으면, 소식지 하단에 위치한 “구독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2023.1.1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연말 맞아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통장에 찍힌 이름을 보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사파기금은, 우리는 이 기대와 희망 모으기에 얼마나 열심히 진심이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는가라고요. 연말이면, 사파기금에는 1년간 자신이 모은 돈이나, 연말에 성과급이나 보너스를 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많진 않고요. 간혹 그리고 어떤 이는 해마다 하고 있습니다.

전 그 분들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어짐이 일회성이 아니다라는 딱 그 정도의 희망요. 그 확인이 나쁘지 않습니다. 계속 함께 노동의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최근 제가 들은 말이 있습니다. 사파기금의 모토가 “희망을 모읍시다”인데, 왜 제안자이고 현재 대표인 당신은 희망을 말하지 않고 계속 ‘절망을 퍼뜨리고 있는가’라고. 희망을 모으자고 말하면서, 왜 하는 말들은 모두 “절망에 관한 얘기”이냐고. 그에 대해 전, 희망을 쉽게 말하기 전에 희망을 제대로 일구기위해 절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금은 우리가 직면한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보는게 희망을 모으는 첫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제 말이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고 절망만 더 키우는게 아닌가 라는 우려, 부담, 두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정말 희망없음의 또다른 이름일뿐인 ‘절망’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획들을 무쇠의 뿔처럼 펼치고 싶습니다. 여러분 많이 기대해주십시오. 그리고 성원해주십시오.
이제 우리라는 말을 구성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치를, 사회적 연대를 넘어 사회적 동맹을 향한 정치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사파기금도 그 중의 일부일뿐입니다.

새해 여러분 몸 건강하세요. 그리고 어제가 오늘같이, 내일을 오늘같이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사회적 연대에 함께 해주세요.

2023.1.10. 늦은 새해 인사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드림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2월27일 비정규직이제그만이 노조법2,3조개정과 관련한 첫 집단행동인 ‘오체투지’ 행진에 권영숙 대표가 기자회견 및 일부 구간에 ‘행진’으로 참여했습니다.

일주일 이상 지속된 강추위가 한풀 잦아들고 날씨는 풀렸습니다. 하지만 노조법 2,3조 개정의 전망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자본과 정권과 제도정치의 성격을 낱낱이 보고있지만, 그동안 노조법 개정을 위해서 투쟁해온 것이 무엇이 있었나도 생각해볼 차례인듯합니다.
여의도 국회앞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단식자2인과 김형수지회장, 안준호 부지회장은 민주노총 중앙 및 공공 부위원장등과 함께 국회 본관앞에서 2회 기습 농성에 이어, 민주당 당사에 들이쳐서 농성하다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때늦었지만 그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합니다.

권대표는 이 날 행진에 참여하면서 현시점에서 오체투지가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제그만이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에서도 주체로서 틀어쥐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엉겁결에 행진 피켓이라고 집어든 피켓이 하필이면 선두 피켓이어서 (든 피켓이 하필 노조법에서 “법”), 방송차량과 오체투지 맨 앞에서 잠시 피켓을 들고 행진을 ‘선도’했습니다. 그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하지만 가만히 있진 않았습니다. 차도 레인 하나 잡고 하는 행진과 오체투지. 경찰들이 그 좁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 호통을 여러번 쳤습니다. 선 밖으로 나가라고. 그랬더니 젊은 ‘의경’이 우리 생명도 소중하잖아요 라고 답을 하더군요. 삼각지 네거리 신호등을 두고 경찰들에게 “너희 대통령을 위해서 바꾸는 신호등 여기서도 한번 해봐라”했더니, 신호등을 확실히 빨리 바꾸더랍니다. 경찰아, 이런 짓은 대통령이든 누구든 위해서 하면 안되는거에요.
그보다는 빨간 불, 파란 불 신호체계까지 잘 지키는’관리된 행진’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권대표는 말합니다. 그리고 오체투지란 무엇일까, 생각을 골똘히 해봤다고 합니다. 언젠가 권대표의 글이 나올 것같습니다.

어제 김형수 지회장이 영등포서로 이감됐습니다. 지난 2017년 노조를 만든 이래 대우조선소 현장에서 연이은 파업과 집회등 온갖 ‘불법’을 감행했다고 기소된 건이 10건도 넘고 재판중이라는데, 당장 구속영장이 나와도 놀랍지 않을 노동자들이 몸 사리지 않고 싸웁니다. 올해 여름 뜨거웠던, 51일간의 대우조선 도크를 잡은 파업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런 노조는 사수하고, 다음의 투쟁을 할 수 있도록 희생만 강요하지 않길 바랍니다. 민주노총과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발과 연대가 무엇보다 이제 필요합니다.

2022.12.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2월17일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의 후속 ‘공개집담회’를 “내 일터의 노동권에 대하여”라는 제하에 열었습니다.

2022년 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는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 장애를 넘어서는 노동권의 새로운 인식 “이라는 대주제하에 4강에 걸쳐 권영숙 노동사회학자의 강의로 진행되었고, 노동자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권을 진단하는 발표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귀한 자리였고, 많은 이들이 참여했고,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민중민주열사와 이태원 참사로 죽임당한 158명에 대한 묵념에 이어 “인터내셔날가”를 훌륭한 홍익대 인디밴드 기타리스트의 편곡과 반주로 함께 불렀습니다. 러시아어로 1절, 이후 한국어로 3절까지 초라 가수와 임정득 가수의 선창하에 제창이 이어졌는데, 이 주제의 토론회에서 인터내셔날가를 여는 노래로 부르는 의미가 컸고, 더욱 어울린다 여겼다봅니다.

좌장이자 학교강사였던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는, “각 일터와 노동형태들을 망라해서 노동권 문제를 개별적이고 종합적으로 토론하는 자리 기획이, 노동계에서 거의 없었다”고 말하고, “산별과 업종, 기업규모와 정규 비정규 고용형태, 젠더와 국적에 따라 다른 노동권”의 현주소를 무시하고 두루뭉실하게 노동권 일반으로 다루면서 특히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 중심의 사고와 실천이 지속됐다며 비판적인 지적을 했습니다. 노동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위해서 노동권의 지연, 배제, 그리고 해체라는 “노동권의 3중 딜레마”를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노조의 조창현, 전교조의 조남규 진영효 조합원은 공무원노동자와 교사노동자의 일터에서 “지연된 노동권”에 대해서 진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발제가 모두 공무원노조, 전교조 운동사에 집중되었고, 공무원특별법과 교원법의 문제를 경유하여, 법외노조였던 두 노조의 투쟁전략과 현재 상태를 진단하였습니다. 결국 법외노조에 대한 대응은 ‘합법노조’가 되는 것이 아니며, ‘지연된 노동권’에 대한 대응은 모두를 포괄하는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 두 사례는 드러냈다고 좌장은 이후 덧붙였습니다. 공무원, 교사들을 대상으로한 소위 ‘특별법’이라는 법체제의 문제에 대한 이후 토론을 기대합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노동권은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권의 상태, 즉 ‘배제된 노동권’입니다. 동일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원청사용자와 교섭구조, 즉 노자관계를 확보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파업은 바로 불법화됩니다. 결국 노동3권에서 배제됩니다. 지난 7월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51일간의 파업이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20일째 단식중인 김이춘택 사무장은 조선소 현황과 하청노동자 고용구조에 대한 진단에 이어, 하청노동자의 대응을 ‘존재의 이전’과 ‘존재의 부정’의 두 유형으로 설명했습니다. 470억의 손배가압류속에서 거통고지회의 투쟁이 노조법2조, 3조와 직결되지만 동시에 조선소 비정규운동의 중요한 시동을 건 파업투쟁이 되길 바랍니다.

“물류 플랫폼노동자의 ‘해체되는 노동권'”에 대해서 정성용 쿠팡물류센터 인천분회장이 발제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을 해왔고, 노조를 만들었고, 투쟁중에 해고당했지만, 민주주의와노동학교 강의 내용에 따라 쿠팡 물류센터에 대해 “노동3권으로 뜯어보기”를 이 발제를 통해서 처음으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 직고용된 노동자들이고, 형식상 노동3권을 가졌고, 단체 교섭도 진행하지만, 이들의 노동권은 사실은 ‘해체되는 노동권’입니다. 일용직이 68%, 계약직이 24.6%, 그리고 정규직은 단 2,5%인 일터에서 과연 노조는 어떻게 존재 가능하고, 어떻게 노동3권을 확보하고, 어떻게 단체 교섭을 하고 단체 행동을 하고, 단체협약을 지키게 만들 수 있을까요? 허울좋은 직고용 뒤에 숨은 ‘일용직 노동자들’은 결국 ‘플랫폼 노동의 현실입니다.

“사라지는 노동권, 노동계급 없는 노동: 1인 노동자의 경우”에 대해서 발표한 김한경님은 ‘마트 노동자’입니다. 그는 제과점 공장에 ‘구인공고’부착물을 보고 들어갔고 3개월마다 재계약했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채용됐을 때는 “워크넷”이라는 인터넷 채용사이트를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24시간편의점 ‘아르바이트’ 역시 구인구직 플팻폼인 ‘알바천국’을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정상적인, 즉 근로기준법과 노조법과는 완전 무관한 채용형태는 플랫폼 노동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1인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관계는 노사관계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주 다루지 않는 장애인 노동권에 대해서 금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발표했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의 지위와 현황, 한국의 장애인 노동정책과 법제화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이 최저임금 기준의 20%입니다. 전체 장애인의 85%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됩니다. 장애인은 말하자면 자본에 착취당할 수 ‘없는’ 노동자, 즉 노동자 아닌 장애인입니다. 그들이 ‘자본에 착취당하지 않는 장애인 노동자’로 서기 위한 노동권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개념을 요구합니다.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한 이해가 전체 노동계급의 노동권에 결여된 핵심을 살펴보는 ‘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권영숙 좌장은 덧붙입니다.

이번 집담회는 새롭다는 평이었습니다. 이렇게 6개의 일터에 대해서, 노동권이라는 시각에서, 그것도 급진적인 노동권을 향한 ‘동맹’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발표할 기회도 들을 기회도 없었다는 평이 이어졌습니다. 이 토론회가 계기가 되어, 더욱 명료하고 선명한 노동권에 대한 문제의식과 “노동자가 하나”가 되기위한, 계급을 형성하기 위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사파기금은 그런 기획을 준비하겠습니다.

2022.12.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9회 사파포럼을 “손배가압류와 노조법 2,3조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12월6일 열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 않았지만, 발제와 토론은 치열하고 밀도 높았고, 많은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노조법2,3조 개정안이 국회에 회부되고 운동본부가 차려져 국회앞 농성중이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3인을 비롯하여 금속위원장, 공공운수 부위원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각1인이 농성중인 상황에서 이 주제를 잡아 민주노총 12층에서 토론하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또 취지문에서 밝혔듯이, 올해말과 내년초를 달굴 “뜨거운 노동쟁점”을 둘러싸고 아직 “숨은 쟁점들”이 많다는 점을 주제 선택의 이유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투쟁에서 어쩌다 상징처럼 된 거통고조선지회의 김형수 지회장 발제와 안준호 부지회장의 낭독, 그리고 마지막에 유최안 단식자도 함께 했습니다.

기조발제는 “오래된 손배가압류 문제와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권영숙 노동사회학자가 했습니다. 발제문 요약만 16페이지입니다. 발제자는 손배가압류가 일단 이 정권의 문제도 아니고, 2014년 쌍용자동차때부터 문제도 아니고, 2000년대 초부터 문제도 아닌, 바로 87년 민주화이행/노동자대투쟁이후 노동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으로 시작된 “오래된 손배가압류”라는 점을 먼저 강조했습니다. 이는 발제 논지에서 매우 중요한데, 손배가압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하에서 ‘노동통제’의 새로운 전략과 기법의 일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제자는 다양한 노동통제 유형을 제시하고, 이중 “사법적 통제”가 형사화, 민사화, 개인화라는 특징을 가지면서 손배가압류라는 문제가 부각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손배가압류는 단지 ‘정당한’ 노사분규의 경우 노조와 개인조합원을 손배가압류 대상에서 금지한다는 노조법 3조의 문제를 넘어선 전체적 맥락을 이해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와관련 노조법 3조 개정안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의미, 그리고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상대적으로 크게 논쟁점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특히 노동자성에 대한 ‘추정규정’의 효력, “이 법에 의한”을 “헌법에 의한”으로 고치는 것의 실정법적, 실체적인 한계등도 검토해봐야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노조법이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적 개정이 아닌 2조와 3조로 국한되었고, 2조와 3조가 연결되지만 서로 구별되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발제자는 노조법 3조보다 2조를 특히 강조했고, 두 조항이 연결된다면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라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를 그는 입법투쟁의 ‘주체’의 문제와 ‘계급정치적’ 관점에서 현재의 민주당등 국회 세력과 손잡는 방식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적인 우려를 표했습니다.

현장 발제로, 거통고지회는 51일간의 파업투쟁이 남긴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겸허하게 발표했습니다. 김형수지회장이 공장내 출입을 이유로 형사재판을 받아야하는 날이라 안준호 부지회장이 발제했지만, 그들은 마치 한몸인양 발제를 했습니다. 김형수지회장은 재판후에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줌으로 보충 발제하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단식중인 유최안 부지회장도 토론 막바지에 노조법2,3조 입법투쟁이 전부가 아니라, 사회적 파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KEC 사례는 정리해고 2회를 철회시키면서 치열하게 투쟁한 결과 법원의 30여억의 손배가압류 금액 조정에 응하고 조합원들 모두가 함께 그 금액을 물었습니다. 그 과정은 돈이, 자본이 노동자들을,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어떻게 짓밟고자 파업의 불법화, 형사법상 업무상방해, 그리고 민사법상 ‘손배가압류’를 법의 허울아래 이용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반대로 이 과정은 어떻게 전투적이고 단결된 노조가 허울좋은 ‘사법적 금전적’ 탄압을 물리쳐왔는가의 사례입니다. 발제자 김진아 수석부지회장이 짧은 발제중에 울컥하고 울먹이는 모습은 숙연하였습니다.

철도노조는 정규직, 공기업, 고임금 받는 노조의 경우도, 파업권을 행사한다면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 손배가압류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김형균 조합원은 손배가압류만 해도 몇번이었고 그를 조정, 취소, 그리고 납부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던 과정을 담담히 밝혔습니다. 파업을 한다면 한국 노동자 누구나 손배가압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토론에서도 많은 중요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선 참석자가 올린 후기를 덧붙입니다 (아래 홈페이지 전문에서 읽어보세요).

노조법2,3조 개정운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그 논의가 더 튼튼한 합의를 만들수록, 투쟁은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2022.12.1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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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후기>
@조남규:
깊이있고 날카롭고 감동적인데다
정신이 번쩍 나는 토론회였다.
충격에 가까운 오늘의 각성으로 내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조차 하다.
어쨌든 감사드린다. 발제자와 토론자, 참가자, 주최측 모두에게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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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제인 권영숙 대표의 발표 내용은 내 식으로 요약하자면,
* 노조법 2,3조 개정에 목을 매는 게 여러모로 위험한 면이 있다.
* 내용상 노조법 2조에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면 뭔가 많이 달라질 거 같지만, 이것은 자본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거나, 이로 인해 노동이 결정적인 힘을 얻는 게 아니다.
* 노조법 3조에 손배 가압류의 조건을 2항부터 7항까지 길게 이어붙이는 것 역시 부분적으로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지만, 그 외에는 엄단한다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커서 막상 현실화되면 어느정도 힘있는 노조가 조금 유리하고 힘없는 노조는 더 악랄한 탄압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해 나중에 토론에서 거통고 지회 안 부지회장은 노란봉투법이 있느냐 없느냐가 지난 거통고 투쟁이나 앞으로 거통고 투쟁의 중요한 조건이 아니다. 자본은 노란봉투법 따위 얼마든지 피하며 더 악랄하게 탄압할 수 있는 애들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투쟁의지와 철저한 준비와 실천과 연대이다.고 답하였다.)
* 게다가 노란봉투법을 추진하는 주체를 보라, 노동 중심의 운동기구가 아니라 민주당에 의존하여 정의당, 명망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망라된 여당뺀 사회적 합의기구 모양새이다. 그동안 노동법 개악한 것은 항상 민주당 정권이었고, 민주당은 정권을 잃었을 때만 친노동 행보를 시늉만 한다.
* 여기에 경총은 노란봉투법에 맞서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 자본가 처벌조항 삭제, 대체근로허용, 점거파업금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 이러면 어떻게 되겠나? 뭔가 될 것처럼 희망고문만 하다가 끝나거나, 최대치가 2조 원청 사용자 인정은 빠지고 3조에서 몇 개 바지고 완화된 상태에서 자본가 요구 일부 받아들이는 교환 거래로 통과될 것이다.
* 지금 이런 노조법 2,3조에 목매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을 엄호하는 연대파업을 성사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부분적으로 노조법 개정을 말하되, 3조에 구구절절한 제한조건을 달기보다는 본래 문구 “쟁의로 인한 손해에 노조와 조합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는 문구 자체를 현실화시키는 투쟁이 더 낫다고 본다.
( KEC 김 수석부지회장(아니고 사무장)은 3조 2항~7항을 (적은 액수로) “얼마 이상의 벌금을 줄 수 없다”로 한정하는 것이 더 간단하고, 투쟁에 유리하다. 법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투쟁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건일 뿐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변하였다.)
현장발제 3개는 거통고, KEC, 철도노조의 투쟁사례 요약이면서 손배가압류 상황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손배가압류가 초점이라기보다는 지난한 투쟁의 흐름을 내적으로, 반성적으로, 속사정도 다 보여주면서, 그 간간신고를 이겨내는 과정을 담담히 서술하였다. 꼭 일독을, 눈으로 읽지말고 소리내어 읽어보시기 바란다. 발제자들도 발제문을 거의 그대로 읽었는데, 상황상황들이 환히 눈 앞에 떠오르며 눈물이 났다.
현장발제자들의 마지막 발언은 * 이렇게 무기력할거면 새로운 깃발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나?, * 민주노총이 전선을 치며 나아가야 한다. 전선을 치지 않고 개별사업장의 투쟁에 연대하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 죽도록 싸워왔는데 이제 정년이 한달 남았고, 이제야 모든 게 더 잘 보인다. 시지프스의 바위돌을 굴려올려온 것만 같다. * 우리는 열심히 투쟁했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투쟁하는 사람들만 고립되거나 손해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든다. * 법 개정은 투쟁의 조건일 뿐이다. 법이 투쟁을 대신해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등등이었다.
헤어지며 남는 의문은 * 이렇게 훌륭하게 완벽하게 싸우는 노조활동이 일반화되겠는가? 민주노동당은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 우리의 정치방침은 어디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고쳐야 하는가? *노조법 2,3조를 노란봉투법으로 고치면 플랫폼 노동인 라이더들에게는 무엇이 변하거나 좋아지는가? 오늘 현장 발제에 이 분들도 한 파트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장 유흥희 :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동지들의 지원 연대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비정규직이제그만 “투쟁할 권리”, 법률비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 지원연대에 감사드립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지난 4년여 동안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함께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흔들림 없이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투쟁과정에서 김용균, 문중원, 이동우 동지는 별이 되었고 투쟁당사자들에게 실형을 포함하여 벌금 폭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살수 없지 않겠습니까?”를 외치며 0.3평의 쇠창살을 스스로를 가두고 한여름을 달구었 거통고 조선사내하청 동지들의 투쟁은 수백억의 손배라는 족쇄를 채웠습니다. 또한 안전과 삶을 지키고자 했던 화물노동자의 투쟁에 대하여 업무복귀명령까지 동원한 정부는 이제 탄압의 칼날을 민주노조운동을 향하고 있습니다. 윤석렬 정부는 귀족노조 운운하면서 이중화된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노동자(?)를 위하여 탄압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대대적인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다시 1,100만 비정규직들을 모아 투쟁의 전선에 서려고 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지원은 다시금 어려운 투쟁을 조직하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동지들의 지원과 연대의 뜻에 부응하는 길을 나아갈 것입니다. 비정규직 공동투쟁으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 새로운 세상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지원을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민중,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정규노동운동의 전선을 치며 힘껏 투쟁해온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비정규직공동투쟁’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금액은 5백만원입니다.

줄여서 ‘비정규직이제그만’이라고 불리는 단체의 이름은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입니다. 말그대로 한국사회에서 1100만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노동자들의 공동투쟁기구이자 비정규운동의 주체입니다. 공동투쟁이므로 이들은 발족이후 이땅의 비정규투쟁들에 가능하면 결합하고, 함께 싸웠고 서로 단결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철폐를 위한 사회적 의식을 환기하고, 필요한 모든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이 내세운 모토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입니다. 노동하면서 죽지 않는 사회, 노동자가 내외부적으로 차별받고 갈라침을 당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을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첫번째 구호는 4년전 살아있는 김용균이 함께 했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 노동자들과 만납시다’라는 선언문 자리로 나타났고, 김용균은 그 직후 발전소에서 죽임당했고, 비정규직이제그만은 고김용균열사투쟁에 모든 힘을 쏟았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공세적인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차별받지않게”는 ‘비정규직없는 세상’을 향한 일종의 디딤돌이었을 것입니다. 사내하청노동자 불법파견 판결이 대법원에서 난 것이 2010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온전히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특별 채용’을 내밀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등 향후 법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강요했습니다. 비정규노동자 다수는 이를 수용했고, 일부는 ‘특별채용’을 거부하고 완전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또 투쟁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불법파견 소송에 의한 정규직 전환 판결은 새로운 비정규직의 채용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은 이 사회 도처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비정규직이야말로 ‘ 오늘날의 전태일’이라는 말은 단지 수사어가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으로부터도 배제된 5인이하 사업장 노동자부터, 노조법 2조를 통해 노동권으로부터 배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땅 2800만 노동자의 절반에 이릅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은 유일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체로서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민주노총을 넘어서 비정규직노조들을 투쟁으로 담아내는 조직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정규직 전환된 이후에, 혹은 그들이 일정한 ‘처우개선’으로 만족하고 머문다면, 마지막 구호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요원합니다. 비정규직운동이 비정규직을 완전히 철폐하지 않는한, 비정규직이제그만은 계속 존재해야할 것입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은 투쟁속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횃불처럼 밝혀왔고, 그 과정에서 투쟁기금이 많이 필요합니다. 법적인 실형선고로 조직의 중요활동가들의 활동도 불안정합니다. 대표적으로 소집권자인 기아차비정규노조 지회장 김수억은 2005년, 2009~2011년 두 차례 구속됐고 한 번(2010~2015년) 해고 당했으며, 지난 2월 불법파견철회 투쟁을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된 상태입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이 단체명처럼 “1100만 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공동투쟁”을 향해 더 거침없이 나아가도록 사회적 연대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일하다 죽지않고, 차별없는 세상은 결국 ‘비정규직 없는 세상’입니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이 110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횃불이 되어 더 큰 길로 뚜벅뚜벅 나아가길 바라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5백만원을 지원합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파기금의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 활동에도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연대! 투쟁!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2년 12월 13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 연대 참여방법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온라인 신청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온라인 신청: https://bit.ly/3D04xK2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돈이 모이는 대로 사회적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칙하에 노동현장에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정투위 지원을 시작으로, 쌍용차노조 2회, 재능교육노조, 코오롱정투위, 콜트콜텍노조 3회, 희망뚜벅이, 포레시아노조, 노동자공투단, 방한품연대, 전북고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3회, 전국해고자의 날(전해투), 보워터코리아노조,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 골든브릿지증권노조 3회, 유성기업노조 2회,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 2회, 진흥고속노조, 기륭전자노조, 발레오만도노조, 보건복지정보개발원노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희망연대 티브로드노조, 씨엔엠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노조 3회, 울산과학대노조, 오체투지노동자행진, 침낭연대 2회, SK브로드밴드노조, LG 유플러스노조, 부산택시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2회, 아사히사내하청노조, 한국지엠군산지회, 청주시노인병원노조 2회, 동양시멘트비정규지회 2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비정규노동자의집(꿀잠) 추진위원회, 하이디스노조, 의료연대경북대병원주차관리노조, 갑을오토텍지회, KEC노조 2회, 노동탄압민생파탄박근혜정권퇴진을위한공동투쟁 3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2회,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 파인텍지회(구 스타케미칼), 레이테크코리아노조, 춘천환경사업소노조 2회, 공공운수 택시지부 2회, ‘사드철회평화회의'(소성리종합상황실), 민주일반노조연맹(톨게이트노조) 2회, 전국농성장 방한품연대, 비정규직긴급행동, 활동가지원기금 2회, 코로나19마스크연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노조,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 비전향장기수 ‘만남의집’,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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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_연대]
어느덧 고김용균 4주기가 되었습니다. 노동사회단체들은 4주기 추모위원회’를 만들었고, 120여개의 단체들이 모여 지난 12월10일 추모제를 종각 일대에서 개최하고 광화문까지 행진했습니다.

주최단체는 큰 단체들인 민주노총을 비롯, 노조법2,3조 개정본부까지 갑자기 망라했지만, 참석인원은 미지수였습니다. 주최한 단체들이 아무리 소속회원들, 조합원들이 많다한들, 그 주최력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대표 이름 하나 얹는 것과 소속 성원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다르지요.

해서 머리 하나라도 보태기 위해서 사파기금에서도 권영숙 대표가 대표 참가했습니다만… 기우인듯,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이 모여서, 추모의 마음과 향후에 대한 결의를 나눠서 좋은 자리였습니다. 결국 모일 사람들은 모인다. 권영숙 대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종각 네거리 바람부는 보신각앞에서 집회를 하면서 많은 이들의 표정이 고요하고 조금은 착잡했습니다. 온몸으로 이 정세의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테고, 죽음을 멈춰야하는 변화를 만들기엔, 아직 변화의 힘이 약함에서 오는 조바심과 가책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고 권영숙 대표는 말합니다.

우리가, 좀더, 떳떳하게, 죽은 자들에게, 이 사회를 “죽지않고 노동하는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감히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참석했던 권대표의 기원이기도 하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로 함께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투쟁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투! 그리고 연대!

2022.12.1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2년 12월 9일 권영숙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앞 ‘노조법2,3조 개정투쟁본부’ 단식 농성장을 연대 방문하였습니다.

올해 7월 대우조선 51일 파업을 일으켰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유최안, 강인석 부지회장, 이김춘택 사무장과 민주노총의 박희은 부위원장, 윤장혁 금속위원장, 공공운수 정용재 부위원장등 6인이 10일차 단식 농성중입니다. 현재 운동본부 차원의 주요집중행동이 집단단식인데, 어찌 된 것이 거통고지회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단식이 되고 있습니다(심지어 이도 허술한).

단식 농성이 열흘이 넘어가면서, 노동자들의 얼굴도 꺼칠해지고 체중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줄어드는 체중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단식이 과연 노조법 개정투쟁에서 어떻게 부각되고 어떤 역할을 하며, 투쟁의 주체를 일깨우고 개정방향을 정확히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겠지요.
상황은 엄중하고, 지형은 불안정하고, 투쟁의 실마리는 많이 꼬여있다 보이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몸을 던져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관심은 여하히 필요합니다. 건투!

*
같은날 여의도 농성장 근처에선 ‘노조법 2,3조 개정투쟁본부’ 6차 대표자회의가 열려, 화물연대 파업 강제종료후 정세와 법안통과를 위한 중간 점검, 전략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권영숙 사파기금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그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터라, 발언을 하기보다는 회의체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위해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집행단위 보고에 따르면, 민주당은 소속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국민 5만명이 청원한 노조법 개정안을 현재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개정안에 대한 동의 정도가 미온적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 민주당은 노조 및 민주노총과 상의조차 없이, 안전운임제와 관련 현행 2개 항목을 유지하되 2023년까지 일몰제 연장하는 안을 일방적으로 공표하고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민주당의 일방적인 행보가 결국 화물연대 파업을 ‘강제종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이 노조법개정과 관련, 화물연대 파업에서 했던 뒤통수 때리기를 하지 않을까요? 운동본부는 어떻게 이 국면에서 민주당을 견제하고 견인하는 실천방침을 짜야할까요?
민주당을 통한 입법활동에 의존하는 현재의 실천방식을 조정해야하지 않을까요? 운동본부는 과연 얼마나 노동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요?
많은 의문, 그리고 논의를 남겨놓은 회의였습니다.

이에 대해선 19회 사파포럼 “손배가압류와 노조법 2,3조에 대하여”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사파포럼 후기를 참조해주세요.

2022.12.1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022년 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의를 수강한 노동자들이 그 문제의식과 내용적 성과를 모아서, 각자 노동하는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발표하는 후속 집담회를 개최합니다. 공개 집담회의 주제는 “내 일터의 노동권에 대하여”입니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하지만, 한국의 노동계급의 ‘계급내’ 현실은 산별과 업종,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규모와 정규 비정규 고용형태, 나아가 젠더와 국적에 따라 다릅니다. 이를 두루뭉실하게 노동권 일반으로 말해왔습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 중심의 사고와 실천이 이 땅의 다양한 “노동권”이 처한 현실을 가리고 심지어 냉소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동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통해서 “노동자가 하나”가 되기위해, 먼저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권에 대한 진솔한 ‘현장의 진단’을 청취하고 ‘하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일시 : 2022. 12. 17 (토)오후 2시
– 장소: 서울 정동 민주노총 15층 교육장

좌장: 권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노동학교 강사)

일터의 노동권 진단:
– 공무원노동자의 ‘지연된 노동권’ (조창현, 공무원노조 대구본부장)
– 교사의 교권 아닌 노동권에 대하여 (조남규 전교조 조합원, 난곡중학교 교사)
– 사내하청 노동자의 ‘배제된 노동권’ (이김춘택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사무장)
– 물류 플랫폼노동자의 ‘해체되는 노동권’ (정성용 쿠팡물류센터 인천분회장)
– 사라지는 노동권, 노동계급 없는 노동 – 1인 노동자의 경우 (김한경 마트노동자)
– 노동권은 장애인의 권리 (금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지난 12월3일 비정규직이제그만이 활동에 힘 모으기 위한 연대주점을 열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함께 했습니다.
이날 사파기금은 [기금지원_ 85번째]로 비정규직이제그만에 기금지원사실을 밝히고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많이 쑥스러워하는 권영숙 대표의 표정과 김수억 차헌호 소집권자의 모습. 사진들은 일부의 장면일뿐. 아침부터 겨울 첫눈이 내린 조금 더 풀린 날씨속에서, 더없이 풀어진 연대와 화해의 마당이었습니다.
뜨거운 연대의 결의를 모아 비정규직이제그만이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 건투하길 바랍니다.
기금지원공지문은 별도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2022.12.5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경제 위기를 누가 부추기는가

윤석열정부는 대통령부터 국토부 장관등이 나서 화물연대의 파업이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코로나19이후 그렇잖아도 힘든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경제위기와 재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2004년 화물차법에 도입된 업무개시명령, 다른 말로 하면 ‘강제노동’을 국가의 이름으로 명하였다. 화물연대의 일주일 파업으로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국가경제가 휘청이고 있는가? 그 증거를 대라. 그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11월24일 시작한 파업을 두고서, 11월 무역수지 적자가 화물연대 파업때문이라고 갖다붙일 정도로 엉성한 논리로 화물연대 파업을 ‘경제위기’ 주범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경제위기의 주범은 바로 이 정부와 국가, 자본이다. 윤석열대통령은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일몰 시한이전에 안전운임제 유지와 품목확대를 국회와 의논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의 원인이 된 안전운임제 일몰시한이 다가오기까지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국회는 한차례 논의이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서 일몰시한이 다가오는 지금 화물연대가 2차 파업을 하자 화물연대에게 물류 ‘대란’의 책임을 묻겠다고 그 화살을 돌리고 있다. 지금 시멘트등 공급 차질로 건설공사가 지연되는 책임은 그럼 누구에게 물어야하는가? 일몰제 검토를 약속하고서도 지키지 않은 이 정부와 국가, 그리고 책임 유기를 해온 국회가 아닌가.

불안정노동이 불러들인 사회적 재난

한국사회에서 화주와 운송업체들은 물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통해서 모든 위험 변수를 개인사업자로 간주되는 화물기사에게 떠넘긴다. 한국 물류업의 92.5%가 지입차주 – 운송업체 – 화주간의 다단계 하도급과 용역노동으로 이뤄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비정규직을 전면 도입하면서, 운송업체들은 굳이 감가상각비가 많이 드는 화물트럭을 구입하고, 기사들을 채용해서 물류업체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으로 노동시장이 재편되면서 노동의 용역화, 개인사업화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화물 노동시장, 물류업, 그리고 화물기사들이다.
화물기사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으며 근로계약을 쓰지 못한채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고 ‘용역계약’을 통해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한다. 화주와 운송업체들은 다단계 용역노동을 통해서 운임료를 절감하고 화물기사라는 개인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한다. 화물기사들은 다단계 위탁으로 후려쳐진 낮은 운임료에 더하여 화주와 운송업체들이 떠맡아야야할 사업 유지비용과 고정자본 비용을 대신 떠맡는다. 1억이 넘는 트럭 구매와 요동치는 유가 변동 속에서 유류등 유지비, 트럭의 감가상각비. 이에 따라 과속, 과적 운송은 불가피해지고, 하루 15시간 이상의 장거리 장시간 노동을 해야한다.
일련의 물류 노동시장의 재편을 통해서 화물기사들의 개인사업자화, 즉 비정규직화가 이뤄진 결과, 화물차는 더욱 고속도로상의 흉기가 되었다. 올해 상반기 고속도로상 교통사고 사망사고의 65%가 화물차에 의해 일어났다. 이정도라면 “고속도로상의 흉기”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근데 이 교통사고의 근원에는 이런 물류업의 노동시장 왜곡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후려치는 운임료를 제한하기 위해서 화물기사들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자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된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안전은 결국 불안정 노동문제이다.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안전을 원한다면 고속도로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다면, 시민들이 안전운임제의 전면 실시를 함께 요구해야한다. 항목제한을 폐지하고 전면적인 실시를 요구해야한다. 시멘트든 유류든 적재되는 화물의 종류에 따라 도로위 안전이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항목 제한을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전면 실시하여야한다.

불법, 초법, 탈법 국가와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시작부터 매우 비뚫어진 노동관을 펼쳤다. 노동하고 싶은 자들에게 노동을 막아선 안된다면서 아예 ‘법정 노동시간’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온갖 시민적 자유 예찬론자이지만, 노동하는 이들의 권리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노동할 무한자유’만 예찬한다. 자유는 권리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법언조차 숙지하지 못한 무지몽매한 검사출신 대통령이다.
그 결과 화물연대1차 파업때는 취임 첫달 눈치라도 보더니, 이번 2차 파업에는 대놓고 노동적대적인 발언과 태도로 일관한다. 그리고 바로 재난을 이유로 화물차법에 명시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강제노역 금지’ ILO협약 비준국가이고, 근로기준법에 ‘강제노역 금지’ 조항이 있는데 말이다. 헌법에 노동자들은 ‘근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돼있는데 말이다. 이미 위헌적이고, 이미 법적 검토에 들어가면 불법이고 초법이고 탈법적일 것이 뻔한 짓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당장 화물연대를 겁박할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정권 지지율을 회복하고 보수진영을 결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수단을 제공한 것이 2004년 노무현정부가 그 전해 2003년 화물연대의 1,2차 파업을 겪고선, 다시는 “물류의 중단으로 세상을 멈추”게 하는 일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화물차법 개정을 통해서 삽입한 ‘업무개시명령’조항이다. 워낙 법형식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조항이라 사문화되다시피한 것을 윤석열의 국힘 정부가 되살렸다. 정말 보수양당은 환상의 복식조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불법, 초법, 탈법적인 짓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과 현정부, 그리고 국가가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계속 ‘불법을 멈추라’라고 말한다.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누가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국가를 운영하는가? 바로 너희, 자본에 복무하는 정부와 국가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
그리고 다음 사항을 현정부와 국가, 제도 정당들에게 요구하고 명한다.

일. 정부과 국가는 안전운임제를 품목 제한없이 전면 실시하라!
단지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을 늘려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재의 품목 제한 그자체가 문제다. 고속도로 위 안전이 품목마다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적재된 화물따라 교통사고에서 치명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애초에 일몰제라는 제한은 불필요했다. 일몰제 연장은 무의미하다. 안전운임제의 품목 제한없는 전면 실시가 이뤄져야 고속도로상의 안전노동의 첫발을 딛는 것이다.
일. 현재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위 안전운임제 품목제한없이 전면실시를 입법할 뿐 아니라, 결자해지의 자세로 업무개시명령이라는 반민주적인 독소조항을 화물차법에서 삭제하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야당’ 노릇한다면서 친노동 행보와 발언을 하기 이전에 집권시절 반노동적 입법과 정책에 대한 반성의 증거로 안전운임제 품목제한없는 전면 실시와 업무개시명령 조항 삭제를 하여야한다.
일. 마지막으로, 화물연대 노동자성은 더욱 완전히 쟁취되어야한다.
개인사업자의 지위와 노동자성을 동시에 가진 ‘특수고용노동자’로 인정받는데 멈추지 말고, 완전한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노동 철폐를 향한 비정규운동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2022.1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021년 12월10일 세종호텔 주명건회장은 세종호텔 ‘민주노조’ 전 조합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습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해고였습니다. 조합원 전원 해고의 방식은 누가 봐도 노조를 축출하기 위한 핑계로 정리해고와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했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명동 일대는 코로나19를 잊은 듯 북적입니다.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복직되지 못한채 거리 농성 투쟁중입니다. 정리해고의 이유는 코로나19도 경영적자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1월 26일, 정리해고 1년을 바라보면서 세종호텔 노조의 해고 노동자들은 명동으로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호기롭게 풍물패를 앞세우고 명동을 들썩이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많은 연대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처음 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함께 했습니다.
이 날 많은 이들이 고생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종호텔 노조가, 노동자들이 연대의 힘을 받고, 연대와 투쟁이 함께 하는 투쟁의 대오에서 계속 잘 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투를!
정리해고 철폐의 그날을 위해!
세종호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바랍니다.
2022. 11.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공지] 제19회 사파포럼 – “손배가압류와 노조법 2,3조에 대하여”

일시: 2022. 12. 6 (화) 오후 6시 30분
장소: 서울 정동 민주노총12층 대회의실

손배가압류와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뜨거운 노동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조법 2,3조는 왜 문제이며, 어떤 방향으로 개정해야하는지 아직 숨은 쟁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손배가압류는 노조법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동안 손배가압류는 노조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한국 노동의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연대를 넓히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개정하기 위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치밀하고 비판적으로 알아보는 [19회 사파포럼]을 12월6일 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합니다.

1. 기조발제:
“오래된 손배가압류 문제와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성찰”/ 권영숙 노동사회학자

2. 현장발제:

– ” 대우조선 파업과 노조법의 문제점, 그리고 노동법개정 투쟁방향”/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 “우리는 어떻게 손배가압류에 대응했는가: KEC 대응 사례로 본 손배가압류의 실체와 효과”/ 김진아 KEC노조 수석부지회장

– “철도노조 손배가압류 대응이 남긴 교훈”/ 김형균 철도노조 부산고속차량지부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2022년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4강이 11월19일 열렸습니다. 마지막 강의라서 많은 이들이 대면 참석하는 열띤 분위기속에서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강의후에 뜻깊은 종강식을 열었고, 이태원참사 현장에 헌화 추도회를 가졌습니다.

4강은 3강까지 강사가 강의했던 모든 개념들과 이론적 논지, 그리고 서유럽과 한국의 노동권의 역사를 토대로 하여 한국의 노동권의 ‘3중 딜레마'(트릴레마trilemma)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권영숙 노동사회학자가 그의 논문에서 핵심 논지로 정립한 노동권의 ‘3중 딜레마’는 권리의 지연과 유보, 권리의 배제, 그리고 권리의 해체입니다.

강사는 먼저 노동존중에 대비하여 노동차별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노동의 1차 차별로서 ‘외부적 차별’과 노동의 2차 차별로서 ‘내부적 차별’. 외부적 차별은 민주화이행이후 정치적 시민권에 비해 현저히 지체, 유보, 배제된 노동시민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외부적 차별이 노동 내부의 차별로 이어짐을 강사는 강조했습니다. 흔히 노동차별을 노동내의 차별, 노동간의 차별을 의미하는데 강사는 이 오용을 지적하고, 노동의 시민권에 대한 외부적, 1차적 차별이 핵심문제이고, 그것이 바로 노동권의 3중 딜레마로 연결된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노동시민권에서 ‘권리의 유보와 지연’은 ‘전통적인’ 노동의 시민권 상태에 해당합니다. 교사, 공무원등 단체결성외에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의 지연, 파업의 불법화, 파업의 형사화(범죄화), 파업의 민사화를 통한 단체행동권의 제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근기법의 유보 대상으로 5인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1단계 노동권의 장애입니다. 강사는 민주화이행이후 1차적인 전통적인 노동권의 유보와 지연이 사라지지 않은채 권리의 배제, 권리의 해체 현상이 중첩되고 교차된다는 점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강조했습니다.
둘째 ‘노동권의 배제’는 비정규직의 도입 및 확산과 맞물립니다. 노동자이지만 근로계약의 대상이 아닌 특수고용노동자, 사용자성이 모호한 사내하청노동과 위탁노동 등 두가지를 통해 강사는 간명하게 노동권의 배제를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리의 해체’. 권리의 해체는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사라지고, 노사관계가 해체되고, 노동법 적용대상이 사라지는 새로운 노동형태의 도입과 맞물립니다. 이미 있었던 동일노동에 대해서 디지털자본주의가 플랫폼노동이란 새로운 노동형태를 재구성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강사는 권리의 해체는 단지 권리의 쟁취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해체, 노자관계의 해체등 노동계급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의 실천전략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강사는 사회적 고립에 맞서는 대당은 ‘사회적 연대’라고 하지만, 사회적 연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죽음, 노동권의 전노동계급적인 쟁취가 이뤄지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사회적 연대의 문제의식은 단지 출발점일뿐이며, 노동권에 대한 전계급적인 인식과 노동중심적 사회동맹의 전략을 정립하고 실천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실천적인 전략에 관한 강의는 수강자들로부터 연대와 동맹의 차이는 무엇인가등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종강식이 이어 열렸습니다. 수강자 전원이 1분 발언으로 강의소감과 소회를 밝혔습니다. 강사의 문제의식을 매우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자신이 몸담아온 노조와 정당운동의 한계가 왜 있었는가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힘든 시기 자신의 고민이 왜 정당했는지 이해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는등. 강의에 대한 진지한 발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계급운동과 노동정치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종강식에 빠지면 안되는 ‘개근상’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사파기금 10주년을 위해 만들었던 어여쁜 우산을 18명의 개근자에게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수강자들에게 세종호텔노조의 재정사업으로 팔고 있는 여행용 파우치를 후원 겸하여 구매하여 나눴습니다.}

공동실천1호로 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와 이태원참사 추도대회를 참여했고, 이날 종강식후 공동실천2호로 이태원참사 헌화 및 추도에도 많은 인원이 함께 하여 더욱 뜻깊었습니다. 권영숙 강사가 항시 강조해온 “구체적인 정세에 구체적인 개입”과 “이론은 실천의 무기”라는 말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수강자들이 내년 민주주의와노동학교의 개설을 적극 요청하였습니다. 내년에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수강자들의 건강과 건투를 빌며!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와 사회적 동맹을 향하여!
2022.11.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2022년 주최한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는 11월19일 4강 종강이후 이태원으로 이동해, 참사현장에 검은 종이에 싼 하얀 국화꽃들을 인원수대로 준비해서 헌화하고, 참배하고, 죽은 희생자들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헌화한 장소는 이태원참사로 인한 158명의 죽음이 집중되었던 해밀턴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 호텔이 ‘불법증축’해서 튀어나온 골목 끝자락입니다. 이 장소의 상징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은 여전히 애도의 분위기였습니다. 애도객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거의 다수가 청년들, 그리고 외국인들이었습니다. 지하철입구 계단으로부터 간선도로변, 그리고 해밀턴호텔 옆 골목까지, 수많은 이들이 놓아두고 간 꽃들, 화환들, 그리고 죽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빼곡이 들어차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마치,
우리는 이대로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대로 묻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죽음을 다시 반복할 수 없다!
라고 외치는, 증좌의 자리 같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가주십시오.
그 자리에 오는 이들이 계속 있다면,
이태원 참사는 이대로 잊을 수도, 묻을 수도 없는 아주 작은 힘들의 연합이 될 것입니다.
2022.11.2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가 이제 마지막 강의인 4강을 11월19일 엽니다.
1강과 2강에서 노동권 개념의 역사, 노동권의 등장과 진화의 과정, 그리고 역사적인 거시적 사회변동, 정치체제와 노동권의 진화가 어떻게 얽혔는가를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3강에서 한국 노동권의 역사를 1987년 민주화이행이전과 이후, 그리고 현재까지 헌법과 노동법 개정, 노동운동사를 중심으로 요약했습니다.
마지막 4강은 현재의 노동권의 현주소를 다룹니다. 위 강의들에서 다룬 모든 기초들, 개념들과 역사성을 토대로, 한국 노동권의 현주소와 ‘노동차별’의 문제를 다룹니다. 강사인 권영숙 노동사회학자는 한국 노동권의 현주소를 “노동권의 3중장애(트릴레마)’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단속에서 “사회적 동맹정치”를 제안합니다. 4강이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라는 이 학교 대주제의 총화가 될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4강. 한국 노동권의 현주소와 ‘3중 장애(트릴레마)’ (11/19)
– 노동존중과 노동차별의 관계
– 노동권의 3중 장애: 권리의 지연, 배제, 그리고 해체
– 노동의 고립과 배제, 분단을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와 동맹전략
*읽을거리: 권영숙, 2020. “한국 노동권의 현실과 역사: ‘노동존중’과 노동인권에서 노동의 시민권으로”, <산업노동연구> 26권1호. 250 – 267쪽
다음은 4강 강좌에 대한 강사의 말입니다.

“‘노동존중’은 사회과학과 제도 양 측면에서 ‘노동의 집단적 존재성에 대한 인정의 문제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한 국가사회에서 노동의 존재에 대한 인정은 노동권의 인정과 제도화, 집행으로 구체화됐습니다. 물론 노동의 집단적 존재에 대한 인정은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쟁취와 다른 체제의 구상이라는 방식으로도 시도됐습니다. 여기서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내의 역사에 주로 초점을 둡니다. 한국에서 노동권 역시 국가, 민주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삼각도 안에 놓여집니다. 저는 한국의 노동권의 현주소를 ‘3중 딜레마(trilemma)’라고 규정했습니다. 바로 1) 노동권의 지연과 유보, 2)권리의 배제와 박탈, 3) 권리의 해체입니다. 노동권은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이지만, 시계열적인 순서상에 있지 않습니다. 중첩되고 교차되고 복합적입니다. 특히 ‘권리의 해체’ 현상은 노동계급의 해체, 노자관계의 해체로 나타날 것이므로 이제 노동권 문제는 권리 쟁취의 문제일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사회적 연대는 충분할까요? 우리는 어떤 ‘동맹정치’를 꿈꿔야할까요? 여기까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권 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사)

[안내]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4강후 간단한 ‘종강식’을 합니다. 졸업식에 빠지면 안되는 개근상과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수강신청자들은 가능하면 4강때는 대면 수강을 하길 바랍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지난 7월23일 거제통영고성 사내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에 ‘사파작은희망버스’ 발진한후 다시 푸른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11월12일 전태일52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이어진 ‘이태원 참사 추모대회’에 나갔습니다. ‘시민추모촛불’이라고 애매하게 명칭이 붙여진 집회였지만, 참여하기로 한 이유는 공지문에서 밝혔듯이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정권과 체제가 묻어버리게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또한 이 날 참여는 지금 진행중인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수강자들이 함께 하는 공동실천1호였습니다. 십수명의 인원이 폭우 속에서 만나, 폭우속에서 이태원참사 집회로 바꾼 무대를 바라보고, 함께 차담회를 하면서 정국과 전국노동자대회, 그리고 이태원참사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좋았습니다만 생각도 많았습니다. 과연 그 수많은 인파들, 9만명이 모여 한 행동은 ‘궐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요?
그리고 전태일정신은 무엇일까요? 수강자 어떤 이는, 오늘밤은 괴로운 날이라고, 타협하는 현실에 대한 자기 성찰을 남겼습니다. 권영숙 사파기금 대표가 민주주의와노동학교 3강 “노동권의 변천사”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올리려고 합니다.
한국의 노동권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이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의 헌법적 권리로 명문화돼있었으나 사문화되었고,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은 “유보”당했다. 그리고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있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면서도 자신의 몸과 함께 노동법전을 태웠다. 그것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노동권과 노동법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생각, 나아가서 이 ‘체제’에 대한 생각까지. 이것이 계속 형성해나아가야할 전태일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타협적인 노조를 부끄럽다한 이의 성찰이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옮겨지길 바랍니다. 다음의 전태일열사를 기리는 대회에서 더 나아가길 바라며.
2022. 11.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노동사회학자)

1.
그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주당보다 더 리버테리언인 양, 세상만사 다 우습다는 듯이, 한순간이면 다 벗어던질 듯한 사회문화적 태도. 그자가, 갑자기 어느 날 자신의 ‘비즈니스’로 이 지구와 이 인류를 구하겠다는 듯이 수소차니 전기차니 뭐니 할 때부터, 그리고 기후문제를 들먹일 때부터 특히 그랬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자본가들의 비즈니스에 군불을 때고 또 한 번 어떤 자본가들의 뜯어먹을 거리가 되겠구나 했다. 그 대표적인 인사가 머스크다.

어쩌면 가장 사기꾼스런 자. 조지 소로스를 뺨치는 자. 소로스는 헤지펀드, 투기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뽑기 위해, 전 세계 내전을 부추기고, 내전 한편 아니 양편에다 군자금을 대고, 없는 사회운동도 만들었다. 그러므로 소로스는 20세기 후반 이후 자본가의 새로운 유형이었다. 그가 폴란드 출신(아니고 헝가리 출신이다. 소로스가 폴란드에서 했던 많은 ‘혁혁한’ 국제활동을 염두에 두다가 잘못 썼다. 근데 그냥 두기로 한다.)이라는 점까지.

근데 머스크 이 자는 웃기게도 자신을 투기적인 돈놀이꾼도 아니고, ‘제조업’ 혁신가인 양 포장한다. 자동차를 혁신, 또 혁신하겠다 한다. 근데 그가 정작 돈을 번 것은 모두 비트코인, 가상 금융에서였고, ‘선택된 소수’ 인간들을 우주로 보내주겠다는 우주선 프로젝트를 하면서 마치 ‘기술의 첨단’을 걷는 듯한 쇼 비니지스를 통해서, 자신이 만들어 파는 자동차의 한계를 슬쩍 무마했다. 이건 뭐, 이렇게 사기꾼스럽다니.

2.
그러더니 머스크가 SNS 수단인 트위터를 최근 구매했다. 트위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휘발성 강한 SNS 도구다. 결국 그는 잘 아는 것이다. 자본에도 SNS, 즉 Social Network Service가 중요하다는 것. 이제 자본가들에게 자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뭐니 뭐니 해도 ‘상징자본’이다. 뭐하러 언론사는 귀찮게 만들까. 언론사는 통제하기도 힘들고, 언론기사는 ‘가짜뉴스’ 만들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악하는 자는 머리 꼭대기에 있어야지. 바로 big brother!

고로 SNS를 장악하면 된다. 트윗을 날려서? 아니 그냥 트윗을 잡아먹고서. 흥미로운 것은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몇 번이나 안 살 것처럼 흔들더니, 결국 샀다, 바로 미국 중간선거 얼마 안 남기고 말이다. 미국 중간선거는 매번 11월 둘째 주 화요일에 치러진다.
그리고 그가 인수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트윗의 노동자 3,700여 명에 대한 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무례한 방식으로! (내가 사람의 ‘무례’를 잘 따지는 건, 그게 결국 사람의 바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바로 회사의 SNS 창을 닫아, 해고 대상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 자신이 해고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했다. 나쁜 짓~

3.
피비린내 나는 대량 해고에서 해고 방식만 고약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하의 지점이다. 그는 정리해고를 하면서 트위터 안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인 ‘민주주의’ 파트를 없앴다. 그리고 트윗 안에서 ‘미디어 윤리’를 맡은 파트를 몽땅 덜어냈다. 이게 무슨 말이람? 여기서부터 좀 복잡하다.

표면상으로 머스크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대한 ‘자정’, ‘규제’를 가하는 쪽으로 바꾼 방향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더 이상 규제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즉 ‘트윗에서 트윗을 날릴 자유’를 옹호한다는 거다. 뭐 대단해 보이지? 아니, 표현의 자유 옹호니까, 맞는 말 아니에요 싶지. 아니면 트윗에서 혐오발언이 난무하고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통로가 되니 문제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맞다. 이 해고 단행이라는 방식으로 내부의 규제 관련 부문을 정리하는 것은, 지저분한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SNS 준동을 슬쩍 눈감아주겠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는 미국 민주당- 바이든 정부의 입장에 정면 다르게 나가겠다는 것이다. 고로 머스크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과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동아줄을 확실히 잡겠다는 메시지를 ‘정리해고’로 보여준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다시는 미국의 ‘고요하게 안정된’ 공화-민주 양당 정치 구조를 흔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정략과 SNS 규제가 맞물려 있다. 한국은 아니 그런가?

4.
그런데 다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단지 일개 자본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세상의 풍향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해온 자본가의 행동이 일종의 나침반처럼 가리키는 바를 우리는 봐야 한다.

이번 머스크의 트위터 노동자 대량 정리해고를 두고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이 이에 대한 성명을 냈다는 것이다. 폴커 튀르크 대표는 11월 5일 OHCHR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한에서 머스크를 향해 “출발이 좋지 않다. 트위터는 인권이 경영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서도 ‘인권’이 등장한다. 자 이쯤 되면 이게 단순히 해고를 둘러싼 문제나, 표현의 자유냐 혐오테러의 규제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지 않나?

맞다. 아니다. 이것은 ‘중국 문제(리스크)’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미국이 계속 끌어가냐 마는가의 문제이다. 머스크는 지금 중국 리스크를 죽여야만 돈을 더 이상 잃지 않고 돈을 벌게 된다. 그의 자본이, 그의 차들이, 그가 펼칠 세상이, 중국과 미국의 친구 관계를 요구한다. 이는 트럼프 집권 시절, 한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북한과 화해무드를 더 지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될 일이다.

덧붙여 UN과 산하 기구들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더 정확히는 정치적이다. 미국 주류 정치와 연동되고 있다. 아니 미국과 서방의 ‘지정학적 전략’과 한몸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여러 번 논문이나 강의에서 의미한 ‘국제인권체제international human rights regime’라는 것이 ‘체제’로서 그렇다.

5.
그러니 머스크 등의 자본가들로선, 민주당 올드보이들과 어쩔 수 없이 ‘호전광’이 돼버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끌고 가면서, 중국에 대해서 ‘민주주의 전쟁’을 하지 않게, 이쯤에서 멈추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압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공화당 내 ‘가장 평화주의자’는 우습게도 트럼프다. 그리고 트럼프와 함께하는 정치인들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절대다수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머스크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여기에 베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 회사 내부의 인적 정리를 통해서, 머스크는 민주당과 바이든, 그리고 ‘전쟁’하자는 녹색과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선 것을 보여준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이 반전이.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우파 민주당과 독일의 녹색당 소속 외무장관, 경제부총리 등이 지금 가장 ‘호전광’이라는 사실 말이다. 어떻게 하여 ‘녹색’이 피비린내 나는 적색이 되었는지 말이다. 한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그 이데올로기의 불철저함에 내장돼 있기도 한 것이다.

한국에서 학습효과로 삼아야 할 일이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일론 머스크라는 자본가와 미국 중간선거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트위터 대량 해고의 미국 국내정치적, 지정학적 의미 (newscham.net)

[기쁜소식 5호]
격월 둘째주 화요일마다 배달되는 뉴스레터.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 <사파동행> 5호가 2022년 11월8일 오늘 발간되어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되었습니다.
https://stibee.com/…/VByCTDsh4IsFl8JS6oIfj6uwQME54FY= (소식지 클릭)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 톱기사로 11월9일 성남본사 상경 파업 투쟁을 하는 대전 한국타이어 김용성지회장과의 대담인 [사파인터뷰]를 올렸습니다. 오늘 그들이 성남 본사로 쳐들어옵니다. 때 맞춰서 읽어봅시다.

= 2022년 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성황리에 진행중중입니다.
전체 강의안 소개, 1강과 2강을 앞두고 ‘강사의 말’, 그리고 1강과 2강의 강의 후기를 함께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_ 강의 대주제: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 장애를 넘어서는 노동권의 새로운 인식”
_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핵심적인 노동의제를 선택하여 개최하는 집중연속 강의
_ 10월 8일부터11월22일까지 서울시NPO센터에서 격주로 개최.
_ 25명 정원에 2배가 신청하여 대면과 비대면 줌강의로 진행중.
– 노동권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적 검토, 노동권 현실에 대한 선명한 진단, 그리고 노동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포괄적인 진단과 해법까지.

= 그리고 기금 지원연대 소식과 기금 활동등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두달간 활동들을 수록했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것으로 이 글을 읽어주세요.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 세번째 방문
[사파 연대] 비전향장기수 만남의집 2022가을 방문 221002”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행사 알림] 2꼭지입니다.
미리 알려드리니, 달력에 표시해두고, 이 두 개의 행사 꼭 놓치지 마세요. 간단한 내용은 클릭해서 본문을 보시길.
-[행사 알림] “내 일터의 노동권에 대하여” 집담회 개최 (12/19)
– [행사 알림] “손배가압류와 노조법 2,3조에 대하여” 쟁점 토론회 개최 (12/6)

* <사파동행>은 사파기금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전송됩니다.
이메일로 직접 받지 못한 이들은 사파 연대자가 되어주세요. 사파 연대자가 되는 방법은 저 소식지를 클릭하면 됩니다.
그러나 물론 연대자가 아직 되지 못한 이들도 위 URL을 클릭하여 볼 수 있습니다. 계속 보기 하고 싶으면, 소식지 하단에 위치한 구독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2022. 11. 09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민주주의와노동학교 3강이 “한국 노동권의 변천사”라는 주제로 2022년 11월 5일 서울시NPO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강의는 중반전을 넘어서면서 제법 틀을 갖추고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섭니다. 1,2강에서 스스로 이해도를 점수 매기면서 강사의 시각의 낯섬에 대해 난해함을 토로하던 수강자들은, 1,2강에서 벼린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노동권 역사를 보는 인식을 기초로 하여 한국 노동권의 변천사와 노동현실에 대한 강의에 집중하였고 그만큼 토론에서 각자의 생각들을 얘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사인 권영숙 노동사회학자는 1,2강에서 논의를 요약하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한다고 해서, 그리고 민주주의하에서 무조건 노동권이 허용되거나 비슷한 ‘체제’의 모습을 가지지 않으며, ‘서유럽 모델’이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강의를 열었습니다. 노동의 시민권을 권리로서 ‘제도화’하는데 있어 3가지 선행조건을 열거했습니다. 1)법제도적 명문화, 2) 시민권에서 국가라는 에이젼시, 그리고 3) 국가-사회 관계속에서 사회의 ‘노동존중’입니다.

강사는 대한민국 헌법 조항을 예시로 들면서, 한국은 1) 법제도적 명문화면에서 보면 노동의 시민권을 인권을 넘어 ‘사회권’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인정한 법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헌법에서 자유주의적 시민권인 ‘결사의 자유’와 별도로 헌법 33조에 노동권을 명시하였고, 단체결성의 권리, 단체교섭의 권리, 그리고 단체 행동의 권리를 나란히 적시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두 가지 조건에서 계속 문제적입니다. 즉 국가의 역할, 그리고 사회의 역할(혹은 모습)이죠. 강사는 노동권의 변천사를 1987년 민주화이행이전, 1987년이후- 1997년 노동법 개정, 그리고 1997년 이후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변곡점등 3단계로 나눠 이를 설명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사의 축약버전 강의 같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사는 결국 이는 국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의 3가지 문제로 축약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문제는 발전국가의 노동정책을 통해서, 그리고 정치와 노동의 문제는 노동배제적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의는 국가와 법에 대한 문제를 집요하게 드러냈습니다. 수강자들이 가장 열심히 집중하고 토론에서 많이 거론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국가와 법, 정치를 둘러싼 문제가 권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아가 권리의 투쟁, 법을 향한 투쟁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4강 “노동권의 3중 딜레마”는 그것을 총체적으로, 현재적으로 바라보는 강의가 될 것입니다.

2022.11.0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인터뷰 및 글: 김한주 (금속노조 교육부장)

복수노조 사업장인 한국타이어 내에서 소수노조였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올해 처음 다수 노조가 되면서 파업 투쟁의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오는 9일부터 성남 본사 상경투쟁을 벌일 예정인 한국타이어지회 김용성 지회장과 전격 인터뷰를 게재한다. 소수노조 시절 차별의 벽을 뚫고, 이제 파업 투쟁의 길로 들어선 한국타이어 노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회의 게릴라 파업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파업 상황을 알려달라

우리는 지난 7월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7월 전 조합원이 총 8시간 게릴라 파업(파상파업)을 실시했다. 8월에는 16시간, 9월과 10월엔 24시간 게릴라 파업을 벌였다. 게릴라 파업은 급하게 가동해야 하는 공정부터 순서대로 일손을 놓는 방식이다. 파업 시간을 2시간부터 7시간까지 끊어가며 ‘순간의 타격’을 극대화했다. 최근에는 지명 파업으로 돌입했다. 쟁의가 길어진 시점에서 전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우려되는 점이 있어서다. 우선 조합원 약 1600명이 기존 어용노조를 탈퇴하고 금속 지회에 가입했다. 이들은 지난해 어용노조가 주도한 파업이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마무리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쟁의행위가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또 파업하면 임금손실을 떠안는데 감당 수준은 개인별로 다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일부 조합원만 파업에 나서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회는 파업으로 인한 임금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조합비를 인상했다. 조합비 인상안이 가결되면서 조합원들은 상대적인 불안감을 점차 떨치고 있다. 이제 다수 노조가 된 지회는 ‘더이상 어용노조와 함께 했던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는 의지로 투쟁의 불을 지피는 중이다.

7월부터 이어진 파업 투쟁의 쟁점은 무엇인가?

지회는 창립 후 7년 동안 소수노조였다. 이 기간 사측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쳐 어용노조와 교섭을 했고 지회는 교섭권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올해 지회가 다수노조 지위를 찾았다. 그렇게 되자 이번엔 사측이 어용노조와 개별 교섭을 실시하더라. 교섭 권한은 노조에 있는 게 아니라 사측에 있다는 것이다. 개별교섭을 시작한 사측은 어용노조와 교섭을 마무리하며 회사측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은 기본급 4.1% 인상에 격려금 100만원이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실질임금 인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회는 이 가이드라인을 돌파해야 한다. 지회는 기본급 4.8% 인상, 타결금 200만원 추가 인상, 임금피크제 단축(피크 시점 59세→60세)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회사의 가이드라인을 돌파하지 않으면 사측은 또 어용노조를 이용해 민주노조를 방해할 것이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악법으로 올해 싸움에서 밀리면 내년은 더 어려우리라 판단한다. 그래서 파업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돌파하겠다는 모두의 의지가 높다.

119일 본사 상경 투쟁은 어떤 기조와 목표를 세우고 있나?

7월부터 이어온 투쟁에 한 번 더 큰 힘을 모아 싸워보자는 결의를 높이는 차원이다. 현재 사측 태도를 보면 교섭에서 추가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대안을 만들고 제시하는 건 집행부 몫일 수도 있겠다. 이 몫은 현장 조합원의 힘에서 출발한다. 물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싸움을 함께 하나 투쟁의 주체가 스스로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그 힘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신규 조합원도 많이 있으므로 함께 의지를 맞춰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파업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2023년엔 금속노조와 연대의 전선도 넓혀가지 않겠나.

보수언론은 ‘60년 무분규 사업장임을 강조하며 노조 파업을 비난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노동자가 그간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무권리 사업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어떤 착취구조 아래에 놓여있었나?

나는 지금껏 한국타이어에 노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60년 무분규’가 이를 방증한다. 지금까지 어용노조 조합원을 관리하고 통제한 것은 어용노조가 아니었다. 회사 관리자였다. 그래서 조합원을 비롯한 현장의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관리자에 의해 고과에서 누락되고, 차별받고, 부당해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노동자들이 이를 깨닫고 저항한 게 작년 파업부터였다. 어용에서 파업을 주도하긴 했으나 조합원들이 스스로 노동자성을 찾은 과정이 컸다. 그렇게 파업 투쟁이 일었는데 어용 위원장은 직권조인을 했다. 나는 당시 지회 대의원으로서 강하게 문제 제기했다. 어용 조합원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이 과정을 지켜봤고, 오히려 나에게 발언권을 보장하라며 같이 분노하더라. 작년부터 이어진 저항에 많은 이가 지회로 합류했다. 민주노조가 노동자로 사는 데 대안이 된 거다.

계급성과 저항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조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 지회가 노동자 다수를 민주노조로 조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나 활동을 했었나?

지회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주목했다. 재해사고, 질환 등에 대응했다. 7년의 과정이었다. 그동안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조차 못했다. 산재를 신청하면 불이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산재는 심각한 수준이다. 2년 전에도 끼임으로 사망사고가 났다. 같은 사례로 산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사고가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재해 문제가 커진 까닭에 노동청이 따로 TF를 꾸릴 정도였다. 과거 제1노조였던 어용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사측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대안을 마련하기는커녕 사고 원인도 분석하지 않았다. 사측은 비용 논리를 대며 안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안전 센서 등 장치를 달면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소수노조였지만 이에 대해 끊임없이 대응하고 노동자 개인의 산재 신청을 도왔다. 또 하나는 근골격계 질환이다. 현재 지회 조합원 2300명 중 약 300명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하고 출근하고 있지 않다. 이 과정에서 지회가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산재 승인은 지회 설립 전인 2014년 71건에서 2020년 217건으로 증가했다.) 이런 지회 활동으로 많은 노동자가 지회로 조직됐다.

한국타이어 총수 일가의 돈잔치가 상당하다. 조현범 회장은 2020년과 2021년 배당수익으로 281억원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의 이윤 독점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

한국타이어를 둘러싼 계열사가 많다. 한국타이어 공장에 설비를 놓는 업체, 고무를 납품하는 업체 등이 있는데 모두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최대주주는 한국앤컴퍼니다. 총수 일가가 한국앤컴퍼니를 통해 한국타이어를 통제하고, 이윤을 쓸어 담는 구조다. 한국타이어는 해외공장에서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 국내공장만 적자라는 이유로 민주노조를 옥죄는 상황이다. 해외로 진출하기 전인 2002년에 사측은 해외 경영을 통한 이윤은 노동자에 정당하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온데간데없다. 한국타이어 역사는 오로지 총수 일가가 손쉽게 이익을 챙겨가기 위한 정황들로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많은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한국타이어지회라는 노조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다. 소수노조는 창구단일화로 인해 교섭권 없고 따라서 파업권도 없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창구단일화라는 악법에 막혀 있다. 그래서 지회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회가 지금 벌이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승리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여주면서 많은 노동자가 민주노조 깃발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여전히 힘겨운 싸움하는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달라.

한국타이어지회가 9월 1일 오전 경기 성남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한국타이어지회가 10월 파업을 전개하며 현장 순회와 현장 발언을 하는 모습.

* 이 인터뷰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소식지 <사파동행> 5호 게재 기사로,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무분규’ 아닌 ‘무권리’ 한국타이어…복수노조 차별 뚫고 파업 나서 – <font color=”red”>[사파 인터뷰]</font> 한국타이어지회 김용성 지회장 (newscham.net)

1.
답답하고 저리다. 너무 많은 목숨들이 어처구니 없게 죽었다. 그들은 그렇게 저 자리에서 죽을줄 몰랐을 것이다. 그 상황이 그렇게 위험천만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할로윈 파티를 저렇게까지 운집해서 해야하는가 라는 것은, 도덕적인 판단도 뭐도 아니고 남의 취향들이다. 그 취향과 세태가 못마땅하여도 남의 취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온 나 역시 할로윈이 한국에 이렇게 급속히 퍼진 것에 대해서 당황스럽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유별난 일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차라리 세계화를 비난하는게 낫겠다.
아무튼 이 사회 숨막히는 사회에서 뭔가 ‘출구’는 아니더라도, 짧은 한때의 축제나 일탈을 꿈꿀 수도 있고, 누구는 올해는 저 이태원이라는 데 가서 저 할로윈 파티를 하는 대중의 물결에 한번 휩쓸려보자 했을 수도 있다. 그건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거의 다수가 각자 그런 출구 아닌 출구들을 조금씩은 예비하고 꿈꾸고 심지어 결행한다. 텃밭을 가꾸거나 매주마다 다른 일은 제치고 산을 오르거나, 가족에 올인하며 두문불출하거나, 은퇴후 집자리를 보러다니거나….. 다 자기 숨통을 열기 위한 안타까운 출구전략이나 하룻밤의 출구다. 그것들간에 뭔 대단한 차이가 있는지.

2.
내가 덧붙이고 싶은 건 이것인데, 서울은 인구밀도가 높다. 사람들은 어떤 대형 이벤트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보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사회 분위기도 있다. 밀도 높은 도시에 (유동인구가 만들어내는) ‘순간 밀도’ 는 더 높아진다. 도심의 공간들이 여기가 핫hot하다가 저기가 핫hot하다가 변화도 있다.
이태원은 한때는 지역상권이 많이 죽었다가 경리단 길인지 개발되고 나서 많이 일어섰다. 대형 이벤트들이 붙었다. 이태원 인터내셔날 거리행진도 치러진다. 할로윈 파티도 이태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아직은 다른 곳들에서 젊은 성인들이 할로윈이라고 모여 파티할 만하지 않으니, 여기 이 공간으로 집중적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을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지형적인 사실이 있다. 이태원 뒷골목은 좁고, 간선도로도 좁다. 특히 해밀턴 호텔 뒷골목을 가보면 경사지고 좁다. 도저히 공간상 10만명이 운집할 만하지 않다.
올해 코로나19 3년째이고 거리두기가 해제된 첫 해에 이태원 할로윈파티에 10만명 집결이라는 소식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그렇다면 10만명이 운집할만한 거리를 만들거나 그런 일시적 운집으로 인한 대비는 정부가 해내야할 몫이다. 바로 여기서 1차적으로는 관할하는 지자체인 서울시, 그리고 중앙정부와 행안부등, 국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

3.
이 참사를 두고 “후진국형”이란 표현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 편견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에서도 이런 “몰린 인파의 압사”는 없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선진국형일지 모른다. 정보의 과잉, 정보의 공유가 갈수록 순간밀도를 높이는 이벤트들과 결합해서 벌어지는 참사이므로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부 우파 신문들의 논조가 좀 수상하다. 파이낸셜타임즈, 조선일보 일제히 이들은, 개인들을 비난하고 나선다. 인재 아닌 인재로 만들고 있다. 아주 자극적이다. 한쪽에서 시신들이 널부러져있는데, 다른 쪽에선 “sex on the beach”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는 기사. 근데 기사가 매우 엉성하다. 이런 기사는 기사로서도 흠결이 많고, 이런 기사로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4.
재난문자와 재난방송.
요즘 한국인들은 매일 휴대폰으로 정부가 쏘아보낸 재난관련 문자를 수없이 읽고 있다. 정부는 스팸 문자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많은 문자들을 보낸다. 그런데 왜 정작 재난의 현장에선 이렇게 정보가 차단되고 공유되지 않았을까? 이태원 재난 현장에는 한곳에 몰린 대중들의 귀에 들리게 공중에서 큰 스피커라도 사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했을까? 더이상 밀지 말고, 가장 밀도 높은 그곳으로 밀고 들어오지 말고, 분산하라고. 가만히 있지 말고 안전지대로 빠져나가라고 방향을 신속하고 주의깊게 안내하고 행동지침을 알려주는 방송 말이다. 이 나라 아파트단지마다 달려서 시도때도 없이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방적 통보’는 수없이 많은데, 하다못해 10만명이 운집할 저 거리에 어떤 알림 시스템이라도 없었나?
오늘 아침 이태원의 저 장면들을 보면서, 한쪽에선 사람들이 춤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특히 우파 언론들이 자극적인 기사로 맹비난중이다. 근데 현장에서 과연 정확히 사태를 알 수 있었던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의 공간들이라는 것이, 익명성 속에서 순간적으로 모인 이들이, 자신의 ‘물리적 감각’으로 보고 듣는 것 이상의 어떤 정보를 현장에서 알아낼 수 있을까?
일 벌어지고 나서, 결국 저렇게 맨투맨으로 물리적으로 현장에서 사람들의 물결을 통제하겠다고, 손에 야광봉 들고 이리뛰고 저리 뛰고, 사람들의 대오를 더이상 앞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는, 얼마되지 않는 경찰들의 모습이 더 기가 막혔다. 과연 현장 상황에 맞는 준비를 하고 출동한 것일까?
한쪽으로 이 국가는 저 위로부터 아래로, 정보의 간격도 없이, 분리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면서. 정작 현장에선 어떤 정보도 제대로 공유되거나 전파하는 시스템의 준비는 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재난에 대응한다는 것….
온갖 디지털 강국이 보이는 재난현장의 모습이다.

여기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
느끼는바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이렇게 많은데, 왜 이런 재난은 일어나고야 마는걸까.
답답하고 저린 마음이 제일 먼저인 이유다.
조건 불문, 세월호에 이어, 국가와 정부의 책임, 재난 체계의 문제를 따지는 것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2022.10.30
–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지옥같은 밤을 보냈을 이들에게 위로를.
죽은 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명복을.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할 기회 이상의 무엇을 남기길.

3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는 2강을 끝내고 이제 중반을 접어들어 2강을 개최합니다. 3강과 4강은 한국의 노동권의 역사, 체제,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진단 및 전략에 대한 강의로 꾸려집니다. 수강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 강의이기도 합니다.

3,4강 강의를 위해서 1,2강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동권의 기원, 인권과 시민권과 구분되어야했던 이유, 계급투쟁 속에서 확장되고 변형됐던 노동권, 노동계급 존재의 ‘인정’의 문제이기도 한 노동시민권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노동권의 역사, 체제, 그리고 현실을 이해하고 실천을 구상하는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먼저 3강은 앞서 이론적인 준비와 더 넓은 비교사적인 이해틀 속에서 한국 노동권의 역사와 노동법체제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3강. 한국 노동권의 변천사와 노동현실 (11/5)
– 한국 헌법과 노동3권
– 노동권의 법제도와 현실
– 해방이후 노동권 변천사 3단계
– 국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읽을거리: 권영숙, 2020. “한국 노동권의 현실과 역사: ‘노동존중’과 노동인권에서 노동의 시민권으로”, <산업노동연구> 26권1호. 233 – 250쪽

다음은 3강 강좌에 대한 강사의 말입니다.

“노동권을 자명하게, 당연한 것으로, 언제나 주어지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역사적인 개념이자 역사적인 현실로 바라봐야한다는 시각이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한국의 노동권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전략을 고민할 때입니다. 서구등 소위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이 다 허용했으니 허용되어야하고, 그리고 서유럽적 모델을 당연시하는 것부터 달리 봐야합니다. 한국에서 노동권이 어떻게 출현하였고 어떤 맥락과 조건속에서 지연되거나 확장되었는가는 이 나라 노조운동과 좌파운동의 ‘역사적 현실”이고, ‘제도와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권의 역사는 어떠했을까요? 어떻게 87년이후 ‘노동법체제’는 만들어지고 진화했을까요? 이 나라는 과연 어느 정도로 헌법으로부터 노동법, 시행령, 규칙까지 노동권을 성문화하고 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식을 통해서 ‘노동의 시민권’, 즉 노동에 대한 ‘인정’을 하고 있을까요? 한국의 민주화이행이후 민주주의와 노동의 관계를 노동의 시민권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청서 및 상세 소개문(클릭) : https://bit.ly/제3기_민주주의와_노동학교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주최하는 3기민주주의와 노동학교 2강이 “노동권의 역사: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라는 제목으로 10월22일 오후2시 3시간동안 열렸습니다. 1강보다 더 많은 인원이 대면 참석과 비대면 수강으로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사인 권영숙 노동사회학자는 항상 그의 강의가 그러하듯, 2강 주제도 몇 가지 현실의 예시를 통해서 문제를 던지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자유 자유”선언입니다. 그에게 자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임명한 경사노위위원장 김문수씨가 언급했던, “재산권과 노동권이 충돌하면 재산권도 중요하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예시를 통해서 권리의 가장 본질적인 장애이자 예민한 장소가 드러납니다. 재산권과 노동의 시민권은 “가장 첨예하고 예민한 문제”입니다. 강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재산권과 노동권 간의 문제는 “권리의 충돌인가, 아니면 가치의 충돌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의 충돌인가?” 혹은 “우리는 ‘권리연대(동맹)을 만들어야하는가, 아니면 이해동맹을 구축해야하는가? 그리고 권리의 장소는 어디인가? “
2강 강의는 이 질문에 대해 풀이하기 위해서 노동의 시민권이 자본주의하에서 쟁투하며 정립하는 과정을 계급투쟁의 역사와 노동법의 등장을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요즘 회자되는 권리의 분화, 교차성, 충돌, 연대의 가능성은 사실 19세기 노동권 등장에서부터 문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권리는 인권 대 시민권/ 시민권 대 노동의 시민권/ 자유권 대 사회권의 분화 분리 긴장 충돌의 소용돌이를 거쳐야했습니다. 그리고 핵심은 노동계급의 존재와 그 존재의 인정의 문제, 따라서 노동의 시민권을 ‘인정’하는 문제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는 민주주의와 노동의 ‘타협’과정,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융합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도 노동계급(운동)도 자기 변화하였습니다. 그건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강사는 이를 1791년 만들어진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최초의 노동법이 ‘반노동법’으로 출발했다는 점,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계급투쟁, 그리고 참정권 확보이후에는 ‘민주적 계급투쟁’을 통해서, 집단적 권리로서 노동의 시민권을 주장했습니다. 서유럽 착취적 자본주의의 번영, 러시아 사회주의혁명등 외부적 요소도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 타협’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마지막은 인권의 ‘국제화’와 사회권의 대두를 통해서 어떻게 노동의 시민권이 ‘인권화’하고 ‘인권체제’로 포섭되었는지 할애하였습니다. 마샬의 사회권이 국제인권규약으로 구체화된 과정은 국제노동기구의 형성과정과 함께 했습니다. 국제인권규약들과 노동권관련 국제 규약들을 일목요연하게 훓어본 것도 수확이라고 봅니다.
자유주의적 시민권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노동의 시민권이 국제 규약으로 정립되었지만,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이념적이었습니다. 냉전체제의 형성, 서유럽 사민주의의 체제내화, 노동조합운동의 이익집단화는 그 귀결이었습니다.
이제 그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노동의 시민권이 가지는 양면성을 어떻게 잘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이 학교 주제가 관통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라고 봅니다. 3강과 4강에서 한국의 노동권과 노동법체제, 그리고 현재의 노동의 시민권에 대한 강의에서 더욱 구체화할 것입니다.
2022.10.2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2강이 2022년 10월 22일 (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 노동권의 역사: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라는 제목으로 열립니다. 대면 및 비대면강의입니다.
1강 강의는 노동권의 ‘개념의 역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노동권이 왜 노동계급에게 특수하게 주어지는 시민권인가를, 이론적 논의와 역사적인 개념의 탄생을 통해서 알아봤습니다. 2강은 노동권의 역사적인 형성 변화 과정에 대한 강의입니다. 제목이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라는 심상치않은 제목입니다.

2강. 노동권의 역사: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 (10/22)
–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시민권 개념의 대두와 변천
– 최초의 노동법과 노동3권의 제도화 과정
– 사회권과 계급투쟁
*읽을거리: 권영숙, 2020. “한국 노동권의 현실과 역사: ‘노동존중’과 노동인권에서 노동의 시민권으로”, <산업노동연구> 26권1호. 227 – 232쪽

다음은 2강 강좌에 대한 강사의 말입니다.

” 윤석열대통령이 지명한 경사노위 위원장 김문수씨가 10월13일 경영자총협회를 찾아가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재산권도 중요”하고 “현대 민법의 소유권 절대 원칙이 있고, 소유권을 침해하게 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며 격렬하게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김문수씨는 아주 솔직한 사람입니다. 한국 노사분규에 대한 법적 판결문을 보면, 이런 근거로 판결을 내린 경우가 허다합니다. 김문수씨의 말과 반대로 과연 노동권은 재산권을 넘어서는 시민권일 수 있을까요?

재산권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권’중 하나입니다. 즉 사적 소유의 자유. 노동권을 자유권적으로 이해하면 결코 재산권, 사적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노동권은 자유권의 한계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태동하고 확정되고 확장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르조아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의 역사적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노동계급의 투쟁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계급타협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자유권적 권리 개념에 대한 대항적 개념으로 정립되었지만, 재산권과의 관계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민주적 계급투쟁의 결과가 노동계급의 개량화로, 제도적 포섭으로 이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동권의 3세기에 걸친 변동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노동권을 주장하고 옹호하고 확정하고 확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노동이 화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계급투쟁과 노동의 시민권 형성이 교차하고 접점을 만들었습니다. 계급투쟁과 소위 ‘사회적 연대’의 논리가 충돌하고 융합했습니다. 노동권이 역사적인 개념이자 역사적인 현실이라고 제가 말한 이유입니다.
한국의 노동권 체제를 이해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실천하는데, 서유럽에서 시작된 계급투쟁과 노동의 시민권의 동학이 ‘학습’의 교훈이자 타산지석이 되길 바랍니다

– 권 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사)

신청서 및 상세 소개문(클릭) : https://bit.ly/제3기_민주주의와_노동학교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주최한 ‘3기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가 10월 8일 서울시NPO센터에서 개강식과 함께 1강 강의를 열었습니다. 1강 주제는 “노동존중의 의미와 노동권 개념”이었습니다.
개강식은 뜻깊었습니다. 2013년 2기 학교를 연 후 2019년에 기획했던 학교를 코로나19로 인해 2년 더 연기하여 2022년 3기 학교를 열었습니다. 2012년 6월 “한국의 노동현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3강을 열었고, 2013년 8월 “87년 민주화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형성에서 전환까지” 주제로 4강을 열었더랬습니다. 올해 3기의 대주제로 잡은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은 현재 노조운동과 변혁운동의 가장 큰 쟁점이자 과제입니다.
부제에서 시사하듯,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 장애를 넘어서는 노동권의 새로운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어떻게 노동권을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급진화하여,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는 한달보름의 대장정입니다. 개강식에서 강사를 맡기로 한 권영숙 대표는 이런 문제의식을 조심스레 공유하였습니다.
개강식에서 대면 및 줌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25명 정원이었으나 한차례 인원 늘리고 비대면 신청을 더 받은 결과 근 2배에 달하는 인원입니다. 노조간부, 노조 조합원, 투쟁 노동자, 노동연대자, 공부하는 학생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신청했습니다. 수강자들의 노동과 투쟁의 경험 역시 학교 강의의 중요한 교재이기도 하고, 공유할 집단 학습의 결과물로 녹여지길 바랍니다.
1강 강의는 노동권의 개념, 역사, 현실등 3차원중에서 개념과 그 ‘개념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강사는 줄곧 노동권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역사적인 개념이자 현실이며,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담고 있는 논쟁적인 개념이라고 강조하고 노동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개념적 급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동계급, 노동조합, 파업, 그리고 노동권이 모두 자본주의시대에 등장한 ‘발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권, 시민권과 분리된 독자적 개념과 현실로 ‘노동권’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이들 권리의 분화와 권리들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이 핵심적인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인권과 완전히 구별되며, 일반 시민권과도 독자적으로 분리되는 ‘노동의 시민권’에 대해 이론과 개념, 자본주의 현실을 통해서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의 시민권으로 노동권을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실천하는데 중요한가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들어 강의했습니다.
결국 “노동존중”이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용어는 노동이라는 계급적 존재의 인정, 그들의 집단적 시민권의 인정,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힘과 결사의 인정이라는 ‘3가지 인정’의 문제로 구체화됩니다. ‘노동존중’을 사회과학적인 정의로 구체화할 때, 노동존중의 제도적, 정책적, 체제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함의도 더했습니다.
강의이후 수강자들은 활발하게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 본인들 노동현장의 고민들을 투영하면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장애인 돌봄 노동자는 노동존중이 ‘자본’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이 때 ‘자본’은 무엇인가?를 질문했습니다. 공무원노동자는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 왜 노동시민권의 일부가 아닌지, 노동권 쟁취의 후순위여야한다고 강사는 말했는지 질문했습니다. 질문들은 다양했고 모두 의미심장했습니다.
이는 뒤풀이로 이어져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계급과 젠더의 충돌, 가사노동의 의미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마 4강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겠지요. 강사의 바람대로, 노동권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나 노동운동의 기본 시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길 바랍니다.
다음 2강 ” 노동권의 역사: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 (10/22)” 에서는 1강에서 설핏 등장했던 노동권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노동’학교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속에서 ‘노동’의 갈길에 의미있는 행보가 되길 바란다고 강사는 덧붙였습니다.
2022. 10.1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022년 10월 8일 (토) 오후 2시부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1강이 열립니다. 장소는 서울시NPO지원센터 2층 주다홀입니다.
높은 관심으로 정원 25명이 빨리 찼고, 이후 추가인원 신청을 받았습니다만 이제 정원 마감합니다. 하지만 꼭 수강하고자 하는 이는 비대면 강의신청을 해주세요. 10월8일 1강을 열면서 소박한 개강식과 뒤풀이를 하려고 합니다. 비대면 강의 신청자들도 가능하면 첫 강의는 대면으로 참석바랍니다.

다음은 강의 대주제인 ‘한국 노동권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전략”의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1강 주제에 대한 강사의 말입니다.

*
“‘노동권’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논쟁적인 개념입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명하게 느껴지는 노동권을 아주 논쟁적인 개념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시각으로 노동권을 보는가에 따라, 노동권 쟁취를 향한 실천의 전략과 동맹전략은 많이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이론이 실천의 무기가 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개량이 혁명의 길목이 될 수도 있는 순간입니다.

이번 강의는 노동권을 개념, 역사, 현실이란 3가지 차원을 통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논지와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노동권은 개념부터 논쟁적이고 역사적입니다. 노동권의 역사는 인권과 시민권과 구별되어 독자적으로 정립되어온 과정입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적 계급투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에 대한 제도적 교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도적 포섭의 일부이기도 한 노동권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 급진화할 것인가? 우리의 최종 질문은 이렇게 실천적인 의문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 딜레마에 맞서는 계급형성과 동맹전략에 대해서 잠정적인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1강 주제는 “노동존중의 의미와 노동의 시민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리고 현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존중’을 말합니다. 노동자들도 노동존중을 말합니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노동존중에 대한 개념 규정을 시도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노동권이 어떻게 인권, 시민권과 다르게 이해하여야하는지를 그 개념과 역사적 출현과정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강은 ‘개념의 역사’에 대한 것이지만, 전체 강의의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입니다. 함께 기초를 놓아보도록 해요.강의 신청한 이들이 많아서 힘이 납니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이 좀더 많이 신청해주면 좋았겠습니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노동권을 당연시하거나 당연히 누리지만 사실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신청했으면 합니다. 특히 노동권이 ‘부여’되지 못한채 노동하는 이들이 노동의 시민권에 얽힌 투쟁의 역사와 명암을 먼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

– 권 영숙 (노동사회학자,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사)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아직은 초가을의 풍성한 마당의 정취를 보여주는 비전향장기수의 집 ‘만남의 집’을 10월2일 일요일 주말에 방문했습니다. 지난 6월 앵두 방문에 이어 세번째 방문입니다.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입니다. 마당에 선 우람스러운 호두나무에 호두 열릴 때쯤에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쯤이 추석명절쯤일 것이라 여겼는데, 추석은 훌쩍 지났네요.
사파기금이 비전향장기수의 ‘만남의 집’에 실질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의 일인데, 벌써 세번째 방문입니다. 왜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흥미로운가봅니다..
단 한가지입니다. 조국통일전쟁을 위해 남한에 오신 이들, 남한에서 빨치산투쟁하다가 잡힌 이들, 그리고 지하에서 변혁운동하던 이들, 그들은 모두 남한체제에 대한 반체제를 꿈꾸고, 단지 꿈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바쳐 투쟁하고 실천한 이들입니다. 이 사회의 변화와 변혁을 바라는 이들이라면 이들 선배 투사들과 혁명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연대의 시간을 가져야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인연 귀히 여기며 종종 뵐 것입니다.
사파기금이 방문한 주말 만남의 집은 호젓하고 풍성했습니다. 양희철, 김영식, 박희성 선생님 모두 건재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하필이면 양원진 선생만 허리뼈를 다쳐서 병원 입원중이었습니다. 두번의 방문때마다 병원 가료중이었는데, 걱정입니다.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이후 필요한 물품이 뭘까 생각하다가 꼭 필요할성 싶은 정종 2병, 배, 샤인머스켓은 맛보시라고, 그리고 약간의 제과빵을 사 갔습니다. 다행히도 다 좋아하시는 것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저출산과 쌀값하락, 현정권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양희철선생이 ‘북조선’의 “잉태부터 무덤까지” 복지에 대해서 언급하셨고, 권영숙 대표는 북한의 유아사망률을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입장으로 같은 얘기를 충분히, 그리고 상호 예의를 지키면서 건넬 수 있습니다. 남한의 운동하는 인사들도 이런 미풍을 좀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권대표는 말하더군요.
가져간 빵과 배 그리고 샤인머스켓을 나누고 다음 일정탓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라면 먹고 가라”며 잡는 말씀이 어찌 그리 정겨운지.. 집 마당에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서 가지째 감들을 몇 가지나 따서 안겨주셨습니다. 위험한 사다리를 타고 급하게 올라가셔서 아슬아슬했네요. 그렇게 정을 나누고, 생각도 나눈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역사속에서 갈등과 긴장 충돌에도 불구하고 남는 무엇인가를 아끼고 연대하면서 잘 남길 수 있길 바랍니다.
2022.10.0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9월 29일 대표와 위원들이 함께 세종호텔 노조 문화제에 오랜만에 참석했습니다.

명동을 가로질러 가면서 상황을 파악했는데, 명동은 서서히 활기가 살아나고있더군요. 이전 코로나19이전에 중국 일본쪽 관광객들 일색보다는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이전에 명동 근처에 잘 가지 않던 한국인들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겉보기에 흥해보이는 명동을 지나 세종호텔 간선도로로 접어들자, 외관이 시꺼먼, 도로변 쪽 창들은 일제히 불 꺼진 호텔이 보입니다. 이것이 지금 코로나19가 서서히 종식되고 있다는 상황 가운데, 세종호텔의 현주소입니다. 일하는 노동자들을 모두 정리해고한 호텔의 현재 모습입니다.

노조를 파괴하면서, 호텔 간판을 유지하고 명동 금싸라기 땅으로 언제든 호텔을 열기도 하고 팔아치울 수도 있는 ‘자본’, 그것이 세종대학교를 경영하는 교육자본의 ‘교육외 사업’입니다. 그리고 교육부는 교육사업을 위한 경비 마련을 위한 이런 식의 호텔 경영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습니다. 대학교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자원’으로 운영되고 교수들 월급 주는 것도 참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고리대금업을 한다고, 전쟁기업에 투자한다고 유명 대학기금들, 하바드대, 컬럼비아대, 스탠퍼드대등 소위 명문대학교들의 자산 운용실태가 크게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없애버리겠다는 노골적인 적대적인 자세로, 경영하던 호텔을 명동 한복판 어둠의 지대로 남겨두고 노조와 시간 싸움을 하는 한국의 세종대학교 자본 역시 부끄러움을 모르는 교육자본입니다.

어쩌면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쫒아내는 대학자본이 고리대금업을 하고 전쟁기업에 투자하여 미국내에서 크게 두들겨맞은 대학자본에 비해서 더 나쁜데 말이지요. 스스로 직접 피를 묻히며 ‘사회적 학살’인 정리해고를 단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노조의 해고자 복직투쟁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아닌게 아닙니다. 세상을 자본 천국으로 만들어 자본가들의 일방적인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어떤 식의 노동의 저항도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일부가 됩니다.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았든.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통해서 이 투쟁 너머 ‘세상’을 향해 투쟁하는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기르고 함께 하길 바랍니다.

최도은 가수가 세종호텔 문화제에 처음 나와 노래를 연신 4곡을 불렀습니다. 마지막에 외국 관광객들도 있으니 라며, <인터내셔날>가를 4절까지 불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맛집이라는 닭볶음탕집에서 저녁 나누며 많은 얘기도 나눴습니다. 그에게도 건투!

2022년 제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를 10월8일(토요일)부터 격주로 4회 진행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이 시대의 핵심적인 노동의제를 선택하여 집중적인 연속강의로 채우는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를 무려 7년만에 개최합니다. 이번 학교의 주제는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미래 방향과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입니다. 노동권에 대한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이론적 검토를 시작으로, 노동권의 현실 진단, 그리고 노동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강의하는 이번 학교 수강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22년 제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노동운동의 동맹 전략:
권리의 유보, 배제, 해체의 3중 장애를 넘어서는 노동권의 새로운 인식

강사: 권영숙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일시: 2022년 10월8일 – 11월19일 토요일 오후 2시-5시 (격주 4회)
– 장소: 서울 NPO지원센터 2층 주다홀 (중구 남대문로9길 부림빌딩)

<신청안내>

– 아래 신청서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 완료하면, 입력하신 전화 문자로 강의진행 안내문 및 교재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구글 신청 URL https://bit.ly/제3기_민주주의와_노동학교
– 수강료 : 전강 40,000원(개별강의 10,000원), 해고노동자, 학생 전강 20,000원
– 입금 계좌: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사회적파업연대기금
– 문의 sapafund@gmail.com

<강의 소개>

* 강의 방식:

– 강의는 4회 격주 연속 강의로 진행되며, 매 강의는 하나의 종합적인 문제의식으로 상호 연결되므로 전강 수강을 권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 일부 강의 수강 가능합니다.
– 강의는 대면 강의와 비대면 강의를 병행합니다. 가능하면 대면강의를 권하며 대면강의 인원 25명이 채워지는 경우 비대면 강의를 수강하게 됩니다. 수강 신청서에 대면 혹은 비대면 강의 체크해주세요.

* 필독 논문: 권영숙, 2020. “한국 노동권의 현실과 역사: ‘노동존중’과 노동인권에서 노동의 시민권으로”, <산업노동연구> 26권1호: 217-269

* 강의별 주제
1강. 노동존중의 의미와 노동의 시민권 (10/8)
– 노동존중 개념과 인정의 문제
– 인권, 시민권, 그리고 노동의 시민권의 차이
2강. 노동권의 역사: 시민혁명에서 민주적 계급투쟁으로 (10/22)
–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시민권 개념의 대두와 변천
– 최초의 노동법과 노동3권의 제도화 과정
– 사회권과 계급투쟁
3강. 한국 노동권의 변천사 (11/5)
– 한국 헌법과 노동3권
– 노동권의 법과 현실
– 해방이후 노동권 변천사 3단계
– 국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4강. 한국 노동권의 현주소와 ‘3중 장애'(트릴레마) (11/19)
– 노동존중과 노동차별의 관계
– 노동권의 3중 장애: 권리의 지연, 배제, 그리고 해체
– 노동의 고립과 배제, 분단을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와 동맹전략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쁜소식 4호]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 <사파동행> 4호가 2022년 9월13일 오늘 발간되어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되었습니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CZavSvMV8nQXmukwX56wPVhBj3TQy2U=

<사파동행>을 이메일로 직접 받지 못한 이들은 위 URL을 클릭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식지 하단에 위치한 구독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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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파동행> 4호는 소식지의 제목 그대로 사파기금이 노동과 함께 하는 동행을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로 연대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이번 호 [연대자의 글]을 꼭 보세요.
권옥자 청주시립노인병원 노조분회장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글을 “사파기금의 연대, 청주노인병원노조의 분투기” 라는 제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권분회장은 “여름날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같았던 사파기금의 연대!”를 기억하고, “내 투쟁의 역사가 또다시 싸워나갈 동지들께 외롭지않고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메세지가 되어 줬으면…”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권분회장 특유의 뚝심과 열정이 서린 필체로 기록한 투쟁과 연대기입니다.

= 지난 7월과 8월 여름 뜨거웠던 사파기금의 연대와 동행 소식도 담았습니다.
7월23일 10차사파작은희망버스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51일째 파업을 엄호하기 위해 희망버스와 함께 도착했습니다. 사파기금이 현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소식도 읽고, 대우조선파업의 의미에 대해서 기자회견에서 권영숙 대표의 발언, 현장 후기를 읽어보세요.

= 또한 8월에는 파업참가자 42명을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해고한 대우조선해양에 항의하는 김형수지회장의 국회앞 단식 농성장과 대우조선 철창안에서 단식농성후 병원입원중이던 유최안 부지회장도 방문했습니다.

= 노동자 파업에 사회적연대는 멈춤없이 계속되어야합니다!
사회적 연대가 더이상 간헐적이고 일회적이고 사건적이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더 굳건히 하는 지속적인 집합행위에 가담해주십시오. 소식지에서 기금 참여방법을 확인하고 지금부터 함께 해주세요.

= [기쁜 공지]
2022년 ‘3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를 드디어 7년만에 열게 됐습니다. 이번 강의 대주제는 ‘한국 노동권의 역사, 현재, 그리고 방향과 노동운동의 전략”이고 10월8일부터 격주 4회로 열립니다. 많은 관심과 신청 바랍니다. 이후에 신청공고를 확인해주세요~

2022.9.1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노조를 만나고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조파괴 전문가를 영입한 자본에게 짓밟히는, 그래서 지키고자 노력했던 병원의 폐원을 맞고 100명의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빼았기고. 청주 시청앞 공원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빼앗기고 비닐막으로 버티면서, 투쟁을 위해서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로 날마다 선전전.집회.단식.삭발등 할 수 있는 그 모든 수단을 다해도 폐원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의 불빛이 보이지 않고. 실업급여도 끝이 나고 함께 하던 동지들이 힘들어  하나하나 농성장을 떠나 60여명이 남았을 시점에 무엇이든 해야 되겠는데 할 수 있는게 없구나 하고  막막하고 절박한 즈음에 받았던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님과의 통화.

잘 싸우는 청주시노인병원 노조(그 때는 이 명칭)에 사파기금을 지원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 지원금의 액수보다 지역에서 아는 단체가 아닌, 먼 서울의 생소한 곳에서 우리의 투쟁을 정당하고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 엄청나게 큰 지원군 같았습니다(사실 전단지 하나 피켓 하나도 중요했던 만큼 액수도 어마어마하게 컸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응원군의 박수에 승리까지 안 가면 절대 안될 것 같은 책임감도 따랐습니다.

두 번의 지원과 서울 상경집회에 조합원들과 참석하고 귀향하는 버스를 어느 도로가에 잠시 세우고 카키색 침낭 전달식을 한 장의 기념사진으로 대신하고 돌아와 다른 투쟁에 많이 사용했던 허름한 침낭속에 누워 농성장 지킴이 당번을 하던 조합원이 비로소 새 침낭속에 누워서 감격해 하던 그 순간의 감정을 지금도 현장에서 농성장 투쟁의 역사에서 추억의 일순위로 사파를 말합니다.  저 역시도 다시또 싸워야하는 이유를(핑계인가?)다짐했구요.

860일의 투쟁을 승리로 현장에 돌아갔지만 그 길은 꽃길만은 아니더라구요. 날마다가 전투입니다. 다시 청주병원을 위탁받은 회사는 지역의 여론과 끝까지 투쟁으로 맞서는 노조원들때문에 현장 복귀는 받아들이지만 노조는 용납 못한다는 기조여서, 협약식 하루전날 밤까지 병원측이 노조 분열을 공작하고 작업하는 바람에, 조합원 이름으로 당당히 복귀하겠다는 명단에는 23명만 남는 기막힌 상황이었고. 물리치료실은 열지않겠다는 운영방침에, 가장 이쁘게 끝까지  함께한 치료사 조합원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회사를 떠나고. 이런저런 조건에  실질적 복귀 조합원 수는 14명.

애초에 조합원을 현장에 복귀시킨다는 것은 기관에 대해 보고용이나 대여론전이었고. 탄압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용자측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14명의 조합원이 오직 밀리지 않고 버텨서 현장을 지키는 것이 최대 목적이 되었습니다. 기회가 오면 다시 노동조합을 반듯하게 세우고 당당히!

사실 작은 대오이다 보니 오히려 단결은 잘 되더라구요^^

정리해고 철회시키고 현장에 복귀한 후 꼬박 4년의 세월동안 노동조합의 기상과 필요성을 심어주는 여러 일상의 투쟁들. 바로 최저임금 찾기, 연차.법정공휴 챙기기등등. 사실 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도 그마저도 챙기지 못하는 노동현장이 많습니다. 본원인 청주병원 직원들은 그 때까지 이런 기본적인 법적인 권리를 못 찾아먹고 있었고, 다행히 우리 노조의 투쟁으로 덕을 본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노조가 노동현장에서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4년의 병원 위탁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위탁업체로 지금의 솔트의료재단이 선정되면서, 시작도 되돌이표 같은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노사협의회를 장악한 노조가 주도하여 직원들의 고용 보장을 받아내고 외주화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노조의 중요성을 절실히 실감한 직원들이 한 번에 60장의 조합 가입서를 써주면서  힘을 실어주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단체협약을 기어코 받아내었고 부족하지만 750시간 타임아웃제를 받아내어 짫은 노조전임자 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부장인 나는 전임자로서 활동기간동안 갈 수 있는 투쟁 현장은 다 가고싶은 심정으로 거의 매일 현장과 집회로 채워져 지쳐도 지금 행복합니다.  그리고 기존 복귀 조합원과 이전 투쟁을 접해보지 못한 신규 조합원들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기존 조합원들은 투쟁 농성장을 지킬 때 막막함에 지칠 때 어느 지나가는 과객 같은 분이 비닐막에 들어 오시어 노래한곡 부를까요? 하시더니,  부용산(재목이 맞은가?)을 참으로 생소한 음절(우린뽕짝.아님투쟁가)로 불러주시고 가시고 힘들게 투쟁하는 유성동지들은  천막철거당하고 허망해 할때  시청공원을 삼겹살 파티장을 만들고. 더위에 뜨거운 비닐막 안에서는 아무 것도 못해 먹을 때,   화물(체리브러)동지들은 대형솥을 설치해서 삼계탕을 끓여서 함께 나누었고. 사파의 작은희망버스로 오신 연대자 분들은 시청 공원을 장악(?)한 집회를 열어주고 함께 힘내자고 찾아온  아사히.삼척의 동양시멘트. 엄청 이쁜 (?)내 얼굴을 열심히 그리시더니 참 이상하게 투쟁에 찌든 아줌마 하나 그려놓으신 동수 샘~~ 다른 조합원들은 다이쁘게 그려주셨지만..ㅋ

한 분 한 분의 연대가 싸우는 우리들의 가슴에 불이 되고 양식이 되어. 투쟁의 확고한 명분을 심어주고 의지를 키워주고 용기를 나게 했다는 것은, 싸워보고 연대를 받아본 노동자는 다 알리라 싶습니다.

특히 많은 연대자들중에 사파 연대자분들은 저로서는 참 신선한 그 어떤 ..기분좋은 것이었습니다. 여름날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식혀줄 때 그 때  그 기분. 만나 뵙기도 했고 페이스북에서도 뵙고 함께 사파작은희버스로 춘천가는 기차도 타보고 할 때 느낀 감정을.

물론 싸우는 동지들도 많았지만, 배움도., 하시는 일도 모든 것이 우리랑 다른 환경 속에 계실 것같은 연대자 분들이 많고. 본인의 투쟁도 절박하고 힘들었는데 또 싸우는 동지곁을 지키고자 하시는구나 싶더라구요.

받은 것에 비해 아주 작은 액수로 그 참세상을  만들어 가시는 분들과 같은 연대자 대접을 받으니 민망하지만, 싸우고 지키고, 또 싸울 수 밖에 없지만 지쳐가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힘이 될 수 있다면, 이렇게 부족한 글도 써보고. 내  투쟁의 역사가 또다시 싸워나갈 동지들께 외롭지않고 혼자 가는 길 아니라는 메세지가 되어 줬으면 하는 맘으로  제 이야기를  전해주고, 당신만의 힘든  투쟁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라서 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은 맘입니다.

사파의 연대자 분들이 이 점만은 꼭! 알아줬으면 싶고, 꼭! 한 번은 연대받은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을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 엄청 멋진 분들과 한 대오에 서서 저도 사파 연대자라 불리는 기분 좋은데요.

현장에서 사파를 접해 보지못한 신규 조합원들께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다고 알리느라 근무시간 중간에 뜬금없는 사진도 찍고 모든 조합원들이 사파기금에 보내는 엽서를 담은 피켓을 만들고도 해봅니다.

더 나이들어도 함께 하도록 노력하고 살아볼께요. 사파작은희망버스타고. 춘천으로 가는 사파 작은희망기차도 함께 타고 사파산행으로 남한산성도 걸어보고~~^^

존경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연대자분들~

어제는 아주 반가운 손님이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6년만의 외출”이라고 합니다.
청주시립노인병원 권옥자 분회장이 사파기금을 방문했습니다. 권분회장과 청주노인병원노조 조합원들, 그리고 사파기금은 끈끈한 연대를 이어왔습니다. 2번의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청주노인병원의 폐업한 문을 열게 만든 노조투쟁의 지도자 권옥자 분회장입니다. 이정도 투쟁을 했으면 포기하거나 돈에 합의하는게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를 다 뿌리친 뚝심의 노조와 분회장입니다. 하지만 버텼고 가장 어려웠을 때 사파기금이 연락을 했다고 신기하다 하십니다. 기금2회 지원했는데, 그 때마다 참으로 어떻게 필요한 때 지원을 했냐고 감탄하십니다. 그 돈을 정말 소중하게 파업기금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파 작은희망버스를 조직해서 청주시청 앞마당을 점거하고 집회를 열었죠.
그리고 청주노인병원은 시청 직영은 되지 못했지만 노사합의하에 고용승계하고 노조와 조합원들은 다시 병원 일터로 들어갔습니다. 회사와 현장은 적대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탄압 에피소드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2년을 교활하고 지능적인 탄압을 견디고 3, 4년째 드디어 신규 조합원들이 들어왔습니다. 복직당시 조합원으로 남은 이는 9명, 나머지 모두 신규조합원들, 합쳐 현재 56명이고 단협을 체결했습니다. 타임오프로 노조 전임자 700여시간도 확보했습니다.
권옥자 분회장은 이렇게 노조를 사수하고 조직의 목표를 실천하기위해 6년동안 내부 투쟁과 조직화에 진력을 다했습니다. 연대를 너무도 다니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합니다. 6년이 지나 이 목표를 달성하고, 권분회장은 사파기금에 가장 빨리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지난 7월23일 대우조선 파업현장 희망버스때 거제도 공장앞에서 사파기금 깃발과 권영숙 대표를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6년만의 외출’로 어제 사파기금이 작년 얻은 새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사파기금에 간다고 하니 9명의 투쟁당시 조합원들은 사파기금과 함께 했던 ‘투쟁의 기억들’을 생생히 떠올리며 함께 나눴다고 합니다. 신규 조합원들은 투쟁과정에 함께 했던 사파기금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한후, 각자 사파기금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기로 했답니다. 엽서를 직접 도안해 만들고, 근무중 바쁜 조합원들과 위아래층 뛰어다니며 이렇게 각자의 메시지를 쓴 육필 엽서입니다. 그 모습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어떤 편지보다 감동적입니다. 한번 열심히 메시지를 읽어보세요. ~
그간 소식을 일일이 얘기 나누지 않아도, 6년간 적대적인 현장에서, 투쟁후 복귀한 노조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지 압니다. 그러나 뚝심과 집요함으로 청주노인병원 노조를 다시 반석위에 세웠습니다. 복직한지 한달이 안된 아시아나케이오 김계월지부장도 함께 하며 청주노인병원의 사례를 통해 ‘복직후 어떻게 노조는 투쟁하고 조직해야하는가’를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계월지부장도 복직후 인사차 방문이라 “힘내라! 사파”라며 비타민C 음료를 가져오셨네요.
진짜 투쟁은 어쩌면 현장 복귀이후에 시작됩니다. 사파기금을 지원한 수십개의 사업장 투쟁들이 사라졌고 패배하기도 했고, 복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직후에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조직을 확대하고 회사에 일상의 투쟁을 끝없이 진행하며 이렇게 매일 매일 이기는 투쟁을 실천하는 노조는 많지 않았습니다.
사파기금은 어제 참으로ㅡ’뿌듯함’이라는 단어로 충만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이 뿌듯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파기금과 함께 노동연대에 나서주세요.
2022. 8.2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8월22일 여의도 국회 정문앞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지회장 홀로 단식농성장에 연대 방문했습니다. 권영숙 대표와 홍호석위원이 함께 했습니다.

7월22일 51일간의 대우조선 파업을 종료하면서 조선해양과 하청업체들이 ‘폐업시 고용승계’ 하기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합의하고 파업을 종료하자마자, 하청업체 2곳이 폐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11명과 32명이 각각 해당되는데, 이들이 모두 대우조선 파업에서 마지막까지 대오속에 있던 파업참가자들입니다.

원하청 업체들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자 7.23 희망버스 오기 전날 교섭 합의에 응했습니다. 노조는 30% 임금인상을 크게 양보하는 대신, 노조를 교섭 상대자로 인정하고 파업 참가한 노동자들에 신분 제약을 가하지 않는 것에 합의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원하청업체는 보란듯이 합의직후에 파업참가자가 있는 두 곳의 업체를 ‘폐업’했습니다. 하청업체들은 폐업하여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다시 다른 간판의 회사를 차리면 그만입니다.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은 51일간 파업으로 현장 복귀하였지만 심신이 지쳤고 이 도발에 맞서 투쟁을 재개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파업대오 일부인 42명은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해고당했습니다. 회사는 비열하게도 이 점을 악용하여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고, 노조의 대응을 ‘간보기’하려 합니다. 지독한 자본입니다. 대응해야합니다.

이에 언제 체포될지 모를 김형수 지회장이 서울 국회앞에서 단독 단식 농성을 시작하여 이날 5일째였습니다. 5일 지났는데, 벌써 얼굴이 홀쭉해졌습니다. 관심 가져주십시오!

노동자 파업에 사회적 연대는, 일시적이지 않아야합니다. 자본의 끈질긴 탄압과 국가의 ‘친자본’적인 협조는 일시적이지 않은데 왜 사회적 연대는 일시적이고 주관적이고 간헐적입니까!
대우조선 합의가 어떻게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 지켜보고, 노조가 다시 투쟁할 힘을 복원하도록 시간과 사회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연대가 더이상 간헐적이고 사건적이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더 굳건히 하는 지속적인 방법과 집합행동에 가담해주십시오. 사파기금에 참여해주십시오.

2022.8.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 참여
계좌(자동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CMS신청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유최안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의 모습입니다.
지난 8월12일 녹색병원에서 재활치료중인 유 부지회장을 병문안 연대 방문했습니다.

1미터도 못되는 케이지 안에 자신의 몸을 가두고 용접해버린 조선소 용접 노동자 유최안. 그의 형형한 눈빛, 세상을 향해 쏘아붙이듯 말을 붙이고 항의하는 그 시선이 이번 대우조선 파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몸 자체가 파업의 상징이 되고, 사회적 연대를 촉구하는 전령이었습니다.

철창을 벗어나 병원 환자복을 입은 유 부지회장을 병원에서 만났는데, 몸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정말 빠른 회복력을 보이는 건강한 노동자였습니다. 여전히 무릎등이 좋지 않고 긴 시간 집중하여 대화하는 것은 무리다 싶지만 곧 건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합니다.

투쟁의 결과에 대해서 그는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대우조선뿐 아니라 거제도 조선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줄곧 패배해왔다. 패배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때문에 이번을 설사 패배로 여기더라도 파업 핵심대오 150명으로 불어난 우리는 이미 일보 전진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조선소는 투쟁할 거리가 수없이 많다. 빼앗긴 임금을 되찾기부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조선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불만을 가진다, 싸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우리의 노조의 힘, 파업을 할 근거가 돼줄 것이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들이 이 입장에 동의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빠른 시일내에 사회적 연대를 해야할 곳으로 거제도를 바라볼 날이 올 것입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입니다.
건투를 바랍니다!
끝까지 함께 !

2022. 8.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거제도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현장에 지난 7월23일 10차 작은희망버스를 띄웠습니다.

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은 6월2일 시작하여 무려 51일간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조선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첫 공장 점거 전면파업이었고, 대우조선 35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도크의 배 진수식을 막아냈습니다. 또한 이 파업은 가장 열악한 조선소의 근무조건을 견뎌온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간 자본이 빼앗아간 임금인상 30%를 요구하며, 사라진 임금인상투쟁을 감행한 파업이기도 합니다.

파업대오는 실제로 전체중 3분의1, 조합원150명이 끝까지 남았고, 윤석열대통령이 파업을 끝내겠다는 협박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오히려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전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대우조선내 차별받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상태가 알려졌습니다. 용접공 유최안 부지회장이 1미터도 안되는 케이지안에 자신을 가둔 극한적인 농성, 배의 진수를 막아선 6명의 도크 벽 고공농성으로 파업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공장전체 파업을 하기엔 힘부족인 노동자들이 택한 극한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올 것이 왔다라는 판단으로 진행했고, ‘준비된 파업’을 한 것입니다. 2014년부터 파업을 준비하는 노조를 만들었고, 대우조선 단위 사업장을 넘어서는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구호를 내놨습니다. 모든 조선소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 30%인상! 그리고 지역 노동조합 인정!

51일간의 파업속에서 노조가 희망버스 발진을 요청했습니다. 사파기금은 6월23일 성명서를 시작으로, 6월28일 5백만원 기금지원, 7월13일과 7월22일 권영숙 대표의 [사파시평] 참세상 게시등을 통해서 이 파업투쟁에 집중적인 지원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파업을 엄호하는 희망버스를 하루빨리 띄워야한다는 주장도 냈습니다.

[사파작은희망버스]를 발진하려고 했고, 7월23일 희망버스 전체대오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연대자버스’로 이름지었고, 대우조선 파업을 계기로 새로운 얼굴들이 노동자 투쟁으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오르길 바랬습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한 희망버스가 2022년 딱 11년후 비정규노동자들의 새로운 희망을 모으는 연대운동의 계기가 되길 바랬습니다.

7월22일 협상타결로 파업이 종료되었지만, 파업의 요구사항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이 못싸워서가 아니라, 파업을 엄호하는 민주노총의 계급적인 대오와 사회적인 연대가 부족한 가운데 파업의 결과는 확정지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이 공장안 대중파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조건속에서 극한투쟁을 해야했던 것은 노조운동과 사회운동, 연대운동의 지지와 엄호가 그만큼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사파버스는 자체 프로그램으로 버스안에서 권대표의 ‘현정세와 대우조선 파업의 의미’ 발제로 1987년 대우조선과 2022년 대우조선 파업의 역사성, 조선업종의 상황과 비정규노조운동의 성격,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과 현정세에 대해서 듣고 토론하였습니다. 새 얼굴들이 사파버스를 타길 바랬는데 규모는 적지만 새로운 연대자들입니다. 다양한 각자의 경험과 기억속에 노동자연대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틔우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전체 집회에 사파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집회가 길어지면서 오후 5시에 ‘전국 사파연대자 모임’을 따로 진행했습니다. 김형수 지회장이 집회 종료가 안돼서 불참하였고 이김춘택 사무장이 노조와 사파연대자간 간담회에 참석하여, 여러 궁금증에 대해서 솔직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옥포공원에 있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기념비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시간 부족으로 서울로 버스를 내달려야했습니다. 다행히 목표 시각에 도착하여 헤어졌습니다.

헤어지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사파작은희망버스의 사회적 약속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노동에 대한 상시적 사회적 연대로 사회적 파업기금을 모으는 것은, 앞으로 조선하청지회의 제2의 파업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또 주목받지 못했던 많은 노동자투쟁에 더 많은 상시적인 연대가 필요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세상을 향한 사회적 연대!
사회적파업연대기금과 함께 사회적 연대에 나서주시길.

2022. 7.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왜 우리는 관망합니까? 평론가들만 넘칩니까?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라는 실천을 하고서 그 결과를 두고 선거 직후에는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다음 투표 때까지는 분석하고 설전하고 원망하고 책망하고 자책합니까? 투표 말고 다른 실천, 다른 행동을 해야만 선거의 결과도 바뀌는 것 아닌가요? 말만 번드르르한 ‘일상의 실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여기에 답 하나를 내보려고 합니다.거제도 옥포만에서 이제 51일째 파업 중인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파업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비정규노동이 가장 천대받으며 노동집약적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파업입니다. 아무리 비정규노동이 공장 내 생산 노동자의 다수가 돼도 그들 다수를 천대하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그들의 노동력을 후려칩니다. 필요하면 더 쓰고, 필요 없으면 더 많이 자릅니다.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가 절반에 육박합니다.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으로 요술을 부리는데 정규직은 모른 체 묵인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절대임금 많이 받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사용하는 현장의 연장과 공구도 다릅니다. 연차 10년, 15년 된 숙련 조선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으로 임금이 차별적이라면서 노조가 임금 인상의 주범인양 몰아가는 자본의 논리는 비정규직은 아예 조사대상에서 뺀 결과입니다.  이것이 199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자리 잡은 ‘비정규노동’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도 아니고, 세대의 문제도 아닙니다. 남녀의 문제도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비정규노동을 만들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비정규노동은 가장 완벽하게 “교과서적으로” 실현됐습니다(이 표현은 저의 박사논문(2008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표현이고, 당시 미국의 교수 연구자들이 동의한 표현입니다).

노동을 갈라치고, 소수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타이틀을 주고, 노동과 노동의 갈등 속에서 자본의 이익을 가장 완벽하고 안전하게 구사해왔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은 이제 상시화됐습니다. 이들은 ‘불안정’, ‘일시적’ 노동자군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구별은 결국 능력과 세대, 젠더의 문제도 아니고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 탓도 아니며, 결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누구는 정규직으로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삽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의 이익만을 전일적으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대한민국만 한 국가사회(national society)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이 나라의 정치는, 그리고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자본을 ‘불안정 자본’으로 만들었습니까? ‘불안한 자본’으로 만들었습니까?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1987년 이행 이후 민주주의 정치는 자본의 공화국을 변혁하고 바꾸기는커녕 더욱 공고화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착각하고, 자본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이라고 여기고, 자본의 이익을 제3의 ‘공익’이라고 여겼습니다. 전문가들, 연구자들은 그런 착각과 허위의식을 만드는 이데올로그였고 나팔수였습니다. 최근 최저임금 책정과정에도 등장한 ‘공익’이라는 가치관이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정치와 국가 역시 자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삼았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의 파업을 두고 “전체 국민을 위해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접으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일개 조선소에서, 그것도 한줌거리도 안된다고 자부했을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전체 국민과 국가 경제를 말하다니. 언제 그렇게 비정규 노동자들의 힘을 인정했다고 이런 말들을 하는 건지.

이렇게 자본의 입장을 국민의 이익으로 전일화 해버리는 담론 속에서 과연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그건 대통령 스스로 헌법상 노동자의 시민적 권리를 깡그리 부정하는 언사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집단적 위력’의 행사로 만들어낸 노사 간 교섭이 진행 중인 마당에 폭력적인 협박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이 사회에 있습니다. 자본이 저들만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강변하고, 제도권 정치세력이 우익이든 자유주의 세력이든 정권만 잡으면 국민경제를 위해서 노동의 희생을 강요하고 노동권의 전면적인 보장을 유예하며 공익과 자본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흐름을 더욱 강조하고 공고화할 때 이 사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자본과 제도, 정책의 바탕은 사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인 것들(the social)’입니다.

사회 안에서 ‘국익’은 없습니다. 사회는 사회적인 구성물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인 것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인 힘들이 서로 길항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넘실대고 서로 동맹을 맺기도 하고 혹은 적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대한민국이란 사회는 이렇게 단원적, 아니 일원적, 아니 전체주의적일까요? 노동에 대해서만 유독 그렇습니다.

소수자들은 어려운 투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서고 있습니다. 노동은 조직노동이라는 이익단체로 제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노동은 더욱 갈지자이고 갈기갈기 찢어져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조직노동’이 힘을 얻을수록 ‘사회적인 노동’은 모호해지고,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더욱 전체주의적이고 단원적으로 굳어집니다. 노동 자체에 대한 이 사회의 시각은 오히려 후퇴중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단결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은, 아무리 조직해도 이익단체로 취급받습니다. 부문의 이익, 정규직의 이익을 넘어서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기득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 안에서 노동은 존중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이 사회가 ‘한국사회’입니까? 한국은 국가입니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가지 기본계급으로 구성돼 노자관계를 사회적 생산관계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결국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들은 자본이거나 노동자입니다. 중간계급들도 결국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생산관계 스펙트럼 위의 중간자적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의 압도적 다수는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회마저, 다양한 이 사회적인 집단들마저, 사회 안의 다수 세력인 노동자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정확히 계량하거나 산정하지 못할까요?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자본의 이익과 동일시하거나,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말하는 허위의식에 절어있거나, 자본의 이익을 공익이라고 강변하는 전문가 담론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반박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이 도도하고 오만한 흐름에 저항하는 이들과 한편에 서거나, 지지 발언을 하거나, 투쟁을 엄호하는 연대자로 나서지 못하는 걸까요? 어째서 사회적인 연대로 노동자의 투쟁을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들지 못하는 걸까요?

노동자의 투쟁이 개별화되고, 개별 노동자들의 이익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임에도 사회적인 투쟁으로 확대되고 ‘비화’하는 것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투쟁이 사회적인 투쟁으로 확대되고,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으로 가는 길이 봉쇄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담합, 이 땅의 선택받은 정치세력과 정당들의 노동배제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국가와 자본, 정당들의 이데올로기와 행위 앞에 굴복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사회와 사회적인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체 사회가 저항하는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 안에서 노동자 투쟁에서 한편이 되고, 노동자 이익을 국익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자본의 이익 앞에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와 정부, 보수정당을 비판하며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는 단일하지 않고, 사회적인 것들은 서로 분명히 충돌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거제도 옥포만 대우조선해양에서 거제통영고성지역 전체 조선소 노동자를 아우르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파업 중입니다. 대우조선 직접생산직 1,2000여 명 중 단 150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마지막까지 파업대오에 남은 이들이 대우조선에서 파업 중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파업을 두고, 어마어마하게 ‘국익’을 말합니다. 지금 대통령이라는 자가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말합니다. 언론과 교수들이 대우조선이 문 닫을 것처럼 말합니다. 원청과 하청업체가 대우조선 비정규노동자들이 회사를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우조선 정규직들이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을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어리석음이라니.

단 150명의 노동자가 이렇게 위력적이라면, 노동자 1만 명이, 노동자 10만 명이, 노동자 단 1백만 명이 제대로 뭉친다면, 이 나라 경제를 뒤집어엎고 싸그리 변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사회와 자본주의가 지금 거제 옥포만에서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공공연하고 노골적으로 ‘자기고해’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해방이후 산업화로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이 자본주의는 애초에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이 자본주의가 말하는 국익은 자본의 이익이라고. 하지만 부패하고 부유화되고 살찐 돼지마냥 자신의 이익만 고수할 뿐인 이 자본주의는 너무 허약해서 2500만 노동자들 중 단 1%의 노동자만 제대로 조직하고 정확하게 저항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고. 호들갑인지 진심인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일부터 파업을 시작하고, 6월 7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금 많이 어렵습니다. 파업에서 내건 요구를 많이 접고 투쟁을 정리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불황에는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해고와 인원감축, 임금인상을 가장 빨리 단행한 자본은 호황이 되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다시 호황기가 도래한 조선업종의 사정을 감안해 지난 6년간 삭감된 임금 30%의 원상회복을 요구했습니다. 사내하청업체들과 개별교섭이 아닌 집단교섭단을 구성하고, 원청회사가 교섭 테이블에 앉은 것은 노동자 파업의 성과입니다. 그래서인지 노조는 자본이 제안한 4.5%를 받아들일 의향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사측이 내놓는 조건입니다. 앞으로 불법파업을 하지 않는다고 확약할 것을 강요하며, 파업을 접고 나면 손배가압류를 철회하지 않고 강행할 것이라 협박합니다. 해서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대상을 노조 집행부로 국한하는 문제를 ‘교섭’ 테이블에 올려두고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노사 교섭 테이블에 이런 안건이 오르는 것이 애초에 적절합니까? 지금 노사 교섭이 이뤄지는 방향과 내용이 이해됩니까?

노조가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확약해야 사측이 교섭에 합의해주고, 손배가압류를 노조 집행부로 국한해 달라고 하는 것. 이것은 교섭 대상이 아닙니다. 자본은 항상 교섭 의제나 대상에 대해 적절이니 부적절이니 몽니를 부리고 애초 안건을 선정할 때 많은 노동 의제들을 배제해버립니다. 그런데 노동의 입장에서도 부적절한 안건은 있는 것입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을 하는 것은 노동의 권리입니다. 불법파업을 책임지는 것도 노조입니다. 손배가압류 대상에 대해 노사가 논의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단일노조인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금 협상테이블에 앉아있는데, 과연 이게 교섭의제로 적절하다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선하청지회가 왜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게 됐을까요? 그것이 기실 마음이 무거운 이유입니다. 조선하청지회는 이 안건이 부적절하다는 것, 이러한 수정제안들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노조를 만들고서 감행한 첫 전면파업이고, 50일간 현장 파업을 하면서 자본을 기어코 교섭장에 오게 만든 노사교섭이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지금 가장 분통을 터트리고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사회적인 힘이, 사회적인 연대가, 사회적인 엄호를 믿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더 버티고, 원칙을 지키면서 투쟁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투쟁으로 모든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회는, 아니 이 땅에서 노동과 함께 하고, 노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이든 사회개량이든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한 소위 이 땅의 진보세력은 과연 대우조선 파업에 대해서 어떤 사회적인 힘을 구상하고 형성하고 있습니까? 아니 어떤 일말의 노력이라도 했습니까?

당장 7월 23일 희망버스부터 어떤지요? 조선하청지회의 교섭결과를 관망하고, 언론보도를 기다리고 스스로 ‘희망고문’하고, 아니 ‘희망주문’만 하지 말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엄호하는 사회적인 힘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여기 한편이 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철저하게 자본이익만을 사회적인 이해라고 포장하는 흐름을 끊는 것은 어떨까요? 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들이, 한편을 만들고 다른 편에 대해서 저항하고 충돌하면서 이 사회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새 흐름을 만드는데 함께 작은 힘들을 합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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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일 사파버스와 희망버스에 올라주십시오.
관망이 아닌 실천을. 투표행위를 넘어서서 매일 세상을 변혁하는 행동을.

출발 : 7월 23일 오전 8시30분 서울 동화면세점 앞
신청은 여기서 : (bit.ly/사파작은희망버스_대우조선)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왜 우리는 관망합니까? -[사파시평]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강변하는 엘리트의 문답 놀이를 집어치우라 합시다” (newscham.net)
 

7월19일 오전9시30분 서울 이룸센터에서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대표자회의”가 열렸고, 이어 오전 11시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3명의 노동자가 단식투쟁중인 산업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가 대표자회의와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희망버스에는 20개 도시에서 2천여명 이상의 연대자들이 탑승하기로 했고, 7월23일 거제 대우조선 서문앞에서 오후 2시 30분 금속노조 사전결의대회에 이어 오후 3시 본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으로 협박하는 가운데, 정말 절박하게 희망버스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7월23일 만사를 제치고 함께 거제로 가면 안될까요?
다음은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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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와 함께 사파버스를 띄우며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2022. 7.19 기자회견 발언

사라진 것들이 다시 나섰습니다. 대통령이 소집한 관계장관대책회의가 열리고 관계장관들 합동 담화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윤석열정권의 관계장관들은 말하길,한국은 노동권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고, 거제 대우조선을 점거한 사내하청노조 파업은 불법이라면 협박합니다.

틀렸습니다. 한국의 비정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노동권이 없습니다. 노동자는 있되,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정체불명이기 때문입니다. 노자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고, 노조가 단체교섭을 진행할 상대 주체가 없습니다. 근데 지난주부터 시작된 교섭테이블에는 원청 노사가 앉았습니다. 원청 대우조선이 정규직 노조가 참석하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럼 원청회사는 왜 나왔습니까, 대우조선해양이 사내하청노동자의 고용주여야하지 않겠습니까.

또 담화문은 정부는 인내로 대화를 지속했고 이제 그 노력이 더이상 소용없으니 공권력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듯이 암시하며 협박합니다. 하지만 언제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 파업에 정부가 대화를 시도했습니까?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자이자 현재 실권자인 산업은행도 그 배후의 정부도 나선 적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대통령은 노사자율을 강조하며, 정부는 대우조선 문제에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놓고서 노사 원하청이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대통령이 나서서 관계장관들과 함께 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을 시사합니다. 이게 노사자율입니까? 노사자율 강조할 것이라면 입 다물고 절대 나서지 말길 바랍니다. 일방적으로 회사 편드는 발언공세로 노조를 압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2011년 희망버스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어 정리해고투쟁에 연대하는 희망버스였습니다. 저는 이 희망버스를 남한사회 노동을 향한 사회적 연대의 시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희망버스로 인해 많은 사회단체들이 격동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단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2차 희망버스도상에서 제가 제안해서 만들어져 지금 11년째인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있습니다. 2011년 희망버스에 기대어 우리는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점차 사회적 연대는 확장되지 못하고 지금 많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각자도생이 사회적 연대를 대체했습니다.

2022년 대선을 경유하며 이 사회는 방향을 잃었음이 명확해졌습니다. 그 핵심에는 노동을 배제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노동과 민중의 생존권과 시민권을 도외시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한계가 우리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2022년, 11년이 지나 거제 대우조선 비정규노동자 투쟁에 희망버스가 발진합니다. 이것이 두번째 희망버스라고 봅니다. 이번 희망버스로 이 사회가 다시 한번 노동을 향한 사회적 연대의 문제의식을 다시 일깨우면서 새로운 연대운동을 위한 힘이 형성되기 바랍니다.

대우조선 비정규투쟁에 함께 하는 희망버스로 이 사회의 연대의식을 다시 세워나갔으면 합니다. 건투!

사파기금과 함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 현장에 연대 가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11년 정리해고투쟁중인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2차 희망버스 도상에서 제안하고 시작했습니다.

2022년 거제 대우조선에서 고립된채 구사대 폭력에 맞서 파업중인 조선하청지회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향하는 희망버스 발진으로 다시 한번 사회적 연대의 불씨를 모았으면 합니다.

사파 버스는 사파 연대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연대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타는 버스에요. 서울에서 출발, 다시 서울로 돌아옵니다.
대우조선에서 파업노동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려요!
40명까지 탑승 신청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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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 7월 23일 오전 8시30분 서울 동화면세점 앞
2. 신청은 여기서 : bit.ly/사파작은희망버스_대우조선
3. 참가비: 3만원 (투쟁 노동자는 참가비 없이 신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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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직후 전국에서 모인 사파 연대자 모임을 가집니다. 거제도 현장에서 사파기금 깃발을 찾아주세요.

* 원거리 비용이 많이 듭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은 대우조선 파업현장으로 가는 사파작은희망버스를 후원해주세요.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문의 sapafu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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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쁜소식 3호]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 <사파동행> 3호가 2022년 7월 12일 오늘 발간되어 연대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되었습니다. 받으셨나요?

https://stibee.com/…/ny5mEiQXN4axDydPtKQvSZs78hS3ULE=

격월 둘째주 화요일에 발간되는 사파기금의 소식지 <사파동행>은 4-5월에는 사정상 발간하지 못하고 7월 둘째주에 3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알찬 사파기금의 지원 연대활동과 현장 소식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원 연대활동 소개뿐 아니라, 현장투쟁에 대한 시각과 고민을 녹여낸 글들입니다.

= 이번 3호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 한달 열흘째 파업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과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의 대담입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지회가 아니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입니다. 대담을 읽어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하청지회의 파업투쟁에 대한 소개, 투쟁의 요구와 전략에 대한 상세한 소식뿐 아니라, 조선업과 자동차산업등 비정규 노동자투쟁의 운동의 역사와 실천방향에 대한 토론과 날카로운 문제제기도 담았습니다. 길긴 하지만 김형수지회장과 2시간 인터뷰 전문을 꼭 읽어보세요.

= 사파기금의 기금지원연대활동도 활발하였습니다.
[기금지원 83번째]는 서울 비전향장기수의 집 만남의 집 지원소식입니다. 남한에서 비전향장기수의 존재와 아픈 역사에 대해서 환기하는 글이기도 하고, [받는말]은 장기수 출신 양희철 선생의 따뜻하고 곧은 육필 편지글입니다.
[기금지원 84번째]는 6월28일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긴급지원소식입니다. 파업의 상시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자임하며 사회적인 연대로 미리 파업기금을 조성해온 사파기금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형수 지회장의 감동적이고 단단한 [받는말]도 꼭 되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 기금지원연대 외의 다양한 연대도 꾸준하게 실천하였습니다.
동국제강 분향소 조문과 화물연대 파업지지 집회 (2022.06.14.), 비전향장기수의 ‘만남의 집’ 앵두 연대방문 (2022.06.12.), 발달중증장애인 6인분향소 조문 (2022.06.08.)등 연대 소식을 통해 이들 투쟁과 쟁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꼭 클릭하여 읽어주세요!

= 세종호텔노조 정리해고토론회를 제안하고 공동주관하였습니다(2022.04.05.).
지난해 12월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리해고된 세종호텔노조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과연 정리해고는 정당한지를 사학법과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조항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을 통해서 토론했습니다. 투쟁의 논리를 무장하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자료집 전문은 링크를 클릭하여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어요!

* 사파기금을 항상 응원하고, 사파기금과 함께 하는 노동연대에 꾸준히 참여해주신 연대자 여러분! <사파동행>을 URL 공유로 많이 알려주세요.
* 소식지를 이메일로 받지 못한 연대자들은 이메일 계정 정보를 sapafund@gmail.com으로 알려주세요.
* <사파동행>을 이메일로 받고 싶은 이들은 위 소식지를 클릭하여 “구독신청”을 하거나, 사파기금 정기이체 신청으로 사파 연대자가 되면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2022. 7.1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담: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2년 7월 5일 사파기금 사무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가운데 거제 옥포만에서 이석규 열사의 죽음과 육해공으로 펼쳐진 국가와 자본의 탄압 속에서 싸우면서 민주노조를 만들어냈던 대우조선이다. 이제 2022년 대우조선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공장내 첫 비정규파업을 한달 열흘째 감행하고 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지회가 아니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다. 단위 사업장을 넘어서 비정규노동의 단일성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파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우조선 35년만에 처음으로 배의 진수식을 막아냈다.
이렇게 역사는 반복이나 재연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움으로 나타난다. 한달 열흘을 넘기며 지속되고 있는 이 파업투쟁의 다음 단계 역시 분명히 새로울 것이라고 믿어 본다.

(호칭은 각각 대담자 권영숙 대표는 “권”, 김형수 지회장은 “김”으로 줄여 사용하기로 한다)

권: 직접 얼굴 보고 인사하게 되어 반갑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김: 노조는 2017년 결성했다. 작년 9개 도장업체와 단체교섭을 해서 성사시켰고 도장공 250명이 하청노조에 가입했다. 올해부터 21개 업체와 파업권을 얻기 위한 단체교섭을 시작했고 임금인상 30%를 요구했다. 6월2일 부분파업을 시작했고 6월7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권: 지금까지 파업 상황을 간단히 말해달라.

김: 처음에는 8개 주요 생산거점 길목을 점거하는 파업을 했고 보름쯤 지나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사측이 직반장등 현장 책임자들을 투입하여 물리력 행사를 끊임없이 하고 있고, 우리는 공권력 투입을 위한 빌미를 제공할 충돌을 피하고자, 때리면 맞으면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130만평 조선소 안에서 소수 인력의 생산 주요 거점 점거 투쟁은 한계가 많다. 6월22일부터 제1도크 끝장투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 35년 역사에 처음으로 진수식이 불발됐다. 현재 건조중인 배 15m 난간에 6명이 고공농성중이고, 바닥 케이지 안에 유최안 부지회장이 신나통을 품고 농성중이다. 구사대와 공권력의 침탈을 막을 곳을 찾아서 도크 내 구조물에 쇠창살 치다 보니 – 본래 계획과 달리 – 너무 좁아졌다. 다리를 펼 수 있게 철창 아래를 잘라주겠다고 해도 유최안 부지회장이 거절했다. 하지만 유최안 부지회장은 0.000001%도 죽을 염려 없다. 살려고 하는 투쟁. 다함께 살려고 하는 투쟁이다. 안 죽으려고 들어간 거다.

권: 현재 투쟁을 끌어가고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

김: 현재 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으로 만들고, 사회적인 연대로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7월5일 노조에서 7월23일 거제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노조와 민주노총이 엄호하면서 힘을 실어줘야 되는 것과 별개로 바깥에서 사회적인 힘이 실려야만 윤석열 정부와 산업은행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이 사이에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결의대회도 잡을 것이다. 7월20일 금속노조가 6시간 파업권을 획득하여 지역별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는데, 지역별로 하지 말고 서울은 산업은행, 지역은 거제로 집결해달라고 제안한 상태다. 7월20일 이전엔 경남권 1천명 간부 대회를 열게 된다. 이미 6.29로 잡은 결의대회를 미뤄서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엄호하기위해 우리가 요청하는 날에 잡기로 했다.
이렇게 노조의 결합과 확대로부터 사회적 연대투쟁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7월 23일은 희망버스와 노동조합이 결합해서 사회적인 투쟁으로 넘어가는 고리들을 연결시켜 나가려고 한다.왜냐하면 7.23 희망버스 그 날부터 대우조선 정규직들이 2주간 휴가에 들어간다. 하청 노동자들은 1주간 휴가다. 고로 7월 마지막주와 8월 첫주에 공장이 텅 비게 된다. 다른 노동조합들도 거의 다 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거제 전체가 휴가에 들어간다. 그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해야 될 것 같다. 도크가 막히면서 내주부터 현장이 영향받으며 멈출 것같다. 사측은 공장 셧다운을 하거나 공권력 침탈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본다.

권: 7월23일 희망버스 발진 때까지 무슨 실마리가 보이나?

김: 보이나? 저는 아직은 실마리가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또 무엇을 결정할지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 되니까, 뭔가 실마리 보이면 좋겠지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고 그 대비를 해야한다. 중요한 것은 7명의 동지가 견뎌줘야하는데, 그것이 지금 관건이다. 그리고 가장 걱정되는 점이다.

권: 7월13일이 김지회장 3차 출석요구서 기한이다. 검찰이 바로 체포영장 발부하지 않고 3차까지 채우는 것도 좀 의외이기도 하고. 3차 출석 기한까지 산업은행등 움직임이나 노사교섭이나 접촉등이 있을까?

김: (웃음) 그 이전에도 경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계속 취소했다. 이게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게 윤석열이 검찰총장 되고 대선 출마설 이런 것들이 불거지면서 경찰에서는 작년 투쟁때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리고 윤석열이 정권을 잡고 비정규 투쟁하는 사업장으로 대우조선이 핵심적으로 오르면서 올해초 드디어 검찰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 그 때는 법원이 기각한 적이 있다. 지난해 23일 파업때 내가 크레인 멈추었던 일로 구속영장이 청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시도해왔다. 그리고 파업도 계속 했다. 이번 파업은 여론화되고 알려졌지만, 우리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현장에서 공정 잡고 파업투쟁을 해왔다. 수년동안 해왔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현장 동력이 만들어져야했다. 작년 3월초 10일파업을 했고, 노조 500명 대오가 결집했다.  코로나19 동안 집회 인원수 통제에 아랑곳없이 유일하게 대규모 집결파업을 한 유일한 노조였더라. 정부가 방역을 핑계로 집회 인원 199명, 99명으로 제한할 때도 우리는 파업대오 500명을 모아서 결행했으니까.

권: 올해는 뭘 믿고 전면파업을 감행하자고 결의를 했나? 좀 돌려서 말하면 노조를 만든 과정과 조직화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달라.

김: 2014년부터 노조 만들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고, 2017년 노조를 만들었다. 조직을 만들 때부터 생산을 멈추고 파업을 통해 노동자의식을 고양하자라고 생각했다. 법의 맹점을 이용해 정규직화하고, 결국 나만 사는 투쟁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노조를 만들고, 그 틀안에 안주하지 않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키워야한다고 봤다. 그 이전에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조가 아니라 하청노동자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서 고공농성등 공중전을 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조합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사내하청노조로 하자는데 ‘거제통영고성’ 지역노조로 하자고 이름을 정했다. 이유는 조선업종이 이직이 많다. 기업들간에 이동도 많다. 넓은 의미로 노동자를 묶어내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지역지회로 발족했다. 거제통영고성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노조이므로, 이 지역 조선소 어디나 투쟁 벌어지면 노동자들이 요구하면 우리는 싸움 붙는다.
노조에 현장 노동자들의 가입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을 계급적으로 성장시키기위해 작은 투쟁부터. 모든 작은 일들도 조합의 이름을 걸고, 개인적으로 아닌 원청을 상대로 싸워왔다. 그 결과가 이번 파업까지 이어진 것이다.

권: 그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대우조선에 하청업체가 90여개가 넘는다고 들었고, 대우조선 바깥에도 다양한 규모의 조선소들이 있는데, 그것을 대우조선 대기업 하나로 한정해버리면 사실상 노조는 그 기업안에 머물러 버리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자동차업종 사내하청 노조도 그런 한계가 있어보인다. 그렇다면 지역노조의 틀이 이번 파업에 어떤 식으로 역할을 했나?

김: 사실 이런 지역노조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조선소 내에 업종이 매우 다양하다. 노동자들의 이익에 교집합이 많을수록 조직하기가 더 쉽기도 한데, 조선소의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을 그것도 지역을 아우르면서 묶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갈라서 경쟁 붙이는게 자본의 특기인데 조선업종은 그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의식이 그대로 노동자들에게 침투된 곳이 조선업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업종의 차이, 업종간의 차별들도 조직화하는데 역이용했다. 왜 이런 차이, 차별, 경쟁체제가 있는지, 실제로 내가 그런 차별구조속에서 과연 이익을 보는지 고민하고 생각거리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고 벗어나는 방법을 같이 강구해보자고 설득을 했다. 다른 직종들끼리 서로 다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다. 완성된 배를 보면서 그 배를 만든 조선 노동자는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하자고. 자본의 논리대로 노동을 분업화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는 식의 달콤한 열매를 내놓지만 우리는 절대 그 열매들을 나눠 가지지 못한다고.
그런데 의외로 노동자들 중에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 내 일을 다른 이들에게 미루고 누군가는 더 일하게 하는 생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고.

권: 조선업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자동차와 비교를 많이 하곤 하는데, 자동차와 노동공정이 많이 다르지 않나? 자동차의 경우 탈숙련화-비정규직화와 자동화를 동시에 구축하면서 노조의 현장권력을 약화시켜왔다. 반면에 조선업종은 더 노동집약적이고 자동화가 상대적으로 드디고 미약한 반면 비정규직을 더 급속히 전면 도입하는 방식의 전략을 자본이 구사해왔다. 두 업종간 차이가 비정규 노조 조직화나 투쟁에 영향을 어떻게 미쳤다고 보나?

김: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조선업종은 자동차만큼 기계화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컨베이어벨트처럼 움직인다. 단지 그 컨베이어벨트가 너무 크다보니까 컨베이어벨트의 공정 흐름들을 파악 못하는 거다. 일종의 인력의 컨베이어 벨트라고 할 수 있다. 모양만 다를 뿐 내용적으로 들어가보면 똑같은데, 조선소에서 컨베이어벨트의 역할을 하는 것이 트랜스포터다. 트랜스포터가 야드에 블록을 놓고 노동자들을 일을 하게 하고, 공정이 끝나면 그걸 또 끌고 다른데 가서 놓고, 이렇게 공정이 이어진다.

권: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자동차 업종의 컨베이어 벨트에 비교해서 조선소 노동자들의 관계나 현장권력의 성격등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김: 대우조선 공장이 백삼십만평이 넘고, 노동자들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현장내 인간관계도 멀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묶어내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조직해야한다.
알고보면 우리나 자동차나 결국 똑같다고 노동자들에게 말하면서 조직했다. 조선소의 경우 만들어내는 생산물인 배가 크고 노동자들간 물리적 거리가 멀지만, 알고 보면 자동차에 왼쪽 바퀴 오른쪽 바퀴가 있듯이, 우리도 큰 배의 좌현과 우현이 있다.

권: 조선업종에서 지난 5-6년간 비정규직 규모가 급속히 감소했다. 또 감소폭이 아주 컸다. 전체적으로 조선노동자 총규모 자체도 많이 감소했다. 이런 고용 불안정은 어떻게 노동자들과 노조에 영향을 미쳤나?
덧붙여 왜 조선업종은 비정규직화가 급속도로 전면적으로 진행돼, 비정규직이 80%까지 육박할 정도로 비정규 중심의 사업장이 됐을까? 같은 대기업 금속업종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사내하청과 외주화를 병행하면서도 정규직을 일정규모 유지하려는 자본의 경향성이 있었고, 그에 따라 비정규직노조도 정규직 전환투쟁 중심으로 투쟁을 진행했다.

김: 이유는 비정규직 임금이 높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때 조선소들에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더 많던 시절도 있었다. 정규직들이 오히려 비정규직으로 넘어오려는 경우도 있었고. 일이 막 쏟아지니까. 물량, 일을 바로 바로 쳐내야하니까. 공장들은 많아지고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더 그랬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자기 공장 내에서 차를 만든다. 그런데 거제는 진짜 온 동네가 대규모부터 중소 규모까지 모두 조선소다. 일을 쳐내야하니까, 10만 원에 쓰던 사람들을 급하면 20만 원, 30만원에 부른다. 하청노동자들은 낮에 일하고 야간에 다른 데 한탕 뛰어서 일당 30만원을 더 받는다. 그런 일감을 “돌발”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사실 고용 안정면에서도 문제가 별로 없었다.
여하튼 조선소에서 인력 부족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조선업종 자체가 경기를 심하게 타기도 한다. 결국 물동량 맞춰 고용 규모가 요동을 친다.

권: 그러니까 경기와 물동량에 따라서 사람을 확 늘려 뽑기도 하고 또 그만큼 또 빨리 잘라버리기도 해야하니까, 그런 업종에 가장 합당한 게 어쩌면 비정규 노동형태였고 정규직 노동은 어쩔 수 없이 경직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이상 숫자를 더 안 늘려버렸다. 이것도 일종의 고용의 불안정 형태중 하나인데, 구체적으로 현재 대우조선의 정규직 비정규직 규모가 어떤가? 조합 가입율은?

김: 거제 조선업종 노동자 총규모가 지금은 3분의 1로 줄었다. 대우조선만해도 제일 많았을 때 거의 6만 명 가까이 됐었는데 지금 1만 8천명 남짓이다. 이중 현재 생산직중 정규직은 4700명이고, 이중 3분의 1이 ‘현장직’이다. 정규직의 다수는 사무 관리직이고, 실제 직접 생산직 정규직은 1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65%가 비정규직이다. 그중에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한 대우조선 비정규 생산직이 500여명 정도 된다.
그리고 대우조선내에 대략 96개 사내하청업체가 있고, 이중 21개사업장에 조직된 우리 노조 조합원들이 올 6월 2일 파업을 시작하고 6월7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다른 공장에도 조합원이 있긴 한데, 그 곳들은 아직 조합원들이 결의가 조금 부족해서 아직까지 교섭을 못 하고 있는 데도 있고.

권: 조선소에서 정규직이 그렇게 소수화되면, 비정규직이 노조의 중심이 되고 결국 비정규 투쟁이 조선소 파업의 주력이 되고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되고 지금의 자동차보다 오히려 비정규 중심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만약에 잘 조직된 노조가 투쟁의 중심으로 서게 된다면 그럴 것이다. 조선 자본 역시 그런 노자관계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있겠다. 그래서 이번 투쟁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김: 그래서 지금 회사 목적은 조선하청지회 노조를 깨자이다. 임금인상 30%를 요구해도 임금협상은 노사 단체교섭의 대상인데 회사가 아예 10%든, 뭐든 숫자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조를 인정해야한다는 것이 자본으로선 제일 부담이다. 그래서 교섭도 못하고, 또 안하고, 계속 파업중인 거점을 침탈해왔다. 하지만 수백명이 몰려와 침탈해도 우리는 또 천막치고 또 천막치고 버텼다. 폭력사태 유발되도록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공권력을 요청한다는 복안이니. 우리는 맞으면서 파업 거점을 사수해왔다.
언급하신대로 정규직은 향후 5년 정도 지나가면 아마 힘이 없을 것이다다. 대우조선도 지금 정규직 숫자가 이제 4천 대까지 내려왔고, 한 해에 500명씩 정도 퇴직하고 있는 반면 신규채용은 하지 않고 있으니까.

권: 조선업종과 자동차업종이 금속노조의 양대 기둥이고, 한때는 민주노조운동의 양대 축이기도 했다. 1994년 이전 전노협을 해소하면서 명분이 산별노조론이었고, 어떤 산별 노조 모델로 갈 것인가에서 금속노조의 조선노협과 자동차업종이 소산별과 대산별 논의를 각각 대표했다. 조선노협 중심의 소산별론이 대산별 주장에 꺾이면서 전노협이 해소되고 급속히 민주노총으로 재편되면서 사무직까지 포함한 하나의 노총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산별화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일시켜나가는 실천과정이 없이 계속 무늬만 산별이었고, 산별화논의의 핵심이었던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자동차 노조가 가입해 1노조가 된 것이 민주노총 창립 10년뒤인 2006년이었다. 그것도 금속노조 깃발 아래 사실은 기업 노조를 유지하는 방편로 삼기 위해서.
근데 조선업종의 경우도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열어젖혔던 현대중공업의 정규직노조가 한때 금속노조에서 제명됐었고, 노사가 무쟁의선언으로 상생을 외치다가 몇년전 다시 금속노조에 들어왔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는 어떤가?

특히 지난번 7월2일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때 정규직 노조는 발언조차 하지 않았고, <새벽함성>이라는 현장 소식지에서는 심지어 자본과 조선하청지회 양쪽에 자제를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던데.

김: 솔직히 ‘민주노조’가 뭔지 모르겠다. 민주노조를 말하면서도, 이거 참 어렵네. 대우조선 정규직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었던 적이 없고, 집행부도 민주파가 당선됐다. 이번 집행부도 전국회의 소속이고 진보당과 가깝다. 그 직전은 현민투가 잡았었다. 언급한 <새벽함성>은 노조 소식지인데 그런 내용이 버젓이 실린다.
물론 우리도 원하청 연대 시도는 안한 것이 아니다, 했다. 원하청 교섭도 시도했고. 하지만 현대중공업등 원하청 공동투쟁의 예들을 보듯이 원하청 공동투쟁은 실패했다고 본다. 해서 우리 입장은 정규직 노조는 힘도 없고, 그냥 우리 투쟁에서 빠지고 훼방만 놓지말라는 것이다. 7월2일 결의대회때도 발언은, 하라고 시켜도 안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안 시킨 거다. (웃음)

권: <새벽함성> 내용을 보면, 조선하청지회와 회사 양쪽에게 2만명 전체 구성원(?)을 생각해서 자제를 촉구한다는 내용이고, 이후에도 비슷한 입장을 계속 올리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런 발언은 사실상 파업 파괴적인 행위다. 금속노조에서 이를 방관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우조선 지회는 7월10일에는 조선하청지회에 7월12일까지 농성을 풀고서 업은행을 상대로 함께 싸우자라는 제안을 <새벽함성>에 실었다. 대우조선 지회 소속이기도 한 일부 대의원들은 조선지회에 대해서 비정규 파업을 정리하지 못하면 탈퇴하겠다고 압박을 가하는 한편, 파업농성장과 고공농성자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파업 파괴행위를 서슴치 않고 공개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권: 요구 조건과 투쟁방식과 관련된 두가지 이슈를 질문하려고 한다. 지금 하청지회 제안은 하청 집단교섭단을 만들고 하청업체와 집단교섭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파업의 쟁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30% 삭감된 임금의 회복 인상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하청업체들과 집단교섭단을 만들어 교섭하여 타결하고자 한다.
반면 지금껏 대부분의 비정규투쟁은 불법파견 투쟁과 원청을 상대로 한 정규직 전환 투쟁이었다. 현대기아차 사례에서 보듯이 불법파견투쟁은 결국 조합원들만의 정규직 전환이었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져 비정규직 철폐는 요원했다. 또한 오히려 ‘불법파견’을 문제삼는 투쟁 덕분에 근로자파견법이 오히려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나는 이런 점들을 토론회등에서 꾸준히 제기하고 비판해온 연구자이자 활동가 입장에서 이번 조선하청지회 투쟁이 반갑기도 했고, 그 요구가 맞다고 본다. 하지만 하청업체와의 집단교섭은 하청업체와의 관계, 원청이 아닌 하청 고용주를 인정하는 문제,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고착화하는 또다른 투쟁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형식이나 이런 것들이 내용을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형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다 미리 상정할 필요 없고, 얼마나 자신의 계획을 갖고 투쟁할 수 있을 만한 의지를 갖고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동자들이 얼마나 의지를 모아내냐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정규직 그것들은 사실 형식의 문제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전에 조선소의 경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되려고 막 하던 시절도 있었고. 이게 사실 자본이 만들어놓은 구별이다.
사실 저 역시 금속노조에 가서 항상 이야기 하는 게, 이제 불법 파견소송 좀 그만하자고, 돈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노동자들을 스스로 싸우게 만들어야 되고 그 싸움 속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성이 생겨야하고, 그래야지만 노동자들이 사회적 문제까지 나아간다고. 또 파견법을 없앨 생각을 안 하고 왜 불법파견 소송을 하냐고,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법 테두리안에서 왜 우리가 신분 상승 투쟁을 하냐고 이것이 말이 되냐고. 파견법 없애는 투쟁을 해야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불법파견 투쟁 안 한다고 말한다. 파견법을 없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냐? 우리한테 힘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어떤 힘이냐면 현장을 멈추는 힘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현장에서 생산을 멈추는 힘이 생기면 파견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한다, 그게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파견법은 사장될 거다라고.

권: 제가 그동안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불법 파견은 파견이 불법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투쟁은 불법파견투쟁이었고, 정규직 전환 투쟁이었는데, 소송에 다 이겨도 몇년을 끌다가 노동자들이 지칠대로 지칠 때쯤에 회사는 자연 결원 부분을 중원한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을 정규직화 시켰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이 채웠다. 결국 “비정규직 철폐” 구호와는 아주 먼 결과를 낳았다.

김: 우리도 정규직화 투쟁을 하긴 한다. 올해 지금 산업보안부 요원들 5명이 정규직화 투쟁을 해서 이겼다. 정규직 된 다음에 우리 노조에 있을 수 없고 정규직 노조로 가라고 하는데 가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노조로 가는 자체가 의미가 있고, 가는 자체가 뭔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라고 했다. 불법 파견 문제로 우리가 만약에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뭔가 다른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고 내가 계급적으로 어떤 위치인가를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면 할 수도 있다.
내 말은, 투쟁을 고정화시켜 정량화시켜놔가지고 투쟁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장에서도 그런 게 사실 보인다. 현장에서 항상하는 얘기인데, 우리의 투쟁이 올라가면 본질이 드러나게 돼있다. 아무리 불법파견이니 이야기해도 안 드러난다. 항상 회사가 하는 얘기가 있지 않냐, 당신들하고 우리는 근로관계가 없기 때문에라고. 하지만 우리가 투쟁에 돌입하고 투쟁이 올라가면 그 본질은 드러난다. 진짜 우리가 막 투쟁하니까 저들 원청이 직접 지시를 내리고, 급하니까 막 하청업체 직원들한테 바로 지시를 내리고.
우리가 노조 만들고 나서 계속해서 회사한테 얘기를 했다. 우리는 불법파견 소송 안 한다 내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사는 계속해서 우리가 불법파견 소송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불법 파견의 소지들을 없애더라.
결국 비정규노동이 문제다. 그 본질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려면, 자본이 스스로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려면 불법파견투쟁 아닌, 우리 비정규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자본을 폭로해야한다 .
우리의 투쟁이 격렬하면 격렬해질수록 자본이 직접개입할 것이고.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의 본질이 날 것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권: 아까 했던 두번째 질문인데, 지금 대우조선 원청이 아닌 하청회사들 21개를 상대로 임금 30% 인상 요구 투쟁을 하고 있는데, 교섭의 방식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 교섭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는 자가 누구냐는 비정규투쟁과 노사교섭에서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다. 또 조선소내 업종의 차이가 큰데 교섭에서 이는 어떻게 하려나?

김: 회사는, 즉 하청회사들은 개별교섭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직종별로 업체 대표를 뽑아와라 그랬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도장 쪽이면 도장 쪽에 있는 업체들 중에 대표를 한 명 뽑고, 용접에 있는 업체들이 10개 있으면 이 중에 대표를 한번 뽑아서 내보내라 요구했다. 노동조합도 우리 교섭위원들을 직종별로 대표를 뽑아서 교섭단을 구성한다.
업종들의 차이과 구별이라는 것이 결국 자본의 갈라치기다. 하지만 직종별로 임금이 별 차이가 없고 거의 다 똑같다. 그래서 집단교섭을 하고 직종내 차이와 직종간 차이를 계속 좁혀나갈 것이다.

권: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휩쓸었던 ‘임금인상투쟁’이라는 것이 실종된지 오래됐다. 임금인상투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구호로 대체됐고, 정규직 노조들은 노사 밀실교섭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착취로 자신의 임금을 보전하거나 일부 인상하는 길을 택했다. 결국 정규직 비정규직 양자에서  모두 임금인상 투쟁이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대우조선에서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은 정규직의 ‘고용의 방패’, 임금의 지속적인 하락, 병영같은 공장, 열악한 노동조건속에서 소극적으로 다른 업종으로 떠나고 물러나는 개인적인 저항일뿐인 ‘대퇴사’가 아니라 사라진 임금인상투쟁, 그것도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인상 투쟁을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사파기금의 6월 23일 성명서).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어떻게든 보면 투쟁이라는 것도, 우리는 그냥 계급이라고도 하지만 사회적 정세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했을 때 시민사회라든지 전체가 어떠한 태도를 보일까 어떤 입장이 목소리가 나올까 이런 것도 고민해야한다. 이번에 30% 임금인상을 하면 구조조정전인 2016년 수준으로 가는 것이다. 그때 임금이 연 3천만 원 넘었었다. 잔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 포함해서 3천만원 넘었었다.
그리고 30% 임금인상이라고 하면 우리는 전체 노동자를 다 의미하는 거다. 당연히 다른 노조나, 조선하청지회에 가입되지 않은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 힘들었다. 예를 들면 조합원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것만 올려달라고 하면 빨리 끝날 것 같은데 노동조합에서 왜 다 올려달라고 해서 시간을 오래 끌고 있냐? 뭐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고. 사실은 그걸 설득하는 게 굉장히 쉽지 않았다.

권: 사라진 임금 인상 투쟁을 전면적으로 살려냈다는 것과 임금 인상 30%라는 게 모든 노동자들 포함하고, 무임 승차든 뭐든 함께 간다라고 한 것은 정확하지만, 실천목표로 잡기 쉽지않다. 요즘 그런 노조가 많지도 않다.

김: 우리는 원래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소에 일하는 이주 노동자부터 모든 노동자들까지. 또 여성 노동권 차별을 없애야 된다고 계속 이야기한다.

권: 6월2일 파업 돌입이후 파업에 참가하는 조합원들은 늘었는지 줄었는지? 그리고 파업노동자들은 공장 안에서 뭘 하는가? 매일매일 어떻게 파업을 진행하고 있나?

김: 6월 2일부터 파업 시작해서 약간씩 전술의 변화도 있고 8개 거점에서 3개의 거점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1도크 안의 7인의 농성노동자들을 사수하면서 거점 집중 투쟁중이다.
파업 참가 인원은 줄었다, 이제 줄어들 만큼 줄어들었다. 더 늘어나야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올 사람 다 왔고, 더 할 사람도 없고 이제 끝까지 갈 사람들이 다 남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7시까지 다 모여서 출근 선전을 잠시 짧게 하고, 제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조합원들이 나를 데리러 나와서 겅비들을 뚫고 함께 들어간다. 이후 현장 동지들과 간략하게 집회하고 조별로 계획들 전달하고 여러 의견들 공유하고 조별 활동 하고, 그리고 좀 쉬었다가 점심 먹고 조별 교육하고 토론도 하고 선전전하고 이렇게 한다.

권: 7일 2일 민주노총 영남권대회를 거제 대우조선 앞에서 열기까지 좀 시끄러웠는데 어떻게 관철했나?

김: 제가 공개적으로 제안을 했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처음에 상집 회의에서 이렇게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산별 대표자들이 거부하고 논란이 많아서 안 되겠다며 위원장이 영남권 집회를 취소하고 서울에서 집중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해서, 제가 서울로 급히 올라왔다. 올라와서 중집 성원들 있는 데서 무조건 내려와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고.
산별 대표자들 설득이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하길래 당연히 설득 안 되지, 위원장이 한 번 현장에 내려와가지고 이 현장을 보지도 않았는데 설득이 어떻게 되겠냐, 와서 직접 봐라 직접 보고 내가 직접 보니까 어떻더라고 이야기를 해야지 설득이 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냐고, 한번 내려와 보지도 않고 이런 얘기를 하느냐, 당장 내일 내려와라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권: 7월 2일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집회할 때 시내에서 집회를 열었다. 공장 안에서 파업중인데, 연대집회는 공장 밖, 도크의 농성자 7인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집회하고 끝내는데 대해 말들이 나오기도 했고. 그 날 집회후 행진이 끝날 때 왜 안으로 들어가 진격이라도 해보지 않았느냐는 말들이 나왔고. 그 날도 어서 갑시다 하고 지회장이 정면에서 외치는 장면으로 끝나버렸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가능한가?

김: 가능하다. 공장으로 밀고 들어가면 된다. 근데 그 때는 제가 참았다. 아니 하지 말자고 하지는 않았고. 제가 사실 그날도 대오 다 일어나라 그래가지고 같이 들어가자고 같이 하려고 했지만 안했다. 또 6월 24일 금속 결의대회 할 때도 제가 바깥에서 하지 말고 내부 집회를 하자 제안했었다. 그런데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굉장히 곤란해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어쨌든 대표자와 위원장등 일부만 들어가는 걸로 정리했고. 7월2일에는 대표자들 자리에 앉지 않았고, 그날 발언할 때도 그 얘기를 했다. 우리 다음에는 꼭 안에서 만나자고.

권: 여전히 투쟁과 연대 사이에, 혹은 단위 노조의 파업과 민주노총의 단결력 사이에 갭이 있다. 1m짜리 케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을 가둔 노동자와 도크 벽 고공에 점점이 박혀 있는 노동자 6인등 이 정도로 절박한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모인 대오가 그 절박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갭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집회를 어떤 방식으로 할 거냐가 이제부터 더욱 고민이 돼야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시간이 문제인 것 같은데. 김지회장 3차 출석요구 기한이 7월13일이고, 7월23일 희망버스가 발진한다. 향후 싸움을 어떻게 만들어가야할까?

김: 저는 누가 중심에 섰냐, 누가 이 투쟁을 가져가서 끝까지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시민 사회가 함께 붙고, 이런 거 아니면 금속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이 투쟁을 안으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옆에서 같이 어우러지고 이런 것보다도 그냥 한 목소리로. 그게 하나의 이름이든 공동의 이름이든 나열되어 있든 그런 건 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권: 2011년 희망버스가 발진한 한진중공업도 조선소인데 2022년 대우조선해양도 조선소다. 이번에는 비정규 노동자의 조선소 점거파업이고, 사라진 임금 인상 투쟁을 제기하면서 코로나19 국면의 윤석열 정권하 노동 정세를 돌파하는 중요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희망버스를 띄워야 할 절호의 기회다. 그것도 그때 희망버스의 정신을 살려서 띄워야 한다고 본다.
거제 대우조선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에게 한마디, 연대에 대한 메시지라고 할까 한마디 부탁한다. 어떤 연대를 바라는지 혹은 어떻게 연대해 주기를 제안해도 좋고.

김: 우리가 하고 있는 투쟁에 단순히 그냥 연대를 하고 내가 이걸 도와주는 게 아니고 자신이 바로 당사자가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누군가는 곧 우리가 될 것이다. 이 문제가 바로 내 가족의 일이고 우리 사회의 일이니까 그 일원으로서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권: 2011년 2차 희망버스 타고 올라오면서 제가 사파기금을 만들자 제안할 때 문제의식이 바로 그랬다. 시민이 노동에게 연대해 주는 게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들끼리의 노동하는 사람들의 수평적 연대가 되어야 한다. 그게 사회적 연대의 의미다라고 생각을 했다. 대대적인 희망버스가 이번에 7월23일 발진하길 바라고, 단지 “다시한번 2011년이여!”가 아니라 이번 파업투쟁에 대한 연대를 통해서 노동중심의 연대세력을 구축하고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 왜 그러지 못할까를 항상 고민했다. 근데 우리는 한 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 갈구하고 그 투쟁을 기다리던 동지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느꼈다. 금속노조 안에서도 그러한 투쟁들, 그냥 힘 있는 어떤 것들, 막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을 소리치고 말하는 투쟁들을 해보고 싶어 하는 동기들이 강하다는 것들을 느꼈고. 근데 누군가는 그런 투쟁을 하려면 감수해야 될 것들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감수할 각오로 투쟁을 선택했다.

권: 맞는 말이다. 당사자가 스스로 싸우려고 하고 누군가에 기대서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싸워서 내가 만들어 나간다라고 하는 게 먼저일 것 같고, 그게 있을 때 연대도 확장되는 것 같다. 사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왜 연대가 쪼그라들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한다, 노동자 투쟁이 전망이 없다라고.
예컨대 비정규직 투쟁도 결국에는 자신이 정규직 되고서 투쟁도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비정규투쟁과 비정규 노동운동은 스스로 사라지기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의 지점이 있다. 과연 비정규노조운동의 전망은 무엇일까라는 고민도 게속 해야한다.

김: 운동도 투쟁도 전문화된 것 같다. 왜냐하면 투쟁을 하면서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소위 선수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뭐부터 이야기하냐면, 출구 전략이 뭐냐라는 얘기부터 한다. 그런데 나는 출구 전략이 없다. 계속 이 투쟁하면서 마지막까지 이미 이 생각을 하고 있었고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고 그에 대한 가장 완벽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투쟁을 만들어낼 거다, 그걸 우리가 할 거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럼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투쟁 이게 뭘까, 어떤 투쟁을 나는 하면 될까. 소위 말하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된다는 압박 없이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한다라고 생각한다.

권: 근 2시간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파업투쟁으로 매우 바쁜 일정속에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사파동행>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다. 건투를 빈다!

– 끝

“이 대담은 민중언론 참세상에 7월13일자 공동게재됐습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7.23 대우조선 희망버스, 사회적 연대투쟁의 연결고리 될 것” – [대담] 대우조선 비정규 파업투쟁의 지도자,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조 지회장 (newscham.net)

인사가 늦었습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지회장 김형수입니다.

사회적파업을 조직하고 지원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계신 동지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거통고투쟁 오늘로서 34일차 끝장투쟁 14일차입니다. 자신의 숙련된 기술로 자신을 가둔 노동자의 절규는 부조리한 이 세상을 향한 외침입니다.
유최안부지회장이 스스로 감옥을 만들었지만 그를 그 감옥에 갇히게 한 것은 사측의 탄압과 무자비함입니다. 자본가 계급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다단계 하청 계급 구조를 끝장내는 사회적파업을 만들어 가는데 함께 할 것입니다.
동지들이 모아 주신 500만원의 기금, 투쟁의 승리를 위해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검찰이 반려해서 영장발부는 되지 않았지만 자본의 압박이 더 악랄해져 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지역의 여론과 전 노동자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가 이 투쟁을 계기로 이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투쟁!

2022. 7.5.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 김형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지원을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민중,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우조선해양에서 가열차게 25일넘어 공장점거파업중인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에 긴급지원을 결정하고 6월28일 집행하였였습니다. 지원 금액은 5백만원입니다.

드디어 거제도 조선소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의 봉화가 올려졌습니다. 코로나19이후 화물연대 특수 고용노동자들에 이어 제조업 하청노동자들인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의 횃불을 이어받았습니다.

전체 생산직중 정규직이 5700명이고 비정규직이 65%로 다수를 차지하는 공장에서, 드디어 비정규직이 생산을 중단시키는 말그대로 ‘파업’투쟁을 공장점거라는 방식으로 감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들 몇몇 개인이 크레인 고공농성을 해야했던 대우조선에서 2014년이후 노조를 조직하였고, 노조원을 늘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투쟁하고 조직하는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6월2일 650명의 조합원중 500명의 대우조선 하청 조합원들이 파업을 일으켰고 대략 250명 가량이 공장점거중입니다. 정규직노조가 ‘무쟁의’를 조건으로 임금인상과 복지를 유지하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이 노동자답게 공장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우조선 비정규 노조는 “조합원의 정규직 전환”을 기치로 파업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선업종 불황 속에 동결 삭감된 임금 30% 인상 요구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지난 불황기 5년만이 아니라 20여년간 조선업종의 상시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정규직대신 비정규직이 ‘고용의 방패’가 되는 조건속에서 임금의 지속적인 하락, 병영같은 공장, 열악한 노동조건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소극적으로 다른 업종으로 떠나고 물러나는 개인적인 방식을 택했지만, 이제 이들은 임금인상을 통한 공장내 비정규직노동자 모두를 위한 분배투쟁에 나섰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코로나19 속에서 가장 먼저 해고당하고 가장 먼저 ‘폐기’당하면서 사라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선언이기도 합니다. 대우조선해양 도크에 공중에 뜬 점처럼 고공농성중인 6인의 노동자들, 도크 바닥 1미터 철창감옥에 들어가 농성중인 유최안 부지회장이 들고 있는 피켓 문구가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입니다. 이렇듯 비정규 조선노동자들의 상황은 엄혹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조선업 비정규노동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열악한 조건 속에서 파업권마저 빼앗긴 비정규노동자들의 공통된 절규입니다. 그동안 비정규 노동은 코로나19 속에서 ‘전염병의 불평등성’을 그대로 겪으며, 고용안정과 보호된 임금을 받았던 정규직과 달리 가장 먼저 임금 동결과 삭감등으로 고통받았고 가장 먼저 해고당하였으며, 전염병을 핑계로 한 방역통제속에서 집회 결사 파업을 통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노동자들은 코로나 19 가운데 소극적인 ‘대퇴직’으로 물러나는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실종된 임금인상 파업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자마자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다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해고당한 비정규노동자들의 복직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때 ‘노사자율’을 강조하며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외면하던 정부가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인양 호도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이 터져나올까 두려워 미리 선제적으로 바람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정부 경제부총리가 대재벌들의 단체 전경련을 찾아가서 “임금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당부를 하는등, 서로 눈가리고 아웅하듯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6월23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지지성명에서 “이 투쟁은 사라진 임금인상투쟁의 포문을 열고 2022년 대선이후 신정부 하에서 대중파업으로 전개된 화물연대 파업투쟁에 이어서 노동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우파적 노동정책과 노동파괴 책동을 선제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중요한 투쟁”이라고 봤습니다.

민주노총이 이 투쟁의 의미를 직시하길 바랍니다. 민주노총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노정교섭’, 즉 민주노총과 정부(대통령)의 직접 담판에 기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노정교섭도 실질적인 노동자들의 사회적인 힘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양보교섭이나 무늬만 사회적 대화, 나아가 자본의 술수에 이용당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정권초기 대우조선해양 비정규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열어젖힌 이 투쟁이 사회적 파업이고 투쟁의 최전선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고, 계급적인 단결로 엄호하기 바랍니다.
또 사회적 연대자들은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야말로 이 땅 모든 비정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의 노동을 위한 사회적 파업이므로 사회적 연대로 지지를 모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대우조선해양 비정규파업에 사회적파업기금 5백만원을 긴급지원합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긴급지원을 가능하게 만든 사파기금의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 활동에도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연대! 투쟁!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2년 6월 28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홈페이지 : http://www.sapafund.org

*기금 연대 참여방법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온라인 신청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온라인 신청: https://bit.ly/3D04xK2

[성명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을 열렬히 지지합니다!”
– 사라진 임금인상투쟁의 포문을 열고, 윤석열정권의 노동운동 파괴에 맞서는 선제적인 투쟁의 승리를 바라며
.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조선하청노조(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난 6월2일부터 공장 점거 파업중입니다.

회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사대로 투입해 현장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굳건히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여하히 파업을 사수하는가가 이 파업의 성패에 사활적입니다. 지금 노동자들은 힘들지만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6월22일 오전 1인의 노동자는 공장 바닥 설비를 용접하여 성냥갑같은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가슴에 신나통을 품고 농성하고 있습니다. 6인의 노동자들은 배의 진수식이 예정된, 물 차오를 도크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지금 한국 조선업계는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며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이후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의 ‘대퇴직’ 사태의 일부입니다.
코로나19로 업체 가동을 부분 혹은 완전 중단하면서 재택근무하거나 일시해고됐던 노동자들이 코로나19이후에 그 업종으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대규모로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업종들의 공통점은 바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있던 노동자들이 코로나19가 끝난후에 자신의 일터를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인력난에 시달리는 곳이 두 업종인데, 서비스업에선 택시 노동, 제조업에선 조선업종입니다.
이들 업종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조건인가 시사합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에도 택시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않아서, 서울등 대도시에는 ‘택시타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놓은 해결책이, ‘도급 택시’를 합법적으로 일부 들여오겠다는 것입니다. 택시 이용객들은 이것으로 택시잡기 사정이 약간 나아지겠지만, 문제의 근원인 열악한 택시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택시의 도급화, 외주화의 길을 터겠다는 이 발상이 정말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노동문제의 해법으로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한국 조선업계는 지금 최대의 수주 기록과 호황인데도, 지난 몇년간의 임금 삭감과 동결을 해제하고 임금인상에 응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업계가 불황일 때는 임금 동결, 임금 삭감을 가장 재빠르게 단행하더니, 지금 인력난으로 말미암아 수주 기일 채우기 힘들다고 말하고, 인력난에 실제로 허덕이면서도, 노동자들을 일터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노동조건 개선에 핵심인 임금인상은 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임금 인상 요구에는 불응하면서, 해결책으로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 ‘수입’에는 적극적입니다. 결국 노동시장 왜곡으로 노동착취를 계속 현상태로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것이 바로 자본의 모습입니다. 특히 한국 자본의 모습입니다.
노동력을 ‘노동시장’에서 상품 사듯이 하면서도, 노동력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은데도 그 상품가격에 해당하는 ‘임금’의 인상은, 그것이 그들이 법칙인양 외치는 ‘시장의 원리’인데도 임금 인상의 방향은 아예 외면합니다. 신자유주의의 표본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는 입만 열면 시장의 원리대로 하자라면서 노동력 부족 속에 임금인상에는 응하지 않고, 노동권을 외면하고 탈규제를 말합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 주도’ 경제를 말하지만, 여기서 경제의 주체가 되는 ‘민간’은 오로지 기업과 기업주, 그리고 재벌 자본일 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와 자본이 연합하여 정작 노동시장의 공급과 수요의 괴리로 빚어지는 임금 상승 압력에 대해서 시장의 원리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자본의 모습이 단지 조선업계만일까요?
노동자의 임금은 애초부터 시장가격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즉 노동력 공급이 부족하든 노동력 공급이 과잉이든 노동력의 가치는 결국 사회적으로 결정됩니다. 임금은 사회적 임금입니다. 그래서 조선자본이 대우조선해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삭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수 자유 양당 정당들은 앞다투어 비정규법을 만들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임금체제와 초과 노동착취를 제도화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반대의 방향도 가능합니다. 자본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사회적인 저임금으로 결정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그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제 코로나19이후 노동의 가치를 이 사회에서 다시 세우고 상승시키는 대중투쟁이 필요합니다.

이 사회에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휩쓸었던 ‘임금인상투쟁’이라는 것이 실종된지 오래됐습니다.
비정규직 도입을 하면서, 임금인상투쟁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임금 인상 투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구호가 대체했습니다. 그 사이에 정규직 위주의 조직노동은 파업투쟁이 아니라 노사 밀실교섭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착취로 자신의 임금을 보전하거나 일부 인상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정규직 비정규직 양 자 다 임금인상 투쟁이 실종되었습니다.

이제 비정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속에서 소극적인 저항인 ‘대퇴직’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실종된 임금인상 파업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비정규노동자들의 임금 30%인상 요구 파업투쟁은 지금 노자관계에서 매우 주목할 파업입니다. 이 파업으로 코로나19로 노동자의 발목에 채워진 사슬을 끊는 계기가 마련되어야합니다. 비정규노동자들이 정규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 제도화된 노동착취를 통해서 자본은 살집을 불리며 유동성을 차곡차곡 쟁여두면서도 투자하지 않는 지금의 자본의 흐름에 정면 반기를 들어야합니다. 윤석열정부가 민간주도 국민경제를 운운하며 시장원리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대놓고 자본의 편을 들고, ‘노사 자율’ 이라는 허울좋은 핑계 뒤에 숨어서 조선업계 인력난과 임금 인상 요구를 모른 체하는 이중성과 위선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 투쟁은 2022년 대선이후 신정부 하에서 대중파업으로 전개된 화물연대 파업투쟁에 이어서 노동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우파적 노동정책과 노동파괴 책동을 선제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중요한 투쟁입니다.
이 땅의 노동하는 모든 민중의 이름으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합니다!

2022. 6.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6월14일 서울 을지로 동국제강앞 고 이동우 분향소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이름으로 조문하고 분향했습니다. 이 날 말그대로 ‘끝장 협상’의 분위기 속에서 부인 권금희님이 결국 협상장에 참석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족이 배우자의 죽음앞에서 협상장에 나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날 분향소 방문때 권금희님이 분향소에 나와있어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두껍’을 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이긴 한건지, 회사측은 임신 6개월차 접어드는 부인 앞에서 고인의 죽음을 두고 ‘교섭’하는것이 어색한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더랍니다. 해서 잠시 나와있다고요. 동국제강에서 산업재해 사망이 이런 사회적 투쟁으로 진행된 것이 처음이랍니다. 업종의 성격상 그동안 산업재해가 상당했을텐데, 결국 돈 몇푼과 외면과 은폐 무시로 흐지부지됐겠지요. 해서 포항 공장에서 일하던 중 크레인 벨트에 몸이 감겨 사망한 하청업체 노동자 이동우님 죽음을 사회적 의제화하는 것은 동국제강 자본에 대해 산업재해에 대한 태도를 고치게 만드는 죽비같은 경고장이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전경련등이 획책하고 있는 중대재해법 개악을 막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투쟁입니다.

이어 이날 오후 7시 용산 대통령집무실 맞은편 전쟁기념관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파업 지지 집회에 권대표등이 참석했습니다. 사회단체 중심으로 꾸린 첫 파업 지지 ‘촛불’집회였습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윤석열 정권하에서 실제적인 파업 1호입니다. 공공운수 비정규 사업장 공동파업이 시간제 파업으로 진행된 적이 있긴 합니다만, 한국에서 ‘공식파업’ 일수 산정은 하루 전일 파업을 기준으로 합니다.

화물연대 파업을 어떻게 끌어가는가가 윤석열정권의 노동에 대한 정책과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해서 이 파업투쟁은 단지 화물연대의 파업이 아니라, 새 정부 하에서 노동자투쟁 전선을 어떻게 시작하고 세우는가와 직결되기도 합니다. 화물연대 파업은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안전운임제가 정당한 요구라는 점, 화물운송 안전이 도로 위 만인의 안전문제로 직결된다는 점, 코로나19이후 물가 폭등을 주도하는 기름값 상승이 자산계급 제외한 민중 생존권에 공통의 문제라는 점등으로 인해 파업투쟁에 대한 사회적인 지지와 연대의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6월14일밤 11시 동국제강 고이동우 죽음에 대한 회사와의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회사가 어느정도 사과의 의사를 내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시간 싸움이지만 이번 경우는 회사측도 시간 압박을 느낄 사안이었습니다.

또한 화물연대 파업도, 국토부와 화물연대의 5차 교섭으로 이날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안전운임제를 올해 일몰시키는 기한제를 완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안전운임제 확대를 ‘지속 추진’하기로 했다는 합의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은 문구입니다. 그리고 기한 연장이라는 미봉책이 되지 않기위해서는 법개정이 필요한데, 뒤늦게 협상장에 나온 여당 국힘이 협상내용에 불복하여 합의가 결렬된 후 국토부와 화물연대의 ‘노정교섭’의 결과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파업의 동력이 끌어오른 현 시점에 더 큰 위력으로 승리를 완전히 굳혀야하지 않나 우려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늦었지만, 사파기금이 현장 방문한 6월14일 같은 날에 윤석열 정부 초기에 벌어진 이들 두 중요한 투쟁이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동국제강과의 합의에 따라 고 이동우 장례일정이 다음과 같이 확정되었습니다. 고인의 가는 길에 함께 추모하고, 이 땅에 산업재해 사망이 사라지는 날까지 함께 연대 건투합시다!

– 글: 권영숙 대표

[동국제강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사망 고 이동우 님 장례 일정]
고 이동우님이 사망하신지 86일이 되어서야 장례를 치릅니다.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발걸음해주시기 바랍니다.

📍6월 16일 (목) – 동국제강 본사 앞
• 13시 : 동국제강-유가족 조인식
• 13시 30분 : 입장 발표 기자회견
• 19시 : 영결식
📍6월 17일 (금) – 포항성모병원 장례식장
• 13시 : 서울 출발
*신청 링크 : bit.ly/고이동우님_장례식버스 (6/16 17시 신청마감) • 저녁 : 추모문화제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공지
📍6월 18일 (토)
• 07시 : 발인
• 07시 30분 : 화장 이후 노제 (화장터 – 사시던 곳 – 동국제강 포항
공장 앞)
• 노제 이후 대략 1~2시경 포항 출발
문의 : 010-3260-1942 (지원모임 조혜연)

지난 6월12일 일요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서울 낙성대 비전향장기수의 집 ‘만남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6월 앵두 익을 무렵, 다시 방문해 마당에서 소풍하자 약속을 지키려고요. 앵두가 다 떨어지고 있다는 말씀에 부랴 부랴 채비하여 갔는데, 아주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울 것없이 유월의 붉은 앵두는 불타오르듯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고, 온다는 소식에 손주들 챙기듯이 미리 따둔 앵두 한 가방을 슬쩍 주시더군요. 마당에 지천으로 널린 푸성귀 따는 재미도 만끽했습니다. 상추, 깻잎, 곰취, 머위등등. 마당 농사는 과묵하신 김영식 샘이 지으시는데, 정말 잘 키우고 계십니다.

이어 맛있는 음식을 함께 준비해서 먹고, 각자 인사 겸 발언 자리를 가졌습니다. 권영숙 대표가 일본 여러 노동운동단체 방문시 감명깊었던 방식이라며 이름지은 일명 ‘일본 운동권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각자 앉은 순서대로 자기 발언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빠짐 없이 하여야하고, 위계와 상관없이 하게 됩니다. 해서 어린이들까지 모두 발언을 했는데, 모든 이들의 인사와 발언이 의미있고 좋았습니다.

권대표는 비전향장기수 존재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졌는지 오래전 얘기를 털어놓고, 사파기금의 성격과 비전향장기수 방문이 하등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회가 빚진 이들이 비전향 장기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소 28년이상 감옥살이하며, 단지 감옥살이만 한 것이 아니라 60년대이후 70, 80년대 세상 어디로부터도 단절된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과 ‘전향 공작’의 대상이 되어, 병을 얻기도 하고 고문당하다 죽어나가는 이들을 보면서도 전향각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들이 1백명에 이릅니다. 그 분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저항의 정신을 일깨워줍니다.

양희철, 김영식, 박희성 선생님들은 사파기금에 대해서 “음지중에서 음지”를 찾아준 고마운 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땅, 나의 신념의 땅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념을 버리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라며 “신념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 통진당 대표는 “민족주의 세력만 방문하는 집에 좌파세력이 방문한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했습니다. 흥미로운 판단이네요.

비전향장기수의 문제는 민족문제이자 통일문제이기도 하지만, 북한문제, 미국문제, 그리고 남한 인민주권의 문제와 제국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향’과 이념과 신념의 문제입니다. 권대표가 말했듯이, 어쩌면 감옥에서 물리적 폭력을 견디며 전향각서에 서명하지 않는 것보다, 온 사회 곳곳에서 부드러운 전향을 유혹하는 이 감옥 바깥 세상이 오히려 ‘전향하지 않고 자신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지 모릅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신념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분발 분투하겠습니다.

2022.6.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동영상:  IMG_4844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6월8일 삼각지역 1번2번 출구사이 지하1층에 있는 발달 중증장애인 3인과 장애인 부모 3인등 6인의 영정이 모셔있는 분향소를 권영숙 대표와 위원들이 조문방문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지난 5월, 정치권과 이 사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도, 장애인들의 지하철 출근투쟁도 외면하며 지자체선거를 향해 달음박질 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입이라도 다물고 있어야할 정치권에서는 국힘의 당대표라는 자가 나서서 아예 장애인의 투쟁을 자신들의 선거투쟁의 불쏘시개를 삼으려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그 때 청와대앞에서는 발달중증 장애인의 부모등 556명의 삭발식이 진행됐습니다. 오죽하면 장애인의 부모들이 자신의 머리를 깎으면서 눈물로 호소했을까요? 왜 이 나라와 사회는 눈물을 흘리고 삭발하고 단식을 해야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 한번의 시선이라도 둘까요?

그러나 장애인 부모들의 대규모 삭발식으로도 이 나라와 제도정당 정치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서울에서는 6살 발달장애인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투신 자살했습니다. 인천 연수구에서는 30대 중증장애인이 사망했습니다. 전남 여수에서는 60대 지적장애인이 사망했습니다. 경남 밀양에서는 40대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경기도 안산에서는 60대 발달장애인 부모가 사망했습니다.

이들 6인의 ‘얼굴없는 영정’이 지금 서울 삼각지역 지하1층에 차려진 분향소에 세워져있습니다. 서울 경찰청은 이 분향소를 처음 세울 때, 폭력으로 장애인들의 분향소 설치를 막아섰습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활동가들은 자신의 몸으로 자신들의 일부인 이들의 영정을 지키고 지하역사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삼각지역 분향소에서부터 혜화역까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투쟁은 매일 아침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신문의 뉴스거리도 되지않고, 국힘의 이준석 당대표가 6월1일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서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듯 언급하지 않아도, 전장연의 장애등급폐지와 이동권 확보, 그를 위한 장애인 예산 편성 요구 투쟁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또한 분향소 앞에서 장애인 활동가 1인의 삭발식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추모기간은 7월10일까지 입니다.
이들 6인의 영정앞에서, 우리 개인들이 이 사회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조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 역시 연대입니다.

2022.6.1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홈페이지: https://sapafund.org/?p=4714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sapafund/posts/7895088180509070/

*양희철선생의 육필편지를 옮겼습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의 발언을 들을 흔치 않은 기회이니 읽어보세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님께:

햇볕 따스한 봄날에 찾아주신 미쁜 이 있어 마음의 주름살 피고 고마음 담아 포근함에 쌓였습니다. 2~30년 넘게 조국의 이방지대 형무소에서 지시와 명령, 멸시와 모멸감을 감내했던 지난 날의 영어의 삶이 2~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굴종과 천시리에 살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합니다(보안관찰법). 떨쳐 버리고 양광의 밝음 만끽해도 누가 말할 사람 없을텐데, 그래서 천상 징역쟁이라 자조합니다.

석방이후 은혜 주신 분들이 한둘이리오만, 특별히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이란 어려운 말의 단체지만 알뜰하게 실속있게 운영해 오신 권영숙선생님께 고마움을 드리게 됩니다. 달포 전 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냈습니다. 이상규님의 소개로 알게 됐노라시며 신상에 대해 알고자 했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소개하였는데 사파기금이라 하셨던 생경한 단어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며 직관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고마움을 묻어둘 길 없어 고인 따뜻한 뜻을 몇 자 적어 권영숙 선생님께 드립니다.

낙성대 만남의 집, ‘정의 평화 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를 개략적으로 말씀드렸고 우리 성원 양원진, 김영식, 박희성, 양희철 네 명에 대해도 대략 신상 말씀 드렸었지요. 그런데 4월 6일인가 한번 찾아오시겠다고 전화가 왔었고, 그 때 오셔서 함께 한 성원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오신후 뵈오니 권영숙 선생님을 위시로 남자 두분 여성 3분이 함께 오셨어요. 음료수 2박스, 배 1박스 참외 1박스, 상추와 파 1박스, Y샤스 두벌씩 합 8장, 그리고 현금으로 2,000,000원 주셨습니다(이후 양심수 후원회 계좌를 통해서 기금 입금 2,000,000원 추가). 안 놀랠 사람 있겠어요. 푸짐한 선물 고맙습니다.

고마움 안고 무엇으로 보답할까. 역시 건강하게 남북이 하나될 때 까지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다짐했습니다. 비록 94세 양원진 선생님은 입원가료중이나 하루 빨리 쾌차하시어 다 함께 인사드렸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 거주이전의 자유, 포로라할지라도 전쟁이 끝나면 본래 소속한 곳으로 보내는 것인데, 죄 있어 형량을 다 살고나면 본래의 곳으로 보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권영숙 선생님! 하시는 일 뜻대로 되시기 바라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 인사 여쭌다고 전해주십시오.

2022. 04.13.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삼가 양희철 드림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 지원을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사회적 노동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전향장기수의 집인 ‘만남의 집’에 기금 4백만원 지원과 물품 연대방문하였습니다. 지원 금액은 총 4,436,260원입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비전향장기수’는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수백명, 혹은 100명에 이르던 비전향 장기수중 60명은 북한으로 송환되었고, 남에 억류된 40명중 30명은 원하는 체제인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남한에 억류된 채 생존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이제 단 10명입니다. 이번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방문하고 지원한 ‘만남의 집’은 현재 유일한 단체 거주시설입니다.

비전향장기수는 말그대로 ‘전향’을 하지않았다는 이유로 장기 수감된 죄수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전향’은 남한체제로의 사상적 전향을 말하며,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부터 민주화이행이후인 1999년까지 형기가 만료되었으나 전향서에 서명하지 않은 정치범들을 장기구금 상태로 두는 ‘미전향 장기수’ 제도를 유지했고, 그들중 일부를 순차적으로 풀어준 후에는 지금도 ‘보안관찰법’에 의해서 사회 안에서 감시하고 활동의 자유를 제약해왔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는 단지 북한에서 ‘대남 사업’을 위해(비전향장기수의 표현대로 하면 ‘통일운동’을 위해) 파견된 간첩들(통일운동가들)뿐 아니라,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군의 토벌로 잡힌 빨치산들, 남한안의 자생적인 사회주의자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등 3가지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결국 ‘사상’을 이유로 구금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고 남한의 우월한 체제’에 살고 싶다는 내용의 ‘전향각서’에 서명하게 만들기 위해 이른바 ‘사상공작’을 감옥안에서 집요하게 진행했습니다.

사상공작은 사상을 포기하도록 만들만큼 고통스러운 고문공작을 말합니다. 일제에 부역했던 조선인 치안경찰 노덕술등의 고문수법은 비전향장기수에게 가해진 사상공작으로 부활하여, 이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에까지 이어졌습니다. 남한 사회가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인권유린, 사상공작을 60년대부터 수십년간 방치하다가 내부의 시민들에게 가해진 무서운 국가폭력, 국가테러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러므로 이들에게 빚졌습니다. 민주화이행이후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이들,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으며 전향공작에도 굴하지 않았고, 석방후 줄곧 북으로 가길 원했던 이들중 40명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명단에서 배제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강제억류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을 대한민국이 붙잡아둘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체제라고 감히 당당히 말할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이 나라 국민들이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안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면, 비전향 장기수 생존자 10명을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이 원하는 땅으로 보내야할 것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넓은 의미의 사회적 연대와 사회적파업의 원칙을 지향하며, 이에 걸맞는 사회운동과 사회적 소수자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왔습니다. 이번에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에 대한 물품지원과 ‘양심수 후원회’를 통한 기금 기원액은 총 4,436,260원입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연대! 투쟁!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2년 4월 12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 지원공지글: https://sapafund.org/?p=4707
– 관련 후기:

사파채널 https://t.me/c/1054441297/826

*기금연대 참여방법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방법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https://bit.ly/3D04xK2 (여기 클릭)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2년 4월6일 오후 서울 낙성대 근처 비전향장기수의 집 ‘만남의 집’을 연대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낙성대 서울미술고 아래 마당있는 집인 ‘만남의 집’은 현재 남한에 남은 유일한 비전향장기수의 집입니다. 이전에는 광주와 서울 갈월동등에 비전향장기수의 집이 있었으나 이제 이 곳뿐입니다. 이유는 생존자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남한내 ‘국가보안법’ 체제하 비전향장기수의 수는 대략 93명 정도이고, 비전향장기수로 처음 이름이 알려져 북한 보내기 운동이 벌어져서 북송된 이인모 노인을 비롯하여, 이후 2000년 9월 2차 북송이 이뤄졌습니다. 이 때 남한정부가 제외하여 북으로 가지 못하고 남은 40여명은, 20년이 지나면서 30명이 돌아가시고 현재 남한에는 10명이 남아있습니다. 그중에 ‘마지막 여자 빨치산’으로 불린 정순덕선생도 계십니다. 정순덕 선생 역시 만남의 집에 거주하다가 2004년 돌아가셨습니다.

현재 남한에 ‘억류’된 생존자 10인중 6인은 각자 자신들의 집에서 거주하고, 4인이 현재 만남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박희성 선생이 88세, 양희철 선생이 89세, 김영식선생이 90세이시고, 최고령자 양원진선생은 94세로 코로나19 확진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퇴원하셨으나, 다시 췌장수술로 입원중입니다. 매우 위중한 상태입니다.
박희성, 김영식 선생은 1963년 남파됐다가 체포된후 27년간 남한 감옥에 억류돼있다 풀려났고, 남한 출신인 양희철선생은 ‘고려대 지하당사건’으로 투옥됐다 석방된 후 북한으로 가셨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체포되어 30년간 감옥에 있다 1999년에 이뤄진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석방’때 나왔습니다.

사파기금이 방문하겠다고 연락드리자 많이 신기해하시기도 하고 반가워하시기도 했습니다. 방문했을 때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노동연대에 대해서 매우 큰 관심을 표하셨고, ‘사회적파업’의 의미를 잘 설명해드렸습니다. 가지고 간 물품들을 전달하고, 약간의 기금을 전달했습니다.

만남의 집은 마당에 오래된 수령의 온갖 과일 나무과 봄꽃나무들이 어우려져있었습니다. 박희성 선생이 정원사이신데, 한켠데 모 농사도 지으시고, 미나리며 머위등으로 식재료 삼는다하시네요. 언제 앵두나무 열매 맺는날 마당에서 소풍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좁은 마당, 조금씩 퇴락하는 2층양옥, 방문객들을 맞이하매 보이시는 반가움에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느끼며 돌아섰습니다.
앵두나무 열매들이 빨갛게 열릴 때 꼭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습니다.

2022. 4. 09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2년 4월5일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세종호텔 정리해고사태, 과연 정당한가?” 토론회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공동주관으로 열었습니다.

  세종호텔투쟁은 2021년 12월10일 민주노조 전원에 대한 정리해고 단행으로 노조탄압에 대한 투쟁에서 정리해고 철회투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근기법24조 정리해고조항이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해고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되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사학자본이 교육사업을 위한 수익성 사업으로 경영하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에 단행한 ‘정리해고 학살’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15명이상, 줌 Zoom 참여로 최대 25명 참여하였고, 발제와 토론은 실천적으로 명료하고 내용은 알찼습니다.

  좌장을 맡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는, 코로나19 확진으로 발제를 하지 못한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장을 대신하여 간단히 ‘코로나19와 노동자투쟁, 그리고 정리해고 철폐의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습니다(자료집에 미수록). 그는 정리해고철폐투쟁 20여년에도 불구하고 폐지하지 못한 “정리해고 조항이 철폐되지 않는한 ‘노동재난’도 정리해고를 비껴갈수 없다”며 이 시점에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곧추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전지구적 전염병이 모든 사람들이 걸릴 수 있는 재난이고, 노동자투쟁과 파업, 집회 시위 모두 예외없이 제한할 수 있다고 하면서, 노동자 해고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단행하는 이중성과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발제자는 ‘세종호텔 경영행태 분석과 사학자본 수익사업의 문제점’을 발표하였습니다. 발제는 첫째,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정리해고 조항을 충족하기에는 세종호텔의 매출추이, 매출원가, 인건비 추이를 보면, 2020년 상황은 분명히 나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이례적인 상황임이 여실히 드러남을 재무자료로 실증분석했습니다. 또한 사학법에 따라 사학자본이 ‘수익성기본재산’으로 분류된 자산에 대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지만, 사학의 재정위기를 이유로 사업에 거의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 ‘독소조항’과 사학족벌들이 이를 악용하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세종호텔 투쟁이 대학의 민주화, 사학법 개정투쟁과 연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박종남 발제자는 ‘세종호텔 쟁의관련 법리적 검토’에서 근기법24조 정리해고조항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외에도 해고회피노력, 공정한 해고기준과 대상자 선정, 노조에 통보하고 성실협의할 의무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유효”한데, 세종호텔의 경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위 발제문으로 이미 논파된)외에 나머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직장폐쇄는 비조합원들에 대한 임금면제와 사업장으로부터 파업인원의 점유 배제를 통한 영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제임에도 불구하고, 세종호텔의 경우 “쟁의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직장폐쇄”를 집행하는 선택적 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함으로 부당노동행위이자 위법적 직장폐쇄로 봐야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어 3인의 노동자들의 현장발언이 있었습니다.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지부장은, 정리해고에 관한 여러 복합적인 논점들을 유념하고, 사학자본을 상대로 한 투쟁이 단지 세종호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좀 더 넓게 우리의 투쟁을 바라보고, 요구하고 투쟁할 때 개별 사업장의 투쟁으로도 쟁취하는 폭이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노조 지부장은, “코로나19 정리해고 첫사업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투쟁하지만 회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정년을 넘기만을 기다리는 속에서 다시 힘을 내어 사회적인 연대와 지지속에서 세종호텔노조와 정리해고 철회 공동투쟁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최대근 관광레저산업 노조위원장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레저등 업종에서 싸우기 위해 소산별 노조를 만들었다면서, 여소야대속에서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을 압박하는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많은 토론들이 있었습니다. 법적인 검토와 지노위-중노위 판결, 법원 판결등 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과 소요되는 긴 시간, 그리고 ‘사법권력 카르텔’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했습니다. “결국 법이 노동자 편을 들든 들지 않든, 자본이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한 법적 판결의 의미는 제한적일뿐이며, 노동자들의 단결, 상급노조단체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사회적인 연대의 힘으로 승리하고 결과를 만들어야한다”는 좌장의 토론회 결론에 모두 공감했습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이번 토론회에서 “우리의 투쟁이 옳다!”, “우리가 옳다!”는 생각을 더욱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무장하여, 앞으로 투쟁에 방향을 삼는데 도움이 되는 토론회였기를 바랍니다.

2022.4.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세종호텔노조 정리해고 토론회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공동주관하여 4월5일 엽니다. 연대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토론회]
근기법 24조 정리해고를 다시 소환한다
“세종호텔 정리해고사태, 과연 정당한가?”
-사학자본의 정리해고 학살과 포스트 코로나를 향한 올바른 해법

○ 일시 : 2022년 4월 5일(화) 오후 6시
○ 장소 :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
○ ZOOM 회의 링크 : https://bit.ly/세종호텔토론회

○ 좌장: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발제
유흥희_비정규직이제그만_ 코로나19 노동재난과 노동자투쟁
윤지영_공익인권법재단 공감_ 세종호텔 경영행태 분석과 사학자본 수익사업의 문제점
박종남_민주주의법학연구회_ 세종호텔 쟁의관련 법리적인 검토

○ 현장 발언
고진수_세종호텔노조 지부장
김계월_아시아나케이오노조 지부장
최대근_관광레져산업노조 위원장
노경봉_신도여객노조 지회장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주최: 세종호텔노조지부, 세종호텔정리해고철회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늦었지만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3월17일 세종호텔 노조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 철회! 오십리 걷기’ 도보 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세종호텔 노조는 12월10일 노조 조합원 전원이 정리해고된 후, 정리해고 철회 투쟁중입니다. 도보행진은 3월16일 세종호텔 자본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여러 자회사들과 세종대학교, 세종사이버대학교등을 첫날 행진한 후에, 3월17일 사업장들에 대한 근로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고용노동청을 거쳐 여의도 국힘과 민주당 당사앞의 짧은 집회 및 연설 등으로 진행했습니다.
사파기금은 권영숙 대표와 홍호석 집행위원이 참석하여 일부 구간을 함께 걷고, 민주당사 앞 휴식 시간에 음료수와 에너지 충전용 간식을 제공하는 물품연대를 진행했습니다.
관련 사진은 없네요. 사파기금이 스스스로 하는 활동을 사진 찍기를 잘 못하는데요. 주최측이 찍은 사진도 없어서 이렇게 국힘과 민주당사 앞 도보행진단 모습으로 갈음합니다. 연대 투쟁!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승패의 분기점

처음에는 이재명 후보의 승산이 훨씬 크다고 봤다. 큰 복병이 없는 한 이재명이 당선될 것이라고 봤는데, 선거의 기세 장악이라는 면에서 대장동보다는 김혜경이 더 큰 복병이었다.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보다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을 둘러싼 스캔달이 표심에 더 큰 영향을 줬다. 시점 상 이재명이 치고 올라오는 일만 남았을 때 그건 꽤 찬물이었다.

반면 대장동의 경우, 혹은 부동산 정책 실패라고 얘기되는 진단은 사실은 모호하다. 그러면 부동산 정책이 국힘과 비슷했어야한다는 건가? 서울에서 30만 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대장동,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이재명 패배의 큰 원인으로 진단하는 것에 대해선 민주당 쪽, 위성정당 쪽, 민주당 지지자와 언론들까지 대체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으로 모호하다.
부동산 규제를 더 했어야한다는 말인지, 다주택 소유자 과세나 갭투자 등 부동산용 금융 규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인지. 주택공급을 늘렸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공공주택 임대주택 등을 더 늘려야했다는 말인지, 그린벨트 풀고 용적률 제한조치를 풀었어야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린벨트나 공원부지 전용을 막고 용적률 제한도 계속 유지하면서 도시 개발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건지.

이들이 말하는, 그리고 언론이 말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진단과 해법이라는 면에서 모호하다. 서울에서 30만 표 이상의 차이, 이재명을 지지한 지역구들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계급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이 모호함이라니. 다르게 말하면 민주당은 대선에서 부동산이익동맹을 해체하여 승부를 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동산이익동맹에 붙어서 혹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승부를 내겠다는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양다리를 걸쳤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의 모호함이 민주당의 패착이라고 생각한다(이재명은 결국 국힘의 부동산 정책 따라 하기로 나섰지만 뒤늦었고, 그건 승부수가 될 수 없었다).

2. 후보 단일화 문제

윤석열의 우위가 거의 굳혀진 것처럼 혹은 가끔 비등한 것처럼 나올 때, 3위 후보 안철수를 잡는 것이 둘 사이의 레이스였다.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윤석열과 단일화 논의에서 안철수가 끝까지 딴청을 부리는 것을 보고, 이재명이 꽤 큰 정치적 교환과 약속을 한 게 아닌가 했는데, 왜 그건 성사되지 못했을까?

일부는 안철수가 윤에게 넘어간 것이 ‘약점’을 잡혀서가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편의적인 생각이다. 현 정부가 민주당 정권이다. 안철수가 약점이 있다면 양쪽 다 잡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민주당 쪽은 ‘감투’와 ‘자리’다툼이 워낙 심한 당이라서 안철수에게 무엇도 약속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김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나란히 TV 후보 토론회에 나올 때부터 그가 이재명 캠프로 갈 것이라고 봤다.
고로 이재명 후보는 김혜경과 안철수 변수가 없었다면 이래저래 흔들리는 표를 긁어모았을 것이다.

3. 두 개의 상수- 민주당 쪽에서

그리고 두 개의 상수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나는 호남의 몰표. 80~90%의 몰표를 줄만큼 ‘당적인 충성도’가 높은 지역. 영남은 차라리 몰표 주기 측면에서 많이 무너졌고, 이미 그런 선거의 예가 많다. 하지만 호남은 여전히 민주당의 아성으로 굳건하다. 문제는 호남의 몰표는 결국 호남 보수 ‘토호’들의 이해집단이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으로 계속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과연 이게 꼭 긍정적일까? 그래도 좋다는 건가? (호남에서 진보정당은 거의 0표에 가깝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비판적 지지다. 이는 대선 캠페인 마지막에 ‘샤이(shy) 이재명’이 아닌 ‘적극적지지’로 쏟아졌다. 이번 대선에서는 비판적 지지론자들 사이에 ‘샤이 이재명’은 없었다(샤이 shy : 부끄러운, 수줍은, 내성적인). 대놓고 적극적 지지 선언이 속출했으니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 앞에 침묵하던 소위 비판적 지지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노골적으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이번에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쳤다. 또 이번엔 무엇이 그리 다르다는 건지, 자신이 이번엔 다르다고 여기는 긴급성과 정당성을 강변했다. 선거 직전에 교수연구자, 민주화운동 인사, 명망가, 페미니스트 등부터 다양한 직업, 이력과 다양한 과거 이념에서 지금에 이른 이들이 마치 커밍아웃하듯 이구동성으로 나섰다. 대체로 혼자 조용히 표 던졌을 이들이 이런 지지선언 퍼레이드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재명 후보를 찍겠다는 정치적 커밍아웃을 위해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신도 찍으라는 설득과 압박을 위해서다.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건 다분히 중도층이나 주변 지인들,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비판적 지지’라고 부르긴 더 이상 어렵다.

그러니 이 두 개의 상수-즉 첫째 호남의 지역주의, 둘째 민주화이행 이후 참 오래도 지속되는 ‘비판적 지지’가 아닌 ‘민주대연합’의 논리가 이재명을 살릴 수도 있다고 봤는데. 간발의 20만 표 차이로 졌다. 민주대연합, 다 긁어모아도 졌다. 여하튼 그러면 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다 긁어모았는데도 졌다는 것.

*수족을 자르는 심정으로, 다른 후보를 찍고 싶었으나 이재명을 찍었다는 2030 여성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몰아줬어도 이재명은 졌다. 이들에게 ‘다음에도’를 기대하지 말라. 2030 여성들의 ‘비판적 지지’는 87년 민주화이행 이후 지속돼온 소위 비판적 지지와는 좀 다르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그들의 투표가 자유주의 정당을 향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정치를 벗어난 투표행위일지 아닐지. 이들의 투표가 선거 막판에 “여성에 대해서 덜 혐오하는 후보를 뽑자’고 했던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의 선동적인 글의 의미와 얼마나 다를지. 이들의 투표에 대해선 여기까지만 얘기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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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보는 방식

하지만 민주당과 충성스런 지지자들은 ”졌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무게를 제대로 두지 않는다. 선방했다고 하고, 역대 최소 득표 차이라고 말하면서,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계속 물타기 하고 있다, 남의 당을 탓하고 있다. 언론 탓을 하다가 대중을 탓한다. 정작 자기 눈에 들보에 대해선 티끌인양 한다. 그게 바로 민주당 자유주의 정권의 한계다. 제도정당으로서의 한계다.

즉 87년 6월항쟁과 민주화이행이 부활시킨 보수양당 체제 안에서, 보수 우파의 맹공 앞에 자기 입지조차 잘 유지하지 못하면서 줄곧 무능을 보이다가, 어부지리로 혹은 구조적인 맹점 속에서 계속 생존을 도모하는 앙상한 민주대연합의 이분법 정치, 유권자(시민)들을 인질로 잡아서 하는 인질 정치, 극우를 피하려면 최악을 피하려면 우리를 찍으라는 공포정치. 좌파의 진입을 막는데 우파보다 더 의도적인 봉쇄정치.
이런 정치가 앞으로도 과연 얼마나 유지될까. 이미 균열은 가고 있다.

5. ‘또 다른 패배’의 의미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민주당의 패배가 아니다. 민주당의 패배 말고 ‘또 다른 패배’에 주목해야한다. 민주당을 넘어서려면 이 패배를 더 눈여겨 봐야한다. 말하자면 이번 투표에서 윤석열을 찍은 것이 단지 ‘강남’의 계급투표만일까. 대중의 수준을 탓하려고 하면 탓하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좀 더 지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열과 이재명 사이에 있는 ‘부동층’. 그들은 중도층일 수도 있고, 대안부재 속에서 부동층들도 있다. 윤석열을 찍은 많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어서 민주당을 찍은 ‘비판적지지’도 마찬가지다(비판적 지지 운운하며 적극적 지지를 조직하려 든 이들은 자신의 투표와 선거 캠페인 결과를 고스란히 받길 바란다. 다른 이들에게 윤석열 정권하에서 벌어질 참상을 겪어보라며 저주문을 쓰고 악담을 늘어놓는 것은 참 꼴불견이다. 이미 마음이 떠나는 이들을 향해서 할 말은 아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 5년 뒤를 언제나 기약할 수 있는 계층과 집단은 다르다. 그런 이들이 지금 한번의 선거에 세상이 다 무너진 듯이 말한다. 단지 이 한마디는 하고자 한다. 이제야 선거결과를 보며 희망 없음에 절망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하는 이들, 그들과 연대 운동하는 이들은 문재인 정부 내내 그 마음이었다. 앞으로 그 쓰린 마음으로 기억해보길. 누군가는 계속 고통 받고 쓰린 마음 부여잡고 살았다는 것을).

이들에겐 이제야말로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 더 미룰 수 없는 선택지. 그러나 이번에 동시에 고스란히 그 위기의 징후적인 모습을 드러낸 선택지.
내가 지난 2월 9일 ‘2022년 대선・지선 권력재편기에 대응한 민교협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부재’의 위기, ‘불가능성’의 위기로 규정했던 선택지.
그 선택지에 대해서 ‘왜’에 이어서, 이제야말로 ‘어떻게’를 고민해야할 때다.
이후 ‘위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쓸 기회가 있길 바라며, 다음 덧말을 추가하는 것으로 맺으려한다.

6. 덧말: ‘9176명’에 대하여

사회주의 후보 7번을 찍은 이가 9176명. 1만 명을 넘지 못해서, 너무 희소해서,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서, 이 정치지형에서 누가 나 같은 사람일까. 궁금하다는 것이다. 3억 이상 들여서 후보 전술하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 나는 합당과정도 선거과정도 공약도 모두 비판적이었다. 좀 더 잘해야 하고, 미리 준비했어야하고, 그리고 공약은 수정되어야한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서 결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6월 지선을 앞두고 정신 차린 민주당이 정치공학적으로 지방선거 선거구 개혁에 나서고 소수 정당들을 끌어들이고, 그리하여 그 결과가 조금 나아지면 결과론적으로 대선결과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열려 있다. 하지만 이는 민주연합의 구도 안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방식이다. 즉 민주연합의 구도도 해체되기는커녕 그만큼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정의당의 문제였다)

하지만 ‘사회주의후보’라는 그 벽보만으로,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사지선다형’에서 4지로서 사회주의 후보를 과감히 떠올리고, 그를 찍은 9176명은 중요하다. 4지후에 3지선다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직후 그들이 스스로 나서서, 우리 구역에서 사회주의 후보 찍은 우리 한번 만나요! 라는 이 자연스러운 정동이 이번 7번 후보가 얻은 최대의 소박한 수확일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임을 조직하는 것.
어디서든 만나길 바란다.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다음이 가능한지 머리 맞대고 소근 소근 속삭여주길 바란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민주동맹의 한계와 좌파정치의 이후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2022년 대선 과정과 결과 (newscham.net)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 지원을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한 고 백기완선생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 서각구매에 함께합니다. 서각구매 대금으로 지원한 금액은 2백50만원입니다.

고 백기완 선생은 민족주의운동으로 시작하여 민중운동의 대열에서 복무하며 민주화이행이후 보수 양당 구조 속에서 ‘민중후보’로 2번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습니다. 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대중조직으로 정립한 2000년이후 신자유주의 속에서 비정규직 대 정규직 이중구조가 고착된이후에 백기완 선생은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에 언제나 가장 많은 힘과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서울 혜화동 통일문제연구소는 점차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문턱이 가장 낮은 집이 되었습니다. 그 집을 ‘백기완 기념관’으로 재건하기 위해 비정규 노동자들, 문화 노동자들이 함께 힘 모아 서각 판매를 통한 기금마련에 나섰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목표를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드는 시도를 한시도 굽히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고 백기완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에 서각 구매로 동참합니다. 앞으로 사파기금 사무실에 걸릴 서각 현판입니다. 백기완선생이 쓰고 문정현신부가 조각한 서각은 다음 문구입니다:
“마냥 쓰러질 것만 같애도 눈깔을 똑바로 뜨고 곧장 앞으로 앞으로”.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연대! 투쟁!

2022년 3월 7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지원공지 82번째 받는말]
백기완기념관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서각판매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82번째 기금을 지원했습니다. 백기완기념관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한 고인의 마지막 유지를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기념관 이상의 노동자연대의 활동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기금 마련 전시 <기죽지마라> 기획자인 신유아 활동가의 [받는말] 전문입니다.

[받는말]

“백기완추모1주기 기획전시 <기죽지마라>를 기획한 신유아입니다.
2022년 2월 15일 선생님 추모1주기를 맞아 통일문제연구소를 백기완기념관으로 검토하던 중 시설이 낡고 빗물이 새는 실내를 수리 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져 기획전시를 하게되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 지팡이를 짚고 오셔서는 호통치셨던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호통은 응원의 호통이었습니다.
따뜻한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봉투를 건네주고 가셨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힘들다고 꼭 현장에 와주시라고 연락드리면 비가와도, 눈이와도, 한여름 겨울 없이 몸이 허락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셨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선생님의 공간을 고쳐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제 빈공간에 선생님은 안계시지만 투쟁하는 노동자가, 연대하는 동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선생님의 공간을 만들고 그 뜻을 기억하고자함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취지입니다.
서각 36점의 판매 수입은 ‘백기완 선생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부자친구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의지와 뜻이 모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해고 노동자였으나 복직했고 여전히 위태로운 노동자도, 자본과 지속적인 대치현장에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도, 대학시절 백선생님과 투쟁현장을 누비던 백발의 어르신도, 선생님의 가족들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서각을 구매하셨습니다.

특히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후원구입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지원하기도합니다. 투쟁당사자의 어려움도 이를 연대하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헤아리는 마음이 너무 고마운 기금입니다.
십시일반 사람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에 후원한다는 것은 후원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기에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앞으로 더 많은 투쟁현장과 연대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후원과 지지를 이어가길 바라며 백기완 노나메기 재단도 함께할 것입니다.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CMS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https://bit.ly/3D04xK2 

세종호텔노조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이 지난해 12월10일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종대학교를 거느린 사학자본이 다양한 문어발식 경영속에서 몸피를 키우면서, 수익사업으로 경영하던 세종호텔 노동자들을 코로나19를 핑계로 대량 정리해고를 단행하였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는 지난 3월3일 세종호텔노조가 3월9일 대선을 전후한 집중적인 투쟁을 선포하면서 연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연대발언하였습니다. 그 전문 요약 간단히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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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리해고를 철폐시키지 못하여, 한국사회에서 정리해고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정리해고 철폐 투쟁이, 결국 일부 노동자들의 원직 복직, 혹은 복직후 퇴직등으로 귀결되면서, 정리해고 철폐투쟁은 다시 원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고, 호텔산업등 서비스업종등 다양한 업종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앞에서 모든 사회와 국가들이, 정부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손쉬운 해고’를 쉽게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19가 전지구를 덮친 팬데믹이지만, 노동자 해고를 대하는 각국의 대응은 다양합니다. 노동자 해고를 아예 금지시키고, 나아가 불황으로 가동이 중단된 경우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국가가 지불하는등 해고를 막는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됐습니다. 팬데믹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와야하기 때문이고, 산업을 가동해야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자본이 정리해고라는 칼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는데 국가와 촛불정부라는 현정부는 방조하고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도 코로나19 시국에 세종호텔에서 벌어진 정리해고를 당연한듯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앞두고 있는 3월18일 진행될 지노위 정리해고 심문 결과도 우려스럽습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노동없는 대선’이라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일부는 ‘노동운동없는 대선’이라고 합니다. 아니오. 노동이 없는 대선 아닙니다. 노동에 대한 입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국힘 후보는 반노동, 노동적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약들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는 노동을 안는 듯한 공약들은 실천가능성이 모호하고, 반노동적인 자본을 안는 공약들은 적극적입니다.

그렇게 뻔하게 반노동적이고, 노동존중이 없는 공약들을 남발하는 양대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노동’ 있는 대선을 읍소하고 구걸하고 요청하는 것이 가당할까요? 지금은 노동없는 대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적대적인 대선이 문제이고, 노동자 투쟁없는 대선이 문제입니다.

먼저 당사자인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앞으로 나서십시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운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싸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연대를 구하고 후회없이 싸우십시오. 민주노총은 대선 앞두고 두 세번의 온오프 집회 개최한 것으로 대선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게 최선입니까?

노동자 투쟁없는 대선,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없는 대선을 멈추고, 투쟁으로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갑시다. ”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백기완 선생에 대한 우정과 동지애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백기완, 이 이를 1980년대 알았을 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유는 간략히 3가지였지요. 하나는 백 선생은 백범 김구를 존경하여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현 ‘통일문제연구소’를 혜화동에 차렸지만, 저는 백범 김구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습니다. 둘째는 그가 50대의 나이에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냅다 호통치며 활동하는 모습이 영 문화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데, 저는 백기완 후보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초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나서 완주하지 않고 투표일 이틀 전 완주 포기선언을 한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백기완 후보가 민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독자(민중) 후보를 마지막에 포기한 것은 사실상 민주화 이행 이후 진보정치가 민주연합정치에 발목 잡히는 첫 사례였기도 합니다. 그 첫 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완주했다면 노동좌파 정치의 또 다른 길을 열었을 것이라고 가끔 생각합니다.

그런 백 선생과 제 인연이 제가 미국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만 하는 서생으로 만족치 못하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을 제안하고 만들어 노동연대에 뛰어들면서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전에 ‘진보 지식인 모임’에 가끔 불려가면 뵙고 인사했지만 건성이었지요(사실은 비판적이었지요). 그리고 사파기금 활동을 하면서 제가 가는 많은 노동자 투쟁 현장에 백기완 선생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소수 소규모 투쟁 현장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백샘과 저만 참석하는 기자회견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추운 날 맨 앞에 앉아있으면 뒤통수에 수많은, 때로는 얼마 안 되는 눈들 앞에 있기에 태도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고역은 생리현상입니다. 춥고 몸은 뻣뻣해지고 엉덩이는 아픈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저보다 백기완 선생은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도 백 선생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이였습니다. 행진 시작하면서 집회가 정리됐을 때 화장실 가려고 서두르시다가 함께 길거리에 풀썩 앉아버렸던 기억도 있네요. 그 얘기를 백 선생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만나면서 저는 백기완 선생에 대한 동지애가 싹텄습니다. 그리고 백 선생을 방문하면서 이런저런 과거 얘기를 하면서 우정이 생겼습니다. 1987년 독자 후보 출마를 마지막에 포기한 이유도 따져 물었고 답을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하면서 풀 것은 풀었습니다. 그는 드물게도 우파 민족주의자에서 왼쪽으로 계속, 노동과 함께 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이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를 급진적인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그렇게 자가 발전하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과를 출세와 자리로 보상받으려고 하거나, 좀 더 안온한 삶, 뒤로 물러서는 삶으로 돌아앉습니다.

이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변혁과 운동은 더욱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민교협 노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2012~2015년 그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더이상 죽이지말라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 활동하던 때였지요. 그 때 그 시기의 엄중함을 더욱 절감하고,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비적인 행동을 했더라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운동의 지형이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 선생과 함께 그 시절에 여하튼 전선에서 버티자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너무도 불충분했습니다. 버티는 것을 넘어서 도모를 했어야합니다. 하지만 그건 백기완 선생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백 선생을 추모하는 방법은 묘역을 단장하고, 주기마다 기념행사들을 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백 선생이 현장에 버텼던 것처럼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현장에서 버티고 끝까지 항상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시대의 엄중함을 긴급함으로 담아서,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기완 1주기 행사 제목이기도 하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일구는 이”라는 뜻을 담은 ‘새뚝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백 선생을 2019년 2월 14일, 바로 3년 전 어제죠, 뵈러 갔었습니다. 세뱃돈 만 원 받으려고요. 그게 그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백 선생이 제가 방문한다고 해서 무슨 말을 해줄까 미리 고민했다면서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은 아래만 보지 하늘을 보지 않는다”.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고맙습니다.

2022년 2월 15일 고백기완 1주기에 마석 모란공원에서.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백기완 선생 1주기에 – <font color=”red”>[기고]</font>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newscham.net)

사파기금은 새해 설을 맞아 투쟁현장 6곳에 사과즙과 사과를 보냈습니다. 사파기금과 함께 9년째 복숭연대, 사과연대를 해온 ‘땅의 마음, 지심’의 후원으로 올해도 하게 되었습니다.

위로부터 한국지엠 창원 비정규지회, 노량진수산시장 투쟁하는 상인들, 한화생명노조, 세종호텔노조, 아시아나 케이오노조에서 ‘잘 도착했다’고 인증하며 보내주신 사진들입니다. 그외에 세브란스병원 비정규노조에도 보냈습니다.

해마다 잊지않고 물품연대 후원을 함께 해주시는 지심 농부들의 ‘여여한’ 마음 참으로 좋습니다.
지심과 함께 해마다 하는 연대에 대해서 반갑고 든든합니다. 땅의 마음이 노동자들에게 닿기를.
사파기금이 연대의 매개체 역할을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연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투쟁하는 이들은 이 연대 잊지 말고 꼭 연대로 환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파동행> 1호 목차 및 전문  (클릭)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사파동행> 1호(2022.01.18.)

모든 힘을 연대활동에 쏟느라고 정작 단체 소식지 하나 10년동안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10년 활동 결산결과, 2011년이후 총 218회 연대활동을 했고, 월평균 18회 기금 지원 연대활동을 했습니다.  단체 활동 홍보는 항상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의 연대자들에게 사파기금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소식지 발간을 계속 미룰 수 없습니다.

10주년을 마무리한 올해부터 사파기금의 소식지를 내기로 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소식지 <사파동행>을 발간합니다.
읽어주시고,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1. 사파기금 소식지 겸 뉴스레터 제목은 <사파동행>입니다.
<사파동행> 많이 사랑해주시고, 구독해주세요. 하단에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2. <사파동행>은 사파기금의 연대활동과 노동을 사회적 의제화하는 다양한 담론활동을 담을 예정입니다. 기금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고, 이 땅의 노동 의제에 대해 관심있는 연대자들께서는 꼭 구독해주세요.

3. <사파동행>은 이 땅의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 시선을 두고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사파동행>에 투쟁과 연대 소식을 실을 예정입니다. 관심 가져주세요.

4. 사파기금은 연대자들이 동력입니다.  소중한 연대자의 목소리를 “연대자의 발언”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오랜, 그리고 새로 동참한 연대자들의 발언을 경청해주세요. 첫  호 “연대자의 발언”은 아시아나케이오노조 김계월 지부장의 글입니다.  https://sapafund.org/?p=4566

5. <사파동행>은 격월 둘째주 화요일 발간을 시작으로 차차 발간횟수를 늘려갈 예정입니다.

연대자 여러분,
사파기금과 화요일에 만나요!

2022.01.1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가짜뉴스인가이승복 어린이는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는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 3면(사회면) 머리기사였고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동료 기자들은 조선일보 기자를 사건 직후 현장에서 보지 못했고, 이 내용을 증언했다는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이승복의 형은 의식불명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나 역시 이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구전’으로 들었다. 그만큼 전설적인 ‘오보’ 혹은 요즘 말로 ‘가짜뉴스’에 얽힌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1992년 김종배 <미디어오늘> 국장이 당시 사건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장남 승권 씨(승복 형) 증언을 토대로 “(사건 발생 직후)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저널리즘> 가을호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승권 씨는 동생 승복이 살해된 뒤 자신이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이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에서 전 기자협회장 출신인 김주언 사무총장 등이 ‘언론계 50대 허위·왜곡보도’를 선정하면서 이승복 발언 조작을 포함했다. 1992년 <저널리즘>에서 발간된 글에 대해서 몇 년간 가만히 있던 <조선일보>가 이 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 김주언, 김종배 두 사람을 고소고발하면서 오보논쟁은 법정으로 비화됐다. 2006년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해 김주언 전 총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김 전 편집국장에게는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의혹 제기”는 가능하다면서 1992년 기사에 대해선 무죄를 내리고, 그 기사를 토대로 언론계 50대 허위 왜곡보도를 선정한 것은 유죄로 판결하는 기묘한 판단이었다. 결국 대법원 판결로 오보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오히려 묻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아랑곳없었다. 반공교육 앞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유신체제’의 아이들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선배 어린이의 한을 이어받기를 강요받았고, 해마다 붉디붉은 ‘멸공’ 포스터를 그려내야만 했다.

2. 유신 이후 아이들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남한의 재벌 2세

그렇다면 유신체제 이후의 아이들은 어떨까? 유신체제 때 국민교육헌장 세대도 아닌 신세계 부회장이자 재벌 2세 정용진이, 민주화된 서구에 가서 살면서 ‘신식 서양학문’을 배웠다는 이 자가 갑자기 SNS에서 자못 진지하게 ‘멸공’을 외치고 나섰다. 이는 반공주의에서 아주 ‘새로운 젊은 피’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일베라고 불리는 이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양극화와 불평등을 통해 만든 괴물들. 그들과도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해서 정용진의 SNS 소통에 대해서 ‘일베 놀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베로 표상되는 신세대 멸공 청년들. 그들은 자본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일뿐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칙을 자랑스레 ‘공정’이라고 외치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들, 사회적 우생학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것을 ‘불평등’이라 사고하지 못하고, 출발선 이후의 경쟁에 대해 ‘공정’을 읊조린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지속되는 구조적 불평등을 줄이고 해소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공정 침해’라고 말한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멸공’을 외치는 것은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체제에서 외치던 멸공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섬뜩하다. 그건 ‘사상적인 확신’으로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자본주의에,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시장자본주의에 찌든 의식이 만들어내는 의식 말이다.

근데 정용진 씨는 단지 이 땅의 평범한 일베 청년이 아니라 재벌자본주의 공화국의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요즘 ‘재벌’ 2세들은 재벌을 인간화, 나아가 사회화하고 있다. 정용진의 인간적이고 소탈한 SNS 활동은 그중 대표적인 사례다. 재벌 2세뿐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노동자 투쟁이 벌어진 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업체 사주의 아들이 2세 경영을 시작한 곳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업을 일군 아버지 세대가 노동에 대해 보인 감성 따위 (물론 그 신성함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수성가’한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신성함을 주축으로 한)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체화한 그들에게 노동은 철저히 자본의 일부이다. 팔고 사고, 넘기고, 대체가능하고, 귀찮으면 밟아버린다. 그렇다면 더욱 부를 집적한 재벌 2세의 경우는 또 어떨까. 그들은 더하면 더할 것이다. 그래야 재벌을 경영할만하지 않을까.

SK그룹의 최태원, 삼성그룹의 이재용 등은 재벌 승계과정의 불법 등의 문제로, 그의 아버지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미 전과자들이다. 최태원, 이재용의 얼굴 역시 자본이 드러내는 인간의 얼굴이다. 반면 최근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의 요사스런 키보드 워리어 짓은,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데 흥미를 붙인 ‘관종’ 놀이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 참 솔직담백하게도 이데올로기적 전투의 장에서 반공투사연하는 모습이다. 재벌과 자본이라면 당연한 생각이고, 자신들끼리 ‘무대 뒤’에서 이미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을 발언들을 대놓고 대중을 향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이 점에서 정용진의 발언은 사뭇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3. ‘멸공’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

정용진은 공개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멸공’을 외친다. ‘가짜 뉴스’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오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21세기 ‘탈진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진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을 실제로 말하는 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그것도 멀쩡한 장년의 남자, 재벌 2세가 한 발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문제적 발언에 대해 한국전쟁을 갓 지난 60년대식으로 바라보면 안 될 듯하다. 정용진은 이 사회에 ‘체제’(regime) 논쟁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공부가 안 돼 있으니 좀 우스꽝스럽게 얘기를 전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체제 논쟁 좋다. 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논쟁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진짜 논쟁이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 비자유주의 세력, 혹은 진보 좌파세력이 ‘체제 전환’이라는 화두를 내기도 했으므로 이참에 한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선 민주당도 ‘체제 전환’ 이라는 말을 은근 슬쩍 사용하고 있다. 언제나 아이디어는 궁하고 좌파나 외부에서 말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데 이 당은 참으로 능하다. 민주노동당이 있었을 때 민주당이 이것저것 정책 의제들에 침 발라놓던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진보 흉내는 내고 싶은 것이 민주당이다.

하지만 고작 이게 뭐람…. 멸치와 콩이라니. 이것을 ‘멸공’이라고 하다니. 이건 도대체 무엇이, 혹은 누가 조롱당하는 것이란 말인가. 공산주의가 멸치와 콩자반으로 비유되고 조롱당해도 좋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조롱당하여야 마땅한 것은, 공산주의를 멸치와 콩에 빗대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이념적으로 천박하고 철학적으로 빈곤한 보수 세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용진의 발언에 분노하고 혹은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정용진의 발언에 맞서서 비판이라고 하기는 좀 무색하지만, 거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그럼 누군가. 대표적으로는 이미 실없기가 한없음을 여러 차례 드러냈던 민주당 국회의원 정청래가 파를 들고서 “그럼 나는 좌파다”라고 미러링했다. 주로 정당으로는 민주당,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력이 정용진의 발언에 대해서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비토하고 나섰다. 정작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오히려 점잖게 가만히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유주의 세력이 모욕을 당한 듯이 일제히 성토장을 만들고 있다.

이미 체제 논쟁은 저리 가라다. 정용진은 우스꽝스럽게나마 체제에 대한 도발을 했는데, 자유주의 세력은 멸공도 반공도, 친공도 관심이 없다. 결국 이 정도면, 정말 양쪽 모두, 체제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종임을, 아니 사실은 동일한 체제 안에서 끼리끼리 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유유상종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서로 상대를 까대기 할 것만 있으면 정신없이 까대기에 나선다. 정작 멸공 따위의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멸공이란 단어는 무겁다. 그리고 비극적인 단어다. 멸공은 결국 다른 말로 하면, 국가가 저지른 범죄였고, 민간인 학살이었다. 여수‧순천 반란 및 학살이었고 제주 4.3항쟁 및 학살이었다. 멸공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올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이유다.

4. 국가보안법은 ‘멸공’ 아닌가?

그렇다면 정작 이들이 정용진에 대해 비판하는 논점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이들은 진정으로, 진심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판하는 것일까? 혹은 정용진의 발언을 기회로 색깔 논쟁을 만들며 ‘집토끼’ 굳히기에 나선 윤석열과 국힘의 선거 전략에 맞서서 이렇게 열심히 정용진 까대기에 나선 걸까?

이미 우리는 맥락을, 그리고 정답을 알고 있다. 이들은 ‘멸공’이라는 메시지보다는 그 메시지의 전달자들에 더 관심이 있다. 정용진을 받아서 윤석열, 윤석열을 받아서 나경원 등등.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청래, 그리고 이재명 선거본부 대변인 현택근 등등. 그렇다면 과연 정용진의 멸공 발언에 일제히 비난에 나선 이들은, 정작 ‘멸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멸공에서 ‘공’에 대해 어떤 생각이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 멸공 발언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면 이들은 공산주의를 멸하는데 반대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산주의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없거나 모호하다. 비난과 조롱은 넘치는데 논리는 박약하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은 이미 공산주의가 위협적이지 않으므로, 이렇게 극악스럽게 ‘멸공’, 즉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따위를 외칠 것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아니 과연 그럴까? 하지만 이것은 답을 회피하는 것일 뿐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민주당, 자유주의세력은 정용진이 던진 메시지 자체를 두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판하기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멸공’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이 체제 안에서 멸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다른 말로 하면, 사회주의자 박멸법이다. 북한을 사회주의체제로 간주하고 반북=반공을 등치해 사회주의를 때려잡는 법이다. 정치적 양심수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의 폐지론자였던 노무현도, 문재인도 모두 유지론으로 돌아섰다. 집권정당이 되자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존속으로 당론을 바꾸었다. 정용진의 ‘멸공’ 발언과, 국가보안법 존치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세력. 그들 간의 차이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이 난리인가. 과연 비판의 초점이 멸공에 있기라도 한 것인가.

정용진의 공공연한 ‘멸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것만이 스스로 논리적인 정합성, 아니 정치사회적인 정당성도 가지는 것이다. 아니라면, 단지 정적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난질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렇게 이 체제안의 제도적 멸공의 수단인 국가보안법에 침묵한다면, 민주당 세력과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남의 눈에 재 뿌리기이고, 제 눈에 든 큰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5. 결론

멸공의 반대말은 멸공 반대가 아니다. 멸공의 반대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지공’ 혹은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친공’이다. 그런데 최근 멸공을 공공연히 말하는 자본가 정용진을 비판하는 이들의 입장은 참으로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 대한 반대가 진짜 ‘멸공 반대’인지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는 반대하는데, 멸공 반대는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국가보안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까대기 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어쩌면 자본가 따위가 ‘멸공’을 떠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건 하등 상관도 없다(단지 자본가는 당연히 멸공하자는 입장일 텐데, 그것을 시장에서 비지니스 한다는 자가 ‘대놓고’ 말하니, 주가도 폭락하고 불매운동도 불러일으키고, 정치적으로 한쪽으로만 ‘올인’하는 듯하니, 이야말로 아마추어 아니냐는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제일 큰 문제는 자본가는 대놓고 ‘멸공’을 외치는데,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깔려있는 이들이 왜 자본을 혐오하지 않는가이다. 재벌 2세의 이념적 전투 앞에서 노동계급은 더욱 분발할지어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멸공(滅共)에 대하여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멸공’을 조롱하는 이들, 그리고 국가보안법 (newscham.net)

[새해 인사]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365일이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이야말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나 봅니다.
연대자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지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10주년이었습니다. 10주년을 지나면서 또 한번 새겨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하는지. 파업기금을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조성하고 노동의 파업권을 거침없이 요구하는 사파기금의 확산 정도가 이 사회 노동연대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사회적 파업이 무엇인지, 노동의 사회적 연대가 어떠해야하는지, 그 내용을 채우고 그 실천이 목표치에 이를 때, 아마 이 사회는 어느덧 한 발자국 성큼 나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10년동안 쉼없이 달려오면서 사파기금의 모든 동력과 시간과 열정을 투쟁하는 노동자와 민중과 함께 하기 위한 기금 조성과 연대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사파기금을 제안하면서 알려드린대로, “돈이 모이는대로 쌓아두지 않고 연대”하고, 사회적 연대가 절실한 곳 어디든 전국 방방곡곡의 투쟁하는 현장에 손을 내밀고 전국을 다니면서 연대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힘을 연대활동에 쏟느라고 정작 단체 소식지 하나 10년동안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10년 활동을 결산한 결과, 2011년이후 총 218회 연대활동을 했고, 월평균으로 하면 월 18회 기금지원 및 연대활동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단체 활동을 홍보하는 일은 항상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2011년 희망버스이후 사회적 연대가 갈수록 약해지는 가운데 사파기금의 노력이 필요한 현장은 더욱 늘어났고, 미약하나마 가진 모든 힘을 퍼붓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의 연대자들에게 사파기금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소식지 발간을 계속 미룰 수 없습니다.

10주년을 마무리한 올해부터 사파기금의 소식지를 내기로 했습니다.
2022년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소식지 <사파동행>을 발간합니다.
읽어주시고,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올 한해 사회적파업연대기금과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시대가 불투명할수록 더욱 투명해지는 정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건강한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서로 힘을 북돋우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022. 1.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국힘의 대선 후보

국힘(국민의 힘)의 대선 후보로 윤석열이 뽑혔다. 당심이 민심을 이겼다고 했다. 여하튼 이번에도 보수우익정치는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냈다. 입당한지 3개월도 안된 ‘외부자’를 끌어다 대통령 후보를 만들 정도의 ‘당심’을 표출하는 정당이다. 이렇듯 그들은 권력욕이 강하고, 개방적이다(개방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이 사회 권력력 인사들이 대동소이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수 우익정당에게 배울 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자기 내부를 흔들고 재편하는, 권력욕이라는 목적의식. 그리고 외부자를 받아들여서 내부를 정리할 정도의 개방성. 그들은 오래된 당원이자 베테랑 정치인이자 내부의 ‘재야’ 같은 존재인 홍준표가 대선후보로 나오자 이를 극구 막아섰다. 홍준표가 그들이 그렇게 오매불망했던 청년의 지지를, 민주당 후보보다 더한 지지를 받으면서 일어서는데도 그를 선택하지 않은 당심이라는 면에서, 그들은 확실히 조직의 보존이라는 면에서 당파적이기도 하다. 국힘의 중요한 뒷배인 개신교 단체 한교연이 경선 하루 전날 윤석열 지지를 선언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국힘과 보수세력 내부를 향한 정확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국힘, 보수우익만이 아니라 정치의 일반성에 해당할 얘기다. 그리고 사회운동과 진보/좌파정치에도 해당된다. 내부의 적이 색깔 없는 외부자보다 더 두렵고 불편하고, 그래서 더 경계하는 것, 하나의 ‘진영’ 혹은 판에서 자신들의 편이 절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자에 대해선, 유력하든 필요하든간에, 정치에서 일단 배제하고 쳐버리는 것 말이다.

칼 슈미트 표현으로 정치는 ‘피아’의 구분이고, 이러한 정치의 ‘피아’ 구분 의식은, 한국의 진보정치, 좌파정치/운동까지 다 포함해서 사실은 ‘정치’가 있는 곳 어디서나 흔한 풍경이다. 진보, 좌파정치에 사람이 없네, 인물이 없네, 입장이 없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냥 자신들의 사람, 인물, 입장을 부여잡고 가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 인물, 입장을 한 번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끔 보수우익의 권력욕은 이마저도 넘어서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정치의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보수우익 정당이 윤여준, 남재희, 김종인 등을 중용한 것이 그렇다. 이번에도 윤석열이라는 외부의 대체재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모두 자유주의 정당과 보수우익에서 귀 기울이고, 양 쪽 문지방을 넘나들기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보수우익과 자유주의는, 진보 아닌 보수라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과연 진보정치, 노동정치, 좌파정치는 어떠한가. 어쩌다 진보, 노동, 좌파로 분화되었고, 또 이 분화가 당연시될 정도로 ‘피아’ 구분이 생겼는가. 원칙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성은 없는 진보/노동/좌파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말이다.

2. 양당 대결

윤석열이 국힘 대선 후보로 당선되는 순간, 두 가지 아니 결국 한 가지 반응 혹은 예상이 나왔었다. 이재명이 졌다는 예상(혹은 희망사항) 말이다. 이 예측이 도처에서 나왔다. 조국사태이후 그 미움이 이재명까지 연장된, 허약한 자유주의자들은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윤석열이 대선 후보가 되는 날 “축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진보나 좌파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이들도 윤석열이 이재명을 이길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민주당이 아닌 국힘의 후보가 된 윤석열이 과연 홍준표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까? 그리고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된다고 해서 이재명이 과연 불리하거나 심지어 패배할까?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이재명으로선 윤석열이 좀 더 겨루기 좋은 상대라고 본다. 홍준표는 사실 이재명과 비슷한 과이고, 정치 감각이 출중한 인물이며, 심지어 서민적이다. 이 모든 것이 이재명이 후보가 되면서 스스로 장점이라고 내세운 점이다. 겹친다. 그리고 홍준표는 이재명과 비슷한 과인데, 이재명보다 더 노회하고 말장난을 더 잘한다. 이재명이 지금 대통령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조심하고 있는 기질(temper)과 성질을 홍준표 같은 누군가가 계속 건드리면 이재명은 흔들릴 가능성 높다.

반면 윤석열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킬 것이고, 미래 지향적인 입장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복수혈전을 하듯이, 마치 검찰이 보복수사 하듯이 나오는 모습이 대통령감이라는 인상을 계속 갉아먹고 불식시킬 것이고, 결국에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게 될 것이다. 윤석열을 통제할 이가 국힘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해서 또 권력욕으로 가득 찬 국힘은 드디어 나이와 양당을 넘어서는 이력서로 윤석열을 제어 가능한 김종인 원톱 선거체제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옳지! 이러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지만 얼마나 달라질지.

3. ‘검찰이 칼자루 쥔 선거’

나는 여전히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을 국힘의 윤석열과 동일한 수준으로, 그리고 이재명의 당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다 (이 글 초고를 국힘후보로 윤석열이 확정되고 난 후에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 때 윤석열은 오차범위 밖 15%로 앞선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유는 앞서 말한 후보들 사이의 강약점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번 선거는 철저히 ‘검찰 선거’ 이기 때문이다. 당락보다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대선이 온통 법조인들 천지라니. 대선 후보 하나는 변호사 출신, 또 하나는 검사 출신, 그리고 양자 다 검찰이 줄줄이 기소하고 있는 터이다. 그리고 그에 연루된 자들도 모두 변호사, 검사들이다. 아니 이게 뭔 나라냐? 이 질문을 하고 싶으면 지금이 질문할 때다. 이게 무슨 나라니? 검사가 변호사가 대선 후보이고, 검사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런 선거가 무슨 민주주의이니?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이니? 단지 윤석열만이 아니라 이재명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죄목의 혐의로 인해 검찰의 자장에서 벗어난 인물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의 정점: 촛불시위

퇴진촛불이 한창일 때 나는 특별검사와, 검찰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힘을 빌려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집합행위가 박근혜 퇴진 이후 정치의 사법화와 법복귀족의 강화를 더욱 공고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결과가 19대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변호사 출신이고, 20대 대통령 후보도 윤석열이라는 검사이거나 이재명이라는 변호사 출신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후보의 당선여부를 좌우할 칼자루를 검찰이 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촛불은 누구 좋으라고 들었던 것인가?

사람들이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되는 순간 이재명 낙선이라고 예상하는데 그 근거는 매우 감정적이고 즉자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대장동 스캔들이 과연 이재명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의 주택정책, 아니 ‘부동산’이란 재테크 정책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철저히 이해관계 동맹이다. 이로써 이재명 낙선을 확정지으려면, 사람들이 대장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된 일로 여겨야하고, 이재명의 이중성에 대해서 분노해야한다. 과연 그럴까?

부동산개혁과 검찰 개혁 둘 다 불가능한 이유

먼저 대장동은 한국에서 수십 년간 부동산-아파트개발 정책의 산물이다. 주택공사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집장사하는 국가, 개발만 하면 큰 이익을 보장받는 부동산개발에 나선 건설 회사들과 은행 금융 등 민간 자본이 조성해온 거대한 부동산 경제. 국가와 자본(시장)은 부동산 경기의 불을 끌 생각이 애초에 없다. 부동산 경제를 해체시킬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이익을 일부 누리는 원주민(토지 소유주)들, 개발되는 아파트에 입주하고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잠재적 주택 구매자 혹은 분양 대기자들인 도시의 중산층들. 과연 그들이 지금까지 임대주택 100%의 공영 개발을 찬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과연 국가가 수용한 택지를 전면 공공개발만 하겠다면 지지할 것인가? 혹은 국가가 공공개발한 아파트들을 모두 국유화하고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개인들에게 임대아파트로 내놓는 정책을 편다면 과연 동의할까? 그리고 이미 주택을 보유한 이들은 또 어떻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는 정책을 시행해 부동산 과열이 완화되고 해소되면, 자신의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는 현 시세를 용납할까? 심지어 소규모 서민 아파트에 사는 이들 역시 지금도 20억짜리 아파트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5억짜리, 3억짜리 아파트를 재개발하여 그런 ‘자산상승’을 원할 것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스캔들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줬다. 그는 후보로서 지금 내놓는 공약과 다르게 실천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의 대장동 사태와 판박일 것이다. 이재명이 자본을 시장을 넘어설 진보적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현실론과 경제라는 핑계거리로 말이다. 검찰은 이에 맞춰 적당히 끝낼 것이다.

다른 한편 윤석열의 경우 고발장 사주라는 혐의에 대한 검찰 선거는 어떻게 될까? 손 모라는 검사와 김웅이라는 검사출신 의원으로 입막음이 될지, 그것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검찰에게 유명한 ‘직업윤리’가 있다. ‘검사 카르텔’이라고. 아무리 미워도, 입장이 갈라지고 이해까지 달라진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야말로 ‘검사출신’ 대통령이 나올법한 상황인데, 검찰이 과연 제대로 칼을 뽑고 제대로 수사할까? 설사 그게 문재인 정부 편에서 충성하고 있는 수뇌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뽑아 올린 검사 아닌가 말이다. 이는 허약하고 정체불명의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개혁’입네 하는 이 정부와 추미애 장관의 탓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은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최초의 대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군부독재 때 ‘권력의 주구’였던 검찰이, 보수 양당 세력이 너나없이 ‘부려보겠다’고 개혁하지 않고 두더니, 스스로 잡아먹힐 선거가 되고 말았다.

4. 진보 후보 단일화냐 좌파 후보 정립이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결국 한국 정당정치는 다당제이지만 언제나 선거는, 그리고 특히 대선은 보수 양당이 겨루는 형상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바로 87년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이행이 부활시킨 ‘48년체제’라고 불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만약 1987년에 독자후보 백기완이 완주했다면, 그리고 이후 권영길, 심상정까지 완주했다면 한국의 소위 진보/좌파정당정치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다음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었던 노회찬 심상정의 연정 정치 구상이 좌파연합의 구상을 계속 펼쳤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연정 구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민주당 일부를 끌어들여 진보정당을 만든 것도 그렇고, 대통령 출마를 하면서 중도에 그만 둔 것도 그렇고, 모두 진보, 나아가 좌파정당정치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아서 유일 진보정당으로, 제3지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누린다는 정의당은 여전히 그 연합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심상정 후보는 얼마 전에 “이제 단일화의 역사적 시효가 다 됐다”고 말했다. 역사적 시효? 정말 웃기는 표현이다. 단일화가 이전에는 역사적 시효성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제”라니. 탄력근로제 연기기한 연장 등 노동법을 개악할 때도 가만히 있으면서 그렇게 만능의 비책인양 움켜쥐었던 비례대표제 선거개혁이 민주당의 배신적인 위성정당 놀이로 물 건너가면서,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 덕분이 아니고? 근데도 제대로 된 비판 없이 그냥 넘어간다. 마치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다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의원의 선거복안이 나왔다. 하나는 안철수, 김동연까지 포함하는 ‘제3지대’ 연정 제안이다. 물론 대통령이 돼야 연정을 하지. 근데 그보다는 이런 의구심이 든다. 어쩌다 소위 진보정치는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이건 후보 단일화가 ‘연정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서 버전만 바꾸고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애초에 ‘제3지대’라는 탈 이념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이란 무엇인가? 진보정치를 제대로 정립하자고 해도 자기 색이 분명할까 말까한 상황에서 다시 물타기의 ‘3지대론’이 가당키나 할까.

모 학생 좌파단체가 포플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 윤석열을 지지하는 전략이 좌파의 현재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구동성으로 비판을 퍼부으면서, 심상정의 몰 이념적인 ‘제3지대’ 제안은 왜 그냥 넘어갈까? 왜 여전히 대체로 침묵일까?

맞다. 이미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정의당은 ‘민중경선 단일화’ 테이블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의당 내 ‘좌파’는 더욱 모호한 태도다. 그들은 사사건건 당내 비판은 하는데, 결론은 언제나 우리 모두 버킹검일세이다. 정의당이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정의당 안에서 좌우는 모두 용광로에서 녹임을 당하는 건가.

정의당의 대선후보처럼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한, 진보정치의 앞날은 요원하다. 즉 진보정치가 제도권 정당정치에서 ‘대안’으로 보일 리 없다. 무엇보다 진보정치를 ‘볼모’처럼 두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로부터의 독자화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정의당은 여전히 이런 후보와 함께 민주노총의 ‘민중경선후보’ 단일화 논의에 참가하고 있다. 즉 두 손에 떡 들고 있는 형국이다. 왼손은 녹색당부터 진보당, 변혁당까지 함께 하고, 오른손으로는 안철수와 김동연의 손을 잡고 있다. 아, 그리고 중간에 또 하나의 떡이 있더라. 기본소득당 등과 함께 하는 중도좌파의 테이블이 있다. 맨 앞은 좌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불평등’을 화두로 잡고, 그 다음은 우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제3지대’라는 모호한 화두를 두고, 그리고 맨 마지막의 중도파들과는 ‘기후위기’를 얘기한다.

참으로 현란한 ‘연대연합정치’ 기술인데 의문이다. 왜 정의당의 연합정치는 매번 죽 쑤고, 나무에서 고기 찾기이며,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될까? 그 당 지지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말이다. 좌파가 문제다. 저 당이 이렇게 3가지 카드를 쥐고 이쪽저쪽에 다 머리 내밀고 있는데도 저 넓은 스펙트럼을 보면서도, 이 당은 여전히 ‘민중경선’에 함께 할 세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또 무슨 생각일까? 이 문제가 벌어지는 이유는 그 지향과 이념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중경선’은 왜 정확히 이념을 밝히지 않을까? 민중경선이든 노동자민중후보든, 그것 자체는 대선의 플랫폼이거나 강령이거나 심지어 이념일 수는 없다. 노동자가 민중이 정치 이념인가? 민중후보라는 말은, 이념을 밝히지 못했을 때,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나 잡혀갔을 때, 좌파가 힘도 조직도 없었을 때 회피적으로 썼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효용을 다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후보가 없어서, 민중후보가 없어서, 지금 진보정치가 갈지자이고, 자유주의 정치에서 탈출하거나 독립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표하면 좌파 후보가 바로되는건가?

지금 제도정치와 대선에서 부재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은 정확히. 그렇게 할 때 답도 정확히 나온다. 하지만 먼저 어정쩡한 진보정치가 진보의 미래, 아니 계급정치와 좌파정치의 미래를 좀먹는다. 그 말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진보정치가 좌파정치의 미래를 가로막지 말길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2022년 대선을 앞둔 정치비평① (newscham.net)

[기고]돌아앉은 대통령, 쫓겨난 세종호텔 노동자의 투쟁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입력 2021. 12. 22. 03:03
[경향신문]
필자는 서울 명동 세종호텔에 여러 번 가봤다. 투숙객으로서가 아니라 그 호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방문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말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엄동설한에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세종호텔 노조는 다시 엄동설한에 파업에 돌입했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0년 전에는 단체교섭이 결렬되면서 했던, 말 그대로 파업이었다. 지금은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하는 파업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 파업이 아니게 되었다. 정규직으로서 정리해고 후 하는 투쟁은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파업이 아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파업권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집단적 투쟁에 돌입한다.

그래서 요즘 많이 궁금하다. ‘노동존중’을,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그리고 공공부문에서라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현 대통령은 지금 임기 말에 이르러 자신이 내세웠던 노동공약에 대해 어떠한 소회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가 취임 일성으로 밝혔던, 노동존중과 좋은 일자리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에 대해 입 꾹 다물고, 돌부처처럼 돌아앉은 대통령에게 이제 임기 말에 이르러, 이 사회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똑똑히 보라고 일갈하고 싶다.

그중에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현실이 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2012년 1월 파업으로 승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정규직화시켰다. 그 쾌거는 그들과 함께한 사회적 연대의 힘, 2011년 ‘희망버스’ 운동에서 진화한 ‘희망뚜벅이’ 행진과 함께 호텔 로비로 들이치면서 가능했다. 물리적인 힘이라기보다 사회적인 힘이었다. 그 이후 10년 동안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잘 살고 있었을까? 그들은 무사히 자신의 일터에서 안전한 노동을 하고 있었을까?

한국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 그들은 위헌세력이고, 헌법 파괴세력이다. 그런데 국가도 공권력도 법원도, 그리고 제도 정당들도 그 위헌적인 파업 파괴행위와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징치하지 않는다. 세종호텔 역시 무사할 리가 없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자 바로 세종연합노조가 만들어졌고, 민주노조 조합원 206명 중 60%가 새 노조로 이탈했고 그들이 교섭권을 가져갔다.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가진 가운데 성과연봉제, 포괄적 임금제, 탄력근로제, 부당한 전환배치 등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의 유연성 실험이 시작되었다. 노동 유연화의 백화점, 혹은 구조조정의 실험실 같은 세종호텔 노사관계 속에서 노동조건은 후퇴했으며 임금은 계속 삭감되었고, 노조는 위축되었다. 노조위원장은 징계해고를 당했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지구를 덮쳤다. 하지만 이는 자본가들에게 마냥 나쁜 게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에게 또 다른 기회이자 기왕 해왔던 노무관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핑계일 수 있다. 노동 구조조정과 민주노조 말살이란 두 가지 목표를 최종적으로 이룰 절호의 기회이다. 한때 280여명이던 노동자들은 몇차례의 희망퇴직으로 수십명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늘었고, 교섭권을 가지면서 파업을 준비하자, 12월9일 직장폐쇄를 하고, 12월10일 민주노조 조합원 12명을 전원 해고했다.

코로나19가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배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코로나19를 빙자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노동을 구조조정하고, 노동 차별을 공고히 하고, 노조를 파괴한다. 한국처럼 자본이 예사로 위헌적인 노동 파괴세력으로 군림하고, 양당 보수정치가 이를 결사 옹호하는 나라에서 노동이 처한 조건은 더욱 꼬이게 된다. 자본은 국가로부터 받은 ‘공적자금’을 공돈처럼 사용한다. 국가는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대신 임금을 내준다. 호텔업종이 바로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근데 문재인 정부는 고용주들에게 꼭 받아내야 했던 약속, 즉 노동자 고용보장 선조건을 아주 쉽게 철회했다.

노동자의 목숨줄을 이렇게 쉽게 자본의 자비에 맡겨놓은 이 정부가 과연 ‘민주정부’일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그 조항을 철회하지 않았다면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돌아앉은 대통령은 과연 노동을 볼 면목이나 있을까. 이제야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은가!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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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돌아앉은 대통령, 쫓겨난 세종호텔 노동자의 투쟁 | 다음뉴스 (daum.net)

<축하공연영상 – 박준>

<축하공연영상 – 강기훈, 이한솔>

축하공연영상 – 임정득 : https://youtu.be/Dh8XcVpfIyY

 

사회적파업연대기금 10주년 행사 “사파 10주년 연대와 후원의 날”을 2021년 12월11일 전국공무원노조 대회의실에서 열었습니다.

두차례 연기, 회의 참석자 밀접접촉자 판명으로 이틀전까지 개최가 불투명해진 상황후에 열었습니다. 10주년 준비단에 함께 해준 이들과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더군요. 참가자 수가 많아도 걱정 많지 않아도 걱정이었는데, 알맞은 규모였고 잘 치렀습니다.

처음으로 해본 ‘사파와 함께 연대자 인증샷” 촬영시간을 은근 기대했는데, 분위기 내는 것으로 좋았습니다. 사파기금 CMS처럼 현장에서 단체 후원 약정서 받는게 내심 목표였는데, 그건 불참한 이들에게 두고 두고 받고 싶습니다.^^

행사는 4파트로 진행됐습니다. 공연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연대자들과 민중가수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보기 드물게 강기훈 이한솔의 기타-오보에 협연이 있었고, 오랜 연대자인 조부덕의 바이얼린, 박준성의 아코디언 연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는 공연 박준, 끝 공연으로 임정득 가수의 노래 공연이 있었습니다. 공연을 위해서 트루오디오의 조현민님등이 세심하게 음향을 살펴서 음향은 이때껏 사파 행사중에 가장 훌륭했습니다. 공연’실황’은 당일 생방도 했지만, 유튜브로 올릴테니 들어보세요. 박준가수의 고 황현가수에 대한 코멘트와 훌륭하게 듀엣 사회를 소화한 사회자 김수미 남선진의 백댄스(^^), 임정득 가수의 뭉클한 눈시울과 대표를 무대에 기어코 불러세워 춤추게 한 것도 웃음이었습니다.

“사파의 행로” 시간에는 2011년 7월17일 “사회적 파업기금을 모읍시다”제안서를  고진수 운영위원이 담담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다시 낭독했고, 권영숙 대표가 사파기금 제안 이유와 사파기금의 의미, 10년 결산을 기금조성과 기금지원으로 나눠서 보고했습니다. 기금지원처 81곳의 명단이 스크린에 올라가면서요. 현장 모든 영상을 제작해주신 이는 은석 감독입니다.
권대표는 “사파기금은 그 취지와 약속을 10년동안 잘 지키고 이뤘지만, 그러나 충분치는 않다”고 말하고 “노동자투쟁뿐 아니라 더 넓게 사회적 파업을 해석하고 실천”하고 “사회적 연대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동맹”으로 이르는 길을 고민하고 전망을 가지는 연대의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기금 지원연대 노조/ 단체의 “다시한마디”는 30초 축하동영상과 발언, 그리고 현장 발언으로 채워졌습니다. 사파기금이 5백만원 이상을 지원했던 81곳에 10년만에 요청하여 ‘다시한마디’ 받는말을 받아서 그 의미가 큽니다. 화답한 곳들의 건재함을, 그리고 사파에 대한 연대를 확인하는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어 조부덕, 박수규 두 연대자가 “연대자로서 발언”을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오랜 사파의 연대자입니다. 사파기금 연대를 10년씩, 7년씩 하는 여러분이 사파기금이 10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좀 어색하지만 모여서 축하 케이크 촛불 불고 커팅도 했습니다.

사파기금 10주년 이렇게 보냅니다.
기금 지원 및 연대 총218회였습니다. 10년으로 나누면 매월 18회 정도였습니다. 뜨겁게 사회적 연대로 사회적 파업기금 조성해왔고, 치열하게 연대를 해왔습니다.
앞으로 사파기금이 어떻게 나아갈지 많이 지켜봐주시고, 또 가까이에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2021. 12. 2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021년 12월16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정리해고 6일차, 로비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조합원 교육을 요청받은 권영숙 대표가 “코로나19노동재난, 호텔업종 산업 재편, 노동자투쟁의 방향과 전망”  이라는 주제로 1시간여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한 명을 제외한 조합원 전원이 모인 가운데, 먼저 2012년 1월 희망뚜벅이와 세종호텔 파업에 대한 ‘투쟁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투쟁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로부터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1. 노동자와 파업, 2. 호텔업종 ‘산업재편’과 세종호텔 노사관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코로나19 국면이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10년간 진행해온 노조 말살과 구조조정의 최종판을 만드는 것일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2012년이후 온갖 노동 유연화의 백화점, 혹은 구조조정의 실험실같은 세종호텔 노사관계 속에서 노조는 계속 후퇴했고,지금 여기까지 이른 점에 대해서 뼈아픈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도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투쟁의 전략’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했습니다. 이 시간이 막 정리해고 철회투쟁에 들어선 세종호텔 조합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권대표는 말했습니다.

세종호텔노조 농성장에 대한 물품연대도 준비했습니다. 가스난로, 핫팩 2박스, 크리스마스 기분을 낸듯 포장한 빨간색 무릎담요를 준비해 갔습니다. 바로 오늘 영하로 곤두박질친 날씨 전에 가져가서 다행입니다. 10주년에 연대자가 후원요리로 가져왔으나 뒤풀이 취소로 사용하지 않은 전남 특산 홍어무침에 보쌈을 준비해서 저녁을 함께 했고요.

이어 세종호텔앞 피켓팅을 함께 했습니다. 우렁찬 구호로 가끔 전철역에서 쏟아지는 이들과 세종호텔 관리자들을 놀래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세종호텔 투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을 ‘목요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낮에 날씨는 포근했으나 다음날의 한파를 예고하듯 은근 냉한 날씨였습니다.

이제 겨울, 본격적인 ‘동투’의 계절입니다.
핫팩으로 중무장하고, 겨울에도 쌩쌩한 투쟁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날이 더 많은 연대자들이 집결하기를 바랍니다.

추위보다 더 서늘하게,
자본의 심장에 더 서늘한 바람이 불게 하길 바랍니다.
모두 연대로! 건투!

2021.12.17.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연대자 여러분께:

사회적파업연대기금 10주년 행사 “연대와 후원의 날”을 2021년 12월11일 잘 마쳤습니다.

2011년 7월17일 권영숙 제안자가 페이스북에 첫 제안을 올렸고, 단체 발족일은 첫 입금이 들어온 7월22일로 삼습니다.
올해 7월에 해야할 기념행사를 두 차례 연기하여, ’10주년’안에 기어코, 사파의 모토대로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되어” 끝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의미있는 시간이 코로나19 전염병과 방역통제로 ‘격리’되고 ‘저당’잡혀야할까요? 전염병을 사회적 재난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전염병이 도는 사회입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재난에 맞서는 합의와 제도의 부재, 그리고 위로부터의 통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하튼 끝까지 잘 마쳤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겠습니다.
행사도 짜임새 있었고,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고들 하시니 더욱 좋습니다.
연대자와 민중가수들이 함께 펼친 공연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사파 10년의 행로”에서 제안문을 다시 낭독했고, 10년동안의 기금활동을 총결산하며 기금조성과 기금지원내역을 알렸습니다.
기금 지원으로 연대했던 노조와 단체 50여곳중 대략 15곳이 축하동영상과 편지, 그리고 현장 발언을 통해서 “다시 한마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10주년 이후 앞으로 어떻게 ‘연대’에서 ‘동맹’으로 라는 이 어려운 숙제를 풀어갈 것인가?
이도 연대자 여러분과 함께 머리 맞대고, 힘이 많든 작든 손발 맞춰가면서 더불어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고마웠습니다.
연대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애정으로 함께 해주시고, 어디선가 사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주세요.

그리고 단체재정 후원 캠페인은 쭉 계속 합니다.
사파기금이 필요한 시간동안 여러분의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1.12.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드림

“모든 파업은 사회적…사회적 파업기금이 필요한 이유”

발족 10주년 맞은 사회적파업기금 권영숙 대표 인터뷰

“쉽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지키고자 했던 약속은 변함없었지만 10년의 결과물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부족함을 반성하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과제죠. 우리의 목표는 한 달 1만 명이 1만 원으로 1억 원의 사회적 파업기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파업과 연대에 동의가 되는 사람이 1만 명이 있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노동을 배제하는 민주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모이는 기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 멀었네요.(웃음)”

-2011년 2차 희망버스를 다녀온 후 사파기금 제안서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당시 어떤 울림이 연구자에게 직접 행동까지 나서게 했나요?

“당시 제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한국의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졌어요. 노동자들의 고립된 투쟁은 ‘사회적 파업’ ‘사회적 연대’의 절실함을 불러일으켰고요, 또 ‘파업기금’을 선제적으로 조성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쭉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래도 하나의 방아쇠가 있다면 그건 김주익일 겁니다. 그 사람이 유서를 세 번 쓰고 2003년 10월 죽었죠. 김주익이 유서에서 손배가압류 같은 돈의 문제와 노동자들이 고립됐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김주익이 올라간 상황에서 한진중공업은 150억 손배 소송을 걸겠다고 했었어요. 김주익은 계속 민주노동운동에 사회적 연대를 요청했는데 그게 사파기금을 만드는 힌트가 됐죠.

저 개인적으로는 김주익을 만나지 못한 게 참 안타까워요. 그때 유학하다 논문을 쓰려고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었거든요. 권영길 대표를 인터뷰하고 다음 날 현장 조사 차 부산 영도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는 김주익을 보러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 오전 권영길 대표한테 전화가 왔어요. 김주익을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사람이 목매 죽었다고요. 노동자들의 투쟁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죠.”

-파업기금을 따로 조성하지 않는 것을 한국의 상황이라 말했는데요, 특수한 상황입니까?

“노동운동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건 결국 파업을 위해서거든요. 서유럽에서 노동조합이 근대적 발명품의 하나로 만들어졌을 때, 노동자들의 초점은 노조 결성보다 파업에 더 가 있었어요. 파업 기금을 조성해, 일정하게 돈이 모이면 파업을 시작하고 버티는 거예요. 지금도 조합비를 걷으면서 파업기금을 따로 걷고 있고요. 그런데 한국은 초기자본주의에서 노조를 만들 때와는 상황이 달라서 파업하지 않는 자본주의에 익숙해졌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고 대중적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됐을 때도 파업하면서 임금을 받았거든요. 노자가 모두 파업에 대해 잘 몰랐어요. 87년 투쟁에서 노동자는 근로조건 향상에 집중했고, 자본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문화됐던 업무방해라든가 손배가압류를 들고나왔어요. 무노동·무임금은 그전까진 법으로 있지도 않았는데 법원이 먼저 나서 판례를 만들어줘요. 그리고 97년 노동법 개악할 때 국회에서 받아쓰죠. 노동의 사법적 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며 ‘무노동·무임금’이 법에 명시된 이후, 파업 중 개인의 생계는 노동자의 몫이 돼 버렸어요. ‘무노동·무임금’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데 자생적 파업 물결이 일어났고, 집단적이기보다는 개별적인 대응을 했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손배가압류 당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파업권이 무력화된 거죠.”

-김주익 열사의 죽음부터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하셨는데, 제안은 희망버스부터였어요. 희망버스는 사파기금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희망버스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적 흐름 중 하나입니다. 전태일의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더라면’이라는 소망은 연대에 대한 갈구였잖아요. 대학생 친구는 변호사 조영래로 나타났지만, 고립의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를 요청한 거예요. 전태일의 요청에 한국 사회가 반응한 게 노학연대로 나타났어요. 많은 학생들이 평화시장으로 가서 싸웠고,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없어졌고, 노동자들은 조합을 통해 스스로 자구책을 찾습니다. 스스로 조합주의를 강화한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희망버스를 띄운 건 노학연대 이후 처음 이뤄진 사회적 연대 운동이에요. 희망버스의 발진을 이례적으로 둘 수 없어서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해 사파기금을 생각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10년 동안 운동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계획적이거나 조직적이거나 목적의식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손배가압류 때문에 파업을 접거나, 파업 기금 없이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파업기금을 우리 손으로 조성하면 파업을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단지 연대가 아니라 동맹 세력이 구축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동안 어떤 사업장이 사파기금을 지원받았나요?

“전체적으로 세어보니 지원 횟수는 220회 정도 되더라고요. 500만 원 이상의 기금 지원을 산정하면 80여 회고요. 가장 힘든 비정규 정리해고 노동자투쟁 위주로 지원했어요. 그러나 노동자 투쟁만 지원하진 않았어요. 장애 운동 단체, 소성리 사드배치 반대투쟁,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지원했고요. 사회적 파업은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넘어서 미조직 노동자, 권리 없는 노동자들까지 미쳐야 합니다.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 청년들 모두를 포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파업기금을 설명할 때 ‘사회적’이라는 말에 더 방점을 찍기도 했어요.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라는 생각이 확산돼야 해요. 내 문제가 닥쳤을 때 연대하는 게 아니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 사회적 연대로 다른 파업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해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가 나를 위한 연대이기도 하는 생각들이 중요하죠.”

-연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다양해요. 제가 노동자대회날 여의도에서 좌판 열어 정기후원 신청서를 혼자서 50장 받은 적이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서 파업기금 내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설득도 잘 됐죠. 비정규직 노동자들, 돈 없이 싸우는 것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길게 얘기를 안 해도 사파기금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빨리 이해를 해요. 그런데 대기업 노조에 있는 사람들, 중산층들은 보다 긴 설명과 논리를 요구하죠. 그 사람들은 파업 기금이 없어서 파업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한테도 당신부터 사파기금 정기후원하라고 권하기도 했어요. 아주 짓궂은 거죠. 실제로 사정이 어려워서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정기 후원이라는 게 부정기적으로 한 번씩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래서 더 사파기금이 쉬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발견하잖아요. 그런데 투쟁이 끝나면 연대에 안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연대에 대해 투쟁 승리로 갚겠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다른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는 각각의 일들이거든요. 승리가 연대가 될 순 없죠. 연대는 연대예요.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뼈아픈 부분이기도 해요. 그 수많은 노동자 투쟁 이후 사람들이 남았다면, 그들이 또 다른 사회적 파업과 연대를 만들어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죠.”

-지난 활동 기간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6년 동안 사무실이 없어 힘들었어요. 연대 물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흩어져 보관했고요. 또 상근 활동가도 없어 운영위원들이 시간을 쪼개고, 자기 돈 출현하면서 활동했죠. ‘기금은 건드리지 않는다’ 등의 우리가 세운 원칙들을 지켜가면서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죠. 처음엔 매일 페북에 기금조성 내역과 CMS 모금 상황을 올렸어요. 많지 않은 수여서 가능했지만, 상근 활동가도 없이 매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격일로, 주마다, 달마다 했죠. 지난 8년 동안 매달 정리를 하다가 요즘엔 반기별로 정산해요.

저는 사파기금 해소하고 싶어요(웃음). 민주노총이 명실상부한 내셔널센터가 돼서 모든 노동자의 노조로 서고, 파업기금을 선제적으로 조성한다면요. 단, 조건은 민주노총 안 대기업 노조가 쌓아놓은 파업기금도 환원해, 업종과 사업장 규모를 뛰어넘는 연대를 이뤄야 한다는 거예요. 이상론이지만 노조가 가는 최대치의 길 아닐까 싶습니다. 계급의 단결로 이어지는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것이요. 민주노총이 그런 방식으로 전국적인 파업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면 새로운 민주노총이 되는 거지요.”

-10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후원을 바탕으로 앞으로 사파기금의 활동 방향과 펼쳐나갈 사업들이 궁금합니다.

“더 이상 운영위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은 운영위원들의 생계도 있기 때문에 사업 역시 불안정했고요. 많이 고민했지만 상근 활동가 체계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체 재정을 확보해야 해요. 예쁘장한 사무실도 구했고요. 가능한 안정적으로 향후 10년의 사업을 하고 싶어요. 노동자 투쟁을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요. 기금 지원이, 한 단체만의 연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반복해 얘기하듯 모두의 문제로 서야 해요. 결국 모든 투쟁은 연결돼 있어, 하나의 투쟁이 곧 내 투쟁으로, 내 투쟁이 사회의 투쟁으로 이어진다고요. 모두가 돕고 모두가 움직여야 해요.

대선 기간 양당이 벌이는 목불인견의 정치공학적 상황 속에서 대안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런데 노동 이야기가 쏙 빠져 있어요. 노동 쪽에선 급하게 뭔가를 시도하는 데 이게 불만이에요. 언제나 한 철인데 좀 더 일상적이고 대중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순 없을까요? 노동 문제를 의제화하고 사회적 파업, 사회적 연대를 구체화하는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교육과 선진, 기획 사업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금 조성뿐 아니라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활동들이요. 활동가를 뽑고 있는데,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노동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게…10년을 버틴 건 연대의 힘”

2021.12.09 21:3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가 돌아본 10년의 발자취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출범 10년을 맞은 사파기금의 활동 내용과 의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고희진 기자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출범 10년을 맞은 사파기금의 활동 내용과 의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고희진 기자

김진숙 2차 희망버스 때 첫발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사업장
생계자금 바닥났을 때 생명줄

이젠 민주노총이 기금 만들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나눌 때
사파기금 필요 없는 날 와야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올해 출범 10년을 맞았다. 사파기금이 출범한 2011년 7월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한창 진행 중이던 때다.

권영숙 사파기금 대표(56)는 당시 사회과학 공부를 하던 연구원이었다. 김 지도위원과 연대하기 위한 2차 희망버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며 동료들에게 ‘파업과 투쟁에 힘쓰는 노동자들에게 연대할 기금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페이스북에 “노동은 파업권이란 헌법적 권리를 가졌으나 돈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스러져갔다”는 글을 올리고 사파기금의 구체적 계획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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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대표는 “매일 후원금이 들어왔다. 반향이 아주 뜨거웠다”며 “한진중 정리해고반대투쟁위원회에 2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파기금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가 떠올린 사파기금의 출범 당시 상황이다. ‘김진숙’으로 대표됐던 해고노동자와 열악한 투쟁 사업장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은 10년 사이 조금씩 식었다. 사파기금에 대한 시선도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다.

10년을 버틴 것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준 후원자, 봉사활동 형식으로 함께한 연대자들 덕이다. 그간 500만원 이상 고액의 연대를 한 사업장은 81곳이다. 연대물품 등 소액 연대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217개 투쟁 사업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에 기금 연대를 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누군가는 ‘돈이 많아서 후원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내부 운영비를 사용하지 않고 후원금은 연대기금으로만 썼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기억에 남는 연대 사례로 2014년 ‘청주 노인병원’과 ‘부산 생탁 노조’ 투쟁 사건을 꼽았다. 두 곳 모두 지역의 작은 사업장,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힘든 사업장이었다. 그는 “노인병원엔 요양사, 영양사 등 주로 나이 든 여성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조를 만드니 회사가 직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투쟁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생계자금이 거의 바닥났을 때, 사파기금이 그곳에 닿았다. 너무 고마워하고 진심으로 연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해줬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연대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감동받기도 한다. 권 대표는 “많은 파업 사업장이 사측과 합의할 때 완전한 승리를 하지는 못한다. 파업 주동자는 복직을 제외하는 형식의 합의를 할 때가 많다”며 “부산 생탁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측이 주도자를 제외한 합의를 요구하자 10여명의 동지들이 모두 복직을 거부했다. 그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단일 사업장의 파업 ‘승리’는 사파기금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파업을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확장시키고, 연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는 이들 역시 각양각색이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사망에 항의하면서 분신한 김기설씨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씨는 오랜 연대자다. 노동자로 자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아이 돌반지를 팔아 기금을 후원한 이도 있다. 한 배우의 팬클럽이 활동비 중 일부를 기부한 사례도 있었다.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과 주로 연대하는 이유에 대해 권 대표는 “이제 대공장 노조는 파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비정규·소규모·신규 노조들이 주로 파업을 하는데, 돈 없이 파업을 시작하다 보니 용역깡패 등의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게 된다”고 했다. 이어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에 대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에 머무를 게 아니라 플랫폼, 소규모,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 대표는 “민주노총이 나서서 전국적으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배타적인 멤버십 안에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나눠야 한다”며 “그때는 사파기금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0년맞이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을 소개합니다

1
투쟁하는 자들과 함께
사회적파업연대기금10주년 (2011- 2021)

2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시민권으로 긍정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돈의 압박에 스러지지 않도록 파업기금을 풀뿌리연대로 모아,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연대운동입니다.

3
노동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도록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사파기금은 2011년 7월22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2차 희망버스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제안서(제안자 권영숙) 에서 출발하였습니다.

4
기금 지원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반대 투쟁위원회에 첫 기금 전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가장 힘든 비정규 정리해고 노동자투쟁 위주로  80여차례, 50여 단체에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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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노동 속으로!

사파기금은 기금지원 외에 현장으로 향하는 직접연대 (사파동행, 사파작은희망버스), 노동관련 이슈를 살펴보고 토론하는 사파포럼, 한국 사회 핵심적인 노동문제를 심화학습하는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등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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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작은희망버스

연대자들과 함께 전국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사파작은희망버스는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고공농성장을 시작으로, 평택 쌍용차, 구미 스타케미컬, 부산 생탁 및 택시노조, 구미 아사히글라스, 청주 노인병원, 전주택시 고공농성장, 춘천환경사업소를 거쳐 톨게이트노조 김천 농성장, 대구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장등 영남권 순회등 전국의 투쟁현장에 발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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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동행

수도권의 투쟁 현장으로 찾아가는 사파동행은 2014년 씨엔앰 고공농성장으로 시작해 세종호텔, 콜트콜텍, 동양시멘트, 하이텍알씨디,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광화문농성장, 파인텍, 톨게이트노조 세종로 농성장, 아시아나케이오 농성장을 차례로 방문하고 연대집회를 개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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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포럼과 토론회

사파기금은 월례 사파포럼과 정세토론회, 그리고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강의를 통해 노동 관련 이슈를 노동계급 입장에서 다루고 연대전략을 함께 고민해왔습니다. 노동계급정치, 노조파괴, 비정규직, 사회적연대, 선거와 노동자투쟁, #미투와 노동 등 다양한 쟁점을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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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020년부터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는 불평등한 사회적 재난이자 노동재난입니다. 사파기금은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지원을 위해 코로나19노동재난기금을 따로 조성해 운영합니다. 고립보다 연대를, 이윤보다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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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함께 하는가

나에게 사파기금은

‘숨통’이다.
‘희망’이다.
‘내 자식의 생존’이다
– 연대자들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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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파 10주년, 연대와 후원의 날”

– 일시 : 2021년 12월 11일(토) 오후 4시 – 7시
-장소 : 전국공무원노조 대회의실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7층)

그리고 발족 10년만에 처음으로 단체재정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단체 후원 계좌: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단체 후원 자동이체(CMS): bit.ly/3D04xK2 (클릭)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사파기금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가능한 연대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정 확보에 힘을 모아주세요.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11년 발족이래 노동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연대를 결집하여 사회적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을 10년간 펼쳐왔습니다.

– 사파기금의 기금 조성원칙은, 돈이 모이는대로 쌓아두지 않고 노동현장에 지원한다입니다. 그리고 이를 지금껏 실천해왔습니다.

– 그동안 최소한의 경비와 무보수 활동가들과 연대자들의 사회적 연대를 향한 헌신성으로 꾸려왔습니다. 이제 사무실 운영경비와 상근 활동가 활동 보장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이 필요합니다.

– 지금껏 사파기금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조성만을 요청했습니다. 이제 사파기금 단체를 후원해주십시오! 그만큼 든든한 재정으로 더 튼실하고 희망을 모으는 연대운동을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단체 후원방법:
직접 은행이체 혹은 CMS 이체/ 정기, 부정기이체 모두 가능합니다.
1. 직접 은행이체 : 단체후원계좌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 바로 하는 방법: https://bit.ly/3D04xK2 (여기 클릭)

* 12월 11일(토) 오후 4시 사파기금 10주년 “연대와 후원의 날” 행사에도 많이 와주세요 (홈페이지 sapafund.org 참조).

연대자 여러분께 약소하지만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날 많은 반가운 얼굴들을 보길 바랍니다.

 

[연대소식]  노량진수산시장투쟁 고 나세균 분향소 방문 211111

서울시의 시장현대화사업으로 밀려난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투쟁에 함께 했던 나세균 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시청 정문앞에 지난 11월11일 연대방문했습니다.

그 날도 서울시는 경찰력을 동원해 분향소 주변을 격리하고 침탈 준비를하고 있는 어수선한 가운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는 분향하고 20여명의 상인 상주들에 발언으로 연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틀뒤인 11월13일 경찰의 침탈로 분향소는 짓밟히고 노령의 상인들은 경찰의 폭력으로 차가운 길바닥에 쓰려졌습니다. 그 과정까지 포함해서 연대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고 나세균 분향소에 연대방문과 관심을 촉구하려고 합니다.

고 나세균님은 투쟁하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께 “자식 같은 동지, 우리의 막내”라고 불린 이였습니다. 서울시의 ‘현대화’라는 명목의 시장 재개발사업으로 강제로 가게를 철거당한후 신시장 건물 입주를 거부하고 노량진시장앞 ‘육교 농성장투쟁’에 나선 이들중에서 50대 후반의 최연소 막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시장의 좋은 목에 자리를 배정을 받아 장사를 하며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협이 고용한 용역깡패의 무자비한 폭력을 보면서, 함께 싸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의인이었고, 묵묵히 투쟁에 함께 하는 이였고, 부끄러움이 많은 이였다고 합니다.
그런 이가 수년의 투쟁속에서 병을 얻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11월7일 급하게 이 세상을 떴습니다. 얼마나 원통할까요.

서울시장이 바뀌었습니다. 박원순 시장때 개발사업이 완료되고 서울시의 비호아래 용역깡패의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시장이 됐습니다. 상인들이 새 시장을 면담하겠다고 서울시청앞으로 농성장을 옮기자, 오시장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면서 시청앞 농성을 풀고 돌아가 있으면 연락하마 했습니다. 그런데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배신과 좌절이 상인들을 또한번의 절망으로 떨어뜨리고, 나세균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11월9일 고 나세균 장례식을 치른후, 상인들은 곧바로 지금 서울시청앞 정문앞에 분향소를 차려두고 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는 이 분향소만은 방문해야겠다고 분향소를 방문했습니다. 상황은 처참합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그 추운 곳에 등받이 없는 플래스틱 푸른색 의자에 앉아 죽은 “우리 막내”의 원통한 넋이 평안하게 영면할 수 있길 바라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권대표는 “박원순도 오세훈도 결국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일터를 함부로 짓밟고 있다”고,  “이재명의 대장동 스캔달로 국가와 민간업자들이 야합 공모, 이익 나누기하는 ‘개발사업’이 원주민과 세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강제개발이라는 점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개발사업과 다를 바 없다”고, 이 모든 것들이 다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며, 그를 온몸으로 실천으로 투쟁하면서 깨우쳐주고 있는 이들이 바로 여러분이고, 돌아가신 고 나세균이라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발언했습니다.

고 나세균 분향소가 좀 더 버틸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연대로 이들에게 힘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2021. 11. 1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공지] 드디어 “사파 10주년,  연대와 후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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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 10주년 행사 일자가 12월 11일로 정해졌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긍정하고,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연대운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올해 발족 10주년이 되었습니다.

10주년을 맞아 투쟁 노동자와 연대자들이 서로 연대를 확인하고, 사파의 1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드디어’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향한 격려와 약속을 모으고자 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날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21년 12월 11일(토) 오후 4시 – 7시
-장소 ; 전국공무원노조 대회의실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7층)

*그리고 단체 발족 10년만에 처음으로 단체재정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단체 후원 계좌: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단체 후원 자동이체(CMS): bit.ly/3D04xK2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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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문의: sapafund@gmail.com)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 논쟁은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 혹은 ‘그들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좋아’라는 3가지 선택지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한마디로 87년 12월 대선 지형의 참담한 재연이다. 아니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오히려 87년보다 더 악화되었다. 1987년에는 변혁운동, 사회주의운동이 국가의 공안탄압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정립돼있었으나, 지금 2021년에는 보수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긴급한 좌파의 입장이라고 공공연히 공표하는 현실이 도래했으니 말이다. 필자가 최근 지금이야말로 ‘좌파의 위기’라고 규정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2022년 대선후보를 두고 ‘포퓰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자’ 윤석열이 낫고, 지금 좌파의 과제는 정권교체여야 한다는, 자칭 좌파단체의 논리 전개와 결론은 현재 좌파를 둘러싼 지형의 한계 속에서 길 잃은 모습 그 자체다. 그러니 이 단체의 입장문에 대해서 “이건 아니지” 라고 다들 비판과 비난을 퍼붓지만 어쩌면 사태는 오십 보 백 보인 것을.왜냐하면 그나마 진보적인 주장, 즉 윤석열도 이재명도 찍지 말고, 민주당도 국힘도 찍지 말고, 그들이 아닌 그 누구든 제 3의 후보를 찍자는 제안도 좌파의 입장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연정을 도모하다가 이제 안철수, 김동연과 연정을 도모하겠다는 후보를 내세운 당도 좋다는 입장이 적어도 ‘좌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좌파 단체(전국학생행진)의 입장을 좌파의 입장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마찬가지로 윤석열과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는 입장도 좌파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단체의 입장문으로 ‘좌파’란 단어마저 조롱거리가 된 느낌이다. 그건 ‘좌파가 아니야’라는 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의 상태. 사실은 자신의 입장을 두고 좌파적인가 혹은 좌파의 주장에 동조하는가의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으면서 다른 주장들에는 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현실에서, 오십 보 백 보는 더욱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좌파라는 단어마저 조롱거리로 삼고 있는 현재에,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의 시작은 이것이다. 한마디로 아래 논지를 요약하면, 보수 양당 독점구도와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보다는 선택적인 적응을 선택한 좌파는 이미 좌파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서, 미국의 대선에 대한 글을 기초로 밝혀보겠다.

“덜 악마스럽다고 해도, 악마는 모두 악마일 뿐이다.”(Lesser Evilism Is Still Evil)
2020년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선 즈음 나온 얘기다. 결론은 미리 말하면 이렇다.
트럼프로도 바이든으로도 대변되지 않는 인민들의 베이스가 있다. 그 곳이 바로 우리의 노동계급정당을 건설해야만 하는 장소이다. (This all means that there is a base of people who are not represented by either Trump or Biden. This is where we need to build our working class party.)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레이스 중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 버니 샌더스가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그는 포기했을 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조 바이든을 “decent man(좋은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얹어 확실하게 정치적인 ‘승인’을 해주었다.
아 이런, “‘좋은 사람’이라니, 적어도 그 말만은 굳이 하지 말았어야지!” 라는, 샌더스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decent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할 말이 아니다. 샌더스에 대한 내 의심이 한 푼어치 더 늘어난 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바이든은 그의 정치적 성향과 지금껏 언행과 활동과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진 사생활을 봐서도 도저히 “좋은 사람”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된 경구대로, “덜 악마스럽다고 해서 악마가 아닌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미국이다. 이 나라에 이런 대통령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보수 독점 양당정치 덕분이다. 즉 도토리 키 재기식의 보수 양 정당이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을 적당히 번갈아 나눠 가지면서, 중간선거라는 완충장치를 두고, 제 3세력이 불가능한 선거제도를 통해서, 철저히 인위적으로 제 3의 정치세력과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진입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정치적 정립 속에서 트럼프 같은 대통령도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 자한당, 미통당, 박근혜, 황교안, 차명진 등도 가능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속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조금 다가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이 정작 민주당 등록 유권자 표를 얼마나 얻어서 민주당 1위 후보가 됐는지 알아보자. 아래와 같다.
미국 선거명부상 ‘등록유권자’ 중 30%가 민주당원이고, 그중에서 30%가 2020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 투표를 했다. 이중 무당파 독립 유권자를 제외하면 조 바이든은 등록된 유권자중 고작 9% (등록 유권자이면서 이번 민주당 경선에 투표한 자들의 교집합)의 지지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나아가 등록되지 않은 유권자들을 포함하면, 바이든은 미국 전체 유권자중 고작 4%가 지지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단지 4%가 지지! 결국 바이든은 민주당내에서조차 소수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양당 독점 구도 하에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는 것은, 일종의 ‘예비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선거(election)는 이미 선택된 사람(the elected)을 뽑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elite)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모든 피선거권자 즉, 모든 평범한 사람들(the common people)을 대상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선거민주주의의 매개 장치인 정당정치가 있는 한, 미국 선거권자들은 항상 대부분의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놓는 후보 두 명중 하나를 뽑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나라의 선거다. 이미 선택된 사람들을 뽑는 선거. 그런데 선택받을 후보를 뽑는 과정이 고작 유권자 3~4%의 지지로 이뤄지고, 그들이 모여서 전국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그 표들을 마지막에 산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식 선거민주주의의 실체다. 절대 소수가 다수결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활용하여 지배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미국식’이 아니라 현존하는 민주주의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이자 정치체제로 제도화되는 과정은 자본주의적 계급적 이해관계를 유지하는 제한 속에서만 가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와 정당정치를 양대 축으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는 다양성이 있다. 자본주의의 국가적 다양성만이나 외양과 운용면에서 민주주의 하위 체제의 다양성이 있다. 이 점에서 양당 독점구도와 독특한 ‘간접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이 민주주의를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뭔가 비슷하지 않은가? 한국의 대선 후보 경선은 다른가? 2020년 한국에서 집권 민주당이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완전히 뭉개면서 위성정당 꼼수로 의석을 싹쓸이해 압승한 결과, 여대야소 거대 제1당이 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한국이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87년 개헌으로 더 이상 간접 선거가 아니라 직선제 대통령제를 실행한다고 해도, 보수 양당 독점구도, 그리고 다른 대안적 이념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정당정치를 유지하는 소위 ‘48년 체제’ 하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미국식 민주주의에 가깝다.

여기서 48년 체제란 국가 보안법 제정으로 사회주의를 정치시장에서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한독당과 한민당의 보수 양당 체제를 유지했던 대한민국 국가 초기 정당체제를 의미한다. 이 체제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18년의 권위주의 체제로 잠정 중단됐고, 80년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로 계속 중단상태였다가 1987년 6월항쟁과 12월 헌법 개정으로 직선제 개헌과 김영삼 김대중 등 양 김씨에 대한 정치적 ‘해금’조처로 다시 복원된 체제를 의미한다. 87년 체제는 직선제 개헌과 자유주의 정당의 정치적인 활동 복원으로 보수 양당 체제로 복귀했고,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정치는 계속 48년 체제의 연속으로서 87년 체제하에서 진보정치와 사회주의 정당 활동을 봉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보수 양당 독점구도와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보다 선택적인 적응을 선택한 좌파는 이미 좌파일 수가 없다. 설사 제한적으로나마 선거제도와 제도정당정치를 활용하더라도, 만약 이 제도정치, 그리고 87년 체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선거제도를 통한 제도정치로의 진입과 의회정당으로서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존립의 목표로 전락한다면, 그 역시 좌파일 수가 없다. 이를 민주화 이행 이후 흔히 좌파와 구분해 ‘진보’정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좌파 스스로 진보와 좌파를 분리하고 구분하는 순간, 좌파는, 존재의 위기를 넘어서 부재의 시간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좌파의 정치 전략은,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진보는 좌파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데서 출발하고, 그를 기초로 하여 계급 간 사회정치적 동맹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보수 자유주의 정치로부터 독자적인, 좌파계급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 <사파시평>은 민중언론 참세상과 홈페이지에 전문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87년 체제’와 ‘48년 체제’를 넘어서 – 덜 악마스러워도 악마는 악마일 뿐 (newscham.net)

–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1.10.29

1. 국가장의 최종 결정권자

국가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누구를 국가장으로 ’예우’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이번 노태우 장례를 정부가 국가장으로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 것이지 김부겸 총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고로 1987년 민주화이행 이후 첫 직접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자, 1980년 5.17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을 일으킨 신군부의 핵심이며,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 유사 권위주의체제에서 2인자로 민정당 대선후보였고, 1997년 내란음모와 5.18 광주학살의 주동자로 징역 17년형을 받은 노태우의 국가장을 결정한 주체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두자.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 대상자는 전·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혹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국가장 여부는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한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장례 절차를 총괄 진행하는 집행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이 맡는다. 또 국가장을 주관하는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하며 장례 기간은 5일이다. 국가장 기간 중에는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이와 관련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만 두고 보면 노 전 대통령이 17년형 선고를 받았지만 사면, 복권, 예우 박탈 등을 국가장 시행의 제한 사유로 명시하지 않아 국가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법에 대한 과잉 해석이다. 제한 사유를 명시하지 않아 국가장도 가능하다는 것은 법률이 모든 사유를 명시하지 않으니 가능하다는 확대해석이다. 하지만 국가장의 취지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규정에서 드러나 있고, 과연 노태우가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건별’로 판단할 문제다. 그렇다면 노태우는 국가장법에 따른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왜 문재인 대통령은 노태우가 국가장법에 따른 예우를 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는가. 마지막으로 노태우의 국가장 논란을 통해 우리는 민주화이행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

2. 국가장 결정 이유- 추징금 환수

가장 작은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이 노태우의 내란과 뇌물죄 등을 유죄로 판결하며 부과했던 ‘추징금’을 노태우가 냈다는 점을 결정사유 중 하나로 들었다. 그렇다.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는 추징금을 거의 다 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낸 것이 아니다. 눈치를 보면서 전두환과 함께 시간을 끌었다. 2013년에도 여전히 노태우에게 부과된 추징금 230여억 원이 미납된 상태였다. 그리고 2013년 10월 11일이 추징금 시효가 만료되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주로 전두환이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이 문제가 됐었다. 하지만 노태우가 미납한 230억 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다.

나는 당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이자 민교협 노동위원장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징금 미납문제를 공론화하는데 나섰다. 2013년 6월 당시 검찰 등 법기관은 계속 법 집행을 미루고 있었다. 추징금시효 만료를 불과 몇 달 앞둔 상황에 대해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고, 시간적으로 다급한 상항이었다.

나는 당장 추징금 환수를 위한 조처들로 추징금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환형 유치’ 및 ‘노역형’을 부과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기했다. 환형유치란 벌금 등 추징액을 내지 않는 경우 형을 금액으로 환형해 노역형을 가는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과 ‘불법’ 집회 시위 등에 참가한 활동가들에게 국가와 법원이 자주 내리는 결정이다. 또 화이트컬러 범죄나, 정말 벌금 낼 돈이 없는 무산계급이 돈 대신 징역형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형유치 노역형의 경우 ‘소득’에 따라 일 4백만 원까지 일당을 차별적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여하튼 나는 그때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죄 등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1997년 이후 2013년까지 15년 째 추징금을 내지 않고, 그해 말 시효가 종료되는 상황에 대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당시 KBS 법조기자의 기획 취재에 협조하고 KBS 뉴스를 통해 인터뷰가 나가기도 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적극적으로 추징금 회수를 주문하고 검찰 내 TF팀이 꾸려져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 찾기를 국내외로 진행하면서, 곧바로 가시적인 결과들이 나왔다. 추징금 시효에 따르면, 시효 전에 단 한건이라도 추징 실적을 내고 앞으로 추징할 규모를 특정하면 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 결국 국회는 전두환 등 80년 12.12 쿠데타 및 내란죄 공모자들에 대한 추징금 환수기한을 5년 연장하는 법을 입법해 전두환 재산 추징을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전두환은 아니지만 전두환의 차남이 일당 400만 원의 노역형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노태우 전두환 등의 추징금은 자발적으로 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제기와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보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낸 것이다. 전두환은 좀 더 얼굴이 두꺼울 뿐이었다. 노태우 추징금 완납이 ‘국가장’ 결정의 한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정확히 기록을 남겨둔다.

3. 국가장 불허는 전직대통령 예우 박탈의 최종심이다.

국가장법에 따르면 전‧현직 대통령은 분명 국가장의 일차적인 대상이다. 전‧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그들이 사망한 경우 국가장을 치른다는 것이 법 취지일 것이다. 즉 국가장법에 따른 노태우 국가장 결정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차원이다. 그런데 노태우는 내란죄 등 17개의 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전직 대통령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이다. 그리고 ‘국가장’은 국가가 시민에게 주는 최상의 예우이며,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장이라는 예우를 받을 수 있는 일차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노태우는 내란죄 등으로 ‘전직대통령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다. 국가장이야말로 전직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누리는 마지막 ‘예우’이므로, 당연히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은 국가장에서의 제외를 포함해야 최종적인 것이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을 국가장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법률에 따르면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개인 노태우에게 국가장이라는 가장 큰 ‘국가적 예우’를 선사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로서 최상급인 국가장을 내란 수괴이자 5.18 민중학살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한 이에게 선사한 셈이다. 도대체 그는 국가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아니면 국가장법과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간의 상호 논리적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법 논리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에 따르면 국가장 결정을 정무적으로 판단했다고 했으니, 이제 그에 대해서 ‘정치’적인 판단만이 남았다.

4. 논란의 시원: 노태우라는 이행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

이번 사태의 시원은 1997년 당시 대통령 김영삼과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이 청와대 첫 회동에서 형기도 마치지 않았고 추징금도 미납한 상태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하기로 한데서 비롯된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노태우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지만, 그 때 그가 12.12 군부 내 쿠데타와 5.17 쿠데타에 대해 처벌을 받고 공민권을 회복한 후에 대통령선거에 나와 당선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노태우가 1987년 헌법으로 이뤄진 ‘정초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해서, 그의 이전 죄가 면죄부를 받거나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노태우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것 자체가 6.29 선언의 산물이다. 즉 스스로 6.29 선언을 하고, 다른 선거체제 하에서 다시 후보로 나온 신군부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문재인 정부는 그가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라는 점을 국가장으로 결정한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이를 통해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87년 6월 항쟁의 결과인 대통령 직선제를 얼마나 핵심적으로 생각하는지, 그들의 사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들이 왜 앙상하기만 한 소위 ‘8개 조항’에 합의하며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6.29 선언을 그대로 추인했는지도 말이다.

사실 87년 6월 항쟁이 그랬다. 바로 엘리트 간의 협약에 기반 한 보수와 중도의 동거체제이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화 이행양식이었다. 6·10 항쟁으로 집권세력을 무너뜨린 정치혁명이지만, 동시에 ‘6·29 선언’이라는 권력 엘리트의 양보조처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수용하면서 이뤄진 이른바 엘리트 간의 협약에 의한 이행이었다. 그래서 6월 항쟁은 학문적으로는 대중동원이지만 이행의 양식으로는 ‘엘리트의 정치협약’(DEAL)에 의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뿐만 아니라 6.29 선언은 노태우의 일방적인 작품이나 발언이 아니었다. 1987년 대선, 즉 ‘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이 뽑는 간선제 선거’에서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2인자였던 노태우가 당시 대통령 전두환과 청와대에서 만나 합의해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의 모습이었다. 6.29 선언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합의에 의해서 가능했다. 강온파 엘리트의 대립과 긴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6.10 항쟁으로 백만이 넘는 사람이 서울 시청 앞을 채우고, 지역으로 대중 투쟁의 파고가 확산되며 바리케이트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권력의 1인자와 2인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어떻게든 위기가 혁명으로 전화하기 전에 대통령 직선제라는 ‘거래’를 제안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김대중, 김영삼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 종로5가로 대표되는 종교-재야세력은 수용하기로 했다.

그때 군부엘리트와의 정치협약을 수용했던 이들을 계승한 현 정권이 현재 애써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분하려는 옹색함이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6월 항쟁의 성과가 어떻게 왜곡되고 정치엘리트간의 ‘딜’(거래)에 의한 협약으로 귀결됐는지를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분명히 6월 항쟁은 항쟁이었지만, 6.29 선언은 양 김씨와 전두환-노태우의 엘리트간 ‘딜’이었다. 그렇기에 전두환 노태우는 87년 이후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언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1987년 12월 대선에서 신군부의 핵심이고,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이자, 그들이 뽑아둔 차기 정권 대통령 후보가 곧바로 직선제 첫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돼 재집권한 사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대통령 직선제 자체는, 그리고 한국의 이행 이후 제도정치는 허약했다. 반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려는 거리 시위는 약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커져갔다. 체제의 정치적 위기는 아직 진화된 것이 아니었다. 이에 노태우는 대선에 당선되면서 역사에 없는, 대통령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중간평가는 없었다. 야당과 야당의 지도자이자 정적인 김대중이 중간평가를 치르지 않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해주었다.

그러므로 노태우는 대통령 자격조차 절반밖에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 결여에 대해 ‘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공안정국’ 조성으로 돌파했다.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취임 1년 만인 89년 초부터 가장 먼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공안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안기부 공작과 조작사건, 고문 등을 통해 변혁운동의 정치조직들을 차례대로 궤멸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적 노조운동의 첫 전국 조직인 전노협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심지어 소속 노조들의 집행부까지 모조리 구속시켰다. 그렇게 탄압이 변혁운동과 전투적 민주노조들에 집중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경실련, 여성운동연합등 시민운동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정부와 제도 언론은 의도적으로 이들 시민단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바로 그 시기에 1991년 5월 투쟁이 있었다.

5. 1991년 투쟁: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던 이유

1991년 투쟁은 노태우 정권을 “파쇼정권”으로 규정했고, “노동운동 탄압하는 파쇼 정권 타도”, “민중생존권 짓밟는 파쇼정권 타도”, 그리고 “민주주의 파괴하는 공안 파쇼정권 타도”를 걸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대중적 진출이 매일같이 거리에서 일어나고, 학생들의 투쟁이 격렬해지는 반면, 재야 세력은 이미 선거민주주의를 인정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민주당은 1987년에도 대중의 꽁무니에서 움직이더니, 1991년에는 아예 5월 투쟁을 외면했고 심지어 비난했다. 정치적 고립 속에서, 울분에 찬 개인들의 분신들이 이어졌다. 시위 중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시위진압 경찰에 목숨을 잃었고, 이에 학생 박승희로부터 연쇄적인 분신 자결이 일어났다, 5월 6일 대기업연대회의를 주도하며 대공장노조들을 전노협과 결합시키려던 찰나 그 주모자들의 회합장소를 급습하여 무더기 체포한 뒤, 그중 한사람인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안기부에 끌려간 뒤 안양병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리하여 1991년 5월 13인의 죽음이 이어졌다. 그러자 그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기존의 민주화운동에서도 나타났다.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지하가 대표적이었다.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가 나서서 민주화시위에 비판을 퍼부었다. 그렇게 1991년 투쟁은 1987년을 재연하지도 못했고, 민주화를 위한 요구는 일부의 격렬 투쟁으로 매도당했다. 1987년에 함께 했던 화이트칼러 등 중산층은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간 뒤, 이제 민주주의가 된 세상인데 웬 시위냐는 싸늘한 태도를 취했다. 중산층 전문직 시민단체들은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 민중이라는 말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후 과거사에 대해 처벌받지 않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서 대통령직에서 평화적으로 물러났고, 1996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교체기 국면에 들어 내란음모 등으로 최종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결과 역시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이 만든 성과가 아니었다. 3당 합당으로 우익 정당정치로 날아가 1993년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부의 경제 실정과 부패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졌고, 그 과정에서 탄압에 억눌려있던 목소리들이 1991년 투쟁을 이어받아 노태우 전두환 학살자 처단,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다시 나왔다. 위기에 빠진 김영삼 정권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고 전두환 노태우는 법정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나란히 손잡고 푸른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았고 확정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바로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로 이 판결의 집행도 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자를 만나, 전두환 노태우 등의 사면 복권에 합의한다고 전격 결정하고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알렸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1980년 쿠데라 세력의 단죄를 끝내지 않고, 그들을 풀어줬고, 과거사를 제대로 올바르게 청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가? 바로 민주당이. 그리고 김대중이. 근데 이제 그 정치세력의 정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권이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함으로써, 신군부 주모자의 역사적 죄과를 정확히 역사에 남기는 것마저 불가능해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하면서 87년 헌법 하의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을 핵심 이유로 삼는 것은, 1980년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의 죄를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1987년 이후 투쟁의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스스로 면책하고 삭제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1987년 대선에서 초대 직선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노태우가 중간평가를 하지 않는데 대해서 묵인한 행동, 노태우의 공안정국과 민주화운동 특히 변혁적 민주화운동과 민중생존권 투쟁을 공안탄압 한 것에 대한 면죄, 나아가 1991년 5월 투쟁의 13명의 목숨까지 말이다.

1991년 투쟁은 노태우 정권이 6월 항쟁의 성과로 나온 첫 번째 대통령으로서 자격 없음에 문제제기했던 것이다. 노태우는 내란의 수괴이고 광주학살의 주모자였을 뿐 아니라, 직선으로 당선된 대통령으로서도 절반의 인정만 받은 ‘반쪽짜리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1987년 선거결과에 대한 부정으로서 91년 투쟁이 있었고, 13인의 항거죽음이 있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 역사조차도 부정하는 셈이다. 91년의 투쟁과 죽음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등 자유주의 세력의 탓도 큰데 말이다. ‘국민 통합’을 이유로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했다고 하면서, 그들은 1991년 투쟁과 죽음들을 이렇게 배제해버렸다.

6. 87년 체제의 앙상한 결과: 대통령 직선제와 보수-자유 동거

이제 노태우 국가장의 유일한 근거는 결국 노태우가 87년 헌법으로 시행된 정초선거에서 당선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역사적 아이러니는, 바로 이것이 민주당 자유주의 세력의 원죄이기도 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이자, 민주화 이행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것을 자기부정 할 수 없기에, 내란이고 5.18 광주학살이고 간에 그들은 직선제 대통령제하의 첫 대통령으로서 노태우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장 결정의 배경이다. 국가장 결정으로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원을 회복시켰다.

이것이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의 공통의 정치체제다, 6월 항쟁이라는 대중항쟁 뒤로 ‘밀실타협’ 해 이룬 6.29 합의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더 큰 변혁을 멈추고 이 정도의 이행으로 마무리하기로 한 것. 그렇게 해서 직선제 대통령제로 다음 정치권력을 확보할 가능성만 가지는 것. 그래서 이행 이후 35년간 서로 물어뜯고 죽일 듯이 싸우지만, 사실은 한 몸 위에 쌍생아라는 점, 적대적인 듯 하나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존재의 근거로 삼는 두 정치 세력. 이념적으로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이며, 그들 양자가 원하고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독점해온 체제가 바로 87년 체제다.

법률상 국가장 여부에 대한 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한 것은, 바로 한국 자유주의 세력이 1987년 이전부터, 1987년, 그리고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보였던 민주주의에 대한 모호함, 정치권력을 향한 정파적 이해관계와 선거민주주의 외의 모든 민주주의에 대한 반민주적 태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노태우 국가장의 역사적인 귀결이고, 우리가 그 자의 장례에 맞춰서 꼭 기억해야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이다.

하지만 노태우 국가장이 5일장으로 끝나고 대중은 곧 이 날을 잊고 말겠지만, 이 심각한 결정이 이 나라 현대사, 특히 민주화이행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에 앞으로 끼칠 악영향은 분명하다. 자유주의 정권은 국가장과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양대 법률을 입법해두고서 법 논리와 판결을 무시하면서 법위의 정치를 구사했다. 그들은 자신을 유일 민주화세력으로 동격화하면서도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 불철저했고, 배덕의 민주주의 정치를 해왔다. 나아가 그들은 민주를 넘어 ‘진보’를 자임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진보를 향한 모든 움직임에서 진보를 가로막고 우익정치와 구태의연한 동거를 선택했다.

그 완벽한 귀결이 바로 오늘날 노태우 국가장이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본질이고, 6월 항쟁의 남은 결과물이다. 그러니 민주당 문재인 정권이 노태우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의 당연한 논리적인 실천적인 귀결이다.

하지만 그 행위는 분명히 역사적으로는 역사 자체를 시궁창에 박아버리는 행위다.

* <사파시평>은 민중언론 참세상과 홈페이지에 전문 게재됩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331
* 사파채널 https://t.me/c/1054441297/698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군인으로 살다 죽고 싶다”고 하던 변희수 하사는 떠나가고, 집행될 수 없는 재판 결과만 남았다. 대한민국 육군이 성전환후 남성 성기의 부존재를 이유로 그에 대해 내린 심신장애로 인한 ‘전역처분’은 부당하니 취소하라는 것이다. 2021년 10월 7일 법원이 판결했다. 그가 강제 전역된 지 624일만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은 죽고 없는데, 그가 삶과 죽음으로서 밝혀 달라고 이 사회에 요청했던 ‘정의’는 이렇게 뒤늦게 실현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과연 이런 것이 정의인가?

“정의”라는 말과 “법”이라는 말을 하나의 단어로 통용하는 국가 언어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법철학과 법이론을 거의 정초하다시피 한 독일어에서 recht는 법을 의미하지만, 정의, 그리고 나아가 권리까지 다 의미한다. 법, 정의, 권리가 모두 가족유사성 속에 어의 전화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어에서 droit는 법이기도 하고 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프랑스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단어는 영어와 다름없이 justice 이다. 영어의 경우 법은 law, act등으로 표현되고, 권리는 right라고 부른다. 한자어에서 법은 法인데, 동시에 법칙, 가르침, 모범의 뜻과 중의적이다. 결국 한자어에서 법이란 단어가 훨씬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법칙부터 법률까지. 이런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근대에서야 국민 국가가 형성되고 ‘국민’ 법을 발견하고 국가적 법전을 정초한 유럽과 이미 기원전부터 법치국가였던 중국 등 한자권에서 당연히 법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초에 정의는 법과 무관하다. 위의 법이란 단어의 기원에서 드러나듯이, 근대의 법이 정의를 독식하고 참칭하면서, 정의는 점차적으로 정의로움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결국 정의와 법이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정의가 법을 의미하게 되면서, 즉 법=정의가 되면서 한 단어에서 두 가지 뜻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민국가의 출현 속에서 실정법이 쓰여지고, 국민이라는 법 적용 대상이 만들어지고, 시민의 권리 개념이 조금씩 부르조아지로부터 남성 노동계급으로 확장되면서 일어난 역사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것을 법의 어원적 계보학이 드러내고 있다.

내가 다닌 대학 건물 앞에는 ‘정의의 종’이 있었다. 80년대 법대 교수들이 학내 시위 진압에 동원돼 나와 도열해 섰던, 바로 그 비루하고 수치스러운 학문의 시절. 그들 선생들이 가르쳤던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분노한 학생들은 정의의 종에서 종의 추를 빼버렸다. 그렇게 항의한 것이다. 정의의 종은 더 이상 울릴 수 없었다. 마치 80년대 초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학생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가시가 많은 어여쁜 장미꽃들을 심었을 때, 분노한 학생들이 맨손으로 장미를 뽑았듯이.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이름을 딴 아크로폴리스라는 광장에서 벌어진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그러고 보니, 시위를 못하게 하기 위해 화단을 꾸미는 것은 80년대 초에 이 학교에서 맨 처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민주화 이행 이후 법대 앞에 세워진 ‘정의의 종’에 추를 달아서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의미일까. 이미 정의가 법에 굴복한 세상에서 정의의 종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차라리 그 때 80년대 전반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정의와 법의 차이를 명확히 나눌 수 있었다. 법적 정의가 현실의 정의로움과 하등 무관하다는 사실은, 아무 논쟁거리도 될 것도 없이 명명백백히 현실 그 자체로부터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였다. 사회정치적 현실은 이른바 법적 정의 따위의 현란한 법적 용어와 뿌연 법정의 모습을 거쳐서 보여 질 수조차 없었다. 이 때 소위 법조계, 법복 귀족들은 ‘권력의 주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였다. 바로 그들 80년대의 검사들이 지금 이름이 다시 운위되는 곽상도나 김기춘 따위의 인물들이다.

해서 당시 법대생들은 사법고시를 보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탈탈 털어봐야 했다. 과연 이런 체제하에서 법으로 밥을 벌어 먹어야할까 하는 문제. 과연 법이 ‘밥’에 우월할 수 있는가의 문제 등까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런 고민을 했던 소위 ‘운동권’은 당시에도 학생들 중 일부, 소수에 불과했다. 그 대학을 나온 나경원 등은 아예 운동에 적대적이었고, 지금 정치인인 원희룡이나 조국은 그 때는 분명히 운동권이었으나 지금은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가 되었고, 아니면 여전히 지금도 민주화투쟁을 하는 양 자신을 현시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들어가서 1986년에 사법고시 합격한 전력을 보니, 이 사람은 70년대 말 엄혹한 시절에 10대 노동자로 6년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그 노동자로서의 삶은 현실의 힘은 출세해야겠다는 전력 질주로 나타났구나 짐작할 뿐이다. 1982년과 1996년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는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시절은 바뀌었다. 이제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에 길들여진 인민들은 정의를 법을 통해서 매번 확인받고자 한다. 아니 인민들은 갈수록 법정이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정의하도록 만드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 정의는 여전히, 그리고 전혀 정의롭지 않다. 특히 ‘법적 시간’은 사회적 시간이 아니다. 그러면서 법적 시간은 사회적 시간을 구속한다. 또 법을 활용하고 농단하는 자들, 소송을 지배하는 자들은 가진 자들이다. 권력을 가졌고, 거대한 사적 재산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법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고 그 시간을 경유하여 소위 법적 정의가 실현된다.

근데 여기에는 뭐 대단하고 특별한 트릭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단지 재판을 위한 절차와 재판 일정만으로도 법의 시간은 이미 가진 자들의 것이 된다. 법원의 재판은 느리게 진행되고, 재판을 하는 긴 시간동안 약자들은 고통스럽게 견뎌야한다. 그런 가운데 법적 정의는 사회적 시간을 왜곡하고, 한 사람의 소중한 생의 시간을 감금하고, 급기야 때로는 그 시간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예컨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판결은 한없이 늦게 나온다. 그조차도 판결은 판사에 따라 오락가락 춤을 춘다.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들의 죽음에 대한 판결도 한없이 늘어졌다. 그 사이에 수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이 많은 자본은 급할 것이 없다.

이 현상은 이 사회 안에 권력과 돈과 빽을 가지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다. 법의 시간은 사회적 시간에 대해서 한없이 무관심하고, 잔인하며, 형식적이고 군림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로서 가진 자들에 한없이 유리한 시간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법은 가진 자들의 것이 되고 만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것이 아니라 법은 멀고 정의도 멀다.

흔한 법언은 ‘법은 사회의 최소한’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아니다. 법은 단지 사회의 거울일 뿐이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정립하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세워지면, 법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결국에는 따라올 뿐이다. 수많은 법조문과 법을 둘러싼 해석은 과연 법을 세우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국민인가, 인민인가, 혹은 판관과 대리인들인가. 또 흔한 법언은 “법은 정의를 세운다”라고 하지만, 아니다. 법은 정의를 뭉개고 정의를 희석시키고 정의를 왜곡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를 넘어서야 한다. 사법적으로 포획된 정의담론을 넘어서서, 사회적 연대의 담론, 동맹의 담론을 구성해야한다. ‘우리’를 재구성해야한다. 배제와 포섭을 넘어선 ‘우리’의 정치학을 구성해야한다.

변희수는 죽었다. 변희수는 죽었다. 이 사회는 그를 살리지 못했다. 이 사회는 그가 살만한 사회가 못되었다. 그리고 법은 멀고, 정의도 멀다. 사회적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법적 정의라는 이름 안에 갇힌 사회가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데 일조했다.
변희수 그가 법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죽었다. 그는 정의는 법정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에게 감사드린다.

[사파논평]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정의와 법, 혹은 법의 시간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newscham.net)

[공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참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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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대로 계속 나아가야겠습니다!
한국사회가 ‘대장동’과 대선을 앞둔 정쟁으로 요란합니다.
결국 몇 명의 인물들의 악마화에 사회적 분노는 집중되고, 대선 앞에서 ‘덜 나쁜 놈 고르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가오는 대선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구조의 민낯이 폭로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취급하면서 가진자들의 ‘부의 놀음잔치’가 수면아래 면면히 진행될 것입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전지구적 전염병 코로나19가 덮친 2년동안, 전세계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전염병 백신은 부자 나라들이 독식하고, 가난한 나라의 민중은 속절없이 죽어나갑니다. 그 수가 450만명이 넘었습니다.
자본가계급은 더욱 강력해지고 노동계급은 자신의 방향을 상실하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성장을 회복했지만, 사회안의 계급불평등에 대해서는 무능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는 불평등 앞에서 연대로 맞서야겠습니다!
누가 더 ‘나쁜 놈’인지 지목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것으로 세상의 구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연대로부터 투쟁까지! 투쟁과 연대를 모아 더 강한 힘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읍시다.
우리의 관심을 희망을 향한 연대로 모읍시다!
다시 한번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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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참여방법>
1. 참여 기간: 2021. 9.13- 12.31
2. 결제방법은 신용카드와 통장 이체, 일시불로 가능
3.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4.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이 기금은 목적성기금으로 조성하여, 코로나19노동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을 위해 사용합니다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문의 sapafund@gmail.com)

뉴스1

“코로나 사회적 죽음 ↑..이번 국민지원금도 연대기금으로”

양새롬 기자 입력 2021. 09. 15. 05:30 

사파기금, 지난해 이어 ‘노동재난연대기금’ 모금 나서

2021.9.13/뉴스1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을 소비와 기부가 아닌 연대행동으로 모아주세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재난연대기금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던 노동단체에서 이번에도 재난연대기금 조성에 나섰다.

15일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을 조성해온 연대조직인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에 따르면 해당 기금의 이름은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코로나 취약층을 대상으로 사용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 노동 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을 위해 사용하게 되며 연말까지 모금 예정이다.

사파기금 측은 지난해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며 모은 기금 약 5700만 원으로 Δ해고노동자·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연대 지원 Δ활동가지원 기금 신설 Δ마스크 연대 등의 연대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사파기금 측은 모금을 알리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어서고 있고, 정부의 대책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적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집단심성이 강화되고 있다. 올해 말 내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면서 “이럴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공동행동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지원금을 양보해 이 사회 재난 약자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에 동참해달라”고 독려했다.

기금 참여 방법 등 자세한 내용은 사파기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민지원금은 올 6월 납부한 국민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소득 하위 88%에 해당하는 가구에 1인당 25만 원씩 주는 재난 위로금이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자(잠정)는 4326만 명(전 국민의 약 84%)이다.

국민지원금은 10월 29일까지 신청할 수 있고 12월 31일까지 사용해야 한다. 연말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국가나 지자체로 환수된다.

flyhighrom@news1.kr

“코로나 사회적 죽음 ↑..이번 국민지원금도 연대기금으로” (daum.net)

사파의 연대자 여러분께

여유롭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사회적파업연대기금과 함께 해주신 연대자들 여러분과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 노동자 여러분께 추석 인사 드립니다.

‘코로나19 국면’이 2년째인데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재난앞에서 우리 사회 불평등한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파기금은 재난에 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방역 통제 속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이들을 위해 사회적 연대의식이 더욱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대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적인 연대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어려움속에서 사파기금은  작년이후 현장 방문, 물품연대등에 더욱 노력을 집중하였습니다.  작년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 이주노동, 해고노동자 투쟁지원과 활동가지원기금을 신설했고, 재난속에 배제되고 지워지는 목소리를 주제로 한 집담회와 사파포럼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이후 각자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사파기금은 사회적 연대운동을 열심히 펼치겠습니다. 연대자 여러분이 연대로 함께 해주시면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올해말까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 속에서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든 사회적 약자들, 비정규 해고노동자, 이주노동자, 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으로 사용하는데 마음과 힘을 모아주세요.

https://sapafund.org/?p=4360에서 사파기금의 활동과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방법을 확인해주세요.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그리고 2021년 7월 발족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올해말 송년회를 겸해 10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10년동안 사파기금과 함께 꾸준히 연대활동을 해오신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코로나19를 넘어서 12월에 꼭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2021년 한해가 몇달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 잘 보내시고, 함께 사회적 연대로 새세상을 향한 희망을 모읍시다.

2021. 9.2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 시작

12월 말까지 진행, 코로나 재난 위기 맞은 노동자 등에 지원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을 진행한다. 국민지원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코로나19 재난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활동가 지원 및 국제연대 활동에 사용한다는 취지다.
사파기금은 9월 13일부터 12월말까지 2차 기금 조성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어서고 있고, 정부의 대책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적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 국가와 정부는 재난으로 인해 더욱 깊어가는 불평등을 바로잡기는커녕, 재벌과 자본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산업구조 전환과 경기 부양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럴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공동행동이 더욱 필요하다. 올해 말 내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터져 나올 사회적 투쟁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라며 “국민지원금을 양보해 재난약자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파기금은 지난해에도 노동재난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위한 1차 연대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해당 기금을 통해 아시아나케이오, 건강보험공단, LG트윈타워, 한화생명보험 등의 해고 노동자 및 비정규 노동자 연대 지원에 나섰다. 이와 함께 활동가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활동가지원기금 신설과 투쟁 현장 마스크 지원, 코로나19 노동재난 문제와 관련한 ‘지워지는 목소리’ 토론회등을 진행했다.

2차 기금 모집은 9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약 세달 여간 진행된다. 신용카드와 통장 이체, 일시불로 결제가 가능하다. 상세 정보는 https://sapafund.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참여 방법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