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일반화의 오류 혹은 사례의 다양성. 한국 사회 교육제도를 둘러싼 기득권과 자원의 불평등이 이렇게도 해석되는구나.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로, 학교폭력 가해자 아들을 위해서 법적인 자원을 총동원한 정순신 한 사람만 가지고 교육 및 입시문제를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란 지적. 또 다른 편에선 사례들이 매우 다양해서, 맥락을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맥락을 보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조국의 학폭 피해자 아들의 미국 대학 시험 부정과 관련된 얘기에서 나온 말이다. 논리학적으로는 다 맞다. 하지만 일반화 대 개별 사례라는 양극단을 주장한 이 얘기들의 결론은 결국 동일하다. 흥미롭게도 처음부터 예정된 결론을 가진다. 결국 사례들은 개별화되고,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등장한 두 명의 인물, 정순신과 조국이, 현실 정치진영에선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하나의 세계의 사람들로 보이는 이유다. 왜 문제는 남고, 과정은 유사해지고, 결론은 동일해질까.

1. 첫 번째 사례

윤희근 경찰청장이 단수 추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뽑은 2대 수사본부장 후보 정순신은 검사 출신 현직 변호사이고, 대통령이 서울지검장을 할 때 ‘인권감독관’으로 근무한 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는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그는 또한 아들을 ―판결문에 적힌 바에 따르면 “검사는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제주도에서 온, <한겨레신문>을 읽는 고등학교 동급생을 “빨갱이 새끼”라고 부를 정도로― 정치적인 도착상태에 빠진 인물로 키운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검사 빽”을 심하게 믿고, 동급생을 괴롭히다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을 당했는데, 그 아비라는 자는 아들의 대학입시를 위해 이미 판정이 난 학교폭력을 두고, 자신이 가진 법적 지식과 연고를 총동원해 재판에 재판을 이어 붙여 대법원까지 갔다. 아들에게 대학입시에서 학폭을 은폐하기 필요한 1년의 ‘법적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법의 시간이 사회적 시간을 이렇게 압도한다. 노동 판결부터 이런 학폭까지- 민중언론 참세상 <사파시평> 2021.10.08.자).

그리고 서울대학교는 정시로 그를 입학시켰다. 듣자 하니, 수시 아닌 정시 입학 절차에서도 문제 있는 지원자는 더 조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서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건지, 대학교의 유기행위도 적지 않다. 이런 구멍을 두고도 입시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또 능력주의가 제일인 건지. 결국 정순신은 자신의 기득권과 ‘학부모 자원’을 아주 잘 사용해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을 ‘아주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다. 참 교육적이기도 하지.

2. 두 번째 사례

이를 두고 어느 이는 조국의 아들 경우와 비교했다. 그 아들이 학폭 피해자였다고 한다. 나는 자세한 저간 사정은 모르지만, 여기까진 십분 일반적인 ‘학폭’에 비춰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다양, 아니 특수하다.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서는 ‘사례의 다양성’ 논리. 그래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지방대 교수인 어머니의 근무처 근처에 불러다 ‘자원봉사’를 하게 해서 대학입시용 경력을 만들었다. 그가 학폭 피해자라서 그렇게 했단다. 또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이 할 수 없이(?) 미국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대학에서 학기 중에 ‘in-class’ 시험이 아닌 home 오픈북 시험을 쳤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부모가 미국에 있는 아들과 함께 혹은 조력하여 시험을 치렀는데, 그것도 그가 학폭 피해자라서란다. 학폭 피해자라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저 위에 정순신 검사/변호사의 아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의 경우, 이런 유사한 조력을 자기 부모에게 받았을까? 부모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 인턴을 하면서 입시용 경력을 만들고, 미국 대학에 입학해 부모의 실시간 조력을 받아 함께 시험을 치르고.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의 비교를 뭐라고 이해해야 할까.

결국 학폭 가해자의 생존도, 학폭 피해자의 생존도, 다 부모가 누구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바로 그 공통점이 남는다. 개별화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의 오류를 뚫고서 진짜 문제가 남았다. 학폭이란 동일한 사건에서 피해와 가해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가 누구인가 하는 것. 이것은 엄연히 ‘불평등’의 문제인가. 아니면 학폭 가해자는 저쪽이고, 피해자는 이쪽이라는 문제만으로 앙상하게 비교할 일인가. 그 문제가 남는다.

3. 세 번째 사례

흥미로운 다른 사례들도 나는 알고 있다. 유명해진 위 사례들과 서로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지점을 건드린다. 근데 이런 일들은 사실 매우 흔하다. 한 사례는 부모 중 한쪽이 교수이고, 아들이 학폭 가해자는 아니지만, 위법한 일을 했는데, 부모가 자식을 분리해 비싼 대안학교에 보냈고, 그 후 그는 여하튼 졸업을 했다. 또 다른 사례의 경우, 부모 중 한쪽이 교수이고 미국에서 안식년을 가지면서 취학기 아이에게 외국어 교육이 가장 필요할 때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더 다니게 했고, 그 교양으로 그 친구는 한국의 아주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했다.

내가 한국에 귀국해서는 더 많은 유사 사례를 접했다. 이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대학 재학 중 ‘인턴’ 제도가 도입되자, 부모의 연줄로 아이가 인턴을 맡게 되는 경우가 흔하디흔하다는 현실이었다. 언론사, 법조계, 대기업 등등 부모의 직장이 자식의 인턴 소개소가 됐다. 그러니 조국 부부나 그를 감싸는 이들이 가진 억울함도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실제 대한민국의 많은 교수가 자신의 ‘안식년’을 자식 교육의 더없는 기회로 활용한다. 또한 정순신의 경우는 검사의 직분을 활용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즉 법을 직접 관장하는 전문성을 가진 자가 법을 휘두르고 법의 허점을 악용해 절차의 공정성까지 해쳤다는 점, 그리고 자식에게 검사직을 그따위로 가르쳤다는 점이다. ‘직업윤리’를 의심하게 하는 그의 죄질이 더 독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교육에서 공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4. 개별화되는 사례들의 동일성

그렇다면 결국 이들 사이 거리는 오십보백보인가. 아니면 온건한 사례부터 독한 사례까지, 모두가 다 면면하게 흐르는 진한 ‘부모된 마음’으로, 학폭 자녀까지 그런 자원을 통해서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까. 자식을 그런 방식으로 보호하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봐야 할까. 혹 부모 중 그런 자원을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자식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사실은 문제는 이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불관용’의 문화가 얼마나 강할까라는 문제다. 말하자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과 네트워크를 최대한, 법과 상관없이 활용하고 동원하는 부모를 막아내는 사회적 불관용의 기준과 문화가 있는가 말이다. 눈에 보이는 구조보다 더 강한 것은 이렇게 면면히 흐르는 ‘사회적인 것들’이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바꿀 수 있을까. 온갖 교육과 관련된 사건들이 일반화와 개별화 속에서 흩어져버리게 만드는, 이 묘한 사회적인 풍토 말이다.

5. 교육문제에서 두 가지 장애- 구조적인 인식론적인

문제는, 교육제도와 악행에는 바로 다음 두 가지 장애들이 언제나 놓여 있다는 점이다.

첫째, 부모라서 그럴 수 있다는 공동의 연대 의식. 내가 부모인데, 하필 조건이 되고, 그래서 해줄 수만 있다면 다들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말이다. 혹은 이미 하고 있기에 가지는 일종의 유대와 공범의식. 심지어 이런 관행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 가진 학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자식이 없는 미혼의 경우만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과연 정말 모든 학부모들은 다 그런가? 아니, 다 그럴 수 있는가? 혹은 그런 위치가 된 이들이 그래서 그렇다는 건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용인돼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위치에 있는 학부모라는 것 자체가 교육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닌가? 교육의 불평등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약화하고 해체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방향일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둘째, 입시제도를 포함해서 교육제도는 자의적이고 개인적 자원의 동원, 즉 불평등한 사회체제가 개입할 여지를 가능한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게 바로 공정함이다. 능력주의의 시작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교육이 만약 ‘출발점의 동일함’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공정과 능력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능력주의’를 그렇게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 현실은 계속 어긋난다. 교육제도는 현실 앞에서 무력하거나, 현실 속에서 굴절된다. 지금껏 교육제도 중 사회 안에 던져졌을 때 ‘제도적인 허점’을 보이지 않는 제도가 없다. 왜 그랬을까? 결국 모든 교육제도는 제도 이전의 문제다. 하지만 너무 결론이 쉽다. 이것 역시 일종의 현실 도피이고 핑계다.

6. 불평등한 교육,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

그러니 사실은 이 교육제도,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다. 아니 대학 자체가 문제다. 대학이 가진, 그리고 명문대학이 가진 우월함의 표식, 그것으로 인생이 절대적으로 바뀔 수 있거나, 이미 누리고 있는 계급을 유지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다는, 그 상징화된 자본과 구조가 문제다. 나아가 제도 자체에 접근하는 시각, 목적을 무엇으로 두느냐가 문제다.

정순신이고 조국이고 간에, 학폭의 피해자이고 가해자이고 간에, 그리고 입시 부정이고 공정 입시이고 간에, 지금 드러난 문제는 현재의 교육제도, 입시제도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 관대하거나 그들을 교정시키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사실이다. 교육의 실패다. 그 입시제도 교육제도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교육제도 자체가 불평등을 만든다. 정순신의 ‘자식 사랑’ 스캔들을 단지 스캔들로 보지 말고 이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를 기초로 교육의 진보, 혹은 진보교육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내가 내린 간단한 결론은, 불평등한 교육,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를 넘는, 말하자면 평등교육, 민중교육 제도로의 개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를 향한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교육제도가 사회적 불평등,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육제도를 통한 불평등의 계승, 전승, 공고화를 막는데 나서야 한다. 즉 교육제도의 기본 목적을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개선에 두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과연 현재 ‘진보’ 교육감 중에서 이런 목적을 자신의 교육철학을 둔 이가 있는가? 나는 그런 목표야말로 진보 교육감을 내세우려는 이유, 즉 진보적 대안의 정당성이 돼야 한다고 본다. 아니 교육현실과 교육제도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현존하는 계급체제에 계급·계층이동을 봉쇄하는,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 돼버린 한계에 봉착한 지금이야말로 그것이 진보교육, 혹은 교육진보의, 혹은 진보교육감의 유일한 출마 내지 당선 목표여야 한다. 누군가는 그 주장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불평등한 교육, 사회적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교육체제에 맞서서, 그것을 고치는 방향은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평등을 교육의 지표로 삼고, 사회적 평등을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허상 같은 공정경쟁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교육제도에서 평등 교육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정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불평등교육을 넘어, 평등교육을 지향해야 하고, 그렇게 제도를 바꿔 나가기 위해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일례로 특성화고 학생 고 홍수연의 죽음은 왜 ‘정상교육체제’ 혹은 학교교육체제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져갔는가.).

7. 지금 해야 할 일

물론 이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즉 개별 사건으로, 사례의 다양성으로 문제를 축소하지 말고, 문제를 드러내고, 더 깊게 비판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 정순신 사퇴파동을 단지 “아쉽다”고 표현한 현 정부의 저열한 사회적 의식과 공감 수준에 대해서 대차게 문제제기하고 대통령이 “아쉽다”는 표현 이상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태도는 항상 그래왔듯이 아전인수격이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임명권자로서 자신의 오류는 통감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임명권자가 왜 그런 자를 임명했는가가 문제이다. 그는 지명을 철회하면서 “아쉽다”고 표현하고서(무엇이 아쉬운지 묻고 싶네), 갑자기 앞으로 관직 임명 시 자식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도 ‘연좌제’일 수 있다. 공직 임명 시 아들의 학교폭력에 대해서 부모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 정순신이 자신이 ‘국가기관’인 검사 직책을 이용해서 아들의 학폭 전력을 은폐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아들이 “검사” 직업에 대해서 표현한 말에서 보듯이 검사로서 과거 전력에 심각한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문제다.

그리고 정순신의 아들을 정시입시로 합격시킨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이 학생의 입시전형이 제대로 됐는지 조사 후 공표할 의무가 있다. 규정에 따르면 수시가 아니라 정시에서도 학교폭력 문제는 거론돼야 할 사안이고, “감점 요인”이라고 한다. 감점에도 불구하고 합격했다면 인정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만약 감점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는 국립법인 서울대 입시의 문제로 비화한다. 직무를 유기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국의 교육감들은, 진보 쪽이라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새로운 공약을 내세웠으면 한다. 학교에 대해서 투명 경영, 공정 교육, 특수학교 등의 ‘혁신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대안마저 불평등 체제의 일부가 되는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교육제도가 불평등하고, 교육제도가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는 노력, 나아가 그를 바꾸는 제도와 정책 한 가지라도 제안하길 바란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공정과 능력주의로 은폐된 불평등교육을 넘어, 평등교육으로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정순신, 조국 등 ‘학부모’ 자원이 드러낸 문제 (newscham.net)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노동사회학자)

1.
그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주당보다 더 리버테리언인 양, 세상만사 다 우습다는 듯이, 한순간이면 다 벗어던질 듯한 사회문화적 태도. 그자가, 갑자기 어느 날 자신의 ‘비즈니스’로 이 지구와 이 인류를 구하겠다는 듯이 수소차니 전기차니 뭐니 할 때부터, 그리고 기후문제를 들먹일 때부터 특히 그랬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자본가들의 비즈니스에 군불을 때고 또 한 번 어떤 자본가들의 뜯어먹을 거리가 되겠구나 했다. 그 대표적인 인사가 머스크다.

어쩌면 가장 사기꾼스런 자. 조지 소로스를 뺨치는 자. 소로스는 헤지펀드, 투기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뽑기 위해, 전 세계 내전을 부추기고, 내전 한편 아니 양편에다 군자금을 대고, 없는 사회운동도 만들었다. 그러므로 소로스는 20세기 후반 이후 자본가의 새로운 유형이었다. 그가 폴란드 출신(아니고 헝가리 출신이다. 소로스가 폴란드에서 했던 많은 ‘혁혁한’ 국제활동을 염두에 두다가 잘못 썼다. 근데 그냥 두기로 한다.)이라는 점까지.

근데 머스크 이 자는 웃기게도 자신을 투기적인 돈놀이꾼도 아니고, ‘제조업’ 혁신가인 양 포장한다. 자동차를 혁신, 또 혁신하겠다 한다. 근데 그가 정작 돈을 번 것은 모두 비트코인, 가상 금융에서였고, ‘선택된 소수’ 인간들을 우주로 보내주겠다는 우주선 프로젝트를 하면서 마치 ‘기술의 첨단’을 걷는 듯한 쇼 비니지스를 통해서, 자신이 만들어 파는 자동차의 한계를 슬쩍 무마했다. 이건 뭐, 이렇게 사기꾼스럽다니.

2.
그러더니 머스크가 SNS 수단인 트위터를 최근 구매했다. 트위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휘발성 강한 SNS 도구다. 결국 그는 잘 아는 것이다. 자본에도 SNS, 즉 Social Network Service가 중요하다는 것. 이제 자본가들에게 자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뭐니 뭐니 해도 ‘상징자본’이다. 뭐하러 언론사는 귀찮게 만들까. 언론사는 통제하기도 힘들고, 언론기사는 ‘가짜뉴스’ 만들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악하는 자는 머리 꼭대기에 있어야지. 바로 big brother!

고로 SNS를 장악하면 된다. 트윗을 날려서? 아니 그냥 트윗을 잡아먹고서. 흥미로운 것은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몇 번이나 안 살 것처럼 흔들더니, 결국 샀다, 바로 미국 중간선거 얼마 안 남기고 말이다. 미국 중간선거는 매번 11월 둘째 주 화요일에 치러진다.
그리고 그가 인수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트윗의 노동자 3,700여 명에 대한 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무례한 방식으로! (내가 사람의 ‘무례’를 잘 따지는 건, 그게 결국 사람의 바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바로 회사의 SNS 창을 닫아, 해고 대상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 자신이 해고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했다. 나쁜 짓~

3.
피비린내 나는 대량 해고에서 해고 방식만 고약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하의 지점이다. 그는 정리해고를 하면서 트위터 안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인 ‘민주주의’ 파트를 없앴다. 그리고 트윗 안에서 ‘미디어 윤리’를 맡은 파트를 몽땅 덜어냈다. 이게 무슨 말이람? 여기서부터 좀 복잡하다.

표면상으로 머스크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대한 ‘자정’, ‘규제’를 가하는 쪽으로 바꾼 방향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더 이상 규제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즉 ‘트윗에서 트윗을 날릴 자유’를 옹호한다는 거다. 뭐 대단해 보이지? 아니, 표현의 자유 옹호니까, 맞는 말 아니에요 싶지. 아니면 트윗에서 혐오발언이 난무하고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통로가 되니 문제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맞다. 이 해고 단행이라는 방식으로 내부의 규제 관련 부문을 정리하는 것은, 지저분한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SNS 준동을 슬쩍 눈감아주겠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는 미국 민주당- 바이든 정부의 입장에 정면 다르게 나가겠다는 것이다. 고로 머스크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과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동아줄을 확실히 잡겠다는 메시지를 ‘정리해고’로 보여준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다시는 미국의 ‘고요하게 안정된’ 공화-민주 양당 정치 구조를 흔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정략과 SNS 규제가 맞물려 있다. 한국은 아니 그런가?

4.
그런데 다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단지 일개 자본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세상의 풍향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해온 자본가의 행동이 일종의 나침반처럼 가리키는 바를 우리는 봐야 한다.

이번 머스크의 트위터 노동자 대량 정리해고를 두고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이 이에 대한 성명을 냈다는 것이다. 폴커 튀르크 대표는 11월 5일 OHCHR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한에서 머스크를 향해 “출발이 좋지 않다. 트위터는 인권이 경영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서도 ‘인권’이 등장한다. 자 이쯤 되면 이게 단순히 해고를 둘러싼 문제나, 표현의 자유냐 혐오테러의 규제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지 않나?

맞다. 아니다. 이것은 ‘중국 문제(리스크)’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미국이 계속 끌어가냐 마는가의 문제이다. 머스크는 지금 중국 리스크를 죽여야만 돈을 더 이상 잃지 않고 돈을 벌게 된다. 그의 자본이, 그의 차들이, 그가 펼칠 세상이, 중국과 미국의 친구 관계를 요구한다. 이는 트럼프 집권 시절, 한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북한과 화해무드를 더 지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될 일이다.

덧붙여 UN과 산하 기구들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더 정확히는 정치적이다. 미국 주류 정치와 연동되고 있다. 아니 미국과 서방의 ‘지정학적 전략’과 한몸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여러 번 논문이나 강의에서 의미한 ‘국제인권체제international human rights regime’라는 것이 ‘체제’로서 그렇다.

5.
그러니 머스크 등의 자본가들로선, 민주당 올드보이들과 어쩔 수 없이 ‘호전광’이 돼버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끌고 가면서, 중국에 대해서 ‘민주주의 전쟁’을 하지 않게, 이쯤에서 멈추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압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공화당 내 ‘가장 평화주의자’는 우습게도 트럼프다. 그리고 트럼프와 함께하는 정치인들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절대다수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머스크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여기에 베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 회사 내부의 인적 정리를 통해서, 머스크는 민주당과 바이든, 그리고 ‘전쟁’하자는 녹색과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선 것을 보여준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이 반전이.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우파 민주당과 독일의 녹색당 소속 외무장관, 경제부총리 등이 지금 가장 ‘호전광’이라는 사실 말이다. 어떻게 하여 ‘녹색’이 피비린내 나는 적색이 되었는지 말이다. 한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그 이데올로기의 불철저함에 내장돼 있기도 한 것이다.

한국에서 학습효과로 삼아야 할 일이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일론 머스크라는 자본가와 미국 중간선거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트위터 대량 해고의 미국 국내정치적, 지정학적 의미 (newscham.net)

1.
답답하고 저리다. 너무 많은 목숨들이 어처구니 없게 죽었다. 그들은 그렇게 저 자리에서 죽을줄 몰랐을 것이다. 그 상황이 그렇게 위험천만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할로윈 파티를 저렇게까지 운집해서 해야하는가 라는 것은, 도덕적인 판단도 뭐도 아니고 남의 취향들이다. 그 취향과 세태가 못마땅하여도 남의 취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온 나 역시 할로윈이 한국에 이렇게 급속히 퍼진 것에 대해서 당황스럽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유별난 일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차라리 세계화를 비난하는게 낫겠다.
아무튼 이 사회 숨막히는 사회에서 뭔가 ‘출구’는 아니더라도, 짧은 한때의 축제나 일탈을 꿈꿀 수도 있고, 누구는 올해는 저 이태원이라는 데 가서 저 할로윈 파티를 하는 대중의 물결에 한번 휩쓸려보자 했을 수도 있다. 그건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거의 다수가 각자 그런 출구 아닌 출구들을 조금씩은 예비하고 꿈꾸고 심지어 결행한다. 텃밭을 가꾸거나 매주마다 다른 일은 제치고 산을 오르거나, 가족에 올인하며 두문불출하거나, 은퇴후 집자리를 보러다니거나….. 다 자기 숨통을 열기 위한 안타까운 출구전략이나 하룻밤의 출구다. 그것들간에 뭔 대단한 차이가 있는지.

2.
내가 덧붙이고 싶은 건 이것인데, 서울은 인구밀도가 높다. 사람들은 어떤 대형 이벤트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보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사회 분위기도 있다. 밀도 높은 도시에 (유동인구가 만들어내는) ‘순간 밀도’ 는 더 높아진다. 도심의 공간들이 여기가 핫hot하다가 저기가 핫hot하다가 변화도 있다.
이태원은 한때는 지역상권이 많이 죽었다가 경리단 길인지 개발되고 나서 많이 일어섰다. 대형 이벤트들이 붙었다. 이태원 인터내셔날 거리행진도 치러진다. 할로윈 파티도 이태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아직은 다른 곳들에서 젊은 성인들이 할로윈이라고 모여 파티할 만하지 않으니, 여기 이 공간으로 집중적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을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지형적인 사실이 있다. 이태원 뒷골목은 좁고, 간선도로도 좁다. 특히 해밀턴 호텔 뒷골목을 가보면 경사지고 좁다. 도저히 공간상 10만명이 운집할 만하지 않다.
올해 코로나19 3년째이고 거리두기가 해제된 첫 해에 이태원 할로윈파티에 10만명 집결이라는 소식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그렇다면 10만명이 운집할만한 거리를 만들거나 그런 일시적 운집으로 인한 대비는 정부가 해내야할 몫이다. 바로 여기서 1차적으로는 관할하는 지자체인 서울시, 그리고 중앙정부와 행안부등, 국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

3.
이 참사를 두고 “후진국형”이란 표현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 편견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에서도 이런 “몰린 인파의 압사”는 없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선진국형일지 모른다. 정보의 과잉, 정보의 공유가 갈수록 순간밀도를 높이는 이벤트들과 결합해서 벌어지는 참사이므로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부 우파 신문들의 논조가 좀 수상하다. 파이낸셜타임즈, 조선일보 일제히 이들은, 개인들을 비난하고 나선다. 인재 아닌 인재로 만들고 있다. 아주 자극적이다. 한쪽에서 시신들이 널부러져있는데, 다른 쪽에선 “sex on the beach”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는 기사. 근데 기사가 매우 엉성하다. 이런 기사는 기사로서도 흠결이 많고, 이런 기사로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4.
재난문자와 재난방송.
요즘 한국인들은 매일 휴대폰으로 정부가 쏘아보낸 재난관련 문자를 수없이 읽고 있다. 정부는 스팸 문자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많은 문자들을 보낸다. 그런데 왜 정작 재난의 현장에선 이렇게 정보가 차단되고 공유되지 않았을까? 이태원 재난 현장에는 한곳에 몰린 대중들의 귀에 들리게 공중에서 큰 스피커라도 사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했을까? 더이상 밀지 말고, 가장 밀도 높은 그곳으로 밀고 들어오지 말고, 분산하라고. 가만히 있지 말고 안전지대로 빠져나가라고 방향을 신속하고 주의깊게 안내하고 행동지침을 알려주는 방송 말이다. 이 나라 아파트단지마다 달려서 시도때도 없이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방적 통보’는 수없이 많은데, 하다못해 10만명이 운집할 저 거리에 어떤 알림 시스템이라도 없었나?
오늘 아침 이태원의 저 장면들을 보면서, 한쪽에선 사람들이 춤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특히 우파 언론들이 자극적인 기사로 맹비난중이다. 근데 현장에서 과연 정확히 사태를 알 수 있었던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의 공간들이라는 것이, 익명성 속에서 순간적으로 모인 이들이, 자신의 ‘물리적 감각’으로 보고 듣는 것 이상의 어떤 정보를 현장에서 알아낼 수 있을까?
일 벌어지고 나서, 결국 저렇게 맨투맨으로 물리적으로 현장에서 사람들의 물결을 통제하겠다고, 손에 야광봉 들고 이리뛰고 저리 뛰고, 사람들의 대오를 더이상 앞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는, 얼마되지 않는 경찰들의 모습이 더 기가 막혔다. 과연 현장 상황에 맞는 준비를 하고 출동한 것일까?
한쪽으로 이 국가는 저 위로부터 아래로, 정보의 간격도 없이, 분리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면서. 정작 현장에선 어떤 정보도 제대로 공유되거나 전파하는 시스템의 준비는 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재난에 대응한다는 것….
온갖 디지털 강국이 보이는 재난현장의 모습이다.

여기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
느끼는바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이렇게 많은데, 왜 이런 재난은 일어나고야 마는걸까.
답답하고 저린 마음이 제일 먼저인 이유다.
조건 불문, 세월호에 이어, 국가와 정부의 책임, 재난 체계의 문제를 따지는 것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2022.10.30
–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지옥같은 밤을 보냈을 이들에게 위로를.
죽은 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명복을.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할 기회 이상의 무엇을 남기길.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왜 우리는 관망합니까? 평론가들만 넘칩니까?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라는 실천을 하고서 그 결과를 두고 선거 직후에는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다음 투표 때까지는 분석하고 설전하고 원망하고 책망하고 자책합니까? 투표 말고 다른 실천, 다른 행동을 해야만 선거의 결과도 바뀌는 것 아닌가요? 말만 번드르르한 ‘일상의 실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여기에 답 하나를 내보려고 합니다.거제도 옥포만에서 이제 51일째 파업 중인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파업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비정규노동이 가장 천대받으며 노동집약적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파업입니다. 아무리 비정규노동이 공장 내 생산 노동자의 다수가 돼도 그들 다수를 천대하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그들의 노동력을 후려칩니다. 필요하면 더 쓰고, 필요 없으면 더 많이 자릅니다.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가 절반에 육박합니다.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으로 요술을 부리는데 정규직은 모른 체 묵인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절대임금 많이 받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사용하는 현장의 연장과 공구도 다릅니다. 연차 10년, 15년 된 숙련 조선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으로 임금이 차별적이라면서 노조가 임금 인상의 주범인양 몰아가는 자본의 논리는 비정규직은 아예 조사대상에서 뺀 결과입니다.  이것이 199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자리 잡은 ‘비정규노동’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도 아니고, 세대의 문제도 아닙니다. 남녀의 문제도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비정규노동을 만들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비정규노동은 가장 완벽하게 “교과서적으로” 실현됐습니다(이 표현은 저의 박사논문(2008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표현이고, 당시 미국의 교수 연구자들이 동의한 표현입니다).

노동을 갈라치고, 소수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타이틀을 주고, 노동과 노동의 갈등 속에서 자본의 이익을 가장 완벽하고 안전하게 구사해왔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은 이제 상시화됐습니다. 이들은 ‘불안정’, ‘일시적’ 노동자군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구별은 결국 능력과 세대, 젠더의 문제도 아니고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 탓도 아니며, 결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누구는 정규직으로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삽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의 이익만을 전일적으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대한민국만 한 국가사회(national society)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이 나라의 정치는, 그리고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자본을 ‘불안정 자본’으로 만들었습니까? ‘불안한 자본’으로 만들었습니까?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1987년 이행 이후 민주주의 정치는 자본의 공화국을 변혁하고 바꾸기는커녕 더욱 공고화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착각하고, 자본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이라고 여기고, 자본의 이익을 제3의 ‘공익’이라고 여겼습니다. 전문가들, 연구자들은 그런 착각과 허위의식을 만드는 이데올로그였고 나팔수였습니다. 최근 최저임금 책정과정에도 등장한 ‘공익’이라는 가치관이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정치와 국가 역시 자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삼았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의 파업을 두고 “전체 국민을 위해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접으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일개 조선소에서, 그것도 한줌거리도 안된다고 자부했을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전체 국민과 국가 경제를 말하다니. 언제 그렇게 비정규 노동자들의 힘을 인정했다고 이런 말들을 하는 건지.

이렇게 자본의 입장을 국민의 이익으로 전일화 해버리는 담론 속에서 과연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그건 대통령 스스로 헌법상 노동자의 시민적 권리를 깡그리 부정하는 언사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집단적 위력’의 행사로 만들어낸 노사 간 교섭이 진행 중인 마당에 폭력적인 협박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이 사회에 있습니다. 자본이 저들만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강변하고, 제도권 정치세력이 우익이든 자유주의 세력이든 정권만 잡으면 국민경제를 위해서 노동의 희생을 강요하고 노동권의 전면적인 보장을 유예하며 공익과 자본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흐름을 더욱 강조하고 공고화할 때 이 사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자본과 제도, 정책의 바탕은 사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인 것들(the social)’입니다.

사회 안에서 ‘국익’은 없습니다. 사회는 사회적인 구성물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인 것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인 힘들이 서로 길항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넘실대고 서로 동맹을 맺기도 하고 혹은 적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대한민국이란 사회는 이렇게 단원적, 아니 일원적, 아니 전체주의적일까요? 노동에 대해서만 유독 그렇습니다.

소수자들은 어려운 투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서고 있습니다. 노동은 조직노동이라는 이익단체로 제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노동은 더욱 갈지자이고 갈기갈기 찢어져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조직노동’이 힘을 얻을수록 ‘사회적인 노동’은 모호해지고,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더욱 전체주의적이고 단원적으로 굳어집니다. 노동 자체에 대한 이 사회의 시각은 오히려 후퇴중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단결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은, 아무리 조직해도 이익단체로 취급받습니다. 부문의 이익, 정규직의 이익을 넘어서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기득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 안에서 노동은 존중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이 사회가 ‘한국사회’입니까? 한국은 국가입니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가지 기본계급으로 구성돼 노자관계를 사회적 생산관계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결국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들은 자본이거나 노동자입니다. 중간계급들도 결국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생산관계 스펙트럼 위의 중간자적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의 압도적 다수는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회마저, 다양한 이 사회적인 집단들마저, 사회 안의 다수 세력인 노동자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정확히 계량하거나 산정하지 못할까요?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자본의 이익과 동일시하거나,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말하는 허위의식에 절어있거나, 자본의 이익을 공익이라고 강변하는 전문가 담론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반박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이 도도하고 오만한 흐름에 저항하는 이들과 한편에 서거나, 지지 발언을 하거나, 투쟁을 엄호하는 연대자로 나서지 못하는 걸까요? 어째서 사회적인 연대로 노동자의 투쟁을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들지 못하는 걸까요?

노동자의 투쟁이 개별화되고, 개별 노동자들의 이익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임에도 사회적인 투쟁으로 확대되고 ‘비화’하는 것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투쟁이 사회적인 투쟁으로 확대되고,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으로 가는 길이 봉쇄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담합, 이 땅의 선택받은 정치세력과 정당들의 노동배제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국가와 자본, 정당들의 이데올로기와 행위 앞에 굴복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사회와 사회적인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체 사회가 저항하는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 안에서 노동자 투쟁에서 한편이 되고, 노동자 이익을 국익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자본의 이익 앞에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와 정부, 보수정당을 비판하며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는 단일하지 않고, 사회적인 것들은 서로 분명히 충돌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거제도 옥포만 대우조선해양에서 거제통영고성지역 전체 조선소 노동자를 아우르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파업 중입니다. 대우조선 직접생산직 1,2000여 명 중 단 150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마지막까지 파업대오에 남은 이들이 대우조선에서 파업 중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파업을 두고, 어마어마하게 ‘국익’을 말합니다. 지금 대통령이라는 자가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말합니다. 언론과 교수들이 대우조선이 문 닫을 것처럼 말합니다. 원청과 하청업체가 대우조선 비정규노동자들이 회사를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우조선 정규직들이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을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어리석음이라니.

단 150명의 노동자가 이렇게 위력적이라면, 노동자 1만 명이, 노동자 10만 명이, 노동자 단 1백만 명이 제대로 뭉친다면, 이 나라 경제를 뒤집어엎고 싸그리 변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사회와 자본주의가 지금 거제 옥포만에서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공공연하고 노골적으로 ‘자기고해’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해방이후 산업화로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이 자본주의는 애초에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이 자본주의가 말하는 국익은 자본의 이익이라고. 하지만 부패하고 부유화되고 살찐 돼지마냥 자신의 이익만 고수할 뿐인 이 자본주의는 너무 허약해서 2500만 노동자들 중 단 1%의 노동자만 제대로 조직하고 정확하게 저항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고. 호들갑인지 진심인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일부터 파업을 시작하고, 6월 7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금 많이 어렵습니다. 파업에서 내건 요구를 많이 접고 투쟁을 정리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불황에는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해고와 인원감축, 임금인상을 가장 빨리 단행한 자본은 호황이 되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다시 호황기가 도래한 조선업종의 사정을 감안해 지난 6년간 삭감된 임금 30%의 원상회복을 요구했습니다. 사내하청업체들과 개별교섭이 아닌 집단교섭단을 구성하고, 원청회사가 교섭 테이블에 앉은 것은 노동자 파업의 성과입니다. 그래서인지 노조는 자본이 제안한 4.5%를 받아들일 의향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사측이 내놓는 조건입니다. 앞으로 불법파업을 하지 않는다고 확약할 것을 강요하며, 파업을 접고 나면 손배가압류를 철회하지 않고 강행할 것이라 협박합니다. 해서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대상을 노조 집행부로 국한하는 문제를 ‘교섭’ 테이블에 올려두고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노사 교섭 테이블에 이런 안건이 오르는 것이 애초에 적절합니까? 지금 노사 교섭이 이뤄지는 방향과 내용이 이해됩니까?

노조가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확약해야 사측이 교섭에 합의해주고, 손배가압류를 노조 집행부로 국한해 달라고 하는 것. 이것은 교섭 대상이 아닙니다. 자본은 항상 교섭 의제나 대상에 대해 적절이니 부적절이니 몽니를 부리고 애초 안건을 선정할 때 많은 노동 의제들을 배제해버립니다. 그런데 노동의 입장에서도 부적절한 안건은 있는 것입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을 하는 것은 노동의 권리입니다. 불법파업을 책임지는 것도 노조입니다. 손배가압류 대상에 대해 노사가 논의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단일노조인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금 협상테이블에 앉아있는데, 과연 이게 교섭의제로 적절하다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선하청지회가 왜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게 됐을까요? 그것이 기실 마음이 무거운 이유입니다. 조선하청지회는 이 안건이 부적절하다는 것, 이러한 수정제안들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노조를 만들고서 감행한 첫 전면파업이고, 50일간 현장 파업을 하면서 자본을 기어코 교섭장에 오게 만든 노사교섭이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지금 가장 분통을 터트리고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사회적인 힘이, 사회적인 연대가, 사회적인 엄호를 믿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더 버티고, 원칙을 지키면서 투쟁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투쟁으로 모든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회는, 아니 이 땅에서 노동과 함께 하고, 노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이든 사회개량이든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한 소위 이 땅의 진보세력은 과연 대우조선 파업에 대해서 어떤 사회적인 힘을 구상하고 형성하고 있습니까? 아니 어떤 일말의 노력이라도 했습니까?

당장 7월 23일 희망버스부터 어떤지요? 조선하청지회의 교섭결과를 관망하고, 언론보도를 기다리고 스스로 ‘희망고문’하고, 아니 ‘희망주문’만 하지 말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엄호하는 사회적인 힘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여기 한편이 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철저하게 자본이익만을 사회적인 이해라고 포장하는 흐름을 끊는 것은 어떨까요? 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들이, 한편을 만들고 다른 편에 대해서 저항하고 충돌하면서 이 사회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새 흐름을 만드는데 함께 작은 힘들을 합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
당장 내일 사파버스와 희망버스에 올라주십시오.
관망이 아닌 실천을. 투표행위를 넘어서서 매일 세상을 변혁하는 행동을.

출발 : 7월 23일 오전 8시30분 서울 동화면세점 앞
신청은 여기서 : (bit.ly/사파작은희망버스_대우조선)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왜 우리는 관망합니까? -[사파시평]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강변하는 엘리트의 문답 놀이를 집어치우라 합시다” (newscham.net)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승패의 분기점

처음에는 이재명 후보의 승산이 훨씬 크다고 봤다. 큰 복병이 없는 한 이재명이 당선될 것이라고 봤는데, 선거의 기세 장악이라는 면에서 대장동보다는 김혜경이 더 큰 복병이었다.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보다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을 둘러싼 스캔달이 표심에 더 큰 영향을 줬다. 시점 상 이재명이 치고 올라오는 일만 남았을 때 그건 꽤 찬물이었다.

반면 대장동의 경우, 혹은 부동산 정책 실패라고 얘기되는 진단은 사실은 모호하다. 그러면 부동산 정책이 국힘과 비슷했어야한다는 건가? 서울에서 30만 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대장동,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이재명 패배의 큰 원인으로 진단하는 것에 대해선 민주당 쪽, 위성정당 쪽, 민주당 지지자와 언론들까지 대체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으로 모호하다.
부동산 규제를 더 했어야한다는 말인지, 다주택 소유자 과세나 갭투자 등 부동산용 금융 규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인지. 주택공급을 늘렸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공공주택 임대주택 등을 더 늘려야했다는 말인지, 그린벨트 풀고 용적률 제한조치를 풀었어야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린벨트나 공원부지 전용을 막고 용적률 제한도 계속 유지하면서 도시 개발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건지.

이들이 말하는, 그리고 언론이 말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진단과 해법이라는 면에서 모호하다. 서울에서 30만 표 이상의 차이, 이재명을 지지한 지역구들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계급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이 모호함이라니. 다르게 말하면 민주당은 대선에서 부동산이익동맹을 해체하여 승부를 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동산이익동맹에 붙어서 혹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승부를 내겠다는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양다리를 걸쳤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의 모호함이 민주당의 패착이라고 생각한다(이재명은 결국 국힘의 부동산 정책 따라 하기로 나섰지만 뒤늦었고, 그건 승부수가 될 수 없었다).

2. 후보 단일화 문제

윤석열의 우위가 거의 굳혀진 것처럼 혹은 가끔 비등한 것처럼 나올 때, 3위 후보 안철수를 잡는 것이 둘 사이의 레이스였다.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윤석열과 단일화 논의에서 안철수가 끝까지 딴청을 부리는 것을 보고, 이재명이 꽤 큰 정치적 교환과 약속을 한 게 아닌가 했는데, 왜 그건 성사되지 못했을까?

일부는 안철수가 윤에게 넘어간 것이 ‘약점’을 잡혀서가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편의적인 생각이다. 현 정부가 민주당 정권이다. 안철수가 약점이 있다면 양쪽 다 잡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민주당 쪽은 ‘감투’와 ‘자리’다툼이 워낙 심한 당이라서 안철수에게 무엇도 약속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김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나란히 TV 후보 토론회에 나올 때부터 그가 이재명 캠프로 갈 것이라고 봤다.
고로 이재명 후보는 김혜경과 안철수 변수가 없었다면 이래저래 흔들리는 표를 긁어모았을 것이다.

3. 두 개의 상수- 민주당 쪽에서

그리고 두 개의 상수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나는 호남의 몰표. 80~90%의 몰표를 줄만큼 ‘당적인 충성도’가 높은 지역. 영남은 차라리 몰표 주기 측면에서 많이 무너졌고, 이미 그런 선거의 예가 많다. 하지만 호남은 여전히 민주당의 아성으로 굳건하다. 문제는 호남의 몰표는 결국 호남 보수 ‘토호’들의 이해집단이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으로 계속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과연 이게 꼭 긍정적일까? 그래도 좋다는 건가? (호남에서 진보정당은 거의 0표에 가깝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비판적 지지다. 이는 대선 캠페인 마지막에 ‘샤이(shy) 이재명’이 아닌 ‘적극적지지’로 쏟아졌다. 이번 대선에서는 비판적 지지론자들 사이에 ‘샤이 이재명’은 없었다(샤이 shy : 부끄러운, 수줍은, 내성적인). 대놓고 적극적 지지 선언이 속출했으니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 앞에 침묵하던 소위 비판적 지지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노골적으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이번에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쳤다. 또 이번엔 무엇이 그리 다르다는 건지, 자신이 이번엔 다르다고 여기는 긴급성과 정당성을 강변했다. 선거 직전에 교수연구자, 민주화운동 인사, 명망가, 페미니스트 등부터 다양한 직업, 이력과 다양한 과거 이념에서 지금에 이른 이들이 마치 커밍아웃하듯 이구동성으로 나섰다. 대체로 혼자 조용히 표 던졌을 이들이 이런 지지선언 퍼레이드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재명 후보를 찍겠다는 정치적 커밍아웃을 위해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신도 찍으라는 설득과 압박을 위해서다.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건 다분히 중도층이나 주변 지인들,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비판적 지지’라고 부르긴 더 이상 어렵다.

그러니 이 두 개의 상수-즉 첫째 호남의 지역주의, 둘째 민주화이행 이후 참 오래도 지속되는 ‘비판적 지지’가 아닌 ‘민주대연합’의 논리가 이재명을 살릴 수도 있다고 봤는데. 간발의 20만 표 차이로 졌다. 민주대연합, 다 긁어모아도 졌다. 여하튼 그러면 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다 긁어모았는데도 졌다는 것.

*수족을 자르는 심정으로, 다른 후보를 찍고 싶었으나 이재명을 찍었다는 2030 여성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몰아줬어도 이재명은 졌다. 이들에게 ‘다음에도’를 기대하지 말라. 2030 여성들의 ‘비판적 지지’는 87년 민주화이행 이후 지속돼온 소위 비판적 지지와는 좀 다르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그들의 투표가 자유주의 정당을 향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정치를 벗어난 투표행위일지 아닐지. 이들의 투표가 선거 막판에 “여성에 대해서 덜 혐오하는 후보를 뽑자’고 했던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의 선동적인 글의 의미와 얼마나 다를지. 이들의 투표에 대해선 여기까지만 얘기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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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보는 방식

하지만 민주당과 충성스런 지지자들은 ”졌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무게를 제대로 두지 않는다. 선방했다고 하고, 역대 최소 득표 차이라고 말하면서,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계속 물타기 하고 있다, 남의 당을 탓하고 있다. 언론 탓을 하다가 대중을 탓한다. 정작 자기 눈에 들보에 대해선 티끌인양 한다. 그게 바로 민주당 자유주의 정권의 한계다. 제도정당으로서의 한계다.

즉 87년 6월항쟁과 민주화이행이 부활시킨 보수양당 체제 안에서, 보수 우파의 맹공 앞에 자기 입지조차 잘 유지하지 못하면서 줄곧 무능을 보이다가, 어부지리로 혹은 구조적인 맹점 속에서 계속 생존을 도모하는 앙상한 민주대연합의 이분법 정치, 유권자(시민)들을 인질로 잡아서 하는 인질 정치, 극우를 피하려면 최악을 피하려면 우리를 찍으라는 공포정치. 좌파의 진입을 막는데 우파보다 더 의도적인 봉쇄정치.
이런 정치가 앞으로도 과연 얼마나 유지될까. 이미 균열은 가고 있다.

5. ‘또 다른 패배’의 의미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민주당의 패배가 아니다. 민주당의 패배 말고 ‘또 다른 패배’에 주목해야한다. 민주당을 넘어서려면 이 패배를 더 눈여겨 봐야한다. 말하자면 이번 투표에서 윤석열을 찍은 것이 단지 ‘강남’의 계급투표만일까. 대중의 수준을 탓하려고 하면 탓하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좀 더 지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열과 이재명 사이에 있는 ‘부동층’. 그들은 중도층일 수도 있고, 대안부재 속에서 부동층들도 있다. 윤석열을 찍은 많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어서 민주당을 찍은 ‘비판적지지’도 마찬가지다(비판적 지지 운운하며 적극적 지지를 조직하려 든 이들은 자신의 투표와 선거 캠페인 결과를 고스란히 받길 바란다. 다른 이들에게 윤석열 정권하에서 벌어질 참상을 겪어보라며 저주문을 쓰고 악담을 늘어놓는 것은 참 꼴불견이다. 이미 마음이 떠나는 이들을 향해서 할 말은 아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 5년 뒤를 언제나 기약할 수 있는 계층과 집단은 다르다. 그런 이들이 지금 한번의 선거에 세상이 다 무너진 듯이 말한다. 단지 이 한마디는 하고자 한다. 이제야 선거결과를 보며 희망 없음에 절망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하는 이들, 그들과 연대 운동하는 이들은 문재인 정부 내내 그 마음이었다. 앞으로 그 쓰린 마음으로 기억해보길. 누군가는 계속 고통 받고 쓰린 마음 부여잡고 살았다는 것을).

이들에겐 이제야말로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 더 미룰 수 없는 선택지. 그러나 이번에 동시에 고스란히 그 위기의 징후적인 모습을 드러낸 선택지.
내가 지난 2월 9일 ‘2022년 대선・지선 권력재편기에 대응한 민교협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부재’의 위기, ‘불가능성’의 위기로 규정했던 선택지.
그 선택지에 대해서 ‘왜’에 이어서, 이제야말로 ‘어떻게’를 고민해야할 때다.
이후 ‘위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쓸 기회가 있길 바라며, 다음 덧말을 추가하는 것으로 맺으려한다.

6. 덧말: ‘9176명’에 대하여

사회주의 후보 7번을 찍은 이가 9176명. 1만 명을 넘지 못해서, 너무 희소해서,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서, 이 정치지형에서 누가 나 같은 사람일까. 궁금하다는 것이다. 3억 이상 들여서 후보 전술하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 나는 합당과정도 선거과정도 공약도 모두 비판적이었다. 좀 더 잘해야 하고, 미리 준비했어야하고, 그리고 공약은 수정되어야한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서 결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6월 지선을 앞두고 정신 차린 민주당이 정치공학적으로 지방선거 선거구 개혁에 나서고 소수 정당들을 끌어들이고, 그리하여 그 결과가 조금 나아지면 결과론적으로 대선결과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열려 있다. 하지만 이는 민주연합의 구도 안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방식이다. 즉 민주연합의 구도도 해체되기는커녕 그만큼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정의당의 문제였다)

하지만 ‘사회주의후보’라는 그 벽보만으로,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사지선다형’에서 4지로서 사회주의 후보를 과감히 떠올리고, 그를 찍은 9176명은 중요하다. 4지후에 3지선다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직후 그들이 스스로 나서서, 우리 구역에서 사회주의 후보 찍은 우리 한번 만나요! 라는 이 자연스러운 정동이 이번 7번 후보가 얻은 최대의 소박한 수확일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임을 조직하는 것.
어디서든 만나길 바란다.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다음이 가능한지 머리 맞대고 소근 소근 속삭여주길 바란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민주동맹의 한계와 좌파정치의 이후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2022년 대선 과정과 결과 (newscham.net)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백기완 선생에 대한 우정과 동지애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백기완, 이 이를 1980년대 알았을 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유는 간략히 3가지였지요. 하나는 백 선생은 백범 김구를 존경하여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현 ‘통일문제연구소’를 혜화동에 차렸지만, 저는 백범 김구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습니다. 둘째는 그가 50대의 나이에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냅다 호통치며 활동하는 모습이 영 문화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데, 저는 백기완 후보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초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나서 완주하지 않고 투표일 이틀 전 완주 포기선언을 한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백기완 후보가 민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독자(민중) 후보를 마지막에 포기한 것은 사실상 민주화 이행 이후 진보정치가 민주연합정치에 발목 잡히는 첫 사례였기도 합니다. 그 첫 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완주했다면 노동좌파 정치의 또 다른 길을 열었을 것이라고 가끔 생각합니다.

그런 백 선생과 제 인연이 제가 미국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만 하는 서생으로 만족치 못하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을 제안하고 만들어 노동연대에 뛰어들면서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전에 ‘진보 지식인 모임’에 가끔 불려가면 뵙고 인사했지만 건성이었지요(사실은 비판적이었지요). 그리고 사파기금 활동을 하면서 제가 가는 많은 노동자 투쟁 현장에 백기완 선생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소수 소규모 투쟁 현장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백샘과 저만 참석하는 기자회견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추운 날 맨 앞에 앉아있으면 뒤통수에 수많은, 때로는 얼마 안 되는 눈들 앞에 있기에 태도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고역은 생리현상입니다. 춥고 몸은 뻣뻣해지고 엉덩이는 아픈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저보다 백기완 선생은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도 백 선생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이였습니다. 행진 시작하면서 집회가 정리됐을 때 화장실 가려고 서두르시다가 함께 길거리에 풀썩 앉아버렸던 기억도 있네요. 그 얘기를 백 선생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만나면서 저는 백기완 선생에 대한 동지애가 싹텄습니다. 그리고 백 선생을 방문하면서 이런저런 과거 얘기를 하면서 우정이 생겼습니다. 1987년 독자 후보 출마를 마지막에 포기한 이유도 따져 물었고 답을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하면서 풀 것은 풀었습니다. 그는 드물게도 우파 민족주의자에서 왼쪽으로 계속, 노동과 함께 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이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를 급진적인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그렇게 자가 발전하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과를 출세와 자리로 보상받으려고 하거나, 좀 더 안온한 삶, 뒤로 물러서는 삶으로 돌아앉습니다.

이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변혁과 운동은 더욱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민교협 노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2012~2015년 그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더이상 죽이지말라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 활동하던 때였지요. 그 때 그 시기의 엄중함을 더욱 절감하고,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비적인 행동을 했더라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운동의 지형이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 선생과 함께 그 시절에 여하튼 전선에서 버티자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너무도 불충분했습니다. 버티는 것을 넘어서 도모를 했어야합니다. 하지만 그건 백기완 선생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백 선생을 추모하는 방법은 묘역을 단장하고, 주기마다 기념행사들을 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백 선생이 현장에 버텼던 것처럼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현장에서 버티고 끝까지 항상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시대의 엄중함을 긴급함으로 담아서,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기완 1주기 행사 제목이기도 하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일구는 이”라는 뜻을 담은 ‘새뚝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백 선생을 2019년 2월 14일, 바로 3년 전 어제죠, 뵈러 갔었습니다. 세뱃돈 만 원 받으려고요. 그게 그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백 선생이 제가 방문한다고 해서 무슨 말을 해줄까 미리 고민했다면서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은 아래만 보지 하늘을 보지 않는다”.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고맙습니다.

2022년 2월 15일 고백기완 1주기에 마석 모란공원에서.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백기완 선생 1주기에 – <font color=”red”>[기고]</font>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newscham.net)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가짜뉴스인가이승복 어린이는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는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 3면(사회면) 머리기사였고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동료 기자들은 조선일보 기자를 사건 직후 현장에서 보지 못했고, 이 내용을 증언했다는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이승복의 형은 의식불명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나 역시 이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구전’으로 들었다. 그만큼 전설적인 ‘오보’ 혹은 요즘 말로 ‘가짜뉴스’에 얽힌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1992년 김종배 <미디어오늘> 국장이 당시 사건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장남 승권 씨(승복 형) 증언을 토대로 “(사건 발생 직후)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저널리즘> 가을호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승권 씨는 동생 승복이 살해된 뒤 자신이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이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에서 전 기자협회장 출신인 김주언 사무총장 등이 ‘언론계 50대 허위·왜곡보도’를 선정하면서 이승복 발언 조작을 포함했다. 1992년 <저널리즘>에서 발간된 글에 대해서 몇 년간 가만히 있던 <조선일보>가 이 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 김주언, 김종배 두 사람을 고소고발하면서 오보논쟁은 법정으로 비화됐다. 2006년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해 김주언 전 총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김 전 편집국장에게는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의혹 제기”는 가능하다면서 1992년 기사에 대해선 무죄를 내리고, 그 기사를 토대로 언론계 50대 허위 왜곡보도를 선정한 것은 유죄로 판결하는 기묘한 판단이었다. 결국 대법원 판결로 오보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오히려 묻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아랑곳없었다. 반공교육 앞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유신체제’의 아이들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선배 어린이의 한을 이어받기를 강요받았고, 해마다 붉디붉은 ‘멸공’ 포스터를 그려내야만 했다.

2. 유신 이후 아이들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남한의 재벌 2세

그렇다면 유신체제 이후의 아이들은 어떨까? 유신체제 때 국민교육헌장 세대도 아닌 신세계 부회장이자 재벌 2세 정용진이, 민주화된 서구에 가서 살면서 ‘신식 서양학문’을 배웠다는 이 자가 갑자기 SNS에서 자못 진지하게 ‘멸공’을 외치고 나섰다. 이는 반공주의에서 아주 ‘새로운 젊은 피’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일베라고 불리는 이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양극화와 불평등을 통해 만든 괴물들. 그들과도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해서 정용진의 SNS 소통에 대해서 ‘일베 놀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베로 표상되는 신세대 멸공 청년들. 그들은 자본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일뿐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칙을 자랑스레 ‘공정’이라고 외치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들, 사회적 우생학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것을 ‘불평등’이라 사고하지 못하고, 출발선 이후의 경쟁에 대해 ‘공정’을 읊조린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지속되는 구조적 불평등을 줄이고 해소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공정 침해’라고 말한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멸공’을 외치는 것은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체제에서 외치던 멸공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섬뜩하다. 그건 ‘사상적인 확신’으로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자본주의에,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시장자본주의에 찌든 의식이 만들어내는 의식 말이다.

근데 정용진 씨는 단지 이 땅의 평범한 일베 청년이 아니라 재벌자본주의 공화국의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요즘 ‘재벌’ 2세들은 재벌을 인간화, 나아가 사회화하고 있다. 정용진의 인간적이고 소탈한 SNS 활동은 그중 대표적인 사례다. 재벌 2세뿐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노동자 투쟁이 벌어진 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업체 사주의 아들이 2세 경영을 시작한 곳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업을 일군 아버지 세대가 노동에 대해 보인 감성 따위 (물론 그 신성함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수성가’한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신성함을 주축으로 한)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체화한 그들에게 노동은 철저히 자본의 일부이다. 팔고 사고, 넘기고, 대체가능하고, 귀찮으면 밟아버린다. 그렇다면 더욱 부를 집적한 재벌 2세의 경우는 또 어떨까. 그들은 더하면 더할 것이다. 그래야 재벌을 경영할만하지 않을까.

SK그룹의 최태원, 삼성그룹의 이재용 등은 재벌 승계과정의 불법 등의 문제로, 그의 아버지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미 전과자들이다. 최태원, 이재용의 얼굴 역시 자본이 드러내는 인간의 얼굴이다. 반면 최근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의 요사스런 키보드 워리어 짓은,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데 흥미를 붙인 ‘관종’ 놀이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 참 솔직담백하게도 이데올로기적 전투의 장에서 반공투사연하는 모습이다. 재벌과 자본이라면 당연한 생각이고, 자신들끼리 ‘무대 뒤’에서 이미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을 발언들을 대놓고 대중을 향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이 점에서 정용진의 발언은 사뭇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3. ‘멸공’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

정용진은 공개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멸공’을 외친다. ‘가짜 뉴스’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오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21세기 ‘탈진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진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을 실제로 말하는 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그것도 멀쩡한 장년의 남자, 재벌 2세가 한 발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문제적 발언에 대해 한국전쟁을 갓 지난 60년대식으로 바라보면 안 될 듯하다. 정용진은 이 사회에 ‘체제’(regime) 논쟁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공부가 안 돼 있으니 좀 우스꽝스럽게 얘기를 전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체제 논쟁 좋다. 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논쟁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진짜 논쟁이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 비자유주의 세력, 혹은 진보 좌파세력이 ‘체제 전환’이라는 화두를 내기도 했으므로 이참에 한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선 민주당도 ‘체제 전환’ 이라는 말을 은근 슬쩍 사용하고 있다. 언제나 아이디어는 궁하고 좌파나 외부에서 말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데 이 당은 참으로 능하다. 민주노동당이 있었을 때 민주당이 이것저것 정책 의제들에 침 발라놓던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진보 흉내는 내고 싶은 것이 민주당이다.

하지만 고작 이게 뭐람…. 멸치와 콩이라니. 이것을 ‘멸공’이라고 하다니. 이건 도대체 무엇이, 혹은 누가 조롱당하는 것이란 말인가. 공산주의가 멸치와 콩자반으로 비유되고 조롱당해도 좋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조롱당하여야 마땅한 것은, 공산주의를 멸치와 콩에 빗대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이념적으로 천박하고 철학적으로 빈곤한 보수 세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용진의 발언에 분노하고 혹은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정용진의 발언에 맞서서 비판이라고 하기는 좀 무색하지만, 거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그럼 누군가. 대표적으로는 이미 실없기가 한없음을 여러 차례 드러냈던 민주당 국회의원 정청래가 파를 들고서 “그럼 나는 좌파다”라고 미러링했다. 주로 정당으로는 민주당,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력이 정용진의 발언에 대해서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비토하고 나섰다. 정작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오히려 점잖게 가만히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유주의 세력이 모욕을 당한 듯이 일제히 성토장을 만들고 있다.

이미 체제 논쟁은 저리 가라다. 정용진은 우스꽝스럽게나마 체제에 대한 도발을 했는데, 자유주의 세력은 멸공도 반공도, 친공도 관심이 없다. 결국 이 정도면, 정말 양쪽 모두, 체제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종임을, 아니 사실은 동일한 체제 안에서 끼리끼리 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유유상종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서로 상대를 까대기 할 것만 있으면 정신없이 까대기에 나선다. 정작 멸공 따위의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멸공이란 단어는 무겁다. 그리고 비극적인 단어다. 멸공은 결국 다른 말로 하면, 국가가 저지른 범죄였고, 민간인 학살이었다. 여수‧순천 반란 및 학살이었고 제주 4.3항쟁 및 학살이었다. 멸공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올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이유다.

4. 국가보안법은 ‘멸공’ 아닌가?

그렇다면 정작 이들이 정용진에 대해 비판하는 논점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이들은 진정으로, 진심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판하는 것일까? 혹은 정용진의 발언을 기회로 색깔 논쟁을 만들며 ‘집토끼’ 굳히기에 나선 윤석열과 국힘의 선거 전략에 맞서서 이렇게 열심히 정용진 까대기에 나선 걸까?

이미 우리는 맥락을, 그리고 정답을 알고 있다. 이들은 ‘멸공’이라는 메시지보다는 그 메시지의 전달자들에 더 관심이 있다. 정용진을 받아서 윤석열, 윤석열을 받아서 나경원 등등.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청래, 그리고 이재명 선거본부 대변인 현택근 등등. 그렇다면 과연 정용진의 멸공 발언에 일제히 비난에 나선 이들은, 정작 ‘멸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멸공에서 ‘공’에 대해 어떤 생각이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 멸공 발언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면 이들은 공산주의를 멸하는데 반대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산주의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없거나 모호하다. 비난과 조롱은 넘치는데 논리는 박약하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은 이미 공산주의가 위협적이지 않으므로, 이렇게 극악스럽게 ‘멸공’, 즉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따위를 외칠 것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아니 과연 그럴까? 하지만 이것은 답을 회피하는 것일 뿐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민주당, 자유주의세력은 정용진이 던진 메시지 자체를 두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판하기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멸공’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이 체제 안에서 멸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다른 말로 하면, 사회주의자 박멸법이다. 북한을 사회주의체제로 간주하고 반북=반공을 등치해 사회주의를 때려잡는 법이다. 정치적 양심수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의 폐지론자였던 노무현도, 문재인도 모두 유지론으로 돌아섰다. 집권정당이 되자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존속으로 당론을 바꾸었다. 정용진의 ‘멸공’ 발언과, 국가보안법 존치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세력. 그들 간의 차이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이 난리인가. 과연 비판의 초점이 멸공에 있기라도 한 것인가.

정용진의 공공연한 ‘멸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것만이 스스로 논리적인 정합성, 아니 정치사회적인 정당성도 가지는 것이다. 아니라면, 단지 정적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난질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렇게 이 체제안의 제도적 멸공의 수단인 국가보안법에 침묵한다면, 민주당 세력과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남의 눈에 재 뿌리기이고, 제 눈에 든 큰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5. 결론

멸공의 반대말은 멸공 반대가 아니다. 멸공의 반대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지공’ 혹은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친공’이다. 그런데 최근 멸공을 공공연히 말하는 자본가 정용진을 비판하는 이들의 입장은 참으로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 대한 반대가 진짜 ‘멸공 반대’인지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는 반대하는데, 멸공 반대는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국가보안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까대기 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어쩌면 자본가 따위가 ‘멸공’을 떠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건 하등 상관도 없다(단지 자본가는 당연히 멸공하자는 입장일 텐데, 그것을 시장에서 비지니스 한다는 자가 ‘대놓고’ 말하니, 주가도 폭락하고 불매운동도 불러일으키고, 정치적으로 한쪽으로만 ‘올인’하는 듯하니, 이야말로 아마추어 아니냐는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제일 큰 문제는 자본가는 대놓고 ‘멸공’을 외치는데,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깔려있는 이들이 왜 자본을 혐오하지 않는가이다. 재벌 2세의 이념적 전투 앞에서 노동계급은 더욱 분발할지어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멸공(滅共)에 대하여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멸공’을 조롱하는 이들, 그리고 국가보안법 (newscham.net)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국힘의 대선 후보

국힘(국민의 힘)의 대선 후보로 윤석열이 뽑혔다. 당심이 민심을 이겼다고 했다. 여하튼 이번에도 보수우익정치는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냈다. 입당한지 3개월도 안된 ‘외부자’를 끌어다 대통령 후보를 만들 정도의 ‘당심’을 표출하는 정당이다. 이렇듯 그들은 권력욕이 강하고, 개방적이다(개방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이 사회 권력력 인사들이 대동소이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수 우익정당에게 배울 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자기 내부를 흔들고 재편하는, 권력욕이라는 목적의식. 그리고 외부자를 받아들여서 내부를 정리할 정도의 개방성. 그들은 오래된 당원이자 베테랑 정치인이자 내부의 ‘재야’ 같은 존재인 홍준표가 대선후보로 나오자 이를 극구 막아섰다. 홍준표가 그들이 그렇게 오매불망했던 청년의 지지를, 민주당 후보보다 더한 지지를 받으면서 일어서는데도 그를 선택하지 않은 당심이라는 면에서, 그들은 확실히 조직의 보존이라는 면에서 당파적이기도 하다. 국힘의 중요한 뒷배인 개신교 단체 한교연이 경선 하루 전날 윤석열 지지를 선언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국힘과 보수세력 내부를 향한 정확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국힘, 보수우익만이 아니라 정치의 일반성에 해당할 얘기다. 그리고 사회운동과 진보/좌파정치에도 해당된다. 내부의 적이 색깔 없는 외부자보다 더 두렵고 불편하고, 그래서 더 경계하는 것, 하나의 ‘진영’ 혹은 판에서 자신들의 편이 절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자에 대해선, 유력하든 필요하든간에, 정치에서 일단 배제하고 쳐버리는 것 말이다.

칼 슈미트 표현으로 정치는 ‘피아’의 구분이고, 이러한 정치의 ‘피아’ 구분 의식은, 한국의 진보정치, 좌파정치/운동까지 다 포함해서 사실은 ‘정치’가 있는 곳 어디서나 흔한 풍경이다. 진보, 좌파정치에 사람이 없네, 인물이 없네, 입장이 없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냥 자신들의 사람, 인물, 입장을 부여잡고 가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 인물, 입장을 한 번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끔 보수우익의 권력욕은 이마저도 넘어서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정치의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보수우익 정당이 윤여준, 남재희, 김종인 등을 중용한 것이 그렇다. 이번에도 윤석열이라는 외부의 대체재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모두 자유주의 정당과 보수우익에서 귀 기울이고, 양 쪽 문지방을 넘나들기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보수우익과 자유주의는, 진보 아닌 보수라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과연 진보정치, 노동정치, 좌파정치는 어떠한가. 어쩌다 진보, 노동, 좌파로 분화되었고, 또 이 분화가 당연시될 정도로 ‘피아’ 구분이 생겼는가. 원칙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성은 없는 진보/노동/좌파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말이다.

2. 양당 대결

윤석열이 국힘 대선 후보로 당선되는 순간, 두 가지 아니 결국 한 가지 반응 혹은 예상이 나왔었다. 이재명이 졌다는 예상(혹은 희망사항) 말이다. 이 예측이 도처에서 나왔다. 조국사태이후 그 미움이 이재명까지 연장된, 허약한 자유주의자들은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윤석열이 대선 후보가 되는 날 “축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진보나 좌파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이들도 윤석열이 이재명을 이길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민주당이 아닌 국힘의 후보가 된 윤석열이 과연 홍준표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까? 그리고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된다고 해서 이재명이 과연 불리하거나 심지어 패배할까?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이재명으로선 윤석열이 좀 더 겨루기 좋은 상대라고 본다. 홍준표는 사실 이재명과 비슷한 과이고, 정치 감각이 출중한 인물이며, 심지어 서민적이다. 이 모든 것이 이재명이 후보가 되면서 스스로 장점이라고 내세운 점이다. 겹친다. 그리고 홍준표는 이재명과 비슷한 과인데, 이재명보다 더 노회하고 말장난을 더 잘한다. 이재명이 지금 대통령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조심하고 있는 기질(temper)과 성질을 홍준표 같은 누군가가 계속 건드리면 이재명은 흔들릴 가능성 높다.

반면 윤석열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킬 것이고, 미래 지향적인 입장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복수혈전을 하듯이, 마치 검찰이 보복수사 하듯이 나오는 모습이 대통령감이라는 인상을 계속 갉아먹고 불식시킬 것이고, 결국에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게 될 것이다. 윤석열을 통제할 이가 국힘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해서 또 권력욕으로 가득 찬 국힘은 드디어 나이와 양당을 넘어서는 이력서로 윤석열을 제어 가능한 김종인 원톱 선거체제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옳지! 이러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지만 얼마나 달라질지.

3. ‘검찰이 칼자루 쥔 선거’

나는 여전히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을 국힘의 윤석열과 동일한 수준으로, 그리고 이재명의 당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다 (이 글 초고를 국힘후보로 윤석열이 확정되고 난 후에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 때 윤석열은 오차범위 밖 15%로 앞선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유는 앞서 말한 후보들 사이의 강약점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번 선거는 철저히 ‘검찰 선거’ 이기 때문이다. 당락보다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대선이 온통 법조인들 천지라니. 대선 후보 하나는 변호사 출신, 또 하나는 검사 출신, 그리고 양자 다 검찰이 줄줄이 기소하고 있는 터이다. 그리고 그에 연루된 자들도 모두 변호사, 검사들이다. 아니 이게 뭔 나라냐? 이 질문을 하고 싶으면 지금이 질문할 때다. 이게 무슨 나라니? 검사가 변호사가 대선 후보이고, 검사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런 선거가 무슨 민주주의이니?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이니? 단지 윤석열만이 아니라 이재명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죄목의 혐의로 인해 검찰의 자장에서 벗어난 인물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의 정점: 촛불시위

퇴진촛불이 한창일 때 나는 특별검사와, 검찰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힘을 빌려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집합행위가 박근혜 퇴진 이후 정치의 사법화와 법복귀족의 강화를 더욱 공고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결과가 19대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변호사 출신이고, 20대 대통령 후보도 윤석열이라는 검사이거나 이재명이라는 변호사 출신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후보의 당선여부를 좌우할 칼자루를 검찰이 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촛불은 누구 좋으라고 들었던 것인가?

사람들이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되는 순간 이재명 낙선이라고 예상하는데 그 근거는 매우 감정적이고 즉자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대장동 스캔들이 과연 이재명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의 주택정책, 아니 ‘부동산’이란 재테크 정책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철저히 이해관계 동맹이다. 이로써 이재명 낙선을 확정지으려면, 사람들이 대장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된 일로 여겨야하고, 이재명의 이중성에 대해서 분노해야한다. 과연 그럴까?

부동산개혁과 검찰 개혁 둘 다 불가능한 이유

먼저 대장동은 한국에서 수십 년간 부동산-아파트개발 정책의 산물이다. 주택공사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집장사하는 국가, 개발만 하면 큰 이익을 보장받는 부동산개발에 나선 건설 회사들과 은행 금융 등 민간 자본이 조성해온 거대한 부동산 경제. 국가와 자본(시장)은 부동산 경기의 불을 끌 생각이 애초에 없다. 부동산 경제를 해체시킬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이익을 일부 누리는 원주민(토지 소유주)들, 개발되는 아파트에 입주하고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잠재적 주택 구매자 혹은 분양 대기자들인 도시의 중산층들. 과연 그들이 지금까지 임대주택 100%의 공영 개발을 찬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과연 국가가 수용한 택지를 전면 공공개발만 하겠다면 지지할 것인가? 혹은 국가가 공공개발한 아파트들을 모두 국유화하고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개인들에게 임대아파트로 내놓는 정책을 편다면 과연 동의할까? 그리고 이미 주택을 보유한 이들은 또 어떻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는 정책을 시행해 부동산 과열이 완화되고 해소되면, 자신의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는 현 시세를 용납할까? 심지어 소규모 서민 아파트에 사는 이들 역시 지금도 20억짜리 아파트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5억짜리, 3억짜리 아파트를 재개발하여 그런 ‘자산상승’을 원할 것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스캔들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줬다. 그는 후보로서 지금 내놓는 공약과 다르게 실천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의 대장동 사태와 판박일 것이다. 이재명이 자본을 시장을 넘어설 진보적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현실론과 경제라는 핑계거리로 말이다. 검찰은 이에 맞춰 적당히 끝낼 것이다.

다른 한편 윤석열의 경우 고발장 사주라는 혐의에 대한 검찰 선거는 어떻게 될까? 손 모라는 검사와 김웅이라는 검사출신 의원으로 입막음이 될지, 그것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검찰에게 유명한 ‘직업윤리’가 있다. ‘검사 카르텔’이라고. 아무리 미워도, 입장이 갈라지고 이해까지 달라진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야말로 ‘검사출신’ 대통령이 나올법한 상황인데, 검찰이 과연 제대로 칼을 뽑고 제대로 수사할까? 설사 그게 문재인 정부 편에서 충성하고 있는 수뇌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뽑아 올린 검사 아닌가 말이다. 이는 허약하고 정체불명의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개혁’입네 하는 이 정부와 추미애 장관의 탓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은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최초의 대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군부독재 때 ‘권력의 주구’였던 검찰이, 보수 양당 세력이 너나없이 ‘부려보겠다’고 개혁하지 않고 두더니, 스스로 잡아먹힐 선거가 되고 말았다.

4. 진보 후보 단일화냐 좌파 후보 정립이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결국 한국 정당정치는 다당제이지만 언제나 선거는, 그리고 특히 대선은 보수 양당이 겨루는 형상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바로 87년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이행이 부활시킨 ‘48년체제’라고 불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만약 1987년에 독자후보 백기완이 완주했다면, 그리고 이후 권영길, 심상정까지 완주했다면 한국의 소위 진보/좌파정당정치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다음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었던 노회찬 심상정의 연정 정치 구상이 좌파연합의 구상을 계속 펼쳤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연정 구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민주당 일부를 끌어들여 진보정당을 만든 것도 그렇고, 대통령 출마를 하면서 중도에 그만 둔 것도 그렇고, 모두 진보, 나아가 좌파정당정치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아서 유일 진보정당으로, 제3지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누린다는 정의당은 여전히 그 연합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심상정 후보는 얼마 전에 “이제 단일화의 역사적 시효가 다 됐다”고 말했다. 역사적 시효? 정말 웃기는 표현이다. 단일화가 이전에는 역사적 시효성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제”라니. 탄력근로제 연기기한 연장 등 노동법을 개악할 때도 가만히 있으면서 그렇게 만능의 비책인양 움켜쥐었던 비례대표제 선거개혁이 민주당의 배신적인 위성정당 놀이로 물 건너가면서,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 덕분이 아니고? 근데도 제대로 된 비판 없이 그냥 넘어간다. 마치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다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의원의 선거복안이 나왔다. 하나는 안철수, 김동연까지 포함하는 ‘제3지대’ 연정 제안이다. 물론 대통령이 돼야 연정을 하지. 근데 그보다는 이런 의구심이 든다. 어쩌다 소위 진보정치는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이건 후보 단일화가 ‘연정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서 버전만 바꾸고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애초에 ‘제3지대’라는 탈 이념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이란 무엇인가? 진보정치를 제대로 정립하자고 해도 자기 색이 분명할까 말까한 상황에서 다시 물타기의 ‘3지대론’이 가당키나 할까.

모 학생 좌파단체가 포플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 윤석열을 지지하는 전략이 좌파의 현재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구동성으로 비판을 퍼부으면서, 심상정의 몰 이념적인 ‘제3지대’ 제안은 왜 그냥 넘어갈까? 왜 여전히 대체로 침묵일까?

맞다. 이미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정의당은 ‘민중경선 단일화’ 테이블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의당 내 ‘좌파’는 더욱 모호한 태도다. 그들은 사사건건 당내 비판은 하는데, 결론은 언제나 우리 모두 버킹검일세이다. 정의당이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정의당 안에서 좌우는 모두 용광로에서 녹임을 당하는 건가.

정의당의 대선후보처럼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한, 진보정치의 앞날은 요원하다. 즉 진보정치가 제도권 정당정치에서 ‘대안’으로 보일 리 없다. 무엇보다 진보정치를 ‘볼모’처럼 두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로부터의 독자화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정의당은 여전히 이런 후보와 함께 민주노총의 ‘민중경선후보’ 단일화 논의에 참가하고 있다. 즉 두 손에 떡 들고 있는 형국이다. 왼손은 녹색당부터 진보당, 변혁당까지 함께 하고, 오른손으로는 안철수와 김동연의 손을 잡고 있다. 아, 그리고 중간에 또 하나의 떡이 있더라. 기본소득당 등과 함께 하는 중도좌파의 테이블이 있다. 맨 앞은 좌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불평등’을 화두로 잡고, 그 다음은 우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제3지대’라는 모호한 화두를 두고, 그리고 맨 마지막의 중도파들과는 ‘기후위기’를 얘기한다.

참으로 현란한 ‘연대연합정치’ 기술인데 의문이다. 왜 정의당의 연합정치는 매번 죽 쑤고, 나무에서 고기 찾기이며,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될까? 그 당 지지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말이다. 좌파가 문제다. 저 당이 이렇게 3가지 카드를 쥐고 이쪽저쪽에 다 머리 내밀고 있는데도 저 넓은 스펙트럼을 보면서도, 이 당은 여전히 ‘민중경선’에 함께 할 세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또 무슨 생각일까? 이 문제가 벌어지는 이유는 그 지향과 이념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중경선’은 왜 정확히 이념을 밝히지 않을까? 민중경선이든 노동자민중후보든, 그것 자체는 대선의 플랫폼이거나 강령이거나 심지어 이념일 수는 없다. 노동자가 민중이 정치 이념인가? 민중후보라는 말은, 이념을 밝히지 못했을 때,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나 잡혀갔을 때, 좌파가 힘도 조직도 없었을 때 회피적으로 썼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효용을 다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후보가 없어서, 민중후보가 없어서, 지금 진보정치가 갈지자이고, 자유주의 정치에서 탈출하거나 독립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표하면 좌파 후보가 바로되는건가?

지금 제도정치와 대선에서 부재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은 정확히. 그렇게 할 때 답도 정확히 나온다. 하지만 먼저 어정쩡한 진보정치가 진보의 미래, 아니 계급정치와 좌파정치의 미래를 좀먹는다. 그 말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진보정치가 좌파정치의 미래를 가로막지 말길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2022년 대선을 앞둔 정치비평① (newscham.net)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 논쟁은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 혹은 ‘그들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좋아’라는 3가지 선택지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한마디로 87년 12월 대선 지형의 참담한 재연이다. 아니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오히려 87년보다 더 악화되었다. 1987년에는 변혁운동, 사회주의운동이 국가의 공안탄압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정립돼있었으나, 지금 2021년에는 보수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긴급한 좌파의 입장이라고 공공연히 공표하는 현실이 도래했으니 말이다. 필자가 최근 지금이야말로 ‘좌파의 위기’라고 규정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2022년 대선후보를 두고 ‘포퓰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자’ 윤석열이 낫고, 지금 좌파의 과제는 정권교체여야 한다는, 자칭 좌파단체의 논리 전개와 결론은 현재 좌파를 둘러싼 지형의 한계 속에서 길 잃은 모습 그 자체다. 그러니 이 단체의 입장문에 대해서 “이건 아니지” 라고 다들 비판과 비난을 퍼붓지만 어쩌면 사태는 오십 보 백 보인 것을.왜냐하면 그나마 진보적인 주장, 즉 윤석열도 이재명도 찍지 말고, 민주당도 국힘도 찍지 말고, 그들이 아닌 그 누구든 제 3의 후보를 찍자는 제안도 좌파의 입장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연정을 도모하다가 이제 안철수, 김동연과 연정을 도모하겠다는 후보를 내세운 당도 좋다는 입장이 적어도 ‘좌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좌파 단체(전국학생행진)의 입장을 좌파의 입장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마찬가지로 윤석열과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는 입장도 좌파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단체의 입장문으로 ‘좌파’란 단어마저 조롱거리가 된 느낌이다. 그건 ‘좌파가 아니야’라는 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의 상태. 사실은 자신의 입장을 두고 좌파적인가 혹은 좌파의 주장에 동조하는가의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으면서 다른 주장들에는 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현실에서, 오십 보 백 보는 더욱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좌파라는 단어마저 조롱거리로 삼고 있는 현재에,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의 시작은 이것이다. 한마디로 아래 논지를 요약하면, 보수 양당 독점구도와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보다는 선택적인 적응을 선택한 좌파는 이미 좌파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서, 미국의 대선에 대한 글을 기초로 밝혀보겠다.

“덜 악마스럽다고 해도, 악마는 모두 악마일 뿐이다.”(Lesser Evilism Is Still Evil)
2020년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선 즈음 나온 얘기다. 결론은 미리 말하면 이렇다.
트럼프로도 바이든으로도 대변되지 않는 인민들의 베이스가 있다. 그 곳이 바로 우리의 노동계급정당을 건설해야만 하는 장소이다. (This all means that there is a base of people who are not represented by either Trump or Biden. This is where we need to build our working class party.)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레이스 중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 버니 샌더스가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그는 포기했을 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조 바이든을 “decent man(좋은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얹어 확실하게 정치적인 ‘승인’을 해주었다.
아 이런, “‘좋은 사람’이라니, 적어도 그 말만은 굳이 하지 말았어야지!” 라는, 샌더스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decent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할 말이 아니다. 샌더스에 대한 내 의심이 한 푼어치 더 늘어난 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바이든은 그의 정치적 성향과 지금껏 언행과 활동과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진 사생활을 봐서도 도저히 “좋은 사람”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된 경구대로, “덜 악마스럽다고 해서 악마가 아닌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미국이다. 이 나라에 이런 대통령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보수 독점 양당정치 덕분이다. 즉 도토리 키 재기식의 보수 양 정당이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을 적당히 번갈아 나눠 가지면서, 중간선거라는 완충장치를 두고, 제 3세력이 불가능한 선거제도를 통해서, 철저히 인위적으로 제 3의 정치세력과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진입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정치적 정립 속에서 트럼프 같은 대통령도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 자한당, 미통당, 박근혜, 황교안, 차명진 등도 가능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속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조금 다가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이 정작 민주당 등록 유권자 표를 얼마나 얻어서 민주당 1위 후보가 됐는지 알아보자. 아래와 같다.
미국 선거명부상 ‘등록유권자’ 중 30%가 민주당원이고, 그중에서 30%가 2020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 투표를 했다. 이중 무당파 독립 유권자를 제외하면 조 바이든은 등록된 유권자중 고작 9% (등록 유권자이면서 이번 민주당 경선에 투표한 자들의 교집합)의 지지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나아가 등록되지 않은 유권자들을 포함하면, 바이든은 미국 전체 유권자중 고작 4%가 지지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단지 4%가 지지! 결국 바이든은 민주당내에서조차 소수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양당 독점 구도 하에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는 것은, 일종의 ‘예비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선거(election)는 이미 선택된 사람(the elected)을 뽑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elite)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모든 피선거권자 즉, 모든 평범한 사람들(the common people)을 대상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선거민주주의의 매개 장치인 정당정치가 있는 한, 미국 선거권자들은 항상 대부분의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놓는 후보 두 명중 하나를 뽑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나라의 선거다. 이미 선택된 사람들을 뽑는 선거. 그런데 선택받을 후보를 뽑는 과정이 고작 유권자 3~4%의 지지로 이뤄지고, 그들이 모여서 전국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그 표들을 마지막에 산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식 선거민주주의의 실체다. 절대 소수가 다수결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활용하여 지배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미국식’이 아니라 현존하는 민주주의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이자 정치체제로 제도화되는 과정은 자본주의적 계급적 이해관계를 유지하는 제한 속에서만 가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와 정당정치를 양대 축으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는 다양성이 있다. 자본주의의 국가적 다양성만이나 외양과 운용면에서 민주주의 하위 체제의 다양성이 있다. 이 점에서 양당 독점구도와 독특한 ‘간접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이 민주주의를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뭔가 비슷하지 않은가? 한국의 대선 후보 경선은 다른가? 2020년 한국에서 집권 민주당이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완전히 뭉개면서 위성정당 꼼수로 의석을 싹쓸이해 압승한 결과, 여대야소 거대 제1당이 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한국이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87년 개헌으로 더 이상 간접 선거가 아니라 직선제 대통령제를 실행한다고 해도, 보수 양당 독점구도, 그리고 다른 대안적 이념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정당정치를 유지하는 소위 ‘48년 체제’ 하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미국식 민주주의에 가깝다.

여기서 48년 체제란 국가 보안법 제정으로 사회주의를 정치시장에서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한독당과 한민당의 보수 양당 체제를 유지했던 대한민국 국가 초기 정당체제를 의미한다. 이 체제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18년의 권위주의 체제로 잠정 중단됐고, 80년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로 계속 중단상태였다가 1987년 6월항쟁과 12월 헌법 개정으로 직선제 개헌과 김영삼 김대중 등 양 김씨에 대한 정치적 ‘해금’조처로 다시 복원된 체제를 의미한다. 87년 체제는 직선제 개헌과 자유주의 정당의 정치적인 활동 복원으로 보수 양당 체제로 복귀했고,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정치는 계속 48년 체제의 연속으로서 87년 체제하에서 진보정치와 사회주의 정당 활동을 봉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보수 양당 독점구도와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보다 선택적인 적응을 선택한 좌파는 이미 좌파일 수가 없다. 설사 제한적으로나마 선거제도와 제도정당정치를 활용하더라도, 만약 이 제도정치, 그리고 87년 체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선거제도를 통한 제도정치로의 진입과 의회정당으로서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존립의 목표로 전락한다면, 그 역시 좌파일 수가 없다. 이를 민주화 이행 이후 흔히 좌파와 구분해 ‘진보’정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좌파 스스로 진보와 좌파를 분리하고 구분하는 순간, 좌파는, 존재의 위기를 넘어서 부재의 시간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좌파의 정치 전략은,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진보는 좌파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데서 출발하고, 그를 기초로 하여 계급 간 사회정치적 동맹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보수 자유주의 정치로부터 독자적인, 좌파계급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 <사파시평>은 민중언론 참세상과 홈페이지에 전문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87년 체제’와 ‘48년 체제’를 넘어서 – 덜 악마스러워도 악마는 악마일 뿐 (newscham.net)

– 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1.10.29

1. 국가장의 최종 결정권자

국가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누구를 국가장으로 ’예우’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이번 노태우 장례를 정부가 국가장으로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 것이지 김부겸 총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고로 1987년 민주화이행 이후 첫 직접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자, 1980년 5.17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을 일으킨 신군부의 핵심이며,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 유사 권위주의체제에서 2인자로 민정당 대선후보였고, 1997년 내란음모와 5.18 광주학살의 주동자로 징역 17년형을 받은 노태우의 국가장을 결정한 주체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두자.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 대상자는 전·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혹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국가장 여부는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한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장례 절차를 총괄 진행하는 집행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이 맡는다. 또 국가장을 주관하는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하며 장례 기간은 5일이다. 국가장 기간 중에는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이와 관련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만 두고 보면 노 전 대통령이 17년형 선고를 받았지만 사면, 복권, 예우 박탈 등을 국가장 시행의 제한 사유로 명시하지 않아 국가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법에 대한 과잉 해석이다. 제한 사유를 명시하지 않아 국가장도 가능하다는 것은 법률이 모든 사유를 명시하지 않으니 가능하다는 확대해석이다. 하지만 국가장의 취지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규정에서 드러나 있고, 과연 노태우가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건별’로 판단할 문제다. 그렇다면 노태우는 국가장법에 따른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왜 문재인 대통령은 노태우가 국가장법에 따른 예우를 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는가. 마지막으로 노태우의 국가장 논란을 통해 우리는 민주화이행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

2. 국가장 결정 이유- 추징금 환수

가장 작은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이 노태우의 내란과 뇌물죄 등을 유죄로 판결하며 부과했던 ‘추징금’을 노태우가 냈다는 점을 결정사유 중 하나로 들었다. 그렇다.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는 추징금을 거의 다 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낸 것이 아니다. 눈치를 보면서 전두환과 함께 시간을 끌었다. 2013년에도 여전히 노태우에게 부과된 추징금 230여억 원이 미납된 상태였다. 그리고 2013년 10월 11일이 추징금 시효가 만료되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주로 전두환이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이 문제가 됐었다. 하지만 노태우가 미납한 230억 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다.

나는 당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이자 민교협 노동위원장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징금 미납문제를 공론화하는데 나섰다. 2013년 6월 당시 검찰 등 법기관은 계속 법 집행을 미루고 있었다. 추징금시효 만료를 불과 몇 달 앞둔 상황에 대해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고, 시간적으로 다급한 상항이었다.

나는 당장 추징금 환수를 위한 조처들로 추징금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환형 유치’ 및 ‘노역형’을 부과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기했다. 환형유치란 벌금 등 추징액을 내지 않는 경우 형을 금액으로 환형해 노역형을 가는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과 ‘불법’ 집회 시위 등에 참가한 활동가들에게 국가와 법원이 자주 내리는 결정이다. 또 화이트컬러 범죄나, 정말 벌금 낼 돈이 없는 무산계급이 돈 대신 징역형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형유치 노역형의 경우 ‘소득’에 따라 일 4백만 원까지 일당을 차별적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여하튼 나는 그때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죄 등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1997년 이후 2013년까지 15년 째 추징금을 내지 않고, 그해 말 시효가 종료되는 상황에 대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당시 KBS 법조기자의 기획 취재에 협조하고 KBS 뉴스를 통해 인터뷰가 나가기도 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적극적으로 추징금 회수를 주문하고 검찰 내 TF팀이 꾸려져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 찾기를 국내외로 진행하면서, 곧바로 가시적인 결과들이 나왔다. 추징금 시효에 따르면, 시효 전에 단 한건이라도 추징 실적을 내고 앞으로 추징할 규모를 특정하면 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 결국 국회는 전두환 등 80년 12.12 쿠데타 및 내란죄 공모자들에 대한 추징금 환수기한을 5년 연장하는 법을 입법해 전두환 재산 추징을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전두환은 아니지만 전두환의 차남이 일당 400만 원의 노역형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노태우 전두환 등의 추징금은 자발적으로 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제기와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보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낸 것이다. 전두환은 좀 더 얼굴이 두꺼울 뿐이었다. 노태우 추징금 완납이 ‘국가장’ 결정의 한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정확히 기록을 남겨둔다.

3. 국가장 불허는 전직대통령 예우 박탈의 최종심이다.

국가장법에 따르면 전‧현직 대통령은 분명 국가장의 일차적인 대상이다. 전‧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그들이 사망한 경우 국가장을 치른다는 것이 법 취지일 것이다. 즉 국가장법에 따른 노태우 국가장 결정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차원이다. 그런데 노태우는 내란죄 등 17개의 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전직 대통령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이다. 그리고 ‘국가장’은 국가가 시민에게 주는 최상의 예우이며,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장이라는 예우를 받을 수 있는 일차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노태우는 내란죄 등으로 ‘전직대통령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다. 국가장이야말로 전직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누리는 마지막 ‘예우’이므로, 당연히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은 국가장에서의 제외를 포함해야 최종적인 것이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을 국가장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법률에 따르면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개인 노태우에게 국가장이라는 가장 큰 ‘국가적 예우’를 선사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로서 최상급인 국가장을 내란 수괴이자 5.18 민중학살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한 이에게 선사한 셈이다. 도대체 그는 국가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아니면 국가장법과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간의 상호 논리적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법 논리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에 따르면 국가장 결정을 정무적으로 판단했다고 했으니, 이제 그에 대해서 ‘정치’적인 판단만이 남았다.

4. 논란의 시원: 노태우라는 이행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

이번 사태의 시원은 1997년 당시 대통령 김영삼과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이 청와대 첫 회동에서 형기도 마치지 않았고 추징금도 미납한 상태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하기로 한데서 비롯된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노태우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지만, 그 때 그가 12.12 군부 내 쿠데타와 5.17 쿠데타에 대해 처벌을 받고 공민권을 회복한 후에 대통령선거에 나와 당선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노태우가 1987년 헌법으로 이뤄진 ‘정초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해서, 그의 이전 죄가 면죄부를 받거나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노태우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것 자체가 6.29 선언의 산물이다. 즉 스스로 6.29 선언을 하고, 다른 선거체제 하에서 다시 후보로 나온 신군부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문재인 정부는 그가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라는 점을 국가장으로 결정한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이를 통해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87년 6월 항쟁의 결과인 대통령 직선제를 얼마나 핵심적으로 생각하는지, 그들의 사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들이 왜 앙상하기만 한 소위 ‘8개 조항’에 합의하며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6.29 선언을 그대로 추인했는지도 말이다.

사실 87년 6월 항쟁이 그랬다. 바로 엘리트 간의 협약에 기반 한 보수와 중도의 동거체제이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화 이행양식이었다. 6·10 항쟁으로 집권세력을 무너뜨린 정치혁명이지만, 동시에 ‘6·29 선언’이라는 권력 엘리트의 양보조처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수용하면서 이뤄진 이른바 엘리트 간의 협약에 의한 이행이었다. 그래서 6월 항쟁은 학문적으로는 대중동원이지만 이행의 양식으로는 ‘엘리트의 정치협약’(DEAL)에 의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뿐만 아니라 6.29 선언은 노태우의 일방적인 작품이나 발언이 아니었다. 1987년 대선, 즉 ‘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이 뽑는 간선제 선거’에서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2인자였던 노태우가 당시 대통령 전두환과 청와대에서 만나 합의해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의 모습이었다. 6.29 선언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합의에 의해서 가능했다. 강온파 엘리트의 대립과 긴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6.10 항쟁으로 백만이 넘는 사람이 서울 시청 앞을 채우고, 지역으로 대중 투쟁의 파고가 확산되며 바리케이트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권력의 1인자와 2인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어떻게든 위기가 혁명으로 전화하기 전에 대통령 직선제라는 ‘거래’를 제안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김대중, 김영삼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 종로5가로 대표되는 종교-재야세력은 수용하기로 했다.

그때 군부엘리트와의 정치협약을 수용했던 이들을 계승한 현 정권이 현재 애써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분하려는 옹색함이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6월 항쟁의 성과가 어떻게 왜곡되고 정치엘리트간의 ‘딜’(거래)에 의한 협약으로 귀결됐는지를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분명히 6월 항쟁은 항쟁이었지만, 6.29 선언은 양 김씨와 전두환-노태우의 엘리트간 ‘딜’이었다. 그렇기에 전두환 노태우는 87년 이후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언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1987년 12월 대선에서 신군부의 핵심이고,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이자, 그들이 뽑아둔 차기 정권 대통령 후보가 곧바로 직선제 첫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돼 재집권한 사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대통령 직선제 자체는, 그리고 한국의 이행 이후 제도정치는 허약했다. 반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려는 거리 시위는 약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커져갔다. 체제의 정치적 위기는 아직 진화된 것이 아니었다. 이에 노태우는 대선에 당선되면서 역사에 없는, 대통령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중간평가는 없었다. 야당과 야당의 지도자이자 정적인 김대중이 중간평가를 치르지 않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해주었다.

그러므로 노태우는 대통령 자격조차 절반밖에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 결여에 대해 ‘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공안정국’ 조성으로 돌파했다.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취임 1년 만인 89년 초부터 가장 먼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공안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안기부 공작과 조작사건, 고문 등을 통해 변혁운동의 정치조직들을 차례대로 궤멸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적 노조운동의 첫 전국 조직인 전노협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심지어 소속 노조들의 집행부까지 모조리 구속시켰다. 그렇게 탄압이 변혁운동과 전투적 민주노조들에 집중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경실련, 여성운동연합등 시민운동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정부와 제도 언론은 의도적으로 이들 시민단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바로 그 시기에 1991년 5월 투쟁이 있었다.

5. 1991년 투쟁: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던 이유

1991년 투쟁은 노태우 정권을 “파쇼정권”으로 규정했고, “노동운동 탄압하는 파쇼 정권 타도”, “민중생존권 짓밟는 파쇼정권 타도”, 그리고 “민주주의 파괴하는 공안 파쇼정권 타도”를 걸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대중적 진출이 매일같이 거리에서 일어나고, 학생들의 투쟁이 격렬해지는 반면, 재야 세력은 이미 선거민주주의를 인정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민주당은 1987년에도 대중의 꽁무니에서 움직이더니, 1991년에는 아예 5월 투쟁을 외면했고 심지어 비난했다. 정치적 고립 속에서, 울분에 찬 개인들의 분신들이 이어졌다. 시위 중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시위진압 경찰에 목숨을 잃었고, 이에 학생 박승희로부터 연쇄적인 분신 자결이 일어났다, 5월 6일 대기업연대회의를 주도하며 대공장노조들을 전노협과 결합시키려던 찰나 그 주모자들의 회합장소를 급습하여 무더기 체포한 뒤, 그중 한사람인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안기부에 끌려간 뒤 안양병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리하여 1991년 5월 13인의 죽음이 이어졌다. 그러자 그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기존의 민주화운동에서도 나타났다.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지하가 대표적이었다.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가 나서서 민주화시위에 비판을 퍼부었다. 그렇게 1991년 투쟁은 1987년을 재연하지도 못했고, 민주화를 위한 요구는 일부의 격렬 투쟁으로 매도당했다. 1987년에 함께 했던 화이트칼러 등 중산층은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간 뒤, 이제 민주주의가 된 세상인데 웬 시위냐는 싸늘한 태도를 취했다. 중산층 전문직 시민단체들은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 민중이라는 말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후 과거사에 대해 처벌받지 않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서 대통령직에서 평화적으로 물러났고, 1996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교체기 국면에 들어 내란음모 등으로 최종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결과 역시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이 만든 성과가 아니었다. 3당 합당으로 우익 정당정치로 날아가 1993년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부의 경제 실정과 부패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졌고, 그 과정에서 탄압에 억눌려있던 목소리들이 1991년 투쟁을 이어받아 노태우 전두환 학살자 처단,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다시 나왔다. 위기에 빠진 김영삼 정권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고 전두환 노태우는 법정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나란히 손잡고 푸른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았고 확정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바로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로 이 판결의 집행도 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자를 만나, 전두환 노태우 등의 사면 복권에 합의한다고 전격 결정하고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알렸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1980년 쿠데라 세력의 단죄를 끝내지 않고, 그들을 풀어줬고, 과거사를 제대로 올바르게 청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가? 바로 민주당이. 그리고 김대중이. 근데 이제 그 정치세력의 정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권이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함으로써, 신군부 주모자의 역사적 죄과를 정확히 역사에 남기는 것마저 불가능해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하면서 87년 헌법 하의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을 핵심 이유로 삼는 것은, 1980년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의 죄를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1987년 이후 투쟁의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스스로 면책하고 삭제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1987년 대선에서 초대 직선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노태우가 중간평가를 하지 않는데 대해서 묵인한 행동, 노태우의 공안정국과 민주화운동 특히 변혁적 민주화운동과 민중생존권 투쟁을 공안탄압 한 것에 대한 면죄, 나아가 1991년 5월 투쟁의 13명의 목숨까지 말이다.

1991년 투쟁은 노태우 정권이 6월 항쟁의 성과로 나온 첫 번째 대통령으로서 자격 없음에 문제제기했던 것이다. 노태우는 내란의 수괴이고 광주학살의 주모자였을 뿐 아니라, 직선으로 당선된 대통령으로서도 절반의 인정만 받은 ‘반쪽짜리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1987년 선거결과에 대한 부정으로서 91년 투쟁이 있었고, 13인의 항거죽음이 있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 역사조차도 부정하는 셈이다. 91년의 투쟁과 죽음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등 자유주의 세력의 탓도 큰데 말이다. ‘국민 통합’을 이유로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했다고 하면서, 그들은 1991년 투쟁과 죽음들을 이렇게 배제해버렸다.

6. 87년 체제의 앙상한 결과: 대통령 직선제와 보수-자유 동거

이제 노태우 국가장의 유일한 근거는 결국 노태우가 87년 헌법으로 시행된 정초선거에서 당선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역사적 아이러니는, 바로 이것이 민주당 자유주의 세력의 원죄이기도 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이자, 민주화 이행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것을 자기부정 할 수 없기에, 내란이고 5.18 광주학살이고 간에 그들은 직선제 대통령제하의 첫 대통령으로서 노태우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장 결정의 배경이다. 국가장 결정으로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원을 회복시켰다.

이것이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의 공통의 정치체제다, 6월 항쟁이라는 대중항쟁 뒤로 ‘밀실타협’ 해 이룬 6.29 합의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더 큰 변혁을 멈추고 이 정도의 이행으로 마무리하기로 한 것. 그렇게 해서 직선제 대통령제로 다음 정치권력을 확보할 가능성만 가지는 것. 그래서 이행 이후 35년간 서로 물어뜯고 죽일 듯이 싸우지만, 사실은 한 몸 위에 쌍생아라는 점, 적대적인 듯 하나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존재의 근거로 삼는 두 정치 세력. 이념적으로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이며, 그들 양자가 원하고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독점해온 체제가 바로 87년 체제다.

법률상 국가장 여부에 대한 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한 것은, 바로 한국 자유주의 세력이 1987년 이전부터, 1987년, 그리고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보였던 민주주의에 대한 모호함, 정치권력을 향한 정파적 이해관계와 선거민주주의 외의 모든 민주주의에 대한 반민주적 태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노태우 국가장의 역사적인 귀결이고, 우리가 그 자의 장례에 맞춰서 꼭 기억해야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이다.

하지만 노태우 국가장이 5일장으로 끝나고 대중은 곧 이 날을 잊고 말겠지만, 이 심각한 결정이 이 나라 현대사, 특히 민주화이행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에 앞으로 끼칠 악영향은 분명하다. 자유주의 정권은 국가장과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양대 법률을 입법해두고서 법 논리와 판결을 무시하면서 법위의 정치를 구사했다. 그들은 자신을 유일 민주화세력으로 동격화하면서도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 불철저했고, 배덕의 민주주의 정치를 해왔다. 나아가 그들은 민주를 넘어 ‘진보’를 자임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진보를 향한 모든 움직임에서 진보를 가로막고 우익정치와 구태의연한 동거를 선택했다.

그 완벽한 귀결이 바로 오늘날 노태우 국가장이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본질이고, 6월 항쟁의 남은 결과물이다. 그러니 민주당 문재인 정권이 노태우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의 당연한 논리적인 실천적인 귀결이다.

하지만 그 행위는 분명히 역사적으로는 역사 자체를 시궁창에 박아버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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