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6. 자료실

[토론회]
근기법 24조 정리해고를 다시 소환한다
“세종호텔 정리해고사태, 과연 정당한가?”
-사학자본의 정리해고 학살과 포스트 코로나를 향한 올바른 해법

○ 일시 : 2022년 4월 5일(화) 오후 6시
○ 장소 :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
○ ZOOM 회의 링크 : https://bit.ly/세종호텔토론회

○ 좌장: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 발제
유흥희_비정규직이제그만_ 코로나19 노동재난과 노동자투쟁
윤지영_공익인권법재단 공감_ 세종호텔 경영행태 분석과 사학자본 수익사업의 문제점
박종남_민주주의법학연구회_ 세종호텔 쟁의관련 법리적인 검토

○ 현장 발언
고진수_세종호텔노조 지부장
김계월_아시아나케이오노조 지부장
최대근_관광레져산업노조 위원장
노경봉_신도여객노조 지회장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주최: 세종호텔노조지부, 세종호텔정리해고철회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220405_토론회 자료

[기고]돌아앉은 대통령, 쫓겨난 세종호텔 노동자의 투쟁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입력 2021. 12. 22. 03:03
[경향신문]
필자는 서울 명동 세종호텔에 여러 번 가봤다. 투숙객으로서가 아니라 그 호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방문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말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엄동설한에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세종호텔 노조는 다시 엄동설한에 파업에 돌입했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0년 전에는 단체교섭이 결렬되면서 했던, 말 그대로 파업이었다. 지금은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하는 파업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 파업이 아니게 되었다. 정규직으로서 정리해고 후 하는 투쟁은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파업이 아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파업권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집단적 투쟁에 돌입한다.

그래서 요즘 많이 궁금하다. ‘노동존중’을,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그리고 공공부문에서라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현 대통령은 지금 임기 말에 이르러 자신이 내세웠던 노동공약에 대해 어떠한 소회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가 취임 일성으로 밝혔던, 노동존중과 좋은 일자리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에 대해 입 꾹 다물고, 돌부처처럼 돌아앉은 대통령에게 이제 임기 말에 이르러, 이 사회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똑똑히 보라고 일갈하고 싶다.

그중에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현실이 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2012년 1월 파업으로 승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정규직화시켰다. 그 쾌거는 그들과 함께한 사회적 연대의 힘, 2011년 ‘희망버스’ 운동에서 진화한 ‘희망뚜벅이’ 행진과 함께 호텔 로비로 들이치면서 가능했다. 물리적인 힘이라기보다 사회적인 힘이었다. 그 이후 10년 동안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잘 살고 있었을까? 그들은 무사히 자신의 일터에서 안전한 노동을 하고 있었을까?

한국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 그들은 위헌세력이고, 헌법 파괴세력이다. 그런데 국가도 공권력도 법원도, 그리고 제도 정당들도 그 위헌적인 파업 파괴행위와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징치하지 않는다. 세종호텔 역시 무사할 리가 없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자 바로 세종연합노조가 만들어졌고, 민주노조 조합원 206명 중 60%가 새 노조로 이탈했고 그들이 교섭권을 가져갔다.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가진 가운데 성과연봉제, 포괄적 임금제, 탄력근로제, 부당한 전환배치 등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의 유연성 실험이 시작되었다. 노동 유연화의 백화점, 혹은 구조조정의 실험실 같은 세종호텔 노사관계 속에서 노동조건은 후퇴했으며 임금은 계속 삭감되었고, 노조는 위축되었다. 노조위원장은 징계해고를 당했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지구를 덮쳤다. 하지만 이는 자본가들에게 마냥 나쁜 게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에게 또 다른 기회이자 기왕 해왔던 노무관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핑계일 수 있다. 노동 구조조정과 민주노조 말살이란 두 가지 목표를 최종적으로 이룰 절호의 기회이다. 한때 280여명이던 노동자들은 몇차례의 희망퇴직으로 수십명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늘었고, 교섭권을 가지면서 파업을 준비하자, 12월9일 직장폐쇄를 하고, 12월10일 민주노조 조합원 12명을 전원 해고했다.

코로나19가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배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코로나19를 빙자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노동을 구조조정하고, 노동 차별을 공고히 하고, 노조를 파괴한다. 한국처럼 자본이 예사로 위헌적인 노동 파괴세력으로 군림하고, 양당 보수정치가 이를 결사 옹호하는 나라에서 노동이 처한 조건은 더욱 꼬이게 된다. 자본은 국가로부터 받은 ‘공적자금’을 공돈처럼 사용한다. 국가는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대신 임금을 내준다. 호텔업종이 바로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근데 문재인 정부는 고용주들에게 꼭 받아내야 했던 약속, 즉 노동자 고용보장 선조건을 아주 쉽게 철회했다.

노동자의 목숨줄을 이렇게 쉽게 자본의 자비에 맡겨놓은 이 정부가 과연 ‘민주정부’일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그 조항을 철회하지 않았다면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돌아앉은 대통령은 과연 노동을 볼 면목이나 있을까. 이제야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은가!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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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돌아앉은 대통령, 쫓겨난 세종호텔 노동자의 투쟁 | 다음뉴스 (daum.net)

<축하공연영상 – 박준>

<축하공연영상 – 강기훈, 이한솔>

축하공연영상 – 임정득 : https://youtu.be/Dh8XcVpfIyY

 

“모든 파업은 사회적…사회적 파업기금이 필요한 이유”

발족 10주년 맞은 사회적파업기금 권영숙 대표 인터뷰

“쉽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지키고자 했던 약속은 변함없었지만 10년의 결과물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부족함을 반성하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과제죠. 우리의 목표는 한 달 1만 명이 1만 원으로 1억 원의 사회적 파업기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파업과 연대에 동의가 되는 사람이 1만 명이 있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노동을 배제하는 민주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모이는 기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 멀었네요.(웃음)”

-2011년 2차 희망버스를 다녀온 후 사파기금 제안서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당시 어떤 울림이 연구자에게 직접 행동까지 나서게 했나요?

“당시 제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한국의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졌어요. 노동자들의 고립된 투쟁은 ‘사회적 파업’ ‘사회적 연대’의 절실함을 불러일으켰고요, 또 ‘파업기금’을 선제적으로 조성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쭉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래도 하나의 방아쇠가 있다면 그건 김주익일 겁니다. 그 사람이 유서를 세 번 쓰고 2003년 10월 죽었죠. 김주익이 유서에서 손배가압류 같은 돈의 문제와 노동자들이 고립됐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김주익이 올라간 상황에서 한진중공업은 150억 손배 소송을 걸겠다고 했었어요. 김주익은 계속 민주노동운동에 사회적 연대를 요청했는데 그게 사파기금을 만드는 힌트가 됐죠.

저 개인적으로는 김주익을 만나지 못한 게 참 안타까워요. 그때 유학하다 논문을 쓰려고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었거든요. 권영길 대표를 인터뷰하고 다음 날 현장 조사 차 부산 영도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는 김주익을 보러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 오전 권영길 대표한테 전화가 왔어요. 김주익을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사람이 목매 죽었다고요. 노동자들의 투쟁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죠.”

-파업기금을 따로 조성하지 않는 것을 한국의 상황이라 말했는데요, 특수한 상황입니까?

“노동운동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건 결국 파업을 위해서거든요. 서유럽에서 노동조합이 근대적 발명품의 하나로 만들어졌을 때, 노동자들의 초점은 노조 결성보다 파업에 더 가 있었어요. 파업 기금을 조성해, 일정하게 돈이 모이면 파업을 시작하고 버티는 거예요. 지금도 조합비를 걷으면서 파업기금을 따로 걷고 있고요. 그런데 한국은 초기자본주의에서 노조를 만들 때와는 상황이 달라서 파업하지 않는 자본주의에 익숙해졌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고 대중적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됐을 때도 파업하면서 임금을 받았거든요. 노자가 모두 파업에 대해 잘 몰랐어요. 87년 투쟁에서 노동자는 근로조건 향상에 집중했고, 자본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문화됐던 업무방해라든가 손배가압류를 들고나왔어요. 무노동·무임금은 그전까진 법으로 있지도 않았는데 법원이 먼저 나서 판례를 만들어줘요. 그리고 97년 노동법 개악할 때 국회에서 받아쓰죠. 노동의 사법적 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며 ‘무노동·무임금’이 법에 명시된 이후, 파업 중 개인의 생계는 노동자의 몫이 돼 버렸어요. ‘무노동·무임금’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데 자생적 파업 물결이 일어났고, 집단적이기보다는 개별적인 대응을 했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손배가압류 당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파업권이 무력화된 거죠.”

-김주익 열사의 죽음부터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하셨는데, 제안은 희망버스부터였어요. 희망버스는 사파기금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희망버스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적 흐름 중 하나입니다. 전태일의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더라면’이라는 소망은 연대에 대한 갈구였잖아요. 대학생 친구는 변호사 조영래로 나타났지만, 고립의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를 요청한 거예요. 전태일의 요청에 한국 사회가 반응한 게 노학연대로 나타났어요. 많은 학생들이 평화시장으로 가서 싸웠고,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없어졌고, 노동자들은 조합을 통해 스스로 자구책을 찾습니다. 스스로 조합주의를 강화한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희망버스를 띄운 건 노학연대 이후 처음 이뤄진 사회적 연대 운동이에요. 희망버스의 발진을 이례적으로 둘 수 없어서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해 사파기금을 생각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10년 동안 운동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계획적이거나 조직적이거나 목적의식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손배가압류 때문에 파업을 접거나, 파업 기금 없이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파업기금을 우리 손으로 조성하면 파업을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단지 연대가 아니라 동맹 세력이 구축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동안 어떤 사업장이 사파기금을 지원받았나요?

“전체적으로 세어보니 지원 횟수는 220회 정도 되더라고요. 500만 원 이상의 기금 지원을 산정하면 80여 회고요. 가장 힘든 비정규 정리해고 노동자투쟁 위주로 지원했어요. 그러나 노동자 투쟁만 지원하진 않았어요. 장애 운동 단체, 소성리 사드배치 반대투쟁,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지원했고요. 사회적 파업은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넘어서 미조직 노동자, 권리 없는 노동자들까지 미쳐야 합니다.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 청년들 모두를 포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파업기금을 설명할 때 ‘사회적’이라는 말에 더 방점을 찍기도 했어요.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라는 생각이 확산돼야 해요. 내 문제가 닥쳤을 때 연대하는 게 아니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 사회적 연대로 다른 파업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해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가 나를 위한 연대이기도 하는 생각들이 중요하죠.”

-연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다양해요. 제가 노동자대회날 여의도에서 좌판 열어 정기후원 신청서를 혼자서 50장 받은 적이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서 파업기금 내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설득도 잘 됐죠. 비정규직 노동자들, 돈 없이 싸우는 것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길게 얘기를 안 해도 사파기금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빨리 이해를 해요. 그런데 대기업 노조에 있는 사람들, 중산층들은 보다 긴 설명과 논리를 요구하죠. 그 사람들은 파업 기금이 없어서 파업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한테도 당신부터 사파기금 정기후원하라고 권하기도 했어요. 아주 짓궂은 거죠. 실제로 사정이 어려워서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정기 후원이라는 게 부정기적으로 한 번씩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래서 더 사파기금이 쉬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발견하잖아요. 그런데 투쟁이 끝나면 연대에 안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연대에 대해 투쟁 승리로 갚겠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다른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는 각각의 일들이거든요. 승리가 연대가 될 순 없죠. 연대는 연대예요.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뼈아픈 부분이기도 해요. 그 수많은 노동자 투쟁 이후 사람들이 남았다면, 그들이 또 다른 사회적 파업과 연대를 만들어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죠.”

-지난 활동 기간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6년 동안 사무실이 없어 힘들었어요. 연대 물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흩어져 보관했고요. 또 상근 활동가도 없어 운영위원들이 시간을 쪼개고, 자기 돈 출현하면서 활동했죠. ‘기금은 건드리지 않는다’ 등의 우리가 세운 원칙들을 지켜가면서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죠. 처음엔 매일 페북에 기금조성 내역과 CMS 모금 상황을 올렸어요. 많지 않은 수여서 가능했지만, 상근 활동가도 없이 매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격일로, 주마다, 달마다 했죠. 지난 8년 동안 매달 정리를 하다가 요즘엔 반기별로 정산해요.

저는 사파기금 해소하고 싶어요(웃음). 민주노총이 명실상부한 내셔널센터가 돼서 모든 노동자의 노조로 서고, 파업기금을 선제적으로 조성한다면요. 단, 조건은 민주노총 안 대기업 노조가 쌓아놓은 파업기금도 환원해, 업종과 사업장 규모를 뛰어넘는 연대를 이뤄야 한다는 거예요. 이상론이지만 노조가 가는 최대치의 길 아닐까 싶습니다. 계급의 단결로 이어지는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것이요. 민주노총이 그런 방식으로 전국적인 파업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면 새로운 민주노총이 되는 거지요.”

-10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후원을 바탕으로 앞으로 사파기금의 활동 방향과 펼쳐나갈 사업들이 궁금합니다.

“더 이상 운영위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은 운영위원들의 생계도 있기 때문에 사업 역시 불안정했고요. 많이 고민했지만 상근 활동가 체계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체 재정을 확보해야 해요. 예쁘장한 사무실도 구했고요. 가능한 안정적으로 향후 10년의 사업을 하고 싶어요. 노동자 투쟁을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요. 기금 지원이, 한 단체만의 연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반복해 얘기하듯 모두의 문제로 서야 해요. 결국 모든 투쟁은 연결돼 있어, 하나의 투쟁이 곧 내 투쟁으로, 내 투쟁이 사회의 투쟁으로 이어진다고요. 모두가 돕고 모두가 움직여야 해요.

대선 기간 양당이 벌이는 목불인견의 정치공학적 상황 속에서 대안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런데 노동 이야기가 쏙 빠져 있어요. 노동 쪽에선 급하게 뭔가를 시도하는 데 이게 불만이에요. 언제나 한 철인데 좀 더 일상적이고 대중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순 없을까요? 노동 문제를 의제화하고 사회적 파업, 사회적 연대를 구체화하는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교육과 선진, 기획 사업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금 조성뿐 아니라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활동들이요. 활동가를 뽑고 있는데,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노동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게…10년을 버틴 건 연대의 힘”

2021.12.09 21:3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가 돌아본 10년의 발자취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출범 10년을 맞은 사파기금의 활동 내용과 의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고희진 기자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출범 10년을 맞은 사파기금의 활동 내용과 의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고희진 기자

김진숙 2차 희망버스 때 첫발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사업장
생계자금 바닥났을 때 생명줄

이젠 민주노총이 기금 만들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나눌 때
사파기금 필요 없는 날 와야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올해 출범 10년을 맞았다. 사파기금이 출범한 2011년 7월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한창 진행 중이던 때다.

권영숙 사파기금 대표(56)는 당시 사회과학 공부를 하던 연구원이었다. 김 지도위원과 연대하기 위한 2차 희망버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며 동료들에게 ‘파업과 투쟁에 힘쓰는 노동자들에게 연대할 기금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페이스북에 “노동은 파업권이란 헌법적 권리를 가졌으나 돈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스러져갔다”는 글을 올리고 사파기금의 구체적 계획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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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대표는 “매일 후원금이 들어왔다. 반향이 아주 뜨거웠다”며 “한진중 정리해고반대투쟁위원회에 2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사파기금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가 떠올린 사파기금의 출범 당시 상황이다. ‘김진숙’으로 대표됐던 해고노동자와 열악한 투쟁 사업장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은 10년 사이 조금씩 식었다. 사파기금에 대한 시선도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다.

10년을 버틴 것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준 후원자, 봉사활동 형식으로 함께한 연대자들 덕이다. 그간 500만원 이상 고액의 연대를 한 사업장은 81곳이다. 연대물품 등 소액 연대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217개 투쟁 사업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에 기금 연대를 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누군가는 ‘돈이 많아서 후원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내부 운영비를 사용하지 않고 후원금은 연대기금으로만 썼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기억에 남는 연대 사례로 2014년 ‘청주 노인병원’과 ‘부산 생탁 노조’ 투쟁 사건을 꼽았다. 두 곳 모두 지역의 작은 사업장,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힘든 사업장이었다. 그는 “노인병원엔 요양사, 영양사 등 주로 나이 든 여성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조를 만드니 회사가 직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투쟁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생계자금이 거의 바닥났을 때, 사파기금이 그곳에 닿았다. 너무 고마워하고 진심으로 연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해줬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연대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감동받기도 한다. 권 대표는 “많은 파업 사업장이 사측과 합의할 때 완전한 승리를 하지는 못한다. 파업 주동자는 복직을 제외하는 형식의 합의를 할 때가 많다”며 “부산 생탁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측이 주도자를 제외한 합의를 요구하자 10여명의 동지들이 모두 복직을 거부했다. 그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단일 사업장의 파업 ‘승리’는 사파기금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파업을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확장시키고, 연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는 이들 역시 각양각색이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사망에 항의하면서 분신한 김기설씨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씨는 오랜 연대자다. 노동자로 자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아이 돌반지를 팔아 기금을 후원한 이도 있다. 한 배우의 팬클럽이 활동비 중 일부를 기부한 사례도 있었다.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과 주로 연대하는 이유에 대해 권 대표는 “이제 대공장 노조는 파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비정규·소규모·신규 노조들이 주로 파업을 하는데, 돈 없이 파업을 시작하다 보니 용역깡패 등의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게 된다”고 했다. 이어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에 대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에 머무를 게 아니라 플랫폼, 소규모,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 대표는 “민주노총이 나서서 전국적으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배타적인 멤버십 안에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나눠야 한다”며 “그때는 사파기금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각지대 활동가 돕는 ‘사파기금’ 올해도 신청받는다

상반기 신청은 내일 마감…하반기에도 진행 예정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2021-07-13 06:00 송고
(출처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홈페이지) © 뉴스1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을 조성해온 연대조직인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하 사파기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각지대에 몰린 노동·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 올해도 500만원을 지급한다.

13일 사파기금에 따르면 사파기금은 오는 14일까지 노동 및 사회운동 활동가를 대상으로 ‘활동가지원기금’ 신청을 받는다.

 

신청 사유와 활동 경력 등을 적은 신청서와 추천서를 이메일로 제출하면 노동·민중·인권·문화운동 활동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기금을 받을 활동가를 선정하게 된다. 용도와 긴급성에 따라 1인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지급된다.

사파기금 측은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을 공적인 단체에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신청서류로 취득한 정보는 심의 이후에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지난 해엔 기금 신청자 수가 많아 활동가 9명에게 총 650만 원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달 꼬박꼬박 받는 임금도 없이 활동하는 활동가들 중에서 (지원기금이)꼭 필요한 이들이 이 기금에 신청할 수 있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사파기금 측은 앞으로도 활동가지원기금을 해마다 상·하반기 2회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사파기금은 코로나19로 권리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돕기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을 지난해 한시적으로 조성한 바 있다.

당시 석 달 간 이어진 모금을 통해 5700여만 원이 모였고, 사파기금은 이 기금으로 노동자투쟁 농성장과 노숙자연대단체, 이주노동자단체 등에 마스크 등을 지원했다. 또 활동가지원기금을 진행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파기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홈페이지) © 뉴스1

https://www.news1.kr/articles/?4369065

지속가능한 운동, ‘활동가지원기금’ 신청하세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올해 상반기 500만 원 활동가 지원

사파기금은 “활동가지원기금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한 목적중 하나”라며 “노동 및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활동가들의 긴급한 필요에 응답하는 ‘활동가지원기금’ 신청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권영숙 사파기금 대표는 “직업적 활동가들 중에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상근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들 중 최저임금 정도를 지급하는 경우는 20~30%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지속가능한 운동을 지원하고자 활동가지원기금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직업적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 코로나19로 인해 재난을 겪고 있는 활동가들도 많이 신청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접수는 이메일(sapafund@gmail.com)로 받으며, 신청서류는 홈페이지(sapafund.org)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신청이 마감되면 노동‧민중‧인권‧문화운동 활동가들로 구성한 선정위원회가 선정 절차에 들어가며, 선정자에게 개별 통보한다.

문의: sapafund@gmail.com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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