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숙(노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군인으로 살다 죽고 싶다”고 하던 변희수 하사는 떠나가고, 집행될 수 없는 재판 결과만 남았다. 대한민국 육군이 성전환후 남성 성기의 부존재를 이유로 그에 대해 내린 심신장애로 인한 ‘전역처분’은 부당하니 취소하라는 것이다. 2021년 10월 7일 법원이 판결했다. 그가 강제 전역된 지 624일만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은 죽고 없는데, 그가 삶과 죽음으로서 밝혀 달라고 이 사회에 요청했던 ‘정의’는 이렇게 뒤늦게 실현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과연 이런 것이 정의인가?

“정의”라는 말과 “법”이라는 말을 하나의 단어로 통용하는 국가 언어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법철학과 법이론을 거의 정초하다시피 한 독일어에서 recht는 법을 의미하지만, 정의, 그리고 나아가 권리까지 다 의미한다. 법, 정의, 권리가 모두 가족유사성 속에 어의 전화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어에서 droit는 법이기도 하고 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프랑스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단어는 영어와 다름없이 justice 이다. 영어의 경우 법은 law, act등으로 표현되고, 권리는 right라고 부른다. 한자어에서 법은 法인데, 동시에 법칙, 가르침, 모범의 뜻과 중의적이다. 결국 한자어에서 법이란 단어가 훨씬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법칙부터 법률까지. 이런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근대에서야 국민 국가가 형성되고 ‘국민’ 법을 발견하고 국가적 법전을 정초한 유럽과 이미 기원전부터 법치국가였던 중국 등 한자권에서 당연히 법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초에 정의는 법과 무관하다. 위의 법이란 단어의 기원에서 드러나듯이, 근대의 법이 정의를 독식하고 참칭하면서, 정의는 점차적으로 정의로움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결국 정의와 법이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정의가 법을 의미하게 되면서, 즉 법=정의가 되면서 한 단어에서 두 가지 뜻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민국가의 출현 속에서 실정법이 쓰여지고, 국민이라는 법 적용 대상이 만들어지고, 시민의 권리 개념이 조금씩 부르조아지로부터 남성 노동계급으로 확장되면서 일어난 역사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것을 법의 어원적 계보학이 드러내고 있다.

내가 다닌 대학 건물 앞에는 ‘정의의 종’이 있었다. 80년대 법대 교수들이 학내 시위 진압에 동원돼 나와 도열해 섰던, 바로 그 비루하고 수치스러운 학문의 시절. 그들 선생들이 가르쳤던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분노한 학생들은 정의의 종에서 종의 추를 빼버렸다. 그렇게 항의한 것이다. 정의의 종은 더 이상 울릴 수 없었다. 마치 80년대 초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학생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가시가 많은 어여쁜 장미꽃들을 심었을 때, 분노한 학생들이 맨손으로 장미를 뽑았듯이.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이름을 딴 아크로폴리스라는 광장에서 벌어진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그러고 보니, 시위를 못하게 하기 위해 화단을 꾸미는 것은 80년대 초에 이 학교에서 맨 처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민주화 이행 이후 법대 앞에 세워진 ‘정의의 종’에 추를 달아서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의미일까. 이미 정의가 법에 굴복한 세상에서 정의의 종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차라리 그 때 80년대 전반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정의와 법의 차이를 명확히 나눌 수 있었다. 법적 정의가 현실의 정의로움과 하등 무관하다는 사실은, 아무 논쟁거리도 될 것도 없이 명명백백히 현실 그 자체로부터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였다. 사회정치적 현실은 이른바 법적 정의 따위의 현란한 법적 용어와 뿌연 법정의 모습을 거쳐서 보여 질 수조차 없었다. 이 때 소위 법조계, 법복 귀족들은 ‘권력의 주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였다. 바로 그들 80년대의 검사들이 지금 이름이 다시 운위되는 곽상도나 김기춘 따위의 인물들이다.

해서 당시 법대생들은 사법고시를 보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탈탈 털어봐야 했다. 과연 이런 체제하에서 법으로 밥을 벌어 먹어야할까 하는 문제. 과연 법이 ‘밥’에 우월할 수 있는가의 문제 등까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런 고민을 했던 소위 ‘운동권’은 당시에도 학생들 중 일부, 소수에 불과했다. 그 대학을 나온 나경원 등은 아예 운동에 적대적이었고, 지금 정치인인 원희룡이나 조국은 그 때는 분명히 운동권이었으나 지금은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가 되었고, 아니면 여전히 지금도 민주화투쟁을 하는 양 자신을 현시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들어가서 1986년에 사법고시 합격한 전력을 보니, 이 사람은 70년대 말 엄혹한 시절에 10대 노동자로 6년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그 노동자로서의 삶은 현실의 힘은 출세해야겠다는 전력 질주로 나타났구나 짐작할 뿐이다. 1982년과 1996년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는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시절은 바뀌었다. 이제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에 길들여진 인민들은 정의를 법을 통해서 매번 확인받고자 한다. 아니 인민들은 갈수록 법정이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정의하도록 만드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 정의는 여전히, 그리고 전혀 정의롭지 않다. 특히 ‘법적 시간’은 사회적 시간이 아니다. 그러면서 법적 시간은 사회적 시간을 구속한다. 또 법을 활용하고 농단하는 자들, 소송을 지배하는 자들은 가진 자들이다. 권력을 가졌고, 거대한 사적 재산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법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고 그 시간을 경유하여 소위 법적 정의가 실현된다.

근데 여기에는 뭐 대단하고 특별한 트릭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단지 재판을 위한 절차와 재판 일정만으로도 법의 시간은 이미 가진 자들의 것이 된다. 법원의 재판은 느리게 진행되고, 재판을 하는 긴 시간동안 약자들은 고통스럽게 견뎌야한다. 그런 가운데 법적 정의는 사회적 시간을 왜곡하고, 한 사람의 소중한 생의 시간을 감금하고, 급기야 때로는 그 시간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예컨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판결은 한없이 늦게 나온다. 그조차도 판결은 판사에 따라 오락가락 춤을 춘다.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들의 죽음에 대한 판결도 한없이 늘어졌다. 그 사이에 수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이 많은 자본은 급할 것이 없다.

이 현상은 이 사회 안에 권력과 돈과 빽을 가지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다. 법의 시간은 사회적 시간에 대해서 한없이 무관심하고, 잔인하며, 형식적이고 군림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로서 가진 자들에 한없이 유리한 시간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법은 가진 자들의 것이 되고 만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것이 아니라 법은 멀고 정의도 멀다.

흔한 법언은 ‘법은 사회의 최소한’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아니다. 법은 단지 사회의 거울일 뿐이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정립하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세워지면, 법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결국에는 따라올 뿐이다. 수많은 법조문과 법을 둘러싼 해석은 과연 법을 세우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국민인가, 인민인가, 혹은 판관과 대리인들인가. 또 흔한 법언은 “법은 정의를 세운다”라고 하지만, 아니다. 법은 정의를 뭉개고 정의를 희석시키고 정의를 왜곡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를 넘어서야 한다. 사법적으로 포획된 정의담론을 넘어서서, 사회적 연대의 담론, 동맹의 담론을 구성해야한다. ‘우리’를 재구성해야한다. 배제와 포섭을 넘어선 ‘우리’의 정치학을 구성해야한다.

변희수는 죽었다. 변희수는 죽었다. 이 사회는 그를 살리지 못했다. 이 사회는 그가 살만한 사회가 못되었다. 그리고 법은 멀고, 정의도 멀다. 사회적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법적 정의라는 이름 안에 갇힌 사회가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데 일조했다.
변희수 그가 법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죽었다. 그는 정의는 법정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에게 감사드린다.

[사파논평]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정의와 법, 혹은 법의 시간 – <font color=”red”>[사파시평]</font> (newscham.net)

[공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참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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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대로 계속 나아가야겠습니다!
한국사회가 ‘대장동’과 대선을 앞둔 정쟁으로 요란합니다.
결국 몇 명의 인물들의 악마화에 사회적 분노는 집중되고, 대선 앞에서 ‘덜 나쁜 놈 고르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가오는 대선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구조의 민낯이 폭로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취급하면서 가진자들의 ‘부의 놀음잔치’가 수면아래 면면히 진행될 것입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전지구적 전염병 코로나19가 덮친 2년동안, 전세계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전염병 백신은 부자 나라들이 독식하고, 가난한 나라의 민중은 속절없이 죽어나갑니다. 그 수가 450만명이 넘었습니다.
자본가계급은 더욱 강력해지고 노동계급은 자신의 방향을 상실하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성장을 회복했지만, 사회안의 계급불평등에 대해서는 무능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는 불평등 앞에서 연대로 맞서야겠습니다!
누가 더 ‘나쁜 놈’인지 지목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것으로 세상의 구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연대로부터 투쟁까지! 투쟁과 연대를 모아 더 강한 힘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읍시다.
우리의 관심을 희망을 향한 연대로 모읍시다!
다시 한번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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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참여방법>
1. 참여 기간: 2021. 9.13- 12.31
2. 결제방법은 신용카드와 통장 이체, 일시불로 가능
3.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4.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이 기금은 목적성기금으로 조성하여, 코로나19노동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을 위해 사용합니다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문의 sapafund@gmail.com)

뉴스1

“코로나 사회적 죽음 ↑..이번 국민지원금도 연대기금으로”

양새롬 기자 입력 2021. 09. 15. 05:30 

사파기금, 지난해 이어 ‘노동재난연대기금’ 모금 나서

2021.9.13/뉴스1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을 소비와 기부가 아닌 연대행동으로 모아주세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재난연대기금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던 노동단체에서 이번에도 재난연대기금 조성에 나섰다.

15일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을 조성해온 연대조직인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에 따르면 해당 기금의 이름은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코로나 취약층을 대상으로 사용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 노동 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을 위해 사용하게 되며 연말까지 모금 예정이다.

사파기금 측은 지난해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며 모은 기금 약 5700만 원으로 Δ해고노동자·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연대 지원 Δ활동가지원 기금 신설 Δ마스크 연대 등의 연대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사파기금 측은 모금을 알리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어서고 있고, 정부의 대책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적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집단심성이 강화되고 있다. 올해 말 내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면서 “이럴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공동행동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지원금을 양보해 이 사회 재난 약자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에 동참해달라”고 독려했다.

기금 참여 방법 등 자세한 내용은 사파기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민지원금은 올 6월 납부한 국민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소득 하위 88%에 해당하는 가구에 1인당 25만 원씩 주는 재난 위로금이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자(잠정)는 4326만 명(전 국민의 약 84%)이다.

국민지원금은 10월 29일까지 신청할 수 있고 12월 31일까지 사용해야 한다. 연말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국가나 지자체로 환수된다.

flyhighrom@news1.kr

“코로나 사회적 죽음 ↑..이번 국민지원금도 연대기금으로” (daum.net)

사파의 연대자 여러분께

여유롭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사회적파업연대기금과 함께 해주신 연대자들 여러분과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 노동자 여러분께 추석 인사 드립니다.

‘코로나19 국면’이 2년째인데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재난앞에서 우리 사회 불평등한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파기금은 재난에 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방역 통제 속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이들을 위해 사회적 연대의식이 더욱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대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적인 연대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어려움속에서 사파기금은  작년이후 현장 방문, 물품연대등에 더욱 노력을 집중하였습니다.  작년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 이주노동, 해고노동자 투쟁지원과 활동가지원기금을 신설했고, 재난속에 배제되고 지워지는 목소리를 주제로 한 집담회와 사파포럼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이후 각자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사파기금은 사회적 연대운동을 열심히 펼치겠습니다. 연대자 여러분이 연대로 함께 해주시면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올해말까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 속에서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든 사회적 약자들, 비정규 해고노동자, 이주노동자, 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으로 사용하는데 마음과 힘을 모아주세요.

https://sapafund.org/?p=4360에서 사파기금의 활동과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방법을 확인해주세요.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그리고 2021년 7월 발족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올해말 송년회를 겸해 10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10년동안 사파기금과 함께 꾸준히 연대활동을 해오신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코로나19를 넘어서 12월에 꼭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2021년 한해가 몇달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 잘 보내시고, 함께 사회적 연대로 새세상을 향한 희망을 모읍시다.

2021. 9.2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 시작

12월 말까지 진행, 코로나 재난 위기 맞은 노동자 등에 지원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을 진행한다. 국민지원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코로나19 재난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활동가 지원 및 국제연대 활동에 사용한다는 취지다.
사파기금은 9월 13일부터 12월말까지 2차 기금 조성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어서고 있고, 정부의 대책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적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 국가와 정부는 재난으로 인해 더욱 깊어가는 불평등을 바로잡기는커녕, 재벌과 자본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산업구조 전환과 경기 부양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럴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공동행동이 더욱 필요하다. 올해 말 내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터져 나올 사회적 투쟁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라며 “국민지원금을 양보해 재난약자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파기금은 지난해에도 노동재난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위한 1차 연대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해당 기금을 통해 아시아나케이오, 건강보험공단, LG트윈타워, 한화생명보험 등의 해고 노동자 및 비정규 노동자 연대 지원에 나섰다. 이와 함께 활동가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활동가지원기금 신설과 투쟁 현장 마스크 지원, 코로나19 노동재난 문제와 관련한 ‘지워지는 목소리’ 토론회등을 진행했다.

2차 기금 모집은 9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약 세달 여간 진행된다. 신용카드와 통장 이체, 일시불로 결제가 가능하다. 상세 정보는 https://sapafund.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참여 방법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 시작 – 12월 말까지 진행, 코로나 재난 위기 맞은 노동자 등에 지원 (newscham.net)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코로나19 재난 앞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 캠페인을 9월 13일부터 12월말까지 진행합니다.
‘국민재난지원금’을 소비와 기부가 아닌 연대행동으로 모아주세요.
상생은 사회적 연대의 실천으로!

<2차 기금 참여방법>

1) 참여 기간: 2021. 9.13- 12.31
2) 결제방법은 신용카드와 통장 이체, 일시불로 가능
3) 참여 방법 :
–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bit.ly/3tsCA9Y
–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이 기금은 목적성 기금으로, 코로나19노동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지원기금을 위해 사용합니다.

<2020년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1차) 연대활동 보고>

1) 해고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연대지원
– 비정규이제그만 “코로나19비정규직 긴급행동” 5백만원 지원
– 아시아나케이오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9차 사파동행’ 개최, 팔토시 1백만원 구매후 투쟁현장  3곳 전달
– 건강보험공단 노동자 파업 물품연대, 1천만원 파업기금 지원
– LG트윈타워, 한화생명보험등 노동자농성장 물품연대방문
2) <활동가지원기금> 신설: 2020년-2021년 상하반기 2차례 진행 1천만원 지원
3) 마스크 1만장 구매 ‘마스크연대’ 3회 진행: 전태일3법 농성장, 택시노조등 노동자투쟁, 이주노동자단체들, 홈리스단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투쟁등 직접 전달11곳, 배송 2곳등 총 13곳 지원
4)코로나19 ‘노동재난’ 문제 쟁점화
– “코로나19속에서 지워지는 목소리” 집담회 2회 개최
– “노동자 해고” 관련 제18차 사파포럼 진행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어서고 있고, 정부의 대책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적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와 정부는 재난으로 인해 더욱 깊어가는 불평등을 바로잡기는 커녕, 재벌과 자본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산업구조 전환과 경기 부양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난에 맞서는 사회적 제도 개혁은 요원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집단심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공동행동이 더욱 필요합니다. 올해 말 내년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터져나올 사회적 투쟁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위해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합니다.

국민지원금을 양보하여 이 사회 재난약자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에 동참해주세요.
사회적거리두기에서 사회적 연대로!
이윤보다 생명을, 고립보다 연대를!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이메일: sapafund@gmail.com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올해 10주년을 맞습니다.
10주년 행사를 8월28일에 열기로 했으나 연기하고, 올해내에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 2천명대에 육박하면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공적 집회의 자유도 거의 완전히 금지하는 조치이기도 하며, 정부는 이에 대한 조처를 바꿀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사파기금 10주년 행사를 발족일에 맞춰서 개최하는 것은 연기하고, 올해내에 다시 좋은 날을 잡아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족이후 10년간 꾸준히 함께 해주신 연대자 여러분, 그리고 사파기금이 함께 했던 투쟁노동자 여러분이 함께 모여 친목과 연대를 다지는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2021. 8.2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다 거기서 거기’라고? 아니다. 나라마다, 집단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사람의 몸을 보는 시선과 몸을 두는 방식은 의외로 다양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도 한다. 역사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사회에선 낯선 사람에게 시선을 둘 때 사람을 정면으로 뚫어지게 보는 것이 심한 실례이고, 특히 여자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gazing)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나는 이를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뉴욕에서 다양하게 경험하고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얼마나 다양한 몸에 대한 시선과 몸을 두는 방식들이 사회적으로 가능하고 실제로 수행되고 있는지, 이 글은 일종의 인류학적인 참여 관찰의 결과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시선의 사회학이라고나 할까. 사람에 대한 시선 처리가 얼마나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며 국가-특정적(nation-specific)인가, 즉 장소성을 가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시선두기라는 행위는 시간이라는 변수 속에서 항시적이지 않으며, 지금의 관습이 언제까지나 지속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성’을 가지기도 한다. 사실 지난 3-4년 사이에 한국에서도 젠더 문화와 젠더 정치와 관련해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이뤄졌는가 말이다. 지금은 80년대와 다르고, 90년대와 다르고, 2010년대와도 다르다. 특히 지난 5년간 #미투(나도 고발한다) 캠페인 전후로 젠더관련 이슈와 태도는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의 관행이 어느 사회나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제화의 과정, 사회적 감수성,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3가지 축을 경유하면서 사회적 문화가 바뀐 결과다. 특히 젠더(혹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문화적인 감수성이나 사회적 태도, 무엇이 수용 가능한 언행인가는 매우 미시적인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다. 때문에 그 변화의 범위와 속도는 점진적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이 한꺼번에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사회도 서서히 바뀔 것이다. 지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겨지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치부되는, 문제로 취급되지도 않던 일들이 중요한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문제화’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있다. 사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문제화는 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감수성과 충돌하게 되고, 결국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을 거치면서 사회문화로 정착되거나 정착되지 않건 간에 바뀔 것이다.

윤석열 씨의 몸에 대해 홍혜은 씨가 8월 12일 경향신문에 쓴 기고글에서 “언론 카메라 앞에서도 쩍 벌어진 그의 다리에서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혹자는 법조계 출신 중년 남성의 오만한 태도 문제로 보기도 하지만, 내 주변의 체육인, 의료인들은 허벅지 안쪽 내전근의 실종과 지나친 복부 비만이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본다”라는 단락을 두고 나오는 예민한 반응들도 그렇다. 그 예민함이 애초에 타인을 의식하는 예민함, 그리고 그런 행동이 타인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예민함으로 앞서 발현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공공연한 평가에 놀랍도록 둔감했던 것과 대비돼 이런 예민한 반응들이 흥미로우면서 안타까웠다. 왜 이런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은 유독 이런 식으로 발현될까? 만시지탄, 즉 너무 늦은 반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사회적 예민함을 진작부터 가졌어야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다.

예컨대 여성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대한 시선들과 말들을 참고 살아야 했나. 불편하고 불쾌한 표정조차 짓지 못하고, 설령 그런 표정을 지어도 얼마나 사소하다고 무시당했는데. 나아가 표정을 짓다 못해 말 한마디 하는 걸 용기내야만 했는데….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거는 것처럼, 혹은 그런 비아냥을 뚫고서라도 불편함과 불쾌함을 말했어야하고, 사소함에 대한 예의를 두고 정치적인 논쟁을 해야 했는데. 바로 그 ‘몸’이라는 걸 두고 말이다. 몸에 대한 시선이나 품평을 두고 말이다.

몸이 왜 문제가 아닌가. 몸이 문제다. 사회적인 몸이 문제다.

그리고 여성의 몸은 이미 언제나 문제였다. 사회적 몸이었다. 개인적인 몸으로 보호되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이 그리 새삼스러운지 모르겠다.

여자들의 몸이 남자들의 눈요깃거리로 마구 던져지는, 방송 카메라고 낯선 행인이고 민망할 정도로 쳐다보고 품평하는 것이 예사인 사회에서 말이다. 심지어 대통령조차 외모와 몸매를 두고 면전에서 품평을 당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다. 집권당 중진들이 청와대 당정 모임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 대고 외모를 품평하는 한국 사회다. 독신인 여자 대통령에게 ‘처녀’ 운운하는 말들이 버젓이 공적인 자리에서 회자하고, 그 평가 대상인 사람은 설령 그가 대통령이라도, 마치 사회적 규범이 잘 내면화된 인간이라면 웃으며 넘어가야만 그 인성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간주되는 사회다. 대통령 박근혜도 그렇게 넘기고 말았다. 불쾌한 표정 하나 짓지 못하고 말이다.

바로 그런 사회문화에 대한 판박이 미러링도 아니고 말이다. 타인을 억압하는 위계적이고 군림하는 몸에 대한 비판 한마디가 뭐 그리 불편하다고 이 난리인가 싶기도 하다. 이럴 양이면 지금껏 언제나 호사가들의 품평거리가 되고 남자들의 사회적 시선에 발가벗겨지고, 면전에서 자신의 몸이 끊임없이 품평당하던 여자들의 경우 백번, 천번 난리가 났어야할 것이다.

그러니 몸이 왜 문제가 아닌가. 몸이 문제다. 사회적인 몸이 문제다. 다 같이 인정하자. 그리고 타인의 몸에 대한 품평과 평가가 얼마나 예민하고 문제적인가를 이 기회를 통해서 십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껏 예민해진 사회적 감수성과 정치적 올바름이 평등하게 골고루,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할 것 없이, 대상을 차별하지 말고 확산되길 바란다.

또한 이 해프닝을 통해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개념을 다시 살려내길 바란다. 그 개념은 그렇게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듯 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다수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안전망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겐 ‘공공연히 하지 말아야할 말’이 주는 안전막이 얼마나 든든한데 말이다. 속으로 할 말이 있고, 뒤에서 할 말이 있고, 페이스북 ‘따위’에서나 쓸 말이 있지 어찌 신문 칼럼에 버젓이 남자의 몸에 대해서 썼냐는 말에 대한 얘기다. 그렇게 신문지상이나 방송, 공적인 언로를 통해서 할 말들을 구분하는 것, 공적인 자리에서 할 말 안할 말 가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민함, 그것을 남자 윤석열 씨에만 적용하지 말고 이 땅의 여자들, 소수자들, 남녀노소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하길 바란다. 몸이 그렇게 문제적이라면 말이다. 타인의 몸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부디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모두의 기준으로 삼길 바란다.

 

[사파논평]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175

안녕하세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입니다.
사파기금이 조성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의 목적성 사업중 하나인 활동가지원기금 제2회(2021년 상반기) 접수 및 선정 결과를 공지합니다.

1. 신청 접수는 7월 한달동안 2회에 걸쳐 본인 신청방식으로 받았으며, 노동, 민중, 인권, 문화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한 선정위원회 심사과정을 거쳤습니다.

2. 기금 최종 지원대상은 총 6인입니다.
기금 지급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인해서 2회 역시 대면 아닌 개인 이메일로 지급증서를 보낸후 수령자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전합니다. 수령자는 기금 수령 확인후 수령증을 제출 바랍니다.

3. 활동가지원기금의 지원대상은 단체가 아닌 개인 활동가이며, 노동뿐 아니라 민중운동, 사회단체, 문화운동 활동가등 다양합니다. 1회 수령자는 노동, 이주노동, 빈민, 문화 부문등이었습니다. 이번 2회 수령자도 노동, 빈민, 홈리스, 사회단체등으로 다양합니다.

4. 주최측이 정한 선정 기준은 1) 용도의 긴급성과 구체성, 2) 활동가로서 지속가능성 두 가지입니다. 단체 상근여부, 타 기금 수령여부와 함께 상황적 긴급성등을 고려합니다. 그리고 기금 취지상 기금지원 횟수와 수령 횟수에 어떤 제한을 두진 않습니다. 이번 2회에는 1회에 이어 2회 연속 수령자 1인이 있습니다.

5. 작년 1회에는 지원자 수가 많아서 총지급액을 30% 증액했는데 올해 기금 지원자 수는 줄었습니다. 활동가지원기금은 노동, 빈민등 민중운동, 인권, 사회단체등 넓은 범위의 사회운동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다양한 부문의 활동가들이 지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금이 필요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심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주저하지 않고 활동가지원기금에 신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사파기금과 맺은 연이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확장되고 바랍니다.
그리고 활동가지원기금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신 사파기금 연대자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2021. 8.5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사회학자)

 

  8월 2일 현재 원주 건강보험공단 앞에서는 1,100명의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들- 주로 여성 기혼 노동자들-이 파업 중이다.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3차  파업은 이날로 33일 차를 맞았으며, 이은영 수석부지부장의 단식은 11일째다. 이 폭염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노숙 농성 중이다. 화장실 사용이나 출입도 어렵고, 경찰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꿋꿋이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5,000여만 국민고객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고객센터 노동의 직고용이야말로 보건정책과 건강보험의 사회공공성이기도 하다고. 건보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대한다면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과의 직접교섭에 대해서 시종일관 비협조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대선 공약으로 선언해 놓고 그 수사학적인 효과는 다 누려놓고서, 임기 끝나기 전에 그 공약을 실행하도록 실천하고 나선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권력으로 막아서고 있다. 노동공약은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카드였구나.

예를 들자면 이런 이슈 말이다.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양궁선수 안산의 숏컷에 대한 시비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온통 안산의 숏컷 헤어에 대한 이슈가 더 지배하고 다른 것들은 희미해져 가는 사회적 어젠다의 풍경이 참으로 문제적이라는 말이다. 사회적 어젠다 세팅이 ‘제로섬’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지배체제가 가장 선호하는 여론정치의 풍경일 것이다.

2. 정체성의 정치와 사회적 가치의 정치도 분별이 필요하다.

윤석열 -우파정당 ‘국힘’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당연히 뻔하게 높았지만, 어디에도 당 소속을 두지 않은, 전직 정치인도 아닌, 일개 전직 검사(출신 검찰총장)가 한국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1, 2위 후보를 다툰다는- 그 희한한 후보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근데 그의 부인을 두고 온갖 진상짓들(미안하지만 내 눈에는)이 창궐한다. 그의 부인이 한때 술집 마담이었다네, 어떤 검사와 살림을 차렸다네, 그의 논문이 엉터리라네. ‘**의 남자들’ 명단이 쓰여진 벽화가 서울 어느 책방 벽에 그려지고 지워지고 또 그려지고 지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지지파-국힘과 윤석열 반대파-민주당 사이에 대선정국 이분법적 구도가 휩쓸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이슈 말이다. 근데 이런 일들이 윤석열이라는, ‘정치인이 되려는 전직 검사’의 정치적 성향과 능력과 입장을 평가하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러던 중에 내 보기엔, 월척 하나가 나왔다. 윤석열 그자가 87년 이한열이 최루탄 맞고 쓰러지는 그 유명한 사진조차 알아보지 못하고서, 이게 “부마(항쟁)이냐?”고 묻고, 자신이 그때 79년에 대학 1학년이었다는 둥 헛소리를 한 것. 그것이 YTN방송 ‘돌발영상’에 찍혔다고 한다(각자 찾아보시길 바란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해낼 수 있다. ‘줄리’보다는 윤석열이다. 김건희보다 윤석열에 집중하자. 당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드러내는 것은 윤석열 검사와 결혼하기 전 김건희라는 자의 이전 전력이 아니라 윤석열의 과거 전력이다.

부디 헛발질 좀 그만하고 핵심에 집중하자. 윤석열을 진짜로 문제 삼고 싶다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윤석열 부인에 대한 관심은 다분히 ‘정치공작’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정적을 무너뜨리려는 나름 정치투쟁이고, 내년 대선의 향배가 결정될 때까지 그 후보들과 그 지지자들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3. 여론조사를 여론조사 해봐야 한다.

이재용이냐 이석기냐. 아니면 이재용이냐 이재용이냐. 이도 또 하나의 관심사다. 이석기 석방운동은 일단 옆으로 두겠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이석기 석방은 그 안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근데 감옥에 있는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드디어 ‘여론몰이’가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여론 조사 ‘기관’ 네 군데가 합동 조사를 했다는 결과가 묘하다(왜 한국은 여론조사를 밥벌이로 삼는 민간기업을 굳이 ‘기관’이라고 표현할까). “이재용 8·15 가석방, 찬성 70%…전직 대통령 특사는 반대 56%” 아주 절묘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의 여론조사기관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까지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첫째, 이재용에 대한 특사가 아닌 가석방을 질문하고 70%가 찬성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둘째, 효용 가치가 떨어진 전직 대통령은 특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뭐 이분은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자신의 두 번째 감옥으로 삼고 있으니 당분간(즉 다음 정권 전까지) 이렇게 보내도 좋다. 아니, 다음 정권을 국힘이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씨는 당분간 감옥에 있는 것이 정치적인 힘을 강화하고 자신의 역할을 도모하는 방법일 것 같기도 하다.

반면에 삼성의 이재용은? 소위 국민적인 감정은 박근혜 특사만큼 이재용 특사에 대해서 부정적일 텐데, 그러니 순서대로 일단 ‘가석방’부터 하자는 설문을 내놨다. 아, 그렇게 가석방해두고, 다음 3.1절쯤에 특사 단행하면 아주 맞춤이 되겠구만. 재벌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그 지독하게 모호한 애정공세에 있어서 결정판으로 해도 좋겠고. 혹은 차기 정권이 특사를 단행해도 재벌과의 관계를 위해서 나쁘지 않다.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과 자본주의의 관계는 수감된 재벌들의 석방, 사면 여부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에 합당한 절묘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의 여론조사와 보도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재용 씨가 만기 출소하는 것은 아예 선택지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진짜 여론조사라면 이재용의 만기 출소에 대해서 가부를 묻거나 적어도 선택지로 제시했어야지.

4. 맺음말

이것으로 관심이 온통 쏠리고 다른 것들이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 그것이 여론의 생태학적인 특징이다. 이른바 ‘사회문제론’적 시각에서는 그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있다. 다양한 문제들 중에 어떤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는가에 대한 연구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문제점도 심각하다는 비판적인 인식도 뒤이어 제기된다. 즉, 이것에 관심을 쏠리게 하면서 다른 것들을 덮는 것. 그것이 이른바 사회문제와 사회어젠다 세팅이 가지는 생태학적인 한계, 즉 더하기와 빼기를 하면 결국 ‘제로섬’(zero sum)이라는 것이다. 사회여론과 공론이 관심을 가지는 범위와 동기는 제한적이고 따라서 어떤 어젠다와 가치가 득세하면 다른 가치와 어젠다에 대한 관심과 동기부여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대한 이런 생태학적 접근은 과연 맞을까?

분명히 무엇을 ‘사회문제’로 선택하느냐는, 단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이고 문화적이기도 하다. 음주가 사회문제로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빈곤’이 사회문제로 취급된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을 사회문제로 보지 않는 인식들이 강하다. 즉 빈곤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경구도 이를 사회문제로 보지 않는 시각이다. 또 불평등은 인류사회에서 사라질 수 없는 ‘자연적인’ 상태라는 식으로 말하는 맬더스 주의적 접근이 지금 불평등을 말하는 담론들에도 여지없이 스며들어 있다.

최근에는 이는 사회적 가치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어떤 면에선 우익 포플리즘이 사회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과 담론전투를 벌이면서, 많은 소수자 프레임들이 차용되고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소수자 차별과 혐오, 폭력을 조장하고 동원하면서 반소수 다수 동맹을 만들어낸다. 또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소수자집단의 인물을 발탁하고 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시각을 세탁하고 타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는 소급하면 70년대 말 80년대 초 신보수주의로부터 연원하는 오래된 통치전략이기도 하다. 스튜어트 홀은 이에 대해서 영국 대처 정부의 통치체제에 대한 중요한 사회문화연구 저작을 내기도 했다.

결국 의도적으로 차별과 혐오, 증오행위를 부추기고 그것을 다시 여론정치 속에서 ‘증폭’시키고 그러면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고, 다른 중요한 사안들을 희석시키거나 새로운 배제의 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체성의 정치와 사회적 가치의 담론투쟁이 가지는 양면성에 대해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멀티미디어의 시대에, 대중은 끝없이 가짜뉴스에 현혹될 뿐 아니라,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중 그 자체가 중요한 ‘요소’로 동원되기도 한다.

고로 사회적 가치를 누가 만드는가. 그리고 누가 담론과 여론을 주도하는가. 이 광활한 사이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멀티미디어’ 속에서, 무엇에 대해서 내 관심을 두고, 내 시선을 보내고, 내 입을 열고, 내 손을 움직일 것인가. 욕하고 싸우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에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아 있는가. 프레임과 담론의 이중성에 대해서 신중히 진지하고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 어젠다 세팅이 ‘제로섬’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지배체제가 가장 선호하는 여론정치의 풍경일 것이다.

 

[사파논평]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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