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동자 공동투쟁의 고공단식 농성: 26일간의 기록
사진 슬라이드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5월 10일 제 23회 사파포럼 현장에 전시하고 동영상 슬라이드로 함께 봤습니다.

시간: 2017.4.14- 5.10
장소: 서울 광화문 사거리 광고탑

수많은 사진들중에 선택한 것들입니다.
2017년 4월14일 첫날부터, 2017년 5월10일 내려오는 마지막날까지, 날자순으로, 한장 한장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시고 궁금하길 바랍니다.
그 투쟁의 준비와, 시작과, 과정과, 결과와, 투쟁이후의 투쟁까지.

2017년 탄핵이후 대선국면에서 이 투쟁의 사진들이
2025년 탄핵이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노동자투쟁과 노동운동에 던지는 메시지가 읽혀지길!

 

161028 노동자공투 박근혜퇴진농성 기자회견

 

170414 공투1일차 고공에 오른 6인의 노동자들

 

170415 공투 2일차 생수와  침낭 올리기 투쟁

 

(2017. 05. 04)
[고공단식농성 21일차] 그리고 (대선 D-5)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가 농성자들을 만나러 올라갔다.

 

[고공단식농성 15일차] 그리고 (대선 D-10)
6차 사파동행_광화문 노동자고공단식농성장편

6차사파동행.
처음으로 고공농성자들의 화상 통화 발언을 시도했다.
발언하는 고진수 동지

 

‘퇴진행동’ 광화문 토요일 집회에서. 경찰버스에 올라 피켓팅. “여기 노동이 있다”.
하지만 토요일 촛불집회에서 노동자공투는 발언 기회를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

 

(2017. 04. 28)
[고공단식농성 15일차] 그리고 (대선 D-10)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의 광화문 유세에서.
고공농성장 아래의 노동자들은 열심히 외쳤다.

 

2017. 05. 08)
[고공단식농성 25일차] 그리고 (대선 D-1)
대선후보 문재인의 마지막 밤 광화문유세장에서.
연단을 점거하고 피켓팅하는 공투 노동자들.

 

(2017. 05. 05)
[고공단식농성 22일차] 그리고 (대선 D-4)
농성자 6인중 콜트콜텍 이인근 지회장이 먼저 고공에서 내려왔다.
사파기금의 병원방문.

 

(2017. 05. 10)
[고공단식농성 26일차] 그리고 (대선 D day)
고공농성자 내려오는 날 오후1시.
바로 그때 대통령 당선자 문재인이 청와대로 입성하는 카퍼레이드가
광화문 고공농성자들의 광고탑 아래를 지나고 있다.
고공농성자들을 외면하며 무개차 위에 서서 손흔드는 문재인이 보이지 않는가.
사진: 권영숙

 

(2017. 05. 10)
[고공단식농성 26일차] 그리고 (대선 D day)
내려온 고공농성자.
사파기금 고진수위원과 권영숙 대표, 그리고 김영아 운영위원등.

 

다시 청와대앞 노숙농성.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앞을 개방하면서 “시민들의 꽃길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투 노동자들은 이렇게 청와대 앞 100미터에서 노숙 농성을 해야했고,
경찰의 끝없는 침탈에 시달려야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4월 25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서울에서 연 후원주점에 연대로 함께 했습니다.
기금 대표와 운영위원들이 함께 했는데, 그 흔한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대신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서빙과 주방을 맡으며 고생한 조합원들 사진 몇 장 올립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현재 서울에서 한화 본사앞 지회장의 고공농성과 현장에서 해고노동자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고공농성 52일차입니다.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혁명과 혁명 아닌 것의 차이다.
계엄은 반헌법적이었고 그 회복은 철저히 법적이었다. ‘질서있는 퇴진’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이미 한계를 내장하고 있다.

87년체제는 윤석열을 낳았고, 계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87년체제는 스스로 자신을 구했다. 하지만 그 한계를 통해서 87년체제의 미완성적인 형태는 스스로 조종을 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와야할 체제는 무엇이어야할까? 6공화국에서 7공화국으로 수를 바꾸는 공화국을 세우는 것인가?

87년 헌법은 인민주권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소수가 뽑던 것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뽑아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하는 직선제를 도입했다. 주권재민, 즉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누구에게 대의할 것인가라는 방법을 바꿨을 뿐이다.

또 87년 헌법은 권위주의체제가 위축시켰던 약간의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다시 부여하였다. 하지만 헌법적인 권리는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 33조의 노동의 시민권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문법으로 보장한 노동의 시민권은 왜 이렇게 사문화되고 짓밟히고 있는가. 왜 윤석열의 계엄시도에 대해 ‘반헌법적’이라고 일제히 일어나지만, 365일 일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반헌법적인 행위는 묵과하거나 침묵하는가!

이번 윤석열의 계엄시도로 87년 헌법의 한계가 드러났다. 87년 헌법은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삭제함으로써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87년 헌법을 구해냈다. 그러나 동시에 87년 헌법체제의 한계와 정치적 위기도 분명히 드러났다. 제대로 대의되지 못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고 만다. 87년 체제는 이렇게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럼 이제 어떤 헌정질서여야하는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을 뿐인데 하면서 다른 대통령 뽑기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다시 대통령 직선제의 흠결을 보충하고 정치권력 구조와 선거제도의 변경에 한정하는 ‘개헌’을 하고 7공화국을 선포하는 것이 과연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인가?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대중은 다양했다. 그 대중을 ‘시민’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시민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하나의 시민이고 하나의 승리였을까? 그리고 과연 이 모든 것들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과연 시민적 민주주의, 민중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탄핵 먼저’, 다른 것들은 나중에 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이제부터’는 앞의 조건에 의해서 이미 긴박되고 제한되어진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이제부터’ 가능하다고 희망사항을 늘어놓기 보다는, 탄핵이후 정치적인 공간 속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실천을 향해 나아갈 정치적 상상력을, 더욱 명시적인 언어로 발화하자. 이것이 ‘미래에 오지 않을 것’을 다가오게 만들 수도 있는, 그리고 이번 2024년 촛불광장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잠재태였다.

하나. 87년 6월항쟁으로 시작된 87년체제는 자신의 체제전환을 완성하였고, 자기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 체제에 균열 이상의 새로운 변혁적인 전환을 가져올 힘을 만들어야한다.

둘. 권력은 인민, 민중에게 있다. 그것이말로 이름만이 남은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일 것이다. 그 원칙을 더욱 분명히 세우고, 이제야말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야한다. 인민 스스로 헌법 제정권력으로 나서야한다.

셋. 헌법의 제정권자인 인민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중이 인민주권의 주체로, 헌법 제정권력의 주체로 나아가도록 계속 발언하고 행동하여야한다.

넷. 촛불 대중의 광장은 모든 노동하는 인민들의 사회적 총파업으로 연결되고, 노동하는 이들의 사회적 총파업은 광장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한다.
사회적 연대와 사회적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체제 변혁으로!

2025. 4. 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3월15일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사회적파업연대기금 전 집행위원)이 청계천 한화 본사 앞 30미터가 넘는 첨탑에 올랐습니다. 오늘로 고공농성 3일차입니다.
그리고 2월13일 세종호텔노조 고진수 지부장(사회적파업연대기금 운영위원)이 세종호텔 앞 10미터 위 교통안내 구조물 고공에 올랐습니다. 이제 고공농성 33일차입니다.

세종호텔노조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조지회는 법적, ‘평화적인’ 방법들이 소진되자 고공농성을 결행했습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는 노동위와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지만 매우 석연치 않습니다. 박근혜정권하 법원의 ‘국정농단’ 사례로 세종호텔 사례가 꼽혔습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원청인 한화 본사가 2024년 단체교섭에서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게 마지노선을 쳐둔 탓에 2025년 현재까지 교섭 불능상태입니다. 회사 안에서 파업 농성을 시작했으나 구사대 폭력에 맞서야했습니다. 사내하청노조와 교섭은 ‘법적으로 개입불가’라는 한화 자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원하청 관계에서 비용산정시 ‘인건비’가 불포함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조선소 주력인 비정규노동자들이 전면 작업 거부하면, 그 때도 ‘법적으로 불개입’을 고수할 수 있습니까.

양쪽 다 고공상황이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은 지독한 자본가 세상입니다.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대한민국은 허울만 ‘민주공화국’일뿐입니다.
세종호텔노조 고진수지부장이 있는 곳은 폭 80센티미터 철조 구조물입니다. 김형수 지회장이 올라가 있는 첨탑은 30미터가 넘는 고공, 내부 원통형 구조는 지름 60센티미터입니다. 다리를 뻗으면 30미터 상공에 발이 둥둥 떠 있어야 하고 바람에 쉴새없이 흔들리지요. 이렇게 열악한 첨탑위 고공농성은 강남역 김용희 삼성노동자 농성이후 처음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이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2017년 4월 박근혜 탄핵후 광화문 사거리 광고탑 위에 사파기금이 파업기금을 지원연대했던 11개 사업장의 6명의 노동자들이 고공단식농성을 26일간 전개했습니다. 5월10일 취임식을 치른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순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동자들이 내려왔습니다. 그 중에 고진수 지부장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2인의 노동자들은 서울 하늘위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있어야할까요?

조만간 탄핵 인용에 따라 광장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장기화될 것입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빠져나가는 바로 그 때,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향한 연대는 새로 시작되어야할 것입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노동자 세상을 향하여!
굳건한 사회적 연대로 이 투쟁 함께 승리하도록!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사회적 총파업을 향하여!

2025. 3.17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세종호텔노조 고공농성 13일차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월13일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지부장의 고공농성 첫날 오전에 고공농성장을 급히 연대 방문하였습니다. 권영숙 대표와 배성윤 운영위원이 함께 했습니다.

2월13일 고진수 노조지부장은 오전 5시 성명서를 공개하고, 세종호텔 앞 지하차도 10미터 상공에 설치된 교통신호 구조물에 홀로 올랐습니다. 폭 1미터가 되지 않고, 내부는 철빔으로 얼기설기 지지대를 만들어둔, 참으로 열악한 농성장입니다. 권영숙 대표는 사파기금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참 많은 고공농성을 경험했는데, 열악한 순위 수위에 꼽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고진수 노조지부장이 누굽니까. 2017년 ‘박근혜퇴진 공투단’이 박근혜 퇴진 직후인 4월 ‘노동법 전면개정, 노동탄압 분쇄,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광화문 네거리 광고탑에 올랐을 때 오른 이입니다. 심지어 고공단식 26일을 감행하였던 이 입니다. 사파기금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고공단식 농성이기도 했습니다. 고진수지부장은 사파기금의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그 저력으로 잘 버티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첫날 농성장 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고공농성 첫날부터 남태령의 노동연대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내 한복판 그것도 교통구조물 점거농성에 대한 공권력의 침탈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남태령의 연대자들이 24시간 불침번을 서는 주력이 되어 오늘 13일차가 되었습니다. 첫날 연대자들의 첫 식사를 사파기금이 대접하였습니다. 잘했다고 봅니다.

2월 22일 토요일 저녁 함께 연대방문하였습니다. 12일간 계속된 한파가 뼈속까지 후벼파는 가운데, 연대자들의 24시간 보초는 계속되었습니다. 고진수 지부장은 무사하였고, 더 단단해졌습니다. 일행들은 돌아가며 핸드폰의 스피커 기능으로 위와 아래에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고공농성자를 보는 농성장이라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파기금은 2월 24일 고공농성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추위속에서 버틴 투쟁, 앞으로 날이 풀리면서 더욱 단단해져야할 농성투쟁을 앞두고 성명서를 냈습니다.
세종호텔노조의 고공투쟁이 폐지되어야할 ‘정리해고’제도를 다시 이 사회에 환기하고 점화하는 불꽃이 되길 바랍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이후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가 스러져간 정리해고 철폐투쟁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필코 이 사회적 농성투쟁이 승리하길 바랍니다!

2025. 2.25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세종호텔노조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이 2월 24일 현재 12일차에 접어들었다. 정리해고와 동시에 시작된 정리해고에 맞서는 파업투쟁도 1000일을 훌쩍 넘어섰다.
2월 13일부터 12일째 살인적인 한파가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세종호텔 지부장은 명동 호텔앞 지하차도 위 위태로운 구조물에서 고공농성을, 조합원들과 연대자들은 맞은편 응달에서 24시간 내내 차갑게 얼어붙은 동토에서 고공농성을 엄호하면서 함께 ‘농성’중이다.

세종호텔이 단행한 정리해고가 코로나19를 핑계로 삼았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종식이 선언되고, 명동에는 해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경영상의 다가올 위기’로 간주된, 코로나19 전염병 시기 삼 년동안, 경영상의 다가올 위기는 다가온 적이 없는, 실체가 없는, 유령같은 경영상 위기였다.
오히려 경영주가, 자본가가 세종호텔의 경영상 위기를 조장하고 있었다. 지금도 호텔을 아끼는 마음보다, 호텔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곶감빼가듯이 빼갈까 혈안이 된 흡혈귀같은 자본이다.

정리해고는 부당했고, 근거가 없었고, 악법 조항임이 세종호텔 노조 파괴 사례로 더욱 분명해졌다. 하지만 노사관계에 대한 중립적인 조정역을 맡아야하는 국가 노동위원회도, 정리해고의 위법성을 가리는 해석권자인 법원도 자본가의 편이었고, 자본가의 편에서 모든 증거들을 해석하였다. 이는 또한번의 사회적 학살행위다.

그리고 노동법에 정리해고 조항이 있는 한, 이는 반복될 문제다. 현재 통상적인 해고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1997년 외환위기를 틈타 입법된 정리해고조항은 자본가들의 입맛대로 대량해고를 언제든지 단행하고 노조파괴를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한 ‘악법’조항이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세종호텔 노조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는 당장 철회되어야한다고 본다.

제도정당들, 특히 김대중정부 시절 정리해고 조항을 만든 민주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정리해고조항을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인 세종호텔에 대해 모든 압박을 가하여 철회시켜야한다!

자본가들의 대량해고 수단이자 노조파괴 무기가 되고 있는 ‘정리해고’조항을 반드시 폐기시키자!

2025. 2. 24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월 17일 저녁 비정규직이제그만의 ““내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 1박2일 대행진” 국민의힘 앞 1박2일 자리에 참가했습니다. 백여명의 노동자 연대자들이 참여했는데요. 권영숙 대표와 배성윤 운영위원이 함께 했습니다.
관련하여 권영숙대표의 후기를 전재하겠습니다.

2025.1.19
사회적파업연대기금
*

노동자들이 바꾸는 민주주의가 되어야한다.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현재의 자유주의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민중적 민주주의로, 노동자 민주주의로.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사회적 민주주의로.
‘노동자들이 민주주의를 바꾸자!’라고.
내가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했다면 이 말을 했을 것같다.

1월 18일 집에 들어오니 새벽2시다. 전날밤 비정규직이제그만 “내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 1박2일 대행진” 집회에 갔다. 노숙하기로 한 장소인 ‘국힘’ 앞 집회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차라리 이 물리력으로 한화 본사 앞에서 밤새 진을 치고 대환장 파티를 하는게 어떨까 싶었지만, 그게 비정규직 집회답지 않을까 싶었지만. 가봐야지 하고 갔고. 전국에서 모인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주로 나는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끔 무대를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만나서 반가웠던 이들. 들어야할 이야기들.
이제그만 비정규노조 노동자들은 이전의 수에서 그닥 많이 늘지 않았고, 남태령의 20대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오후 10시쯤 일 때문에 돌아오려 했는데, 새벽2시까지 꽤 오래 있다가 왔네.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1박 혹은 무박2일일텐데. 함께 하는 흥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노도 더 단단히 모아가길. 그리고 이것 역시 뻔해지는 집회가 되지 말길.
어떤 페이스북 친구가 말했는데, 많이 공감했다.
“남태령의 농민들은 ‘윤 물러가라’라는 맹목적 구호만 집어들고 트랙터 행진을 한게 아니라, ‘농4법’이라는 본인들의 삶에 직결된 이슈를 들고 싸우러 왔다. 노총이 그들 반의 반 만큼이라도 조합원의 삶에 직결된 이슈를 들고 싸우러 나왔더라면.”

2025.1.18 새벽3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월15일 성주 소성리에서 오신 사드철회성주대책위원회 동지의 연대방문을 환대하고 청계천변의 한화 본사앞에서 거리 농성중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농성장을 연대방문하였습니다.

멀리 소성리에서 반가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최근 대책위원장등 여러분의 가택과 회합 장소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문재인정부의 사드배치 관련 비밀정보 공유가 의심스럽다는 감사원의 오래전 일에 대한 뜬금없는 감사결과 때문입니다. “문재인 사드”라고 까지 표현하는 소성리 주민들에게 문재인 정부와 연계주장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소성리로 사드배치 기지가 정해지고, 투쟁은 급한데 돈이 막히고 막연한 상황일 때, 사파기금이 기금 5백만원을 지원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정당하고 명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같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바로 그런 때였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주는 기금지원 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대책위의 조선동 동지가 후원금과 달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파기금이 아니라 단체 후원금이라고 정확히 못박으면서요. 항상 주기만 하는 사파기금도 받는 즐거움을 느껴봅니다. 연대자 여러분도 함께 느끼시길. ^^

오후에 거통고지회 농성장 방문계획이 있던 권영숙 대표가 제안하여 한화본사앞 농성장에 함께 연대방문하였습니다. 오후 5시 퇴근선전전에 맞춤으로 가서 한화 본사를 상대로 구호 외쳤습니다. 청계천변은 바람길이라 바람이 무섭습니다. 한화 본사안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다들 입성도 꽤 좋아보입니다. 하청노동자들이 원청회사가 약속했던 ‘상여금 50%’를 내놔라라는 요구가 이들이 평균 받아가는 임금에 비해 얼마나 된다고요. 한화오션의 배들은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만드는 배입니다. 이 거대하고 따뜻한 건물 사무실에서 기획하고 설계하고 사무 보는 노동자들도 이를 알아야겠고, 부끄러움을 느껴야겠습니다. 최근 조선소 다룬 영화에서 정리해고 담당이 되어 ‘인간적 고뇌’를 느꼈다는데, 그 이전에 부끄러움을 느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동지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농성장에 돌아와 도란도란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여기 농성장에 얼굴 모르는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은근히,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바로 그 ‘남태령의 연대자들’이 하나씩 나타났네요. 인사 나눴습니다.

앞으로가 참 중요하겠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한걸음씩, 함께 동행하길 바랍니다.

2025.1.1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혁명과 혁명 아닌 것의 차이다.
계엄은 반헌법적이었고 그 회복은 철저히 법적이었다. ‘질서있는 퇴진’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이미 한계를 내장하고 있다.

87년체제는 윤석열을 낳았고, 계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87년체제는 스스로 자신을 구했다. 하지만 그 한계를 통해서 87년체제의 미완성적인 형태는 스스로 조종을 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와야할 체제는 무엇이어야할까? 6공화국에서 7공화국으로 수를 바꾸는 공화국을 세우는 것인가?

87년 헌법은 인민주권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소수가 뽑던 것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뽑아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하는 직선제를 도입했다. 주권재민, 즉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누구에게 대의할 것인가라는 방법을 바꿨을 뿐이다.

또 87년 헌법은 권위주의체제가 위축시켰던 약간의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다시 부여하였다. 하지만 헌법적인 권리는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 33조의 노동의 시민권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문법으로 보장한 노동의 시민권은 왜 이렇게 사문화되고 짓밟히고 있는가. 왜 윤석열의 계엄시도에 대해 ‘반헌법적’이라고 일제히 일어나지만, 365일 일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반헌법적인 행위는 묵과하거나 침묵하는가!

이번 윤석열의 계엄시도로 87년 헌법의 한계가 드러났다. 87년 헌법은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삭제함으로써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87년 헌법을 구해냈다. 그러나 동시에 87년 헌법체제의 한계와 정치적 위기도 분명히 드러났다. 제대로 대의되지 못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고 만다. 87년 체제는 이렇게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럼 이제 어떤 헌정질서여야하는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을 뿐인데 하면서 다른 대통령 뽑기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다시 대통령 직선제의 흠결을 보충하고 정치권력 구조와 선거제도의 변경에 한정하는 ‘개헌’을 하고 7공화국을 선포하는 것이 과연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인가?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대중은 다양했다. 그 대중을 ‘시민’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시민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하나의 시민이고 하나의 승리였을까? 그리고 과연 이 모든 것들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과연 시민적 민주주의, 민중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탄핵 먼저’, 다른 것들은 나중에 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이제부터’는 앞의 조건에 의해서 이미 긴박되고 제한되어진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이제부터’ 가능하다고 희망사항을 늘어놓기 보다는, 탄핵이후 정치적인 공간 속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실천을 향해 나아갈 정치적 상상력을, 더욱 명시적인 언어로 발화하자. 이것이 ‘미래에 오지 않을 것’을 다가오게 만들 수도 있는, 그리고 이번 2024년 촛불광장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잠재태였다.

하나. 87년 6월항쟁으로 시작된 87년체제는 자신의 체제전환을 완성하였고, 자기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 체제에 균열 이상의 새로운 변혁적인 전환을 가져올 힘을 만들어야한다.

둘. 권력은 인민, 민중에게 있다. 그것이말로 이름만이 남은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일 것이다. 그 원칙을 더욱 분명히 세우고, 이제야말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야한다. 인민 스스로 헌법 제정권력으로 나서야한다.

셋. 헌법의 제정권자인 인민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중이 인민주권의 주체로, 헌법 제정권력의 주체로 나아가도록 계속 발언하고 행동하여야한다.

넷. 촛불 대중의 광장은 모든 노동하는 인민들의 사회적 총파업으로 연결되고, 노동하는 이들의 사회적 총파업은 광장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한다.
사회적 연대와 사회적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체제 변혁으로!

2024. 12. 1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4년 10월29일 오후 7시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열린 ‘비전향 장기수 박희성 선생 시민사회장’ 추도식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권영숙 대표, 홍호석, 배성윤 위원이 함께 미리 조문하고, 양원진, 양희철선생을 뵈었습니다.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추도식에서 헌화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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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弔辭
– 비전향 장기수 박희성 선생을 보내며
(1935. 3.24 – 2024. 10.27)

2022년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만남의 집을 해마다 2회는 꼭 방문하였고 이 때마다 박희성 선생을 만났습니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파기금을 환영하여주셨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수줍은 아낙네 같은 모습처럼, 흔한 남성 꼰대의 모습과는 참 거리가 먼, 조용하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주변인들을 언제나 살피고 배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이가 한국전쟁때 10대 군인이었고, 나아가 당원이었고, 남한침투 공작원이었고, 37년간 전향공작에 맞서서 싸우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이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희성은 1950년 16세가 되던 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스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고, 길림에서 훈련을 받은 후 양구, 원산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1953년 흥남군관학교 입교후 그가 존경하는 ‘최현’ 군단장 산하 원산 재상륙 방어전에 투입되어 정전을 맞습니다. 그는 사파기금 방문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신의 자서전을 쓰듯 인생사를 말씀해주시곤 했습니다. 자신이 소대장보다 먼저 그리고 10대에 당원이 된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제대후 박희성은 금광으로 유명했던 평북 박천군 고향으로 귀향, 선전부 영상기사로 살면서 결혼하고 아들 동철을 1961년 얻습니다. 그러나 한돌이 된 아들을 두고 1962년 공작선 기관사로 대남침투하여 경기 화성에서 체포되었고 체포 과정중 벌어진 교전으로 대퇴부 관통상을 입은후,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이후 서대문, 대전, 전주, 광주 교도소를 전전하며 37년의 감옥살이룰 합니다. 감옥 안에서 남한국가의 ‘전향공작’ 으로 ‘강제전향’당했습니다. 1988년 출소하여 의정부, 미아리 등지에서 막노동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갑니다. ‘강제전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향’자라는 이유로 2000년 1차 63명 송환때 북송을 거부당했습니다. 그 후 송환은 없었습니다.

2008년부터 박희성 선생은 만남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고된 생활을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선생은 이를 내가 “정치적인 생명을 다시 얻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선생은 27년간 감옥살이, 37년간 ‘남한사회’에서 감옥살이를 하다 2024년 10월 27일 오후 4시 30분 돌아가셨습니다.

추도식에는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그의 옛 감옥 동지들, 빨치산 동지들이 함께 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가끔 슬픈 훌쩍임도 들렸습니다. 차분한 분위기였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인을 기리는 추모시들을 연이어 낭독했습니다. 고인이 북한에 생존해있는지도 모를 61년생 아들 ‘박동철’에게 보내는 유언 동영상도 함께 봤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나와 함께 통일조국을 위한 전선에 함께 서달라는 말을 경어를 쓰며 남겼습니다. 박희성 선생은 마지막까지 “혁명은 신념과 의리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영면 날에 낭독된 추도시 마지막 한자락을 발췌해 올립니다.

“동지들 꼭 전해 주시오.
나 죽으면 넋이라도 고향으로 갈 터이다.
가서 내 인생 그래도
티 없이 깨끗한 양심 지키다가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최현 군단장님과의 화선에서의 약속을 지키다 갔노라고
꼭꼭 전해주시오”

조사 – 권영숙 대표 씀

2024. 10.3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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