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 흑인살해 항의시위와 코로나19 계급투쟁
– ‘제국’(The Empire)은 무너졌다. 그리고 미국(The State)의 재발견

[사파논평]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사회학자)

미국에서 퍼져가는 저항시위를 ‘폭동’이라고 보거나 ‘인종’갈등의 폭발로 바라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이것은 코비드 저항시위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국면에서 인종의 문제와 계급의 문제가 교차하고 중첩해서 벌어지는 시위라고 봐야한다.

1. “다시 백인이 위대해질 나라”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다닌 미국 미네아폴리스 백인경찰이 5월25일 대낮에 비무장 흑인 시민을 죽였다. 흑인들 중심으로 5월26일 시작된 시위는 사흘만에 미국 전역으로 불꽃처럼 번져 5월 31일 현재 11개 주와 25개 시에서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8개 주와 워싱턴에서 주방위군이 동원됐다. 이 일이 벌어진 미네소타주는 흑인 비율이 높다. 미네아폴리스의 ‘쌍둥이 시’이자 미네소타 주도인 세인트 폴의 시장은 흑인이다. 그리고 검찰총장도 흑인이다. 5월 30일 내가 시청하던 CNN TV에는 이들이 라이브 기자회견을 번갈아 하면서 메시지를 던졌다. 정작 미네아폴리스의 민주당 소속 백인 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흑인인 세인트폴 시장, 흑인인 검찰총장이 나와서 흑인을 타겟으로 한 경찰의 폭력에 ‘유감’을 표하면서 ‘법질서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일부가 정당한 문제제기를 ‘폭력’과 무질서’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적절하지 않았다. 경찰이 무참하게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가 도화선인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하지만 언제나 미국의 ‘흑인 폭동’이 그렇듯이 권력의 근처에 있는 흑인들이 나와서 ‘진화’에 나섰다. 참으로 흔한 모습이다.미국의 ‘인종’시위의 양상은 대부분 이렇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프로파일링'(표적삼기)하여 길거리나 가게등에서 체포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죽여버린다. 그 옆에는 대부분 흑인 경찰이 있다. 그리고 흑인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들끓고 자생적인 시위가 벌어지다가 밤이 되면 약탈 방화가 일어난다. 하루 이틀후에 ‘지역의 명망가‘ 흑인들(대체로 목사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나와서 옳은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폭력시위와 선량한 ’흑인 코뮤니티‘를 갈라치기 한다. 시위대는 더욱 폭도화하고 이것들은 결국 사회운동론적으로 말하면 비이성적인 ‘군중(mob)’의 ‘폭동'(riot)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끝나는 것이 ’흔하디 흔한‘ 미국의 흑인시위의 결말이다.

2.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하고 또한 흑인들의 인종폭동의 경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인종갈등은 단지 인종갈등이 아니라 계급갈등이라는 점이다. 즉 소외된 하층민의 분노의 폭발이고, 그 소외된 하층민들중에는 대체로 흑인들이 많다. 하지만 흑인들 일부는 지배질서안에 엘리트로도 편입돼있고, 지역의 ‘유지’ 명망가들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전역의 경찰중에 흑인들은 어디나 있다. 그리고 경찰의 흑인 살해 시점에도 그 현장에도 흑인 경찰은 있다.흑인 경찰이 옆에서 방조하거나 거들 때도 있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수도 없이 미국 언론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흑인이 죽고, 흑인들이 백인 경찰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또 흑인들이 나와서 말한다. 흑인시장, 흑인 경찰서장, 흑인 교수, 흑인 언론인등등.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사건만큼, 전국적으로 흑인들이 언론에 주목받는 자리에 나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온통 어디선가 흑인들이 나와서 발언대에 선다.
그렇다면 이건 과연 ‘인종 갈등’인건가? 흑백 갈등인건가? 백인에 의한 흑인의 살해인건가? 저 흑인들은 무엇이고, 또 이 흑인들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흑인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지배질서 안에 기득권층으로 편입된 흑인들은 ‘백인우월주의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기도 하다(또한 흑인 자체가 한 ’인종(race)‘이 아니다. 복합적인 다인종군이 미국에선 ’흑인(the black)’이라는 통칭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흑인의 정의는 백인 피가 100%가 아닌, 그리고 흑인 1%의 피라도 섞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미국 인구조사(General Social Survey)의 인종 분류에서 라틴계는 줄곧 흑인으로 분류됐었다. 라틴계가 흑인으로부터 ‘인종/에스니스티 분류’에서 떨어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미국 인종 분포에서 흑인 인구는 10% 중후반대로 추락하였다. 이것 역시 정치사회적인 배경과 이해 정치의 결과물이다).

3.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이 인종폭동이라면 과연 이것은 지금까지 벌어진 폭동과 아무 차별성이 없는 것일까? 크게 보면 차별성이 없다. 미국의 지배질서와 사회적 불평등이 인종을 경유하면서 구조화된 단면이 이렇게 폭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리 ‘잘난’ 흑인들이 아이비 리그를 나오고, 언론인이 되고 전문직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도, 그들은 미국의 지배적인 질서를 해체하거나 그 일각이라도 허물어뜨리는데 도움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가 대통령 재임 시절에 퍼거슨 시에서 흑인 ‘폭동’ 이 일어났다. 똑같이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였다. 하지만 오바마는 결국 “우리 모두 오버컴”(극복하리)”를 부르고, “amazing grace”를 흑인 교회 추도식에서 나타나 멋드러지게 한 곡 부르는 것으로, 그의 죽음을 추도하며 보내버렸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여성이나 계급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 일부가 아무리 잘나서 엘리트가 되어도 그것이 과연 젠더적 질서를 붕괴시킬까 아니면 그 질서의 정당화를 구축해줄까. 노동계급의 일부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고, 원내 정당이 되고 심지어 ‘노동자출신’ 대통령이, 예컨대 노동자 출신이라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이 과연 계급정치일까. 미국의 인종주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4. 그럼에도 이번 미니아폴리스 발 시위 사태가 단지 흔하디흔한 ‘흑인/인종 폭동’일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코로나29 사태에 대한 항의 시위의 성격을 점차 가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중에 80%가 흑인등 유색인종이다. 흑인등은 보편의료보험 없는 미국 공공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흑인들은 보험을 들지 못한 인구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메디케이드등 서민용 의료시스템의 혜택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빈약하다. 코로나19 팬데믹속에서 흑인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그들의 주검은 웅덩이에서 화장이나 매장을 기다리고 있다. 흑인들은 가장 낮은 서비스업종 바닥의 노동시장을 점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근 5천만명의 해고 사태 가운데 정중앙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과정에서 미국의 불평등이 흑인등을 중심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가디안>지 5월31일자 기사에 따르면 미국 인구중 5400만명이 식량보조가 없다면 당장 ‘기아’ 선상에 놓이게 된다고 한다. 전국의 도시마다 푸드뱅크 앞에 길게 줄 지어선 행렬은 전대미문의 양상을 보이고있다. 또 미국 아동 네 명중 한 명, 즉 1800만명의 아동이 당장 식량보조가 필요하다는 집계도 있다. 미국은 다른 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한마디로 ‘식량 안전’의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코로나19는 단지 전염병이 아니다. 그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불평등이 더욱 극심하게 나타나고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응축되고 쌓인다. 이번 미니아폴리스 시위는 인종폭동이면서 계급투쟁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시위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시위다. 앞으로 닥칠 ‘사회적인 위기’와 ‘대격변’의 전조일 가능성도 있다.

5. 미국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양당인 붉은 색 공화당과 푸른 색 민주당은 모두 ‘집권능력’과 ‘정당성’면에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 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하였다. 그는 전염병을 통제할 능력도 문제이지만, 전염병을 대하는 오도된 자세와 메시지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임이 힘들다. 하지만 그 경쟁자인 민주당의 유일 후보 조 바이든은 코로나19가 겁이 나서 자신의 자택 지하 벙크에서 두달째 박혀서 자취조차 보기 어려웠다. 미국인들은 조 바이든을 조롱하는 SNS 메시지들을 올리고 있다. 다음 정권 대통령 자리에 앉을 두명의 후보가 다 이 모양이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렌 같은 후보들을 제치고 이런 후보들을 추대한 것이 바로 미국의 선거민주주의다. 이만하면 미국의 위기는 확연하다. 체제의 위기와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 그리고 그것이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지배 엘리트의 막가파식의 행동 가능성때문에 전지구 리더쉽의 위기와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모습이다. 제국(the Empire)은 간데 없고, 미국이라는 나라(the State)의 재발견 혹은 재탄생이다.

사파논평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미국 경찰 흑인살해 항의시위와 코로나19 계급투쟁

네번째. 민중가수 임정득님이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참여하며 연대글도 보내주셨습니다. 읽어보세요.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 이어쓰기4
임정득

음악 활동으로 밥벌이를 하는 문화노동자로서, ‘노동재난연대기금’ 모금에 함께 연대하는 것은 마음에 많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 활동을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불안정한 일이었지만,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더욱더 많은 고민과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와 같은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아니 훨씬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뉴스에서는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처능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연일 다루고 있습니다. 전국민이 재난기금을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그 재난기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일한 의료계 노동자의 임금은 체불되고 계약직 택배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으며 아시아나항공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량해고를 당하고, 항의를 하던 농성장은 폭력으로 철거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노동현장에서 임금 삭감, 해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업대란이 현실화 될것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재난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도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코로나19는 더 불평등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유지 되는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에게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여하지만 노동자는 일자리에서 쫒겨납니다. 재난지원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정작 재난지원금은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국가의 지침을 넘어서는 사회안의 연대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모아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말합니다.
“코로나19 재난이 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낸 사회적 재난이고 노동재난이라는데 동의하는 이들은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연대는 부유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것을 내놓는 연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소비와 기부가 아닌 연대행동으로 모아주세요.”

이 제안 속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길에 저도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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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합니다. 사파기금이 기금 지원하며 인연을 맺은 투쟁사업장 노조 대표들께 요청사항이 있어서 문자를 보냅니다.

사파기금이 기금 지원시 문자로 전달사실을 알려드렸지요?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문자로 보냅니다. 지원 당시의 집행부들이 바뀐 곳들은 지원당시 집행부 기준으로 하되, 현 집행부 연락처를 아는 경우는 함께 문자 발송합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동안 사파기금은 48개 단체에 75회 이상 기금을 지원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노동자들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표방했지만 아직 요원합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며, 돈은 문제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라는 모토로 움직여온 9년동안 실감하고 있습니다. 빈 구석을 채우고, 더 단단히 엮어서, 서로 맞잡은 연대는 사라지지 않게 쌓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와 민중의 곁에 믿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19 재난앞에서 여전히 사회적 연대가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가 재난의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사회적 재난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코로나19 재난속에서 이 땅의 노동현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연대의 결핍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연대의 문제의식이 좀더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속에서 격리와 고립을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의 화두와 실천이 필요했으나 부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이후의 사회에서 자본에 대항하여 새로운 사회를 꿈꾸기 위해서도 우리는 국가의 지침을 넘어서서 사회안의 연대의 목소리를 키우고 합쳐 나가야합니다.

사파기금은 코로나19를 노동재난으로 규정하고,그 재난속에서 권리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위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사파기금과 별도의 목적성 기금으로 조성하여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들과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 재난기금을 위해 사용하려고 합니다.

전국민재난지원금을 가구별로 받게 됩니다. 신청들 하셨는지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중에 얼마를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성에 맞서는 ‘종잣돈’이 될 노동재난연대기금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사파기금이 지원하고 인연을 맺었던 노동자들께서 노동약자들을 위한 연대기금조성운동에 연대를 표해주시는 것이 의미 깊습니다. 부담스럽겠지만 그 의미를 생각하며 적극 연대 방안을 논의하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위의 노동자들에게 적극 권해주십시오. 연대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절실합니다.

2020. 05. 25.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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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연대자 최웅식님의 글을 올립니다. 읽어보세요.

나를 저주하노라
최웅식

혁명가는 자본주의의 패잔병이 되어버렸다
체 게바라가 찍힌 티셔츠만 입고 혁명을 소비해버리고
나에게 동지라고 부르는 사람을 외면해버리고
누가 죽으면 이름도 모른 채 고인의 명복만 빈다
나를 저주하노라

코로나 지원금이 카드사에 충전되었다
여파가 없는 우리들은 고기파티를 열고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의 동선만 파악한다
나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저주하노라

마네킹의 옷을 털다가 콜록거리는 영세 사업자의 월세는
손님이 없어도 똑같고
방과 후 선생님의 수입은 비정규직이라서 0
로켓처럼 집으로 날아가는 쿠팡맨은
집처럼 큰 배달에 박혀 짐칸에서 쓰러져죽고
이주 노동자들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서
마스크도, 재난기금도 산소처럼 공급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자들을 받쳐보겠다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에 국가에서 받은 돈의 일부를 보냈지만
재난 상황에 가장 먼저 그들을 패대기치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에 패배한 나,를
저주하노라

손가락에 그 첫 번째 꽃이
피어난다, 그 때

2020.05.25

배성윤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코로나19노동재난기금은, 제안서와 취지에서 참 많은 화두를 던지고있습니다. 코로나19재난의 불평등성, 코로나19 방역모델과 한국사회에서 결핍됐던 사회적 연대의 문제, 그리고 코로나19이후의 사회에 대한 희망과 절망. 이중에서 저의 생각이 꽂혔던 문제는 이것입니다.

저는 지난 두달 동안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고통은 평등하지 않다”는, 화두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사파기금의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의 제안서의 기본 출발점이더군요. 한마디로 “노동없는 민주주의”는 “노동의 불평등”으로 심화되었고, 우리 사회는 민주화이행이후 갈수록 더욱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노동자 민중이 받는 고통 또한 매우 불평등한 현실입니다.

사실 저는 몇년전에 “기본소득” 개념을 알고서 그 매력에 푹 빠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페이스북 “기본소득네트워크”그룹에도 가입하고 그랬었는데, 2년 전에 탈퇴하였습니다. 일부 좌파가 그동안 한국사회의 비효율적인 선별복지를 비판하며 보편복지를 주장했었지만, 정부는 굳이 선별복지를 고집하는 부분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난속에 고통은 평등하지 않은 현실인데, 이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오히려 “기본소득”을 들고 나와서는 이를 통해서 “소비”진작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기본소득에서 보았던 것이, 바로 지금 정부가 자본을 위해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긴급재난앞에서도, 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도, 경기 부양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기도 하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되면 운동에서 계급적 관점은 내다 버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려주고, 자본순환에 기여하는 기본소득이 되는 것이지요. 제 생각이 그때 그런 결론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불평등의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희석시켜버리는 기본소득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짙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가난한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재난에 취약계층은 또 얼마나 죽어나갈지 짐작하기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런 불평등 앞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배급을 이야기 하며 재난의 현실에 눈가리고 아웅하며, 자본의 순환에 기여할 소비의 기대감에 젖어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어떤 소비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게 전부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재난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해 선별적이고 직접적인 생존 지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가가 이렇게 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해야합니다.

8년 동안 노동에 연대해왔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해왔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기에, 불평등한 노동현실로 인한 취약계층의 사람들에게 밀어닥친 노동재난 앞에서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직접 연대하고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자고 제안합니다.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라고… 그렇습니다. 저들이 원하는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거지같이 기본소득 몇십만원을 구걸하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겨우 살아갈수는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처럼,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n포세대처럼 말이죠.

기본소득이 혁명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인당 월 최소 5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인 가족 200만원이상. 이도 사실은 자본주의 틀을 유지하면서는 생활소득이 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이런 혁명적 의미를 가지는 기본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혁명적 상황을 이루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저들이 거저 줄 놈들입니까? 이런 혁명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연대하고 투쟁해서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한 상황을 쟁취해내야 할 것입니다. 즉, 기본소득은 정책 또는 방법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로 얻어내는 성과일 것입니다. 낭만주의자들이 성과가 방법이 될수 있다고, 길이 될 수 있다고, 달콤하게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기본소득을 소비하는 것에 만족하며 거지근성에 젖어들면 노동계급과 이 사회의 민중은 결국 거지꼴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달콤한 기본소득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누어서 직접 연대하겠다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연대 정신을 수평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내가 기본소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받은 돈이 실은 “노동의 불평등”으로 착취당해왔던 취약계층에게 선별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직접 연대에 사용할 것을 당연스럽게 제안합니다.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기본소득, 그 돈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직업유무, 직업의 사다리, 소득과 재산에 상관없이 당신이 받아야 할 돈이 아닙니다. 연대기금으로 내놓아 주십시오!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 돈을 모아, 그 힘을 모아, 직접 연대하고 직접 투쟁하고, 그리하여 코로나19 이후 다른 세상을 꿈꾸어 보고 만들어 보자!고 말이죠.

2020. 5.18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 소식을 <경향신문>에서 5단 톱기사로 대문짝만하게 자세히 실어줬습니다. 2020년 5월14일자입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그리고 많은 공유 부탁합니다.
#노동재난연대기금 소식을 널리 알려주시길 요청합니다.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사회적 연대로!

https://news.v.daum.net/v/20200513214558877

[수신] 귀사 사회부, 노동담당 취재기자
[발신]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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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민주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시는 기자 여러분께 경의를 표하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하 사파기금)이 주관하는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건에 대한 취재를 요청합니다.

1. 사파기금은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해고자 크레인농성에 연대하는 희망버스 가운데 출발하여, 지금까지 파업기금 없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며, 십시일반 풀뿌리 파업기금을 사회적으로 조성해 가장 힘든 노동자투쟁의 버팀목이 되려고 실천해온 연대운동입니다. 9년간 비정규노동자, 정리해고자, 이주노동자, 장애인운동등을 아우르며 노동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와 민중의 투쟁을 지지 연대하며 75회 47개 단체에 기금을 지원하고, 연대활동 및 노동문제를 사회 의제화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2. 지난 9년동안 불평등한 노동현실에서 노동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파기금을 제안하여 연대운동을 해왔듯이,
이제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한 현실에서 노동자 민중과 연대하는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재난자본주의가 아니라 재난연대가 절실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은 코로나19에 맞서는 강력한 모델이 되었습니다.하지만 그 모델에 가장 결여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연대입니다.

3.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재난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은 ‘노동재난’이 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해고, 무급휴직, 실업 대란이 노동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거세게 덮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취업 노동자 2천여만명중 고용보험 가입노동자는 1380만명이며, 680만명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특수고용노동자 220만명은 4대보험 대상이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의 노동권을 유보당한 영세사업장,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성을 부인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아예 노동권의 밖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지금 노동권과 노동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몰아치고 있는 해고 광풍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학살일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19는 불평등한 사회적 재난이자 ‘노동재난’입니다.

4. 코로나19 앞에서 긴급재난기금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비나 기부보다는 사회적 재난연대기금으로 환원, 조성합시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공돈’처럼 소비하지 말고 코로나19 재난의 가장 변방의 약자를 위한 재난연대기금으로 환원, 조성하는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전국민이 받게 되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일회적인 가처분소득으로 사용하지 말고, 사회적 노동약자와 민중을 위한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 운동은 자선이나 시혜, 혹은 기부가 아니라 노동재난에 대한 사회적 연대이길 바랍니다!

5. 사파기금의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은 차별이나 배제 없이 누구나 평등한 시민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정치적 실천입니다.
1) 이 기금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목적성 기금으로 설치하여, 5월부터 7월말까지 3개월 기한으로 조성하는 모금운동입니다. 3개월간의 기금 조성기간에 부디 함께 해주십시오.
2) 조성한 기금은 코로나19 노동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코로나19 국제연대, 활동가 재난기금으로 사용합니다.
기금 조성액의 규모에 따라 기금 목적과 대상을 더욱 넓힐 수 있습니다.

6. 기금조성에 함께하는 방법
일시불 또는 3개월 약정(CMS)을 선택해 신용카드 결제나 통장 이체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카드 충전 혹은 선불카드, 상품권으로 지급된다고 하니, 카드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여 충전한 후, 재난연대기금으로 함께 연대하면 어떨까요? 더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보도자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방법>
– 링크에서 바로 참여: vo.la/0TZ0
–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사회적파업연금기금
(홈페이지 https://sapafund.org/ 에 자세한 내용 및 제안서 참조)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져야 합니다. 코로나19의 재난의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여, ‘코로나19이후의 사회’를 함께 만들고 상상하길 바랍니다.
더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려는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에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세한 정보는 아래 첨부된 “보도자료”와 “제안서 전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20. 5. 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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