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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기획연재, 2011-12-24
세밑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달 현재까지 파업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만 52곳이다. 절반 이상은 교섭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들의 요구와 새해 바람을 들어봤다.
대우자판 세일즈맨 김진필씨 “가장 힘든 오늘이 희망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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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 서울 혜화동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
“김진숙과 김진필, (이름이) 한 끗 차이잖아요. (웃음) 근데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으로만 가는 걸 보며 좋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 했어요. 버스를 붙잡을 수도 없고….”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통보할 무렵 인천에서도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국내 유일의 자동차판매 전문회사이자 인천의 향토기업인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가 전 직원 572명 중 388명을 정리해고했다. 대우자판은 퇴직금은 고사하고 체불임금을 반납할 경우 정리해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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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고속지회의 파업이 25일로 382일째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올해 3월 전북버스 노동자들이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앞에서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지회 |
상자 선정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정해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어 올해 1월 금속노조 대우자동차판매지회는 인천 부평 본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은 이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농성자 중에는 20년차 세일즈맨 김진필(48)씨가 있다. 김씨에게 대우자판은 첫 직장이자 유일한 일터였다. 김씨는 “희망버스를 통해 정리해고의 문제점이 알려지는 건 좋았지만 한진과 비슷한 상황임에도 관심을 적게 받는 것이 서러워 조합원들과 함께 많이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경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지난 8년간 맡아 온 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인천지법은 검찰이 김씨에게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입사 후 열심히 차만 팔았어요. 근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현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지난 10년간 해마다 사측과 싸워야 했어요. 노조간부는 투사 같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노조를 돕다 동료들의 추천을 거부하지 못해 지회장이 됐죠.”
김씨는 “가정과 일터를 지키고 비상적인 것을 상식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하지 않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면서 “노조활동을 하면 소위 ‘운동권’이라고 부르던데, 막상 활동을 해 보니 운동할 시간이 없어 노조가 가장 비운동권적인 조직인 것 같다”고 웃었다.
현재 대우자판 임원들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주가조작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 부실경영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93년 창사 이래 적자 없이 운영되던 대우자판은 이동호 전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 추진이 화근이 됐다. 결국 대우자판은 공중분해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대우자판을 3개 회사로 분할하는 내용의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그런 와중에 이 전 대표이사가 대우자판 하청업체 회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는 “이 전 대표가 대우자판을 놓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실사업을 강행한 것이 부도의 핵심 이유”라며 “무능한 경영진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전가한 불법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말부부다. 가족은 창원에 산다. 올해 농성 후 체포영장이 발부돼 밖을 나가지 못해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의 새해 소망은 투쟁에서 이겨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다. 김씨는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추운 것처럼 힘들었던 올해가 내년 승리를 위한 희망이 될 것”이라며 “조합원을 비롯한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 “속고 또 속아도 희망 놓지 않아”
노동계 투쟁현장에서 오페라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지부장 문대균)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말 갑작스런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로 불거진 이들의 투쟁은 2009년 6월 일단락되는 듯했다. 단원들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최대 3년간 임시로 정한 곳에서 성실히 일하면 향후 안정된 조건을 갖춘 상설기구를 설립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단원들은 2009년 오디션을 거쳐 사회적 기업으로 설립된 나라오페라합창단에 입사했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 4월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나라오페라합창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예산을 지원해 줄 테니, 이후 어떤 단체행동이나 이의제기도 안 하겠다고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도저히 응할 수 없는 확약서였다.
3년 안에 예산을 받아 정규직 합창단을 만들어 주겠다던 문광부는 2009년부터 단 한 차례도 관련 예산을 국회에 올리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민주통합당을 통해 새 합창단 설립을 위한 예산을 국회 문광위에 증액 예산으로 올려놓았다.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조합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문광부의 서명에 응하지 않은 단원 12명은 올해 4월부터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서울 혜화동 문광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주일 내내 연대현장에 다닌다. 문대균(34) 지부장은 한 대학 특강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유명한 사람 불러 특강하려고 하지 말고 1년에 한 번이라도 노조와 관련된 분들을 초빙해 강연을 들어 보세요. 회사를 다니면서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 아닙니까.”
문 지부장은 “대학교 다닐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고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좋았다. 집회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가 막히면 “도대체 왜들 저러시나”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억울한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 지부장은 “인원이 부족해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구두약속이긴 했지만 3년 안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합창단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걸 믿었는데, 너무 바보 같았던 거예요. 우리처럼 또 그렇게 바보처럼 당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국립오페라단은 2002년 창단될 당시 2003년에는 정규직화될 것이라고 공고한 뒤 합창단원을 모집했다. 그렇지만 단원들은 7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결국 합창단도 해체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공약 지킨 게 하나도 없잖아요. 약속이 더 이상 약속이 아닌 시대가 된 거죠. 대통령이 그렇다 보니 공무원까지 그런 것 같아요.”
문 지부장의 새해 소망은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복귀하는 것이다.
“다음주면 국회에서 내년 예산이 결정됩니다. 문광위에서 예산이 증액된 사업만 700개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확률은 반반인데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버스 최장기 파업 전북고속지회 “생계투쟁·법정투쟁에 악전고투”
정인철(49)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전북고속지회 부지회장은 올 한 해 버스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버스노동자가 된 지 1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회는 지난해 12월8일 전북지역 7개 사업장 지회와 함께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노조 인정과 사무실 제공·조합비 공제 등을 요구했다. 전북고속을 제외한 전주시내버스 5개사와 부안스마일교통 노사는 올해 4월26일과 27일 잇따라 잠정합의했고, 6개 지회는 5월2일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전북고속 사측만 유일하게 합의해 주지 않았다. 정 부지회장은 “이렇게 파업이 길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길어야 2~3개월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북고속에 복수노조가 생긴 이유는 기존 노조 위원장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정 부지회장은 “지난해 임원선거 이후 노조 위원장이 징계위원으로 참여하는 징계위에서 3개월 동안 100여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당했다”며 “노조 위원장 불신임투표를 했으나 11표 차이로 성사되지 못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25일로 파업 382일째. 사측은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난 7월부터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 이후 노조의 교섭요구에는 “교섭대표노조와 임금협약을 체결했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조합원 173명 중 143명이 파업에 동참했고 현재 79명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 투쟁기간 동안 사측은 무려 76건의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제기했다. 변호사 선임비 수천만원은 빚으로 남았다. 정 부지회장은 “요즘은 눈만 뜨면 법원에 가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최근 회사에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업무복귀 후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복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사측은 먼저 업무에 복귀한 후 성실하게 근무하는 사람에 한해 징계양정을 참작하겠다고 했다. 지회가 현장에 복귀할 명분조차 주지 않은 셈이다.
가장인 이들은 대부분 생계투쟁을 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건설장비 보조로 일한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너댓 명의 지회 비상대책위원까지 생계투쟁을 하고 있다. 마땅한 생계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정 부지회장은 지난 7월부터 집에 돈을 갖다 주지 못했다.
“집에서는 난리도 아니죠. 가족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생활을 근근이 이어 가고 있어요.”
그는 상급단체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조합원을 관리하고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비상대책위 간부에 대한 생계비만이라도 지원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정 부지회장은 강정식 지회 법규국장과 함께 최근 민주버스본부 임원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버스본부 새 집행부가 본부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바람은 없어요.”
그는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79명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며 “조합원 79명이라는 숫자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 1천500일 앞둔 학습지교사들 “끝까지 간다”
지난 21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 앞. 크리스마스 캐럴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뒤로 10여명의 사람들이 행사를 하고 있었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의 문화제였다. 지부는 재능교육 본사가 있는 대학로 집회가 불허돼 시청으로 거점을 옮겨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1천462일. 투쟁 날짜를 말해 주듯 빛 바랜 현수막은 칼바람에 정신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눈물이 많아 별명이 ‘수도꼭지’인 유명자(43) 재능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내년엔 반드시 투쟁승리 보고대회를 열고 기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유 지부장은 대학 졸업 후 광고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카메라를 마련할 돈을 벌기 위해 98년 재능교육에 입사했다. 그의 꿈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였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카메라 구입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다. 2007년 불합리한 수수료 제도에 대해 단체협약 재협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고됐다. 이후 거리에서 4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사측은 이를 빌미로 지부의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농성장 곳곳에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다”, “노동기본권 보장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이유다.
“기륭전자를 보며 어떻게 1천일을 싸울 수 있을까 했는데, 저희가 반복학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투쟁이 길어지면서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자꾸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참 미안해요.”
14번의 천막 철거와 다양한 손배가압류, 용역의 폭행과 성희롱, 건강악화…. 거리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유 지부장의 일상은 파괴됐다. 농성장을 지키려다 보니 마음 편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야만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그는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학습지교사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고, 투쟁을 하면서 사람을 얻었어요.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법외 노조는 말이 되지만 불법 노조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부의 투쟁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 사각지대의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의 투쟁이 단순히 비정규직 여성들의 불쌍한 장기투쟁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투쟁에 승리해 연대해 준 노동자들에게 빚 갚기·길거리 대신 방에서 잠자기·낡은 카메라 들고 제주도 여행하기·좋은 사람 생기면 연애하기…. 그가 꼽은 새해 소망 리스트다. 유 지부장은 “현장에 복귀해 아이들과 만나 행복해지는 법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지금 힘들어서 포기한다고 해도 이후 노동자로서의 제 삶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망갈 곳이 없는 만큼 끝까지 싸워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 겁니다.”
김은성 기자, 조현미 기자
[상자기사] 사회적 파업 연대 기금 SNS 모금 눈길
최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파업 연대기금을 모으는 움직임이 생겨 관심이 모아진다.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85기금)이 대표적이다. SNS를 통해 연대기금을 모으자는 움직임은 지난 7월 시작됐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네트워크그룹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했다. 그 결과 8월에 한진중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정투위)에 2천만원을 지원했다.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 이후에는 장기투쟁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에 500만원을 지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장투사업장 후원주점을 열었다.
이들 SNS그룹은 제안문을 통해 “김진숙과 한진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증거로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을 만들고자 한다”며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이를 하나의 제도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밝혔다. 이어 “지속된 노동배제와 신자유주의의 쓰나미 속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사실상 거세됐다”며 “연대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기금은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운용된다. 희망버스 기획단을 꾸리고 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비없세)’가 기금을 관리한다. 주로 노동자들의 투쟁기금과 그 가족들의 생계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facebook.com/JINSUK85·facebook.com/groups/JINSUK85fund)과 트위터(twitter.com/85FUND)를 참조하면 된다. 모금계좌는 국민은행(640601-04-018750·비없세 정재권)에 개설돼 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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