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 15주년을 맞으며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2026)

–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

 

  1.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원과 성격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파업기금도 없이 싸우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지원갔던 희망버스의 서울 상경길에 동행들에게 제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파업기금’이라는 말조차 생소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반응은 좋았습니다. 1주일을 고민한 후에 2011년 7월19 일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장에 있는 “제안문”입니다. 아니 제안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파기금의 첫번째 특징입니다. 사파기금 초기에 꽤 자주 거론되던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모토는 이렇게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희망버스 도상에서 시작된 것이 사파기금입니다. 파업기금 없이 파업을 시작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라는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연대가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연대를 위해 “사회적 파업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바로 사파기금의 두번째 성격입니다.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기. 그것도 공공연한 조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 점에서 사파기금은 이전의 노동관련 기금들, 즉 노동연대기금, 상생기금과 다릅니다. 이 기금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은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봅니다. 또 2011년 비슷한 시기이 출범해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등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연대활동등을 목표로 해고 통지봉투의 색을 딴 ‘노란봉투’ 기금 캠페인을 펼친 ’손잡고’와도 다릅니다. 정리해고는 철폐해야하고 이를 위한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기금입니다. 누군가는 한국처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유명무실화되고 짓밟히는 사회에서, 어떻게 파업기금을 공공연히 사회적으로 모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름을 ‘희망기금’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파업기금입니다. 그래서 사파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서유럽에서 등장한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는 자본의’ 업’을 파하는, 즉 파업이라는 수단임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파업기금 (strike fund)를 모았습니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가 일정 기간 유지될 파업기금이 모이면 그들은 공장의 기계를 멈추고 공장 문을 뛰쳐나오거나 점거파업을 했습니다. 노조가 생기기 전의 일입니다. 노동조합보다 파업이 먼저였고, 파업기금이 먼저였습니다. 파업권은 노동자의 ‘권리’이기 이전에 무기였고 집합행위였습니다.

그 계급투쟁의 역사와 전통이 한국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니 워낙 파업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선 파업에 대비한 국가의 법과 제도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신생 민주노조들도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초기에는 없었습니다.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제가 제도적인 허점을 방비하기 위해서 나섰고, 가장 먼저 법원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법리밖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을 내리고, 국가와 정당들이 97년 노동법으로 법제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국가의 대응에 비해 조직화된 노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지 못하였습니다. ‘특별쟁의기금’이나, 노조 조합비중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비정기적으로 분배합니다. 과연 파업기금을 별도로 조성하지 않는 노동자부대가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을 감행할 수 있을까요? 파업기금은 노동계급이 자신을 파업하는 주체로 정립하는 자기 선언이자 주체적인 준비과정입니다. 파업은 ‘준비된 전술’이어야합니다. 해서 자본주의 초기 서유럽의 전투적 계급투쟁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주체로서 파업을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노조 조합비와 별도로 ‘파업기금’을 먼저 조성했음을 보여줍니다.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노조운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파업을 시작한 많은 노동자들이 ‘돈’앞에 굴복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의 제단’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파업기금의 부재는 형사상 손해배상과 민사상 가압류등의 패키지와 결합하여 급기야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완전히 유명무실화하는 기제로 공고화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의 모토이기도 한 “돈 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는 “손배가압류에 맞서는 사회적 파업기금”을 의미합니다, 손배가압류는 2000년대가 아니라 민주화 이행 이후 80년대 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초기에는 자본과 합의로 손배가압류를 피하였거나 노조 스스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제도적 방책과 준비의 부족 상태에서 비정규 노동자투쟁이 2000년대 초 시작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로 격심한 고통을 겪었고, 노동자들이 분신하거나 자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2015년을 즈음하여 노동부가 손배가압류 자료를 취합하고, 민주노총이 손배가압류 사업장 리스트를 작성하는등 사회적인 이슈화가 뒤늦게 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은 2011년 제안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손배가압류에 맞서기 위한 사회적 파업기금을 제안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파업기금의 조성은 준비된 파업을 향한 계획이며, 노동자투쟁은 준비된 파업일 때 승리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가질 수 있고, 이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와 결합할 때 더욱 강한 사회적인 투쟁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해야합니다.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이 된 2026년에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고, 아직 미완성의 도전적 과제입니다.

 

* 연도별 연보:
https://sapafund.org/?cat=350

2011년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시작하다
2012년 : “만원의 기적” 1만인 계좌 운동을 시작하다
2013년 : 노동이 말하다 ‘사파포럼’
2014년 : 새로운 현장 연대 ‘사파동행’
2015년 : 찾아가는 지역 연대 ‘사파의 작은 희망버스’
2016년 : 사파기금-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 기금 지원 9차
2017년 : 도약을 위한 보금자리 그리고 고공으로 쏘아올리다
2018년 : 치열한 전국 현장 연대 – 탄핵 퇴진 너머 노동자투쟁
2019년 : 노동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2020년 :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제안하고 조성하다
2021년: 새로운 사무실, 새로운 10주년을 준비
2022년 : 격월 소식지 <사파동행> 첫 발행하다
2023년 : 사파기금의 결실,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발
2024년 : “절망을 직시하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모읍시다”
2025년 : 계엄탄핵광장을 넘어 노동의 사회적연대를 향한 새로운 목소리

전문: 사파기금15주년_대표_기조발언_연대와투쟁의_굴곡과_진퇴의나날

자료집: 사파기금15주년 자료집_ 최종본_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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