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9월 11일 HL만도 평택공장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 고 김승모의 죽음 52일차 서울고용노동청 분향소에 권영숙 대표 등이 조문하고.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49재가 되도록 장례를 지내지 못한 채 열린 ’49재 추모제’에 연대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고 김승모는 HL만도 평택 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노동자였습니다. 그는 7월 22일 공장에서 홀로 금속가공설비를 점검하던 중 기계에 끼여 숨을 거두었습니다. 당일 고인의 업무는 머시닝센터(MCT)라는 커다란 상자 같은 기계의 윤활유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작업은 2인 1조로 이루어져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날은 고인이 혼자서 작업을 했습니다. 게다가 HL만도가 작업을 서두르면서 현장에 안전관리자도 배치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인이 119에 실려가는 와중에도 노동조합에 알리지 않아 우연히 한 노조 간부가 구급차를 보게 되어 사고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유가족은 참혹한 현장을 확인하고, 노조에 장례에 관한 일체 교섭을 위임한 가운데 만도 자본측과 싸우고 있습니다. 회사측은 처음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자 사과를 하고 유족과 대화를 하려는 시늉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고 책임자 정몽원 회장은 사과하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표이사 등이 카메라와 함께 나타나 유족이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공장 내 작업을 다시 가동했습니다. 회사가 김승모 노동자의 죽음의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한 현장 정보 공개도 하지 않아, 유족은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회사와 싸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김승모 청년의 유족들은 사측과 싸우고 있습니다. 고 김승모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비정규직이고, 노동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그 둘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아들의 죽음으로 알게 되었다. ‘투쟁!’이라는 말을 외쳐본 적이 없는 내가 투쟁!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구나. 이 싸움은 유가족이 나서야겠구나. 우리의 요구가 받아 들여질 때까지 여기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고 김승모는 싸늘한 시신으로 차가운 안치실에 남아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향소가 쓸쓸하지 않도록, 유족에게 위로와 힘을 주기 위한 조문 행렬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비정규직 철폐로!
2026. 9. 1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참조 <사파동행> 27호 노동현장 소식
HL만도 평택공장 고 김승모 중대재해사망 항의투쟁
https://sapafund.org/?p=141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