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2월9일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고 김주익 20주기 추모상영회와 강연”을 “김주익 고공농성이 남긴 것: “2003년 노동, 2023년을 묻다”라는 제하에 열었습니다.

추모영상회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노조가 2002년부터 시작한 정리해고 인원조정 반대투쟁, 2003년 7월22일 전면파업 돌입과 함께 김주익 지회장의 85호 크레인 고공투쟁, 128일의 투쟁끝에 129일째인 10월17일 크레인위에서의 죽음, 그리고 이후 이어진 투쟁과 결말까지를 다룬 동영상 1시간을 함께 봤습니다. 그리고 이어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의 “2003년 노동, 2023년을 묻다” 강연을 듣고 토론했습니다.

모인 청중은 참 적었습니다. 울적할 정도로 적었습니다. 당일 많은 큰 집회가 있었지만, 하필 고 김주익 추모상영회는 그런 집회들이 열리기 훨씬 전에 잡은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집회 탓일까 싶습니다. 권 대표는 억지로라도 즐겁고 유쾌하고 싶은 심성들, 집회 시위까지 깃든 그 심성들을 이해하지 못할바 아니지만, 현실이 비통하면 비통한대로 함께 하고, 그 의미를 잘근잘근 되새김하는 이런 자리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2003년 10월17일 35미터 크레인 상공에서 김주익이 죽고, 10월30일 곽재규가 회사가 강제로 배를 진수하여 텅빈 도크 11미터 아래로 몸을 던져 죽고, 29일이나 그 찬바닥에서 누워있는 동안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아마 더욱 혀를 깨물고 싸웠을 것입니다. 동지를 지키지 못한 죄, 지도부를 엄호하지 못한 죄, 그리고 그를 외로이 홀로 결단하고 죽게 만든 죄. 그 죄책감들이 휘감고 있는 현장이 다큐멘터리 후반부 곳곳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보는 것도 힘들죠. 현장에선 더 힘들었겠죠. 하지만 그게 노동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작지만 강한 행사”였습니다. 상영동안 사이사이 훌쩍임도 있었습니다. 사파기금이 7월17일 시작하고 8월11일 사회적으로 조성한 첫 파업기금 2천만원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투쟁위에 전달했고 10월24일 고김주익 8주기 추모상영회를 열었더랬습니다. 그 날은 희망버스 기운인지 100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울음바다가 되었죠.

권영숙 대표는 하나하나 짚었습니다. 2023년 현재로부터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고공농성으로, 2011년 김진숙 농성에서 2003년 김주익이 같은 크레인위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1991년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안기부 연행후 의문사로. 권대표는 단지 한진중으로 좁히지 않고 김주익이 죽은 다음해인 2004년 현대중공업 비정규노동자 박일수가 회사안에서 분신자살하고, 또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된 다음날엔 현대중노조 집행부였던 최강서가 목매 죽은 과정을 짚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앞으로 나아가 1987년 8월22일 거제도 대우조선에선 이석규가 가두시위중 최루탄에 심장을 맞아 사망한 일까지 연결하여 질문했습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현재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일까요? 권대표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임을, 필연적임을, 그리고 체제의 살인임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87년 이후 노동배제적 민주주의가 만든 죽음입니다. 김주익이 죽은 2003년 10월에 대통령은 노무현이었고, 그는 ‘노동귀족’론을 말하면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기가 지났다”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런 그를 문재인 정권 들어 김진숙 지도위원은 “옛동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문재인도 노무현도 한번도 노동계급의 동지였던 적은 없습니다. 노동운동이 자유주의 정치로부터 자신들 스스로 선긋기를 하지 못하는 한, 이런 죽음들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점에서 이들 죽음은 또한 1987년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고립 속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그 점이 가장 아리는 지점입니다. 김주익이 9월 9일 첫 유서를 쓰고.10월4일 두번째 유서를 쓰고, 13일이 지난 17일 자결했습니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기다렸을까요? “그가 기다린 것은, 그와 함께 할 동지였고, 그와 함께 싸워줄 노동계급 대오였고, 그들과 함께 나아갈 연대자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소수의 동료들뿐이었고, 그는 절망했고, 그 절망은 그의 죽음을 불렀다. ” 권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2011년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했습니다. 4차 희망버스는 최대인원 18000명이 향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그들중 절반 이상은 당시 이명박정권에 대한 반감, 반정부투쟁의 일환으로 희망버스를 탄 자유주의적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노동계급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더라면, 한국 민주주의는 좀더 왼쪽으로 그리고 노동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로 나갔을까요? 이후의 최강서, 이운남, 그리고 김용균, 양해동등의 죽음은 일어났을까요? 질문입니다.

금속노조 참가자가 말했듯이, 노조법 2,3조 개정안 투쟁을 2년째 벌이면서, 올해는 김주익의 이름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짚어보는 토론회와 영상 상영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금속노조 주관이 아닌 이 행사 앞에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다시 자신에게 물어야합니다. 고 김주익은 지금 누구의 가슴 속에서 사무치게 살아있는지.

2023.12.1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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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지원을 알립니다. 이번에는 플랫폼 물류회사 쿠팡에서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하루 파업을 감행한 ‘전국물류센터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금액은 5백만원입니다.

쿠팡 노동자들은 물류센터, 배송, 그리고 택배 등에서 일합니다. 이중 물류센터는 쿠팡풀필먼트(fullfillment)라는 묘한 이름의 쿠팡 자회사에 소속돼있습니다. 그리고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은 다시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일용직까지 위는 좁고 아래는 퍼진 피라밋 구조안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쿠팡을 이런 노동의 피라밋구조로 보지 않습니다. 쿠팡은 ‘전자상거래’로 주문하고 이른바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속도전 배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가 택배에서도 구현됐습니다. 이것으로 쿠팡은 전세계적인 도약을 꿈꿨고, 급기야 뉴욕 월스트리트에 상장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쿠팡이 전세계 자본가들의 전시장인 뉴욕증시에 상장을 감행할 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흑자전환보다는 열악한 노동조건이었습니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자 처우는 자본의 논리가 판치고 ‘시장의 원리’가 유일한 경영 기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좀 저어됐나봅니다. 하지만 쿠팡은 상장에 성공했고, 최대 주주 김범석은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이 돈방석에 누가 앉혔을까요? 로켓이?

쿠팡이 인터넷 플랫폼과 로켓배송이라는 빠른 배송을 자랑하지만 정작 쿠팡의 주문부터 배송까지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땀흘리는 노동자들입니다.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전국 곳곳에 거대한 ‘물류센터들’들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단지 물류창고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물품을 쌓고 분류하고 택배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과정을 진행하는 ‘노동과정’의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여전히 창고일뿐이라는듯, 그 안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때문에 쓰러지고, 겨울에는 추위로인한 저체온증 동상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졌을 때는 전염병에 무차별젹으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적인 K-디지털자본주의하에서 플랫폼노동의 실체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쿠팡 물류센터는 ‘물류창고’가 아닌 노동자의 일터, 노동과정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의 힘든 노동조합 창립 과정을 거쳐, 8월 1일 노조원들은 ‘하루 파업’을 감행했습니다. 비록 전면적인 공장내 파업은 아니지만, 폭염노동 철폐를 내걸고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을 외친 노조의 목소리에 동조한 노동자들이 당일 근무 거부라는 형태로 동참했습니다. 이제 출발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상징적인 첫 파업을 했습니다.

7월 26일 인턴4센터앞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8월 1일 첫 파업을 결행한 쿠팡물류지회가 앞으로 이 기세를 몰아서 더욱 약진하길 바라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5백만원을 지원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자 투쟁이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 아닌, 파업투쟁에 대한 파업기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조와 노동자들의 파업 건투를 빕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파기금의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 활동에도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3년 8월 10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 연대 참여방법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https://bit.ly/3D04xK2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돈이 모이는 대로 사회적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칙하에 노동현장에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정투위 지원을 시작으로, 쌍용차노조 2회, 재능교육노조, 코오롱정투위, 콜트콜텍노조 3회, 희망뚜벅이, 포레시아노조, 노동자공투단, 방한품연대, 전북고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3회, 전국해고자의 날(전해투), 보워터코리아노조,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 골든브릿지증권노조 3회, 유성기업노조 2회,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 2회, 진흥고속노조, 기륭전자노조, 발레오만도노조, 보건복지정보개발원노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희망연대 티브로드노조, 씨엔엠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노조 3회, 울산과학대노조, 오체투지노동자행진, 침낭연대 2회, SK브로드밴드노조, LG 유플러스노조, 부산택시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2회, 아사히사내하청노조, 한국지엠군산지회, 청주시노인병원노조 2회, 동양시멘트비정규지회 2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비정규노동자의집(꿀잠) 추진위원회, 하이디스노조, 의료연대경북대병원주차관리노조, 갑을오토텍지회, KEC노조 2회, 노동탄압민생파탄박근혜정권퇴진을위한공동투쟁 3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2회,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 파인텍지회(구 스타케미칼), 레이테크코리아노조, 춘천환경사업소노조 2회, 공공운수 택시지부 2회, ‘사드철회평화회의'(소성리종합상황실), 민주일반노조연맹(톨게이트노조) 2회, 전국농성장 방한품연대, 비정규직긴급행동, 활동가지원기금 2회, 코로나19마스크연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노조,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 비전향장기수 ‘만남의집’,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비정규직이제그만에 지원했습니다(5백만원이상 고액기준).

노동조합의 의미도, 사회적 연대의 의미도, 파업기금의 의미도 깨달았던 소중한 기회, 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오늘부터 1일”

2022년 6월2일 대우조선내 8군데 거점을 점거하면서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대우조선에서 사내하청노조의 첫 전면파업이었다.
파업권을 획득한 하청업체의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1~20명씩 조를 짜 8곳의 거점을 마련하고 24시간 거점을 사수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없이 현장 파업을 응원하거나 암묵적인 동참까지 이어지면서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단결은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대우조선 원청자본은 사내하청노조의 파업 일주일만에 구사대를 동원하는 등 노골적인 파업파괴 행동을 감행했다.

조합원들중에서는 수년간 투쟁의 경험을 통해 경험한대로 또다시 정규직들이 원청 관리자와 함께 우리 투쟁을 막아서는구나라는 실망감과 함께 갈수록 심각해지는 구사대의 폭력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면서 포기하는 조합원도 생겨났다. 그 과정 속에서 조합원들의 부상이 속출하였고 우리의 파업이 노노갈등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8곳 거점투쟁을 정리하고 1도크 블록을 점거하는 투쟁으로 전술을 변경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대우지회 집행부 또한, 파업기간 동안 일부 어용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역할을 해주었지만 1도크를 점거하는 투쟁으로 파업 거점이 옮겨지자 더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고 우리의 파업 중단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거제도 옥포만 대우조선에서 외롭게 진행되었던 거통고의 파업과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전국에 알려졌고 각계 각층의 연대가 시작되었다. 각계각층의 연대는 이제 갓 조합원이 되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파업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더 깊게 깨닫게 만들었다. 구사대들의 폭력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으로 개개인이 느꼈을 불안감은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수많은 연대의 모습과 소식은 동지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며 파업대오를 더욱 강고히 지킬 수 있는 힘으로 바뀌었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는 그동안 현장 안에서 여러차례 투쟁을 해왔지만 이같은 연대의 힘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파업 참가자 각자가 느끼는 바가 남달랐고 우리만이 아닌 많은 이들이 이 투쟁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노동조합이 갖는 의미 또한 내부적으로 변하기 시작였다. 하청노동자도 노동조합을 굳건하게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다. 조선소 안에서 하청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조합을 하겠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조차 외면당해온 하청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외쳤다. “이대로 살 수 없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

시간이 흐를수록 대우조선 원청과 구사대들은 더욱더 거침없이 폭력을 자행했고, 대우조선지회는 대의원들의 요구로 조직변경 총회까지 열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하청지회 조합원들은 대우지회가 민주금속의 길을 지켜주길 바랬고, 동시에 우리의 투쟁으로 대우지회가 위기에 직면하는것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이 마음 때문에, 우리의 최종 거점인 도크게이트에서 대우지회 상집들이 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팅 시위를 보면서도 파업 참가자 단 한 명도 문제제기하지 않고 대우지회가 힘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만 있기도 했었다. 강고한 파업이 이어지자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도크게이트에서 농성하던 7명의 결사대 동지는 물론 지키고 있던 동지들도 공권력이 투입되면 바로 바다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으로 보이면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고 파업 지도부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한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합의를 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2022년 7월 22일 조합원 총회를 통해 우리는 사측과 합의를 했다. 1도크 거점을 풀며 파업을 일단락지었다. 전술을 바꿨을 뿐 “우리의 투쟁은 오늘부터 1일”이라 외치며 다음 날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온 동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그 후 부족한 합의 내용으로 인한 문제점들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는 합의를 하고도 또 다시 힘든 투쟁들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연장선에서 투쟁 중이다.

51일 파업기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부지회장으로서 현장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현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나는 파업이 끝나고 난 후에야 연대해 주었던 많은 분들을 만나보기 시작했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만나게 되었다.

10000 x 10000 기금 모금으로 투쟁하는 동지들이 파업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이 해소되는 걸 직접 보고 느낀 나로서는, 사파기금이 갖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주저없이 사파기금 정기이체를 신청하여 사파기금의 연대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파기금과 같이 연대자들이 아닌 금속노조가 조합비 외에 파업기금을 공개적으로 모은다면 우리의 투쟁 양상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그 모습을 보는 자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생계를 이유로 투쟁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줄어들면 어떨까? 이런 고민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 또한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표방한 사파기금이었다. 파업기금이 파업에 중요하다는 것을 사파기금이 알려주었다.

현실적으로 아직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건 해고를 예상해야 하고 저임금의 굴레안에 있는 노동자가 투쟁을 한다는건 생활고를 예상해야 한다. 그 때문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항보다는 적당한 타협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별의 굴레속에서 사는 것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열악한 현실을 감당해 나가며 투쟁하는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사파기금은 이런 현실을 뚫고 나가는데에 있어 그 역할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더욱 더 많은 연대자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화물연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총파업으로 정치에 책임을 물을 터”

대담: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3년 5월 3일 사파기금 사무실

2022년 화물연대는 11월24일부터 12월9일까지 16일간 전국 파업을 감행했다. 윤석열 정권이 노조탄압을 공식적인 노동정책으로 천명하고 온갖 흑색선전, 공권력 투입 협박등으로 몰아붙이면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이 끝난 후 연이어 터진 파업이었다. 화물연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한달내에 첫 파업을 감행했던 노조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은 민주노총 내에서 싸울 의지가 있고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화물연대노조 파업 다음으로 집중탄압의 표적이 된 건설노조에서 지난 5월 1일 메이 데이에 양회동 노동자가 분신 자결했다. 정권과 자본에 맞서 싸울 의지가 있는 노조들이 함께 뭉치길 바란다. 화물연대 노조가 윤석열 정권에게 노동자답게 하는 ‘제대로 된 복수’는 새로운 총파업일 것이다.
이 대담은 양회동의 분신 이틀 후인 5월3일 진행하였다. 대담은 화물연대 파업의 전과정에 대한 복기와 함께 일몰제 논쟁을 넘어서 품목 제한 완전철폐, 완전한 노동자성 쟁취등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호칭은 각각 대담자 권영숙 대표는 “권”, 이봉주 위원장은 “이”라고 줄여 사용하기로 한다)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이하 권): 먼저 3월 25일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에서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축사가 무거워서 이 요청에 어떻게 부응할까 생각도 했는데 차차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작년 12월 파업종료 이후 시간이 꽤 지났고 파업기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면 진행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도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연대자들에게 알리면서 함께 할 기회일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 몇 달 지나서 그때 16일간의 파업, 파업 전후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현 정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업은 윤석열 정권의 역공으로 더 가열되어 진행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시 찍고 가야 할 지점과 짚어봐야할 화물업종 관련 쟁점들도 있다고 보고요. 해서 이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토론의 적기일 수도 있다 싶습니다. 이 인터뷰는 평이한 인터뷰라기보다는 저와 하는 직격 인터뷰 혹은 대담처럼 생각하시고 저도 쟁점을 끌어내기 위해 이야기를 좀 직접적으로 하겠습니다. 멈추지 마시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바를 조금 더 끌어내서 말씀해 주시면 더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이하 이): 네. 좋습니다. 연구소 창립 다시 축하합니다.

: 어제 아니 벌써 이틀전이네요, 5월 1일 메이 데이 세계노동절 현장에서 건설노동자의 분신 소식을 들으면서, 그리고 집회장에서 잠시 뵙기도 했지만, 복잡한 심경을 서로 나누기도 했는데요. 작년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 속에서 파업을 감행했던 화물연대 위원장으로서 그날 현장에 있던 그 누구보다 더 착잡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의례적인 이야기는 빼고 먼저 이 질문을 드릴게요.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나요? 지금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노조에 정권의 탄압이 집중되고 있고 또 분신 소식을 들었는데요.

: 어떤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 내몰려져서 나온 행동,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내몰려 내쳐져 내린 결단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 정부가 그의 목숨을,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얼마나 억울했으면 목숨을 끊었을까. 그래서 동시에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투쟁을 좀더 힘있게 만들어가야 하지않나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요. 분신하신 동지가 진짜 억울하게 생각했던 거잖아요. 우리 노동자들이 그 노동자가 돌아가셔야 했던 억울함과 사연들을 풀어주는 것, 그래서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유서를 보면 쓰여있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건설노조가 돌아가신 분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단지 건설노조뿐만 아니라 전체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퇴진을 비롯한 모든 투쟁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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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이 2023년 3월25일 토요일 서초동 민변 건물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정세입니다. 지배세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한편, 그들이 체제의 한계를 무자비하고 교활하게 넘어서 새로운 지배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도 노골적인 전환기적 정세입니다. 누구는 고양기라고 하고 누구는 퇴조기라고 합니다. 정세 자체에 대한 해석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회변혁을 위한 주체의 구성과 성격에 대한 시각도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때에 좌파적인 관점의, 이론적 실천을 지향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하는 연구소의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을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몸과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이 씨가 되어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창립식을 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멋지게.진지하지만 즐겁게.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종회 노동당 공동대표,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전회장, 그리고 누가 뭐래도 2022년 노동자계급투쟁의 선봉이자 윤석열정부에 대한 노동자 반격의 포문을 연 양대 노조, 대우조선파업을 이끈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과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축사발언을 하셨습니다. 과분한 기대, 절실한 요구와 함께 이론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축하글을 보내주신 이들도 있습니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이자 전노협 마지막 위원장, 권옥자 청주노인병원분회장, 지율스님, 조성웅시인, 김호철 민중음악 작곡가,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전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위원장, 양희철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만남의 집)등입니다. 하나같이 경청하면서 앞으로 연구소가 나아가는데 새겨들어야할 말씀들입니다.

창립식 자리에 함께 한 이들에게 특히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연구자들과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건배사를 통해서 연구소에 바라는 말씀들을 해주셨고, 정세에 대한 무게있는 진단들도 함께 했습니다. 축하 공연을 멋지게 해준 최도은, 임정득 민중가수에게도 고맙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 <인터내셔날>로 발족식의 문을 열었습니다.

가장 큰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이들은, 연구소 제안과 창립식 준비에 처음부터 호응해주신 이들입니다. 이들이 이 날 행사를 만들었고, 앞으로 연구소를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이들입니다.

지금 현정세에서 절실한 목표는, 다른듯 같은 투쟁의 반복이 아닌, 투쟁을 모아서 하나의 반자본주의 전선을 형성하고, 파편화하여 종횡하는 각 부문들이 모여 하나의 주체, 동맹세력이 되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모순으로 가득찬 체제가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것을 접수할 주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는 사회변화와 변혁의 주체를 질문하고자 합니다. 그 주체와 정세의 동학을 풍부하게 이론화하고 연구를 실제의 투쟁과 변화를 위한 근거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기조발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시작일뿐입니다. 연구집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과 연구일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연구소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과 의미있는 참여와 뜨거운 후원을 기대합니다.

2023.3.29
권영숙 제안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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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서 노동연대운동에 함께 할 활동가를 찾습니다.

올해 발족 10주년을 맞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지금까지 해왔던 연대 활동과 앞으로 펼칠 새로운 일들을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며 끌어갈 상근 활동가를 구합니다.

그동안 노동자투쟁을 위한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운동, 사파동행과 작은희망버스등 전국적인 연대 집회 기획과 실천, 사파포럼, 민주주의와노동학교, 파업학교등 다양한 교육선전사업, 항시적인 투쟁현장 방문과 대외 연대등 다양한 일들을 해왔습니다.

노동자투쟁이 고립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운동이 되어야한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고, 상근 일꾼으로 나설 소중한 이를 찾고 있습니다.

자격조건은 딱 한가지입니다.
사파기금에서 노동연대, 나아가 사회적 연대의 구상을 함께 고민하고, 연대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할 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이들은 연락 바랍니다.

1. 활동형태 : 상근(40시간) 혹은 반상근(30시간)
– 위 활동형태중 택일 바람
– 3개월 인턴후에 서로 협의하여 최종 결정

2. 보수형태 : 유급 활동가직(인턴기간 보수 동일)

3. 지원방법:  [활동가 지원] 말머리 달고   sapafund@gmail.com (http://@sapafund@gmail.com/) 메일로 지원서류 제출.

4. 지원 서류: 이력서, 자기소개서, 연대활동 계획서, 추천서

5. 접수기간: 2021년 5월3일- 2021년 5월 20일

** 더불어  사파기금은 자원 일꾼들을 찾고 있습니다. 사파기금은 지금까지 자원일꾼들이 열정과 책임으로 일궈온 연대운동입니다. 필요한 기능 지원, 선전교육, 콘텐츠 제작, 대외연대에 함께 할 자원 활동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멜로 연락주십시오.

2021. 5. 3.
사회적파업연대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