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 15주년을 맞으며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2026)

–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

 

  1.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원과 성격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파업기금도 없이 싸우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지원갔던 희망버스의 서울 상경길에 동행들에게 제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파업기금’이라는 말조차 생소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반응은 좋았습니다. 1주일을 고민한 후에 2011년 7월19 일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장에 있는 “제안문”입니다. 아니 제안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파기금의 첫번째 특징입니다. 사파기금 초기에 꽤 자주 거론되던 “말이 씨가 되고 행동이 된다”는 모토는 이렇게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희망버스 도상에서 시작된 것이 사파기금입니다. 파업기금 없이 파업을 시작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라는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연대가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연대를 위해 “사회적 파업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바로 사파기금의 두번째 성격입니다.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기. 그것도 공공연한 조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 점에서 사파기금은 이전의 노동관련 기금들, 즉 노동연대기금, 상생기금과 다릅니다. 이 기금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은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봅니다. 또 2011년 비슷한 시기이 출범해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등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연대활동등을 목표로 해고 통지봉투의 색을 딴 ‘노란봉투’ 기금 캠페인을 펼친 ’손잡고’와도 다릅니다. 정리해고는 철폐해야하고 이를 위한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기금입니다. 누군가는 한국처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유명무실화되고 짓밟히는 사회에서, 어떻게 파업기금을 공공연히 사회적으로 모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름을 ‘희망기금’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파업기금입니다. 그래서 사파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서유럽에서 등장한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는 자본의’ 업’을 파하는, 즉 파업이라는 수단임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파업기금 (strike fund)를 모았습니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가 일정 기간 유지될 파업기금이 모이면 그들은 공장의 기계를 멈추고 공장 문을 뛰쳐나오거나 점거파업을 했습니다. 노조가 생기기 전의 일입니다. 노동조합보다 파업이 먼저였고, 파업기금이 먼저였습니다. 파업권은 노동자의 ‘권리’이기 이전에 무기였고 집합행위였습니다.

그 계급투쟁의 역사와 전통이 한국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니 워낙 파업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선 파업에 대비한 국가의 법과 제도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신생 민주노조들도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초기에는 없었습니다.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제가 제도적인 허점을 방비하기 위해서 나섰고, 가장 먼저 법원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법리밖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을 내리고, 국가와 정당들이 97년 노동법으로 법제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국가의 대응에 비해 조직화된 노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지 못하였습니다. ‘특별쟁의기금’이나, 노조 조합비중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비정기적으로 분배합니다. 과연 파업기금을 별도로 조성하지 않는 노동자부대가 파업을, 사회적 총파업을 감행할 수 있을까요? 파업기금은 노동계급이 자신을 파업하는 주체로 정립하는 자기 선언이자 주체적인 준비과정입니다. 파업은 ‘준비된 전술’이어야합니다. 해서 자본주의 초기 서유럽의 전투적 계급투쟁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주체로서 파업을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노조 조합비와 별도로 ‘파업기금’을 먼저 조성했음을 보여줍니다.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노조운동은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파업을 시작한 많은 노동자들이 ‘돈’앞에 굴복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의 제단’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파업기금의 부재는 형사상 손해배상과 민사상 가압류등의 패키지와 결합하여 급기야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완전히 유명무실화하는 기제로 공고화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의 모토이기도 한 “돈 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는 “손배가압류에 맞서는 사회적 파업기금”을 의미합니다, 손배가압류는 2000년대가 아니라 민주화 이행 이후 80년대 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초기에는 자본과 합의로 손배가압류를 피하였거나 노조 스스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제도적 방책과 준비의 부족 상태에서 비정규 노동자투쟁이 2000년대 초 시작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로 격심한 고통을 겪었고, 노동자들이 분신하거나 자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2015년을 즈음하여 노동부가 손배가압류 자료를 취합하고, 민주노총이 손배가압류 사업장 리스트를 작성하는등 사회적인 이슈화가 뒤늦게 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은 2011년 제안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손배가압류에 맞서기 위한 사회적 파업기금을 제안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파업기금의 조성은 준비된 파업을 향한 계획이며, 노동자투쟁은 준비된 파업일 때 승리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가질 수 있고, 이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와 결합할 때 더욱 강한 사회적인 투쟁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해야합니다.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이 된 2026년에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고, 아직 미완성의 도전적 과제입니다.

 

* 연도별 연보:
https://sapafund.org/?cat=350

2011년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시작하다
2012년 : “만원의 기적” 1만인 계좌 운동을 시작하다
2013년 : 노동이 말하다 ‘사파포럼’
2014년 : 새로운 현장 연대 ‘사파동행’
2015년 : 찾아가는 지역 연대 ‘사파의 작은 희망버스’
2016년 : 사파기금- 투쟁과 연대의 이중주, 기금 지원 9차
2017년 : 도약을 위한 보금자리 그리고 고공으로 쏘아올리다
2018년 : 치열한 전국 현장 연대 – 탄핵 퇴진 너머 노동자투쟁
2019년 : 노동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2020년 :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제안하고 조성하다
2021년: 새로운 사무실, 새로운 10주년을 준비
2022년 : 격월 소식지 <사파동행> 첫 발행하다
2023년 : 사파기금의 결실,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발
2024년 : “절망을 직시하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모읍시다”
2025년 : 계엄탄핵광장을 넘어 노동의 사회적연대를 향한 새로운 목소리

전문: 사파기금15주년_대표_기조발언_연대와투쟁의_굴곡과_진퇴의나날

자료집: 사파기금15주년 자료집_ 최종본_260727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발족 15주년을 맞아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 회고와 축하의 자리를 2026년 7월25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진지하고 다정하게 열었습니다.

발족 15년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소박하고 단순했습니다. 파업기금도 없이 싸우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가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서울 상경길에 나왔습니다. 당시 이를 제안한 현재의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는 1주일 고민후 7월 19일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사회적 파업기금을 조성하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면”이라는 글을 썼다고 합니다. 1장 남짓의 제안서가 오늘날 발족 15년이 된 단체의 출발이었습니다.

이후 사파기금은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좀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연대로 만들자는 생각을 바탕으로 ‘파업기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한 한국 민주노조운동에서 ‘사회적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모은다는 제안을 구체화했습니다. 손배가압류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되기 전입니다. 손배가압류에 맞서는 연대, ‘노동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 그리고 노동하는 이들의 수평적인 연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동맹을 만들어가는 ‘희망을 모읍시다’라는 모토를 제시했습니다.

2011년 7월22일 첫번째 사파기금이 입금됐습니다. 이 날을 발족일로 삼아 15년이 지났습니다. 사파기금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회적이고 주관적이고 준비되지 않은 사회적 연대를 벗어나,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고 객관적인, 그래서 ‘준비된 파업’을 위한 ‘준비된 연대’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미리 파업기금을 모은다는 행위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노동조합 결성이전에 노동의 시민권으로 긍정하는 운동이고, 파업을 노동자의 권리이전에 자본주의에 맞선 유일하고 강력한 집합행위로 만들어가는 연대라고 권영숙 대표는 기조발언에서 말합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의 지향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1) 단한번의 제대로 된 승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별투쟁과 전체투쟁의 관계를 어떻게 새로이 이을 것인가, 2) 투쟁과 운동의 괴리를 넘어서 어떻게 투쟁이 운동으로 되게 할 것인가, 3)투쟁과 연대의 괴리, 그리고 당사자주의와 연대자 주관주의를 넘어서 어떻게 사회적 연대가 사회정치적 동맹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3가지 딜레마가 놓여있다고 권대표는 말합니다. 단지 사파기금 15년뿐 아니라 “15년의 노동연대운동사 (2011- 2026)”에 대한 문제의식이었고, 이를 “연대와 투쟁의 굴곡과 진퇴의 시간들”로 서술했습니다.

1부 행사였던 ’25회 사파포럼’은 이 주제를 두고, 이재형 (삼표시멘트 노조),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 안준호(전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노조)등과 신유아 문화활동가가 이야기 손님으로 자신의 투쟁과 연대 경험을 나누면서 진행되었습니다. 사파기금을 처음 접한 계기는 대부분 스스로 투쟁을 시작했을때,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파기금이 접촉을 했고, 기금을 지원받았다고 했습니다. 단지 기금 지원뿐 아니라 투쟁과 연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투쟁에서 이길 것인가에 관한 전술과 목표에 대한 동지적인 논의와 교류가 사파연대의 핵심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2부는 자축연입니다. 사파기금 주최측과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서 15주년 떡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껐습니다. 권영숙 대표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모두가 돌아가면서 건배사와 한마디의 말을 나눴습니다. 흥미롭게도 1부의 이야기손님들 발언과 많이 중첩되었습니다. 모인 참석자들이 바로 투쟁 당사자였고, 연대 주체였기때문입니다. 사파기금 3주년, 5주년, 10주년보다는 확실히 조촐해졌습니다. 한 참석자의 말대로 지난 15년동안 공식적으로 5백만원- 2천만원 지원받은 91회의 사업장 단체의 대표 1인씩만 모여도 이 장소가 미어졌을 것이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기금지원 사업장 대표들에게 굳이 오래전의 연대 인연을 말하며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 바로 의미라고 봅니다. 여전히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행사를 후원하고 사파기금 조성에 좀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성들여 나눔잔치에 필요한 과일등을 준비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파기금 행사는 풍성하네요.

지나온 15년, 투쟁했던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은 그 투쟁과 연대의 경험을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이 투쟁의 경험이,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한, 미래의 연대를 위한 씨앗이 되어있을 겁니다. 나아가 투쟁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희망을 모으는 과정이길 바랍니다.

2026. 7.3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페이스북: 사파15주년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 회고와 축하의 자리 260727

사진: [사진자료][후기] 사파기금 15주년 기념 및 25회 사파포럼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_260725”

자료집: [자료집] 사파기금 15주년 기념 및 25회 사파포럼 “사파기금 15년, 연대운동 15년” 기조발언_260725

 

2024년 하반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조성 현황을 12월말 기준으로 공지합니다.

2024년 상반기에 비해서, 해지가 14건 늘었습니다만 신규 연대자의 참여로 축소 폭은 크지 않습니다.
(반면 기금 단체 재정 후원금은 약간 늘었습니다. 또한 2023년 3월 창립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의 정기이체 후원은 다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전망과실천> 구독신청과 동시에 연구소 후원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구체적인 내역은 페이스북 그룹에 공지합니다.

2024년의 하반기는 상반기에 이어서 위기는 곪아가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시간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의 신년사처럼 “낡은 것들은 사라지지만 새로운 것들은 아직 오직 않은 상태” 속에서 “수많은 병적인 징후들”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낡은 것들의 정점을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선포와 해제 파동이 찍었습니다.

불법 계엄 선포로 이 사회의 병적인 징후들이 곪아서 폭발했다면, 이후 탄핵이라는 법적인 절차는 병적인 징후를 해소하고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새로운 것들”이 출현하고 담아냈다고 하기에는, 낡은 것들의 불확실성이 노골적으로 교차하는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것들은 아직 오직 않은 상태” “에서 12월 21일 남태령의 연대시위는 새로웠습니다. 2030여성들이 주축이 된 ‘남태령의 연대자들’은 탄핵구호를 넘어서서 ‘다시 만난 세상’을 구체화하려는 연대의 흐름을 조금씩 일구고 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11년 7월 부산영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의 고공농성에 연대하는 ‘희망버스’ 도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화됐던 시기입니다. 사파기금은 노동의 사회적연대가 한진중공업에 대한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연대를 넘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며 모든 노동자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운동으로 발전하자는 제안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2024년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운 ‘사회연대’를 경험하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남태령의 사회적 연대가, 노동의 사회적 연대로 접속되고 있습니다. 그 접속이 일회적이고 사건적으로 남지 않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노동연대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1만인, 1만원, 1만 계좌 만들기‘는 사회적 파업과 사회적 연대가 만나는 기회이며, 사회적 연대의 최소한의 직접행동이며, 이 땅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노동의 시민권으로 긍정하는 운동입니다.
더 많은 사회적 파업에, 더 많은 사회적 연대로 엄호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연대”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5. 2. 06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참여 방법:
https://sapafund.org/?p=1716
bit.ly/사파기금연대
bit.ly/기금단체후원
bit.ly/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사파연대] 이주노조 후원주점 연대 240629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6월 29일 서울 남영동 슘에서 열린 이주노조 (MTU) 재정확보 후원주점에 함께 했습니다. 사파기금의 권영숙 대표가 길잡이가 되어 진행하는 세계노동운동사 학습모임의 성원들 일부가 함께 했지요.
장마가 서울로 북상하는 6월말의 끝자락, 행사가 많은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이주노조주점이 썰렁할까 걱정되어 여기로 가기로 했습니다만.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이주노조 노동자들의 준비된 태세와 연대의지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이주노조의 2003-4년 투쟁을 그린 비디오 상연 장면을 하나 찍었습니다. 당시 가두시위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구호인 “하지 마라, 하지 마라!”가 인상적이라고, 권대표는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저 구호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겠네요.
사파기금은 이주노조 후원 주점에 별도로 10만원의 주점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날 6월 28일 부산에서 열린 ‘서면시장번영회지회’의 생계‧투쟁기금마련 후원주점에는 후원금만 보냈습니다.
두 노조가 모두 건투하길 바랍니다.

2024.7.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파연대] 세종호텔노조 1박농성 아침출투연대 240626 & 노조지부장 연행면회 2406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6월 26일 세종호텔노조의 거리 농성장에서 1박 농성연대를 하고 27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호텔 앞 ‘아침 출투'(출근투쟁’) 선전피켓팅을 함께 했습니다.

6월말이지만 날씨는 이미 초하도 아닌 한여름의 30도 웃도는 기온을 기록하며 명동 번화한 도로변 텐트 농성장은 들어선 순간 열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후 8시이후의 밤 농성장은 낮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고진수 지부장과 함께 1박 텐트농성을 하고, 다음날 오전 8시 이치호 조합원과 함께 오전 1시간동안 피켓팅을 했습니다. 호텔 투숙 후 나오는 고객들에게 인사도 하고, 문도 가끔 잡아주면서요. 하룻밤 농성과 출투를 함께 하는 연대 일정에 참여는 언제든지 가능하니 노조 문을 두드려보시길.

그리고 지난 6월 12일 세종호텔노조는 이 호텔을 소유한 세종대학교 재단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세종대학교 학생 1천여명의 연서명 의견서를 받아뒀던 것을 드디어 세종대학교 총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사회에 전달하려고 했고 그게 형식상 맞으나 이사회는 장소를 바꿔가며, 비공개로 이사회를 진행하며 연서명 용지 ‘받기’를 거부해왔습니다.

노조는 6월 12일 의견서 전달을 위해 연대자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총장에게 대면 전달을 요청하며 학교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순간, 경찰력에 가로막혔고, 결국 고진수 지부장 등 3인이 연행됐습니다. 참가자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끝까지 해산하지 않고 집회를 열면서 의견서 전달과 연행자 석방을 요구했고, 기어코 의견서를 세종대학 부총장에게 직접 전달하였습니다.
사파기금은 권영숙 대표와 홍호석위원이 6월 14일 오전, 지부장 등이 연행 유치된 광진경찰서에 면회를 신청하며 대기했고, 면회시간인 오전 11시 30분경 풀려난 지부장 등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봐도 세종대학교 학생들의 연서명 의견서 전달을 가로막고, 공공시설인 대학교 내로 향했다는 이유로 연행한 행위에 대해 담당 검사도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하기엔 너무 ‘탈법적’이라 염치가 없었던가 봅니다.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단단해지고 더욱 사회적 공론을 확산하며, 한발 더 승리를 향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연대와 건투!

2024. 6.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세종호텔노조 1박농성 아침출투연대 (240626)와 노조지부장 연행면회(240614) 현장사진보기

 

[사파연대] 세종호텔노조 1박농성 아침출투연대 240626 & 노조지부장 연행면회 240614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6월 26일 세종호텔노조의 거리 농성장에서 1박 농성연대를 하고 27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호텔 앞 ‘아침 출투'(출근투쟁’) 선전피켓팅을 함께 했습니다.

세종호텔노조 1박농성 아침출투연대 (240626)와 노조지부장 연행면회(240614) 후기 전문읽기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12월9일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고 김주익 20주기 추모상영회와 강연”을 “김주익 고공농성이 남긴 것: “2003년 노동, 2023년을 묻다”라는 제하에 열었습니다.

추모영상회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노조가 2002년부터 시작한 정리해고 인원조정 반대투쟁, 2003년 7월22일 전면파업 돌입과 함께 김주익 지회장의 85호 크레인 고공투쟁, 128일의 투쟁끝에 129일째인 10월17일 크레인위에서의 죽음, 그리고 이후 이어진 투쟁과 결말까지를 다룬 동영상 1시간을 함께 봤습니다. 그리고 이어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의 “2003년 노동, 2023년을 묻다” 강연을 듣고 토론했습니다.

모인 청중은 참 적었습니다. 울적할 정도로 적었습니다. 당일 많은 큰 집회가 있었지만, 하필 고 김주익 추모상영회는 그런 집회들이 열리기 훨씬 전에 잡은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집회 탓일까 싶습니다. 권 대표는 억지로라도 즐겁고 유쾌하고 싶은 심성들, 집회 시위까지 깃든 그 심성들을 이해하지 못할바 아니지만, 현실이 비통하면 비통한대로 함께 하고, 그 의미를 잘근잘근 되새김하는 이런 자리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2003년 10월17일 35미터 크레인 상공에서 김주익이 죽고, 10월30일 곽재규가 회사가 강제로 배를 진수하여 텅빈 도크 11미터 아래로 몸을 던져 죽고, 29일이나 그 찬바닥에서 누워있는 동안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아마 더욱 혀를 깨물고 싸웠을 것입니다. 동지를 지키지 못한 죄, 지도부를 엄호하지 못한 죄, 그리고 그를 외로이 홀로 결단하고 죽게 만든 죄. 그 죄책감들이 휘감고 있는 현장이 다큐멘터리 후반부 곳곳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보는 것도 힘들죠. 현장에선 더 힘들었겠죠. 하지만 그게 노동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작지만 강한 행사”였습니다. 상영동안 사이사이 훌쩍임도 있었습니다. 사파기금이 7월17일 시작하고 8월11일 사회적으로 조성한 첫 파업기금 2천만원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투쟁위에 전달했고 10월24일 고김주익 8주기 추모상영회를 열었더랬습니다. 그 날은 희망버스 기운인지 100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울음바다가 되었죠.

권영숙 대표는 하나하나 짚었습니다. 2023년 현재로부터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고공농성으로, 2011년 김진숙 농성에서 2003년 김주익이 같은 크레인위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1991년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안기부 연행후 의문사로. 권대표는 단지 한진중으로 좁히지 않고 김주익이 죽은 다음해인 2004년 현대중공업 비정규노동자 박일수가 회사안에서 분신자살하고, 또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된 다음날엔 현대중노조 집행부였던 최강서가 목매 죽은 과정을 짚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앞으로 나아가 1987년 8월22일 거제도 대우조선에선 이석규가 가두시위중 최루탄에 심장을 맞아 사망한 일까지 연결하여 질문했습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현재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일까요? 권대표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임을, 필연적임을, 그리고 체제의 살인임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87년 이후 노동배제적 민주주의가 만든 죽음입니다. 김주익이 죽은 2003년 10월에 대통령은 노무현이었고, 그는 ‘노동귀족’론을 말하면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기가 지났다”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런 그를 문재인 정권 들어 김진숙 지도위원은 “옛동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문재인도 노무현도 한번도 노동계급의 동지였던 적은 없습니다. 노동운동이 자유주의 정치로부터 자신들 스스로 선긋기를 하지 못하는 한, 이런 죽음들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점에서 이들 죽음은 또한 1987년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고립 속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그 점이 가장 아리는 지점입니다. 김주익이 9월 9일 첫 유서를 쓰고.10월4일 두번째 유서를 쓰고, 13일이 지난 17일 자결했습니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기다렸을까요? “그가 기다린 것은, 그와 함께 할 동지였고, 그와 함께 싸워줄 노동계급 대오였고, 그들과 함께 나아갈 연대자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소수의 동료들뿐이었고, 그는 절망했고, 그 절망은 그의 죽음을 불렀다. ” 권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2011년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했습니다. 4차 희망버스는 최대인원 18000명이 향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그들중 절반 이상은 당시 이명박정권에 대한 반감, 반정부투쟁의 일환으로 희망버스를 탄 자유주의적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노동계급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더라면, 한국 민주주의는 좀더 왼쪽으로 그리고 노동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로 나갔을까요? 이후의 최강서, 이운남, 그리고 김용균, 양해동등의 죽음은 일어났을까요? 질문입니다.

금속노조 참가자가 말했듯이, 노조법 2,3조 개정안 투쟁을 2년째 벌이면서, 올해는 김주익의 이름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짚어보는 토론회와 영상 상영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금속노조 주관이 아닌 이 행사 앞에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다시 자신에게 물어야합니다. 고 김주익은 지금 누구의 가슴 속에서 사무치게 살아있는지.

2023.12.1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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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지원을 알립니다. 이번에는 플랫폼 물류회사 쿠팡에서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하루 파업을 감행한 ‘전국물류센터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금액은 5백만원입니다.

쿠팡 노동자들은 물류센터, 배송, 그리고 택배 등에서 일합니다. 이중 물류센터는 쿠팡풀필먼트(fullfillment)라는 묘한 이름의 쿠팡 자회사에 소속돼있습니다. 그리고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은 다시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일용직까지 위는 좁고 아래는 퍼진 피라밋 구조안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쿠팡을 이런 노동의 피라밋구조로 보지 않습니다. 쿠팡은 ‘전자상거래’로 주문하고 이른바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속도전 배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가 택배에서도 구현됐습니다. 이것으로 쿠팡은 전세계적인 도약을 꿈꿨고, 급기야 뉴욕 월스트리트에 상장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쿠팡이 전세계 자본가들의 전시장인 뉴욕증시에 상장을 감행할 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흑자전환보다는 열악한 노동조건이었습니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자 처우는 자본의 논리가 판치고 ‘시장의 원리’가 유일한 경영 기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좀 저어됐나봅니다. 하지만 쿠팡은 상장에 성공했고, 최대 주주 김범석은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이 돈방석에 누가 앉혔을까요? 로켓이?

쿠팡이 인터넷 플랫폼과 로켓배송이라는 빠른 배송을 자랑하지만 정작 쿠팡의 주문부터 배송까지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땀흘리는 노동자들입니다.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전국 곳곳에 거대한 ‘물류센터들’들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단지 물류창고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물품을 쌓고 분류하고 택배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과정을 진행하는 ‘노동과정’의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여전히 창고일뿐이라는듯, 그 안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때문에 쓰러지고, 겨울에는 추위로인한 저체온증 동상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졌을 때는 전염병에 무차별젹으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적인 K-디지털자본주의하에서 플랫폼노동의 실체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쿠팡 물류센터는 ‘물류창고’가 아닌 노동자의 일터, 노동과정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의 힘든 노동조합 창립 과정을 거쳐, 8월 1일 노조원들은 ‘하루 파업’을 감행했습니다. 비록 전면적인 공장내 파업은 아니지만, 폭염노동 철폐를 내걸고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을 외친 노조의 목소리에 동조한 노동자들이 당일 근무 거부라는 형태로 동참했습니다. 이제 출발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상징적인 첫 파업을 했습니다.

7월 26일 인턴4센터앞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8월 1일 첫 파업을 결행한 쿠팡물류지회가 앞으로 이 기세를 몰아서 더욱 약진하길 바라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5백만원을 지원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자 투쟁이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 아닌, 파업투쟁에 대한 파업기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조와 노동자들의 파업 건투를 빕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파기금의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 활동에도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3년 8월 10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 연대 참여방법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https://bit.ly/3D04xK2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돈이 모이는 대로 사회적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칙하에 노동현장에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정투위 지원을 시작으로, 쌍용차노조 2회, 재능교육노조, 코오롱정투위, 콜트콜텍노조 3회, 희망뚜벅이, 포레시아노조, 노동자공투단, 방한품연대, 전북고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3회, 전국해고자의 날(전해투), 보워터코리아노조,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 골든브릿지증권노조 3회, 유성기업노조 2회,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 2회, 진흥고속노조, 기륭전자노조, 발레오만도노조, 보건복지정보개발원노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희망연대 티브로드노조, 씨엔엠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노조 3회, 울산과학대노조, 오체투지노동자행진, 침낭연대 2회, SK브로드밴드노조, LG 유플러스노조, 부산택시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2회, 아사히사내하청노조, 한국지엠군산지회, 청주시노인병원노조 2회, 동양시멘트비정규지회 2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비정규노동자의집(꿀잠) 추진위원회, 하이디스노조, 의료연대경북대병원주차관리노조, 갑을오토텍지회, KEC노조 2회, 노동탄압민생파탄박근혜정권퇴진을위한공동투쟁 3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2회,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 파인텍지회(구 스타케미칼), 레이테크코리아노조, 춘천환경사업소노조 2회, 공공운수 택시지부 2회, ‘사드철회평화회의'(소성리종합상황실), 민주일반노조연맹(톨게이트노조) 2회, 전국농성장 방한품연대, 비정규직긴급행동, 활동가지원기금 2회, 코로나19마스크연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노조,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 비전향장기수 ‘만남의집’,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비정규직이제그만에 지원했습니다(5백만원이상 고액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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