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염병이 전지구를 덮치고 있는 가운데 맞이하는 130주년 노동절입니다. 메이데이의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코로나19로 생존의 벼랑끝에 몰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함께 하겠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돌고 있는 가운데, 해고, 무급휴직, 실업 대란이 노동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거세게 덮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 노동자의 절반인 1400만명이 고용보험에 가입돼있지 않고, 가입자중에서 900만명 이상이 휴업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진행될 해고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생계의 위협이 될 사회적 학살입니다.
재난지원생활비 지급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모든 해고의 전면적인 금지!를 강제해야합니다!
둘째, 휴업수당, 실업급여 혜택에서 배제된 모든 노동자들에게 휴업수당, 실업급여를 즉각 지급해야합니다!

5월1일 노동절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사파기금의 연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실천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1. 인증샷 찍어 보내주세요:
“전면적인 해고 금지”와 “모든 노동자에게 휴업수당, 실업급여 지급하라! 는 구호가 적힌 웹자보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서 사파기금에게 보내주세요. sapafund@gmail.com 혹은 사파폰으로 보내주세요.

2. 당일 행사 참여:
5월1일 “모든 해고금지”를 외치며 함께 해주십시오. 장소는 5월1일 오후 3시 30분 해고 강풍이 불고 있는 항공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대한항공빌딩앞입니다. 사파기금 깃발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코로나19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존중하면서 진행합니다. 하지만 행동해야합니다.
이후 노동절날 일정에도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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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요>코로나19 노동절 공동행동

1. 대회 명칭
– 모든 해고금지! 악소리도 못내는 비정규직 긴급행동
2. 일시 및 장소
– 2020년 5월 1(금)15시30분
– 서울 도심(요구별 마당 거점)
3. 요구별 마당(3개 거점)
1) 모든 해고 금지
– 장소: 서소문로 대한항공빌딩 앞(2호선 10번출구 방면)
2)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휴업수당, 실업수당 지급 / 노조할 권리를 모든 노동자에게 /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없는 동일 지원
– 장소: 시청광장
3) 재벌 사내유보금 1000조원 환수
– 보신각 옆 종로타워(삼성전자서비스)
4. 일정
– 15:30 각 요구별 마당 집결
– 15:30~16:30 마당별 진행
– 16:30~17:00 광화문으로 행진
– 17:00~17:30 광화문 전체 행동
– 17:30~18:30 청와대 행진

공동행동 포스터

4.15총선 전 열흘 동안 한국사회는 다량의 ‘국뽕’주사를 과다 투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언론들, 짜깁기 해외 소식들, 담론들, 입장들. 그리고 좌우 가릴 것 없이. 우파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까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처능력을 인정했다고 하고, 좌파쪽(?)에서도 그에 대해선 특별히 이견이 없다 했다. 그게 지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 박근혜 퇴진시위 때 자유주의세력이 중심으로 서고 좌우를 거느리는 지형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조국 사태로 찢어졌지만, 다시 코로나19 앞에서 봉합됐다.

한국 사회 전체는 국뽕에 젖어있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코로나19 대처를 두고, ‘국뽕’(흔히 국수주의를 세속적으로 이르는 말)에 젖어 있는 가운데, 과연 무엇이 결핍되고 지워져 있는가? 우리는 생각하고 정치화했어야 했다. 진보의 독자적인 입장이 있어야했다. 총선에도 다른 입장을 제출했어야 했다.

여기서 ‘국뽕’의 정의는 단지 국수주의적 애국주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뽕’이라고나 할까? 강한 국가주의까지 포함한 의미로 나는 썼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우익세력이 오히려 국가적인 노력과 국가의 강한 역할에 대해서 찬물을 끼얹고 비아냥거리고, 폄훼하였다. 자유주의 세력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에 대해 어떤 불편함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사민주의자들도 국가의 역할을 적극 지지하고 주장하는 국가주의자들이 되었다. 즉 국가의 더 많은 역할과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먼저 요청하기. 코로나19 확진자중 자가 격리 규칙을 어기는 자들, 신천지에 대해서 더 강하게 통제하라고 얘기하기. 왜 빨리 돈을 찍어서 어디라도 뿌려야하지 않냐고 말하기 등.

또한 전체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전략을 두고 이 모두가 한국의 ‘국가’가 한 일로 치부하는 일, 나아가서 현 집권정부가 다 한 일로 치부하는 일. 이런 강한 국가의 배경이 되었던 역사를 다 미화하는 일, 사회적인 격리와 감금에 대해서 있을 수밖에 없는 ‘부대적인 사상자’로 보는 듯한 태도까지. 이 모두가 ‘국뽕’과 관련되는 사회현상들이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닌가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이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터져 나왔다. 이 두 가지의 단발마적인 의문이 바로 촛불시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회 화두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 박근혜를 퇴진시키면서 그를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게 만든 적폐의 원흉이라고 지목했다. 과연 국가 실패의 원흉은 박근혜일까?

그리고 촛불 2년이 남짓 지난 지금, 한국은 갑자기 국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강한 국가, 잘난 국가, 전 세계에 모범이 되는 국가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다시 의문이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국가는 없었다”던 상황에서 이렇게 한순간에 강한 국가의 면모로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코로나19 대응을 보이는 국가가 되었을까?

나는 세월호 참극이 일어난 후에 ‘국가가 없었다!’라는 한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혹은 이 사회의 전체성을 덮고 있는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를 문제삼아야한다고 말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국가는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한국에 국가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만큼 ‘강한 국가’ 유형도 없기 때문에. 해서 “국가가 없었다”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화해야하는 것은 “과연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 국가 역시 무능한 국가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실패한 국가(the failed state)’, 국가가 국민에게 실패했다의 의미가 아닌, 국가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지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의 국가는 이 ‘실패한 국가’라는 테제에도 답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견해가 그렇다. 실패한 국가는 ‘정상국가(normal state)’가 되었고, 나아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비정상의 정상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국가인 한국의 국가. 그런데 과연 이런 반전에 근거는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국가주의, 국뽕이 넘쳐난다. 심지어 진보세력까지 국가의 부활, 그리고 국가의 강한 개입에 대해서 유보도 비판도 없이 찬사를 보낸다. 국가가 개입하여 신천지 등 교회들에 대해서 금지령을 내려야하고 엄중하게 법집행을 해야 하고.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돈을 찍어내야 하고,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재벌을 포함하여 재난지원금을 살포해야하고.

근데 말이다. 과연 재난 앞에서 국가는 그렇게 중립적인가? 그리고 과연 지금 이 국가는 국민을 구별 없이, 사회집단을 구별 없이 대하고 있는가? 지금 돈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장 많이 흘러가는가. 지금 공권력의 위세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은 하는가.

총선 앞에서 국가주의, 국뽕. 아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이 너무 잘하고 있고, 전 세계 국가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말들이 극에 달했다. 이 담론의 홍수가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선거전야였다. 선거는 연기할 수 없다면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치러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 공포는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강한 국가를 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노력은 집권세력의 공이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 과정은 국가, 그리고 나아가 현 정부가 잘한 ‘치적’으로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누가 코로나19 전선에서 일했는지, 이 사회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작동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과연 그들에게 이 모든 영웅적인 투쟁의 공이나 성과가 돌아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부는 그 과실을 챙길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넘었다. 1년 반만이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총선이 되었다. 과연 누가 전 지구적인 팬데믹이 만들어낸, 이 생명과 안전의 공포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역설이다. 6년 전 세월호 참극으로 이 사회는 안전사회 담론으로 이행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담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코로나19앞에서 ‘강한 국가’의 지지 배경이 되었다. 대통령도 코로나19와 세월호를 연결해서 발언한다. 우리는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라고.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와 자유주의 정치가 이긴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진보세력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좌파는 더욱 없다.

지금 코로나19 국면에서 고민의 한 지점은 이것이기도 하다. 계급적인 관점이 탈각된 국가주의와 안전사회담론이 결국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민총화’론으로 모든 것들의 구별선, 균열선, 분리와 배제의 선이 비가시화하고 있다. 지워지고 있다. 또다시 ‘눈먼 자들의 사회’다. 국가에 눈먼 사회. 세월호 참극의 정반대편에서.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0.04.17 15:40

참세상 기사
사파논평은 인터넷언론 <참세상>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매달 2회 정도 나갈 예정입니다.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상읽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근육을 함께 기르고 연대의식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어 주시고 알려주세요.

미국 민주당 대통령경선에 나선 무소속후보 버니 샌더스가 4월9일 결국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최대의 방역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말하는데 이에 빗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고 할 만하다.

이 말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내놓은 공식 논평에 있는 말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는 전국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톰 페레즈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거친 생각(a wild idea)을 더이상 퍼뜨리지 않는 것이 미국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미국인들은 결정했다”고 말했다.눈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었고 몇 번을 읽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발언인가.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혼돈과 무책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빈부 격차가 빚어낸 참극 속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말이다. 공공의료의 부재, 사적 의료보험체계, 국민 수명이 70년대 이후로 계속 낮아지고 유아 사망률이 갈수록 높아가는, 그래서 기이하게도 제3세계 빈곤국가들과 사회 지표가 유사해져가는 나라. 그 정점에서 지금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의 불행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코로나19앞에서 인민의 불행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미국은 사회주의가 필요한 국면이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그래서 자본주의의 선진국들, 유럽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지금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사회주의적 조처를 졸속 모방하고, 시장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국가의 힘과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예들이다.
미국은 지금 1950년 한국전쟁때 제정했지만 사문화됐다시피했던 ‘군수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을 발동해서, 민간기업에게 코로나19 관련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등 의료물품을 제조하게 하고, 국가가 강제로 징발하는 조처를 취했다. 심지어 이 법에 따라서 해외 다른 국가애서 수출하는 마스크까지 자국으로 빼돌리고 있다.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또 미국은 유동성 통화에 대해서 시장원칙과 상관없이 무제한의 양적 완화를 선언했다.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다고 하고 국민들에게 긴급한 재난기본수당을 준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주의와 기업 살리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거세게 덮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월10일 현재 16000명이 사망했는데 시카고, 뉴욕등에서 흑인 빈민지역의 코로나19 사망율이 치솟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하고, 코로나19 사망자로 분류되지도 않은채 스러질 것이다. 이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국등 전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1세계나 3세계나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가난한 무산자계급, 소수자, 무국적자들이야말로 코로나19앞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코로나19의 전지구적 판데믹 속에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모방한 중앙집권적 자원 동원과 배분체계를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부양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이 다가 아니다. 그냥 헬리콥터 머니 찍어내서 뿌리면 여하튼 경기가 좋아지니 전국민이 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것, 혹은 그중 얼마나 떡고물이라도 가난한 자들에게까지 미치겠지 하는게 아니라, 지금이 정말 전시경제에 준하는 재난경제 상황이라면 사회적 자원과 재원과 물자를 ‘사회주의적으로’, 사회전체의 평등의 방향에서 약자 우선으로 배당하고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등 자본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로부터 배운 조처는 재빨리 실행에 옮기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뜻은 “거친 생각(wild idea)”라면서 기각한다.

결국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을 온건하게라도 주장하고 실현하자고 했던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는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에 거리두기’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선포기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이 급진적인 정치적 사고에 “감염”되어서 다음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 체제를 일소하길 바란다.”

미국과 자본주의에게 더 무서운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회주의, 맞다.

2020. 4. 10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친지 3달째다. 긴급재난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일터는 가동율이 곤두박질치고,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고 무급 휴가를 강요당하고 임금이 자연삭감되고 있다. 소득이 줄고 있는 가운데 저축한 돈도 얼마 없는 사람들은 코로나19보다 생계난이 더 두렵다. 이들을 위한 ‘긴급 생활비’ 지원이 필요하다. 역병이 재난이라면 말이다.
근데 대통령이 취한다는 조치가 자기 임금 30% 줄이기다. 4개월동안 대통령과 장관들이 임금을 30% 삭감하고서 받겠다는 것이다.

일단 참으로 구태스럽다.
누구는 깎을 임금이라도 있어 좋겠다만 누구는 최저임금선 아래 받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임금 삭감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누가 적선해달랬나? 가난한 이들의 시민적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사회권’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국민을 나랏님이 궁휼히 여기사 시혜받는 백성처럼 대하련가.

그리고 행여 이 조처가 이후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 운운하며 임금 동결하고 삭감하고 장시간 노동시간을 유지하기위해 미리 하는 이른바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경총이 오늘 3일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기업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개선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 △지속가능 사회보장체계 확립 △선진 안전시스템 구축 △경영책임의 적정성 확보와 형벌 개선 등이다.

여하튼 그러니 당장 대통령과 행정부는 제대로 행정권력을 동원하여 행정적인 일을 하라. 행정적으로 실효성 있는 사회경제적 조처를 취하라. 그게 정치권력이 해야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흉내내는 쇼같은 일은 그만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모든 국민에게 정액 얼마를 지급하는 식의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해선 반대한다. 지금 재난기본소득을 청원하는 교수연구자들 연서명이 돌고 있다. 난 그 청원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장 첫머리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왜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으로 동일 액수의 긴급소득을 받아야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재난 앞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재난 불평등이 인간 참극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비상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재난의 계급성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최저임금선 이하의 노동자들, 자영업자중 하위 20% 소득을 대상으로 하여야한다.

그리고 이 지점 역시 중요한데 모든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생존기금을 지급하여야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배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이다.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이야말로 보편적이고 탈배제적이라고 하지만, 전지구적 전염병 앞에서 “국민”됨이라는 자격조건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배제적인가.

그러므로 지금 지급되어야하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

첫째, 생존유지가 버거운 하층 소득민에게 긴급한 구호기금으로서,

둘째,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건강할 권리를 가진 이들의 당연한 사회권으로서,

그리고 셋째 “국민”이라는 배제적인 보편기본소득이 아니라 이 땅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권이 위협에 처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생활비로서 주어져야한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기본소득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2020. 3.23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여기는 지금 서울대병원 고 문중원 영안실 4호.
추모제도 끝난 장례식장은 고요하다.
유족의 표정은 더 고요 착잡하다. 내일 발인을 준비하는 팀들만 피곤한 표정으로 열일, 인사, 약간의 휴식.
내일 노제후 그를 묻고나면, 이제 산 자들이 열사의 무게를 안고 가야 하리.
열사여 노동해방 세상을 빌어주소서.
_()_

3월 6일
내일입니다.
코로나19의 공포앞에 저항과 연대의 목소리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내일은 문중원 기수가 죽은지 100일 되는 날입니다.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단식중인
유족과 함께 해주세요.

http://bit.ly/희망차량행진
1. 참가차량 구글시트를 작성해 주세요.(이름, 차량번호, 소속등)
2. 희망차량인증샷을 찍어서 이곳이나 sns에 올려주세요.
3. 난생처음 희망차량행진 간단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어주세요.

3월 7일 희망차량행진 당일

지금 여기. 3.7 고문중원 죽음 100일 차량시위.
광화문에선 고문중원의 부인 오은주씨가 인도위에서 오는 차량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음은 그가 오늘 오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남편의 죽음을 견디는 힘은 우리 아이들 양가 부모님. 연대해준 분들. 나는 다시 살아가야 할 힘을 얻었다. 고맙다.
끝내 사과 한마디 없이 있는 정부. 촛불은 꺼졌다. 분노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투쟁으로 단련된 강한 엄마로 살 것이다.
남편은 유서에서 모든 이의 행복을 빌었다. 내 맘이 똑 같다.
겨울을 이긴 봄이 왔다.”

마사회와 합의서에는 어제 저녁 서명했지만, 마사회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은 계속 된다.
코로나19로 봉쇄해도 투쟁은 진화한다.희망뚜벅이에 이어서 희망차량행진이란 새로운 방법.
오후 1시 500대의 차량이 과천 부패의 산실 한국 마사회를 에워싸는 차량시위를 하고 서울로 상경중,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전총리 사무실은 희망뚜벅이들의 부부젤라 소음 시위.

오늘고문중원의 관은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 드디어 100일만에 거리의 운구차를 떠나 안치된다. 그리고 내일 오후 6시 추모제를 거쳐 월요일 발인을 거쳐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에 안장된다.
내일 추모제에 많이 참석하면 좋겠다.

– 글 : 권영숙 대표(Young-sook Kweon)

문재인 정권은 한국 마사회 기수로 비리에 항의하여 자결한 고 문중원 열사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못본체 방관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 100일을 앞둔 2월 27일 청와대 앞 유족의 108배를 막아서고, 급기야 분향소를 침탈하였습니다. 용역 1천명을 동원하고 그만한 수의 경찰이 보호한 가운데 종로서와 종로구청이 정권의 명대로 분향소 천막을 칼로 찢고, 항의하는 유족들을 끌어냈습니다. 막아서던 많은 사람들이 폭언과 폭행을 당했고,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고 문중원의 부인 오은주님이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상황은 변치 않았습니다. 청와대 앞 항의 기자회견을 막았고, 108배를 막아서면서 유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와대 바로 앞에서 경찰로부터 수모를 겪어야했습니다. 딱 박근혜 정권때의 청와대 앞 모습입니다. 결국 추모제는 다시 박근혜 정권때 멈춰야했던 바로 그곳 근처, 효자동 파출소 근처에서 열어야했습니다.

하루전 침탈로 모든 문화제용 물품들이 쓰레기가 됐고, 그들에게 빼았겼습니다. 사파기금이 2019년 겨울 방한품연대로 고 문중원 열사 대책위에 전한 무릎담요가 침탈중에 쓰레기 더미에 묻혀있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2월 28일에 무엇으로라도 연대하고 힘을 보태야했습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하여, 마치 계엄령처럼 정권과 자본에 대한 저항에 대해 봉쇄와 격리로 대하는 반동에 어떻게든 맞설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고 한명이라도 더 모여야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이 날 무릎담요를 다시 들쳐 메고 고문중원 열사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청와대 100미터 앞으로 갔습니다. 어제의 침탈, 오늘의 봉쇄. 문화제란 이름의 추모와 분노의 집회. 아직 냉한 날씨 빗속 하루종일 거리에서 힘들었을 유족과 연대자들을 위한 담요를 공수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유족들이 따뜻한 담요로 지난겨울 잘 버텼는데 또 가져와서 고맙다고 다가와 인사하셔서 더욱 송구하였습니다. 유족 한분은 문화제 내내 흐느끼며 우셨습니다.

권영숙 대표는 연대 발언에서, “단지 청와대 지척에서.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제복의 벽 너머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 김낙순 현 마사회 회장을 낙하산 임명했고, 그를 해임할 권한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을 최종적인 책임자로 직접 거론하고 문책해야한다”고 말하고, “코로나19와 경제위기 가운데, 이미 따놓은 당상 같았던 총선 승리가 위험에 빠지는 순간, 이 정권이 이성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바로 어제의 참담한 침탈이었다”고 말한 뒤, “총선에 대해서 헛된 기대를 하기보다 지금 단단히 준비하고 나아가는게 필요하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짧고도 바쁜 연대일정이었습니다. 오후 5시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무원 해고자들의 농성장에 방문하고 무릎담요와 마스크 약간을 전했습니다. 단식 10일차인 김은환 공무원 회복투 위원장은 안색이 매우 초췌했습니다. 3월 정기국회에서 해고자 복직을 위한 공무원특별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하지만 투쟁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민주화이후 민주주의가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싸웠다는 사실을 압니다. 해고 공무원의 복직뿐 아니라, 다시 해고당하지 않도록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동3권의 전면적인 쟁취를 위하여 이 투쟁이 가지는 의미를 더욱 사회화하여야할 때입니다.

사파기금이 2019년 방한품연대를 위해 마련한 1천장의 무릎담요를 다양한 현장 연대의 방식들- 사파동행과, 현장 방문, 집회 참석등으로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2019년 1-4차 연대,
그리고 2020년 새해 들어서
사파 방한품연대(5차)_톨게이트 단식농성장, 현대그린푸드 농성장 200118
https://www.facebook.com/media/set/?set=oa.3683366915014572&type=3
사파 방한품연대(6차)_전장연 및 톨게이트단식농성장 연대방문 200130
https://www.facebook.com/groups/sapafund/permalink/3720734277944502/
에 이어서
2월 28일 7차 공무원회복투, 고문중원열사침탈후 문화제까지 진행했습니다.
지난 겨울 사파기금은 방한품연대를 통해서 최선을 다해 연대했습니다.

이제 봄은 오겠지만,
노동의 봄은 여전히 요원하고,
사회적 연대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사파기금과 함께 노동의 사회적 연대에 동참해주십시오.
사회적파업을 위한 연대기금 CMS 신청하기: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바로 클릭)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2019년 겨울 방한품연대는 해가 바뀌어도 계속 됩니다.
어제 1월30일 오후 무릎담요 30장과 핫팩을 가지고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농성 3일째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농성단을 방문하고 담요를 전했습니다. 노동청에 참 자주 오네요. 이번엔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죽어야했던 고 설요한님의 죽음에 대한 항의 농성장입니다. 그의 죽음이 참으로 큰 무게를 가지고 있음에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로비는 냉기가 많이 서려 있어서 담요가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때 포근하고 따뜻해서 좋았다는 전언과 함께 사진들이 당도했습니다.
사파기금 무릎담요 연대는 봄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청와대앞 톨게이트 도명화, 유창근 두 지도부의 단식농성장으로 향했습니다. 단식 15일차. 그런데 단식 중단과 1월 31일 김천 농성해단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단식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서 가는 길이라 묘했습니다. 동조단식 첫날에 효소가 없다는 말에 그때부터 수배해서, 정말 귀한 9년된 민들레 효소와 8년된 조선된장을 준비해서 가져가고 있었거든요. 큰 텐트쪽에는 도명화 지부장 혼자 호젓하게 있었습니다. 곧 여러 사람들이 당도했고요.

조심스레 투쟁을 1차 끝내고 농성 해산하는 소감을 조합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묻자마자 무겁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한 마음이겠지요. 눈물도. 전 다시 이 투쟁이 해산으로 끝이 아니라는 사실만 명심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번 동조단식때 경찰과 대치하며 4시간 맞선 다음에도 그 얘기를 했던 것을 다시 말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다들 고개 끄덕이시고요. 도지부장은 강한 긍정의 표정을 짓고..
오늘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부탁은 그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잘 버티고, 결의를 잊지 말고, 공기업의 비정규직 철폐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추신: 여하튼 저와 홍호석 위원 둘만이 움직이느라, 그리고 전 톨게이트 농성장에 전달할 물건을 들고 있느라, 홍위원 고생 많았습니다.
투쟁하는 이들이, 연대운동 하는 이들의 고충도 상호적으로 헤아렸으면 합니다. 어떤 연대도 시간 남아돌아서, 편해서,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 아니거든요. ^^
모두가 함께
연대로 만나길!

2020. 1. 31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 글)

어제 1월 28일 서울 세종로광장 고 문중원 열사의 주검이 놓인 냉동차앞에서 진행된 추모제에 참석해서, 사파기금 대표로 마지막 연대발언을 했습니다. 그 발언 여기에 올려놓겠습니다.
*
‘더이상 죽이지마라!
2012년 12월 20일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노동자들의 지독한 절망이 죽음의 행렬로 터져나왔습니다.

12월 21일 한진중공업 최강서가 노조 사무실에서 자결했고, 그 다음날인 12월 22일 현대중공업 비정규 해고노동자 이운남이 아파트에서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인 25일 한국외국어대노조 이호일 지부장이 자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입니다. 2013년 오늘 1월 28일 기아차 비정규 해고노동자 윤주형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7월15일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지회 사무장 박정식까지 죽었습니다. 모두 노동권을 완전히 보장받지 못한 이 땅의 노동자들입니다.

그때 제사회단체 60여개단체는 12월 26일 “더이상 죽이지 마라! 노동현안 비상시국회의”라는 이름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박근혜 당선자 인수위원회 앞 투쟁등을 전개하였습니다. 전 그때 민교협 노동위원장으로 구성 초기부터 참여하고 해산까지 함께 했습니다. 시국회의는 발족선언에서 “열사들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일한 만큼 대접받을 권리, 두들겨 맞지 않고 노조활동 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했을 뿐”이라며 “대통령 선거 결과 이런 소박한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스스로 던졌다”고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박근혜 정부든 혹은 다른 정부든, 노동자들에게 선거후 집권하는 정부가 그 무엇을 보장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것만으로도 앞으로 올 미래가 절망적이었던 노동자들은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그들 앞에 강고한 자본의 벽, 국가의 벽, 그리고 너무도 멀고 취약한 조직노동의 사회적인 힘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죽이지마라! 노동현안 비상시국회의’는 투쟁하고 연대했지만 그이상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고 해산했습니다.

그리고 입만 열면 희망버스를 참칭하여 희망을 말했던 박근혜씨와 달리, 촛불로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후 들어선 문재인정부는 노동존중을 말했습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공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김용균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과연 막을 의지와 의사가 있었을까요?

김용균의 죽음이후 터져나온 공감과 문제제기앞에서 고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재해 관련 법이 만들어졌지만 그 법은 온갖 유보 조항을 담고있습니다. 김용균이 지금 살아있어도 보호받지 못할 입법을 두고 김용균법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기만입니다.

더 큰 기만은 그런 법을 만들고서 얼마 안돼 일본에 대해 자본을 대리한 경제전쟁을 벌이면서 그 핑계로 ‘산업기술보호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노동자의 산업재해 등을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업내 생산공정 정보를 ‘산업기술보호’라는 명목으로 덮어두는데 여야, 진보정당 할 것없이 통과시켰습니다. 국민경제, 경제 애국주의, 애국이냐 매국이냐라는 조국의 발언, 그 광풍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이 노동자의 노동시간, 노동자의 안전, 노동자의 이해입니다.

그 가운데 공기업인 한국 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 마사회의 문중원이 일곱번째 죽음을 택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때 시작된 마사회 기수들의 죽음이, 그 정부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또 문중원 기수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존중하겠다는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노동자들은 죽고 있습니다. 고 문중원은 그의 앞에 동료들의 죽음들을 보면서 절망했을 것입니다. 절망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절망의 반대가 희망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하겠지만. 절망의 반대는 연대입니다. 절망을 뚫는 것은 사회적 연대입니다. 우리의 연대가 강고하지 못해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죽음을 선택하게 합니다. 죽고서야 이렇게 뭉치고 만나고 싸우는 것 이제 그만 했으면 합니다.

고 문중원의 장례를 지내야합니다. 그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빨리 옮겨 봄이 오는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옮겼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이 투쟁은 끝나기 힘들 것입니다. 고 김용균, 고 문중원의 투쟁을 이어가야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우리가 감히 ‘열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자세일 것입니다.

자본앞에, 이권앞에 굴복하고 엄호하고 은폐하는 문재인 정부는 희망을 말할 자격도 없고 노동존중을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노동존중을 자본의 이해앞에서 헌신짝처럼 던진 자유주의 세력은 노동자의 대변인도 만인을 위한 정부도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 투쟁이 오늘의 죽음과 절망을 딛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희망을 쌓아갈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더이상 죽이지 마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함께 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투쟁!

2020. 1. 28 고문중원 열사 추모문화제 발언

경자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새해는 편하게 덕담을 하기엔 주변의 정세가 참으로 복잡다단합니다만, 비관속에서 낙관을 꿈꾸는 태도가 가장 필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연대자 여러분 부디 새해에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적 연대운동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때로 생면부지의 사람관계보다 못한 것이 바로 기금을 조성하고 전하는 연대자와 투쟁 당사자의 관계일 수 있습니다.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사회적 연대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활동입니다. 연대운동으로 하기에는 더 깊은 숙려와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이런 방식의 사회적 연대를 가볍게 보거나 불편하게 보기도 합니다. 더구나 투쟁과 연대에 대해서 당사자주의와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연대를 넘어서 하나의 동맹으로 모이자라고 제안한다면 그 지향은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이름은 그래서 처음부터 쉽지 않은 과제를 스스로 세운 셈입니다.

운동에 돈은 필요합니다. 당연합니다. 투쟁이 돈 없어서 죽기도 하고, 돈 없어서 무릎을 꿇기도 하고, 돈 없어 투쟁을 억울하게 포기합니다. 그러니 돈은 투쟁이기도 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라는 표어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처음에 사회적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모으자는 제안을 8년여전에 할 때의 소박한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동은 돈만으로 안됩니다. 아니 돈은 운동에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돈으로 돈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요. 돈으로 돈을, 자본을,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또 돈이 없어서 운동이 투쟁이 승리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런듯 보이지만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돈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자본과 국가가 ‘돈으로 하는 통제’를 통해서 노동의 손발을 묶을 때, 그들이 박살내는 것은 단지 파업기금 없이 투쟁하는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노동계급운동입니다. 자본이 돈으로 가하는 탄압을 금지하자는 운동이 지지부진한 것도 바로 노동의 목소리와 투쟁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대오와 구호를 통해서 사회적 총파업으로 노동세상을 앞당겨야합니다. 그 뜻이 바로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지난 8년간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 노동의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은 말이 씨가 되어 행동이 되고 실천이 된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계를 느끼고 깨닫기도 했습니다. 돈으로 돈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파업으로 돈을 무너뜨려야한다는 사실.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모아서, 하나의 사회적 ‘동맹’을 구축해야한다는 사실은 더욱 명확해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어쩌면 구멍난 독에 물붓기같은 것이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투쟁입니다. 연대자들은 주관적으로 자신들이 마음을 내고 싶을 때 연대하고, 노동자들은 투쟁후에 연대운동으로 다시 모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파기금이 발족한 지난 8년간 연대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투쟁이후 온전히 결집하고 하나의 대오로 결집할 수 있었다면 이미 큰 대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과에 많이 지쳤습니다. 지치고 실망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파기금이 힘을 내고자 합니다. 힘을 내서 나아가고자 합니다. 요청합니다. 함께 해왔던 이들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주십시오.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보던 이들은 한발 안으로 다가와주십시오. 기금을 지원받았던 노동자들은 파업기금을 환원해주십시오. 사파기금을 함께 키우고 조성해주십시오. 같이 가는 길이 지금 당장은 새로운 길은 아니지만, 함께 모색하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지속성을 고민합니다. 기금 지원후의 투쟁은 과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들을 품고자 합니다. 그 뜻으로 올해에는 원점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와 사회적 파업을 향하여.

노동해방을 향하여.

그 길에서 하나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건투하시고 건강하십시오!

연대로 만나겠습니다.

2020. 01. 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