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 지원을 알립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한 고 백기완선생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 서각구매에 함께합니다. 서각구매 대금으로 지원한 금액은 2백50만원입니다.

고 백기완 선생은 민족주의운동으로 시작하여 민중운동의 대열에서 복무하며 민주화이행이후 보수 양당 구조 속에서 ‘민중후보’로 2번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습니다. 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대중조직으로 정립한 2000년이후 신자유주의 속에서 비정규직 대 정규직 이중구조가 고착된이후에 백기완 선생은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에 언제나 가장 많은 힘과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서울 혜화동 통일문제연구소는 점차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문턱이 가장 낮은 집이 되었습니다. 그 집을 ‘백기완 기념관’으로 재건하기 위해 비정규 노동자들, 문화 노동자들이 함께 힘 모아 서각 판매를 통한 기금마련에 나섰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목표를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드는 시도를 한시도 굽히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고 백기완 기념관 건립기금 마련에 서각 구매로 동참합니다. 앞으로 사파기금 사무실에 걸릴 서각 현판입니다. 백기완선생이 쓰고 문정현신부가 조각한 서각은 다음 문구입니다:
“마냥 쓰러질 것만 같애도 눈깔을 똑바로 뜨고 곧장 앞으로 앞으로”.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연대! 투쟁!

2022년 3월 7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지원공지 82번째 받는말]
백기완기념관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서각판매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82번째 기금을 지원했습니다. 백기완기념관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한 고인의 마지막 유지를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기념관 이상의 노동자연대의 활동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기금 마련 전시 <기죽지마라> 기획자인 신유아 활동가의 [받는말] 전문입니다.

[받는말]

“백기완추모1주기 기획전시 <기죽지마라>를 기획한 신유아입니다.
2022년 2월 15일 선생님 추모1주기를 맞아 통일문제연구소를 백기완기념관으로 검토하던 중 시설이 낡고 빗물이 새는 실내를 수리 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져 기획전시를 하게되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 지팡이를 짚고 오셔서는 호통치셨던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호통은 응원의 호통이었습니다.
따뜻한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봉투를 건네주고 가셨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힘들다고 꼭 현장에 와주시라고 연락드리면 비가와도, 눈이와도, 한여름 겨울 없이 몸이 허락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셨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선생님의 공간을 고쳐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제 빈공간에 선생님은 안계시지만 투쟁하는 노동자가, 연대하는 동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선생님의 공간을 만들고 그 뜻을 기억하고자함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취지입니다.
서각 36점의 판매 수입은 ‘백기완 선생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부자친구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의지와 뜻이 모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해고 노동자였으나 복직했고 여전히 위태로운 노동자도, 자본과 지속적인 대치현장에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도, 대학시절 백선생님과 투쟁현장을 누비던 백발의 어르신도, 선생님의 가족들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서각을 구매하셨습니다.

특히나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후원구입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의 기치로 파업기금을 조성하고, 돈이 모이는대로 노동연대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지원하기도합니다. 투쟁당사자의 어려움도 이를 연대하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헤아리는 마음이 너무 고마운 기금입니다.
십시일반 사람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에 후원한다는 것은 후원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기에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앞으로 더 많은 투쟁현장과 연대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후원과 지지를 이어가길 바라며 백기완 노나메기 재단도 함께할 것입니다.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직접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CMS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https://bit.ly/3D04xK2 

한국지엠 비정규직 17년의 싸움, 어찌 멈추랴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해고노동자 진환 인터뷰

: 김한주 편집위원

 

17년째 이어지는 비정규직 해고자의 불법파견 투쟁. 회사의 탄압과 무시가 계속돼도, 동료들이 생계 문제로 현장에서 떠나도, 상급단체 노조에서 잊혀져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노동자 투쟁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번 투쟁소식은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 진환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지엠 사측은 지난해 11월 금속노조에 ‘한국지엠 생산하도급 근로자 관련 특별협의 제안’ 공문을 보냈다. 금속노조는 교섭단을 꾸리고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을 위한 교섭을 준비했다. 그렇게 2022년 3월 3일. 해고된 지 16년 만에 원청과의 첫 ‘상견례’가 열렸다.

– 투쟁 17년 만에 열린 첫 교섭이다. 어떻게 진행됐나?

오늘(3일) 상견례를 진행했다. 우리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상견례였기 때문에 양쪽 메시지 정도만 오갔다. 사측은 “생산 사내하도급과 만나는 게 역사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원청과 아무 관계없는 사내하도급이라고 표현했다. 비정규직과의 고용관계에서 선을 긋는 자본의 관점은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건 사측이 처음으로 먼저 만나자고 한 것뿐이다. 이 런 태도 변화에는 배경이 있다. 우리가 2015년에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곧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카허카젬 사장을 상대로 진행되는 불법파견 형사재판도 현재 1심 진행 중인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앞으로 교섭 과정은 어떻게 바라보나?

일단 회사가 갑작스레 제기한 교섭에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불법파견 문제를 희석시키거나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문제를 덮기 위한 ‘시간 끌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교섭 제기에 따라 빠르게 노조 요구안을 제출했고, 회사도 자기 제시안을 건넬 텐데, 그 내용에 진정성이 담길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만약 불법파견 문제를 흐리는 방향으로 유도한다면 회사는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다음 교섭은 3월 10일에 열린다.

– 해고 17년 만에 교섭 자리에서 만난 사측이다. 그간의 기억이 되짚어보자면?

나는 2005년 조합에 가입했다. 회사는 그 해 일방적으로 나를 해고했다. 당시 지회는 회사에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고.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라고. 그런데 회사는 우리를 해고했다. 우리가 피해당사자인데 왜 해고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것들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지금껏 오리발 내밀면서 비정규직 사용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법원, 검찰할 것 없이 모든 국가기관이 불법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사측도 이 교섭까지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고 한 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 당국이 불법을 인정했다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동안 각 기관은 불법파견 판정을 내려놓고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 아주 미온적으로 대처한 게 지난 세월이다. 당국은 2005년, 2018년 불법파견 시정지시를 내렸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노동부는 ‘회사를 압박할 순 없다’, ‘제재할 권한이 없다’는 등 회피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사이 해결을 요구하던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또 해고를 당했다. 정부가 회사에게 ‘비정규직들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 하라’는 신호를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 금속노조 차원의 불법파견 투쟁은 어떻게 봤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끈질기게 싸우는데, 이를 제대로 이기기 위해서는 원하청의 힘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껏 금속노조에서 잘 모아지지 않았다. 2017년 말 창원공장 정규직 집행부에서 인소싱을 추진하면서 비정규직은 해고당하고 비정규직지회 파업이 파괴된 바 있다. 금속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을 쫓아내는 인소싱을 하지 말 것을 방침으로 정했는데도 말이다. 방침을 어겼는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 추궁은 없었다. 인소싱으로 비정규직 조합원 50명가량이 쫓겨났다.

– 법률 투쟁에서 느낀 한계는 없었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도 마찬가지 문제일텐데, 일부 조합원은 소송만 쳐다보면서 실제 투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본인이 정규직이 되면 모든 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한계이지 않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 활동과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를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하는데 소송에만 의지한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노조의 강화, 발전은 없다. 이 요소들의 균형을 맞추면서 조합원으로서의 자기 투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투쟁해서 자기 힘으로 정규직이 됐다면, 그 뒤에도 활동하고 금속노조를 강화하는데 더 큰 역량을 보여주지 않겠나.

– 앞으로의 투쟁 계획은?

먼저 2020년 1월 공정에 빈 자리가 생기면 해고자를 복직한다는 노사 합의가 있었다. 그해 부평비정규직지회에서 20여 명이 복직했고, 그 뒤로 순차적으로 복직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창원 조합원이 복직할 자리가 났는데 회사가 막았다. 지난해 12월 부평 조합원 2명도 막혔다. 약속도 안 지키는데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원하청이 함께 교섭해서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지금 교섭단은 금속노조, 지역지부, 지엠지부, 비정규직지회로 구성돼 있다. 공동으로 힘을 합쳐서 한국지엠이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을 때까지 맞서야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나.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연대자들에게 한마디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면 폐업을 수시로 겪는다. 1순위 해고자다. 그래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제로 현장을 바꾸고자 싸우려 하는데 생계 문제로 떠나는 게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이 더 힘있게 싸워서 복직하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사파기금은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세종호텔노조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이 지난해 12월10일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종대학교를 거느린 사학자본이 다양한 문어발식 경영속에서 몸피를 키우면서, 수익사업으로 경영하던 세종호텔 노동자들을 코로나19를 핑계로 대량 정리해고를 단행하였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는 지난 3월3일 세종호텔노조가 3월9일 대선을 전후한 집중적인 투쟁을 선포하면서 연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연대발언하였습니다. 그 전문 요약 간단히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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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리해고를 철폐시키지 못하여, 한국사회에서 정리해고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정리해고 철폐 투쟁이, 결국 일부 노동자들의 원직 복직, 혹은 복직후 퇴직등으로 귀결되면서, 정리해고 철폐투쟁은 다시 원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고, 호텔산업등 서비스업종등 다양한 업종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앞에서 모든 사회와 국가들이, 정부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손쉬운 해고’를 쉽게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19가 전지구를 덮친 팬데믹이지만, 노동자 해고를 대하는 각국의 대응은 다양합니다. 노동자 해고를 아예 금지시키고, 나아가 불황으로 가동이 중단된 경우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국가가 지불하는등 해고를 막는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됐습니다. 팬데믹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와야하기 때문이고, 산업을 가동해야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자본이 정리해고라는 칼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는데 국가와 촛불정부라는 현정부는 방조하고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도 코로나19 시국에 세종호텔에서 벌어진 정리해고를 당연한듯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앞두고 있는 3월18일 진행될 지노위 정리해고 심문 결과도 우려스럽습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노동없는 대선’이라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일부는 ‘노동운동없는 대선’이라고 합니다. 아니오. 노동이 없는 대선 아닙니다. 노동에 대한 입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국힘 후보는 반노동, 노동적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약들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는 노동을 안는 듯한 공약들은 실천가능성이 모호하고, 반노동적인 자본을 안는 공약들은 적극적입니다.

그렇게 뻔하게 반노동적이고, 노동존중이 없는 공약들을 남발하는 양대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노동’ 있는 대선을 읍소하고 구걸하고 요청하는 것이 가당할까요? 지금은 노동없는 대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적대적인 대선이 문제이고, 노동자 투쟁없는 대선이 문제입니다.

먼저 당사자인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앞으로 나서십시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운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싸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연대를 구하고 후회없이 싸우십시오. 민주노총은 대선 앞두고 두 세번의 온오프 집회 개최한 것으로 대선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게 최선입니까?

노동자 투쟁없는 대선,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없는 대선을 멈추고, 투쟁으로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갑시다. ”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일명 사파기금은 어떻게 출발했고, 무엇을 하나요?”
권영숙 대표 인터뷰 요약

-사회적 파업기금이 뭔가.
“노동자라면 자본주의의 한 축이기도 하지만 파업을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집단행동을 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기금 조성의 계기는.
“부산영도로 달린 희망버스가 보여준 연대를 일회적인 ‘사건’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정리해고는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상까지 연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희망버스를 타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연대 행위를 여러 가지로 만들고 싶었다.”

-파업기금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조합비 일부를 파업기금으로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 이 사실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고 있다. 쌍용차 투쟁을 보면 된다. 자본에 편드는 친자본주의 국가와 제도정치, 비타협적인 자본의 문제, 이들이 결합한 ‘폭력’의 문제가 있는 한편 ‘돈’의 문제 또한 있다. 돈의 압박 속에서 파업이 형해화되는 경우다. 이뿐이 아니라 파업이 끝난 뒤에 업무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문제도 있다.”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한국의 정부와 자본, 법체계는 파업의 공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업무방해, 폭력 등을 명분으로 파업을 범죄로 낙인찍고 있다. 그리고 파업이 끝나면 손해배상 소송을 건다. 자유자재로 노동자를 압박한다.”

-파업을 바라보는 한국에서의 특수성 때문인가.
“외국에는 노동법원을 따로 둔 곳이 많다. 노동쟁의는 사적 영역이 아니고 공적 영역 안에서도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헌법에도 노동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노동자에게 특별히 부여받은 시민권이다. 그러나 하위 법률인 노동법은 그렇지 않다. 파업을 불법화하고 돈을 이용해 쉽게 무력화한다.”

-돈을 이용해 파업을 무력화한다는 건 어떤 얘긴가.
“쟁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계가 개인의 문제가 돼버린다. 국가와 자본이 그렇게 밀어붙이지만 노동조합에서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에 있다. 70년대 민주노조들이 간헐적으로 파업을 했던 것과 달리 87년 이후에는 상시적으로 파업이 발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보호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파업을 해도 임금을 줬다. 자본은 ‘무노동무임금’을 들고 나왔지만 노동은 92년까지 여기에만 치열하게 저항하느라 제도적 장치로 파업기금을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에 파업기금을 생각지 못해 지금 이 상황이 됐단 얘긴가.
“이후 파업은 더욱 장기화됐다. 원래 파업은 대기업 노조가 먼저 나서 평균 2.5일 정도에 끝났다. 이른바 노동의 낙수효과가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6~7% 오르면 중소기업은 20% 가까이 오른 경우도 있었다. 90년대에 실질임금 상승률이 11%가 넘는 해도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효과가 없어졌고 임금 인상도 선별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DJ, 노무현 때부터 장기투쟁사업장이 늘고 있다.
“이제 파업을 하려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파업의 재단 앞에 바쳐야 하는 시대다. 자기 가족의 생계 또한 팽게쳐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는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코오롱 같은 경우 2500일이 넘었고 콜트콜택, 흥국생명, 재능교육 등 많다. 우리나라에서 파업을 하면 버틸 수 있는 최대치는 2개월에서 3.5개월로 나온다. 그런데 길게는 8년까지 투쟁하는데 돈의 압박이 얼마나 심각하겠나. 이 모든 과정이 말해주는 건 한국사회에 노동자의 파업권이 없다는 거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충하자는 뜻에서 기금을 제안했나.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은 ‘돈’의 압박에 노동자들이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대다. 파업이 필요할 때 파업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돕는 연대다. 사실 돈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은 대부분 시민에게 피 같은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파기금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자, 시민들에게 있어 사파기금의 필요성은 뭔가.
“‘나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노동으로부터 축출돼 파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고용시장은 누구나 정리해고할 수 있고 누구든지 희망퇴직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노동 파괴의 위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대신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쟁의기금을 만드는 게 중요한 시기이다.”

2012.02.22 <미디어 오늘> 인터뷰 기사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499
“돈 걱정 없이 파업할 수 있도록 연대 기금 만들자”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백기완 선생에 대한 우정과 동지애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백기완, 이 이를 1980년대 알았을 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유는 간략히 3가지였지요. 하나는 백 선생은 백범 김구를 존경하여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모태로 하여 현 ‘통일문제연구소’를 혜화동에 차렸지만, 저는 백범 김구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습니다. 둘째는 그가 50대의 나이에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냅다 호통치며 활동하는 모습이 영 문화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데, 저는 백기완 후보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초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나서 완주하지 않고 투표일 이틀 전 완주 포기선언을 한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백기완 후보가 민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독자(민중) 후보를 마지막에 포기한 것은 사실상 민주화 이행 이후 진보정치가 민주연합정치에 발목 잡히는 첫 사례였기도 합니다. 그 첫 선거에서 독자 후보로 완주했다면 노동좌파 정치의 또 다른 길을 열었을 것이라고 가끔 생각합니다.

그런 백 선생과 제 인연이 제가 미국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만 하는 서생으로 만족치 못하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을 제안하고 만들어 노동연대에 뛰어들면서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전에 ‘진보 지식인 모임’에 가끔 불려가면 뵙고 인사했지만 건성이었지요(사실은 비판적이었지요). 그리고 사파기금 활동을 하면서 제가 가는 많은 노동자 투쟁 현장에 백기완 선생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소수 소규모 투쟁 현장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백샘과 저만 참석하는 기자회견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추운 날 맨 앞에 앉아있으면 뒤통수에 수많은, 때로는 얼마 안 되는 눈들 앞에 있기에 태도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고역은 생리현상입니다. 춥고 몸은 뻣뻣해지고 엉덩이는 아픈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저보다 백기완 선생은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도 백 선생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이였습니다. 행진 시작하면서 집회가 정리됐을 때 화장실 가려고 서두르시다가 함께 길거리에 풀썩 앉아버렸던 기억도 있네요. 그 얘기를 백 선생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만나면서 저는 백기완 선생에 대한 동지애가 싹텄습니다. 그리고 백 선생을 방문하면서 이런저런 과거 얘기를 하면서 우정이 생겼습니다. 1987년 독자 후보 출마를 마지막에 포기한 이유도 따져 물었고 답을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하면서 풀 것은 풀었습니다. 그는 드물게도 우파 민족주의자에서 왼쪽으로 계속, 노동과 함께 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이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를 급진적인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그렇게 자가 발전하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과를 출세와 자리로 보상받으려고 하거나, 좀 더 안온한 삶, 뒤로 물러서는 삶으로 돌아앉습니다.

이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변혁과 운동은 더욱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민교협 노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2012~2015년 그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더이상 죽이지말라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 활동하던 때였지요. 그 때 그 시기의 엄중함을 더욱 절감하고,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비적인 행동을 했더라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운동의 지형이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 선생과 함께 그 시절에 여하튼 전선에서 버티자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너무도 불충분했습니다. 버티는 것을 넘어서 도모를 했어야합니다. 하지만 그건 백기완 선생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백 선생을 추모하는 방법은 묘역을 단장하고, 주기마다 기념행사들을 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백 선생이 현장에 버텼던 것처럼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현장에서 버티고 끝까지 항상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시대의 엄중함을 긴급함으로 담아서,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기완 1주기 행사 제목이기도 하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일구는 이”라는 뜻을 담은 ‘새뚝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백 선생을 2019년 2월 14일, 바로 3년 전 어제죠, 뵈러 갔었습니다. 세뱃돈 만 원 받으려고요. 그게 그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백 선생이 제가 방문한다고 해서 무슨 말을 해줄까 미리 고민했다면서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은 아래만 보지 하늘을 보지 않는다”.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고맙습니다.

2022년 2월 15일 고백기완 1주기에 마석 모란공원에서.

 
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백기완 선생 1주기에 – <font color=”red”>[기고]</font> 우리 아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봅시다 (newscham.net)

사파기금은 새해 설을 맞아 투쟁현장 6곳에 사과즙과 사과를 보냈습니다. 사파기금과 함께 9년째 복숭연대, 사과연대를 해온 ‘땅의 마음, 지심’의 후원으로 올해도 하게 되었습니다.

위로부터 한국지엠 창원 비정규지회, 노량진수산시장 투쟁하는 상인들, 한화생명노조, 세종호텔노조, 아시아나 케이오노조에서 ‘잘 도착했다’고 인증하며 보내주신 사진들입니다. 그외에 세브란스병원 비정규노조에도 보냈습니다.

해마다 잊지않고 물품연대 후원을 함께 해주시는 지심 농부들의 ‘여여한’ 마음 참으로 좋습니다.
지심과 함께 해마다 하는 연대에 대해서 반갑고 든든합니다. 땅의 마음이 노동자들에게 닿기를.
사파기금이 연대의 매개체 역할을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연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투쟁하는 이들은 이 연대 잊지 말고 꼭 연대로 환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격월(둘째 주 화요일)로 발행되니 많은 성원 바랍니다!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사파동행> 1호(2022.01.18.)
소식지를 발간하며
10년간 쉼 없이 달린 기금 조성과 연대 활동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연대자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10주년을 마무리한 올해부터 사파기금의 소식지를 내기로 했습니다.
2022년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소식지 <사파동행>을 발간합니다.
읽어주시고,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10주년 카드뉴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을 소개합니다!
기금활동
사파10주년 연대와 후원의 날(2021.12.11)

10년간 총 218회 기금 지원과 연대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를 월로 나누면 매월  평균 18회 정도였습니다. 뜨겁게 사회적 연대로 사회적 파업기금 조성해왔고, 치열하게 연대를 해왔습니다.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2차 조성(2021. 9-12)

코로나19 재난 앞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과

비정규, 해고,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재난연대기금 조성 
12월 말까지 진행, 코로나 재난 위기 맞은 노동자 등에 지원

[제18차 사파포럼] 노동자해고와 복직투쟁의 운동적 의미와 평가(2021.06.23)

포럼은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노동자 해고와 복직투쟁의 운동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간 다양한 해고자투쟁을 평가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사파기금 사무실 집들이(2021.04.1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무실 집들이를 4월 18일 조촐하게 했습니다. 이번이 두번째 사무실 마련입니다. 이전 사무실보다 좀 좁아졌지만, 훨씬 인간미 넘치는 사무실입니다.

기금지원연대
9차 사파동행 “아시아나케이오 노조” (2021.05.07)
코로나19 가운데 오랜만에 연 사파동행이니만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열의가 컸습니다. 다행히도 100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참여하여 코로나19 속에서 힘들게 싸우는 케이오노조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는 연대 집회였습니다.
[지원공지 79번째]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마스크 1만 장, 무릎담요, 핫팩 등 방한물품을 지원했습니다. 마스크 구매액만 527만원입니다.
[지원공지 80번째]
“건강보험공단의 공공성 확보와 고객센터 노동자의 직접고용은 하나의 요구다!”
차별과 배제, 불평등에 맞서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건강보험고객센터 노조에 1000만원의 기금을 지원합니다.
[지원공지 81번째]

<2021년 상반기 제2회 활동가지원기금> 선정 결과 발표

최종 수여대상 노동, 빈민, 홈리스 사회단체등 3인 100만원, 3인 50만원등 총 4백5십만원 지급

[사파연대] 아시아나케이오 노조의 쿨한 연대 제안! 지금은 팔토시 나눔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곧바로 100셋트 주문하여 노동자 농성장 7곳에 직접 방문 혹은 우편 방식으로 전달했습니다 (2021. 7)

[사파연대] 노량진수산시장투쟁 고 나세균 분향소 방문(2021.11.11)

서울시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쫓겨나 투쟁에 나섰던 고 나세균 님의 분향소가 서울시청 앞에 차려졌습니다. 사파기금은 11월 11일 이곳 분향소를 연대방문했습니다.

[사파연대] 세종호텔노조 정리해고반대파업_조합원교육과 물품연대(2021.12.16)
세종호텔 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권영숙 대표가 “코로나19노동재난, 호텔업종 산업 재편, 노동자투쟁의 방향과 전망”  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고 방한물품 전달했습니다. 
이제 겨울, 본격적인 ‘동투’의 계절입니다.
사파기금이 전달한 핫팩, 가스난로, 무릎담요등으로 중무장하고,
겨울에도 쌩쌩한 투쟁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연대자의 발언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 노조 지부장)
2년전 어느 봄날 나는 코로나19 로 정리해고가 되었다….
사파기금은 요즘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과 파업투쟁을 하고있는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연대기금으로 쓰여지고 있다. 낮은 곳으로의 연대를 알리고, 노동자들이 돈앞에 쓰러지지 않도록 기금을 모아 연대하는 사파기금은 해고자가 된 나에겐  선물이었다.
사파시평
멸공(滅共)에 대하여:
‘멸공’을 조롱하는 이들, 그리고 국가보안법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2.01.12
사파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방법
👉 링크에서 바로 참여하기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단체재정 후원하는 방법
👉링크에서 바로 하는 방법
직접 이체 :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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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동행> 1호 목차 및 전문  (클릭) 

사회적 연대로 희망을 모으는<사파동행> 1호(2022.01.18.)

모든 힘을 연대활동에 쏟느라고 정작 단체 소식지 하나 10년동안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10년 활동 결산결과, 2011년이후 총 218회 연대활동을 했고, 월평균 18회 기금 지원 연대활동을 했습니다.  단체 활동 홍보는 항상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사파기금의 연대자들에게 사파기금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소식지 발간을 계속 미룰 수 없습니다.

10주년을 마무리한 올해부터 사파기금의 소식지를 내기로 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소식지 <사파동행>을 발간합니다.
읽어주시고,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1. 사파기금 소식지 겸 뉴스레터 제목은 <사파동행>입니다.
<사파동행> 많이 사랑해주시고, 구독해주세요. 하단에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2. <사파동행>은 사파기금의 연대활동과 노동을 사회적 의제화하는 다양한 담론활동을 담을 예정입니다. 기금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고, 이 땅의 노동 의제에 대해 관심있는 연대자들께서는 꼭 구독해주세요.

3. <사파동행>은 이 땅의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 시선을 두고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사파동행>에 투쟁과 연대 소식을 실을 예정입니다. 관심 가져주세요.

4. 사파기금은 연대자들이 동력입니다.  소중한 연대자의 목소리를 “연대자의 발언”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오랜, 그리고 새로 동참한 연대자들의 발언을 경청해주세요. 첫  호 “연대자의 발언”은 아시아나케이오노조 김계월 지부장의 글입니다.  https://sapafund.org/?p=4566

5. <사파동행>은 격월 둘째주 화요일 발간을 시작으로 차차 발간횟수를 늘려갈 예정입니다.

연대자 여러분,
사파기금과 화요일에 만나요!

2022.01.1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 노조 지부장)

2년전 어느 봄날 나는 코로나19 로 정리해고가 되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첫 번째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고 그 투쟁의 시작은 지금 600일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지노위 ,중노위 그리고 행정소송 1심까지 사법부는 해고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아시아나 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한뎃잠을 자며 원직복직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다.

고통의 시간은 인간의 마음을 수차례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노동자의 자존심도 짓밟아 버린 금호문화재단 박삼구는 경영비리로 유죄 판결로 감옥에 들어갔으나 지금 보석으로 나와 따뜻한 방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들은 차가운 거리로 내몰고,  박삼구에게는 따뜻한 안방을 내어준 이 정부는 한 자리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는 약속을 언제 지킬 것인지. 답을 기다리는 케이오 해고 노동자들 중 두 명은 지난해 거리에서 정년을 맞았고 또 3월이면 정년이 다가온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 종각 금호아시아나본사 앞에서  부당해고 판결 났으니 복직 이행을 하라고, 그 책임을 금호문화재단 박삼구가 지라고 소수의 작은 소리이지만 크게 외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오늘도 이 추위에 투쟁을 멈출 수 없음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아시아나 케이오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싸우는 종각 센트로폴리스빌딩은 금호아시아나 본사가 있는 건물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처음 해고를 당하고 종각에 천막을 치고 지방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기까지 천막 농성장은 해고자의 집이 되었다. 2020년 여름은 54차례의 장마비와  습도때문에 고역이였다.

잠이오면 건물 안 그늘을 찾아다니며 졸기도 하고 여기저기 지나가는 시민들 눈치를 보며 천막을 지켜야 했던 어느날, 나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의 긴 인터뷰를 읽었다.

“과연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정도로 당신은 긴급재난 상태였나요? 라고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전국민 재난기금을 국가가 지급했을 때의 이 인터뷰를 보며 나는 깊은 공감을 느꼈다. 나도 비록 해고자였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리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라는 단체와 함께 하고 싶었다.

사파기금에 조금이나마 연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코로나19 첫 해고 사업장’인 케이오노조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방송국에 출연해서 받은 출연료중 절반의 금액을 사파기금에 연대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파기금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코로나19의 재난은 해고문제뿐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까지 재난과 위기로 다가왔다. 그 때 사파기금은 고통에 빠져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고 물품이나 투쟁기금 등 해고사업장 재정사업에 통큰 마음으로 연대를 했다.

사파기금은 요즘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과 파업투쟁을 하고있는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연대기금으로 쓰여지고 있다. 낮은 곳으로의 연대를 알리고, 노동자들이 돈앞에 쓰러지지 않도록 기금을 모아 연대하는 사파기금은 해고자가 된 나에겐  선물이었다.

해고자로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많은, 선물 같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쁜 마음을 누군가에게 선물을 나누는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도움을 받으며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코로나19 재난시대의 선물처럼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모든 노동자들이 돈 앞에 쓰러지지 않는 그 날까지.

 

권영숙(사회학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가짜뉴스인가이승복 어린이는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는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 3면(사회면) 머리기사였고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동료 기자들은 조선일보 기자를 사건 직후 현장에서 보지 못했고, 이 내용을 증언했다는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이승복의 형은 의식불명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나 역시 이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구전’으로 들었다. 그만큼 전설적인 ‘오보’ 혹은 요즘 말로 ‘가짜뉴스’에 얽힌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1992년 김종배 <미디어오늘> 국장이 당시 사건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장남 승권 씨(승복 형) 증언을 토대로 “(사건 발생 직후)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저널리즘> 가을호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승권 씨는 동생 승복이 살해된 뒤 자신이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이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에서 전 기자협회장 출신인 김주언 사무총장 등이 ‘언론계 50대 허위·왜곡보도’를 선정하면서 이승복 발언 조작을 포함했다. 1992년 <저널리즘>에서 발간된 글에 대해서 몇 년간 가만히 있던 <조선일보>가 이 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 김주언, 김종배 두 사람을 고소고발하면서 오보논쟁은 법정으로 비화됐다. 2006년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해 김주언 전 총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김 전 편집국장에게는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의혹 제기”는 가능하다면서 1992년 기사에 대해선 무죄를 내리고, 그 기사를 토대로 언론계 50대 허위 왜곡보도를 선정한 것은 유죄로 판결하는 기묘한 판단이었다. 결국 대법원 판결로 오보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오히려 묻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아랑곳없었다. 반공교육 앞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유신체제’의 아이들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선배 어린이의 한을 이어받기를 강요받았고, 해마다 붉디붉은 ‘멸공’ 포스터를 그려내야만 했다.

2. 유신 이후 아이들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남한의 재벌 2세

그렇다면 유신체제 이후의 아이들은 어떨까? 유신체제 때 국민교육헌장 세대도 아닌 신세계 부회장이자 재벌 2세 정용진이, 민주화된 서구에 가서 살면서 ‘신식 서양학문’을 배웠다는 이 자가 갑자기 SNS에서 자못 진지하게 ‘멸공’을 외치고 나섰다. 이는 반공주의에서 아주 ‘새로운 젊은 피’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일베라고 불리는 이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양극화와 불평등을 통해 만든 괴물들. 그들과도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해서 정용진의 SNS 소통에 대해서 ‘일베 놀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베로 표상되는 신세대 멸공 청년들. 그들은 자본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일뿐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칙을 자랑스레 ‘공정’이라고 외치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들, 사회적 우생학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것을 ‘불평등’이라 사고하지 못하고, 출발선 이후의 경쟁에 대해 ‘공정’을 읊조린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지속되는 구조적 불평등을 줄이고 해소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공정 침해’라고 말한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멸공’을 외치는 것은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체제에서 외치던 멸공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섬뜩하다. 그건 ‘사상적인 확신’으로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자본주의에,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시장자본주의에 찌든 의식이 만들어내는 의식 말이다.

근데 정용진 씨는 단지 이 땅의 평범한 일베 청년이 아니라 재벌자본주의 공화국의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요즘 ‘재벌’ 2세들은 재벌을 인간화, 나아가 사회화하고 있다. 정용진의 인간적이고 소탈한 SNS 활동은 그중 대표적인 사례다. 재벌 2세뿐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노동자 투쟁이 벌어진 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업체 사주의 아들이 2세 경영을 시작한 곳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업을 일군 아버지 세대가 노동에 대해 보인 감성 따위 (물론 그 신성함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수성가’한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신성함을 주축으로 한)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체화한 그들에게 노동은 철저히 자본의 일부이다. 팔고 사고, 넘기고, 대체가능하고, 귀찮으면 밟아버린다. 그렇다면 더욱 부를 집적한 재벌 2세의 경우는 또 어떨까. 그들은 더하면 더할 것이다. 그래야 재벌을 경영할만하지 않을까.

SK그룹의 최태원, 삼성그룹의 이재용 등은 재벌 승계과정의 불법 등의 문제로, 그의 아버지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미 전과자들이다. 최태원, 이재용의 얼굴 역시 자본이 드러내는 인간의 얼굴이다. 반면 최근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의 요사스런 키보드 워리어 짓은,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데 흥미를 붙인 ‘관종’ 놀이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 참 솔직담백하게도 이데올로기적 전투의 장에서 반공투사연하는 모습이다. 재벌과 자본이라면 당연한 생각이고, 자신들끼리 ‘무대 뒤’에서 이미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을 발언들을 대놓고 대중을 향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이 점에서 정용진의 발언은 사뭇 흥미롭지 않은가 말이다.

3. ‘멸공’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

정용진은 공개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멸공’을 외친다. ‘가짜 뉴스’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오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21세기 ‘탈진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진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을 실제로 말하는 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그것도 멀쩡한 장년의 남자, 재벌 2세가 한 발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문제적 발언에 대해 한국전쟁을 갓 지난 60년대식으로 바라보면 안 될 듯하다. 정용진은 이 사회에 ‘체제’(regime) 논쟁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공부가 안 돼 있으니 좀 우스꽝스럽게 얘기를 전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체제 논쟁 좋다. 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논쟁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진짜 논쟁이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 비자유주의 세력, 혹은 진보 좌파세력이 ‘체제 전환’이라는 화두를 내기도 했으므로 이참에 한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선 민주당도 ‘체제 전환’ 이라는 말을 은근 슬쩍 사용하고 있다. 언제나 아이디어는 궁하고 좌파나 외부에서 말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데 이 당은 참으로 능하다. 민주노동당이 있었을 때 민주당이 이것저것 정책 의제들에 침 발라놓던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진보 흉내는 내고 싶은 것이 민주당이다.

하지만 고작 이게 뭐람…. 멸치와 콩이라니. 이것을 ‘멸공’이라고 하다니. 이건 도대체 무엇이, 혹은 누가 조롱당하는 것이란 말인가. 공산주의가 멸치와 콩자반으로 비유되고 조롱당해도 좋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조롱당하여야 마땅한 것은, 공산주의를 멸치와 콩에 빗대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이념적으로 천박하고 철학적으로 빈곤한 보수 세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용진의 발언에 분노하고 혹은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정용진의 발언에 맞서서 비판이라고 하기는 좀 무색하지만, 거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그럼 누군가. 대표적으로는 이미 실없기가 한없음을 여러 차례 드러냈던 민주당 국회의원 정청래가 파를 들고서 “그럼 나는 좌파다”라고 미러링했다. 주로 정당으로는 민주당,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력이 정용진의 발언에 대해서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비토하고 나섰다. 정작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오히려 점잖게 가만히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유주의 세력이 모욕을 당한 듯이 일제히 성토장을 만들고 있다.

이미 체제 논쟁은 저리 가라다. 정용진은 우스꽝스럽게나마 체제에 대한 도발을 했는데, 자유주의 세력은 멸공도 반공도, 친공도 관심이 없다. 결국 이 정도면, 정말 양쪽 모두, 체제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종임을, 아니 사실은 동일한 체제 안에서 끼리끼리 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유유상종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서로 상대를 까대기 할 것만 있으면 정신없이 까대기에 나선다. 정작 멸공 따위의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멸공이란 단어는 무겁다. 그리고 비극적인 단어다. 멸공은 결국 다른 말로 하면, 국가가 저지른 범죄였고, 민간인 학살이었다. 여수‧순천 반란 및 학살이었고 제주 4.3항쟁 및 학살이었다. 멸공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올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이유다.

4. 국가보안법은 ‘멸공’ 아닌가?

그렇다면 정작 이들이 정용진에 대해 비판하는 논점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이들은 진정으로, 진심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판하는 것일까? 혹은 정용진의 발언을 기회로 색깔 논쟁을 만들며 ‘집토끼’ 굳히기에 나선 윤석열과 국힘의 선거 전략에 맞서서 이렇게 열심히 정용진 까대기에 나선 걸까?

이미 우리는 맥락을, 그리고 정답을 알고 있다. 이들은 ‘멸공’이라는 메시지보다는 그 메시지의 전달자들에 더 관심이 있다. 정용진을 받아서 윤석열, 윤석열을 받아서 나경원 등등.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청래, 그리고 이재명 선거본부 대변인 현택근 등등. 그렇다면 과연 정용진의 멸공 발언에 일제히 비난에 나선 이들은, 정작 ‘멸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멸공에서 ‘공’에 대해 어떤 생각이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 멸공 발언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면 이들은 공산주의를 멸하는데 반대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산주의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없거나 모호하다. 비난과 조롱은 넘치는데 논리는 박약하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은 이미 공산주의가 위협적이지 않으므로, 이렇게 극악스럽게 ‘멸공’, 즉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따위를 외칠 것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아니 과연 그럴까? 하지만 이것은 답을 회피하는 것일 뿐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민주당, 자유주의세력은 정용진이 던진 메시지 자체를 두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판하기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멸공’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이 체제 안에서 멸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다른 말로 하면, 사회주의자 박멸법이다. 북한을 사회주의체제로 간주하고 반북=반공을 등치해 사회주의를 때려잡는 법이다. 정치적 양심수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의 폐지론자였던 노무현도, 문재인도 모두 유지론으로 돌아섰다. 집권정당이 되자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존속으로 당론을 바꾸었다. 정용진의 ‘멸공’ 발언과, 국가보안법 존치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세력. 그들 간의 차이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이 난리인가. 과연 비판의 초점이 멸공에 있기라도 한 것인가.

정용진의 공공연한 ‘멸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것만이 스스로 논리적인 정합성, 아니 정치사회적인 정당성도 가지는 것이다. 아니라면, 단지 정적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정용진의 ‘멸공’ 발언을 비난질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렇게 이 체제안의 제도적 멸공의 수단인 국가보안법에 침묵한다면, 민주당 세력과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남의 눈에 재 뿌리기이고, 제 눈에 든 큰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5. 결론

멸공의 반대말은 멸공 반대가 아니다. 멸공의 반대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지공’ 혹은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친공’이다. 그런데 최근 멸공을 공공연히 말하는 자본가 정용진을 비판하는 이들의 입장은 참으로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 대한 반대가 진짜 ‘멸공 반대’인지 모호하다. 멸공 주장에는 반대하는데, 멸공 반대는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국가보안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까대기 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어쩌면 자본가 따위가 ‘멸공’을 떠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건 하등 상관도 없다(단지 자본가는 당연히 멸공하자는 입장일 텐데, 그것을 시장에서 비지니스 한다는 자가 ‘대놓고’ 말하니, 주가도 폭락하고 불매운동도 불러일으키고, 정치적으로 한쪽으로만 ‘올인’하는 듯하니, 이야말로 아마추어 아니냐는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제일 큰 문제는 자본가는 대놓고 ‘멸공’을 외치는데,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깔려있는 이들이 왜 자본을 혐오하지 않는가이다. 재벌 2세의 이념적 전투 앞에서 노동계급은 더욱 분발할지어다.

* <사파시평>은 홈페이지와 민중언론 참세상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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