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추석을 앞두고 지난 9월10일 참사 이래 참사 79일째가 되는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에 긴급 지원을 결정하고 지원하였습니다.

추석을 바로 앞에 두고서,자식과 아내등을 잃은 유족들은 그 슬픔을 안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와 이제 80일을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참사 79일차인 9월10일 50회차 시민문화제는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렸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여는 5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3강 강의주제는 “비정규노동의 조직화, 투쟁, 그리고 현주소”입니다. 9월7일 오후3시, 기후위기행진으로 수만명이 서울 강남에 모이는 가운데, 정동 민주노총 15층 고요한 장소에서 열렸습니다. 수강자들 일부가 불참했지만, 강의가 가능한 정족수는 충분히 되었습니다.

2강에서 ‘비정규노동’의 역사를 다뤘다면, 3강에서는 ‘비정규노조운동’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결국 문제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민주노조운동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98년 파견근로법 입법으로 기왕에 비제도적으로 존재하던 비정규노동이 합법화되고 본격화된 이후에 형성된 비정규노조운동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비정규노동의 기원과 본격화라는 역사가 87년이후 민주화이행이후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민주주의)의 동맹,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등장과 성격과 관련된다면, 비정규노조운동의 역사는 과연 본격화된 비정규노동에 대해서 민주노조운동은 어떻게 투쟁하고, 조직했고, 현주소는 어떤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강의 소개에서 말한대로 “통렬한 지적”이자, 동시에 “내재적 비판”을 하고, 미래를 도모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강사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장은 “모든 싸움에서 정규직 노조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정규노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를 97년이후 정리해고와 비정규노동의 동시 입법, 그리고 이 두 문제에 대한 노조들의 투쟁, 이 과정에서 등장한 목표, 구호, 쟁점, 전략들을 세세히 사례와 연결하여 살피면서 강의했습니다. 올해 학교 대주제의 백미일 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노동이 정규직 노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에 대한 자본의 전략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이 얼마나 자기제한적인지 살피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관련하여 강사는 지금껏 비정규노동자운동이 3가지 쟁점 혹은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정리했습니다. 첫째 정규직 대 비정규직 구도(비정규직 축소), 둘째, 권리 입법의 문제(권리 사각지대 축소), 셋째 고용관계의 문제(노동시장 입법). 세가지 문제 지형은 모두 비정규노조운동의 투쟁과 조직화의 구체적인 양상과 연결되면서,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정답이 되지 못한채 각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바로 “비정규노조(노동)운동은 가능한가?입니다. 그와 역설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비정규노동 철폐는 가능한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3주후 9월28일 4강에서 드디어 전략과 전망에 대해 강의합니다. 그리고 바로 당일 1박2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와노동 캠프에서 더욱 깊고 넓은 종합토론이 이뤄지길.

2024.9.9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주최 5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2강이 “비정규노동의 역사, 노동법, 유형들” 제하에 2024년 8월24일 열렸습니다.

8월10일 1강에서 이번 학교 대주제인 “한국 비정규노동 문제화 운동, 법, 전략”에 관한 문제의식을 나눴습니다. 더 정확히는 왜 비정규노동을 문제화해야하는지 기초를 정리하고 핵심질문을 제시했습니다. 2강은 질문들을 더욱 정식화하고, 답을 찾는 본격적인 강의였고, 내용이 아주 많은 강의였습니다.

강의는 1강보다 더 집중도 있는 강의였지만, 수강자들은 오히려 2강에서 좀더 분명해지고 더 쉽게 이해하게 되고, 이제 문제를 던질 준비가 된 것으로 토론에서 그리고 이어진 회식 1인 한마디에서 발언했습니다. 또 근본문제를 계속 다루고 있는 강의내용과 현장에서의 실천과 담론 사이에는 분명히 거리가 있지만, 이제 그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를 생각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강사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가 처음으로 ‘전략’이라는 말을 제목에 붙인만큼(4강) 이제, 진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반면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지회장은 권대표는 강의에서 절대로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답을 찾아가도록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말을 걸고 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듯하고 강사는 말했습니다.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것, 그것이 강사가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질문을 정확하게 던져야 답을 제대로 내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강사는 98년 입법된 근로자파견법이 기존 70.80년대 존재했던 내부하청(사내)및 외부하청과 어떤 점이 다른가를 질문하고, 그 차이는 바로 근로자파견법이 현행법상 불법이나 다름없는 제조업등 내부하청을 합법화시켜준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설이죠. 근로자파견법은 불법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인 불법을 합법화하고, 심지어 그 입법 자체가 합법의 제도화의 계기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근로자파견법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근로기준법과 직업안정법등 현 실정노동법체제내에서 법적충돌을 빚으면서 입법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파견근로법 자체에 대한 의문, 법적 근거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90년대말 이후 노조운동과 비정규노동 담론은 파견법 폐지 주장보다 비정규노조 조직화와 불법파견 철회, 정규직 전환, 처우개선과 단협 체결등 다른 쟁점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풍선효과’. 국가는 파견근로법을 손질한다면서 계속 자본의 요구에 따라 비정규직을 다양한 ‘유형’들로 확대해왔습니다. 자 이 고리를 왜 끊지 못했고, 어떻게 끊어야할까요?
3강은 비정규노동의 조직화와 운동의 역사를 다룹니다. 이 강의에서 제대로 던진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구해가도록 하겠습니다.

5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두 강의 남겨두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의를 들었으면, 그래서 더많은 이들이 정확한 질문을 같이 던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2024. 8.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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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고 김승만 추모산행’을 지난 8월11일 북한산 둘레길 8번 코스(구름정원길)로 잡고 걸었습니다.

고 김승만은 학생운동을 거쳐서 직업적인 활동가로 나서, 이주노동자지원 단체에 오랫동안 일했고, 진보넷과 노동자의 힘등을 거쳐, 노동전선에서 활동했습니다. 사파기금에서 짧은 시간 집행위원을 했습니다.

고 김승만은 특히 사파기금의 봄 가을 산행 기획을 맡아 함께 수년간 산을 다녔습니다. 그가 산을 좋아하고 산행길을 많이 알기에, 사파기금에서 요청했고 흔쾌히 승낙했었죠. 우리는 많은 산들을 다녔습니다.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남한산성, 선자령등을 봄 가을 사파 산행으로 잡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역사기행에 이어 진행한 지리산 빨치산 역사기행때 고 김승만이 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공식적인 사파 산행외에도 우리는 ‘산행길 동무’였습니다.

산을 좋아하여 함께 다닌 것만은 아닙니다. 변혁운동과 노동운동의 희망없는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함께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사파기금의 권영숙 대표가 진행해온 세계노동운동사 학습모임에도 짧게 몸담았습니다.

지난 6월말 창졸간에 그가 운명하였고, 무빈소 장례를 지낼 뻔했고, 뒤늦게 그의 추도식을 열었고, 나아가 고별식으로 그의 뼈를 이 산하에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계획하기전에, 무빈소 장례라는 소식에 사파기금은 그를 추모하는 산행을 기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49재가 열리는 8월11일 북한산 구름정원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은 2019년 고 김승만이 사파기금을 위해서 기획한 마지막 산행이었습니다. 그의 산 친구들이 함께 했고, 역사와 산 번개팀이 함께 했습니다. 더운 날 12명의 산친구들이 함께 걷고 김승만을 추모하고, 세상을 염려했고 내려와 진하게 한잔 했습니다.

딱 그가 원하는 추모의 방식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또 고 김승만이 사파기금의 오래된 친구들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아줬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사파기금의 이 산행이 참 인간적이라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사파 산행이나 역사기행을 다시 열자는 조심스런 제안도 있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자연스레 생각해보지요.

고 김승만을 보냅니다. _()_

2024. 8.1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와 공동주관하는 5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개강식 및 1강이 2024년 8월10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열렸습니다.

3기 학교에서 ‘노동권’, 4기 학교에서 ’87년이후 노동운동사’라는 대주제로 개최한데이어 올해 5기 대주제는 ‘한국비정규노동 문제와 운동, 법, 전략”입니다. 1998년이후 25년이 넘은 비정규노동과 사내하청 불법파견철회투쟁 중심의 노조운동이 정규직전환과 노조법 2조 개정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비정규노조운동의 성격 재정립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자본주의하 플랫폼노동으로 비정규노동의 노동형태가 급속히 재편되는 현재야말로, 비정규노동에 대한 전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 정립과 대안적 사고에 대한 모색이 필요합니다. 개강식에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대표는 강의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화두와 문제 제기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학교 수강신청은 빠르게 정원 40명을 채웠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 민주노총 조합원과 비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학교가 이날 개강했습니다.

1강의 주제는 “비정규노동의 문제화. ‘비정규노동’이란?”입니다. 강사인 권영숙 대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소장)는 중요한 전제를 제시했습니다. 노동과 노동자투쟁을 언젠가부터 ‘문제’라고 호칭하는 것은 후퇴한 사고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노동이 ‘문제’로 불리고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문제제기를 문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1강 주제로 잡은 ‘비정규노동 문제’는 비정규노동을 ‘문제화’해야한다는 말이다. 즉 비정규노동은 자명한 현실도 자명한 존재도 자명한 제도 아니다. 그러니 문제가 아니라 문제화해야한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제도화되고 본격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언제이고, 왜 그렇게 되었고,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가? 이다. 즉 우리는 비정규노동을 당연시하지 말고 ‘문제화’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강사는 비정규노동은 어떤 노동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천착하며 점점 좁혀가면서 정의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통념과 달리 비정규노동은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핵심적인 기제라는 점을 증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비정규노동은 한국사회에서 97년이전, 그리고 87년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때로는 상당한 규모로 있었습니다. 오히려 정규직이 중심이 된 노동사장체제가 형성된 것은 87년 이후입니다. 그리고 97년이후에 노동법 개정,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근로자파견을 도급제와 구분하여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합법화하면서 비정규 노동은 제도화되었습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사는 수없이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역사적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노동 입법화의 이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투쟁과 조직화 노선을 견지하지 않은 오류를 수없이 범했습니다.

그런 전제하에 강사는 ‘비정규노동’을 정의하고, 몇가지 다른 기준들이 작동하는 기제를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비정규노동의 유형을 대략 3가지로 제시했습니다. 가장 강조한 점은 비정규노동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일반적이었고(한국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한국에서 87년이후 상용 직접고용을 의미하는 ‘정규직노동’이 본격적으로 굳어지면서, 그 나머지들ㅡ 즉 잔여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범주로서 ‘비정규노동’이 정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권영숙 소장은 이런 문제화과정,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의, 기준, 분류 속에 이미 관점과 해법이 포함돼있으며, 올바른 진단과 전략 수립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2강 “비정규노동의 역사, 노동법, 비정규노동의 유형”강의에서 더욱 구체화되겠지요.

수강자들은 비정규노동에 대해 문제적 시각의 강조, 비정규노동의 존재와 본격화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한국 자본주의 체제와 관계속에서 비정규직노동이 존재한다는 지적에 무거운 탄식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정립이 필요하다는 공감을 표했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문제를 제대로 짚는 것이 중요하고, 단기적이고 사업장 단위노조의 사고를 넘어서는 전계급적인 사고가 비정규노조운동이야말로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강한 이해를 표했습니다. 1강 문제화와 정의에 이어 다음 2강에서 더욱 심층적이고 비판적인 강의와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2024.8.1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여는 사파포럼 2024년 주제 ‘현장시리즈: 나의 투쟁,우리의 운동’ 두번째 토론회 “2019년 톨게이트 파업투쟁: 노동권과 일자리를 둘러싼 투쟁”이 2024년 7월6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열렸습니다.

잔뜩 찌뿌린 날씨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했지만, 톨게이트 노조 조합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많이 모였고, 현대제철 노조원등과 연대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말그대로 어떻게 하면 제대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투쟁은 운동과 멀어지지 않고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쟁과 연대가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고 ‘우리’가 되어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3시간동안, 발제 40분과 풍부한 토론으로 진행했습니다.

도명화 전지부장과 박순향 현지부장의 공동발제는 간결하고 핵심을 잘 정리했습니다. 톨게이트 2019년 경부선 캐노피 상공농성과 청와대 앞 농성, 김천 도로공사 점거농성, 그리고 2019년 10월 대법원 직접고용 일부 판결이후 청와대 앞 단식농성까지 숨가빴던 과정을 되짚어봤습니다. 그 투쟁에서 전술은 유연했고, 과감했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아니, ‘전술’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새겼습니다. 저들이 밟으면 ‘대응’하는 것이 아닌, 선제적이고 준비된 전술, 그리고 질서있는 퇴각에 대한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톨게이트노조 전국 파업이 있기전에 서산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14명의 여성노동자들의 질긴 투쟁과 파업이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게 현장에서부터 연대를 불러들이면서 싸웠던 서산 톨게이트 투쟁이 없었다면 전국적 파업이 없었습니다. 바짝 메마른 광야에 한점의 불씨가 된 것이라고 사회를 맡은 권영숙 대표는 말했습니다.

도명화 전지부장과 박순향 부지부장은 투쟁의 전 과정과 파업을 끝냈던 순간에 대해서 솔직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질문에 답하였습니다. 조합원들조차 몰랐던 사실을 서로 공유하면서, 투쟁을 복기하였습니다. 때로는 눈시울에 젖기도 했습니다. 내부의 토론회와 분명히 다르게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톨게이트노조를 넘은 시야로 토론이 가능했습니다.

톨게이트노조투쟁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서산 투쟁에서 지부장이 직권조인하면서 배신을 하고, 대법원 판결로 직접고용 일부 인원과 나머지로 나뉘어지면서 조합원 단결을 유지하여야 했을 때라고 했습니다. 자본과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톨게이트 노조는 정규직으로 직접고용되면서 노동권을 둘러싼 투쟁에서 일자리를 둘러싼 투쟁으로 만들어가야할 시점입니다. 과학기술의 도입과 자동화, 디지털 자본주의에 대해 그 변화를 당연시하지 말고 그 변화 자체와 속도에 대해서 일단 멈춤을 요구하며 저항할 수도 있다는 점,나아가 노동이 힘을 만들어 통제에 나서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권대표는 하였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토론이었고, 내용있는 질의응답이었습니다. 유튜브에 다시 편집본이 오르면 꼭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뒤풀이에서 어느덧 구호는 ‘나의 투쟁’, ‘우리의 운동으로’로 화답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3회 현장시리즈를 기다려주시고, 더욱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나의 투쟁에서 우리의 운동으로”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길 바랍니다.

2024. 7. 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세종호텔노조의 정리해고가 어느덧 900일입니다.

‘천일야화’도 아니고, 이런 야비한 시대극을 세종대학교 교육자본이 경영하는 명동 세종호텔이 멈출 줄을 모릅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노조를 축출하기 위해 단행한 정리해고를 억지스런 법논리로 정당화했습니다. 그리고 명동은 관광객으로 넘치고, 이 호텔 정문은 많은 투숙객들로 붐빕니다. 단 하나, 노조만 없는, 아니 노조를 만들고 지키려는 노동자들만 없는 호텔. 이런 개념없는 사용자를 인정하면 안되죠.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노조 만들 권리, 그리고 파업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지요.

세종호텔 노조 노동자들은 3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물러났는지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제 “전염병을 핑계로 한 노조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고 세종호텔 자본을 향하여 더욱 크게 외쳐야합니다. 기어코 노조있는 사업장을 당연히 받아들여야하는 사업장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리해고가 노조 없애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복직이 증명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종호텔 노조의 정리해고 투쟁이 복직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이유입니다. 힘을 모으는, 의지를 모으는 집회였기를 바라며.

  • 사파기금 연대자인 성주의 농부가 보내주신 참외를 가져가 나눔했습니다. 파업기금을 사회적으로 조성하여 지원연대할 뿐 아니라, 간간히 이런 나눔도 사파가 해오던 일입니다. 후식으로 맛있게 나눴다는 후문입니다.

오랜만에 기획한 [사파11차작은희망버스_거제 거통고지회 후원문화제 + 구미 한국옵티칼 공장 농성장편] 잘 진행했습니다.

2022년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이대로 살수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로 전면 공장내 파업을 할 때, 그 구호는 노동조건과 임금협상에서 배제된 비정규노동자들의 권리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선소 도크를 장악했던 파업은 조선소의 주력은 바로 비정규노동자임을 증언한 대사건이었습니다. 파업으로 비정규투쟁에서 사라진 대폭 임금인상 요구를 용기있게 걸었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투쟁은 사회적 파업으로 한국사회에 선명한 족적을 남겼지만 투쟁의 결과물은 미흡했고, 조합원들은 실망하거나 노조를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근 2년이 흘러 노조는 이제 다시 비상을 준비하고 4월19일 공장에서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으로부터 행진을 하며 다같이 나와서 조선소를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조각공원에서 후원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야외 풀밭에서 주점과 공연이 함께하는 독특한 행사를 개최했습니다.이석규열사를 추모하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비가 있는 곳에서요.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즐거운 분위기였고 활기찼고, 연대자들은 진심이었고, 조합원들은 밝은 모습으로 ‘환대’에 나섰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하길 바랍니다. 노조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더욱 힘을 비축할 것입니다.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는 마지막 연대 발언을 요청받아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연대”라는 제목으로 발언했습니다. 너무 중요한 요청이라고 생각하여 전문을 미리 써왔고, 쓴대로 읽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도 한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단결과 연대라는 화두를 생각거리로 삼아서요.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이라도 투쟁기금, 파업기금을 더 많이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사파기금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세계노동운동사 학습모임이 이 날 함께 했고, 참여비를 아껴서 거통고지회의 파업기금에 보탰습니다.
돈이 없으면 돈으로, 수가 모자라면 수로,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을 더해서, 거통고지회 꼭 승리하는 파업을 만들길 바랍니다.

후원문화제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사파11차작은희망버스는 4월19일 거제 옥포만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후원문화제에 함께 하고, 4월20일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날은 쨍하니 밝고 봄바람이 훈훈한 날이었는데, 이튿날은 폭우 속에서 출발하여, 도착하였을 때는 가랑비가 오락가락을 거듭했습니다. 날씨가 이 땅의 노동자 현실처럼 갈짓자로 흔들리고 있습니다.사파작은희망버스가 도착한 토요일 4월20일 한국옵티칼 박정혜 소현숙 두 노동자들은 104일째 저 옥상위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을 지켜주는 9명의 동료들, 그리고 연대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만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사회적 연대는 버텨낼 참호이고 활기를 불어넣는 생명수같은 것이 아닐까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근 1년만에 사파작은희망버스 11회차를 발진했습니다. 전주, 춘천, 부산, 김천, 광화문등에서 수백명이 모이는 사파작은희망버스와 사파동행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연대는 많이 축소됐습니다. 2011년 부산 영도로 가는 희망버스가 최대 1만8천명이 모였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조합원이 아닌 이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 연대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사파11차작은희망버스_한국옵티칼 공장편은 이 질문을 두고 출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시커멓게, 화마로 주저앉은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똑똑히 보자는 것이 첫번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해서 “불탄 공장 밟아보기: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접수하라!”를 함께 했습니다.

최현환 지회장의 길안내로 공장 내부, 공장의 뒤편, 노동자들이 두고간 신발장등을 살폈습니다. 건물에는 두 개의 현관문이 있는데, 이쪽은 제조직이고, 저쪽은 사무직 입구입니다. 제조업쪽 입구에는 “산재” 현판이 2022년 10월22일에 멈춰있었고, 사무직 현관에는 자랑스레 “NITTO”라는 현판이 붙어있었습니다. 최지회장은 불탄 공장을 소개하며 어떤 기분이 들까요?

공장을 소유했던 일본자본은 거액의 화재보험금을 챙겨 손해본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이 공장에서 6조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공장을 자신처럼 아껴라며 노동자들을 세뇌하다시피 벽보를 도처에 붙여놓던 자본과 관리직은 참 쉽게도 공장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자들도 버렸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불탄 공장을 사수하며, 이 공장에서 일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평택 공장에서 필요한 신규 채용을 하면서도 이들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바로 노조를 적대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본자본의 행태를 구미시와 이 나라가 방관하고 나아가 협조하고 있습니다. 항일, 반일, 극일 온갖 방식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왜 니토 자본의 ‘국내 먹튀’는 방관합니까. 노동자들은 묻습니다.

사파기금 권영숙 대표는, 위의 화두를 따라 준비된 기획발언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하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왜 연대는 ‘사회적’ 연대인가를, 우리의 연대는 어디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4/19 거제 발언에 이어서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민주노총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옵티칼노조와 노동자들이 좀더 힘을 가진 지금 이 때 함께 승리할 힘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 회사가 교섭에 나서는 최근의 기류는 노동자들이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였기 때문이고, 사회적 연대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웃으며 끝까지 투쟁! 연대!

2024.4.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2023년 4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후속행사로 “비정규노조운동 25년의 비판적 평가와 전망” 토론회를 9월16일 오후3시 서울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근로자파견법 입법후 비정규노조운동 25주년을 맞아서 비정규노동의 ‘문제화’ 자체를 문제삼고 비판적 성찰을 통해서 비정규노동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자리였습니다. 이는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소장)의 기조발제문 “비정규노동의 문제화와 실천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전망”에서 뚜렷한 화두였고, 권소장은 비정규노동 자체부터 문제화하여야한다며 정의를 둘러싼 논의를 하고, 이후 법, 현실/역사, 그리고 운동을 전체적이고 역사적으로 분석한 후 전망과 전략에 대해 제안했습니다.

권소장은 ‘비정규노동’은 전세계에 없는, 한국만의 이례적인 명칭이라고 규정하고, 바로 이 점이 ‘문제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7,80년대 조선업종등 대기업에도 비정규, 사내하청노동은 있었고 임시직이 40%에 육박하였지만, 그것이 체제적인 문제가 된 것은 바로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대기업정규직 ‘내부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그에 대한 ‘잔여적 포괄적 범주’로서 비정규노동이 의미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규직이 제도화되면서 ‘비정규노동’ 이란 개념이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권소장에 따르면, 비정규직문제는 “단순히 개별자본의 문제가 아닌, 조직하고 투쟁으로 돌파하는 문제가 아닌, 87년이후 노동체제의 전환과 연결”되는 핵심문제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의 제도화를 780년대의 개발국가의 연장선에서만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고, 87년 노동체제하에서 자본의 대응전략, 국가제도정치의 동맹, 그리고 노동의 선택 3가지 주체의 전략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1999년 최초의 비정규노조라는 한라중공업 투쟁에서부터 문제화와 실천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대공장 노조운동의 일환으로서 노동운동의 연장선에서 접근하여 정규직노조 직가입과 원하청연대를 제기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고, 이후 2단계에서는 조직노동이 비정규문제를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사업으로 협소하게 제한하고 근로자파견법법보다 개악 저지에 집중했으며, 마지막 2010년 현대차 대법원 판결이후에는 불법파견 철회 및 정규직 전환, 처우개선과 차별시정, 그리고 ‘노조할 권리’와 법률 소송 3갈래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파견법 폐지”를 구호로 내건 실천은 2000년 잠깐이었을뿐 거의 전무했습니다.

하지만 발제자는 애초에 비정규직 도입이 어떻게 이뤄졌나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만 “비정규직 철폐”가 구호뿐인 투쟁으로 전락하지 않고 비정규노조운동이 조직노동의 정규직 중심 기업별 노조주의와 경제주의의 한계를 넘어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길은 상위 근로기준법과도 충돌하는 ‘근로자파견법’의 폐지를 빼고 말할 수 없으며, 조직화로는 원하청연대를 넘어서는 전국비정규단일노조의 전망, 비정규직 산별교섭, 비정규직 철폐를 내건 사회적 총파업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1997년이후 비정규운동 진단과 전망”에서, 2022년 대우조선 파업투쟁은 불법파견 투쟁이 아닌 비정규직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생산을 멈추는 ‘파업’이었지만, 소수노조의 한계, 정규직노조의 인식차이, 산별노조의 현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면서, ‘법률투쟁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노조의 존재이유’를 계급적으로 재인식하면서 ‘조합주의를 탈피’하는 길에 나서야한다고 제안합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문제와 노조운동의 가능성” 발제에서, 특수고용은 조직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고, 노조운동의 가능성도 높다는 희망적인 진단을 내놨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화 혹은 ‘특고운동’은 2000년전후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대리운전기사들의 예처럼 조직화가 불가능하지 않았고 노조 가입이 증가세라는 점, 노동의 ‘플랫폼화’는 일반적인 양상이고, 특수고용은 기업별교섭이 아닌 ‘산별 업종별 교섭’이라는 점을 중요한 장점으로 제시했습니다.
토론회는 발제와 청중토론으로 3시간 30분 이상 진행됐습니다. 이상규 현대제철지회장은 “차별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을 위해 투쟁하였고, 2021년 현대제철 파업은 회사의 ‘자회사’ 카드에 맞서 ‘불법파견 소송을 지키는 파업이었다면서, 그러나 불법파견소송이 “불법파견 제소자를 없애면서 가장 적은 방법으로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정규철폐의 문제의식을 가져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윤용진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조선업종에서 최초의 비정규노조가 창립되긴 했지만, 어려운 조직화로 인해 조직 확대가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현장주체를 재생산하지 않고서는 조직력은 다시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김현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지회장은 불법파견투쟁이 ‘정규직되기’라는 기득권향상을 위한 조합주의적 요구로 변질하며 운동을 후퇴시킨 것은 분명하다면서, 파견법을 인정해야 가능한 불법파견 투쟁의 한계를 짚었습니다. 하지만 불법파견 투쟁 자체를 중단하는 것은 쉽지 않고 원하청 연대를 통한 원하청 파업의 가능성도 타진했습니다.
발제와 패널토론 모두 비정규 25년 운동에서 드러난 한계와 딜레마를 모두 느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조합원 대중의 의식상태와 정규직 전환 요구, 민주노총 산별의 한계 속에서 단위사업장 비정규노조운동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투쟁이 단위사업장 조합주의로 매몰되고 정규직전환투쟁으로 지속되는 한 비정규노조운동의 명분과 정체성도 약화됩니다. 토론회는 비정규직노조운동의 조직화 모델과 노조운동의 전망으로 이어지는 노력을 이런 소중한 자리로부터 시작해보자는 결의로 맺었습니다.

2023. 9.2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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