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민주주의와노동캠프’ 동영상이 완성되어 유튜브에 공개됐습니다. 많이 봐주십시오.

참가자 전원이 참으로 열심히 듣고, 발언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여름 장마비를 뚫고 방에서 더욱 솔직한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다음날 전원이 했던 1분 발언은 모두가 중요하고 의미있는 발언이었습니다.
전체 내용이 참 좋았지만, 동영상 제작과 분량의 한계로 말미암아 사진 등으로 포함하였습니다. 7분30초의 영상 많이 봐주세요.
다음에 이 토론을 이어가는 여러 기획들이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때: 2023년 8월26일 오후2시
곳: 서울 민주노총 15층 교육장

4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4강 연속 강의의 대단원이 8월26일(토) 오후 2시 민주노총 15층에서 4강과 함께 펼쳐집니다. 4강의 제목은 ” 2008년이후 민주노조운동 – 노동없는 민주, 계급없는 노동, 좌파없는 조합주의 속에서 노동의 미래”입니다.

4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의 대주제는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 노동운동사: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전환, 그리고 노동의 미래””였고, 강사는 87년이후 노동운동사를 지배적인 시각인 2단계론이 아닌 3단계론으로 제시하며, 1987년- 92년의 형성기, 1993년- 98년의 전환기, 그리고 98년이후 제도화시기등으로 나눠서, 1987년 태동한 ‘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전환 과정을 밝혔습니다. 이제 4강은 2008년 이후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을 진단하며 ’노동과 계급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망할 예정입니다.

강사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소장은 ‘민주노조운동’의 형성에서 전환까지 다루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를 단지 노조운동으로 한정하지 않고 노조운동, 정치적 노동운동, 나아가 노동의 정치적 사회적 동맹정치로 넓혀서 그 관계들의 동학과 효과들을 보는 시각을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해서 민주노조운동을 노동운동, 노조운동, 조직노동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집합체’로 간주하고, 한국 민주화의 이행의 경로와 노동의 선택이 교차하면서 어떻게 민주노조운동이 변화해왔는지 추적했습니다.

이제 4강은 2008년이후 현재를 진단하길, “노동없는 민주, 계급없는 노동, 좌파없는 조합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과연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과연 이 가운데서 ‘노동의 미래’는 그려볼 수 있을까요? 또 강사는 그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과 실천전략을 제시할까요? 4강이 기대되고 흥미롭지 않습니까. 함께 풀어가보도록 해요.

4강이 끝난후에는 “4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 종강식이 열립니다. 두달동안 집중하며 4강을 완수한 수강자들에게 축하를!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공동주관: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demlabor1848@gmail.com

조선하청 조직화 20주년 투쟁결의대회가 2023년 8월18일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편 좁은 자리에서 열렸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서 대표와 연대자들이 방문하여 그 자리에 함께 하였다.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2022년 거제도 옥포만 대우조선소에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도크를 점거하고, 배의 진수식을 처음으로 막는 공장내 점거파업을 하면서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조선소 경기가 불황이면 가장 먼저 낙엽처럼 떨어뜨리고, 조선소 경기가 활황이면 인력난을 메우기 위해 비정규 노동자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채용’하지만, 그것을 ‘채용’이라고 하지 않고 ‘계약’이라고 한다. 그 계약은 사내하청업체가 원청회사와 맺는 ‘계약’일뿐, 원청 회사가 그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하청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하청회사는 교섭마다 ‘실권없는 바지사장’ 짓을 한다. 노조를 만들고자 하면, 혹은 노동조건을 두고 투쟁하면 ‘계약 해지’하면 원청은 그만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울산 현대엔진-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울산의 투쟁과 거제도 옥포만의 대우조선의 조선소 투쟁이 상징한다. ‘옥포만의 상륙’작전이 육해공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1987년 정작 노동자대투쟁의 첫 희생자는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생겼다. 바로 내일이다. 1987년의 8월22일 오후 2시40분 당시 나이 22세의 노동자 이석규는 대우조선 다리를 건너 가두시위도중 폭력경찰이 쏜 최루탄에 직격으로 심장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후3시30분 운명했다.

바로 거통고사내하청지회가 작년 파업했던 바로 그 곳이다. 이석규는 당시 정규직이었지만, 87년까지 열악했던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김우중 당시 회장을 만나겠다고 가두시위를 벌인 대열에 있었다. 그 때 정규직 조선소 노동자가 오늘날의 비정규직이나 다름없었을 때다. 그리고 지금 대우조선의 대우조선지회는 바로 그 이석규가 죽어 만들어진 민주노조다. 하지만 지금 대우조선 노조는 비정규노조의 투쟁에 몽니나 부리며 회사에서 “꿀물”을 기대하는 어용노조화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대우조선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메카”라고 한때 자임했던 울산 미포만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처참한 상황이다.

이석규의 오늘날 후배 노동자들, 이석규의 정신을 이어가는 조선소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가 아니라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들과 그들이 만드는 노동조합이다. 대우조선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파업을 했듯이, 현대중공업, 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등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연이어 투쟁하고 파업을 전개할 것이다.

벌써 20주년이 되었다. 2004년 현대중공업 비정규노동자 박일수가 분신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사흘뒤 동지인 이운남이 고공농성을 하다 회사의 경비대에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끌어내려졌다. 머리를 다쳤던 이운남은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12월22일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2004년이후 조선소 비정규노동자들의 노조 만들기는 80년대 노조만들기처럼 힘들다. 노조를 만드는 순간 계약해지당해 회사에 발도 붙일 수 없는 노동자들, 같은 민주노총-금속노조 산하의 민주노조라는 정규직 노조들의 괄시와 적대, 그리고 은근한 회사와의 공범관계등. 조선소내 비정규노조 만들기를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파업을 시도하고 포기하고 또 시도하고. 그 결과가 바로 2022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파업이었다. 그 파업은 단지 대우조선 파업이 아니었다. “이렇게 살수 없지 않습니까?”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기 전에 조선소 비정규 노동자들을 향해 각성을 촉구하는, “깨어나자”고 외친 선동문이었다.

그들이, 울산의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거제의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그리고 올초 투쟁했던 영암 삼호중공업(광전지부 소속) 조선3지회가 함께 이날 투쟁결의대회를 연 것이다. 그 의미가 가장 크다. 각자의 자본들에 맞선 투쟁을 기억하고,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함께 할 공동투쟁, 공동파업을 생각하며 한 자리에 모였을 것이라고 믿겠다.

그런 연대의 마음으로 당일 결의대회후 함께 모인 자리의 식대비 90여만원을 지원하였다.

앞으로 건투를!
조선소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으로!

2023. 8.21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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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3강이 “노동운동의 제도화 (1998-) – 사회적 대화와 내부적 배제” 란 제목으로 8월12일 오후2시 서울 금속노조 4층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3강은 당일 대규모 집회등으로 참석률이 약간 저조했으나, 현장 투쟁중인 노동자들이 줌 참석으로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사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은 자신의 2017년 논문을 교재로 삼아 노동운동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 설명하면서, ‘역사적 반가정 (counter-factualism)’방법을 계속 적용합니다. 만약 그 때 그 시점에 노동이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 ‘정세’에 구체적 개입이 달랐다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구조는 이미 결정지워진 것이 아니며, ‘역사’는 이미 예정된 경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때 그 시점 그 노동의 선택은 다음 단계의 조건이 된다면서, 이것도 ‘경로의존성’이라 표현했습니다. 달리 말해서 행위자인 노동이 누구인가, 계급적 형성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 때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은 과연 옳았는가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만큼 반성적인 역사 이해, 그리고 주체의 형성과 주체의 선택, 그리고 강사가 항상 강조하는 ‘구체적인 정세에 구체적인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다음에는 다르게 할 수 있고, 그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했거나 했어야했다는 것입니다.

강사는 1998년 시작된 ‘제도화단계’는 이런 경로의존적인 노동의 선택이 세계화의 광풍속에서 어떤 댓가를 톡톡히 치렀는지 선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합니다. 또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이 거의 주조되었던 시기였고 지금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수강자들의 탄식도 그만큼 커졌고, 토론에서 현재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고민들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강사는 냉정하게 형성기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의 “존재의 궤멸”을 막긴 했지만, 동시에 “국가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여, 민주주의를 노동계급 주도로 급진화하고 사회적 실체적 민주주의로 만들지 못한 전환기”를 거친 결과, 바로 그 성격이 이후 “제도화단계의 선택과 방향을 예비하는 ‘경로의존적’ 조건”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속에서 세계화가 한국 노동계급에 미친 영향은 노동운동의 성격 변화로 인해 더욱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아니 민주노노조운동의 선택과 내부적 변화가 세계화라는 시험대 위에서 여지없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한국 노동계급 전체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기에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은 법적 인정을 통한 제도적 통합을 선택했고, 1999년 공식적으로 합법화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로부터 여러 정부 위원회 참가등으로 “제도화단계”에 이미 진입했습니다. 2000년부터는 정부 보조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외부적 제도화’, 즉 전국적 산별 단체 교섭구조의 확보를 통해서 노동계급내부의 조건을 상향 평준화하는 데 진전을 이루지 못한채 ‘내부적 제도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괴리와 충돌을 빚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외부적 제도화가 지체되고 있었지만, 노동은 노동운동에서 노조운동으로 그리고 ‘조직노동’으로 내부적인 제도화를 본격화합니다. 이로 인해 첫째, 제도적 교섭과 노동동원 사이의 긴장 점증, 둘째 중앙 교섭과 현장 투쟁의 괴리로 뚜렷한 ‘이중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조직’으로 형식화, 전문화, 위계화되고, 대중동원은 스탭(상근, 간부)위주로 바뀌면서 ‘총파업’이 사라집니다. 집단교섭과 현장투쟁은 여전히 단위 기업노조에 맡겨지고, 중앙은 자본을 상대로 한 전국적 교섭없이 ‘노정’교섭이라는 기괴한 교섭 형태에 매달리고, 대정부 요구 투쟁, 제도 개선 투쟁에 주력하며 ‘정치화’됩니다. 노동자 투쟁은 갈수록 개별사업장으로 고립되고 중앙조직의 엄호 및 지도가 부재한 가운데 투쟁에서 중앙과 현장의 괴리가 커집니다. 그리하여 ‘무쟁의’ 합의 사업장 대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쟁의양상의 양극화도 심화됩니다. 강사는 민주노조운동의 이중화, 이중구조, 양극화는 우연적인 현상이거나 비정규직 도입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의 전환기에서 시작된 노동의 선택이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김대중 자유주의정부가 본격적으로 진행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절대 모든 노동계급에게 단일한 효과를 균등하게 미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고임금을 유지하였고, 중소기업은 임금하락과 해고 광풍을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본과 대기업 조직노동은 ‘정리해고’이면에서 ‘비정규노동’이라는 해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사회적 대화와 내부적 배제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강사가 서늘하게 표현한 이유입니다.

결국 비정규노동의 출현은 자본과 국가의 노동시장 구조조정정치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와 노동의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이로써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시장이 분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은 노조운동에서 새로운 ‘진입부대’로서 의미도 큽니다. 문제는 비정규노조운동의 정체성이 과연 이전의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입니다.

4강 마지막 강의는 비정규노동조합운동의 가능성을 비롯한 노동의 현단계 진단, 그리고 한국 노동계급과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3강까지 수미일관되게 이어진 역사서술과 강사의 문제의식이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해 어떤 진단과 미래를 그려낼까요. 4강의 제목은 “2008년이후 민주노조운동 – 조합주의 속에서 노동의 미래”입니다.

2023.8.16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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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 받는 말

폭염 시기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8월 1일 쿠팡노동자 하루 파업.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파업 기금인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을 받을 자격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비조합원인 현장 노동자들에게 ‘파업’이라는 단어를 통해 노동조합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실제로 조합원, 비조합원이 함께 동참하는 출근 거부 운동을 현장에서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빠르게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벤치마킹하고 있는 아마존이 그러하기 때문일까요? 쿠팡이라는 기업, 구체적으로는 쿠팡 물류센터 현장은 그야말로 ‘노동 문제’ 백화점입니다. 냉난방장치 없어 여름에는 찜통, 겨울에는 영하 10도. 그와중에 휴게시간 없음. 고용의 절반이 일용직, 나머지 역시 12개월 계약직이라 재계약에 목매며 회사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 휴대폰 반입 금지 등 각종 인권침해와 직장 내 괴롭힘. 최저임금에 장시간 야간노동. 은폐되고 있음에도 국내 10위 안에 드는 산재 인정수. 과로사와 각종 산재 사망. 이런 현장에서 3만~4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한때 국내 시가총액 2위, 고용규모 3위를 기록한 쿠팡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2021년 6월 6일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현장에서 꽤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워낙 열악한 현장이었기에 여전히 부족합니다. 성과를 보고 느끼며 더 많은 쿠팡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 쿠팡 물류센터는 ‘계속 일하면서 바꾸고 싶은 현장’이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떠나고 싶은 현장’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의 쿠팡 잠실 본사 농성 투쟁, 그리고 올해의 8.1 하루 파업과 휴게시간 지키는 준법 투쟁, 그리고 8.14 하루 쿠팡 불매. 모두 ‘떠나고 싶은 현장’의 노동자들의 가슴에 ‘하루를 일해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는 따뜻한 희망의 불을 지피기 위한 부싯돌 작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꺼이 장작을 내어주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감사의 말 드립니다.

2023년 8월 11일(금)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지회장 정성용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기금지원을 알립니다. 이번에는 플랫폼 물류회사 쿠팡에서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하루 파업을 감행한 ‘전국물류센터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금액은 5백만원입니다.

쿠팡 노동자들은 물류센터, 배송, 그리고 택배 등에서 일합니다. 이중 물류센터는 쿠팡풀필먼트(fullfillment)라는 묘한 이름의 쿠팡 자회사에 소속돼있습니다. 그리고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은 다시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일용직까지 위는 좁고 아래는 퍼진 피라밋 구조안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쿠팡을 이런 노동의 피라밋구조로 보지 않습니다. 쿠팡은 ‘전자상거래’로 주문하고 이른바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속도전 배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가 택배에서도 구현됐습니다. 이것으로 쿠팡은 전세계적인 도약을 꿈꿨고, 급기야 뉴욕 월스트리트에 상장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쿠팡이 전세계 자본가들의 전시장인 뉴욕증시에 상장을 감행할 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흑자전환보다는 열악한 노동조건이었습니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자 처우는 자본의 논리가 판치고 ‘시장의 원리’가 유일한 경영 기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좀 저어됐나봅니다. 하지만 쿠팡은 상장에 성공했고, 최대 주주 김범석은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이 돈방석에 누가 앉혔을까요? 로켓이?

쿠팡이 인터넷 플랫폼과 로켓배송이라는 빠른 배송을 자랑하지만 정작 쿠팡의 주문부터 배송까지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땀흘리는 노동자들입니다.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전국 곳곳에 거대한 ‘물류센터들’들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단지 물류창고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물품을 쌓고 분류하고 택배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과정을 진행하는 ‘노동과정’의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여전히 창고일뿐이라는듯, 그 안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때문에 쓰러지고, 겨울에는 추위로인한 저체온증 동상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졌을 때는 전염병에 무차별젹으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적인 K-디지털자본주의하에서 플랫폼노동의 실체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쿠팡 물류센터는 ‘물류창고’가 아닌 노동자의 일터, 노동과정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의 힘든 노동조합 창립 과정을 거쳐, 8월 1일 노조원들은 ‘하루 파업’을 감행했습니다. 비록 전면적인 공장내 파업은 아니지만, 폭염노동 철폐를 내걸고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을 외친 노조의 목소리에 동조한 노동자들이 당일 근무 거부라는 형태로 동참했습니다. 이제 출발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상징적인 첫 파업을 했습니다.

7월 26일 인턴4센터앞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8월 1일 첫 파업을 결행한 쿠팡물류지회가 앞으로 이 기세를 몰아서 더욱 약진하길 바라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5백만원을 지원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자 투쟁이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 아닌, 파업투쟁에 대한 파업기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조와 노동자들의 파업 건투를 빕니다!

더불어 꾸준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모든 연대자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파기금의 상시적인 파업기금 조성 활동에도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2023년 8월 10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기금 연대 참여방법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 https://www.ihappynanum.com/Nanum/B/6M2FZQRY5J

*단체 후원
직접이체: 국민은행 822401-04-122822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신청: https://bit.ly/3D04xK2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돈이 모이는 대로 사회적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칙하에 노동현장에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정투위 지원을 시작으로, 쌍용차노조 2회, 재능교육노조, 코오롱정투위, 콜트콜텍노조 3회, 희망뚜벅이, 포레시아노조, 노동자공투단, 방한품연대, 전북고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3회, 전국해고자의 날(전해투), 보워터코리아노조, 박정식열사투쟁대책위, 골든브릿지증권노조 3회, 유성기업노조 2회,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 2회, 진흥고속노조, 기륭전자노조, 발레오만도노조, 보건복지정보개발원노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희망연대 티브로드노조, 씨엔엠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노조 3회, 울산과학대노조, 오체투지노동자행진, 침낭연대 2회, SK브로드밴드노조, LG 유플러스노조, 부산택시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2회, 아사히사내하청노조, 한국지엠군산지회, 청주시노인병원노조 2회, 동양시멘트비정규지회 2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비정규노동자의집(꿀잠) 추진위원회, 하이디스노조, 의료연대경북대병원주차관리노조, 갑을오토텍지회, KEC노조 2회, 노동탄압민생파탄박근혜정권퇴진을위한공동투쟁 3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2회,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 파인텍지회(구 스타케미칼), 레이테크코리아노조, 춘천환경사업소노조 2회, 공공운수 택시지부 2회, ‘사드철회평화회의'(소성리종합상황실), 민주일반노조연맹(톨게이트노조) 2회, 전국농성장 방한품연대, 비정규직긴급행동, 활동가지원기금 2회, 코로나19마스크연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노조, 백기완기념관 건립기금, 비전향장기수 ‘만남의집’,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비정규직이제그만에 지원했습니다(5백만원이상 고액기준).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8월9일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농성중인 인천4센터앞 문화제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이날 사회적파업연대기금 5백만원 기금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쿠팡물류센터 노조를 만든 노동자들이 올 여름 폭염노동을 멈추기 위해서, 폭염 파업을 시도했습니다. 7월26일부터 인천4센터 바로 코앞에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8월1일 하루 파업을 시도했습니다. 조합원이라는 사실조차 숨겨야하는 ‘비밀조합원’들이 농성장 앞 집회에 참여하고, 8월1일 당일 비조합원들까지 포함하여, 하루 파업에 동조한 이가 수백명에 이르렀습니다. 요구 조건은 폭염시 휴게시간 보장입니다.에어컨 설치입니다. 기본적인 일터의 ‘안전’을 위한 ‘적정 작업온도’를 유지해달라는 것입니다. 쿠팡은 차일피일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쿠팡만이 아니라, 쿠팡이 ‘전세계적 경쟁자’로 여기는 미국 아마존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는 연대 발언에서 이를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다음은 발언 요지입니다.

“쿠팡은 전자상거래(e-commerce) 플랫폼과 로켓배송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쿠팡의 물류배송은 인터넷과 로켓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폭염속에 엄청난 땀을 흘리며 물류를 분류하고 뜨거운 거리에서 배송하는 인간,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 노동은 ‘그림자 노동’입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 보이지 않아야하는 노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자본주의’에서 ‘플랫폼노동’이라 불리는 노동의 모습입니다. 화려한 AI의 현란한 지식 자랑 뒤에는 지식을 캐고 나르고 쌓고 진위를 가리는 수많은 인간 ‘개미들’의 노동이 은폐돼 있습니다. 택배배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 상거래 회사 쿠팡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가시화’하고, 더이상 ‘그림자’가 아님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노동조건을 바꾸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바로 ‘노동자화’, 그리고 ‘노동자성’을 획득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리고 현장에 작은 일들, 이슈들까지 쟁점화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휴게시간 보장, 에어컨 설치등이 대표적입니다.

8월1일 파업은 이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처음 시도한 파업이었습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이야말로 세상을 멈추는 파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택배’가 멈출 때 세상이 멈출 것입니다!
이 파업을 계기로하여 더욱 기세를 모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여러분의 기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 하기 위해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집회를 해본 적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적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감동을 만들고 느껴가는 신생노조의 모습입니다. 문화제형식의 집회가 열린 바로 이 넓은 장소가 노동자들과 연대자들로 꽉 채워지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2023.81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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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와 공동으로 여는 ‘4기 민주주의와노동학교’가 후반부로 접어들어 3강을 8월12일(토) 오후2시 장소를 바꿔 서울 금속노조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 노동운동사: 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전환, 그리고 노동의 미래”라는대주제하에 1강에서 87년 민주화이행이후 ‘민주노조’의 출현, ‘형성기’ 노조운동의 성격과 정치적 민주주의하 계급투쟁의 내용등을 살폈고, 2강에서 1991년 “꺾이는 해”로 강사가 명명한 ‘전환점’을 거쳐 1993년 김영삼정권 등장후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노동에 대한 대응전략, 그리고 노동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폈습니다. 3강은 강의 제목 그대로 ‘노동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것입니다.

강사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소장은 흔히 정의없이 이야기되는 운동의 ‘제도화’를 내부적 대 외부적 제도화로 구분합니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들에서 문제되는 ‘상근자(스탭)’ 처우 문제는 결국 노조의 내부적 제도화 과정이 만든 전문화, 관료화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된 3단계 노동운동이 이제 ‘조직노동’으로 전일적으로 자기 전화를 완성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외부적 제도화의 특징은 조직과 집합행위 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사회적 대화’와 ‘내부적 배제’가 어떻게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기제인지 등에 대해서 강의할 것입니다.

*읽을거리: 권영숙, 2017.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전환과 시기 구분, 1987-2006”, <사회와역사> 115호. pp. 322-344

“하지만 이런 내적 전환은 전투적 조합주의의 기치아래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를 주장하며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과 그를 대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자임했던 형성기 민주노조운동의 성격으로 보면 크나큰 질적 전환이었다. 이러한 내부적 전환의 특징은, 이후 바로 닥친 세계화의 광풍과 외환위기 속에서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환기 노동운동의 내부 성격 변화가 어떻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계급의 양극화에 대해서 맞서고 굴절되어갔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 강사의 말

4기민주주의와노동 학교 전체 소개: https://bit.ly/노동학교4기

주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apafund@gmail.com
공동주관: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 demlabor1848@gmail.com

4기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2강이 “노동운동의 전환기 (1993- 1998) – 포위와 조직노동의 제도화 모색”이란 제목으로 7월29일 오후2시 장소를 민주노총 15층으로 옮겨 진행되었습니다. 대면 강의와 줌 강의 두 가지로 진행했습니다.

강사인 권영숙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 소장은 87년이후 노동운동사를 민주주의와 노동계급(운동)의 상호적인 관계의 동학으로 풀어서 3단계로 ‘시기구분’하면서, 1997년이 아닌 1991년-1993년을 전환점으로 삼았습니다. 2강은 바로 시대구분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노조운동의 전환”기를 들여다봤습니다. 시기적으로 1991년 5월투쟁의 패배로부터 1993년 김영삼정권의 등장이후 ‘신노동정책’과 1996년 ‘노동법개정’까지 다뤘습니다.

” 결국 국가-자본-노동 모두 ‘전환’기에 돌입하였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현존하는 ‘노동배제적’인 정치적 민주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정치적 기회구조를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가 국가 앞에 있었다. 특히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강력한 생산파괴력을 가진 대공장 수출주력 산업 노조들의 전투성을 어떻게 거세하고 국가-자본 동맹에 순응하도록 만들 것인가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국가와 자본 앞에 있었다. 반면에 노동으로서는 전노협의 조직적 존속이 어려운 가운데, 과연 어떻게 새로운 내셔날 센터를 세울 것인가라는 과제가 놓여있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결집의 방식이기도 하고, 노동계급 혹은 조직노동의 이해를 어떻게 실현 혹은 제도화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권영숙, 2017. 312쪽)

강사는 노동운동, 노조운동, 그리고 조직노동이란 개념을 각각 구분하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조대표자회의에서 ‘노동정치조직’의 조직가입을 배제하면서 ‘노조운동’으로 전일화되었고, 민주노총기에 들어서 ‘전환기’의 조직적 정치적 과제에 대한 우경적 경로를 택하면서 ‘조직노동’의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였다고 지적합니다.

김영삼정권하 정치적 기회구조가 일방적 탄압과 배제에서 선별적 수용과 ‘포위적 처방’으로 바뀌면서, 국가의 노동정책은 ‘억압적 개입과 사법적인 통제의 혼합’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지금 손배가압류등 문제가 되는 노사분규의 형사화(범죄화), 사법화(민사화)가 바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점을 강사는 강조하였습니다. 바로 민주노조운동과 한국 노동체제 문제의 단초는 바로 이 ‘전환기’의 성격에 있었고, 민주노총은 이런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였는데 그러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영삼정권은 ‘신경영전략’과 ‘신노동정책’이란 이름으로 현장 권력 재장악, 임금체제의 변화, 그리고 담론과 정책의 혼융으로 구체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전환기에 노동의 선택은, 어떻게 단일한 조직화모델을 가져올 것인가와 어떻게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집합행위의 전략을 택할 것인가였습니다. 약간의 치열한 사투끝에 노동은 노동법 개정을 통한 ‘법적 인정’투쟁을 통해서, 조직적 전국적 교섭구조의 확립을 통한 산별화 모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좌파와 단절하고 노조중심의 정치세력화를 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총구호는 “노동해방”은 “노동총단결”로 그리고 “민주노조 총단결”로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산별 전국적 교섭구조의 제도화에 여전히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는 단지 한국적 노자관계의 문제뿐 아니라 민주노총이 기업별 노조주의와 조합주의를 그대로 안고 만든 정상조직인 탓도 있었습니다. 이 기업별노조를 넘어서는 문제를 민주노총은 태생부터 숙제로 안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는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 35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노총은 여전히 기업별 단위 단체교섭에 기초한 기업별 노조모델, 그리고 좌파적 이념으로부터 거리를 둔, 조합주의를 정치적 조직적 방침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노조 중심의 정치세력화로 귀결되었습니다.

수강자들은 전환기의 성격,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강사의 비판적인 접근에 대해서 일부는 “충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충격에 맞게 많은 활발한 토론과 문제제기,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하나 하나 되짚고 살피면서, 과거의 역사가 결국 오늘을 만들었다는 ‘현재의 역사’라는 점을 씁쓸하고 명확하게 인식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렇다면 1997년 노동법개정으로부터 ‘제도화’의 단계라고 강사는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제도화였을까요? 8월12일 3강 “노동운동의 제도화 (1998-) – 사회적 대화와 내부적 배제”에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2023. 8. 0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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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민주주의와노동 연구소와 공동으로 여는 ‘4기 민주주의와노동 학교’ 2강이 7월29일(토) 오후2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열립니다.

신청자들은 빠짐 없이 참여해주시고, 2강부터라도 신청하고싶은 이들은 빨리 신청해보세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대주제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 노동운동사 – 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전환, 그리고 노동의 미래” 하에, 7월22일 1강에서 87년이후 노동운동사 시기구분의 문제와 노동자대투쟁 및 ‘형성기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강사 권영숙 소장은 ‘민주노조운동의 형성’이라는 문제를 던지며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한계가 그대로 1987년-1992년 사이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기업별 노조체제의 명암, 그리고 탈계급화된 전투적 조합주의의 명암이 바로 그것입니다.

2강에서는 형성기 민주노조운동이 어떻게 한국의 민주화 이행이후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상호 격돌하고 작용하였고, 노동은 어떤 이유로 특정한 경로를선택하였으며, 그 결과 어떻게 ‘자기 전환’하였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현재의 역사’를 과거를 통해서 재구성하고자하는 이번 학교 강의의 의미가 1강에 이어 2강에서 본격적으로 구체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읽을거리: 권영숙, 2017.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전환과 시기 구분, 1987-2006”, <사회와역사> 115호중 pp. 311-322.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이 경공업 중소기업여성노동자들이었다면 노동자대투쟁의 주역은 대공장 재벌 중화학 금속 남성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이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헤게모니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대기업 재벌 중화학 금속 남성노동자들의 전체노동계급 내에서 차지하는 사회경제적인 우월성이 노동자대투쟁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형성기 노동운동은 노동계급 구성의 다양화와 이질화와 함께 이런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로 나타나기 시작한 노동계급 내부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마디로 임금투쟁이 성공적일수록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또한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그 노동자들이 소속된 자본의 시장 지위를 반영하고 있다는 숨겨진 진실은 민주노조운동의 내부 전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 노조 요구에 대한 자본마다의 불균등한 수용은 기본적으로 그 자본의 시장 지위에 의존했으며, 이는 다음 단계에서 노동계급의 내부적 양극화와 새로운 종류의 불평등을 낳은 원천이 되었다. 노동자들이 임금 투쟁에 더 열심일수록,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것은 이 시기 전투적 조합주의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형성기 노동운동이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노동운동의 전환기적 성격이 달려 있기도 했다.”
– 강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