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8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돈 만원씩 보태기를 제안한 글입니다. 사파기금이 만들어진지 한달된 때에 사파기금의 취지를 분명히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즉 모두가 자신의 노동의 댓가인 피같은 금전으로 나와 더불어 노동하는 사람들에 연대하는..).

<만원의 기적>

by Young-sook Kweon on Saturday, August 27, 2011 at 3:0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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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원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지요…근데 여러분, 이제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어제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의 주점에서 전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한 사람의 제안이 씨가 되고 말이 돌아 공론이 되고 여러 아이디어가 실천이 되는 과정이 결국 어떤 ‘희망세우기’의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어쩔꼬, 하는 심적 부담감….그리고 어떤 분이 스쳐지나듯 하신 말, 즉 진숙85기금은 희망버스에 이어 다시 신명나는 집단성의 경험을 한 마당이라고 한 것도 귀에 박혔습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자문… 그리고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은 이 자본주의 사회의 ‘허’를 찌르는 발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리 심오한 의미를 부여해도 될까 하는 의구심.

하지만 맞습니다. 돈이 웬수같고 돈이 사람을 죽이는데, 그리고 흔히 돈=자본인데, 그 돈이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세우고, 나아가 돈이 노동의 편이 된다는 발칙한 발상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면서 이는 증명됐습니다… 그래서 우린 한달동안 근 삼천만원에 이르는, 돈 아닌 ‘희망’을 일궜습니다. 아니, 아직 어줍잖게 희망을 말하긴 이르더라도 우린 적어도 희망의 끝자락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기적을 이룹시다.. 만원의 기적..

진숙85기금의 멤버들이 현재 1076분입니다. 우리 각자가 이제 만원의 기적을 보여줍시다. ‘희망의 버스’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정치권을 어쩔 수 없이 부산 영도로 향하게 했듯이, 그리고 파업연대기금이라는 아이디어가 풀뿌리들의 실천으로 이만큼의 노동을 향한 사회적 연대의 폭을 증명하였듯이, 이제 우리, 우리 하나하나가 ‘힘’임을 보여줍시다. 아니 기적을 행합시다.

모두가 하나인 듯, 그리고 하나가 모두인 듯 우리는 기적을 행할 사흘동안의 말미를 얻었습니다. 일요일까지, 시간되는대로 아니 시간없어도 짬을 내어, 그리고 누군가를 대신하여 미리, 혹은 돈을 모두 추렴하여 한 명이 대표로 ‘만원데이’에 동참해주십시오. 그러면 10760000원이 모입니다. 이는 현재 우리 기금을 두배로 늘릴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러면, 힘들게 싸우고 있는 노동의 현장에 다시 지원할 수도 있겠고요.

우리 어제 주점에서 확인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절대 주식시장의 개미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 “부자되세요”를 외치는 돈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되는 세상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아는 집단지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돈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상징으로 우린, 배춧잎 하나를 고이 ‘희망의 배’로 접을 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흘의 항해를 거쳐, 새로운 희망의 터전으로 향해갈 기적의 만원 티켓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만원의 기적”, “만원의 공감”, “만원의 희망”에 함께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가를, 어떤 사람들인가를 조남호 같은 자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십시다, 한다면 한다!!!

(이 글은 “이 해의 끝자락, 사회적파업기금으로 연대하자”라는 제목으로 사파기금의 페이스북 그룹담에 올린 글을 부분 수정했습니다).
by Young-sook Kweon on Thursday, January 5, 2012 at 2: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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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7월에 일단의 무모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올 하반기는 정말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간 말이 씨가 되고, 그 생각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통해서 다시 실천이 되고, 나아가 현실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정말 기막힌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왠지 거부감을 가졌던, 그리고 한국의 노동현실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한 절망을 요구한다고, 절망속에서 차라리 버텨나갈 힘을 찾아야한다고 봤던 저같은 사람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글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경험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하는지. 누구 말대로 사파기금의 발전정도가 이 사회 노동연대의 바로미터가 되겠지요, 그리고 사파기금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긍정하는 이 사회의 건강한 의식의 산증인, 증좌가 되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사파기금은 노동하는 자들의 사회적 안전망, 믿고서 공장의 문을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노동의 지지선이 될 수 있겟지요. 그리고 나아가 사파기금은 이 사회 노동자들의 파업기금을 통해서 스스로 해소할 수도 , 나아가 더욱 발전적 진화를 할 수도 있겟지요. 

그러나 그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사파기금은 이제 막 일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쭐해서도 안되고 뭐인양 뻐기는 것도 금물입니다. 노동에 대한 무슨 시혜자인양 자선기부를 하는 양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사파기금이 마치 ‘자기정당성’의 근거인 양 허세를 부릴 수도 없겠지요, 이는 단지 우리 삶의 일부일 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의 제안대로, 큰 몫돈이 아니라 유명인사가 내놓는 금일봉이 아니라 우리의 푼돈, 우리가 노동하고 받는, 피같은 노동의 댓가를 십시일반, 혹은 자신의 것 좀 덜 먹고 함께 출연하는 기금, 바로 그것이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초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머니머니해도 그래도 돈으로 하는 연대가 핵심이지요…^^ 사파기금이 만든 페북그룹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내에서 노동에 대한 토론도 좋지만 기금 출연을 잊지마시길 부탁합니다… 쌍용차노조에 3차 기금출연이후 기금은 당연히 다시 줄었겠지요? 이제 다시 우리의 피같은 노동의 댓가인 금전을 모아야지요, 그래서 노동파괴의 현실에 처한 다른 노동하는 사람들에 연대해야지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그들이 어쩌면 우리 대신 싸우고 있는거지요. 왜냐하면 이 땅의 노동시장을 보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우리 모두의 미래일 수 있습니다, 나와 내 아이들의 노동 미래를 위해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여러분 노동의 댓가인 피같은 돈을 조금씩 보태주세요. 바로 바로 모이는대로 장투사업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싸움에, 그들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전달합니다… 

작정하고 날잡아 금액이 되는대로 결행하셔도 좋고, 본인이 정한 날에 통장서 자동이체도 좋고, 아래 cms 자동이체도 좋고….이 땅의 노동자들, 농민들, 청년학생들, 그리고 시민 여러분, 모두 잊지마시고 여러 방식으로 형편되는대로 사파기금에 함께 해주시길… 

사회적파업연대기금 CMS 신청서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viewform?hl=ko&formkey=dHk2N0hZUWVJd0Y5cHB2aU9hZHcxcVE6MQ#gid=0


2011년 9월 13일 방송된 인터넷 방송 라디오21(http://radio21.tv/) 의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인터뷰입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기금을 모으고 운용하는가, 그리고 한국사회 노동현실과 노동에 대한 사회적연대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고 있습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취지와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 되는 방송이므로 한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라디오21 방송 다시듣기  http://radio21.tv/new0904/re_player.php?no=17379 

(아래의 기사는 지난 2011년 12월 5일, 한겨레신문 사회면에 실린 ‘장기투쟁사업장을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후원주점’ 기사입니다.  원 기사의 링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8498.html# )

오프라인’ 후원주점 연 사회적파업연대기금
SNS로 기금 모아 한진중 노동자에 2천만원 지원
이젠 재능교육·콜텍 등 장기투쟁사업장 후원 집중
주점에 1천여명 방문…그림·책 등 기증품 경매도
3일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서 그림 등 후원물품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연대가 희망이다!”

지난 3일 밤, 서울 중구의 한 주점에 모여든 1천여명의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이하 연대기금) 조성 후원주점이 이날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열렸다. 테이블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는 이들은 스스로 행사를 돕겠다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00일 가까이 길거리 농성 중인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이날 주방일을 맡았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수의학)가 보내온 그림을 비롯해 책·사진·양주 등 각종 기증품은 기금 마련을 위한 경매에 붙여졌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대기금을 모으자는 움직임은 지난 7월 시작됐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해서였다. 연대기금 모금은 희망버스를 타지 못하더라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 이후, 연대기금 모금에 나선 이들의 시선은 재능교육·콜트콜텍·코오롱·쌍용자동차·흥국생명 등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대기금 조성을 처음으로 제안한 권영숙 박사(사회학)는 “서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위해 기금을 마련해두지만 한국에선 이런 개념이 낯설다”며 “한국에서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국가 공권력이나 사쪽 폭력뿐 아니라 생계를 위협하는 돈의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권 박사와 뜻을 같이하는 페이스북 그룹(진숙85기금)에는 1470여명이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약 4600만원의 기금이 조성됐으며, 한진중공업과 재능교육 노조에 각각 2천만원과 500만원을 전달했다.

이날 후원주점에는 마흔살 이상의 중장년층이 많이 찾았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강희(41)씨는 지난 10여년간 노동 문제를 잊고 살았다. 대학 졸업 뒤 노동운동에 참여했었던 이씨가 다시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올해 초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소금꽃 나무>를 읽으면서부터다. 이씨는 “그 책 속에 묘사된 구체적인 상황이 <전태일 평전> 속 예전 노동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장기투쟁 사업장을 모른 척하고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권영숙 박사는 “2005년 이후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적이 없는데, 이는 민주주의에서 노동이 철저히 배제돼 왔기 때문”이라며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에는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가 꿈꾸던 사회를 만들었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글·사진 박현정 기자saram@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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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2월 말,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모금에 동참하신 김영주님이 사파기금의 페이스북 그룹 담벼락에 남기신 소회입니다. 노동자임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한 말씀).

방금 ‘사회적 파업 기금 연대(사파기금)’ 국민은행 640601-04-018750 정재권(비없세) 으로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타행이라고 계속 할 수 없다고 해서 2019년까지 해놓았다. 든든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지지선이 되기 위해서 해야만 할 일이기에 말이다..

나는 해당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들도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 이 나서서 도와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우리들의 삶을 좀 더 질적으로 좋아지게 만들어주기 위해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페친들은 좀 함께 해주기를 간곡하게 원해본다.

자동이체를 신청하고 오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마치 부자라도 된 양 뻐기고 싶어지기까지 하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마 기금 연대라도 해서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지고 싶다.

(댓글들)

  • 허걱^^;;;2019년~~~ 내 나이 마흔샛….그때 난 뭐하고 있을까여??열심히 살아야겠다.
  • 전 후원하는곳이 마나요 ㅠㅠ
  • 사파기금도 여력이되면 매번은 못해도 송금할수 있도록계좌메모해두겟슴다
  • 우리 모두 아주 열심히 살아야 해요. 그런 책무들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노동형제들은 가슴에 새겨넣어야 할거예요.
  • 나도 주제 넘게 너무 많아요. 그래도 또 보탰어요. 그러니 더 기분이 좋아요.
  •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께요. 시국 선언으로 신문에 갑자기 파면 운운 하는 기사를 봤을 때 다른 것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 자동이체한 곳과 CMS 한 곳에 어떻게 연락을 하고, 그곳들은 이제 어떻게 도와야 하지? 이게 먼저였다니까 남들이 정상이 아니라네요. 그래도 그랬어요.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내가 보탤 수 있을 때 정성을 다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지요. 오늘은 참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 책에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교육을 계속 받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아자!
  • 김선생님! cms로 신청했는데 수수료가 많이 떼어지나요? 자동이체로 변경하는게 나은건가요?
  • O동지, 자동이체가 훨씬 좋아요. 수수료가 액수가 커지면 장난이 아니랍니다. 꼭 자동이체로 다시 돌리셔요.
  • 알겠습니다…^^*
  • 쌤 저도 회사 부도 낫을때 그걱정을 햇답니다. 허지만 뭐 실업급여 받고 또바로 회사 법정관리로 돌아가서 다행이엇어요. 정말 벌이가 업어지면 바로 그문제가ㅠㅠ
  • 저도 선생님처럼 그렇게 긴시간 하고 싶은데….일단 오십이 될때까지만 향후 5년은 자동이체 신청 해야겠습니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오늘은 2012년 1월초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페이스북 그룹 담에 올려주신 김이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이름 앞부분인 ‘사회적’이라는 말을 너무도 잘 해석해주셨습니다).

나는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자들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용자들의 부당한 횡포가 있을 때, 비굴하게 굴복하기를 강요당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니가 힘이 없으니 참아라… ‘ 이런 속에서도, ‘노동자=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소모하고 용기를 내어 파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현행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립된 싸움’들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고립된 파업이 ‘사회적’임을 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교한 자본의 지배구조가 ‘정치가들을 뽑는 선거’ 따위에 의해 해결될 수 없음을 안다.
그들은, ‘먼 곳에서 고담준론을 펼치는 것의 무의미함을 알며, 싸우는 사람들 옆에서 같이 버티려고’ 분투한다.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멋진 말을 내뱉기보다, 그들 옆에 자신의 몸을 갖다놓는다.
그 파업들이, 곧 자신의 것이고, ‘사회적’ 인 것임을 안다. 이 것이 당사자들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자본이 인간의 삶을 노예처럼 지배하는’ 구조에 균열을 일으킬 불씨이며, 그 불씨를 지키고, 작은 불씨들을 연결하기 위해 몸을 쓰고, 다리품을 팔아야한다는 것을 안다.

얼굴도 모르고 말을 붙여본 적도 적지만, 사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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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

  • 왠지 뭉클…
  •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멤버들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 하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와, 여기 또 한사람 통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참 기쁩니다. 어서 오세요.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서 맨앞 글자, 즉 “사회적”의 의미를 정말 정확히 해석해주었네요. 공감해주고 뜻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갑자기 맘도 좋아집니다. ….누군가 제게 왜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이냐고 여러번 물었는데, 이 해석이 제 뜻과 가장 가깝다싶습니다.. Ichan Kim/ 고마워요 좋은 글…^^
  • 어… 쑥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실, 마지막에 제 마음속에 켕기던 한 줄이 빠졌군요. “그들 (사파기금 사람들) 은 알뿐만 아니라, 느끼고, 변화하며, 자기 몸을 움직여 한다. ” 나는 그렇게 못하잖아요.
  • ㅎㅎ 김이찬 님, 파이팅!!^^

윤엽의 용산참사 소재 판화, "여기 사람이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412

매일노동뉴스, 기획연재, 2011-12-24

세밑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달 현재까지 파업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만 52곳이다. 절반 이상은 교섭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들의 요구와 새해 바람을 들어봤다.

대우자판 세일즈맨 김진필씨 “가장 힘든 오늘이 희망의 증거”

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 서울 혜화동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김진숙과 김진필, (이름이) 한 끗 차이잖아요. (웃음) 근데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으로만 가는 걸 보며 좋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 했어요. 버스를 붙잡을 수도 없고….”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통보할 무렵 인천에서도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국내 유일의 자동차판매 전문회사이자 인천의 향토기업인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가 전 직원 572명 중 388명을 정리해고했다. 대우자판은 퇴직금은 고사하고 체불임금을 반납할 경우 정리해고 대

전북고속지회의 파업이 25일로 382일째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올해 3월 전북버스 노동자들이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앞에서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지회

상자 선정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정해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어 올해 1월 금속노조 대우자동차판매지회는 인천 부평 본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은 이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농성자 중에는 20년차 세일즈맨 김진필(48)씨가 있다. 김씨에게 대우자판은 첫 직장이자 유일한 일터였다. 김씨는 “희망버스를 통해 정리해고의 문제점이 알려지는 건 좋았지만 한진과 비슷한 상황임에도 관심을 적게 받는 것이 서러워 조합원들과 함께 많이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경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지난 8년간 맡아 온 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인천지법은 검찰이 김씨에게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입사 후 열심히 차만 팔았어요. 근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현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지난 10년간 해마다 사측과 싸워야 했어요. 노조간부는 투사 같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노조를 돕다 동료들의 추천을 거부하지 못해 지회장이 됐죠.”

김씨는 “가정과 일터를 지키고 비상적인 것을 상식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하지 않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면서 “노조활동을 하면 소위 ‘운동권’이라고 부르던데, 막상 활동을 해 보니 운동할 시간이 없어 노조가 가장 비운동권적인 조직인 것 같다”고 웃었다.

현재 대우자판 임원들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주가조작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 부실경영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93년 창사 이래 적자 없이 운영되던 대우자판은 이동호 전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 추진이 화근이 됐다. 결국 대우자판은 공중분해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대우자판을 3개 회사로 분할하는 내용의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그런 와중에 이 전 대표이사가 대우자판 하청업체 회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는 “이 전 대표가 대우자판을 놓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실사업을 강행한 것이 부도의 핵심 이유”라며 “무능한 경영진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전가한 불법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말부부다. 가족은 창원에 산다. 올해 농성 후 체포영장이 발부돼 밖을 나가지 못해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의 새해 소망은 투쟁에서 이겨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다. 김씨는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추운 것처럼 힘들었던 올해가 내년 승리를 위한 희망이 될 것”이라며 “조합원을 비롯한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 “속고 또 속아도 희망 놓지 않아” 

노동계 투쟁현장에서 오페라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지부장 문대균)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말 갑작스런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로 불거진 이들의 투쟁은 2009년 6월 일단락되는 듯했다. 단원들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최대 3년간 임시로 정한 곳에서 성실히 일하면 향후 안정된 조건을 갖춘 상설기구를 설립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단원들은 2009년 오디션을 거쳐 사회적 기업으로 설립된 나라오페라합창단에 입사했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 4월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나라오페라합창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예산을 지원해 줄 테니, 이후 어떤 단체행동이나 이의제기도 안 하겠다고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도저히 응할 수 없는 확약서였다.

3년 안에 예산을 받아 정규직 합창단을 만들어 주겠다던 문광부는 2009년부터 단 한 차례도 관련 예산을 국회에 올리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민주통합당을 통해 새 합창단 설립을 위한 예산을 국회 문광위에 증액 예산으로 올려놓았다.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조합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문광부의 서명에 응하지 않은 단원 12명은 올해 4월부터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서울 혜화동 문광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주일 내내 연대현장에 다닌다. 문대균(34) 지부장은 한 대학 특강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유명한 사람 불러 특강하려고 하지 말고 1년에 한 번이라도 노조와 관련된 분들을 초빙해 강연을 들어 보세요. 회사를 다니면서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 아닙니까.”

문 지부장은 “대학교 다닐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고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좋았다. 집회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가 막히면 “도대체 왜들 저러시나”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억울한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 지부장은 “인원이 부족해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구두약속이긴 했지만 3년 안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합창단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걸 믿었는데, 너무 바보 같았던 거예요. 우리처럼 또 그렇게 바보처럼 당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국립오페라단은 2002년 창단될 당시 2003년에는 정규직화될 것이라고 공고한 뒤 합창단원을 모집했다. 그렇지만 단원들은 7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결국 합창단도 해체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공약 지킨 게 하나도 없잖아요. 약속이 더 이상 약속이 아닌 시대가 된 거죠. 대통령이 그렇다 보니 공무원까지 그런 것 같아요.”

문 지부장의 새해 소망은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복귀하는 것이다.

“다음주면 국회에서 내년 예산이 결정됩니다. 문광위에서 예산이 증액된 사업만 700개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확률은 반반인데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버스 최장기 파업 전북고속지회 “생계투쟁·법정투쟁에 악전고투”

정인철(49)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전북고속지회 부지회장은 올 한 해 버스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버스노동자가 된 지 1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회는 지난해 12월8일 전북지역 7개 사업장 지회와 함께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노조 인정과 사무실 제공·조합비 공제 등을 요구했다. 전북고속을 제외한 전주시내버스 5개사와 부안스마일교통 노사는 올해 4월26일과 27일 잇따라 잠정합의했고, 6개 지회는 5월2일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전북고속 사측만 유일하게 합의해 주지 않았다. 정 부지회장은 “이렇게 파업이 길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길어야 2~3개월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북고속에 복수노조가 생긴 이유는 기존 노조 위원장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정 부지회장은 “지난해 임원선거 이후 노조 위원장이 징계위원으로 참여하는 징계위에서 3개월 동안 100여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당했다”며 “노조 위원장 불신임투표를 했으나 11표 차이로 성사되지 못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25일로 파업 382일째. 사측은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난 7월부터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 이후 노조의 교섭요구에는 “교섭대표노조와 임금협약을 체결했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조합원 173명 중 143명이 파업에 동참했고 현재 79명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 투쟁기간 동안 사측은 무려 76건의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제기했다. 변호사 선임비 수천만원은 빚으로 남았다. 정 부지회장은 “요즘은 눈만 뜨면 법원에 가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최근 회사에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업무복귀 후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복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사측은 먼저 업무에 복귀한 후 성실하게 근무하는 사람에 한해 징계양정을 참작하겠다고 했다. 지회가 현장에 복귀할 명분조차 주지 않은 셈이다.

가장인 이들은 대부분 생계투쟁을 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건설장비 보조로 일한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너댓 명의 지회 비상대책위원까지 생계투쟁을 하고 있다. 마땅한 생계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정 부지회장은 지난 7월부터 집에 돈을 갖다 주지 못했다.

“집에서는 난리도 아니죠. 가족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생활을 근근이 이어 가고 있어요.”

그는 상급단체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조합원을 관리하고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비상대책위 간부에 대한 생계비만이라도 지원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정 부지회장은 강정식 지회 법규국장과 함께 최근 민주버스본부 임원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버스본부 새 집행부가 본부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바람은 없어요.”

그는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79명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며 “조합원 79명이라는 숫자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 1천500일 앞둔 학습지교사들 “끝까지 간다”

지난 21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 앞. 크리스마스 캐럴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뒤로 10여명의 사람들이 행사를 하고 있었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의 문화제였다. 지부는 재능교육 본사가 있는 대학로 집회가 불허돼 시청으로 거점을 옮겨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1천462일. 투쟁 날짜를 말해 주듯 빛 바랜 현수막은 칼바람에 정신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눈물이 많아 별명이 ‘수도꼭지’인 유명자(43) 재능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내년엔 반드시 투쟁승리 보고대회를 열고 기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유 지부장은 대학 졸업 후 광고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카메라를 마련할 돈을 벌기 위해 98년 재능교육에 입사했다. 그의 꿈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였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카메라 구입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다. 2007년 불합리한 수수료 제도에 대해 단체협약 재협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고됐다. 이후 거리에서 4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사측은 이를 빌미로 지부의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농성장 곳곳에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다”, “노동기본권 보장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이유다.

“기륭전자를 보며 어떻게 1천일을 싸울 수 있을까 했는데, 저희가 반복학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투쟁이 길어지면서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자꾸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참 미안해요.”

14번의 천막 철거와 다양한 손배가압류, 용역의 폭행과 성희롱, 건강악화…. 거리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유 지부장의 일상은 파괴됐다. 농성장을 지키려다 보니 마음 편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야만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그는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학습지교사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고, 투쟁을 하면서 사람을 얻었어요.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법외 노조는 말이 되지만 불법 노조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부의 투쟁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 사각지대의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의 투쟁이 단순히 비정규직 여성들의 불쌍한 장기투쟁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투쟁에 승리해 연대해 준 노동자들에게 빚 갚기·길거리 대신 방에서 잠자기·낡은 카메라 들고 제주도 여행하기·좋은 사람 생기면 연애하기…. 그가 꼽은 새해 소망 리스트다. 유 지부장은 “현장에 복귀해 아이들과 만나 행복해지는 법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지금 힘들어서 포기한다고 해도 이후 노동자로서의 제 삶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망갈 곳이 없는 만큼 끝까지 싸워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 겁니다.”

김은성 기자, 조현미 기자

[상자기사] 사회적 파업 연대 기금 SNS 모금 눈길 

최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파업 연대기금을 모으는 움직임이 생겨 관심이 모아진다.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85기금)이 대표적이다. SNS를 통해 연대기금을 모으자는 움직임은 지난 7월 시작됐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네트워크그룹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했다. 그 결과 8월에 한진중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정투위)에 2천만원을 지원했다.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 이후에는 장기투쟁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에 500만원을 지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장투사업장 후원주점을 열었다.

이들 SNS그룹은 제안문을 통해 “김진숙과 한진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증거로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을 만들고자 한다”며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이를 하나의 제도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밝혔다. 이어 “지속된 노동배제와 신자유주의의 쓰나미 속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사실상 거세됐다”며 “연대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기금은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운용된다. 희망버스 기획단을 꾸리고 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비없세)’가 기금을 관리한다. 주로 노동자들의 투쟁기금과 그 가족들의 생계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facebook.com/JINSUK85·facebook.com/groups/JINSUK85fund)과 트위터(twitter.com/85FUND)를 참조하면 된다. 모금계좌는 국민은행(640601-04-018750·비없세 정재권)에 개설돼 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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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1165호 [사람들] 2011-12-23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제안한 권영숙 박사
“노동자들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을 사회적 연대 운동 필요”

 

▲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파업을 하고 기계를 멈추더라도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굶으며 살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지난 7월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기금과 그들의 가족 생계비 지원을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하 사파기금) 운동이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파기금을 처음 제기한 권영숙(46·사진) 박사(사회학)를 20일 서울 혜화동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집회장에서 만났다.

한겨레신문 기자로 6년간 근무했던 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운동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 귀국했다. 현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노동과 인권에 대해 가르치며 사파기금도 지원 중이다.

권 박사는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며 ‘무노동무임금’이 법에 명시된 이후, 파업 중 개인들의 생계는 노동자의 몫이 돼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업무 방해,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소송에 휘말리며 재정적 어려움이 배가 된다. 권 박사는 “민주주의 진행 과정에서 노동이 배제돼, 노동의 파업권을 시민적 권리로 보는 사회적 연대운동이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2차 희망버스에서 권 박사의 사파기금 제안 이후 7월 19일부터 26일까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비없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페이스북 내 그룹, 블로그,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호응이 좋아 1개월도 채 안 된 8월 11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에 2000만원, 11월 11일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에 500만원의 기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12월 초에는 주점을 열어 총 모금액은 5000만원을 넘어섰다. 다른 기금에 비해 총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참가자들의 생각이 담긴 작은 돈이 풀뿌리 방식으로 모아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권 박사는 “누구나 비정규직, 실업자가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사파기금은 자신을 위한 저축과도 같다”고 풀이했다.

사파기금에는 여성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특히 얼마 전부터 여성 참가자들은 ‘희망토시 짜기’ 이벤트를 시작해 사파기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권 박사는 “자신의 관심과 취향대로 연대 방식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하다”고 덧붙였다.

‘진숙85기금’으로 출발했던 사파기금은 상시적·규칙적 기금 모으기 캠페인도 벌이며 장기투쟁 사업장에 대한 든든한 사회적 지원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금 계좌: 국민은행 640601-04-018750(예금주 정재권·비없세), PAYPAL 계좌: bijeonggyu@gmail.com

온라인에서 풀뿌리운동으로 시작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생후 6개월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자말자 달리는 들소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짧은 기간에 참 먼 길을 왔다는 느낌입니다. 누군가 제안하고, 그 제안에 많은 이들이 호응하고, 곧 이어서 수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재능으로, 몸으로, 또 돈으로 연대하여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우리 사파기금이 지나온 길을 정리해보면서, 이길에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강고한 연대를, 즐거운 연대를 강력히 기대합니다.
코오롱, 콜트콜텍, 재능, 쌍차, 국민체육진흥공단, 농협, 주연테크, 유성,… 수 많은 장기투쟁 모두가 온전히 승리하는 그날까지,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어지는 그날까지. 그래서 지금은 거리에 있는 모든 동지들을 사업장 내에서 볼 수 있는 그날까지.

7월 19~26일
페이스북에서 그룹, 페이지 개설, 트웟개설, 계좌개설하고 드디어 사파기금 시작

7월 22일
제안문 발표, 첫 기금 입금

7월 31일
1만원데이 – 3차 희망버스에 즈음하여 모두 1만씩 모금하기

8월 11일
1차 기금 전달, 한진정투위에 2천만원 전달

8월 25일
사파기금인들을 위한 벙개주점. 준비는 미숙, 열기는 가득. 사파기금 티셔츠 제작하여 판매 시작

8월 27~28일
4차 희망버스 현장에서 기금홍보, 모금, 티셔츠 판매

9월 28일
상경투쟁 중이던 한진정투위 동지들과 간담회

10월 8~9일
5차 희망버스, 사파기금 버스도 부산으로. 한진가대위 아이들에게 줄 편지도 쓰고,
희망돼지 저금통 나눠주기 및 한진정투위와 만남

10월 17일
김주익열사 8주기 추모영상 상영회 및 토론회 개최

11월 11일
2차 기금 전달, 재능노조에 5백만원 전달

11월 30일
희망돼지 잡는 날, 10/4에 희망돼지 저금통 만들어서 배포하고, 이날은 돼지 잡아서 기금 계좌로 송금 이벤트

12월 3일
장기투쟁사업장을 위한 사파기금 후원 주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쌍차, 재능 등 많은 분들이 도와 주신 그 주점

12월 14일
재능 수요문화제, 서울지하철 노래패 소리물결과 사파기금의 연대

12월 16일
쌍차 희망텐트 방문, 오뎅국도 하고, 토시 전달도..

12월 22일
페북 그룹 이름을 본명으로 변경 “사회적파업연대기금”

12월 23일
3차 기금 전달, 쌍차에 2천만원 전달(비정규지회포함)
쌍차 희망텐트 다시 방문, 비정규농성 텐트도 가보고..

그 외, 많은 분들이 함께 또는 혼자서 1인 시위, 농성장 방문 등을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