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노동영화 열전> 5회 <제르미날> 180210

이번 “사파 노동영화 열전” 제5회는 <제르미날> (끌로드 베리 감독, 1993년)이었습니다. 1880년대 중반 프랑스 산업자본주의 발달 시기에 한 광산마을에서 벌어진 파업과 자본과 권력의 폭력적 탄압, 그리고 파업 이후를 그린 영화로 에밀 졸라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알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170분의 영화라 너무 길어서 살짝 배속을 높여 영화편집을 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속에서 영화 관객이 적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추위가 반짝 누그러져 다행이었습니다. 항상 보러오는 고정 관객들 사이에서 새로운 얼굴들도 보였습니다. 노동영화열전이 선택한 영화들이, 하나씩 보고 토론할수록 서로 연속성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들이라, 5편 모두 본 이들이라면 ‘파업’과 노동자 투쟁의 역사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특히 이번 상영작 <제르미날>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영화였습니다. 투쟁과 파업을 앞두고 있는 노동자 군상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그리고 있고, 당 시대에 노동자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생디칼리즘등이 대사로 녹여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길잡이를 맡은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가 몇가지 화두를 던진후 영화 관람과 토론을 했습니다.

우선, 파업 투쟁의 승리와 실패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투쟁의 목표로 삼은 것들이 쟁취되면 승리한 투쟁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한 투쟁일까요. 어찌 보면 그러한 것들은 수백 년의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내일 싹 틔울 씨앗들을 뿌릴 수 있는 오늘의 투쟁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영화 제목이 “씨앗의, 싹트는”이라는 뜻을 갖는 ‘germinal’인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 현실이나 실제 현실 모두 추운 겨울이지만 겨울에 씨를 뿌려야 봄이 온다는 것,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봄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한 뜻밖에도 이 영화(소설)에는 노동자 여성들의 존재가 강렬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산업 자본주의하에서 유혈적인 노동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모순과 그 모순이 응집돼있는 가족내 관계와 사회적인 젠더 관계가 가차없이 솔직하게 그려집니다. 당시 여성들은 탄광 갱도에서 남자와 함께 일하고, 집에서는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고. 종국에는 파업중인 가운데 생계비가 없어 몸을 팔기도 한(그러나 그들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여성 노동자였습니다. 파업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탄광 노동자들의 호주머니 돈을 깡그리 끌어모으는 졸부에다, “한번 주면” 빵 한덩어리를 주겠다면서 마을 여성들을 매수해온, 유일한 식료품점 주인을 린치하고 그 남근을 잘라낸뒤 환호하고, 남자들은 뜨악해하는 장면은 21세기에 ‘재발견’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파업기금을 모으는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내 먹을 것을 확보해놓고 십시일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것을 떼어서 파업기금을 조직하고 파업을 준비하는 것이 파업 투쟁에 임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취지를 다시 상기하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권대표는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의 ‘파업기금’에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을 창안하고 제안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번 <제르미날>을 마지막으로 “사파 노동영화 열전” 시즌1. 파업전야는 종료됩니다. <제르미날> 영화를 선정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길기도 했고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잘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즌 1. 파업전야를 <제르미날>로 마무리하는 것은 “사파 노동영화 열전”의 취지와 매우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사파 노동영화 열전”은 영화 속 노동이라는 소재로 우리 사회와 노동 운동의 현장에 ‘씨를 뿌리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봄을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봄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씨 뿌리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즌 1. 파업전야와 이어지는 그 다음의 심화된 주제로 선정한 영화들과 함께 시즌 2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수 십 년만의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파분실을 찾아주신 연대자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만나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2018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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