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전 열흘 동안 한국사회는 다량의 ‘국뽕’주사를 과다 투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언론들, 짜깁기 해외 소식들, 담론들, 입장들. 그리고 좌우 가릴 것 없이. 우파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까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처능력을 인정했다고 하고, 좌파쪽(?)에서도 그에 대해선 특별히 이견이 없다 했다. 그게 지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 박근혜 퇴진시위 때 자유주의세력이 중심으로 서고 좌우를 거느리는 지형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조국 사태로 찢어졌지만, 다시 코로나19 앞에서 봉합됐다.

한국 사회 전체는 국뽕에 젖어있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코로나19 대처를 두고, ‘국뽕’(흔히 국수주의를 세속적으로 이르는 말)에 젖어 있는 가운데, 과연 무엇이 결핍되고 지워져 있는가? 우리는 생각하고 정치화했어야 했다. 진보의 독자적인 입장이 있어야했다. 총선에도 다른 입장을 제출했어야 했다.

여기서 ‘국뽕’의 정의는 단지 국수주의적 애국주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뽕’이라고나 할까? 강한 국가주의까지 포함한 의미로 나는 썼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우익세력이 오히려 국가적인 노력과 국가의 강한 역할에 대해서 찬물을 끼얹고 비아냥거리고, 폄훼하였다. 자유주의 세력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에 대해 어떤 불편함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사민주의자들도 국가의 역할을 적극 지지하고 주장하는 국가주의자들이 되었다. 즉 국가의 더 많은 역할과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먼저 요청하기. 코로나19 확진자중 자가 격리 규칙을 어기는 자들, 신천지에 대해서 더 강하게 통제하라고 얘기하기. 왜 빨리 돈을 찍어서 어디라도 뿌려야하지 않냐고 말하기 등.

또한 전체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전략을 두고 이 모두가 한국의 ‘국가’가 한 일로 치부하는 일, 나아가서 현 집권정부가 다 한 일로 치부하는 일. 이런 강한 국가의 배경이 되었던 역사를 다 미화하는 일, 사회적인 격리와 감금에 대해서 있을 수밖에 없는 ‘부대적인 사상자’로 보는 듯한 태도까지. 이 모두가 ‘국뽕’과 관련되는 사회현상들이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닌가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이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터져 나왔다. 이 두 가지의 단발마적인 의문이 바로 촛불시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회 화두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 박근혜를 퇴진시키면서 그를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게 만든 적폐의 원흉이라고 지목했다. 과연 국가 실패의 원흉은 박근혜일까?

그리고 촛불 2년이 남짓 지난 지금, 한국은 갑자기 국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강한 국가, 잘난 국가, 전 세계에 모범이 되는 국가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다시 의문이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국가는 없었다”던 상황에서 이렇게 한순간에 강한 국가의 면모로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코로나19 대응을 보이는 국가가 되었을까?

나는 세월호 참극이 일어난 후에 ‘국가가 없었다!’라는 한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혹은 이 사회의 전체성을 덮고 있는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를 문제삼아야한다고 말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국가는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한국에 국가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만큼 ‘강한 국가’ 유형도 없기 때문에. 해서 “국가가 없었다”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화해야하는 것은 “과연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 국가 역시 무능한 국가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실패한 국가(the failed state)’, 국가가 국민에게 실패했다의 의미가 아닌, 국가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지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의 국가는 이 ‘실패한 국가’라는 테제에도 답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견해가 그렇다. 실패한 국가는 ‘정상국가(normal state)’가 되었고, 나아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비정상의 정상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국가인 한국의 국가. 그런데 과연 이런 반전에 근거는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국가주의, 국뽕이 넘쳐난다. 심지어 진보세력까지 국가의 부활, 그리고 국가의 강한 개입에 대해서 유보도 비판도 없이 찬사를 보낸다. 국가가 개입하여 신천지 등 교회들에 대해서 금지령을 내려야하고 엄중하게 법집행을 해야 하고.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돈을 찍어내야 하고,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재벌을 포함하여 재난지원금을 살포해야하고.

근데 말이다. 과연 재난 앞에서 국가는 그렇게 중립적인가? 그리고 과연 지금 이 국가는 국민을 구별 없이, 사회집단을 구별 없이 대하고 있는가? 지금 돈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장 많이 흘러가는가. 지금 공권력의 위세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은 하는가.

총선 앞에서 국가주의, 국뽕. 아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이 너무 잘하고 있고, 전 세계 국가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말들이 극에 달했다. 이 담론의 홍수가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선거전야였다. 선거는 연기할 수 없다면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치러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 공포는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강한 국가를 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노력은 집권세력의 공이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 과정은 국가, 그리고 나아가 현 정부가 잘한 ‘치적’으로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누가 코로나19 전선에서 일했는지, 이 사회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작동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과연 그들에게 이 모든 영웅적인 투쟁의 공이나 성과가 돌아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부는 그 과실을 챙길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넘었다. 1년 반만이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총선이 되었다. 과연 누가 전 지구적인 팬데믹이 만들어낸, 이 생명과 안전의 공포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역설이다. 6년 전 세월호 참극으로 이 사회는 안전사회 담론으로 이행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담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코로나19앞에서 ‘강한 국가’의 지지 배경이 되었다. 대통령도 코로나19와 세월호를 연결해서 발언한다. 우리는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라고.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와 자유주의 정치가 이긴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진보세력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좌파는 더욱 없다.

지금 코로나19 국면에서 고민의 한 지점은 이것이기도 하다. 계급적인 관점이 탈각된 국가주의와 안전사회담론이 결국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민총화’론으로 모든 것들의 구별선, 균열선, 분리와 배제의 선이 비가시화하고 있다. 지워지고 있다. 또다시 ‘눈먼 자들의 사회’다. 국가에 눈먼 사회. 세월호 참극의 정반대편에서.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0.04.17 15:40

참세상 기사
사파논평은 인터넷언론 <참세상>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매달 2회 정도 나갈 예정입니다.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상읽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근육을 함께 기르고 연대의식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어 주시고 알려주세요.

미국 민주당 대통령경선에 나선 무소속후보 버니 샌더스가 4월9일 결국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최대의 방역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말하는데 이에 빗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고 할 만하다.

이 말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내놓은 공식 논평에 있는 말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는 전국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톰 페레즈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거친 생각(a wild idea)을 더이상 퍼뜨리지 않는 것이 미국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미국인들은 결정했다”고 말했다.눈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었고 몇 번을 읽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발언인가.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혼돈과 무책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빈부 격차가 빚어낸 참극 속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말이다. 공공의료의 부재, 사적 의료보험체계, 국민 수명이 70년대 이후로 계속 낮아지고 유아 사망률이 갈수록 높아가는, 그래서 기이하게도 제3세계 빈곤국가들과 사회 지표가 유사해져가는 나라. 그 정점에서 지금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의 불행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코로나19앞에서 인민의 불행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미국은 사회주의가 필요한 국면이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그래서 자본주의의 선진국들, 유럽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지금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사회주의적 조처를 졸속 모방하고, 시장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국가의 힘과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예들이다.
미국은 지금 1950년 한국전쟁때 제정했지만 사문화됐다시피했던 ‘군수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을 발동해서, 민간기업에게 코로나19 관련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등 의료물품을 제조하게 하고, 국가가 강제로 징발하는 조처를 취했다. 심지어 이 법에 따라서 해외 다른 국가애서 수출하는 마스크까지 자국으로 빼돌리고 있다.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또 미국은 유동성 통화에 대해서 시장원칙과 상관없이 무제한의 양적 완화를 선언했다.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다고 하고 국민들에게 긴급한 재난기본수당을 준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주의와 기업 살리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거세게 덮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월10일 현재 16000명이 사망했는데 시카고, 뉴욕등에서 흑인 빈민지역의 코로나19 사망율이 치솟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하고, 코로나19 사망자로 분류되지도 않은채 스러질 것이다. 이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국등 전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1세계나 3세계나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가난한 무산자계급, 소수자, 무국적자들이야말로 코로나19앞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코로나19의 전지구적 판데믹 속에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모방한 중앙집권적 자원 동원과 배분체계를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부양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이 다가 아니다. 그냥 헬리콥터 머니 찍어내서 뿌리면 여하튼 경기가 좋아지니 전국민이 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것, 혹은 그중 얼마나 떡고물이라도 가난한 자들에게까지 미치겠지 하는게 아니라, 지금이 정말 전시경제에 준하는 재난경제 상황이라면 사회적 자원과 재원과 물자를 ‘사회주의적으로’, 사회전체의 평등의 방향에서 약자 우선으로 배당하고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등 자본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로부터 배운 조처는 재빨리 실행에 옮기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뜻은 “거친 생각(wild idea)”라면서 기각한다.

결국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을 온건하게라도 주장하고 실현하자고 했던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는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에 거리두기’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선포기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이 급진적인 정치적 사고에 “감염”되어서 다음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 체제를 일소하길 바란다.”

미국과 자본주의에게 더 무서운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회주의, 맞다.

2020. 4. 10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친지 3달째다. 긴급재난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일터는 가동율이 곤두박질치고,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고 무급 휴가를 강요당하고 임금이 자연삭감되고 있다. 소득이 줄고 있는 가운데 저축한 돈도 얼마 없는 사람들은 코로나19보다 생계난이 더 두렵다. 이들을 위한 ‘긴급 생활비’ 지원이 필요하다. 역병이 재난이라면 말이다.
근데 대통령이 취한다는 조치가 자기 임금 30% 줄이기다. 4개월동안 대통령과 장관들이 임금을 30% 삭감하고서 받겠다는 것이다.

일단 참으로 구태스럽다.
누구는 깎을 임금이라도 있어 좋겠다만 누구는 최저임금선 아래 받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임금 삭감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누가 적선해달랬나? 가난한 이들의 시민적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사회권’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국민을 나랏님이 궁휼히 여기사 시혜받는 백성처럼 대하련가.

그리고 행여 이 조처가 이후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 운운하며 임금 동결하고 삭감하고 장시간 노동시간을 유지하기위해 미리 하는 이른바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경총이 오늘 3일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기업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개선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 △지속가능 사회보장체계 확립 △선진 안전시스템 구축 △경영책임의 적정성 확보와 형벌 개선 등이다.

여하튼 그러니 당장 대통령과 행정부는 제대로 행정권력을 동원하여 행정적인 일을 하라. 행정적으로 실효성 있는 사회경제적 조처를 취하라. 그게 정치권력이 해야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흉내내는 쇼같은 일은 그만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모든 국민에게 정액 얼마를 지급하는 식의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해선 반대한다. 지금 재난기본소득을 청원하는 교수연구자들 연서명이 돌고 있다. 난 그 청원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장 첫머리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왜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으로 동일 액수의 긴급소득을 받아야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재난 앞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재난 불평등이 인간 참극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비상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재난의 계급성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최저임금선 이하의 노동자들, 자영업자중 하위 20% 소득을 대상으로 하여야한다.

그리고 이 지점 역시 중요한데 모든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생존기금을 지급하여야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배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이다.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이야말로 보편적이고 탈배제적이라고 하지만, 전지구적 전염병 앞에서 “국민”됨이라는 자격조건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배제적인가.

그러므로 지금 지급되어야하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

첫째, 생존유지가 버거운 하층 소득민에게 긴급한 구호기금으로서,

둘째,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건강할 권리를 가진 이들의 당연한 사회권으로서,

그리고 셋째 “국민”이라는 배제적인 보편기본소득이 아니라 이 땅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권이 위협에 처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생활비로서 주어져야한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기본소득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2020. 3.23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대한 단체 후원을 부탁합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헌법상의 시민권으로 긍정하고, 노동이 돈의 압박에 스러지지 않도록 노동을 위한 파업 및 생계 기금을 모으는 사회적 연대운동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연대를 결집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및 연대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2011년 7월 발족 이래 참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64회의 기금 지원, 14회의 사파포럼, 6회의 사파동행, 6회의 사파작은희망버스, 2차례의 ‘민주주의와 노동’학교 등의 일들을 해왔습니다.

사파기금의 기금 조성원칙은, 돈이 모이는대로 쌓아두지 않고, 전액을 곧바로 노동현장에 지원한다입니다. 그리고 이를 지금껏 어김없이 실천해왔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기금은 여타 단체들의 후원금처럼 단체를 후원하는 기금이 아니라, 사회적 파업기금으로 오롯이 사용되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따라 사파기금은 경상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6년동안 사무실없이 운영해왔고, 기금조성과 대외연대, 교육사업등의 모든 단체 사업들을 개인들의 자발적인 시간과 노동, 나아가 출연하는 경비로 충당해왔습니다.

이제 단체 발족 6년만에 처음으로 단독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단체 사무실이 더욱 알찬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채워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기금이 노동자들의 지원에 온전히 사용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단체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기금 발족 6주년이 된 올해부터 기금 운영비 마련을 위한 후원금을 받고자 합니다.
사파기금의 운영에 함께 힘을 보태고자 하는 이들은 다음 절차에 따라 후원 약정을 해주십시오: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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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은
노동자의 파업권등 시민권을 긍정하는 의미에서 노동자의 파업 및 생계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으로 향한 희망버스 도상에서 제안하여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유명무실해진 파업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연대운동은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실천행동을 제안합니다.
“1%에 맞서는 99%의 직접행동,  ‘1만인 1구좌 1만원 정기이체운동’!
노동자들이 돈의 압박앞에서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
노동의 희망을 모읍시다.
웃으며, 다함께, 한걸음씩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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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S 신청방법>

2016년 11월부터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CMS 신청 방법이 변경됩니다.
가장 중요한 변경 사항은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하게 신청이 가능하게 된 점입니다.  특히 이 경우 폰에서 신청과 동시에 전자 서명을 할 수 있으므로, 복잡하게 개인출금 동의서를 따로 제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지불방식으로는 은행 자동이체뿐 아니라 신용카드로 지불이 가능해졌습니다.
새로운 CMS 신청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CMS 신청 링크 또는 URL을 클릭 하시면 다음과 같은 신청 페이지가 나옵니다.

2.  필요한 사항을 입력하시고  하단의 ‘신청하기’ 버튼을 누르시면, 아래와 같이 서명 창이  나옵니다.  여기서 본인의 서명을 하신 후 ‘저장하기’를 누르시면 신청 절차는 모두 끝나게 됩니다.

 

 

<은행 자동이체를 이용하는 방법>

은행 자동이체를 신청하여 연대자로 참여하는 방법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은행 방문 또는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여 이용 은행계좌를 통해서 특정한 날짜에 정하신 금액을 사파기금에게 보내면 됩니다.

자동이체 계좌 :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세상을 향한 노동연대!”를 위하여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CMS 정기계좌 신청서식입니다.

다음중 편한 양식 하나를 선택하여 출력하신후 기금 이체에 필요한 정보들을 작성하여, 반드시 자필 기명, 서명한 부분을 포함하여 보내주십시오 (금융감독위원회 규정상 필수조건입니다).

보내시는 방법은
팩 스  0505 – 948 – 4848 로 보내주시거나
이메일 sapafund@gmail.com로 스캔한 첨부파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위의 두가지 방법이 불가능할 경우 신청서가 전체적으로 또렷이 보이도록 촬영후 전화  010-6443-4848 로 사진상태로 보내주십시오.

사파기금CMS출금동의서_MS Word

사파기금CMS출금동의서_HWP

사파기금CMS출금동의서_PDF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참여하는 방법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정기계좌운동인 “99%의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 1만명, 1만원, 월1억 계좌 만들기”에 참여하실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은행 자동이체를 이용하는 방법

– 은행 방문 또는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여 특정한 날짜에 정하신 금액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 자동이체를 위한 계좌 :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자동이체를 택하신 경우 꼭 은행 방문 또는 인터넷뱅킹을 통하여 직접 신청절차를 완료해주셔야만 기금으로 돈이 입금되니, 마지막 절차를 잊지 말아주세요.

나. CMS를 이용하는 방법

1)CMS 연대:
–  CMS는 매월 10일 참가자가 지정한 은행계좌에서 인출됩니다.
–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CMS는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처리대행하고 있으므로, 출금통장에는 ‘민주노총’이라고 기록됩니다.
처음 CMS 신청이 완료된 시점에 ‘민주노총 서울본부’로부터 CMS 신청 안내 문자가 옵니다. 이에 대해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2)  CMS 신청 방법:

– 소정의 CMS 신청양식을 출력하여 작성하신 뒤 다음 3가지 방법중 하나를 택하여 사파기금으로 보내주십시오: 1)팩스 전송, 2) 사진 찍어 이메일, 3) 전화문자에 첨부하여 보내주십시오
* 금융감독위원회의 규정상 본인 기명 날인된 CMS 출금동의서의 증빙제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꼭 절차 완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신청서 양식은 아래한글 또는 MS Word 양식으로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사파기금 홈페이지 http://sapafund.org/?p=1564 또는 사파기금CMS신청서(클릭)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JINSUK85fund/835011699850122/

(구글독스를 이용한 신청  http://goo.gl/6inTF )

보내실 곳
팩 스 : 0505 – 948 – 4848
이메일: sapafund@gmail.com
전 화 : 010-6443-4848  (팩스나 이메일전송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문자 전송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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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노동이 있는 모든 곳을 위하여,
노동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연대의 직접행동,
생활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의 방식,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함께 해주십시오.

사파기금 플래카드

 

“파업하면 인생 절단 나는데 파업기금도 없는 한국”

[인터뷰] 2주년 맞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
“파업의 사회적 의미 살펴볼 때”…20일부터 ‘민주주의와 노동’ 학교 개최

김용욱 기자   

 기사원문 –> 참세상 기사보기  http://goo.gl/vT7Qga 

“사회적 연대로 파업기금을 조성하자”

자본엔 미친 말처럼 들리겠지만, 노동자들에겐 희망 같은 말이다. 그런데 앞에 ‘사회적’이란 말이 붙어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이 되면 이게 뭔 말인가 싶다. 곰곰이 단어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파업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가자는 뜻인 것 같다. 파업은 원래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굳이 사회적이란 단어를 강조한 것은 우리 사회에선 파업이 그만큼 사회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은 희망버스로부터 시작돼 벌써 2년째 유지되고 있다. 절망의 끝에 매달린 노동자들의 애타는 투쟁을 찾아가 격려하고 돈을 모아주는 것을 넘어 이 단순한 연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매 순간 확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으로 하는 연대가 단지 돈 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는 “노동자의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모아가는 캠페인 운동에서 ‘사회적’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중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파업기금이란 단어를 중심으로 이 기금을 이해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사회적이라고 했다.

“노동자 파업은 사회적 파업이 되어야 하고, 파업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할 때 사람들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파업에 연대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돼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권영숙

한진중공업,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든, 쌍용차 투쟁에 대한 시민의 연대든 사회적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할 때 파업이나 투쟁하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업의 사회적 의미를 확장하는 것은 대한문에서 싸우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요구인 ‘원직복직, 정리해고 철폐’에서 ‘원직복직은 실현성이 있겠지만 정리해고 철폐가 이 싸움으로 진짜 가능할까?’라는 불확실한 고민에 대한 답을 얻는데 실마리가 된다.

권영숙 대표는 “한 사업장의 문제가 전체노동자 문제의 일부라는 것. 한 사업장 싸움이 사회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이해 속에 사회적 연대가 구축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사회적 파업과 사회적 연대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업기금 조성은 내가 언제든지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전제”

그런데 왜 사회적 연대에 돈(기금)이 중요할까. 권 대표는 파업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처럼 파업을 하면 노동자 자신과 가족이 손배가압류와 생계비 등으로 인생을 결단해야 하고, 때론 죽음을 택해야 하는 사회에선 일상적 파업기금이 절실한데도 아직 파업기금에 대한 인식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노동조합이 투쟁기금은 모아도 파업기금은 모으지 않는다.

“파업기금을 일상적으로 조성한다는 것은 내가 언제든지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야 가능해요. 파업 기금을 미리 조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파업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수준인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해요”

권영숙 대표는 이제는 한국사회도 노동조합이 주체적으로 파업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식도 조합비에서 떼는 게 아니라 조합비와 같은 액수를 별도로 조성해 파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파업이 장기화하는 것이 한국적 특성인 상황에서 노조가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연대로라도 파업기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이란 단어가 담긴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사파기금을 준비하면서 파업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데 대한 거부감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파업하면 다 빨갱이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누가 파업에 돈을 내겠느냐는 것이다. 희망기금이나 연대기금 등의 제안이 나왔지만 권영숙 대표는 파업과 사회적이라는 두 가지 단어를 굽히지 않았다.

권 대표는 “노동자 파업권을 긍정하는 연대의 의미로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적 연대를 확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파업이라는 단어가 담긴 이름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았고, 더 실효성 있는 기금으로 진화했고, 그리고 그 자체가 하나의 매개체가 돼 사회적 연대를 움직여 나가고 발전시키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파기금과 희망버스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희망버스는 사파기금 탄생의 계기였다.

그가 보기에 희망버스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 속에 찾아드는 절망의 죽음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시작된 반작용이었고, 80년대의 노학연대와 같은 운동 조직적 시도와도 다른 새로운 연대였다. 권영숙 대표는 “사회적 원자들, 비조직 노동대중이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노동 문제에 접근하고 스스로 동참하겠다고 나선 것이 희망버스”라며 “희망버스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의미한 노동의 사회적 연대운동의 출발”이라고 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최강서의 죽음 모두 노동자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스스로 위축됐고, 그 속에서 자기 생존만 도모하는 과정이 뒤따르고, 노조활동이나 노동운동이 왜소해 지면서 만든 죽음이었다.

그는 이런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연대로만 끊을 수 있는데도, 희망버스는 일회적이고 사건적인 성격이 강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희망버스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을 끌어가자 사람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데 대한 인권의식이 추동시켰다. 그렇다면 어떻게 희망버스로부터 시작된 노동의 사회적 연대를 지속적 문제의식으로 확장하고, 장기적 전망으로 추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노동의 연대의식을 담아낼 매개체를 어떻게 확보하고 사회적 연대를 제도화하는 틀을 만들어 낼 것인가 였다.

“제 생각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장기적 전망과 연결하게 하면서 진행하느냐가 매우 필요했고, 희망버스 탑승객들의 문제의식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인권적 수준의 접근이나 불쌍한 사람 하나 살리자는 문제의식으로는 사실 파업에 긍정하고 노동의 시민권을 긍정하는 문제의식으로 가기는 모자란다고 봤어요. 그런 것들의 촉매제를 위한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2차 희망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대한 구상을 하고, 2011년 7월 17일에 처음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바로 열렬한 반응이 왔다.

“글로 하는 문제 제기였어요. 반향이 없더라도 한번 생각해달라는 거였지요. 파업기금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돈의 압박 속에 시달리다 파업의 재단에 목숨도 버리고 가족의 생계와 인생을 망치는 걸로 간주하는 상황인데, 이 정도면 한국의 파업권은 유명무실한 거예요”

7월 17일에 제안하고 22일에 계좌를 만들자 바로 돈이 들어왔다. 준비 모임을 만들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그해 9월 초 한진중공업에 처음 기금을 지원하기 시작해 재능, 쌍용차 등 지금까지 열여덟 번의 기금을 노동자 쟁의와 생계기금으로 지원했다. 또 희망뚜벅이 방한복 지원이나, 지난겨울 전국의 100여 개 투쟁사업장에 대한 방한물품 지원, 해고자의 날 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사파기금의 제1의 지원원칙은 돈이 모이는 대로 쌓아두지 않고 곧바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의 압박에 가장 시달리는 투쟁사업장에 대한 우선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가능한 주목받지 않는 곳 위주로 지원한다. 어떤 이는 굳이 기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싸울 때마다 돈을 모아주면 되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그는 개별화되고 원자화된 연대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마음먹을 때만 지원한다는 거예요. 실제 파업 현장은 계속 유지되고 싸움은 계속되는데 그런 불안정한 후원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죠. 사파기금은 연대를 체계화하고 조직적으로 가야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기금을 왜 미리 쌓아두느냐는 질문도 많은데 저는 그게 바로 다른 후원 운동과 사파기금의 차이라고 봐요. 저희는 돈을 쌓아두지 않고 돈이 모이는 대로 바로 지원하는 체제이지만, 미리 준비된 기금이라는 의미에서 노동자의 최소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봐요”

돈을 통한 연대도 급진성 필요

사파기금은 2년이 됐지만 권영숙 대표는 여전히 연대가 화두다. 한 번의 연대에 기대면서 뭔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양된 연대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연대에 대해 더 급진적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통한 연대에도 이런 급진성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조금 더 준다는 생각을 해선 안 돼요. 내걸 나눠서 줘야 하고 나 대신 싸우는 사람들에게 연대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들은 해고를 당했지만, 노동자인 내 문제를 위해 싸우고 있고, 한 사업장 노동자 투쟁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할 때 사회적 연대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건 자신이 가진 돈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노동하는 내가 노동의 대가인 돈을 나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렇게 돈으로 하는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을 통한 연대니 만큼 사파기금은 기금의 규모 등에서 여전히 한계를 느끼고 있다. 사파기금의 올해 목표는 명실상부하게 실효성 있는 기금이 되는 것이다. 노동자 파업뿐만 아니라 손배가압류나 생계기금도 충당할 정도로 성장해 노동자가 돈 때문에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작년 2월부터는 1만인 1만원 계좌운동을 진행해 월 1억 원씩 기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하나의 실효성 있는 기금으로 자리 잡고 노동자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회 민주주의와 노동 학교, “인문학 범람, 역사와 사회과학 잇기 필요”

사파기금은 단지 돈을 모아 지원하는 기금만이 아니다. 돈은 모이는 대로 보낼 뿐이고,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의 문제의식 공유와 노동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가고, 노동자 연대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토론의 장을 위해 ‘사파포럼’이라는 노동포럼을 만들어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개최하고 있다. 사파포럼은 노조파괴문제, 비정규직의 삶, 노동정치 등 때마다 중요한 노동현안이나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토론해왔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회 민주주의와 노동 학교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 민주주의와 노동 학교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형성에서 전환까지”라는 주제로 87년 이후 한국노동운동사 기획 강좌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라는 과정에서 87년 이후 노동의 역사를 재구성할 계획이다.

이번 노동학교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요구했고,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하에서 노동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권영숙 대표는 “이제 인문학은 충분하고도 범람하고 있다”며 “역사와 사회과학 잇기가 필요한 시대”라고 이번 강좌를 소개했다.

인문학을 하자고 외치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고 인간적이면 되고 인간들에게 공감하면 되는데 그건 철학하고 고문 읽고 교양 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과학이 부족하단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캐묻고, 알아내고, 빈 구석을 찾고, 자명한 것을 자명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허위의식을 넘어 진리의지라고 할 게 있다면 맘껏 발휘하기 위해 제2회 민주주의와 노동학교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올 민주주의와 노동 학교는 남한 노동의 역사를 종단적으로 살펴볼 생각이다. 통사를 통해 탐색하고, 노동만 고립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노동을 전체적 지형과 민주주의 정치사 속에서 조감한다. 그는 “월러스타인이 말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노동문제를 살펴보는 이번 강좌는 나름 독특하고 흥미로운 앵글”이라고 설명했다.

강좌는 4차례 진행되며 오는 8월 20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한국여성노동자회 교육장에서 진행된다. 강좌 문의는 sapafund@gmail.com, 신청은 http://goo.gl/AINfx 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