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이어쓰기] 프레시안 연재 다섯 번째 글
노동재난연대기금에 동참한 울산의 노동운동활동가 안지연님이 쓴 글입니다. 코로나19가 노동재난임을 울산의 제조업노동자의 경우를 통해 지적하고, “투쟁없는 연대기금은 연대가 아니”며 “노동의 이름으로 연대해야한다”는 내용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크게 공감했다. 단지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감춰진 노동의 존재를 드러내고 노동의 입장으로, 계급적 관점에서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 요즘 소위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데, 진짜 ‘진영’이 되어야 할 노동자집단의 목소리를 조직해 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대공장 노동자들이 꼭 함께 했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고연봉을 받으니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투쟁을 양보한 대가로 지원하자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공장 밖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 문제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보탰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나아가 사회적 연대흐름을 만드는데 민주노조운동이 조직적인 역할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투쟁과 실천, 비판과 저항 없는 연대기금은 사회적 연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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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연 울산 노동운동단체 활동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코로나19로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일상에서 존재하던 차별과 배제, 사회적 모순들은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대규모 감염병사태에 맞닥뜨리며 작동된 혐오와 배제의 정치, 폐쇄병동 집단감염으로부터 드러난 시설장애인의 처참한 실상, 노숙인과 결식아동 무료급식 중단과 마스크를 못 구해 외출조차 힘든 쪽방촌 주민 등 생존위협으로 이어진 빈곤문제, 언택트 시대에 콜센터, 택배 등 ‘커넥트’ 노동자들이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아이러니, 코로나 예방은 사치일 만큼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물류센터 앞에 줄 서야하는 투잡, 쓰리잡, 초단기 알바로 내몰린 사람들.

한편에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력히 강제됐지만, 다른 한편에선 공장과 기업들은 평소처럼 팽팽 돌아갔다. 그나마 사무직 중 일부 정규직은 다행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다수 노동자들은 거리두기를 선택할 수 없었다.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잘리거나 감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처했고, 전 세계 자동차공장 중 예방을 위한 셧다운을 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듯이, 생산직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계없는 존재인 듯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삭감, 무급휴직, 집단해고를 걷잡을 수 없이 맞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노동자일수록, 영세/이주/여성 노동자 등 구조적 차별에 놓인 노동자일수록 ‘노동재난 종합세트’를 직격타로 맞았다. 가장 민주적으로 방역을 잘한 나라라는 자부심 속에 노동자와 가난한 이에게 닥친 재난은 안타까운 개인의 불운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감염의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한편, ‘민주적인’ 방역조치 속에서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당연시하고, 불가피한 긴급함을 이유로 개인정보가 아웃팅되어 모범 확진자인지 나쁜 전파자인지 평가대상이 되고, 순식간에 국가가 나의 행적을 알아낼 정도의 시스템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또 다른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점은, (코로나 확산 초기) 운동진영조차도 당장의 불안과 공포로 인해 나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분위기, 개인위생만 철저히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 말하지 않는 상황 그 자체였다. 각자도생, 내가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를 새삼 깨달으며 무거운 씁쓸함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사회적 문제에 ‘집단적’ 저항과 비판이 줄어든 만큼, 위기로 인한 고통은 어쩔 수 없다는 패배감도 커지는 듯하다. 현장에선, 코로나 경제위기 겁박까지 더해져 어차피 구조조정은 막을 수 없고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개인주의, 노동자가 먼저 양보하고 생산성·품질향상에 협조해야 그나마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지킬 수 있다는 실리주의가 더욱 팽배해졌다.

재난에 처하지 않은 이들에게 긴급하지 않게 지원된 돈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다. 주변에 어디에 쓸 거냐 물어봤다. 당장 생계위협이 없는 대공장 노동자들이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팍팍한 살림살이 형편이라 늘 쓰던 생활비로 나간다고 답한다. 간혹 젊은 사람들이나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평소 사지 못했던 옷 등을 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말한다. “주는 건 좋지만 사실 이거 없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당장 어렵고 절박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게 낫지 않냐?”

재난에 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주는 지원금은 사실상 ‘공돈’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진짜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라면, 왜 이주민, 노숙인은 배제될까?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기에 왜 이리도 턱없이 부족할까? 사실은, 재난당한 이들과 관계없이 ‘경기부양책’으로 지출하는 돈임을 다들 알고 있다. 이미 기업에 우선적으로 200조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여한 바 있듯이, 기업과 자본을 위한 정책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세계적 경제위기 지표가 확인되던 상태에서 일시적 소비 진작을 위해 돈을 푸는 게 과연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는지 의문과 별개로, 노동자를 위한 정책 없이, 특히 대규모 해고를 방관하며 기업지원에 힘 쏟고 있는 사실은, 코로나 이후 국면 또한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어떠한 재앙이 닥칠지 살 떨리게 예감케 한다.

코로나 전부터 고통받던 노동자, 코로나를 이유로 더 양보하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제기된 노동정책을 보며 놀랐다. 박근혜정부 시절 회자되던 노동개악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창 코로나 비상이던 지난 3월, 경총은 위기극복을 위해 △ 법인세·상속세 인하, △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 정리해고요건 완화, △ 쟁의행위(사업장점거) 금지, △ 대체근로허용, △ 사용자 처벌금지 등 40개의 반노동법안 입법을 요구했다. 5월 들어선, 탄력근로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관련 뉴스가 나왔다. 여기에 발맞춰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이 한 배를 탔다, 지금의 위기는 고통분담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중요한 기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아가 6월 고용노동부는 △ 임금인상 자제, △ 파업 자제, △ 임금체계 개편(개악)을 요구하며 나섰다.

자본은 코로나국면에선 코로나 때문에 임금을 깎고 해고할 수밖에 없다더니, 코로나가 진정된 후에도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다하다 자동차회사는 ‘보복소비’를 대비해 △ 주52시간 규제 면제, △ 파견⋅대체근로 허용, △ 부당노동행위 적용 제외, △ 특별연장근로 대폭 허용 등 온갖 규제를 풀자고 말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생산성 협조에 나서라며 고통분담, 노사상생도 어김없이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모든 해고 금지’를 요구하며 원포인트 노사정교섭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하는데 우선하지 않고 대화의 틀 안에서 과연 모든 해고가 금지되도록 자본가들을 설득하거나 압박할 수 있을까? 고용보험 확대 대신 노동시간 유연화를 요구하는 저들의 의도에 맞서, 대화를 통해 쟁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의 이름으로 대응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노동자, 돌봄노동자, 택배·물류노동자 등 노동력을 “갈아서” 방역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나서야, 감염에 취약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 확산국면에도 생산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노동자의 안전보다 생산을 중시하는 사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투쟁현장, 문중원열사 빈소 침탈, 아시아나 비정규직 농성장 침탈, 소성리 사드배치 공권력 대규모 투입을 보며, 코로나19 방역대상에 투쟁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음도 느꼈다.

노동의 존재,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존재, 가난한 이들의 존재를 집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향후 닥칠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더 큰 공격 앞에 스러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 앞에 이 사회의 대응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고 느꼈던 사람들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이들이 각기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하는 사회적 연대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대응 중 하나로,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크게 공감했다. 단지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감춰진 노동의 존재를 드러내고 노동의 입장으로, 계급적 관점에서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 요즘 소위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데, 진짜 ‘진영’이 되어야 할 노동자집단의 목소리를 조직해 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투쟁과 저항없는 연대기금은 연대가 아니다

빠듯한 형편에 노동재난연대기금에 동참하며 자신의 생계비를 보태시는 분들을 보며, 많은 걸 느낀다. 쉽지 않을 결정일 것이다. 다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래서 금액이 얼마가 되냐 문제보다 어느 정도가 됐든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는 일에 함께 했으면 한다.

그래서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대공장 노동자들이 꼭 함께 했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고연봉을 받으니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투쟁을 양보한 대가로 지원하자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공장 밖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 문제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보탰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나아가 사회적 연대흐름을 만드는데 민주노조운동이 조직적인 역할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투쟁과 실천, 비판과 저항 없는 연대기금은 사회적 연대가 아니다.

*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적연대! 코로나19노동재난연대기금 참여방법

1. 링크 신청 바로가기 : 클릭

2. 직접 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47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주관: 사회적파업연대기금/ (홈페이지 sapafu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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