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경선에 나선 무소속후보 버니 샌더스가 4월9일 결국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최대의 방역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말하는데 이에 빗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고 할 만하다.
이 말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내놓은 공식 논평에 있는 말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는 전국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톰 페레즈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거친 생각(a wild idea)을 더이상 퍼뜨리지 않는 것이 미국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미국인들은 결정했다”고 말했다.눈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었고 몇 번을 읽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발언인가.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혼돈과 무책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빈부 격차가 빚어낸 참극 속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말이다. 공공의료의 부재, 사적 의료보험체계, 국민 수명이 70년대 이후로 계속 낮아지고 유아 사망률이 갈수록 높아가는, 그래서 기이하게도 제3세계 빈곤국가들과 사회 지표가 유사해져가는 나라. 그 정점에서 지금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의 불행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코로나19앞에서 인민의 불행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미국은 사회주의가 필요한 국면이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그래서 자본주의의 선진국들, 유럽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지금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사회주의적 조처를 졸속 모방하고, 시장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국가의 힘과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예들이다.
미국은 지금 1950년 한국전쟁때 제정했지만 사문화됐다시피했던 ‘군수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을 발동해서, 민간기업에게 코로나19 관련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등 의료물품을 제조하게 하고, 국가가 강제로 징발하는 조처를 취했다. 심지어 이 법에 따라서 해외 다른 국가애서 수출하는 마스크까지 자국으로 빼돌리고 있다.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또 미국은 유동성 통화에 대해서 시장원칙과 상관없이 무제한의 양적 완화를 선언했다.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다고 하고 국민들에게 긴급한 재난기본수당을 준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주의와 기업 살리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거세게 덮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월10일 현재 16000명이 사망했는데 시카고, 뉴욕등에서 흑인 빈민지역의 코로나19 사망율이 치솟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하고, 코로나19 사망자로 분류되지도 않은채 스러질 것이다. 이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국등 전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1세계나 3세계나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가난한 무산자계급, 소수자, 무국적자들이야말로 코로나19앞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코로나19의 전지구적 판데믹 속에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모방한 중앙집권적 자원 동원과 배분체계를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부양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이 다가 아니다. 그냥 헬리콥터 머니 찍어내서 뿌리면 여하튼 경기가 좋아지니 전국민이 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것, 혹은 그중 얼마나 떡고물이라도 가난한 자들에게까지 미치겠지 하는게 아니라, 지금이 정말 전시경제에 준하는 재난경제 상황이라면 사회적 자원과 재원과 물자를 ‘사회주의적으로’, 사회전체의 평등의 방향에서 약자 우선으로 배당하고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등 자본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로부터 배운 조처는 재빨리 실행에 옮기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뜻은 “거친 생각(wild idea)”라면서 기각한다.
결국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을 온건하게라도 주장하고 실현하자고 했던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는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에 거리두기’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선포기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이 급진적인 정치적 사고에 “감염”되어서 다음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 체제를 일소하길 바란다.”
미국과 자본주의에게 더 무서운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회주의, 맞다.
2020. 4. 10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