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재난의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적연대! 고립보다 연대를, 이윤보다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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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재난 앞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는 캠페인을 5월1일부터 시작합니다.
국가로부터 받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비와 기부가 아닌 연대행동으로 모아주세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염병 방지의 최대 전략이 되는 순간, 우리는 사회적 고립과 연대의 갈림길을 경험합니다.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는 전염병 퇴치 전략이 못됩니다.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인 ‘집단면역’ 전략은 전염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확진과 검사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완성됩니다. 한국은 코로나19에 맞서는 강력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델에 결핍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연대입니다.

감염자들은 숨고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 노동현장에서 태움문화로 불리는 고강도노동시간을 견뎌야했던 간호사들은 그 노동으로 한국 모델을 유지하는 전사가 되었습니다. 사재기가 만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염병 노출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했던 택배노동자들 덕분이지만 그들은 과로로 죽기도 했습니다. 또 봉쇄없이 사회가 작동하도록 만든 수많은 서비스노동자들, 돌봄노동자들, 제조업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얼마나 감사를 표하고 연대했던가요?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이 서서히 몰아치기 시작하는 지금, 코로나19는 ‘노동재난’이 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해고, 무급휴직, 실업 대란이 노동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거세게 덮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취업노동자 2천만명중 고용보험 가입노동자는 1380만명이며, 680만명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특수고용노동자 220만명은 4대보험 대상이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권을 유보당한 소규모 사업장,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성을 부인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아예 권리 외부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지금 헌법상의 노동권과 최소한의 노동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몰아치는 해고 광풍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학살일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19는 불평등한 사회적 재난이자 ‘노동재난’입니다.

코로나19 앞에서 긴급재난기금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공돈’처럼 소비하지 말고 코로나19 재난의 가장 변방의 약자를 위한 재난연대기금으로 환원, 조성하는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이 운동은 자선이나 시혜, 혹은 기부가 아니라 노동재난에 대한 사회적 연대이길 바랍니다!
국가로부터 전국민이 받게 되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일회적인 가처분소득으로 사용하지 말고, 사회적 노동약자와 민중을 위한 노동재난연대기금으로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제 새로운 연대의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2011년 희망버스 가운데, 노동이 돈앞에 스러지지 않는 사회적 연대운동으로 출발하여, 노동자의 파업기금을 사회적 연대로 조성하며 꾸준히 연대운동을 해온 사회적파업연대기금(사파기금)이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나서겠습니다.

9년전 불평등한 노동현실에서 노동의 시민권을 사회적 연대로 지지하기 위해 사파기금을 만들었듯이, 이제 코로나19의 사회적 재난 앞에서 더욱 불평등한 위치에 놓인 노동약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1. 이 기금은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목적성 기금으로 설치하여, 3개월 기한으로 조성하는 모금입니다. 3개월간의 모금 조성기간에 부디 함께 해주십시오.

2. 조성한 기금은 코로나19 노동재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국제적인 코로나19 연대, 활동가 재난기금으로 사용합니다.

기금 조성액의 규모에 따라 기금 목적과 대상을 더욱 넓힐 수 있습니다.
희망을 모으는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조성에 적극 동참해주세요.

코로나19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
격리와 락다운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사회적 연대로!
기부보다는 사회적 연대!
이윤보다 생명을, 고립보다 연대를!

2020. 4. 28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드림

코로나19 전염병이 전지구를 덮치고 있는 가운데 맞이하는 130주년 노동절입니다. 메이데이의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코로나19로 생존의 벼랑끝에 몰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함께 하겠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돌고 있는 가운데, 해고, 무급휴직, 실업 대란이 노동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거세게 덮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 노동자의 절반인 1400만명이 고용보험에 가입돼있지 않고, 가입자중에서 900만명 이상이 휴업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진행될 해고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생계의 위협이 될 사회적 학살입니다.
재난지원생활비 지급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모든 해고의 전면적인 금지!를 강제해야합니다!
둘째, 휴업수당, 실업급여 혜택에서 배제된 모든 노동자들에게 휴업수당, 실업급여를 즉각 지급해야합니다!

5월1일 노동절에 사회적파업연대기금도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사파기금의 연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실천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1. 인증샷 찍어 보내주세요:
“전면적인 해고 금지”와 “모든 노동자에게 휴업수당, 실업급여 지급하라! 는 구호가 적힌 웹자보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서 사파기금에게 보내주세요. sapafund@gmail.com 혹은 사파폰으로 보내주세요.

2. 당일 행사 참여:
5월1일 “모든 해고금지”를 외치며 함께 해주십시오. 장소는 5월1일 오후 3시 30분 해고 강풍이 불고 있는 항공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대한항공빌딩앞입니다. 사파기금 깃발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코로나19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존중하면서 진행합니다. 하지만 행동해야합니다.
이후 노동절날 일정에도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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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요>코로나19 노동절 공동행동

1. 대회 명칭
– 모든 해고금지! 악소리도 못내는 비정규직 긴급행동
2. 일시 및 장소
– 2020년 5월 1(금)15시30분
– 서울 도심(요구별 마당 거점)
3. 요구별 마당(3개 거점)
1) 모든 해고 금지
– 장소: 서소문로 대한항공빌딩 앞(2호선 10번출구 방면)
2)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휴업수당, 실업수당 지급 / 노조할 권리를 모든 노동자에게 /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없는 동일 지원
– 장소: 시청광장
3) 재벌 사내유보금 1000조원 환수
– 보신각 옆 종로타워(삼성전자서비스)
4. 일정
– 15:30 각 요구별 마당 집결
– 15:30~16:30 마당별 진행
– 16:30~17:00 광화문으로 행진
– 17:00~17:30 광화문 전체 행동
– 17:30~18:30 청와대 행진

공동행동 포스터

4.15총선 전 열흘 동안 한국사회는 다량의 ‘국뽕’주사를 과다 투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언론들, 짜깁기 해외 소식들, 담론들, 입장들. 그리고 좌우 가릴 것 없이. 우파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까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처능력을 인정했다고 하고, 좌파쪽(?)에서도 그에 대해선 특별히 이견이 없다 했다. 그게 지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 박근혜 퇴진시위 때 자유주의세력이 중심으로 서고 좌우를 거느리는 지형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조국 사태로 찢어졌지만, 다시 코로나19 앞에서 봉합됐다.

한국 사회 전체는 국뽕에 젖어있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코로나19 대처를 두고, ‘국뽕’(흔히 국수주의를 세속적으로 이르는 말)에 젖어 있는 가운데, 과연 무엇이 결핍되고 지워져 있는가? 우리는 생각하고 정치화했어야 했다. 진보의 독자적인 입장이 있어야했다. 총선에도 다른 입장을 제출했어야 했다.

여기서 ‘국뽕’의 정의는 단지 국수주의적 애국주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뽕’이라고나 할까? 강한 국가주의까지 포함한 의미로 나는 썼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우익세력이 오히려 국가적인 노력과 국가의 강한 역할에 대해서 찬물을 끼얹고 비아냥거리고, 폄훼하였다. 자유주의 세력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에 대해 어떤 불편함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사민주의자들도 국가의 역할을 적극 지지하고 주장하는 국가주의자들이 되었다. 즉 국가의 더 많은 역할과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먼저 요청하기. 코로나19 확진자중 자가 격리 규칙을 어기는 자들, 신천지에 대해서 더 강하게 통제하라고 얘기하기. 왜 빨리 돈을 찍어서 어디라도 뿌려야하지 않냐고 말하기 등.

또한 전체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전략을 두고 이 모두가 한국의 ‘국가’가 한 일로 치부하는 일, 나아가서 현 집권정부가 다 한 일로 치부하는 일. 이런 강한 국가의 배경이 되었던 역사를 다 미화하는 일, 사회적인 격리와 감금에 대해서 있을 수밖에 없는 ‘부대적인 사상자’로 보는 듯한 태도까지. 이 모두가 ‘국뽕’과 관련되는 사회현상들이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닌가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이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터져 나왔다. 이 두 가지의 단발마적인 의문이 바로 촛불시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회 화두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 박근혜를 퇴진시키면서 그를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게 만든 적폐의 원흉이라고 지목했다. 과연 국가 실패의 원흉은 박근혜일까?

그리고 촛불 2년이 남짓 지난 지금, 한국은 갑자기 국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강한 국가, 잘난 국가, 전 세계에 모범이 되는 국가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다시 의문이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국가는 없었다”던 상황에서 이렇게 한순간에 강한 국가의 면모로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코로나19 대응을 보이는 국가가 되었을까?

나는 세월호 참극이 일어난 후에 ‘국가가 없었다!’라는 한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혹은 이 사회의 전체성을 덮고 있는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를 문제삼아야한다고 말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국가는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한국에 국가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만큼 ‘강한 국가’ 유형도 없기 때문에. 해서 “국가가 없었다”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화해야하는 것은 “과연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 국가 역시 무능한 국가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실패한 국가(the failed state)’, 국가가 국민에게 실패했다의 의미가 아닌, 국가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지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의 국가는 이 ‘실패한 국가’라는 테제에도 답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견해가 그렇다. 실패한 국가는 ‘정상국가(normal state)’가 되었고, 나아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비정상의 정상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국가인 한국의 국가. 그런데 과연 이런 반전에 근거는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국가주의, 국뽕이 넘쳐난다. 심지어 진보세력까지 국가의 부활, 그리고 국가의 강한 개입에 대해서 유보도 비판도 없이 찬사를 보낸다. 국가가 개입하여 신천지 등 교회들에 대해서 금지령을 내려야하고 엄중하게 법집행을 해야 하고.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돈을 찍어내야 하고,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재벌을 포함하여 재난지원금을 살포해야하고.

근데 말이다. 과연 재난 앞에서 국가는 그렇게 중립적인가? 그리고 과연 지금 이 국가는 국민을 구별 없이, 사회집단을 구별 없이 대하고 있는가? 지금 돈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장 많이 흘러가는가. 지금 공권력의 위세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은 하는가.

총선 앞에서 국가주의, 국뽕. 아니 코로나19 앞에서 한국이 너무 잘하고 있고, 전 세계 국가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말들이 극에 달했다. 이 담론의 홍수가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선거전야였다. 선거는 연기할 수 없다면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치러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 공포는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강한 국가를 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노력은 집권세력의 공이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 과정은 국가, 그리고 나아가 현 정부가 잘한 ‘치적’으로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누가 코로나19 전선에서 일했는지, 이 사회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작동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과연 그들에게 이 모든 영웅적인 투쟁의 공이나 성과가 돌아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부는 그 과실을 챙길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넘었다. 1년 반만이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총선이 되었다. 과연 누가 전 지구적인 팬데믹이 만들어낸, 이 생명과 안전의 공포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역설이다. 6년 전 세월호 참극으로 이 사회는 안전사회 담론으로 이행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담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코로나19앞에서 ‘강한 국가’의 지지 배경이 되었다. 대통령도 코로나19와 세월호를 연결해서 발언한다. 우리는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라고.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와 자유주의 정치가 이긴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진보세력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좌파는 더욱 없다.

지금 코로나19 국면에서 고민의 한 지점은 이것이기도 하다. 계급적인 관점이 탈각된 국가주의와 안전사회담론이 결국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민총화’론으로 모든 것들의 구별선, 균열선, 분리와 배제의 선이 비가시화하고 있다. 지워지고 있다. 또다시 ‘눈먼 자들의 사회’다. 국가에 눈먼 사회. 세월호 참극의 정반대편에서.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2020.04.17 15:40

참세상 기사
사파논평은 인터넷언론 <참세상>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매달 2회 정도 나갈 예정입니다.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상읽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근육을 함께 기르고 연대의식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어 주시고 알려주세요.

미국 민주당 대통령경선에 나선 무소속후보 버니 샌더스가 4월9일 결국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최대의 방역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말하는데 이에 빗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고 할 만하다.

이 말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내놓은 공식 논평에 있는 말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사회주의에 거리두기”라는 전국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톰 페레즈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거친 생각(a wild idea)을 더이상 퍼뜨리지 않는 것이 미국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미국인들은 결정했다”고 말했다.눈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었고 몇 번을 읽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발언인가.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혼돈과 무책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빈부 격차가 빚어낸 참극 속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말이다. 공공의료의 부재, 사적 의료보험체계, 국민 수명이 70년대 이후로 계속 낮아지고 유아 사망률이 갈수록 높아가는, 그래서 기이하게도 제3세계 빈곤국가들과 사회 지표가 유사해져가는 나라. 그 정점에서 지금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의 불행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코로나19앞에서 인민의 불행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미국은 사회주의가 필요한 국면이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그래서 자본주의의 선진국들, 유럽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지금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사회주의적 조처를 졸속 모방하고, 시장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국가의 힘과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예들이다.
미국은 지금 1950년 한국전쟁때 제정했지만 사문화됐다시피했던 ‘군수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을 발동해서, 민간기업에게 코로나19 관련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등 의료물품을 제조하게 하고, 국가가 강제로 징발하는 조처를 취했다. 심지어 이 법에 따라서 해외 다른 국가애서 수출하는 마스크까지 자국으로 빼돌리고 있다.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또 미국은 유동성 통화에 대해서 시장원칙과 상관없이 무제한의 양적 완화를 선언했다.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다고 하고 국민들에게 긴급한 재난기본수당을 준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주의와 기업 살리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거세게 덮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월10일 현재 16000명이 사망했는데 시카고, 뉴욕등에서 흑인 빈민지역의 코로나19 사망율이 치솟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하고, 코로나19 사망자로 분류되지도 않은채 스러질 것이다. 이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국등 전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1세계나 3세계나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가난한 무산자계급, 소수자, 무국적자들이야말로 코로나19앞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코로나19의 전지구적 판데믹 속에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모방한 중앙집권적 자원 동원과 배분체계를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부양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이 다가 아니다. 그냥 헬리콥터 머니 찍어내서 뿌리면 여하튼 경기가 좋아지니 전국민이 다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것, 혹은 그중 얼마나 떡고물이라도 가난한 자들에게까지 미치겠지 하는게 아니라, 지금이 정말 전시경제에 준하는 재난경제 상황이라면 사회적 자원과 재원과 물자를 ‘사회주의적으로’, 사회전체의 평등의 방향에서 약자 우선으로 배당하고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등 자본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로부터 배운 조처는 재빨리 실행에 옮기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뜻은 “거친 생각(wild idea)”라면서 기각한다.

결국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을 온건하게라도 주장하고 실현하자고 했던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는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에 거리두기’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선포기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이 급진적인 정치적 사고에 “감염”되어서 다음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 체제를 일소하길 바란다.”

미국과 자본주의에게 더 무서운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회주의, 맞다.

2020. 4. 10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친지 3달째다. 긴급재난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일터는 가동율이 곤두박질치고,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고 무급 휴가를 강요당하고 임금이 자연삭감되고 있다. 소득이 줄고 있는 가운데 저축한 돈도 얼마 없는 사람들은 코로나19보다 생계난이 더 두렵다. 이들을 위한 ‘긴급 생활비’ 지원이 필요하다. 역병이 재난이라면 말이다.
근데 대통령이 취한다는 조치가 자기 임금 30% 줄이기다. 4개월동안 대통령과 장관들이 임금을 30% 삭감하고서 받겠다는 것이다.

일단 참으로 구태스럽다.
누구는 깎을 임금이라도 있어 좋겠다만 누구는 최저임금선 아래 받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임금 삭감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누가 적선해달랬나? 가난한 이들의 시민적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사회권’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국민을 나랏님이 궁휼히 여기사 시혜받는 백성처럼 대하련가.

그리고 행여 이 조처가 이후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 운운하며 임금 동결하고 삭감하고 장시간 노동시간을 유지하기위해 미리 하는 이른바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경총이 오늘 3일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기업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개선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 △지속가능 사회보장체계 확립 △선진 안전시스템 구축 △경영책임의 적정성 확보와 형벌 개선 등이다.

여하튼 그러니 당장 대통령과 행정부는 제대로 행정권력을 동원하여 행정적인 일을 하라. 행정적으로 실효성 있는 사회경제적 조처를 취하라. 그게 정치권력이 해야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흉내내는 쇼같은 일은 그만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모든 국민에게 정액 얼마를 지급하는 식의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해선 반대한다. 지금 재난기본소득을 청원하는 교수연구자들 연서명이 돌고 있다. 난 그 청원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장 첫머리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왜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으로 동일 액수의 긴급소득을 받아야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재난 앞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재난 불평등이 인간 참극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비상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재난의 계급성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최저임금선 이하의 노동자들, 자영업자중 하위 20% 소득을 대상으로 하여야한다.

그리고 이 지점 역시 중요한데 모든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생존기금을 지급하여야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배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이다.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이야말로 보편적이고 탈배제적이라고 하지만, 전지구적 전염병 앞에서 “국민”됨이라는 자격조건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배제적인가.

그러므로 지금 지급되어야하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

첫째, 생존유지가 버거운 하층 소득민에게 긴급한 구호기금으로서,

둘째,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건강할 권리를 가진 이들의 당연한 사회권으로서,

그리고 셋째 “국민”이라는 배제적인 보편기본소득이 아니라 이 땅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권이 위협에 처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생활비로서 주어져야한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기본소득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2020. 3.23

권영숙(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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