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박창수의 죽음과 노동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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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Young-sook Kweon 2012년 5월 7일 월요일 오전 5:38 ·

1991년 5월 6일 오늘은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의문사한 날이다.

1991년 5월6일 새벽 4시 45분, 경기도 안양병원 뒷마당에서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1960년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찰은 노조활동에 회의를 느낀 박창수위원장이 치료받던 병원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당시 정황과 그의 구속경위를 보면, 그의 ‘의문사’는 안기부와 연루된 것이라는 의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미 우리는 바로 얼마전인 4년전인 87년 1월 박종철의 고문치사 및 그 은폐사건을 겪지 않았는가 말이다. 모두들 박종철의 의문사를 떠올렸다. 우선, 의문점은 왜 안기부 조사를 받던 그가 안양병원에 있는가 말이다. 검찰은 그가 조사도중 다쳐서 치료를 받던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욱 묘한 것은, 시신을 보았던 부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투신했다는 그에겐 상처도 없었고 피도 흘리고 있지 않았다. 노동자, 학생들은 이 죽음을 ‘의문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안양병원앞으로 몰려들었고 안양병원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앞에선 매일같이 치열한 시위가 벌어졌다.

더구나 그가 구속된 경위는 더욱 이 죽음을 의문사 혹은 살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민주노조’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그를 이끌던 초대 위원장이 박창수이다. 박창수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스물 두 살이던 1981년 8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전 한진중공업)에 배관공으로 입사하였다. 그리고 1986년 도시락거부투쟁을 주도했다. 50여년 식당도 없이 탈의실과 공장 모퉁이에서 머리카락과 휴지가 섞여 나오는 도시락을 먹어온 노동자들이 “우리는 개밥을 먹을 수 없다”며 사흘 동안 도시락을 던져버렸다. 회사 쪽은 결국 나흘 만에 식당을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은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작년 85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위원 역시, 당시에 한진중공업 노동자였고, 그리고 해고된 1세대 민주노조 노동자이기도 하다. 박창수와 함께 한 많은 노동조합 베테랑이 아직도 한진중공업 노조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렇게 ‘민주노조’가 결성된 한진중공업은 87년이후 역시 어용노조에서 탈피한 서울지하철과 함께 90년 12월 결성된 ‘대기업연대회의’의 핵심이기도 했다. 당시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도 가입돼있던 이들 두 노조들은 다른 대기업노조들, 즉 대우노조협의회와 현대노조협의회등등으로 전노협에서 멀찍이 떨어져 자기들만의 재벌노조협의회를 구성했던 노조들을 끌어들여 ‘대기업연대회의’를 꾸린 뒤, 이어 전노협을 확대한 명실상부한 ‘제조업 민주노총’을 만들려고 했었다. 만약, 이것이 성사가 된다면, 이는 민주화이행이후 터져나온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를 가장 명확하게 조직적 결과로 만드는 것이었다. 급진적인 제조업 중앙노총의 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전노협을 확대한 제조업 민주노총의 결성은, 당시 노태우정권과 전경련등 자본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아픈 노동 상대자를 대면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안기부가 전면에 나섰다. 안기부는 이미 대기업연대회의의 결성이전에, 끊임없이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공작을 해 왔다. 그리고 구치소에 있을 때도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를 탈퇴하라며 온갖 회유, 협박을 자행하였다. 사망 전날에도 병원으로 안기부 직원이 면회와서 탈퇴공작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창수 열사는 “전노협이 나이고, 내가 곧 전노협인데 어떻게 전노협을 탈퇴할 수 있다는 말이냐”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결국, 1991년 2월, 경찰의 대대적인 대기업연대회의 침탈이 이뤄졌다. 그즈음 파업에 돌입한 대우조선노조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수련회를 열고있던 대기업연대회의의 모임에 경찰이 덮쳐 참가 노조간부 전원을 ‘제3자개입금지’ 위반혐의로 연행하였다. 그리고 핵심인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가장 강도높은 조사를 안기부로부터 받던 중, 박창수 열사는 5월 4일 이마에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전에 안기부 직원과 면담하고, 이틀 뒤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은 험악했다. 노태우 정권은 박창수의 부모를 협박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하였다. 그ㅡ리고 급기야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려고 안양병원에 백골단과 전경 22개 중대를 투입,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퍼부으며 영안실 벽을 부수고 시신을 탈취해 갔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부검을 해 버렸다.

박창수의 죽음은 바로 4월말 시위도중 경찰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의 죽음과 맞물려, 바로 비극적인 1991년 5월투쟁의 시발이 되었다. 의문사한 박창수 위원장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폭력경찰, 살인정권’ 규탄하는, 한국의 민주화 이행의 ‘제2막’을 열겠다는 5월투쟁이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강경대 박창수이후 분신 자살의 행렬을 이루며 13인의 죽음이후에 멈췄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원식에 대한 달걀투척행위가 몰고온 사회적 반동의 기류 때문이었다..매스컴과 정권의 홍보, 그리고 중산층등 이른바 화이트칼러들의 이반 및 민주화시위에 대한 염증…

6월 29일, 그의 죽음이후 근 60일 만에 박창수위원장의 장례가 치뤄졌다. 그의 부모는 그를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에 묻었다. 지금도 박창수 열사의 아버님은 전국의 노동시위와 집회 현장을 방문한다. 세월은 가고, 그의 이름과 그가 이루고자 한 ‘노동해방’은 갈수록 요원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늘 무엇을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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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창수 열사의 모습

관련 글 – “20년전, ‘벽 뚫고 들어온 남자들’ 잊을 수가 없다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9494

1991년, 박창수 열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안양병원 영안실을 백골단이 벽을 뚫고 들어왔다.

(이 사진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 그때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 박창수 열사 시신 사수 투쟁을 하던 그날 밤, 그리고 불타던 바리케이트를 한 번에 꺼버린 소방차, 벽을 부수고 시신을 탈취해가는 백골단의 모습을 보도했던 한겨레 신문 사진이 기억나는 군요…

그 사진을 기억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저도 기억나는데요.

: 그날!

저는 이석행씨와 기아자동차노조에
밤늦게 있다가, 박위원장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양병원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병실엔 어머님이 거의 혼절한상태로 중얼거리며 욕을 퍼붓고 있었고 박위원장은 하얀 가운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급히 가운을 들어 보니 박위원장 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혹시나 해서 살펴보니 발 뒤굽치쪽에 퍼렇게 멍같은것이 보였습니다,

응급실에 수상한 사람들이있어 몰아내고
즉시 바리케이터를 치고 병원에 있는 소화기를 모두 모았습니다, 무기가 될만한것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3일간 대치하다가 결국은 옆방 벽면에 구멍을 내고 시신을 탈취해갔습니다, 그날이 오늘이군요
밤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늘 말이 없고 과묵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이토록 목숨바치며 이루고자했던 길이
오늘 만신창이로 환부를 드러내니
정말 아프고 또 아픔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요! 박창수동지!

: 백골들이 공중부양하는 그 사진 저도 눈에 선합니다.

: 어이쿠! 벽뚫고 들어와 시신탈취해간 그 사진을 다시보게 되다니. 이거야 원 가슴이 떨려서.

: 그해 봄..최루탄으로 하늘을 뒤덮던…숨이라도 제대로 쉬어보려고 대로 옆골목으로 허우적 허우적 뛰어가는 우리 대오 저 앞쪽에 툭툭 떨어져 앞서가던 지랄탄….ㅋㅋㅋ 그 답답하던 20여년 전 봄 말이지요. ㅠ.ㅠ

: 기억이 생생합니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었군요….그 때, 병원에 뚫린 구멍은 메워지긴 커녕 더 커져가는 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 노동을 탈취해간 세력은 누구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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